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꺼기 덩어리
1회차, 멜 님
도망치고 싶어 지금이 아닌 곳으로
매일 오늘을 떠나 살고 싶었다
내 몫의 행성이 필요해 우주 먼지처럼 아주 자그맣고 조그마한 나만의 사탕
차라리 아주 둥글어지고 싶었다
이 대지에 나를 모두 소진하고 싶다
돌아오지 않는 라일락
가지를 꺾으면 그건 나의 일부가 되나
아 다정하고 싶어라
아 혹독하고 싶어라
꾸며내지 않는 삶의 방식 같은 건 정말로 알 수가 없다
포장되고 싶어 겹겹이 딸기를 쌓은 달콤한 케이크처럼
무엇으로 나의 상자를 채울까 시와 소금 초콜릿과 모네 펜과 페르소나
두부나 김치가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건 왜일까
그런 말이 그런 단어가 아름답지 않은 건 어째서일까
이런 건 찢어지게 재미가 없어 그렇지 않니 료
나는 언젠가부터 에도와 오키나와를 동경하고 리을이라는 발음을 좋아하고
이국의 이름에 애틋함을 느낀다
원인은 규명하지 않겠다
그야 그 편이 더 두근거리니까
네 이름을 나에게 줘
그 획을 다리 삼아 먼 우주로 떠날 거야
세계를 꾸미고 싶다는 욕심은 얼마나 이상해?
나의 애인 미지,
우리 영원히 헤어지지 말자
그런 뻔하고 진부한 말은 어디서 배워오니?
그래 나는 네가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천편일률적이지만
그렇기에 오직 너를 사랑해
내 행성엔 비일상의 이름을 붙이리라
그곳에서 왈츠를 추자 언제까지나
우리 몫의 생이 모두 소진 당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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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수집하는 나비
안냐세요 멜입니다! 이 시에 대해 사견을 좀 더 붙이자면, '비 - 비일상'을 주제로 한 시였어요. 전 언제나 새롭고 특이하고 개성 있고 일반적이지 않은 것들을 꿈꾸기 때문에 그와 관련해 떠오르는 모든 생각을 주절주절 쏟아냈답니다. 그랬더니 참…… 지울 수도 없고 그대로 내보이기도 좀 부끄러운 덩어리가 되어 버려서요. 제목은 그런 생각에서 붙였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검색하는 판다
화자의 조잘거림과 둥근 입모양이 그려져요. 궁금한 것이 많은 화자, 기대하고 싶은 것이 많은 화자, 발칙하게 의문하는 화자. 세계에 대한 목마름을 달콤하게 들려줘요. 재미있는 시예요.
HBD 창작자
'차라리 아주 둥글어지고 싶었다', 이 문장은 저도 예전 습작에서 똑같이 썼던 문장이라 정말 깜짝 놀랐답니다. 멜 님과 저는 같은 감성을 공유하는 사람들인 걸지도요…… (힐끗힐끗) 달콤하게 시작된 시는 천천히 나아가면서 두부라거나 김치라거나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를 호출하는데요, 이것들은 어째서 아름답게 들리지 않느냐고 묻는 말에 저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야 사람들은 원래 잘 모르는 것에 더 설레하고 두근거리고 환상을 만들어내는 법이니까요! 료는 누구의 이름일까 고민했는데 사실 저도 이유 없이 류, 라는 이름을 정말로 좋아한답니다(그야 그 편이 더 두근거리잖아요). 처음에 한 번 읽었을 땐 문단마다 다른 이야기를 하고 계신 것 같아서 b와는 어떻게 연결되고 제목과는 어떻게 연결되는 건지 궁금했는데요, 여러 차례 읽다 보니 어떤 마음으로 쓰신 건지 미약하게나마 알 것 같습니다. 제목을 찌꺼기 덩어리라고 지으신 의도 역시 얼추 알겠고요. 제게 원고를 보내 주실 때 다듬지 않은 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이 시는 잘 가꾸고 만지고 곱게 키우는 것보다 있는 그대로 방출해 내는 쪽이 조금 더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다음 시는 어떻게 쓰실지 궁금하네요. 마감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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