프리듀크 꽃과 나비가 되어

슈크림(@cream_ouoovo)님 연성교환 감사드립니다!

 전쟁의 한복판에 있는 군인과는 거리가 먼 여자가 나타났다. 꽃과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 불멸대의 군인이자 대위인 듀크 월러의 앞에 나타난 건 이맘때 쯤이었다. 단독으로 전장을 휩쓸던 존재는 단번에 소대에서도 위협적인 인물이라고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최연소에 대위를 달고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문 일이었으니 그녀와 가까이 하려고 하는 자가 없었는데 그런 사람 앞에서 지레 겁을 먹은 듯 어깨를 잔뜩 움츠리다가도 솜뭉치처럼 생긴 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긴장한 표정이 전부 드러나는 프리아의 모습을 흘겨보던 듀크는 본론만 말하라는 것처럼 아무런 표정도 없이 팔짱을 끼고 있었다.

“저, 저는 스카테이 산맥에서 왔어요. 검술도 할 줄 알고…. 다친 사람도 치료할 수 있어요…!”

“필요 없다.”

“하지만…. 제가, 생존에 도움이 될 거예요…! 그러니…. 저를 이용하세요…!”

“오사드 소대륙의 서쪽에서 왔다고 해서 네가 무엇을 할 수 있지? 보기에도 허약하고, 울보에, 남의 도움 없이는 혼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생긴 애가 올 곳이 아니다.”

살얼음판 위에 걷는 것처럼 두 사람 사이에는 냉전이 감돌았다. 전장에서 힐러는 유일하고도 몇 안 되는 직업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소크를 완전히 잃어버리게 되거나, 심한 부상과 트라우마를 겪은 이들은 두 번 다시는 지팡이를 들 수 없게 되는 광경을 많이 지켜보았다. 그녀도 결국 그런 존재와 별반 다를 게 없을 거라고 여기기도 했고, 듀크는 그녀가 있든지, 없든지 그다지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귀찮게 하지 말고 좋게 말할 때 가줬으면 좋겠군.”

마지막 경고라는 것을 담당 소대 중사부터 훈련을 받고 돌아온 소대원까지 전부 알아들은 듯한 모습이었다. 탁 트인 공간을 가진 불멸대 소대 접수대 앞에서는 에메랄드 거리에서 도움을 요청하던 시민들이 한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관리와 보안과 보급을 담당하는 이들이 서로 다투고 있으니 모른척하고 지나칠 수 없지 않겠는가? 숨죽인 채로 상황을 지켜보는 담당관들의 시선에도 듀크는 제 할 말만 성의 없이 전달하고는 등을 돌렸다.

“…제가 당신에게 증명해 보일게요. 당신이 한 번이라도 내 도움이 필요 없다고 말하게 된다면…. 그땐 저도 포기할게요. 그래도, 안될까요…?”

“…………….”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프리아의 완고함에 평소처럼 일정하던 듀크의 미간이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유지하던 포커페이스가 일방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시선 한번 피하지도 않는 프리아의 모습에 결국 자신이 감정적으로 굴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결의에 찬 녹안이 반짝거리며 빛이 나는 시선을 보던 듀크는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녀를 제 손으로 내쫓아버리겠다고 다짐하면서 그녀의 제안을 마지못해 허락하게 되어버렸다. 잿빛 머리카락에 가려진 서늘한 보랏빛 눈동자가 생기를 머금기 시작했다.
“사람이 착하기만 해서는 군인 생활을 버티긴 힘들 텐데 말이지. 자네에게 다른 문제가 보고 된 게 있었나?”

“………아닙니다. 별일 없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회색 군복 외투와 검은 군복 바지를 입고 나온 듀크가 아침 인사를 건네던 에르사디안과 마주치자 바로 경례 자세를 취했다. 듀크를 보고 경례를 따라 취해주던 군인 대령인 에르사디안이 인자한 표정으로 듀크를 반겼다.

오랫동안 함께 시간을 보낸 직장 상사와 마주하는데도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보고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업무보고를 가만히 듣고 있던 에르사디안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입가가 조금씩 경련하기 시작하더니 다시 생각해봐도 웃긴 모양이었는지 ‘자네가, 그걸 허락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하고 웃긴 얘기라도 들은 사람처럼 박장대소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웃기십니까?”

“누가 들어도 웃기지 않는 얘기가 아니지 않나?”

“저는 하나도 안 웃깁니다.”

남일이라고 그렇게까지 웃는 대령에게도 여전히 표정 하나 변화 없이 가만히 지켜보던 듀크가 묵묵하게 내려가던 안경을 엄지손가락으로 치켜올렸다. 살면서 한 번의 경우도 시간을 어긴 적 없는 듀크에게는 모든 일정이 자신의 계획대로 흘러가야만 했다. 순간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제 성격에 있는 치명적인 부분은 결함이었다. 어느 순간이든 침착해야 하고 감정적으로 행동하면 안되었는데 그녀가 제 앞에 나타난 이후부터 자신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함께 있는 시간이 지나고, 조금씩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거나, 대화를 하지 않았던 듀크에게는 제 주변 사람들은 같이 일하고 금방 떠나는 관계는 자신에게 있어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도울 수 있는 일이 없을까요?”

“아유, 저번에도 도와줬잖아요.”

“괜찮아요,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걸요.”

프리아는 곤경에 빠진 사람들을 단번에 찾아내서 사람들의 일을 돕고 해결하기 시작했다. 부조리하고도 부당한 일인데도 먼저 나서서 일을 하려고 하는 무모하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입대한 지는 얼마 되지 않는 신입일 뿐이라고 보고 받았지만 다정하고도 상냥한 목소리로 사람들을 대하는 모습이 자신에게는 낯설게 보였다.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행복해하는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니 가슴 언저리에서부터 무언가 올라올 것만 같은 울렁거림이 느껴졌다. 상처를 가리기 위해 뒤덮은 천과 숨긴 자신의 본성과도 닮은 흉터가 이토록 모질게 느껴진 것은 처음이었다.

목을 가린 하얀 스카프가 이상하리만큼 불편하고 답답하기 시작했다. 그녀를 보고 있어서 그랬는지, 꽉 조인 스카프 때문이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따라오지 마.”

“…제가 여전히 미덥지 않은 건가요? 아직 당신에게 실력을 인정받지 못했을 뿐이에요.”

“실력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당신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말은…. 지, 진심이에요…! 발목 잡히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겠어요……. 그러니, 저도 같이 가면 안 돼요…?”

“쓸데없는 짓 그만하고 네 몸이나 신경 쓰라고!”

듀크는 자신이 처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자각했다. 순간적인 열기에 눈가가 홧홧해질 정도로 머리가 뜨거웠다. 프리아의 녹안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은데도 울지 않으려고 애써 아랫입술을 질끈 무는 표정을 마주 보고 있으니 자신이 그녀에게 가진 감정이 어쩌면 평범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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