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의 마지막 조각

주간창작 챌린지 참여 작품

WT by 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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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는 몇 개의 색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7개? 한 100개쯤? 빛의 3원색만으로도 충분할까? 이 보기가 아니더라도, 특정 숫자를 제시했다면 당신은 이미 이 문제의 함정에 걸려든 것이다. 정답은 ‘셀 수 없다’ 이므로.

그래, 투명하고 둥근 물방울이 수많은 색이 한데 섞인 태양빛을 부채처럼 펼치면, 인간은 그것을 보며 감탄하고 소원을 빌고 ‘무지개’라는 이름을 붙여 부른다. 무지개가 지니고 있는 색채 자체는 말했듯이 무한하지만, 인간은 분류할 수 없는 것도 기어코 카테고리를 나누는 것을 즐기는 족속들이다. 그들은 결국 스펙트럼상의 점 몇 개를 뽑아, ‘빨간색’, ‘초록색’, ‘파란색’ 등등의 이름을 붙이고야 말았다.

인간은 오감 중 시각에 주로 의존하는 동물이므로, 한 차례 분류해둔 색을 활용하여 다른 것들을 분류하는 방법을 개발해냈다. 가령, 각 부대마다 고유한 색을 가진 대원복을 입어 랭크전이나 임무 중의 혼란을 줄인 어떤 민간 방위 기관도 그랬다. 부대별 대원복의 색은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었는데, 이것을 정하는 행사는 새롭게 부대를 꾸려나가는 이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많은 것들 중 하나였다. 부대의 이미지와 분위기에 영향을 주는 만큼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물론 신생 이코마 부대에게도 그것은 매우 중대한 사안이었다. 매점에서 사 온 과자를 잔뜩 책상 위에 펼쳐놓고 둘러 앉아 있는 모습은 영락없는 동아리 모임이었지만, 그들의 눈빛은 더없이 진지했다. 하기사 그들의 대장은 표정만큼은 진지하지 않을 때가 없었다. 입주한지 얼마 안 되어 유달리 강한 작전실의 조명을 받은 그의 눈은 녹빛을 띌 때도, 푸른색으로 보일 때도 있었다.

“자키네 부대는 ‘카키柿’를 따서 등색을 쓰는 거 좋아보이던데. 이름에 색깔 들어간 사람 없나?”

오페레이터의 눈은 거의 모든 빛을 흡수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검은색 위로 보랏빛이 감돌았다. 그것을 관찰할 수 있을 만큼 그녀와의 거리를 좁히는 것은 또다른 문제였지만.

“카이海가 있긴 한데. 바다의 파란색?”

바다의 한 조각은 저격수의 캡에 의해 그림자 질지언정 그의 눈에 이미 깃들어 있었다. 그는 그 편린을 쓰다듬듯 천천히 깜빡이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이코 씨는 웜톤이잖아.”

“염통? 내가?”

“[최근에 맛있게 먹은 음식 대회]가 아니라니까요.”

가슴에 손을 얹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다소 청력이 좋지 않은 대장을 향해 참모가 지적을 날렸다. 그는 머리 뒤쪽을 만지작거리는 습관이 있었는데, 모든 방향으로 뻗어 있고 부스스한 그의 머리카락은 가을을 연상케 하는 주황색이었다.

선배들의 대화를 답지 않게 잠자코 듣고 있던 막내는 바다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만 머리카락은 태양에게 받은 금색이었다. 그의 눈에 들어오는 색들을 모아 기워놓으면 성긴 무지개가 만들어졌다. 무지개의 ‘시작’인 색을 제외하면.

그리고 인간은 부족한 것을 채우고 싶어하는 법이다. 굳이 선배들의 의식을 자신에게 돌리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그들은 언제나 경청해 주었지만, 막내는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위해 습관적으로 손을 번쩍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빨간색! 빨간색은 어때요?”

빛에게 색깔이나 에너지 등 여러 속성을 부여하는 특성은 파장이다. 빛마다 고유한 파장의 길이를 가지고 있는데, 인간이 볼 수 있는 가시광선 스펙트럼 내에서는 공교롭게도 붉은색의 파장이 가장 길다. 물론 빛의 파장의 길이 따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쓰잘데기 없는 지식이다. 그러한 이유로 이 정보는 그들 중 가장 잡지식이 많은 참모의 머릿속에서만 잠시 떠올랐다 이내 잡음에 묻혀 다시 가라앉았다.

그러나 머지않아 그 작은 파편이 다시 햇빛을 보는 일이 있었다. 그것은 분명 밀도가 작았기 때문은 아니었으리라. 그보단 참모의 뇌를 깔끔하게 반으로 갈라 그 조각을 뱉어내게 한 것에 가까웠다. 행위의 주체는 대장이었다. 누구보다 길게 뻗어나가는 선공은 날카롭고 선렬했다. 트리온체였기에 심장이 세차게 뛰거나 식은땀이 흐르는 일은 없었지만 그것만이 유일한 이유였다.

진실로 무지개의 마지막 조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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