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

2회차, HBD

B에게 by H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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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 입장하려고 줄을 서고 있는데 웬 아이가 내 소맷귀를 잡아당겼습니다

천사님 어디로 가야 지옥에 입장할 수 있나요

천사님 그곳에 제 개가 있어요

천사도 가이드도 선생님도 아닌 내 이맛전에서는 작은 땀방울이 맺힌다

여기는 덥지도 춥지도 습하지도 건조하지도 않고 구름 위의 세계엔 날씨랄 게 없는데

얘야 본디 개로 태어났다면 그 애는 무조건 천국에 갔을 거란다 설득하는 내 목소리에 자신감이 없고

아니에요 아니에요 고개 젓는 아이는 무척이나 단호해 보인다

왜 너의 개가 지옥에 갔느냐 위엄있게 물어보고 싶다

너는 천국 문 앞의 선인이 되었는데 어째서 너의 개만큼은 지옥에 가 고통받고 있을 것이라고 거만한 생각을 하는 것이냐

꾸짖고 싶다

그러나 애는 아직 너무 어리고

나는 너무 어린 애들이 무섭다

아이는 자꾸만 중얼거린다 우리 개는 뛰는 걸 좋아해요 천국은 도서관처럼 조용하고 평화로워야 한다고 들었는데 우리 개는 그렇게 얌전히 있을 줄을 몰라요 그러니까 분명 지옥에 가서 신나게 뛰어놀고 있을 거예요 거기서 틀어주는 음악은 좀 시끄럽긴 해도 우리 개가 뛰어노는 소리를 충분히 덮어줄 수 있을 거예요 내 개는 나를 자주 물었고 그 벌을 받아야 해서 지옥으로 갔을 거예요 내가 사람에게 상처입힌 횟수보다 그 애가 나를 예쁜 주둥이로 꽉 깨문 게 훨씬 더 적을 텐데도 걔는 개라서 지옥에 간댔어요 그러니까

내 개는 지옥에 갔습니다

오금까지 땀에 절어버린 나는 날개 달린 인간들을 밀치고 전력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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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댓글 2


  • 수집하는 나비

    이해하기 전까지 너무 많은 의문이 동반 되어서 설명이 부족하다고 느껴졌었는데, 마지막 문장에 모든 실마리가 채워진 것 같더니 자물쇠를 다 풀어버린 기분이었네요. ㅋㅋㅋ 아이가 고작 개의 행선지를 묻는데 화자가 땀까지 흘리면서 당황할 이유가 없잖아요. 아이가 아무리 무섭다고 해도 고작 그런 질문에 바람도 해도 없는 곳에서 당황해하는 데에서 먼저 의문이 생겼어요. 이어서 왜 아이에게 위엄 있게, 거만한 생각을 하느냐고 꾸짖고 싶은 걸까 모르겠더라고요. 아이를 대표하는 특성이 순수함과 궁금증인데 이런 질문을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초조해 하는 이유가 뭘까, 역시 아이가 무서워서? 그냥 아이를 싫어하는 어른일까? 싶었어요. 그런데! 화자의 개가 지옥에 간 걸 납득할 수 없어서 그런 거였다니 이해하고 나니까 이 시를 관통하는 모든 묘사와 감정이 술술 느껴지더라고요. 마지막을 매개로 윗 문장들을 이해할 수 있다니 재미있는 구조예요. 아이들이 왜 무서운지에 대한 설명이 추가 되었으면 더 완성도가 높았을 것 같습니다!

  • 검색하는 판다

    이 시를 쓰게 된 이유라고 해야 할까요. 계기가 궁금해요. 차곡차곡 쌓인 이야기가 구조적으로 좋고, 마지막 문장이 강렬하네요. '내가 사람에게 상처입힌 횟수보다 그 애가 나를 예쁜 주둥이로 꽉 깨문 게 훨씬 더 적을 텐데도~'라는 구절이 깊게 와닿아 생각이 많아지게끔 합니다. 좋은 시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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