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해 본 적 없는 것

1회차, HBD

B에게 by H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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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크림은 항상 막대기와 가까운 곳부터 핥아먹기

누굴 기다릴 땐 벽에 기댄 채로 신코를 바짝 들기

흔들거리기

나무를 볼 땐 그 위에 얹힌 둥지를 찾기

버스를 탈 땐 늘 맨 앞자리에

날이 좋은 초여름엔 색 없는 선크림 꼭 잊지 말기

그 모든 버릇을 나 아직 잊지 않았어

이렇게 화창하게 말해도 비는 그칠 줄 모르고

리본보단 넥타이가 좋고 곰돌이보단 편지가 좋아

뛰어갈 땐 말발굽처럼 로퍼의 굽을 구르며 명랑하게

그러다 한 바퀴 빙그르르 돌아서 나를 마주 보기

웃는 네 얼굴을 보면서, 나, 아름다운 것은 무서운 것과 별반 다르지 않구나 생각했어

커버린 나는 너무 용감해져서 두려울 게 없고

열린 창에 대고 너풀거리는 커튼처럼 이리 오라고 이리 오라고 자꾸만 자꾸만 창밖의 우리를 호출하는데

너무 젖어버린 너는 대답하지 않는다


안녕하세요, HBD입니다. 1회차에 모든 분들이 지각하지 않으시고 원고를 넘겨주셔서 기쁩니다. 천천히 다른 분의 시도 감상하시고 자유롭게 피드백 남겨주세요. 참고로 저는 뉴진스의 디토를 생각하면서 썼답니다. b가 주제였는데 d가 되어버린 것은 확실한 오류지만요……(이건 반쯤 농담이고 내리는 비와 여름을 다루려고 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의 창작을 응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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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 수집하는 나비

    HBD 님은 '나열'에 정말 큰 두각을 드러내는 것 같아요. 하나의 키워드를 잡으면 거기에서 연상되는 (그러나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일상적 이미지들을 놀라울 정도로 잘 포착하고 서술해요.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이미지가 확연히 떠오르고 장면이 상상되고 그 자리에 나 역시 있게 만드는 작품을 감상하는 건 독자로서 가장 즐거운 일이에요. 이 시에서는 그런 행복을 온전히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를 읽을 때 동반되는 감정(설렘과 두근거림과 미소 같은 것들)이 화자의 감정에 동화되어 그런 건지, 단순히 시를 즐겨서 그런 건지 헷갈리네요. ㅋㅋㅋ 내용은 정말 선명해서 해석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네요. 다들 시는 '느끼는 것'이라고 하는데 저는 그냥 습관처럼, 너무 자연스럽게 내용과 상황을 해석하고 떠올리거든요. 좀 무리해서라도 그러려고 하게 되던데 이 시는 시를 '느끼는 것'이 뭔지 정말 잘 알게 해줘요. 근데 정말 '너'의 시점이 궁금해지는 시네요……. 언젠가 볼 수 있길 바랍니다!

  • 검색하는 판다

    그 모든 버릇의 나열에서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세세히 엿볼 수 있네요. 사랑스러운 시선이에요. 어느덧 명랑한 나는 버릇을 벗어난 무엇을 보고 있는지가 궁금해지는데,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던 후문의 발화가 빠르게 정리되어 조금은 아쉬웠어요. 또, "커버린 나는 너무 용감해져서 두려울 게 없고"가 직전의 아름다움 속 무서움을 찾은 나와 어떠한 호응을 맺는지 모호하게 느껴졌고, 다른 변곡점을 주며 '우리'의 형태를 더 엿볼 수 있게 해 줬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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