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소설 타입 5

문호 스트레이 독스 - 다자이 오사무

“참 재밌는 관계라네.”

“…죄송하지만 무슨 말씀이신지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괜찮네. 그저 혼잣말이었을 뿐이니. 하지만 자네도 생각해보면 그 둘의 관계가 무척 재밌다는 걸 알 수 있을 테니, 한번 생각해보게.”

모리 오가이의 혼잣말은 마치 누구에게 들려주고 싶었다는 듯 크고 또렷하게 들렸다. 바로 곁에 있는 사람이라면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모리 곁에 가까이 있었던 츄야는 제 보스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했다. 최대한 보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도록 주의하며 말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보스의 대답은 수수께끼였다. 둘의 관계? 재밌다니? 사람의 관계는 딱 잘라 표현하는 게 어렵다. 겉으로 보았을 때 무난해 보여도 속은 곪았을 때가 많다. 칼을 갈고 있거나, 배신할 궁리를 하거나. 이 시궁창에서 그러는 건 그리 놀랍지도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그나저나 보스가 말하는 둘의 관계가 무엇이지? 츄야는 머리를 굴렸다. 매번 자신을 바보라며 장난스럽게 놀리는 목소리가 퍼뜩 떠올랐다. 재밌는 관계. 모리 오가이가 관심 가질 법한 두 사람. 혹시 다자이와 아사쿠라 체리를 말하는 게 아닐까? 츄야가 혹여나 하는 마음에 모리를 바라보았다. 모리는 슬쩍 미소를 짓기만 할 뿐 구태여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마치 츄야의 생각이 정답이라는 걸 알려주는 듯했다.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네. 가끔 피비린내에서 벗어나, 다른 상념에 섞일 때에 마음의 평화가 오는 법이지.”

“…네.”

츄야가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모리는 충성스러운 제 부하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는 듯 미소 지었다. 속내를 알 수 없는 웃음이었다. 모리 오가이는 종종 이런 식으로 웃을 때가 많았기에 츄야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다자이. 다자이 오사무. 체리. 아사쿠라 체리.

두 사람은 이상할 정도로 비슷한 점이 많았다. 출신이 불분명한 거야 포트 마피아에서 흔한 일이다. 오히려 멀쩡한 사람이 마피아에 자진해서 들어오는 일이 적다. 성격 자체도 괴팍하다. 다자이는 매번 이상한 것 타령하면서 땡땡이 치질 않나, 자신을 놀리지 않나. 츄야는 그다지 엮이고 싶지 않았다.

체리는 모리 오가이가 데려왔다는 걸 제외하면 밝혀진 게 없었다. 아. 그다지 닮지 않은 여동생이 한 명 있었나. 정말 피가 섞인 여동생인 건지, 아니면 같이 살아와서 의자매 같은 건지 알 수 없다. 츄야는 남의 피붙에 관심이 없었다.

‘흠.’

쓰고 있는 모자를 매만졌다. 서로 극단적으로 제가 하고 싶은 것만 할 정도로 대책없는 마이페이스다. 일을 저지르고 제대로 수습하지 않은 다자이보다 체리가 더 성실하긴 하지만. 근데 애초에 둘이 만난 적이 있었나? 두 사람이 만난 건 손에 꼽을 정도였다. 적어도 츄야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 두 사람의 이능력이 비슷하지.

이능력 무효화.

어떤 이능력이든 일시적으로 무효화할 수 있는, 이른바 이능력 카운터.

다자이의 이능력을 보았을 때 참 번거롭다고 생각했다. 다자이에게 닿으면 제 이능력이 나오지 않는다. 이미 제 신체의 일부가 한순간이나마 못 쓰게 된다면.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다자이 말고도 제 능력을 일시적으로 없앨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면? 도대체, 보스는 어디서 그런 사람을 데려왔지?

알 수 없었다. 츄야는 보스가 누굴 데려와도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제가 관여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이따금 제 말에 귀를 기울여 주는 보스가 있지만, 낮은 확률에 기대 온갖 제 소망을 말하고 싶지 않았다. 본능적인 직감이었다. 포트 마피아의 보스는 가장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람이니까. 섣불리 믿었다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리고 만다.

뭐. 이런 건 중요하지 않겠지. 일단 대충 보스가 누굴 말하는지 알았으니 가볍게 생각할 일만 남았다. 혼잣말이랍시고 제게 그런 말을 했다는 건 이유가 있을 거다. 츄야는 보스의 충실한 애완견이다. 주인의 명령에 넙죽 엎드리며 하면 그만이다. 거기다 이번에는 생각하는 척만 해도 되는 일이니, 다른 임무보다 쉬울 터.

그 전에 이게 임무에 포함되었던가? 잠깐이나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일단 공식적인 임무는 아니다. 가볍게 상념에 빠지는 건 좋은 일이라며 말하긴 했다만. 그래도, 자신이 왜 다자이를 생각해야 하지? 츄야 입장에서 다자이 오사무는 원수였다. 여러모로 쓸모는 있었지만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 않았다.

반면에 체리는 자기주장이 조금 강할 뿐이지, 그럭저럭 다른 사람과 잘 섞였다. 체리의 여동생이 아쿠타가와와 만나며 거침없어지고 있지만, 그건 츄야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쪽은 그쪽대로 알아서 하라지. 아무리 츄야의 직함이 높다고 하나 부하 하나하나를 신경 쓸 이유가 없다. 괜한 오지랖 부리고 싶지 않고.

츄야는 모리 오가이의 방을 빠져나왔다. 가야 할 장소는 정해져 있었지만, 오늘따라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하루 정도는 괜찮겠지. 그렇게 열심히 일했는데.

오늘은 굳이 자신이 움직이지 않아도 부하들끼리 할 수 있는 간단한 것뿐이었다. 애초에 자신은 멀리서 지켜보다가 위험할 때 잠깐 도와주면 그만이었다. 임무 참여에 강제성이 없다는 걸 자각하자마자 하고 싶지 않아졌다. 츄야는 느긋한 걸음으로 포트 마피아 내부를 누볐다. 자연스럽게 모리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나참. 왜 그 둘을 생각하고 있어야 하냐고.’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봤자 더 선명하게 떠오를 뿐이다. 억지로 해서는 안 되니, 츄야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적극적으로 생각하면 좀 나아지겠지. 얼마 안 가 다른 관심사로 주제를 돌리면 까맣게 잊을 수 있을 거다. 인간이란 그런 생명체니까.

뚜벅뚜벅. 복도를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제 발걸음을 제외하면 조용했다. 상념에 빠지기 딱 좋군. 어차피 포트 마피아 내부를 많이 돌아다닌 터라 길 잃을 걱정은 없다. 서서히 두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한 명은 갈색 머리카락을 지닌 사내였다. 제대로 된 성인이 되지 못한 탓에 상당히 젊었다. 이리저리 덥수룩하게 아무렇게나 기른 머리카락은 의외로 질서가 있었다. 어디 다친 것도 아닌 주제에 몸에 붕대를 감고, 항상 늘 의문스러운 말만 했다. 때로는 짓궂은 장난을 칠 때도 있었다. 첫 만남조차 좋지 못한 사내다. 계속 그에게 휘둘리고 있는 자신이 짜증 났으나, 의외로 임무 할 때 합이 잘 맞았다. 그래. 그래서 자신이 내버려두고 있는 거다. 아니면 그런 남자 따위 살아있지도 못했다.

또 다른 한 명은 구불거리는 검은 머리카락에 선명한 붉은 눈을 지닌 여성이었다. 다자이와 비슷하게 여기저기 다치는데 커다란 반창고가 잔뜩 붙였다. 제 눈동자를 닮은 리본을 머리에 단 채 돌아다녔다. 츄야는 주로 임무 나갈 때마다 다자이와 함께 다녔기에, 그에 대해 아는 건 별로 없었다. 포트 마피아에 올 때 보스가 데려왔다. 거기다 다자이와 비슷한 이능력자다. 그 외에 알려진 정보가 없다.

알음알음 들려오는 소문에 따르면 그는 성질이 급했다고 한다. 조급한 일이라도 있는 건지, 아니면 원래 성향이 그런 건지…. 느긋한 척 구는 다자이와 정반대였다. 그래도 지금껏 포트 마피아에서 잘 지내는 걸 보면 임무에 지장은 없는 모양이다. 뭐. 성질이 급할 수 있지. 이상할 정도로 포트 마피아에는 괴짜만 있으니까. 당장 보스도 그렇고.

다자이와 체리가 같은 임무를 맡은 적은 없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두 사람의 이능력을 고려했을 때 일부로 같은 임무를 배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다른 임무에 배정하는 게 더 효율적이었다. 만약 자신이 보스여도 그렇게 했을 게 분명했다. 포트 마피아는 의외로 좁은 듯하면서도 넓었다. 이름 자체를 아는 사람은 많았지만, 그 두 사람의 제대로 된 접점을 목격한 사람은 없다. 다들 한 다리 건너서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애초에 마주친 적이 있기나 할까? 다자이는 몰라도, 체리는 이름만 간신히 알고 있을 거 같은데. 츄야는 팔짱을 낀 채 고민했다. 깊숙이 쓴 모자가 살짝 삐뚜름하게 흘러내렸다.

처음 체리를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뒤늦게 저를 부른 보스 방에 갔더니 체리가 있었지. 다자이와 비슷한 이능력이라고 소개하며, 하루 정도 파트너가 되어 임무를 해야 한다고 했을 땐 혀를 찬 적이 있다. 그렇게 단둘이 임무에 나갔을 때 감상이란. 체리는 다자이처럼 제게 시비를 걸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씩이나마 사람의 성질을 긁는 발언을 툭툭 내뱉었다.

후환이 두렵지도 않은 걸까? 자연스럽게 그런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당장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이 제게 시비를 거는 건… 예전에도 많이 겪었다. 그때는 무법지대에서 겪은 일이라만 포트 마피아에서도 그런 식으로 대할 줄이야. 하지만 어쩐지 다자이처럼 무어라고 할 수 없었다. 체리는 참 신기했다. 신경 갉아 먹는 발언을 하는 주제에 일정 수위 이상을 넘지 않았다. 정도를 알았다는 말이다.

‘이상한 놈이라고 생각했지.’

체리와 함께 임무를 나간 건 그 뒤로 두세 번 있었다. 그 이후로 서로 다른 임무를 배정받았다.

애초에 체리와 함께 한 이유도 다자이가 바빴기 때문이다. 뭐였더라. 무슨 이상한 조직이 겁 없이 선전포고했다. 다자이는 몇 부하와 함께 그 조직을 부수러 갔다. …문제는 다자이가 잠깐이나마 떠나면서 츄야의 오탁을 제어할 사람이 없어졌다. 덕분에 비슷한 이능력을 지닌 체리가 나서게 된 거였다.

그렇게 합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제 성격을 갉아 먹어도 그럭저럭 선을 지켰고. 그래도 한두 번이라면 모를까, 계속 같이하고 싶지 않았다. 츄야는 냉정했다. 여기저기 잔뜩 다친 티가 팍팍 나는, 저보다 어린 여자애에게 함부로 손을 올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라리 때릴 거면 다자이가 편하지. 저도 모르게 투덜거렸다.

어느새 다리가 걷는 걸 멈추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 이렇게 있을 때가 아니지. 예상외로 생각에 깊이 빠졌다. 츄야는 이래서 안 된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

의외로 다자이와 체리를 관찰하는 건 재밌었다. 보스가 이런 걸 노리고 제게 말했던 걸까? 설마 인간관찰이 취미가 될 줄 몰랐다.

다자이나 체리나 둘 다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다. 능글맞은 면이 있고, 속내를 알 수 없고. 거기다 은근히 엄격한 다자이가 이따금 체리와 마주할 때마다 그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게 신기했다. 무어라고 해야 하나. 다자이가 저렇게 일방적으로 사람에게 매달릴 수 있었던 애였나? 지 내키는 대로 사는 놈이 아니었어? 저 자식에게 놀랄 점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반대로 체리는 다자이가 제게 매달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걸까? 받아줄 듯하면서도 제대로 받아주지 않았다. 열에 열은 다 거절이었다. 아니, 이건 그냥 거절이잖아. 받아줄 듯하면서 받아주지 않는 걸 보면 이런 적이 종종 있었던 모양이다. 궁금한 나머지 체리의 여동생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네 언니는 원래 저러냐고. 그러자 체리의 여동생은 원래 그렇다며 말했다.

내친김에 더 물었다. 다자이와 체리가 포트 마피아에 오기 전에 만난 적이 있냐고. 그러자 여동생의 증언에 따르면 예전에 따로 만난 건 모르겠지만, 일단 포트 마피아에 들어오게 되며 처음 만났다고 한다. 여동생이 아는 범위 내에서 두 사람이 만난 적 없다라. 그럼 왜 저렇게 됐냐고 마지막으로 물었다. 여동생은 한참 생각에 잠기고 멍때리더니 딱 한 마디만 던져놓았다.

원래 언니가 인기가 많아요.

너무 당당하게 말하는 걸 보아하니 일단 정보원으로 쓰기엔 글렀다. 얘도 겉으로만 멀쩡했지, 속은 곪을 대로 곪은 놈이었구나. 알 수 없는 결론이 나왔다. 츄야는 예의상이나마 여동생에게 수고했다고 말했다. 여동생은 제 언니 찬양을 더 하고 싶은 눈치였다. 하. 미리 끊길 잘했네.

그래도 듣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억지로 들려주는 취미는 없는 듯했다. 그나마 양심이 있었다니, 다행이네. 츄야는 체리의 여동생에게 잘 가라고 손짓했다. 얌전히 갔다. 그래, 체리는 인기가 있었다고…. 그 인기 설마 이상한 쪽으로 많은 거 아냐? 다자이 같은 이상한 놈에게라던가. 뭔가 그럴 듯했다. 츄야는 마치 제가 소설 속에 나오는 탐정이 된 기분에 빠졌다.

뭐. 체리가 인기가 많았더라면 아마 저렇게 받아줄 듯 받아주지 않는 게 능숙한 이유는 됐다. 안 그래도 선을 지켜가며 긁어내는 솜씨가 예술이던데. 상대의 심리를 어느 정도 파악할 줄 안다면, 그렇다면 그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겠지. 츄야는 체리에 대한 평가를 싹 뜯어고쳤다. 지금껏 접점이 너무 없었던 탓에 포트 마피아 내에서 떠도는 소문으로만 그를 평가했다. 관찰하고 나서야 절반 정도 거짓이 섞였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튼 츄야는 두 사람을 보는 게 재밌다. 다자이가 겉으로 태연한 척하며 쩔쩔매는 걸 볼 때마다 짜릿했다. 그래, 체리. 네 놈이 다자이를 많이 골탕 먹이라고. 제가 할 수 없으니 괜히 남에게 떠맡기고 있다.

‘근데 도대체 다자이 저 놈은 무슨 생각이래?’

가망 없는 짝사랑이라도 하나? 츄야와 다자이가 알고 지낸 세월은 그리 길지 않았다. 츄야는 무법지대에 살며 나름대로 눈치를 길렀다. 사람을 파악할 줄 알았다는 말이다. 몇 마디를 나누는 것으로 대략 그 사람에 대해 알 수 있다. 자세한 건 몰라도 성향이나 그런 거. 츄야는 다자이가 그럴 때마다 참 온갖 생쇼를 다 한다는 마음으로 짠하게 바라보았다. 뭐, 저러다 적당히 포기하겠지.

정말 그렇게 흘러갈 때였다. 다자이도 인간이었나보다. 계속 체리에게 애원 비슷한 걸 해도 돌아오는 게 없다는 걸 알자, 슬슬 그만두기 시작했다. 그게 나쁜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때까지 우직하게 버틴 게 신기했을 정도다. 그런데 다자이가 매달리지 않으니 이번에 체리가 움직였다.

다자이에게 예전보다 잘 대해준다고 해야 하나. 당연히 다자이는 의심에 가득 찬 눈으로 체리의 호의를 거절했다. 체리는 뭐 아쉽지도 않은지 깔끔하게 물러났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몇 번 접촉하며 다자이의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다자이가 다시 체리에게 다가갔다. 체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거부했다. 반대로 체리가 다자이에게 접근하면 다자이가 거부했다. 뭐야, 저 자식들. 뭐 하는 거야? 이런 말이 저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아니. 지금 뭘 하는 거지? 보는 사람 속 터지게 하는 건가? 혹시 포트 마피아 내부에서 따로 주최하고 있는 인내심 테스트였나? 그래서 보스가 두 사람의 관계를 생각하라고 한 건가? 온갖 의문이 들었다.

서로 그렇게 번갈아 가며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지치지도 않는지 매번 그러는 꼴을 볼 때마다 머리가 아팠다. 속이 답답해졌고, 누구라도 좋으니 제발 그만하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직접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래도 말단인 놈들은 차마 자기 목숨 아까우니 그럴 수 없겠지. 이건 이해했다. 그렇다고 다자이나 체리와 비슷한 급을 지닌 사람은 또 나서지 않는다. 어디… 나설 만한 사람이 있나?

생각해보니까 그나마 다자이와 체리에게 그만 하라고 할 수 있는 건 저뿐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코요도 있었지만, 그는 원체 잘 나서지 않으므로 제외였다. 아. 츄야는 뒤늦게 보스가 왜 두 사람의 관계를 생각하라고 했는지 제대로 이해했다. 언젠간 저렇게 주변 사람 복장 터지게 하는 행동을 할 거니까 잘 살폈다가 말리라는 거구나. 아. 보스, 차라리 처음부터 그런 말을 해주시지 그랬어요. 괜한 원망이 튀어나왔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츄야도 두 사람의 관계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굳이 제가 끼어들 이유를 찾지 못한 것도 있었다. 둘 중 하나가 지쳐서 그만하길 바랐다. …솔직히 그랬다면 한 달 넘게 저러고 있지 않았겠지만. 처음에는 속 터지는 관계였으나, 나중에는 그럭저럭 익숙해졌다. 일종의 연례행사였다. 예측하는 맛도 쏠쏠했다. 저번에 다자이가 그랬으니 이번에는 체리인가. 이런 식으로 추측했다. 매번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하는 것도 웃겼다.

결국 츄야는 두 사람의 관계에 정의 내리는 걸 포기했다. 굳이 그럴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을뿐더러, 이제야 그만두면 섭섭해질 거 같았다. 쯧. 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자신이 엮이지 않으면 이렇게 인간관계가 재밌을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괜히 남의 연애사에 멀찍이 구경하는 사람이 있는 게 아니네. 츄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을 관찰하게 되며 츄야는 체리의 얼굴을 더 많이 보았다. 매일 다른 위치에 반창고가 붙여지는 게 신기했다. 체리가 그렇게 몸이 약한가? 왜 저렇게 붙이고 다니는 거지? 걱정되었다. 안 그래도 제 몸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이능력이 아니다. 방심했다가 골로 가기 딱 좋다. 안 가는 놈이 있으니까 쉬이 단정할 수 없지만.

체리와 자주 마주치며 점점 그에게 친밀감을 느꼈다. 예전에 비하면 많이 발전했다. 일주일에 두어 번 마주칠까 말까 하는 사람이 매일 만나고 있으니. 체리도 나름 츄야에게 익숙해졌는지 종종 말을 걸 때가 있다. 츄야는 적당히 대꾸했다. 무시하지 않으면서 적당히 거리를 두는 선에서. 참고로 예전에 멋모르고 체리와 제법 즐겁게 놀았다가 다자이가 매우 귀찮게 굴었다. 아니, 왜. 체리가 다른 놈이랑 대화하는 게 그리 아니꼽나. 저렇게 질투심이 강한 다자이는 처음 봤다. 모든 거에 초연한 것처럼 굴더니,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조급해지는 모양이다.

차라리 체리를 이용해서 다자이 속을 팍팍 긁어 볼까? 그런 생각은 한 적 있었다.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려고 했지만, 시기적절할 때 체리의 여동생이 만류했다. 괜히 남의 연애사에 끼어드는 거 아니라고… 그러다가 후회한다고. 너무 진지하게 말했다. 츄야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 나머지 체리의 여동생에게 물었다.

그러자 여동생은 기다렸다는 듯 남의 연애사에 끼어들었다가 대차게 말아먹은 예시를 보았다. 설명 자체는 간결하고 명료했다. 요점만 정리하면 대신 칼 맞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츄야는 질투에 눈이 멀어 다자이가 제게 칼을 찌르는 상상을 해보았다. 최악이었다. 다자이가 정말 그럴 리 없겠지만, 그래도 앞날은 모르는 법이니까. 괜히 만류하는 이유가… 있겠지? 그런 거겠지?

일단 제게 경고한다는 건 저를 생각해주는 일이다. 츄야는 꺼림칙한 표정으로 알겠다고 대답했다. 참고로 체리의 여동생은 여전히 생각을 알 수 없는 무표정으로 떠났다. 참 자유로운 인생 같았다. 나중에 다자이와 체리의 관계 보는 게 질리면 쟤라도 봐야 되겠다. 저쪽도 관찰하는 맛이 나름 있을 거 같았다.

아무튼 최대한 끼어들지 않는 선에서 지켜보았다. 서로 일정 패턴을 주고받는 게 꼭 게임 같았다. 서로 주고받는 게임은 많았다. 음, 잠시, 게임? 설마 저거 진짜 연애 아닌 거 아냐? 연애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임이라던가. 갑자기 말이 되었다. 진짜 연애를 저렇게 할 리가 없지. 게임이라면, 아니. 서로 누가 이기나 내기를 한다면 말이 됐다.

아무렴 어때. 츄야는 생각하는 걸 그만두었다. 온갖 추측성 발언을 해보았지만, 본인들에게 직접 묻지 않는 이상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직접 물었다가 거기에 휘말리게 되는 건 사양이니. 아. 다른 놈 시켜서 물어보게 할까? 사악하게도 물귀신 작전을 떠올랐다. 적당히 말 잘 듣고 뻔뻔한 놈이 몇 있었던 거 같은데. 나중에 시켜야지.

문득 츄야는 고개를 들었다. 동그랗게 뜬 보름달이 시야를 한가득 매웠다. 어두컴컴한 숲속에 있었지만, 달빛 덕분에 그리 어렵지 않았다. 포트 마피아에 들어오며 많은 게 바뀌었다는 게 실감 났다. 예전 같았으면 이렇게 느긋하게 달을 구경할 여유도 없었을 텐데. 츄야는 작게 웃었다. 며칠째 다자이가 접근했다. 이제 체리의 차례가 돌아오겠지. 내일? 아니면 내일모레? 언제쯤 하려나. 이번에는 또 어떤 방식으로 다자이의 마음을 홀릴까. 궁금해졌다.

‘그런데 이거 끝나기나 하나?’

영원히 이어지는 관계는 없다. 지금이야 어떻게든 이어지고 있다고 하지만, 둘 중 하나가 변심하면 끝이다. 만약 그렇게 되면 조금 안타깝겠지. 그렇게나 마음에 들려고 노력했는데 정작 얻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 괜히 보는 사람만 씁쓸해지는 결말이다. 벌써 두 달에 가까워지고 있다. 어느 하나가 지칠 때가 왔다는 말이다.

만약 먼저 손을 내리는 쪽은 누구일까? 다자이가 될 수도 있고, 체리가 될 수 있다. 의외로 둘이 비슷한 타이밍에 그만둘지 모른다. 입안이 썼다. 남의 연애사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게 얼마 되지 않았다. 팔자에도 없는 오작교를 놓아주게 될 거 같았다. 아. 진짜 그러고 싶진 않은데. 그래도 어영부영 그 누구도 기뻐하지 않은 모습을 보게 된다면… 차라리 자신이 도와주는 게 좋지 않을까?

안 그래도 둘이 계속 포트 마피아에 있을 텐데. 끝이 좋지 않게 될 수 있다. 인간관계란 무릇 그런 법이니까. 그래도 끝내더라도 최대한 뒷맛 나쁘지 않았으면 좋겠다. 3자인 주제에. 츄야는 제 처지를 까맣게 잊은 생각을 감히 품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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