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대담
이건 심청+은준 글
헌터로 대표되는 이능력자들은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주곤 한다. 생물이라면 감히 따라하기도 힘들 것을 자신과 같은 인간의 몸으로 행하는 사람. 마치 삶을 게임처럼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태창이라는 이적. 버퍼는 시몬, 탱커는 일리온, 딜러는 아베론이라는 이름으로 우회되었지만, 결국 편의를 위해 붙인 이름은 또다른 게임적 용어와 다를 바가 없었다. 현실에 등장한 홀로그램 인터페이스와 이능력은 스스로의 행위에 대한 경각심을 덜게 한다. 마물, 괴물, 어쨌든 인간 사회에 적대적이며 해를 끼친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사는 곳은 그 성질과는 반대로 우리에게 이로운 것이 많았고, 그 해로운 괴물을 처치한다는 미명하에서 생물을 토벌하는 이들의 눈빛이란 붉게 번들거리기 마련이다.
그 눈과 손을 바라보는 사람이라면 21세기에 목숨을 건 사냥꾼은 어떤 모습을 하는지 알 수 있으리라.
이봐, 3시 방향 졸개들 잡아. 누가 보스 팔다리를 묶어! 저 일리온이 가능하던가? 내가 할게. 저기요, 여기 보호막 깨져갑니다. 다시 펼쳐주세요. 거긴 버린다. 모두 위치를 틀어.
디버프 때문에 곧 체력이 떨어질테니까! 버티기만 하면 공략 성공이야!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쉽게 말한다. 아니, 사실 말하는 것도 쉽지 않다. 다만 해결을 위해 누군가를 사지로 몰아 넣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러울 뿐이다. 누군가가 죽고, 무언가를 처치한다. 그 과정을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헌터를 멀리서 동경할 수 있고, 일종의 인플루언서로 여길 수 있었다. 그리고 멀리서 빛나는 태양빛을 즐기다가 가까이 다가가면 타죽는 것처럼, 실체를 앞에 두고서는 두려워할 수 있었다.
이능력자는 두려움을 사고, 부러움의 시선을 받고, 통제하기 힘든 강력한 무기라는 인식 속에서 명확한 제도권에 들지도 못하는 위치가 되었다. 프리랜서, 자유용병으로 보이지만 동시에 길드라는 이름의 사업장에 소속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들의 일은 일정하지 않고, 많은 시간을 기다림으로 보냈다. 주에 몇 번, 작은 ‘길드’라면 달에 몇 번. 그마저도 타 길드에서 일을 받지 못하도록 된 계약이라면 그 몇 번의 공략이 잭팟을 터트리길 바라야했다.
이능력 시대의 말미에는 전 세계적인 던전 감소 현상으로 크고 작은 길드 모두가 이런 상황에 놓였지만.
아라홍련 소속의 사람들은 헌터라는 존재에 대하여 많은 칼럼을 기재했는데,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시기는 큰 이능력 사고가 일어날 때였다(물론 ‘많은 관심’이라고 해봤자 신문 판매 부수와는 관계없이 토막난 글이 SNS에서 얼마나 많이 공유가 되었느냐 하는 것이었고, 대충 천 단위로 셀 수 있으면 많은 거였다). 대한민국 천안의 마지막 던전을 두고, 앞으로의 던전 산업과 경제에 관한 전망에 대한 글을 쓸 때는 그보다 더한 관심을 받았고, 헌터라는 직종의 소멸을 말하며 길 잃은 청년 노동자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때는 앞선 의제에 다소 묻히곤 했다. 또한 사각지대에서 이능력을 착취당하고 있었고, 버려질 이들에게도 시선을 향해야한다며 말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그것은 언제나처럼 주목받지 못했다.
그럼 결국 이능력자는 어떤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다면성을 모두 포함할 수 있는 짧은 문장이 나타나기에는 십 년이 짧았다. 그리고 간단명료하게 설명되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렇게,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정체로 정의되지 못하고 존재 자체가 사라졌다. 누구에게도 정의되지 못한 위치를 지녔던 이들은 과거의 자신을 어떻게 마주봐야 하는가.
“그러니까 저희는 무언가 증명할 필요가 없이, 아주 명백하게 사회의 일부이자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것 참 듣기 좋은 말이네만, 세상을 안전하게 만드는 것은 ‘듣기 좋은 말’이 아니라 차가운 직시일세.”
“차가운 직시로 안전하지 못하게 된 헌터 또한 세상을 이루는 것이었는데도요. 심지어 직시도 아니지 않습니까. 어떤 상황을 도려내고, 은준 씨의 시선을 강화할 사례만 부각한 거니까요.”
“우리 지금 싸우자고 이러고 있는 건가? 고기 다 타니까 빨리 뒤집게. 아니면 집게랑 가위를 나한테 주던가.”
나는 고기를 뒤집었다.
살짝 거뭇해져버린 고기 몇 개를 앞접시로 옮겨 담으며 말을 잇는다. “은준 씨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는 거잖아요.”
이은준이 자신의 앞접시와 내것을 바꾼다. 그리고는 다시 손을 내밀길래 얌전히 집게를 넘겨준다. 그러면 잘 구워진 고기로 돌아오게 된다. 크기는 조금 작아서 자칫 잘못하면 불판의 틈으로 떨어질 수도 있었지만. “이게 어째서 내 이야기인지 모르겠군. 헌터에 대한 이야기지.”
“정확히는 이능력자죠. 이능력자라고 다 헌터인 건 아니니까요.”
“이거나 저거나 내 이야기가 아닌 건 똑같지 않나. 괜히 말꼬리 잡기는…….”
“그야 아직도 ‘위험한 사람’ 어쩌구 염불을 하시잖아요. 그러니 이건 이은준 씨 이야기죠.”
“이능력자가 사라진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그런 내 말을 그냥 못 넘기고 딴지를 거는 아씨도 참 웃기다고 생각하지 않나?”
“둘 다 꾸준한 거라고 하죠. 어허, 너무 빠르게 마시지 마세요.”
채운 잔을 훔쳐서 내 잔으로 옮겨 담고, 상대의 잔에는 사이다를 채운다. 이은준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뒤에 아는 사람이 지나간다는 속임수를 쓰길래 돌아보지 않았다. 지난 다섯 번 연속 넘어가줬으면 한 번은 말을 듣지 않을 때도 되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정말 사람이 없다. 지난 번에 정말 아는 사람이 지나갔는데 거짓말인줄 알고 모른 척 했던 것이 얼마나 창피하던지.
거짓말 아닌데, 하는 중얼거림을 몇 번 더 시도하길래 차라리 잔에 먼저 입을 대고 한 모금 마셨다. 이은준은 그제서야 혀를 한 번 차고는 포기했다. 고기에 사이다도 꽤 괜찮지 않은가.
“많은 곳에서, 폭력의 현장에 있어야 했던 헌터들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모임을 만들어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
“그렇게 ‘뭘 잘했다고 그런 걸 다 하나’ 같은 표정 짓지 마시고요.”
“뭘 잘했다고 그런 걸 다 하나?”
“하지 말라니까는.”
“미안하네. 반응이 재미있어서.”
타박하는 것도 귀찮아져서 그냥 상대가 싸둔 쌈을 뺏어 먹었다. 마늘이 많아서 코가 매웠다. 기침 몇 번 하다가 잔에 든 것을 모두 삼키고서야 진정이 되었다. 더 따라주는 것을 말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아씨께서는 이능력으로 인한 ‘사고’가 한 해에 몇 번이나 일어났는지 알고 있나? 2018년 기준으로 한국에서만 100 건이 넘었네.”
“정확히는 107 건이었고, 이능력 사용 의심 사건까지 더하면 140 건까지 뛸 거라는 말이 있었죠.”
“그, 그래. 그런데 내가 어떻게 이능력자들을 위험분자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나.”
“그 107 건에는 이능력을 사용한 범죄 뿐만이 아니라 단순히 이능력자라는 이유로 그 통계에 포함된 것도 있잖아요. 그렇게 사람을 구분해서 따진다면 이능력자의 건수보다 비이능력자의 사건이 더 많은 걸요.”
“그것들에게 범죄를 숨길 수 있는 수단이 얼마나 많은데! 그리고…… 그것들은 사소한 실수 한 번으로도 아주 큰 피해를 입혀. 사람들의 실수와는 차원이 다르지.” 그러고는 작은 소주잔에 따라준 사이다를 꿀꺽 삼켜 넘겼다.
나는 그것을 보며 말한다. “2011년에는 크고 작은 사고가 400 건이 넘었대요. 알아요?”
이은준은 은근슬쩍 술을 더 주문했다. 나는 다 익다못해 단단해진 고기를 상대의 접시로 옮겨주고 새로운 고기를 불판 위로 올렸다. 고기의 지방이 뜨겁게 달궈진 판 위로 흘러내려 눌러붙으며 익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뭐, 그래서. 옛날에 비하면 나았다— 그런 뻔한 말을 하려는 건가? 이만한 꼰대 발언이 또 없을텐데.”
“새로 이능력을 각성하는 사람이 줄었잖아요. 이능력자로 인한 사고 발생 수는 각성자 수에 비례해요. 그건…… 그야말로 그 일이 새로 생긴 능력에 익숙치 않아서 그런 걸 수도 있다는 걸 말합니다.”
“그 실수 한 번이 커다란 건 변함이 없지. 모든 건 그저 실수였다고 피해자들 앞에서 말할 수 있겠나? 난 못할 것 같네.” 어깨를 으쓱인다.
“은준 씨는 어린이들이 실수한 걸로 몇 년을 구박하나요. 이능력이 생긴 건 아주 어린 아이가 갑작스럽게 어른의 몸을 가진 것과 다름이 없다고 해요. 자신을 원하는대로 통제하기 어려워요. 새로 얻은 긴 팔로 평소에는 못 만졌던 높은 책장의 책을 꺼내려다가 엎어지면 더 크게 어지르는 건 당연하잖아요.”
나를 빤히 바라보는 시선을 피하고 고기를 뒤집는다. 이런 대화를 몇 번을 했는지 세는 게 더 어려웠다. 진전되지 않는 대화는 항상 비슷한 말을 하게 했고, 가끔 서로가 찾아온 새로운 근거가 제시되기도 했다.
이미 지난 일과 사라진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떠들어대는 것은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만든 진주는 여전히 어디선가 거래되고 있고, 누군가가 회복시킨 생명은 지금도 살아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존재했던 것’은 온전히 사라지지 않고 흔적을 남겨둔다. 만약 그것들이 전부 사라지고, 지난 십 년(우리는 십오 년이었지만)을 겪었던 이들이 모두 죽으면 이제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까.
“그런데 아씨께서 그렇게 기를 쓰고 변호하는 게 정말 그게 옳아서만은 맞는가?”
“당연히 그뿐만은 아니죠. 누구 위로하겠다고 하는 건데요.”
“나뿐만은 아닌 것 같아서 하는 말이네. 자네 길드장이 했던 짓을 나한테 말해준 적이 있지 않나.”
“자자, 여기 더 마시세요. 잔이 비었네요.”
마침 주문했던 술을 가져다 주었길래 이은준의 잔에 넘치기 직전까지 따라준다. 상대는 말을 멈추고 황급히 잔에 입을 가져다 댈 수밖에 없었다.
금요일 저녁 아홉 시. 아직 인사불성으로 취하기는 이르지만, 슬슬 테이블 위에 소주병 올려두고서 주변에 맞추어 목소리가 커지곤 하는 시간이다. 뭘 잘못 삼켜 콜록거리는 소리 정도는 잘 들리지도 않고. 가족단위의 손님은 이미 빠져서 가게에는 취할 준비를 마친 어른들만 가득하다. 이런 자리에 어울리는 대화거리로는 동창 소식이나 직장 상사에 대한 푸념, 혹은 또 어떤 정치인이 헛짓거리를 했다더라—같은 것이 있다. 아니면 여행 소식같은 것도 좋다. 어찌되었든 여러 테이블에서 다양한 대화를 해대니 제대로 들리는 것이 하나도 없다.
시간이 지나 열 시 즈음이 되니 우리 테이블에도 빈 병이 늘고, 음료수는 치워진다. 돼지고기에는 소맥이라는 진리를 설파하던 자 앞에는 소주병과 맥주병이 섞여있다. 맥주는 김이 빠지면 맛없다는 핑계를 대며 이은준은 게 눈 감추듯 빠르게도 마셔댔다. 저러다 또 취해서 갈지자로 걸으며 아닌 밤중에 거리에서 탈춤이나 추겠거니 하며 내버려두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저 사람 말릴 필요가 있나 싶었다.
“청이 아씨, 취했나?”
“아뇨, 저는 취하면 꼴불견이 된다고 했어요.”
“…….”
“……설마?”
“아니. 아직 아니네.”
“다행이네요.”
불판 위에 남은 건 없다. 술도 각자 잔에 남은 것이 전부였고, 한 번 더 추가했던 찌개는 차갑게 식었다. 이제 슬슬 일어나야 할 타이밍이었는데 상대가 2차를 제안한다. 취했냐는 건 더 마실 수 있는지를 물어본 거였나보다. 눈짓 한 번 하고는 서로 남은 술을 단번에 털었다.
계산하고 밖으로 나와서 맞는 바람이 시원하다. 이제 날씨는 완연한 가을이 되었으니까, 해가 뜨지 않을 때는 살짝 추울 정도로. 코트를 단단히 여미고 느리게 걷는다. 집에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원하는만큼의 술을 골라담고, 과자랑 적당히 집어먹을 것을 산다. 아이스크림 코너를 지나치지 못하고 하나씩 쥐었다.
“원래는 이 길로 가지 않고 더 멀리 돌아가요.”
언덕 아래를 가리키며 손을 휘적거린다. “퇴근하는 길에 저기 바닷길을 따라서 걷다가 돌아서 저 반대쪽으로 다시 올라옵니다.”
“한 번만 더 들으면 다섯 번 채우겠네.”
“제가 그렇게 자주 말했습니까?”
“자주는 아니고. 방금 들은 것만 세었네. 저 길로 갈걸 그랬나?”
“아뇨, 지금 갔다가는 분명 바다에 빠질 거예요.”
“무서운 소리를 하고 그러나.”
“무서운게 아니라요. 밤바다라는 게 그렇죠, 뭐. 하늘이랑 바다가 구분이 안 돼요. 저기는 심지어 먼 집에서 오는 빛이 전부라서, 모래가 아닌 자갈쪽으로 가면 바닷물이 어디까지 들어왔는지도 잘 안 보이거든요.”
“……이사 갈 생각은 없나?”
가로등이 드문드문 놓인 언덕길은 고요했고, 작은 웃음소리도 쉽게 퍼진다. 그러다 바람이 조금이라도 세게 불면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에 금방 묻힌다. 그 소리가 꼭 파도같다는 걸 최근에 깨달았다.
야밤에 가장 소란스러운 것은 바람과 풀잎, 그리고 귀뚜라미다. 올라가면 주택가고, 먼길 내려가면 상가가 즐비한데 딱 이곳은 그 중간이라 있는 것 없이 길이라는 것에만 충실하다. 아스팔트 깔린 길과 신발 밑창에 박힌 돌멩이가 까드득거리며 긁히는 소음을 낸다. 자는 사람도 없고, 그렇다해서 야생동물이 있지도 않을, 묘할 정도로 사람 손길을 탄 곳이라 누굴 깨울 걱정이 없는데도 소리를 낮춰 대화한다. 다 먹은 아이스크림 막대를 손에 쥐고, 반대쪽 손으로는 편의점 봉투를 달랑거리면서.
“근데 내가 위험하다고 말했던게 꼭 사람같지도 않은 이능력자였던 것 때문은 아니라는 거 알지?”
“그럼요.”
“알면서 왜 그랬나. 내내 조잘조잘.”
“그래도 이런 말 듣는 거 좋아하시잖아요.”
상대는 자기가 잔소리 듣는 걸 언제 좋아했냐며 투덜거린다.
“집에 가면 2차전입니다.”
“나 이제 슬슬 입이 아플 지경인데.”
“그리고 전 술 안 마실 거예요.”
“그건…… 반칙이네!”
“이은준 씨는 취중 토크 하십쇼. 저는 멀쩡 토크 할테니까.”
“정직한 사람인줄 알았는데 참 실망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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