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사랑의 정의

파판14 프레히카

月卯奇話談 by 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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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림주 묘사, 암기 잡퀘 스포일러 있음

나는 갑갑한게 제일 싫어요. 여관의 침대 위에 무릎을 끌어안고 앉은 그녀는 소울 크리스탈을 만지작거렸다. 예, 알고 있습니다. 근처에서 솟아오른 것 마냥 나타난 갑주를 입은 남성은 나지막하게 답했다. 그녀는 놀란 기색도 없이, 그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좁고 추운, 어두운 여관 방. 이슈가르드의 여관은 이제 막 전쟁이 끝났음을 여실히 드러내기라도 하듯 난방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나무로 지어진 오래된 건물. 바깥에서 스며들어오는 차디찬 겨울바람. 물론 설산 출신의 비에라인 그녀에게는 그다지 상관 없는 추위이기도 했다. 비록 그곳에 지낸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해도 이후에 지낸 곳 역시 추운 곳이었기에 별 차이는 없었다.

"그거 알아요, 프레이? 좁은 곳에 계속 있다보면 사람은 점차 미쳐가요."

"물론 알고 있습니다."

"프레이는 대단하네요. 나는 최근에야 눈치챘는데."

"내가 당신에 대해 모르는 것은 없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괜히 이불을 들췄다가 내려놓기를 반복하더니 한숨을 작게 내뱉었다. 어쩜 저렇게 한결 같을까. 저러기도 쉽지 않은데. 그의 정체를 알면서도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상대를 믿지 못했던 지난 세월만 벌써 몇 년이던가. 이젠 세는 것이 의미가 없을 지경이었다.

멍하니 가라앉은 눈빛을 한 그녀의 손을 그가 조심히 잡아주었다. 온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갑주의 냉기만이 전해지는 그의 손은 그녀를 더욱 차가운 현실로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프레이는 그것을 알면서도 그녀를 조심히, 손수 눕혀 이불까지 덮어주었다. 이제 쉬어야지요, 나의 주인. 프레이의 말에 그녀는 그제야 눈을 감았다. 그들이 여관에 들어온 이유는 오로지 하나였다. 그녀는 오랜 여행에 지쳐있었다. 스스로도 모를 정도로 달려왔고 떠밀려왔다(고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그녀가 이제서야 지쳤음을 알았고 그나마 고향과 비슷한 환경인 이슈가르드를 찾아온 것이었다.

그녀는 비에라였다. 에오르제아에는 몇 없고, 기껏해야 올드 샬레이안이나 보즈야에서나 볼 수 있는 희귀종족. 오죽하면 현인들조차 에오르제아에서는 비에라 족을 처음 보았다 했을까. 그런 낯선 땅에서 그녀는 여태껏 앞만 보고 달려온 것이었다. 설산에서 태어나 북대륙에서 지내던 그녀를 위해 성도에 다시금 발을 들인 것이었다. 사실 그들에게 이슈가르드도 그다지 좋은 추억이 있지는 않았다. 그와 처음 만났을 당시만 해도 친구를 여럿 잃었던 상태였고, 자신이 어떠한 상태인지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슈가르드는 그녀에게 용기사라는 이유로, 그것이 할로네의 인도라는 이유로 용시전쟁의 최전방에 설 것을 요구했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마음을 내어주었던 이를 몇이나 잃었던가. 몇 번을 배신당했던가.

그 이후도 프레이는 한결같이 그녀를 걱정했다. 동방에 갔을 무렵엔 고향이 있었을 곳을 얼마나 보았던가. 갈 수 있을지, 다녀와도 좋은지 묻지 못한 것은 어째서인가. 결국 그 근방까지 갔음에도 고향땅 한 번을 밟지 못했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만 두고 쓰러지는 이들을 보며, 자신이 나아갈 길을 터주기 위해 스스로를 던지는 이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던가.

프레이는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알 수 밖에 없었다. 그는 그녀가 영웅이 되지 못하게하는 나약한 모습이었다. 어쩌면 영웅이 되기 위해 자신을 나누었다고 볼 수 있었다. 괴로운 여정에 그녀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비명은 쌓이고 쌓여 그녀를 질식하게 만들었다. 그런 비명의 심해에서 만들어진 것이 프레이였다. 비록 몸과 이름 모두 자신의 것이 아니었으나 상관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녀의 곁에 있는가 아닌가였으니.

광활한 우주에서 그녀의 동료라던 자들은 나아갈 길을 만들겠다는 이유로 그녀를 홀로 남겨두었다. 명백하게 너덜거리는 조각만을 겨우 쥔 그녀를 나아가라며 한 몸을 다 바쳤다. 그것이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의 마음이 울고 있었다. 스스로도 모른 채로 슬픔에 잠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그야말로 영웅의 모습이었다. 프레이는 조심히 그녀의 등을 밀어주었다. 그녀는 괴로워했으나 멈추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가 할 일은 하나 뿐이었다. 나아갈 힘. 한 걸음 더 모험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 주인이자 영웅이 된 자신에게 해줄 수 있는 단 하나의 용기였다. 멈춰도 됩니다. 나아가지 않아도 좋아요. 어떠한 선택을 하든 함께할 것이니. 그 말을 알아들은 그녀는 다시 나아갔다. 부정하지 않는 것, 긍정해주는 것. 그것이 그녀가 나아갈 수 있는 힘이었다.

'마지막에는 홀로 남았었지만…….'

그것은 그녀의 자의였다. 이런 너덜해진 마음으로 무슨 생각을 한 건지. 프레이는 여전히 잠들어있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언제부터인가 무기가 아닌 마법을 쓰게 된 그녀는 그래도 한결 편안해보였다. 살기 위함이 아닌 스스로 원해서 든 만큼 그녀는 꽤나 만족하는 듯 보였다. 그럼에도 그녀는 이렇게 종종 자신을 불러낼 때가 있었다. 자각은 없는 듯 하지만 외로움을 타는 것이 그 이유였다.

우주로의 모험이 끝을 맺고 그녀는 이제 이 땅에서, 이 별에서 가장 자유로운 이가 되었다. 끝없는 외로움, 꽉 막힌 것 같은 답답함에서 벗어나 훨훨 날아갈 수 있는 자유로운 하얀 새.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어딘가에 갇힌 것 마냥 날아가지 못했다. 과거의 망령에 잡힌 채로 그 어디에도 가지 못하는, 이제서야 자유로워진 그녀는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지도 못한 채로 고향과 비슷한 환경인 타지에 온 것이었다.

프레이는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당연한 것 아닌가. 그는 그녀에게서 분리되어 나온 존재였다. 모르는 것이 더욱 이상한 일이었다. 날아가고 싶으나 나는 법을 배우지 못해 날지 못하는 새. 그것이 그가 내린 그녀에 대한 판단이었다. 다른 이가 듣는다면 우스갯소리로 받아들일지 몰랐다. 그러나 프레이는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누구보다 그녀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자신이기에.

곤히 잠에 든 그녀의 옆에 앉아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넘겨주었다. 아직 수리를 마치지 못한 여관방은 차디찬 바람이 새어들어오고 있었다. 안쓰러운 나의 주인. 그러나 이제는 같이 걷겠다 약속했기에 그녀를 말릴 수 있지도 않았다. 차라리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나와 같이 갔다면 좋았을텐데. 이 별의 그 누구보다도,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스스로도 잘 알텐데.

그것이 비록 자기혐오에서 비롯된 사랑이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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