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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자 by 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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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대강당. 맨 앞쪽에는 높게 올라간 무대. 자신은 그곳에 서 있다.

“긴장했어?”

“항상 하는 건데 뭘.”

장난스럽게 주고받는 대화. 그 대화 사이에서는 긴장 한 점 느껴지지 않는다. 고개를 돌리면 자신의 부대원이자 후배인 두 사람은 웃으면서 화답한다.

“새 동료들을 더 기다리게 하면 안 되지. 시작할까?”

부대장인 그가 평소와 같은 시원한 웃음을 지으면서 물어온다. 대답하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이면 그가 한 발자국 걸음을 옮기며 깔끔한 박수를 두어 번 친다. 무대 아래쪽 아는 얼굴들끼리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입대자들이 그의 박수 소리에 무대로 시선을 집중하더니 이내 감탄사를 숨김없이 내뱉는다.

'아라시야마 부대다.', '그 유명한….', '어제 인터뷰에서 봤던 얼굴보다 더 잘생겼다.' 따위의 말을 서로 소곤거리고 있지만 확실한 것은 의심보다는 신뢰와 환희가 담겨 있다. 과분한 시선이라도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렇게나 보더와, 그를 신뢰해 주고 있다는 점에 감사함을 느낀다. 그러한 웅성거림을 들었는지 그가 소리내어 하하, 하며 웃는다.

“나를 알아봐 주어 고마운걸! 그래. 오늘 입대식의 사회를 맡은 아라시야마 부대의 아라시야마 준이다.”

말 한 번 저는 것 없이 물 흐르듯 안내를 시작한다. 본부장의 짧은 축사가 이어지고, 곧 각 포지션의 희망자끼리 그룹을 이루어 훈련실로 이동한다. 정신이 없을 법도 한데 그도, 자기 후배들도 허둥대는 것 없이 사람들을 잘 인솔한다. 자랑스러운 동료들이다.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시뮬레이션 전투나 트리온 무기 사용에도 불구하고 신규 입대자들은 잘 따라주고, 아무 사고 없이 입대식은 잘 마무리된다. 한숨 돌리며 화장실에서 손을 씻는다. 고개를 들으면 처음 아라시야마 부대가 홍보 부대로 결정된 이후 2년이라는 시간이 더 지나 조금 더 성숙해진 자신의 얼굴이 보인다. 입은 부대복은 열정적인 붉은 것. 모두를 끌어나가는 대장의 색. 그래서 카키자키는 이제야 인정한다.

지금 이 모든 것은 꿈이라고.


카키자키는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 암막 커튼을 친 침실에서 시간을 살폈다. 여섯 시 오십오 분. 알림이 울리기에 정확히 오 분 전이 되는 시간이다. 알림이 울릴 때까지 조금 더 누워 있어도 아무 일 일어나지 않건만 그럼에도 카키자키는 침대에서 일어나기를 선택했다.

“…그러니까….”

오늘이 몇 월이더라? 침대 옆 책상에 올라간 달력에 빛을 비추면 1월이 크게 적힌 달력이 보인다.

“1월인가…. 벌써 이렇게 됐네.”

새해가 밝은 건 명확하게 알고 있다. 그럼에도 새삼스럽게 연도의 네 번째 자리가 바뀐 것을 실감하는 이유는 방금 꾸었던 꿈 때문이리라. 2년 전 아라시야마 부대가 홍보 부대로 결정되고 자신이 부대를 나갔던 그 시기. 처음 꿈을 꾸었을 때는 이것이 부대를 나간 후회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도망쳤지만 어중간하게 보더에 있기를 선택해서, 자신을 대장으로 하여 믿고 따라주는 잠재력 높은 대원들이 위로 올라갈 수 없게 되었다고. 그런 이야기를 작년의 자신이 했고, 지금까지도 크게 변한 점이 없기도 하다. 바로 얼마 전의 랭크전에서도 신인들에게 위를 내어준 상황이다. 그런 와중에도 새로운 포메이션을 구상하자는 좋은 의견을 내준 대원들에게는 항상 고마울 뿐.

침대 끝에 걸터앉아 처량하게 지난날의 기억을 되새김질하고 있으면 휴대전화의 알람은 무자비하게 카키자키를 현실로 내던진다. 분위기를 깨트렸다기보다는 오히려 좋은 자극이다. 과거를 무수히 많이 복기하더라도 현실과 미래가 반드시 좋아질 거라는 보장은 없다. 카키자키는 침실에서 일어났다.

랭크전 시즌 뒤에는 항상 개인전 로비에 사람이 붐빈다. 분명 랭크전을 보고 자극받았기 때문이겠지. 그 덕에 카키자키는 바쁘게 개인전 대기실과 필드를 오고 가며 지난밤의 꿈을 잊기 위해서 몸을 움직이고 있다. 자신의 부대실에서 러닝을 하고 싶기도 하지만 지금은 자신의 어린 대원인 후미카와 마도카가 느긋하게 쉬는 중이기 때문에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 최근 들어 본부에 자주 얼굴을 비추는 자신의 동년배 친구이자 특별한 블랙 트리거의 소유자, 였던 진이 말을 붙여 왔다. 웬일로 커피 한 잔 사주겠다고 라운지로 불러내더니 이내 분위기에 휩쓸려 꿈 이야기로 넘어갔고, 가만히 듣던 그는 무심하게 쌀과자를 집어먹었다.

“그런 미래가 없지는 않았지~. 확률이 낮다 못해 없는 수준이었지만.”

“그럼 그냥 없었던 거 아냐?”

“이 실력파 엘리트는 거의 일어날 리 없는 미래도 볼 줄 알아야 한다고.”

“말은 잘하네….”

카키자키는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무얼 기대하고 그에게 꿈 이야기를 한 걸까 싶다가도 다른 이에게 이 이야기를 하게 되면 나올 반응들이 손에 쓰인 듯 훤히 보일 것이라는 생각에 웃기기도 한다.

“아라시야마는 별생각 없을걸. 아마 아직도 그냥 친구이자 라이벌이라고 생각할 거야.”

“나도 알아. 이건 그냥… 내 미련인 거지.”

그때 남았으면 지금보다는 괜찮은 사람이 되지 않았을지 하는 미련. 카키자키는 말을 흐리며 입을 닫았다. 내려간 눈에 그가 잡고 있는 컵의 수면이 비친다. 그를 빤히 바라보던 진이 별안간 코웃음쳐왔다.

“시답잖은 거짓말을 하는구나, 카키자키 군이여.”

“그거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말인데.”

“다시 돌아가면 다른 선택을 할 거야?”

“그건,”

진의 기습적인 질문에 카키자키는 얼굴에 식은땀 하나 올리며 바로 입을 열지 못했다. 다시 돌아가면, 그때의 나는….

“아니지?”

“…그래. 그 선택 하나 바꾼다고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지는 않겠지.”

카키자키는 고해 하듯 입을 열었다. 세상에는 그 선택 하나로 인생이 송두리째 변하거나 세상 그 자체를 변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자신은 그런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특별하지는 않지만, 특별함이 없어도 살아가고 있는 사람. 이 세상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이 그것이라는 것을 카키자키는 잔인할 정도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는 것과 인정하는 것은 다르고, 공교롭게 자신은 이 운명을 아주 드문 날마다 반발하고 있는 셈이다. 모든 특별한 사람들도 하루 정도는 겪는 슬럼프 같은 날. 그는 오늘을 그런 날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널 만난 게 운이 좋았을지도 모르겠네.”

“그래? 난 그냥 이야기 들어 준 것밖에 없는걸.”

“들어 준 게 중요한 거야. 오늘도 암약하느라 바쁠 텐데 친히 여기까지 와 주고 말이야.”

“무슨 말일까나.”

“능청맞구나.”

카키자키는 한결 가벼워진 얼굴로 웃어 보였다. 진은 그사이 다 비운 쌀과자 봉지를 고이 접으며 손끝에 묻은 과자 부스러기를 핥아 올렸다.


진은 방 침대에 몸을 뉘었다. 해는 다 져서 노을을 창밖에서 쏘아대며 삭막한 방을 주황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문득 그 노을이 오늘 본 그 주황색 사내같다고 생각했다. 자신만은 특별할 수 없다는 확신 어린 말을 들을 때면 자기 비하의 끝을 달리는구나, 하고 안쓰러워지다가도 가만 생각해 보면 그는 정말로 특별한 구석이 없는 사나이라는 것만을 확실하게 알게 된다. 하지만 진을 비롯해 그와 대화해 본 모든 이라면 알고 있다. 그 부분 자체마저도 카키자키라는 것을. 오늘처럼 한 번 생각에 잠겨있더라도 멈추지 않는 것이 자신이 봐 왔던 그다. 미래를 직접 볼 필요도 없지. 일단 향년 92세 정도 살 테니까. 아무튼 그런 직감이 들어.

“…라고는 해도 말이지, 내년에도 이러겠네.”

확정된 미래는 몇 년이고 전에 볼 수 있다. 진은 다음 해, 조금 더 성숙해 진 그가 또다시 라운지에서 자신에게 똑같은 말을 꺼내는 것을 본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그냥 그런 날이다. 왠지 자기 자신이 선택했던 것이 후회되는 날. 진 자기 자신도 수없이 그런 적이 있었던 날 말이다.

그래도 난 후회하지 않아. 그렇지? 모가미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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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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