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마오사] 이용당한 레이싱-001
유마가 오사무보다 나이가 많은 설정이고 둘다 성인입니다
“후-하. 오사무 수고했어. 커브가 많이 부드러워졌어.”
헬멧을 벗으며 땀에 젖은 백발 머리를 털어낸 유마는 자신의 몫과 오사무의 몫까지 수건과 음료를 챙기며 내리고 있는 오사무에게 향했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오사무는 후들거리며 일어나 헬멧을 벗어냈다.
“감사합니다. 유마 형.”
유마가 건네주는 수건과 음료는 받으며 오사무는 간신히 인사했다. 오사무가 음료를 들이켜며 한숨 돌리길 기다린 유마는 오사무의 손을 잡고 끌었다.
“자자. 얼른 씻고 밥 먹자. 나 배고프다고. 오사무.”
“유마 형, 그래도 이렇게까지 해주실 필요는 없는데요.”
슬그머니 손길을 피하려고 했지만 이미 체력이 바닥난 오사무의 행동은 제 의사를 표현하지 못했다. 그리고 당사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몇 번 같은 일이 있었지만, 오사무는 그때마다 소용없는 반항을 하고 있었다.
“혼자서 벗으려면 오래 걸리잖아. 그리고 아까도 말했지만 나 배고파.”
딱 잘라 거부 의사를 거절한 유마는 찰싹 달라붙은 레이싱복을 내려 벗기느라 바빴다. 오사무는 아직도 열기가 식지 않아서 뜨거운걸로 생각하며 슬쩍 고개를 돌렸다.
오사무가 고개 돌린 사이 유마는 바빴다. 오사무의 몸을 눌러보거나 눈으로 살피며 뭐가 필요할지 생각하며 계획을 수정했다.
‘체력이야 필요한 거 알고 근육이 좀 뭉쳤네. 이따 풀어주고 몸에 근육이 조금은 더 붙어야겠는데.’
“자 됐다. 오사무 차례야.”
점검하며 레이싱복을 벗겨낸 유마는 뻔뻔하게 오사무에게 몸을 맡겼다.
“네. 유마 형.”
오사무는 유마가 혼자 벗으면 더 빠를 거란 사실을 모른 채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 몸으로 낑낑대며 레이싱복과 씨름했다.
그런 오사무를 보며 유마는 오사무 모르게 웃고 있었다.
오랜 레이싱으로 관리해온 몸은 체구가 작을지라도 단단하고도 선이 굵지 않았다. 레이싱의 “하얀 악마”라 불리는 거칠고 냉정한 레이싱은 기술뿐만 아니라 체력적으로도 받쳐줘야 하는 일이다.
한 번씩 이렇게 마주할 때마다 감탄하고 만다.
“오사무, 아직 멀었어?”
퍼뜩 정신을 차린 오사무는 다됐어요. 답하고 허둥지둥 마저 벗겨낸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오사무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으며 유마는 말했다.
“고마워. 오사무.”
씻으러 들어가는 유마의 뒷모습을 오사무는 자신도 모르게 바라보다 유마의 재촉에 서둘러 따라 들어갔다.
유마는 잠든 오사무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게 언제쯤이었는지 기억을 더듬어봤다.
첫인상은 맹랑한 꼬맹이였는데. 아버지 유고의 부고 후 레이싱을 멈추지 않고 지속하기를 3년. 돌연 유마는 레이싱계를 떠나 잠적했다. 그동안은 참 지루했던 것 같은데 이렇게 즐거워진 게 요 겁 없는 꼬마가 제집에 들어오겠다고 펜치를 들고 울타리에 섰을 때였나 보다.
“자르는 건 네 선택이지만 경비원이 오면 귀찮은 건 내 쪽이니까 말리고 싶은데.”
유고의 부고 이후로 부쩍 밤잠이 줄어든 유마는 밤거리를 배회하다가 이마저도 질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있었다.
분명 흠칫거리며 놀란 게 다 들켰는데도 그 녹색 눈동자에는 흔들림이라곤 없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통 연락을 취할 수가 없었습니다.”
당연했다. 유마는 잠적하면서 모든 연락을 차단하고 거부했으니까.
“정말 아까운 레이서라고 생각합니다. 레이싱계로 복귀 부탁드립니다.”
흔들림 없는 눈동자는 마음에 들었지만 하는 말은 시시했다. 그런데도 그 말에 진심이 있었다.
그래서였나보다.
“그래? 그럼 나에게 뭘 줄 수 있지?”
“뭐든지. 제 전부를 드리겠습니다.”
“좋아. 내 제자가 돼서 레이싱계 탑티어가 되는 게 내 조건이야.”
제자를 드릴 생각도, 복귀할 생각도 없었는데 그렇게 막무가내 꼬마에게 약속 해버린 건.
그리고 은근하게 확신했다. 그 흔들리지 않는 녹색 눈에서 이 녀석은 뭐라도 될 거라고.
그 후로는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단단한 의지와 달리 체력은 약한 점. 또 의외로 생각해야 하는 감각이 좋은 거. 착실하게 성장해나가는 모습이 웃을 일 없던 유마를 웃게 했다.
누가 유마에게 누군갈 아예 집에까지 들여서 방을 내어주고 함께 생활할 거라곤 말해도 거짓말이라 생각했을 거다.
참 손이 많이 가는 제자라 생각하며, 스스로 성장하게 우리 팀의 리더라 정해줬더니 열성적으로 조사하고 트랙을 분석하는 모습에 뿌듯했다.
꼬마 리더가 언제 이리 컸을까. 말을 하면 오사무는 별말은 못 해도 원래 자신이 더 컸다고 생각하겠지. 건방지게.
착실하게 훈련된 몸은 자신보다 큰 오사무가 무거울 법도 하지만 유마는 가벼이 들어 침대로 옮겨놨다.
형이라 부르라 했더니 그때부터 꼬박꼬박 유마 형이라 부르는 모습이 분명 귀여웠다.
그랬었다.
많이 나아졌다곤 하지만 여전히 유마는 오사무나 다른 사람에 비해 잠이 적었다. 그래서 홀로 생각할 시간이 많았다.
그 긴 밤이 오사무로 채워진 게 언제부터였나. 사실은 처음부터가 아니었을까. 아니면 처음으로 큰소리를 냈을 때 있었을 때 깨달았을지도.
지금은 오사무에게 “안경”이라는 전용 레이싱카가 있지만 그전에는 유마의 레이싱카인 “레플리카”를 타곤 했다.
거칠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레이싱 트랙 위에서 사고란 너무나도 빈번한 일이다.
그날은 제법 큰 사고가 났었다. 유마는 심장이 털컥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자비도 없이 뒤집혀 구른 레플리카를 간신히 기어 나와 오사무가 탈출했을 때야 간신히 이성을 찾았다. 서둘러 달려갔을 때도 바란 거라곤 하나밖에 없었는데 이 바보는 기어코 유마를 화나게 했다.
“죄송합니다.”
“오사무, 어지럽지는 않아? 얼른 치료부터 받자.”
“죄송합니다. 유마 형의 레플리카를 부서트려서 죄송합니다.”
“뭐?”
유마는 사람이 화가 나면 눈앞이 하얘진다는 게 거짓말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지금 그런 말 할 때야! 가서 치료나 받아.”
오사무가 한마디 더 하려고 할 때 유마는 참지 못하고 자리를 떴다. 자신이 있어봤자 저 바보는 같은 말이나 반복할 거란걸 알았기 때문이다.
레플리카는 분명 유마에게 소중하고도 의미 있는 레이싱카이다. 아버지 유고와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상징 그 자체이니까.
차라리 불타고 있는 레플리카를 보는 게 더 나았다. 진화되고 있어 뿌옇게 연기로 둘러싸져 있지만 오사무가 탈출하지 못했으면 하는 생각에 다시금 심장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을 받았다.
말리는 스태프의 만류에도 트랙에 내려가 날아온 레플리카의 파편을 하나 손에 쥐었다. 오사무를 생각하며 들끓은 생각에 꽉 쥔 주먹에 파편이 파고드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움켜잡았다.
“유마 형….”
오사무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혼란스러웠으며 처음으로 도망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붉은 눈동자 속에 넘실거리는 감정이 낯설었다. 그리고 기대감에 반기고 있는 자신의 감정마저도 생소했다.
유마는 타는 감정을 숨긴 채 오사무가 방심할 수 있도록 웃어 보였다.
“오사무, 누가 보면 내가 잡아먹는 줄 알겠어.”
그럴 생각이고 아니었으면 시도도 하지 않을 거였지만 유마는 뻔뻔스럽게 거짓을 입에 담았다.
오사무는 유마의 눈을 마주 보면서 저 거대한 감정에 자신이 덮쳐 삼킬 거라는 걸 알 수밖에 없었다.
“시시한 거짓말을 하시네요.”
평소 유마가 자주 하는 말을 따라 하며 오사무는 간신히 시선을 맞추며 입을 열었다.
“하핫. 오사무 많이 컸네.”
오사무의 대답에 허를 찔렸지만, 유마는 즐거웠다. 오들오들 떨면서도 도망가고 싶은 주제에 자신을 마주 보는 오사무를 보며 어찌 즐겁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유마는 천천히 손을 뻗어서 오사무의 안경을 얼굴에서 걷어냈다. 또렷하게 빛나는 녹색 눈에 유마는 입이 바짝 마르는 게 느껴졌다. 오사무 역시 마른침을 삼키며 목젖이 움직였다.
“오사무가 원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을 테니까 도망가도 좋아.”
유마는 오사무를 옭아매기 위해 한 번 더 덫을 놓았다.
“제 의지로 선택한 일에서 도망가지 않아요.”
올곧은 오사무라면 반드시 그리 답할 걸 알고 한 말이었다. 유마는 그다음에 나온 오사무의 말과 행동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사랑해요. 유마 형.”
잔뜩 붉어진 얼굴로 흔들리지 않는 눈을 맞춘 채 고백하는 오사무는 한없이 사랑스러웠고 깜찍하게도 먼저 입을 맞춰왔다. 유마는 동그랗게 눈을 뜬 채 입술을 내줬다.
입술을 훔쳐 가놓고 더 붉어진 얼굴로 물러서려는 오사무의 얼굴을 유마는 양손으로 감싸고 입술을 천천히 비비고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고 깨문 자리를 슬쩍 핥았다.
자극 하나하나에도 바스락거리며 움찔거리는 오사무를 유마는 한입에 삼켜버리고 싶었다.
천천히 따라올 수 있게 틈을 줘야 하는데 막상 오사무를 맛보고 나니 유마는 자제가 안 됐다. 고개를 틀어 가지런한 치열을 훑고 정직하게 굳어있는 말랑한 혀를 쓸어 핥았다. 오사무의 숨을 다 삼켜버릴 듯 입안 구석구석을 잔뜩 맛보고서야 유마는 간신히 오사무에게 숨 쉴 틈을 줬다.
“하, 하아.”
반짝이는 살짝 부은 입술로 숨을 몰아쉬는 오사무는 유마에게 치명적이었다.
오사무는 처음 느껴보는 감각에 휩쓸려 정신이 몽롱해졌다. 자극적이면서도 달콤한 느낌에 버겁기도 하면서 아찔했다.
안경이 없어서도 이렇게 가까이에 있는 유마의 얼굴은 잘 못 볼 수가 없다. 번들거리는 입술을 핥아내는 새빨간 혀에 오사무는 화르르 소리 날 듯 새빨개지고 말았다. 얼굴이 잡혀 고개도 돌리지 못하면서 오사무 얼굴을 가리고 싶었다.
“오사무, 사랑해.”
오사무는 유마가 치사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말해버리면 답해줄 수밖에 없으니까. 바라볼 수밖에 없으니까.
슬쩍 가렸던 초목 같은 녹색 눈을 보이며 유마를 바라봤다 오사무는 놀랐다. 마냥 태연할 것만 같던 유마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자신을 애정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어서 심장이 크게 뛰었다. 기분 좋은 두근거림이었다.
안녕하세요~
이용당한 레이싱을 펜슬로 옮기면서 1,2,3편을 하나로 합쳤습니다.
레이싱은 정말 이용당하고만 있습니다.
다음편이 올라오길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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