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onauts

카키+아라

WT by 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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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트리거 세계관의 우주 설정이 아니라 우리가 실제 살고 있는 우주 설정입니다.

*캐릭터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날조 요소

*캐릭터 사망 요소

별은 수소를 연료로 사용한다. 핵에 있는 수소를 대부분 먹어 치운 별의 바깥쪽은 팽창하고 붉은색으로 빛나기 시작한다. 우리의 태양과 비슷한 크기를 가진 별이 이 상태가 되면 적색 거성이라고 부른다. 수소를 모두 사용한 별의 핵에는 부산물인 헬륨만이 남고, 헬륨은 차례로 탄소와 산소를 생성한다. 그러나 이 과정은 별의 긴 인생 중 찰나와 같은 시간만 지속되며, 작은 별은 결국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표면 물질을 우주 공간으로 토해낸다. 이를 행성상 성운이라고 부른다.

한때 찬란했던 별의 자리에는 하얀 난쟁이별만이 남는다. 행성상 성운은 별이 만들어낸 탄소와 질소를 우주로 퍼트리는 역할을 한다. 탄소는 생물이 이용하는 에너지원의 필수 구성 요소이며, 질소는 DNA와 아미노산을 이룬다. 어느 쪽도 생명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원소다.

별은 영원하지 않기에, 우리는 이곳에 존재할 수 있다.


해질녘, 작은 차 한 대가 아무도 없는 길을 달린다. 조수석에 탄 검은 머리의 남자는 창문을 내리고 바람을 느끼고 있다. 한적함에도 불구하고 속도 제한을 제대로 지키는 덕에 기분 좋은 풍속이 남자의 깃털과도 같은 머리카락을 헤집는다. 여름밤의 공기는 적당히 촉촉하고, 적당히 시원하다.

오늘 밤, 지나가는 혜성의 파편들이 지구 대기에 진입할 예정이다. 그 돌조각들은 대기와 부딪혀, 지구 표면에 사는 그들의 사촌들과 만나보지도 못한 채 화려하게 반짝이며 결국 소멸할 운명이다. 그리고 지구를 점령한 영리한 생물들은 작은 손을 모아 간절한 소원을 빌며, 별도 아닌 그들을 가리켜 흐르는 별의 비流星雨라고 부를 것이다. 차창 밖을 내다보는 아라시야마와 운전석에 앉아 있는 카키자키도 그들 중 하나였다.

항상 그렇듯이 이야기를 꺼낸 건 아라시야마였다. 보더의 19세 동갑내기 남자 모임은 주로 아라시야마의 지휘하에 교토에도 가고, 바다에도 가고, 천체관측을 하러 가곤 했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유성우가 내린다는 소식에 단체 연락을 돌린 아라시야마였으나, 우연히도 카키자키만이 시간이 비어 있었다. 평소였으면 아라시야마도 포기했겠지만, 어째선지 오늘만큼은 끈질기게 둘이라도 가자고 카키자키를 졸랐다. 그리고 카키자키는 보통 아라시야마가 그렇게 나오면 거절하지 못했다.

둘이 향하는 곳은 저번에 5명이서 천체관측을 위해 간 적이 있던 작은 언덕이었다. 보더의 경계 구역에서 꽤 가까운 덕분에 주위에 사람이 없어 한적하며, 빛공해가 없어 별도 잘 보이는 그들만의 숨은 명소였다. 카키자키가 내비게이션에 의존하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으리라 확신이 들던 즈음, 아라시야마가 조용히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멜로디는 익숙했지만 그렇다고 곡명이 선뜻 떠오르진 않았다.

“저번에 천체관측 하러 갔을 때도 그렇고, 아라시야마는 우주 좋아하는구나.”

“응, 어릴 때부터 가족이랑 같이 별 보러 다녔거든. 어머니께 별자리 이야기를 듣거나, 사호랑 후쿠랑 망원경으로 토성의 고리를 관측하기도 했어. 첫 장래 희망은 우주비행사였고.”

“오, 재밌었겠네. 잘 어울리는데? 우주비행사.”

“우주선의 무중력 안에서 물방울 띄워놓고 합! 먹는 거 해보고 싶어.”

“…우주까지 가서 하고 싶다는 게 고작 그거…?”

그러나 아무리 하늘에게 사랑받는 아라시야마라고 할지라도 불운에 마주할 때도 있었다. 그들이 도착할 즈음부터 구름이 살살 끼기 시작하더니, 이내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언덕 기슭에 차를 세운 두 명은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나, 이래 봬도 나름 하레오토코(*晴れ男, 맑은 날씨를 부르는 남자)라고 불리는데 말이야…”

“뭐, 이런 날도 있는 거지.”

“금방 그칠 수도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볼까?”

“일기예보에도 없었으니까 소나기일지도 몰라.”

공교롭게도 차에는 우산이 없었기에, 그렇게 바라야만 했다. 얼마간 꼼짝없이 차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둘은 시간도 때울 겸 카키자키가 가져온 주먹밥과 음료수를 먹기 시작했다. 별다른 대화는 없었다. 차창을 때리는 빗소리가 규칙적인 침묵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같은 부대에 소속한 적도 있는 4년 지기인 만큼 어색하거나 무겁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살아온 19년 중 4년은 인생의 2할이 넘는 기간이었으므로.

그러나 제아무리 가벼운 침묵이라고 해도 오래 지속될수록 어째선지 끊어내기 어려운 법이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주먹밥을 모두 먹어 치워 더 이상 손이 할 일이 없어졌을 때, 마침내 아라시야마가 먼저 손을 뻗어 그것을 나무망치로 두드리듯 조심스럽게 깼다. 작은 목소리로 말해도 차 안이라는 공간은 작고 사방이 막혀 있어 듣기에 무리는 없었다.

“비가 계속 오네.”

“그러네… 금방 멈출 것 같진 않은데.”

“운전까지 해서 데리고 와줬는데, 미안해.”

“날씨는 어쩔 수 없지. 운명이라고 생각하자.”

운명, 이라는 단어를 작게 되뇌인 아라시야마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봤다. 변함없는 빗방울들이 여전히 시야를 가렸기에 달조차 보이지 않았다.

“…카키자키, 혹시 신의 지문이라고 알아?”

“신의 지문?”

“응. 빅뱅이 일어난 순간에는 모든 공간의 밀도가 동일했는데, 그때 일어난 미세한 양자의 요동이 물질들을 부분적으로 뭉치게 해서 은하가 생기고 별이 생겼대. 그 이론을 증명하는 관측 결과를 신의 지문, 창조의 지문, 신의 얼굴 등 여러 별명으로 불러.”

아라시야마는 이야기를 하며 핸드폰에서 검색한 사진을 보여주었다. 빨갛고 파란 점들이 타원 모양으로 뭉쳐져 있는 그림이었는데, 아무리 쳐다봐도 일반인의 눈으로는 그 사진에서 유의미한 도출을 하기는 어려웠다. 그저 아라시야마가 해 준 이야기의 스케일과, 친구의 침착하면서도 격앙된 목소리, 반짝이는 눈빛을 통해 이 사진 한 장의 중요성을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이게 모든 우주의 운명을 결정했다는 거야?”

“우주가 처음 생겨난 이후로도 수없이 별들도 은하도 소멸하고 생겨났겠지만, 그것도 다 거슬러 올라가면 초기 우주에서 결정된 운명으로 돌아가게 되니까, 그런 셈이지. 137억년 전에, ‘신의 지문’이 결정한 초기 우주에서 별이 만들어지고, 다시 먼지가 되고, 다시 별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90억년 동안 반복된 결과…”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할 일이 대부분인 아라시야마가 말소리를 작게 내는 일은 좀처럼 없었기에, 카키자키는 그 익숙하면서도 생소한 목소리에 이끌려 아라시야마를 바라보았다. 언제나 그의 강함을 동경해 왔다. 대등하게 취급받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득할 만큼 긴 시간, 커다란 우주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나마 아라시야마가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보이게 했다. 보더의 얼굴, A급 5위 부대의 대장, 15세에 목숨을 걸고 거리를 지키겠다고 선언한 히어로가 아닌, 그저 우주의 작디작은 조각. 이 거대한 우주생태계의 하찮은 부품.

“…마침내 태양이 생기고, 이윽고 지구가 생기고, 너와 내가 이곳에 있는 거야.”

하늘은 여전히 흐렸다. 비는 내리기 시작한 순간부터 지금껏 그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유성우가 내린다면 지금일 것 같았다. 분명 이 순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 소원을 빌 여유 같은 건 없었다.

결국 비는 그치지 않았고, 카키자키의 제안으로 둘은 포기하고 차를 돌렸다. 아라시야마는 다음에라도 꼭 다 같이 유성우를 보러 오자며 손가락을 내밀었다. 카키자키는 자신의 소지를 마주 걸기 위해 잠시 운전대에서 한 쪽 손을 뗐다.


안드로메다 은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은하와 가장 가까운 은하다. 두 은하는 서로를 중력으로 끌어당기고 있고, 45억년 후면 결국 충돌하게 된다. 합병되는 과정에서 은하들은 찌그러지고, 찢기고, 가지고 있는 물질을 서로 부딪히며, 그 과정에서는 새로운 별들이 수없이 태어난다. 45억년 후 지구의 밤하늘은 어린 별들의 무대가 되어, 우주의 불꽃놀이가 하늘에 영원히 새겨지게 될 것이다.

아득하게 긴 시간 후의 일이다. 지구가 태어난 지 46억년, 세포 형태의 원시 생명이 지구에 출현한 지 37억년이며, 호모 사피엔스는 고작 30만살이다. 45억년 후에도 인류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을지, 진화하여 또 다른 형태로 변모하였을지, 스스로 멸망하였을지, 그 이후 또 새롭게 지성을 가진 존재들이 몇 번이고 태어나고 번성하고 저물기를 반복하였을지, 우리는 진정으로 알지 못한다. 그러나 45억년 후에 여전히 지구에 인간이 남아있거나, 우리가 아닌 존재들이 있거나, 또는 하늘을 올려다볼 존재가 남아있지 않다 하더라도, 안드로메다는 아무런 유감없이 그 거대한 몸뚱이를 이끌고 우리은하로 다가올 것이다.

신기한가? 조금은 두려운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가? 그러나 관찰자의 유무-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느끼는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은하가 부딪히고, 별이 태어나고, 은하끼리 합병되는 현상들은 지금껏 우주의 역사 속에서 수없이 일어났다. 그러니까 이것이 경이롭게 느껴지는 이유는 오직 관찰자가 그렇게 생각해 주었기 때문이다. 의미를 읽어내 줄 존재가 없다면 모든 것은 존재하는 의미가 없다. 그저 부여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간단한 이유다.

크기나 시간의 단위는 전혀 다르지만, 사람 간의 인연도 그렇다. 인연이란 서로의 의미를 만들고 읽어낸 결과다. 모두가 각자의 우주를 가지고 있으니 그 중함도 전혀 덜하지 않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주체와 관찰자가 같은 존재라는 것이렷다. 그곳에서 오는 장점은 그 의미를 결코 잃을 일이 없다는 곳에 있다.

어느 한 쪽이 계속해서 존재하는 이상, 영원히 기억하는 것이다. 뇌세포를 연결해서 저장해두는 것이다. 당신과 나의 은하가 부딪혔고, 그 사이에서 수많은 별이 만들어졌다고.


몇 년 후, 아라시야마는 얼굴도 모르는 시민을 지키다가 죽었다. 유성우를 다시 보러 오자는 약속은 지키지 못한 채였다. 그런 그의 희생을 안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있을지언정 입으로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 그것은 그의 의지에 대한 모욕이었으므로. 장례식에서 만난 그의 아내조차, 천진난만한 어린 아들을 안고 의연하게 손님을 맞고 있었다. 그것이 사랑했던 그의 운명이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듯이.

그해 겨울, 오리온은 오른쪽 어깨를 잃었다. 적색 초거성, 베텔기우스의 생명이 기어코 다했다. 별의 죽음에 사람들은 환호했다. 베텔기우스도 그에 답하듯 한동안은 어떤 별보다도 빛나며 마지막으로 밤하늘을 밝혔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자 베텔기우스였던 초신성 폭발은 점점 희미해져 갔고, 대중의 관심도 그에 비례해 줄어갔다. 이 모든 것이 신의 지문이 결정한 운명이었을까. 그는 그렇게 말할까. 죽은 자는 말이 없기에 알게 될 일은 앞으로도 영원히 없다.

"켄지, 준비됐어?"

"응!"

아라시야마 가(家)의 현관, 기특하게도 스스로 신발을 신은 아이가 벌떡 일어섰다. 깃털과 닮은 흑색 머리칼이 통통 튀었다. 아라시야마의 사후, 그와 친했던 보더 동기들은 모두 힘을 모아 그의 아들에게 그가 못다 준 사랑을 주려고 노력했다. 주말마다 시간이 맞는 자들끼리 모여서 야구장에 가거나 놀이공원에 가거나 사슴벌레를 잡으러 다녔다. 아이가 그들의 노력과 사랑에 답하는 유일한 방법은 행복하고 건강하게 자라는 것이었고, 천진하면서도 어른스러운 아이는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제수와 인사를 나눈 카키자키는 아이의 손을 잡고 현관을 나섰다. 밑에서 대기하고 있는 차에는 망원경이나 돗자리 등의 물건이 실려 있었다.

"기대된다, 그렇지?"

"응! 토성은 진짜로 고리가 있어?"

"오늘 확인해 보자."

그리고 카키자키는 아이의 유년기에 밤하늘을 추가해 주었다. 태양계의 행성이 지구와 가까워지거나, 혜성이 날아오거나, 지구의 그림자가 달을 가릴 때, 그는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별을 찾는 법, 별자리와 신화 이야기, 인간이 아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 인간은 한평생 하늘을 동경해 왔으므로 이야기 소재가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별보다 반짝거리는 두 눈은 카키자키가 하는 모든 말을 쏙쏙 흡수했다.

아라시야마를 사랑했던 모두가 진심으로 아이를 사랑했고 아이도 모두에게 사랑을 돌려줬지만, 친구들은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삼촌은 카키자키일 것이라고 농담하곤 했다.

아이의 꿈이 우주비행사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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