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양손에 기타 케이스 같은 것과 기계 장치를 든 채 새초롬한 얼굴로 눈을 살짝 내리깔고 내려다보던 야만바기리 쵸우기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호리카와 군이 말하고 다니던데 너, 요즘 악기를 다양하게 배우고 다닌다면서? ”
최근 들어서 야만바기리 쿠니히로는 부쩍 여유가 생겼다. 초기도도 총대장도 아닌 극히 평범한 일반 도검남사. 그것이 이 혼마루의 야만바기리 쿠니히로였다. 이 혼마루에는 누구 하나 뒤쳐지지 않기 위해 그 방안으로 수행을 다녀온 남사들은 약화된 직후 어느 정도 레벨링을 통해 일정 기준치까지 연도를 올리면 그 즉시 아직 연도가 낮은 다른 남사들을 위해 육성을 멈추도록 시스템되어 있다. 일반 특 남사와 수행을 다녀온 남사와의 육성에 필요한 경험치가 다르기에 비교적 가성비가 좋은 방안을 채택한 것이다. 따라서 이 혼마루에는 일정 수준까지 육성 완료된 극 남사들은 주체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때로는 원정이나 대련, 연련을 통해 검을 휘두르는 것으로 도검남사의 본분을 지키며 만족하고는 있으나 그래도 실제 전쟁터에서 검을 휘두르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날 따름이었다. 강한 전쟁터나 고연도의 남사가 필요한 정부의 이벤트 시기가 아닌 이상 그들은 한가한 혼마루 안에서 내번 일을 하거나 빈둥거리는 등 넘치는 시간을 어떻게 때울지 늘 고민하는 날들이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을 기점으로 혼마루에는 하나의 큰 유행이 생겼다. 바로 하나 둘 악기를 배우기 시작한 것이었다. 시작은 이렇다. 새로운 놀라움을 찾지 못해 지루해하면서 축 늘어져 있던 츠루마루를 보다못한 주인이 현세의 취미 중 하나인 기타를 가르쳐주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강렬한 일렉기타의 음율에 순식간에 푹 빠진 츠루마루가 기타를 배우고 연주에 익숙해지기 시작했을 무렵, 그 모습에 매료된 다른 남사들도 하나둘씩 악기를 연주하는 행위를 따라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누구는 피아노의 음이 예쁘다며, 누구는 트럼펫이 취향이라고 하고, 또 누군가는 아코디언이 재밌다는 이유로 각자 저마다의 취향에 맞는 악기를 갖추는 모양새가 되었다.
그 중에서도 야만바기리 쿠니히로는 유독 유행에 뒤처진 편이었다. 악기를 다루기보다는 다른 이들의 연주를 보는 것이 더 즐거웠기에 딱히 악기를 쓸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 잘 어울리는 타도들의 끈질긴 권유와 새로운 취미를 만들라는 호리카와 형제의 권유에 끝내 야만바기리 쿠니히로도 무너졌다. 아니, 더 정확히는 그 전에 야만바기리 쿠니히로는 들어버렸다. 단도들의 부탁으로 홀로 기타를 연주하는 자신의 본가인 야만바기리 쵸우기의 선율을.
“…♪……♬…♪♩…”
차분하지만 그 안에 뜨거움이 느껴지는, 격정적인 선율이었다. 마치 차가움과 뜨거움이 공존하는 듯한 세련되고 정확한 리듬의 변주와 지극히 이성적으로 보이지만 실은 누구보다도 감정이 진하게 스며든 연주자의 내면의 강인함이 그대로 녹아들어간 푸른 불꽃 같은 강렬한 연주였다. 야만바기리 쿠니히로는 일전에 츠루마루에게 들었다. 같은 연주라도 연주자에 따라 각자의 개성이 나타난다고. 그것은 질리지 않고 늘 다양하고 새롭게 변화하기에 악기를 연주하고 듣는 일은 언제나 즐겁고 놀라운 일이라고. 그때는 얼추 그런 것 같다며 애매하게 반응했으나 이 연주를 듣고 야만바기리 쿠니히로는 이번에야말로 숨을 삼키며 크게 수긍했다. 이토록 심장을 강하게 움켜잡는 연주라면, 확실히 놀랄 수밖에 없다고. 그리하여 야만바기리 쿠니히로는 그의 연주를 들은 것을 계기로 다른 이들의 권유에도 크게 타지 않았던 연주라는 것을 스스로 시작했다.
하나 완전히 제게 맞는 악기를 찾는 것은 생각보다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처음에는 야만바기리 쵸우기와 같은 기타를 배워보려 했으나 아무래도 그의 연주에 대한 기억이 너무나도 강렬하게 남았던 탓인지 오히려 기타를 배우고 연주를 거듭해보려 할수록 자신이 만들어내는 소리에 만족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난감해하는 야만바기리 쿠니히로를 두고 다른 이들이 오히려 더 신이 나서 본인들의 악기를 하나둘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키보드를 알려주고, 누군가는 또 캐스터네츠, 누군가는 바이올린 등등… 다양한 분야의 악기를 야만바기리 쿠니히로에게 알려주었다. 매우 감사한 일이었다. 하나하나 배우는 것도 즐거웠고 매일매일이 신선한 나날이었다. 그러나 다양한 악기를 직접 연주해보았으나 무언가가 부족한 느낌은 늘 따라다녔다. 전부 좋은 악기들이었으나 남들처럼 애용할만한 딱 이거다싶은 악기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첫머리로 돌아가, 바로 지금. 야만바기리 쿠니히로가 카센에게 빌린 샤미센을 들고 구석에 위치해 왕래가 적은 본인의 방 안에서 서툰 솜씨로 연주를 하고 있을 즈음, 열려져 있는 장지문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야만바기리 쵸우기에게 말을 건네받은 것이다. 딱히 친한 사이라고는 할 수 없는 여러모로 서먹한 존재의 등장에 야만바기리 쿠니히로는 순간 당황했으나 의연함을 가장하며 입을 열었다.
“야만바기리도 들었나. 아아… 최근 다른 녀석들에게 이것저것 권유 받고 있어서 말이야.”
“헤에. 그래서, 그 중에 마음에 든 악기라도 있었을까나?”
“으음. 전부 좋은 소리를 낸다고 생각하지만 완전히 마음에 드는 것은 아직 찾지 못한 것 같아.”
“그래.”
야만바기리 쵸우기는 도대체 무슨 연유로 결코 살갑다고는 하지 못하는 관계의 제게 먼저 다가온 것일까. 야만바기리 쿠니히로는 그것이 못내 신경쓰여서 샤미센 연주에 도통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집중을 하지 못해 줄을 잘못 튕겨서 이상한 소리가 남과 동시에 아직도 문 밖의 풍경을 가로막듯이 우뚝 서있는 야만바기리 쵸우기의 눈썹 한쪽이 까딱하고 올라갔다. 불만스러워 보이는 기색의 그의 기척에 짧게 남몰래 한숨을 쉰 야만바기리 쿠니히로는 샤미센을 조심스레 바닥에 내려놓고 고개를 들어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가짜 군은 손님 대접도 제대로 못하는 걸까? 설마 이대로 서있게 둘 셈?”
“…사본은 가짜와는 다르지만, 미안하다.”
아무래도 상대방은 단순히 한가해서 한마디 해주려고 온 것이 아니라 어떠한 목적이 있어서 자신의 거처에 방문한 것으로 보였다. 그제서야 금방 돌아갈 것이 아니리라 판단한 야만바기리 쿠니히로는 한쪽에 있던 방석을 꺼내 오고 차를 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방석에 앉아있는 불청객의 앞으로 가 우려낸 차를 조용히 잔에 따랐다.
“마실 것 밖에 없는 점은 양해해 줘. 그래서 네가 내 방에 찾아 온 용무는 뭐지?”
“변함없이 돌직구네. 뭐, 효율적인 건 좋아하니까 딱히 나무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간단하게 안부를 묻는 정도의 예의를 갖추는 게 어떨까나?”
“나무라는 게 아니라고는 했지만 내게는 충분히 나무라는 걸로 들리는데.”
“그렇게 꼬아서 듣는 건 수행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한가.”
“…….”
여러모로 할말이 있어보이는 야만바기리 쿠니히로였으나 새침한 얼굴로 우아하게 차를 마시는 제 본가의 모습을 보고는 속으로 한숨과 함께 말을 삼켰다. 아무래도 이름의 문제를 포함해 자신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는 본가인 야만바기리 쵸우기 앞에서는 평소처럼 태연하게 굴기 어려웠다. 쿠니히로도 묵묵히 차를 따라 마시고 나자 찻잔을 내려놓은 야만바기리 쵸우기가 깊은 바다를 닮은 푸른 눈으로 야만바기리 쿠니히로를 똑바로 응시하며 마침내 목적을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너, 내 밴드에 들어왔으면 하는데.”
“…응?”
“이런. 가짜 군은 이제 귀라도 먹은 걸까나? 내 밴드에 들어오라고 했어.”
“아니, 아니… 그러니까 밴드라는 건 대체….”
“설마 아침에 들었던 축제 일을 벌써 잊은 건 아니겠지? 다음 달에 있을 혼마루 내 강제 참가 축제에서 밴드로 꾸리고 참가하자는 이야기야.”
“아.”
야만바기리 쵸우기의 말에 의해 쿠니히로는 기억 속에 던져 두고 있던 것을 물위로 떠올렸다. 생각해보니 오늘의 아침 조회에서 주인이 다음 달에 음악 축제를 개최하겠다는 이야기였다. 그것은 혼마루의 친목을 다지기 위해 전원 강제 참가라는 말과 함께 그 외에는 어떤 곡을 연주할지와 노래 유무, 누구와 짝을 이룰 것인지에 대해 모두 자유라는 내용이었다. 물론 야만바기리 쿠니히로도 당시에 그 이야기를 들었으나 직후에 있던 카센의 혹독한 샤미센 강의로 인해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나저나 자신을 아니꼽게 여겼을 야만바기리 쵸우기로부터의 밴드 제의라니. 아무리 강제로 참가해야하는 축제라지만 주인이 인선까지는 정해주지 않았을 터이다. 야만바기리 쿠니히로는 더더욱 미궁 속으로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표정 근육의 움직임이 옅은 쿠니히로의 눈동자 속에서 의아함과 당혹스러운 마음이 미미하게 배인 것을 상대방은 놓치지 않았다. 야만바기리 쵸우기의 시선이 잠시 어색하게 방황하더니 이내 짧게 한숨과 함께 쿠니히로에게 되돌려졌다. 그렇게 말을 고르는 듯한 약간의 망설임 끝에 쵸우기가 입을 뗐다.
“묘살 군과 상의 끝에 밴드를 만들어서 축제에서 선보이기로 했어. 우선 나는 리드 기타 겸 보컬. 묘살 군은 키보드. 나마즈오 군은 드럼을 치고 싶다며 자진 참가. 그리고 남은 포지션인 베이스는… 그래. 아직 다루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든 악기가 없다면 이참에 베이스를 시작해보는 것이 어떨까 싶은데. 아. 그러고 보니 베이스는 다뤄본 적이 있을까나.”
“아, 아니. 그건 배우지 않았어.”
“그래? 물론 한달이라는 기간동안 내 수준까지 오기엔 턱없이 부족하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봐줄만한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도록 이 내가 도와주도록 하지.”
“아….”
“어떨까나? 가짜인 네가 나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고 생각하는데.”
“사본은 가짜와는 다르지만….”
사이가 크게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할 수 없는 모호한 관계인지라 어떻게 대우할지는 여전히 어렵지만, 상대는 그래도 같은 혼마루의 동료이며 자신의 존재의 근원이라고 할 수도 있는 본가이자 이름을 나란히 할 수 있는 아름답고 강한 칼인 상대였다. 그런 그가 드물게도 먼저 다가와서 밴드의 멤버로서 제게 권유해온 것이다. 심지어 그런 그에게서 한달동안 꾸준히 배움을 통해 교류할 수 있는, 말 그대로 흔치 않은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야만바기리 쿠니히로는 솔직히 어안이 벙벙했으나 이것이 기적과도 같은 상황임을 강하게 느꼈다. 그리고 아마 이번에는 그때, 제 심장을 움켜잡았던 강렬한 기타의 선율을 바로 옆에서 느낄 수 있을 터였다. 생각만 해도 흥분으로 가슴이 꽉 조여들었다. 침을 크게 꿀꺽 삼킨 야만바기리 쿠니히로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눈앞의 상대방이 관대한게 내민 행운을 잡았다.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한 번 해보고 싶어.”
과연 원하던 답이었을까. 미세하게 흥분이 내포된 쿠니히로의 대답에 야만바기리 쵸우기는 눈가를 살풋 접으며 만족스럽다는 듯이 미소지었다.
“흐응. 그럼, 오늘은 이 베이스로 기초부터 시작해볼까?”
앉으면서 곁에 두었던 기타와 비슷한 악기는 베이스였던 것일까. 케이스에서 베이스를 꺼내 일어나는 쵸우기를 따라 쿠니히로도 덩달아 일어섰다. 마치 본인 방이라도 되는 것처럼 익숙한 동작으로 스피커처럼 생긴 사각형의 기계장치를 설치한―후에 듣기로는 앰프라고 한다.― 야만바기리 쵸우기는 이것저것 만져가며 능숙하게 전반적인 튜닝을 마쳤다. 그리고.
“……♪…♬”
둥둥. 묵직하게 감겨오는 중후한 저음이 부드럽게 심장을 거머쥐었다. 화려한 기교가 들어간 것도 아닌 단순할 뿐인 선율이었으나 어쩐지 그것은 쿠니히로의 마음을 조용히 울렸다. 그러나 그 시간은 오래 가지 않았다. 간단하게 시범을 마친 쵸우기는 베이스를 쿠니히로에게 건넸다. 얼결에 베이스를 건네받은 쿠니히로는 손 안에 악기를 들고 멀뚱히 섰다.
“호리카와 군으로부터 기타는 배워본 적 있다고 들었는데, 기본적인 자세는 기타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면 돼. 다만 조금 더 무게감이 있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지탱할 수 있는 자세를 찾는 게 중요할 거야. 우선 스트랩을 목에 걸고 헤드를 살짝 앞으로 내밀어. 아니, 너무 조금 내밀었어. 왼손이 움직이기 편하도록 더 공간을 만든다고 생각해. 그래, 그렇게.”
“…….”
“왼손 엄지는 넥의 중심부분으로. 그리고 나머지 손가락은 한 플렛에 하나씩 얹어봐. 그리고 오른손의 엄지는 맨 윗줄인 4번 줄에 올려두고… 아니, 벌써부터 연주하는 게 아니야. 그리고 이건 기타가 아니니까 줄을 힘차게 튕길 필요는 없어.”
“윽….”
기초부터 차근차근 알려주던 야만바기리 쵸우기가 어색하게 굳어있는 쿠니히로를 살짝 감싸듯이 가까이 밀착했다. 쵸우기와 닿은 쿠니히로의 오른쪽 등과 어깨로부터 따뜻한 온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느닷없는 상황에 긴장해서 더욱 바짝 굳어버린 쿠니히로를 아는지 모르는지 가르치기에 여념이 없는 쵸우기는 뒤에서부터 오른손을 뻗어 쿠니히로의 손을 덮듯이 자세를 잡고는 자연스럽게 쿠니히로의 손동작을 움직이도록 유도했다. 방금처럼 튕기는 것이 아닌 부드럽게 매만지듯이. 쵸우기의 온기에 싸인 쿠니히로의 손가락이 미끄러지듯이 줄을 위에서 아래로 쓰다듬었다.
“……♪”
시범으로도 들었던 야만바기리 쵸우기가 만들어 낸 것과 같은 소리가 들렸다. 바로 품에 있는 이 악기의 스트링 한 줄에서. 묵직하게 가슴을 울리는 단조롭게 진동하는 낮은 음이 손가락 아래로 생생하게 느껴졌다. 심장과도 크게 멀지 않은 위치에서 발현한 그 음이 쿠니히로의 마음을 서서히 들뜨게 했다.
“후후. 좋은 소리네.”
“…!”
나지막이 귓가에서 울려퍼지는 가벼운 웃음소리에 야만바기리 쿠니히로의 숨이 순간 멈췄다. 베이스의 소리에 정신이 팔려 누군가와 밀착한 상태라는 것을 깜빡 잊어서 놀란 것이리라. 순식간에 딱딱하게 굳어버린 제 사본의 모습에 쵸우기는 피식 작게 웃으며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쿠니히로의 앞으로 가서는 팔짱을 끼고 다시 해보라는 듯이 말없이 턱짓을 했다.
“…….”
긴장을 삼키듯이 크게 침을 꿀꺽 삼킨 야만바기리 쿠니히로가 상대가 보는 앞에서 배운 대로 줄을 쓰다듬듯이 부드럽게 튕겼다. 중후한 소리의 파동이 묵직하게 손가락으로부터 울려퍼졌다. 아. 역시 좋았다. 마음이 침착해지고 차분해지는 부드러운 음이었다. 둥둥 울리는 무게감있는 소리의 안정감이 마치 형제와 함께 산으로 수행을 떠나 받았던 느낌과도 비슷했다. 베이스란 기타와도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무척이나 인상적인 악기였다.
가만히 팔짱을 낀 채 야만바기리 쵸우기는 베이스의 음에 매료된 쿠니히로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예상대로 이 악기와 이 사본은 잘 어울렸다. 궁합이 좋아보인다고도 할 수 있었다. 베이스는 야만바기리 쿠니히로 본인과 비슷한 매력을 지닌 악기였다. 눈에 띄게 튀지 않고 밑에서 받쳐주듯이, 그러나 한 번 집중해서 들어보면 빠질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존재감을 가졌다는 것과 어떤 음과도 부드럽고 조화롭게 어울리는 점이 가장 비슷했다. 또 다른 요소로는 그의 목소리와도 비슷한 낮고 듣기 좋은 음이 난다는 점이려나. 여담으로 베이스의 소리를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제 사본인 야만바기리 쿠니히로 였다는 것을, 쵸우기는 평생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기로 정했다. 반강제로 권유한 것이긴 했으나 당사자인 본인도 마음에 들어한 것 같아서 그 점이 더욱 흥미로웠다. 자기도 모르게 슬며시 미소를 띤 얼굴로 쵸우기는 그 후로도 베이스의 기초를 하나하나 알려주었다. 확실히 흥미가 있어서인지 경청하는 자세도 좋았고 배움도 빨랐기에 가르치는 입장인 쵸우기도 꽤 흥이 났다.
어느새 멀리서부터 간식 시간임을 알리는 희미한 소리가 후미진 이 장소까지 울려퍼졌다. 동시에 편하게 앉아서 대화를 나누며 행해진 수업도 끝이 났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 첫날이라 이 정도로 끝났지만 내일부터는 각오해두는 게 좋을 거야, 가짜 군.”
“사본은 가짜랑은 다르다. 하지만 오늘 처음 다루는 악기를 이 정도로 다룰 수 있게 됐을 줄이야…. 역시 본가다. 네가 잘 가르쳐주었기에 나도 여기까지 할 수 있었어. 감사한다.”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는 걸까나.”
피식 웃은 야만바기리 쵸우기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먼저 밖으로 향했다.
“며칠간은 계속 이곳에서 특별 훈련을 할 생각이니 장비는 이대로 두고 가겠어. 외곽에 있는 덕분일까나. 네 방은 주변에 왕래가 적은 곳이라 연습하기에는 적절한 것 같네. 흐응. 생각보다 방도 넓고… 합주 훈련도 이곳에서 하면 좋을지도.”
“그런 것이라면 이 방을 어떻게 쓰든 상관 없어. 밴드 연습을 위해서라면 좋을 대로 써도 돼.”
“그래? 방 주인의 허락도 받았으니 한 번 모두와 상의해볼까나.”
완전히 밖으로 나가려다 말고 장지문 한 쪽을 손에 얹은 야만바기리 쵸우기는 눈웃음을 머금은 채 안에 남아있는 제 사본을 슬쩍 돌아보며 눈웃음을 가볍게 말했다.
“어서 내 기타와 네 베이스 소리가 어우러지며 만들어지는 소리가 궁금하네. 그럼 이만.”
“…….”
가벼운 투로 던져진 쵸우기의 목소리가 야만바기리 쿠니히로의 가슴에 묵직하게 꽂혔다. 덩그러니 방 안에 남겨진 쿠니히로는 한동안 가만히 있더니 조용히 한 손을 들어 제 심장을 덮었다. 어쩐지 느낌이 이상하다 했더니 손바닥 아래에서 맥박치는 고동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서서히 얼굴까지 더워지는 감각에 야만바기리 쿠니히로는 앉은 자세 그대로 옆으로 털썩 쓰러졌다. 다다미 위로 작게 얼굴을 문지르는 쿠니히로의 귀가 잘 익은 복숭아처럼 불그스름했다.
“…밴드, 열심히 하자.”
모처럼 권유해준 그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도록. 그와 자신이 자아낼 선율이 부끄럽지 않도록.
야만바기리 쿠니히로는 그가 권해준 베이스라는 악기가 벌써부터 좋아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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