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 청 / 청 마르가리타

처음으로 돌아가시오

데굴데굴 by 샤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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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한다.

소낙비와 같은 카메라 셔터음을 조용히 스쳐지나갔다. 세상에 남은 최후의 던전이 정말로 사라진 겁니까? 돌아온 인원은 이것이 전부입니까? 안에 어떤 마물이 있었습니까? 마지막 보상이……. 미리 답지를 보고 들어온 시험장 같았다. 그게 아니면 재시험이라고 할까. 무수한 질문은 한 차례 지나갔던 과거와 똑 닮아서 대답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저 질문들은 그저 나에게 들어와서 안에서 맴돌다가 빠져나갔다. 공허한 메아리라기엔, 그것은 모조리 흡수해버린 물이었다. 나는 찬물에 담궜던 스펀지처럼 질척하고 무겁게, 뻣뻣해진 몸뚱어리를 겨우 이끌고 길드에서 준비해준 차에 몸을 실었다. 다른 책임감 있는 사람이 알아서 마무리 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언제나와 같이 없는 사람처럼 조용히 지나가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이전과 비슷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몸이 꽤 건강했고, 저번보다 살아남은 인원이 적었다. 하지만 저 밖에서 마이크를 들이밀고 있는 기자들은 그것을 몰랐기 때문에, 우리는 가장 큰 질문을 피해갈 수 있었다. 왜 저번보다 사람이 적느냐고. 그것은 가장 답하기 싫을 뿐만 아니라, 듣고 싶지도 않은 말이었다. 실패 요인을 생각하다보면 첫 번째 토벌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여왕을 상대하면서 발휘했던 힘을 그때도 사용할 수 있었다면 절반이 우수수 죽어 사라지지 않았을 거라고. 그랬다면 조금 더 많은 인원이 살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두 번째 공략에서도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이 살았겠지.

그랬다면. 그런 경우에도 이렇게 심한 무력감을 결코 피할 수 없었을까. 죽은 한 사람 더 살리지 못했음에 괴로워하며 괜히 심장을 부여잡았을까.

청아. 병원부터 갈까?

아니요, 괜찮아요. 몸상태가 나쁘지 않아서요. 그냥……. 조금만 쉬고 싶습니다.

그래. 그래도 지금 집으로 가는 것보다는 길드 건물로 가는 게 낫겠다. 혹시 모르잖아.

정말 괜찮아요.

너 집에 보냈다가, 혼자 있을 때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해. 그리고 아마 지금쯤 네 집 앞에도 기자 몇 있을걸.

전에는 바로 입원을 했어서 그런지 그런 어수선함을 느낄 새가 없었다. ‘다른 A급이나 S급이나 취재하러 가지 굳이…….’ 같은 생각이 들었는데, 이후에 들은 바로는 물론 그쪽으로 사람이 더 몰렸었다더라. 심지어는 안에서 죽은 헌터의 거처에도 사람이 깔렸었다지. 소식이 전해진 이후에는 앉아서 기다리던 이들이 다 흩어졌더랬다.

그럼 길드로 갈게요. 네, 그게 나을 것 같습니다. 금방 대답을 하니 잠깐 눈을 붙이라는 말이 돌아왔다. 서울 지부는 손님이 많아서 멀리 있는 곳으로 가야한다나. 눈을 감고 잠에 들기 위해 노력할 때가 되어서야 익숙한 향이 나고 있음을 깨달았다. D는 차 안에 레몬향의 고체 향수를 두었는데, 그 새콤한 향을 여지껏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긴장 때문이었겠지. 안전한 곳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자 졸음이 밀려왔다. 최근 며칠간 겪지 못한 지독한 수마가.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되돌아 사는 인생, 새롭게 살아보겠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최대한 비슷한 행동 양식을 취했다. 사라진 5년의 삶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다시 찾고 싶다는 생각으로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부러 어떤 행동을 똑같이 따라하려는 태도가 기시감을 일으킨건지, 아니면 자꾸 틀려먹는 모종의 정보들 탓이었을지는 모르겠다. 말을 뱉었다가 다시 바꿔대는 지인이라는 건 그렇게 꺼림칙한 존재일까. 저번에 말했던 그분 말씀이신가요. 내가 너한테 그 사람에 대해서 말했던가? ……. 네, 몇 주 전엔가 태풍 때문에 마감하고서도 가게 안에서 기다리던 때가 있었잖아요. 그때요. 그랬나……. 하긴 그 때 별 이야기를 다 하긴 했지. 맞아요, 그랬잖아요. 공통의 경험이 사람을 친밀함으로 엮어준다면, 내가 가진 것은 이제 존재하지 않아야 하는 감정이었는데. 사라지지 않아서 더 서러웠다. 무엇보다도 어렵고 슬픈 것은,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상대를 앞에 두고 존재 자체로 거짓을 말하는 셈이 되니 퍽 쓰라렸다.

바늘 앞의 풍선처럼 두통이 밀려올 때면, 출구를 앞에 두고 머뭇거리던 사람을 떠올렸다. 함께 가자며 이끌던 손. 약속과 격려. 그렇게 우리는 모두가 같은 시간을 살게 되었는데, 그 동지라는 것이 너무 적어서 무수한 현실에 희석되어버린다. 대양에 커피 한 잔 붓는다고 해서 새까맣게 변하진 않았다. 거뭇해지지도 않았다. 모여있던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해류에 휩쓸리고, 파도를 따라가고, 저 멀리 빈 곳으로 가서 결국 분리된다. 붙잡아둘 수 있는 것은 바라는 것에 비해 적었다. 어쩌면 애초에 더 큰 욕심을 부려야 했을 수도 있지만, 그런 법은 몰랐다.

발버둥을 칠수록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만 들었다. 정말 잘못되었기에 이런 기분인건지, 아니면 단순히 불안해서 그렇고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인지도 알 수가 없다. 이렇게 신경을 쓰는 것은 나뿐인가. 전과 같은 평안을 다시 손에 쥘 수 있는 것은 맞을까. 이상하고 익숙치 않으면서도 퍽 나쁘지 않았던, 평범한 생활이라고 믿었던 그것은 파도에 쓸려가버린 모래 위의 낙서처럼 이 안에 흔적만 남았다. 한 번이면 흐릿해지고, 두 번이면 사라질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했나. 영원따위는 바라지도 말라는 것처럼 가꾼 모든 것이 증발하고서야 살아가는 것이 원래 이랬음을 기억해냈다. 내가 사는 세상은 마음먹은대로 흘러간 적이 없고, 쥔 것은 송송 빠져나간다. 그런 세상이었다. 이는 던전이니 이능력이니 하는 변혁이 일어나기 전부터 그래왔던 것이었고, 던전이 사라져도 그런 부조리함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그것만이 변하지 않는 일종의 법칙이었다.

그럼 나는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했던 걸까. 이뤘던 것을 재구축하고, 그곳에서부터 다시 사는 것은 불가능했던 거라면 아마 처음부터겠지. 처음으로 돌아가야했었다. 백지가 된 그 순간에, 새로 시작해야했다. 지우개가 덜 지운 흔적을 따라갈 것이 아니라 물감을 두껍게 발라서 보이지 않게 새 그림을 그려야 했던 것이다. 미련을 두면 안 됐다. 모든 것은 지워지기 마련이라. 그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럽다는 듯이 행동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고, 그런 이유로 이 일그러진 그림에서 계속 이어가게 되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반복하고 새로운 기회를 얻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했으니까. 그런데 저번에도 마지막일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따뜻한 물을 틀고 거품 가득한 식기를 닦아낸다. 창 밖으로는 차가운 바람이 매섭게 불고 있었다. 뉴스에서는 내일 눈 예보가 있지 않았지만, 결국 첫눈이 내릴 것을 떠올렸다. 눈이 단단하게 쌓인 골목에서 엉덩방아를 찧었던 아이를 기억한다. 내일은 귀찮아하지 말고 나가서 눈을 쓸어야겠다. 그럼 넘어질 아이는 없게 된다. 그 아이는 다른 모든 것들과 똑같이 나만 아는 것이 되겠지. 물기를 가볍게 털고 그릇을 정리한다. 고무장갑은 벗어서 싱크대에 걸쳐두었다.

바깥은 어두웠고, 동시에 밝았다. 일찍 들어간 해를 대신해서 가로등이 환하게 켜졌다. 텔레비전은 영화 채널에 맞춰두어서 하루 종일 아는 영화가 흘러나왔다. 아는 결말과 아는 전개. 처음 볼 때에는 집중하고 봤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냥 방 안을 채우기 위한 소음일 뿐이다. 이렇게 지루했던가. 1월 1일 첫 개봉을 한다는 영화도 마찬가지다. 이미 알고 있기에 기대가 되지 않는다.

그나마 숨이 막히지 않았던 것은 최후라고 하는 던전에서 살아나온 이와 함께할 때 뿐이었다. 여행, 식사, 소소한 연락 같은 것들. 겪은 일을 숨기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과의 대화는 혹여 상처를 건들까 조심스러우면서도 편안했다. 그 자리에 있는 나만이 온전했다. 어느 것 하나 떼어서 버려두는 것이 아닌, 조각이 아닌 완전한 하나의 상이 되어 존재할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은 카페에 초대해서 이런 저런 단 것들을 먹여보기도 했다. 어떤 사람과는 함께 별을 보러 먼 몽골로 가기도 했고, 다른 사람과는 같이 베이킹을 해봤다. 또 누구의 집에는 놀러가서 술이나 까기도 했고.

다만 그 모든 사람들과 같은 불안을 가지고 있을 수는 없었다. 사건은 공유해도 같은 심상을 가지지는 못했다. 사람이라는게 그랬다.

모래사장 맨발로 걸을 때면 곧잘 공상에 빠지곤 하는데, 최근 가장 자주 떠올린 주제는 던전이었다. 찬 공기가 외투 속을 침범하면 여왕의 눈발이 떠올랐고, 그 발에 물결이 퍼지면 수중에서의 갑갑한 전투가 재개되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나는 다시 천안의 던전 입구로 떨어졌다. 어두운 곳에 사람 여럿이 끼어 옴짝달싹 못하다가 한 곳으로 쏟아졌다. 하루를 마무리 할 때면 나는 또 던전을 빠져나와 같은 일상을 살았다. 내일 일어나면 다시 던전에서 눈을 뜨겠지.

이것이 던전의 꿈이 아닌,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 할 현실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현실이 무無로 돌아가, 헛된 꿈이었다는 경험은 벗어나기 쉬운 게 아니었다. 마지막이라는 게 있나.

2024년 6월 20일이 돌아온다. 세상은 어제와 다른 점이 없고, 세상을 관장하는 시스템같은 것은 없다. 천안의 던전은 다시 알람을 울리지 않는다. 두 번째, 완전한 종결이다.

그것을 끝이라 믿을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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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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