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 청 / 청 마르가리타

지구의 칠 할은 바다

데굴데굴 by 샤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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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TSD 증세 묘사, 불안감, 피에 대한 묘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다에서 태어난 사람은 평생 떠나온 바다를 그리워한다고 하던데, 누가 했던 말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그 말에 어느정도는 동의한다. 파도에 휩쓸리듯 살면서도 자리는 옮기지 않는 부표처럼 수면 위에 얼굴을 내밀고 사는 것은, 내가 그 겨울 바다를 바라보며 태어났기 때문일 테니까. 그 외의 다른 이유가 있다고 하기엔 나를 스스로 너무 안쓰럽게 여기는 일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파도 철썩이는 소리, 졸졸 물이 흐르는 소리나 바람이 밀어서 물끼리 스치며 내는 자잘한 소음이 좋았다.

나 태어난 곳, 자라난 곳. 온 가족이 함께했던 가장 마지막 기억.

세상의 마지막 던전을 공략하고 나오는 길은 어수선했다. 급하게 얼굴을 가리는 사람, 미처 닦아내지 못 했던 핏자국을 소매로 문질러 없애기나 사람들 틈을 후다닥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고, 던전 밖에서 기다리던 이들의 반응은 상상했던 그대로였다. 내 얼굴도 분명 찍힌 사진과 동영상 한 귀퉁이에 걸려 있긴 할 것이다. 그 표정이 어땠는지 병실 침대에 누워 천장의 무늬만 덧없이 그려보던 시기에 처음 보았다. D가 나를 보자마자 병원에 등떠밀었던 이유가 저 화면에 있었다. 분명 그 당시에는 모든 것이 끝났다는 공허함과 약간의 시원함, 그리고 피곤함만 느껴졌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내 면상에 가득한 것은 그것보다도 압도적인 초췌함이었다.

너덜거리는 한 쪽 귓불은 귀걸이가 뜯어져나가며 다친 모양이었다. 정신차리고 보니 내가 손에 귀걸이를 꼭 쥐고 있었던 이유를 몰랐는데, 아마 나도 모르게 떨어진 것을 잡아 쥐고는 그대로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혹은 내가 마저 잡아뜯었든가. 다행히도 얼굴에 잔뜩 피를 묻힌 기괴한 꼴은 아니었지만, 옷이 성치 못해, 전신에서 던전에서의 힘겨움이 묻어났다. 표정. 저 표정이 문제다. 나는 어쩜 그리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던 건지. 대지와 싸웠던 것이 그렇게 힘겨웠던 것도 아닐텐데, 저 놈은 저런 얼굴이나 하고 있었다. 하루 쉬었으면 됐지. 뭐가 그렇게 힘들었다고. 사실 나는 별로 다치지도 않았다. 이리저리 긁히고 돌에 맞아 살이 파이긴 했지만, 더욱 크게 다친 사람이 있었다.

아예 돌아오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검붉은 피가 푸른 땅에 거미줄마냥 달라붙었다. 끈적하게 깔린 것들에 꼭 다리까지 붙어버린 것만 같았다. 날아드는 것을 피하겠다고 움직일 때 발에 채여 철퍽거리는 소리가…… 시체 조각 하나 없이 한줌의 핏물이 되어버린 이들이…… 서른에 가까운 사람이 만든 것이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 땅을 뒤집고, 물길을 틀며 하늘을 달리는 이들의 최후라기에는 잔인할 정도로 남은 것이 없었다. 이능력을 사용한 몇 흔적만이 그들의 발버둥을 짐작케 했다.

그런데 멀쩡히 살아 돌아온 내가 어떻게 그렇게 죽은 사람의 얼굴을 할 수 있었을까. 그들이 봤다면 괜히 괴로운 척 하지 말라고 한 소리씩 했을 것이 분명했다. 자신들을 신경도 쓰지 않던 이가 그래봤자 위선 떠는 것에 불과하다며 비난했을지도 모르고, 떨떠름해 하거나 부담스러워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는 살았다는 사실 자체에 감사하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적당히 잊고 사는 것이 차라리 도움이 될 터였다. 던전에서 사람 죽는 일이야 한 두번 있던 일도 아니지 않는가.

이렇게 새벽마다 식은땀에 푹 젖어서 화들짝 깨는 수면장애나 가지자고 살아 돌아온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저 살고 있을 뿐인데 뜬금없이 가시에 찔린 것처럼 창밖을 보려고 이사 온 것이 아니었다. 바닷물이 질펀한 바위를 치고 지나가는 소리가 꼭 물에 젖은 신발 소리 같다. 돌 틈으로 파도가 비집고 들어가며 그것을 떨구는 소리는 절벽이 무너지는 굉음처럼 들렸다. 이 물 비린내는 그 냄새와 같지 않음에도 들이마시면 피가 빠르게 돌게 된다. 심장소리가 방안을 지배한다. 해가 어스름하게 떠오르면 그 빛살에 눈이 부셔서 미간을 찡그린다. 더 닫을 창문이 없다는 것이 한스럽다. 벽에서 떨어져 방의 중앙으로 갔다. 아니, 차라리 욕실로 가서 찝찝한 몸을 씻었다. 따갑게 얼굴을 때리는 화살같은 물줄기는 고인 물이나 힘찬 파도 소리와는 달라서 이게 나았다.

찬물을 잔뜩 뒤집어쓰고 나와서 결국 짧은 감기에 걸렸다. 하루종일 이불을 둘둘 감고, 죽과 감기약을 번갈아 먹고 있으니 이곳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 집이 나를 좀먹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벗어나면 괜찮아질 것이다. 멀리 여행이라도 가서 쉬다 오면…… 그걸로도 안 되면 다시 돌아가야지.

블랑 씨, 혹시 아직도 저와 여행을 가보실 생각이 있나요?

무슨 스팸 메일처럼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랑 진짜 가실 건가요? 한 번 경험은 해볼만한 도전이라는 생각이 드시나요. 저는 미리 제가 재미없는 인간이라는 경고를 했어요. 정말 괜찮으신건가요? 이런 온갖 불안이 함축된 문장이었다. 겨우 스물 두 글자에 말이다. 일전에 그와 스치듯 했던 약속이 생각나서 연락을 했지만, 과연 기억하고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그 사이에 마음이 바뀌었을 수도 있고.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에르텔 블랑은 외려 먼저 연락하지 못했음에 미안한 기색이었다. 의외였다. 괜찮다고 했다.

바다가 있는 곳은 싫었다. 계곡도 싫었고, 호수도 싫었다. 숙소에 수영장 따위는 없었으면 했다. 길을 잃어도 다시 돌아올 수 있게 별이 많이 뜨는 곳은 어떤지 이야기를 했던 것이 기억나서, 열심히 검색이나 해보았다. 여행지로 좋은 곳이 어디가 있는지 평소에 관심을 둔 적이 없으니 막상 찾으려고 해도 영 보이질 않았다. 결국 적당히 몽골과 아이슬란드는 어떻지 물었다. 겨울이라 더 추울 것 같았지만, 에르텔 블랑은 흔쾌히 좋다고 했다. 두 지역 중에서 고민하고 있으니 다트를 던져 수동–랜덤 추첨을 하자고 제안 받았다. 그건 블랑에게 맡겼는데 아이슬란드가 뽑혔다. 추워 죽을 곳이니 적어도 흐르는 소리는 나지 않을 거라 괜찮다고 생각했다.

딱 일주일이었다. 비행기를 한참 타고, 차로 한참 달려 괜찮은 숙소에 도착했다. 사람에 끼어 죽을 것 같은 곳도 아니었고, 사람이 너무 없는 것도 아니라서 고립된 기분도 들지 않았다. 적당했다. 빛 공해가 적은 밤 하늘을 하릴없이 올려다보다가 맥락 없는 말을 툭툭 던지고, 다시 조용히 눈을 감고 차가운 공기를 느꼈다.

그 사이에 마지막 던전을 함께 했던 이들의 소식을 부러 찾아보진 않았다. 그러면 쉴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에.

에르텔 블랑과 헤어져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하던 일을 마저 할 수 있었다. 헌터 생활을 하면서 말을 깊게 튼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자신을 통해서 아라홍련의 지원책을 받아보려는 사람이 몇 있긴 했기에 연결해주었다. 단골 손님은 하이이나였는데, 참 여기저기 참여를 자주 하는 것 같아서 뿌듯하게 보았다. 다들 나아가려고 하는 것 같았다.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니, 내가 멈춰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외에 어떻게 살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열 여섯 살에 각성해서 성인이 되기도 전부터 시간이 날 때면 어른들 틈에 끼어 던전을 돌았다. 보통의 사람처럼 살았던 세월에 비해, 그렇지 못했던 기간의 밀도가 너무 높았다. 급하게 쌓아올린 경험들이 곧 쓰러질 듯이 휘청이는 것이 내 눈이 훤히 보이는데도 그 마지막 던전을 공략해서 이능력을 없앴던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싶진 않았다. 잘못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으나, 결국 나는 지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주면 무얼할까. 내 앞에는 무엇이 있지?

결국 돌아온지 몇 주 되지도 않아서 다시 집을 나섰다. 이번에는 어디 산골에 묻혀서 붙박이 카라반을 하나 빌려 숨었다. 소파를 침대로 바꾸고, 다시 그 침대를 탁자로 바꾸는 행위를 하루마다 반복하면서, 가져갔던 한두 권의 책을 각각 두 번은 읽었다. 하루는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정말 꼼짝없이 갇혀있었다. 바람소리가 거세서 책에도 집중이 되지 않았고, 뭐라도 검색해서 보기에는 아직 던전과 헌터, 사라진 이능력 같은 것이 뜨거운 감자일 때라서 인터넷에 접속하고 싶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휴대폰에 온 연락을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는데, 눈에 띄는 이름이 몇 있었다. 특히나 하이이나는 계속 연락하는 사람이 되어주겠다던 말이 진심이었는지 길드에 관한 일이 아닐 때도 꾸준히 연락을 남겼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는 말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보면, 분명 나와 같은 사람이었을 텐데 주변에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어떻게 달라진다는 걸까. 나라고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귀찮게 달라붙은 D와 그의 친구들이 있었고, 물론 그에게 감사한다. 하지만 잘 모르겠다. 잘 모르겠다…… 세상에 확실히 아는 것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는 말은 내 입버릇이 되었다. 그것이 오롯이 확언하는 말이다.

내 주변에서 사람이 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거다. 이능력이 사라지자 가장 먼저 연락을 끊은 학창시절의 인연을 보라. 이제는 네 어여쁜 진주 좀 구경시켜달라는 물질적 연락조차 하지 않는다. 하나 있는 혈육과도 연락이 자주 오가지 않았다. 가장 마지막에 떠있는 문자는 퇴원했고, 이사를 갔다는 내 답이다.

그런데 지금은 이상한 것이 누군가에게서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문자도 와 있었고, 여행은 재미있냐는 안부문자도 와 있다. 어떻게 사는지 서로에게 관심도 없을 줄 알았던 사람들인데, 오히려 지금 몇 달간 주고 받은 단어가 내 몇 년의 글자보다도 많았다.

하이이나의 말이 맞는 걸까. 내가 달라진 것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전과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초 계획했던 일 년보다 오래 길드에 머물렀다. 아라홍련의 도움을 받았던 것도 있고, 가끔 연락을 해오는 이들에게 거꾸로 내가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기특한 자식을 보는 듯한 D의 표정이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어차피 얼굴 볼 일이 거의 없다는 생각에 별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히려 그 점이 더 기특한 행위였던 모양이었다.

길드에 오래 있게 되면서 이은준에게 연락을 해보는 것이 조금 늦어졌는데, 겨우 그 정도 가지고 기다리는 사이에 흰머리가 다 났다느니 뭐라고 하기에 어이가 없었다. 웃기기는 한 것이, 그래도 내가 이제 사람을 유하게 보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가끔 웃음이 났고, 길바닥에서 갑자기 한숨이 터지는 일이 줄었다. 자주 좋다는 생각을 했고, 아주 가끔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몸을 움직이며 살아야 하는 사람이었다. 집에서 삼십 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카페는 손님이 많진 않았는데, 사장이 욕심이 많아 디저트는 많았다. 음료수는 단순히 디저트를 먹다가 목이 막히면 마시라고 가져다두는 거라며 어깨를 으쓱이는 사람인데, 그런 사람조차도 내 커피는 도저히 못 마시겠다며 뱉었다. 마침 연락처 상단에 떠 있던 란샤오에게 이것을 말했더니 나중엔 놀리던데. 어쩐 일인지, 사과하는 말이 돌아오기에 괜찮다고 했다. 웃기려고 한 말이었는걸.

나는 내가 집에 처박혀서 썩어가는 눅눅한 통나무가 될 줄 알았는데 자꾸 밖으로 건져지고 있었다. 바닷 깊은 곳에서 압력에 짓눌려 서서히 죽어간다고 생각했는데, 어쩔 도리가 없이 위로 둥둥 뜨고 있었다. 부력 때문인가. 삶은 하향 곡선이 아니었던가. 이렇게 급하게 물 밖으로 튀어나가면 뭍 만난 물고기가 되든지, 잠수병 걸린 잠수부가 될 텐데. 미끼 잘못 먹고 죽으러가는 꼴인건 아닐까. 삶에 은은하게 깔려있는 이 감정이 편안함인지, 행복감인지, 불안감인지 가르쳐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이것이 마음에 들어서 당황스럽다. 다들 정말 이렇게 사는 걸까.

밥을 꼬박 챙겨먹는다. 레토르트는 이왕이면 먹지 않으려고 했고, 저녁은 손수 해먹었는데 조금 힘든 날에는 카페에서 샌드위치라도 포장해갔다. 꼭 햇빛을 쬐는 시간을 가졌다. 출퇴근 왕복 한 시간은 걸었다. 기분이 좋은 날에는 바닷가 쪽으로 걸었다. 그러면 기분을 조금 바닥에 붙잡아 내릴 수 있었다. 들뜨면 안 돼. 그럼 고꾸라질 테니까. 난 여전히 물소리가 좋았지만, 여전히 그것이 두려웠다.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물기어린 발소리가 또 울리는 것 같았다. 그럴 때면 모든 던전에서 있었던 일이 영화 필름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그 일들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이 새삼…… 하지만 이 동네에는 엘리베이터가 거의 없었고, 계단을 오르내려야 했지만 그것이 좋았다.

커다란 계획은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지만, 이대로도 좋지 않을까. 언젠가 당연하게도 다시 사람들과 멀어지고, 한번쯤은 더 혼자가 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니까.

[ 해당 개체의 가능성을 확인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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