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2세날조주의
“아빠, 아빠….”
“무슨 일 있어요? 인현, 아직까지 안 자고.”
“침대 밑에 괴물이 있는 것 같아요.”
모두가 잠들어야 할 시간에 침실의 문을 연 건 다름 아닌 인현이었다. 고인현. 올해 다섯 살이 된 첫 아들, 유치원에서 또래가 몰래 가져온 무서운 이야기가 담긴 책을 읽었다는데 그 탓인가 했지. 잠들어 있는 제 남편을 한 번 내려다보다 이마에 한 번 입맞췄다. 안고 있던 팔을 풀고, 조용히 몸을 일으켜 제 아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체 무슨 내용이 담긴 책을 본 거람, 읏차. 어린 제 아들을 번쩍 들어 안고 침실의 문을 닫았다. 다음부터는 무서운 책 보면 안 돼요, 알겠죠. 무미건조한 대신 나직한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는 아들의 이마에도 한 번 입맞추고 거실로 나간다. 내일은 주말이니 조금 늦게 잘까요? 그리 말하니 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과 같은 푸른 눈이 말똥말똥한 것으로 보아 잠을 자기는 글렀군. 생각이 들어서였다. 자장가를 불러 줘도 잠들지 않겠지, 누굴 닮은 건지 제 아들은 잠에서 쉽게 깨는 편이었다. 잘 때 무슨 소리가 들린다던가, 잠자리가 불편하다던가. 그래서 더 어릴 때에는 무작정 침대로 찾아와 자신과 남편 사이에 파고들어 셋이 자고는 했지.
“오늘 유치원에서 뭘 봤어요?”
“현서가 무서운 만화책을 가져왔어요.”
“다음부터는 그런 걸 보면 돼요, 안 돼요?”
“안 돼요.”
“옳지.”
아이를 소파에 앉혀 두고 거실의 커튼을 걷었다. 어두운 하늘이 보인다, 방 불을 켜고 아이와 놀아주는 게 급선무였으므로 소리가 나지 않는 다양한 장난감을 꺼냈다. 자, 작은 아빠랑 놀아요. 물론 내일 스케줄이 있었지만 아이가 책의 내용 때문에 무서워하는 데다 잠도 오지 않는 것 같으니 별 방법이 없었으므로 내린 결론이다. 소파에서 내려온 아이는 나무 블록을 꺼내 이리 쌓기도 하고 저렇게 쌓기도 하고, 아이의 창의력은 정말 끝이 없구나. 여러 모양으로 블록을 쌓는 아이를 보며 생각했다. 블록 하나로 저리 재미있게 논다니, 블록을 더 사줘야 하나. 큰아빠도 같이 놀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묻어나는 아이의 목소리에 으음, 소리를 내고. 큰아빠는 주무시고 있죠, 깨우면 안 돼요.
“안아 주세요.”
“네.”
블록을 쌓다 아이가 제 품에 안겨오며 말했다. 아이 특유의 높은 체온이 느껴진다, 선배보다는 자신을 더 많이 닮은 듯한 아이. 그래도 특유의 장난기는 성원 선배를 닮았나…. 평소에도 성원 선배랑 잘 노는 편이니까, 선배가 잘 놀아주시는 건가. 잠이 오지는 않는 것 같은데, 아이의 상태를 보며 토닥였다. 성원 선배가 아니라 내가 깨어나서 다행인가, 선배가 깨셨으면 아침에 피곤할 테니까. 거실 소파로 자리를 옮겨 아이를 토닥인다. 아이의 눈이 깜빡인다, 이마에 쪽 입맞춰 주며 드는 생각. 너무 일찍부터 혼자 재웠나? 아닌가, 첫 아이라 알 길이 없네. 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질문 하나를 던졌다. 인현, 평소에도 혼자 자기 무서웠어요? 그 말을 들은 아이는 눈동자를 도록 굴리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빠, 침대 밑에 괴물이 살아요. 이런, 아이의 상상력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오늘이라도 선배에게 이야기해서 아이와 같이 자는 게….
“내일부터는 아빠들이랑 같이 자요.”
“침대 괴물이 갈 때까지?”
“네, 침대 괴물이 갈 때까지.”
아이의 정서적 안정이 더 중요하니, 그리 생각해서 내린 결론이다. 품에 기댄 아이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으니 아이가 꺄르르 웃는다. 아빠 사랑해! 아이의 사랑고백에 피식 웃고 한 마디 뱉었다. 내일은 큰아빠에게도 사랑한다고 해 주기로 해요. 이제 슬슬 침실로 가야 하나, 그러기엔 아이의 눈이 너무 말똥말똥한데. 안고 거실을 몇 바퀴 돌며 자장가를 불러 주면 자려나….
“아빠가 자장가 불러 줄까요?”
“거실 돌아 주실 거예요?”
“네, 당연하죠.”
다섯 살 아이를 안고 거실을 돌아다니는 건 조금 지나칠 수도 있겠지만-들기에 힘들 수도 있고-어리광을 받아주는 방식이었다. 선배는 아이의 어리광을 어떻게 받아 주시는지 모르겠네. 아이를 안고 거실 안을 천천히 걸어다니며 자장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자장 자장…. 우리 아기. 로 시작하는 자장가, 거실을 몇 바퀴 돌고 자장가를 몇 번 반복해서 불렀을까. 아이의 눈이 느리게 깜빡이다 스르르 감긴다. 아, 잠들었다. 조심해서…. 거실 불을 끄고 익숙한 듯 침실로 향한다. 침실 문을 여닫고, 아이를 자신과 남편의 사이에 눕혔다. 그러자 나직하게 들리는 목소리.
“연화야, 안 잤어?”
“인현이가 깨서…. 주무세요.”
“아, 인현이야…?”
“네, 당분간은 같이 자야 할 것 같아요.”
“으응~…”
얼른 자, 남편의 말에 자신도 몸을 눕혔다. 내일 일어날 수 있으려나…. 그런 생각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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