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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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 드림

노트 by 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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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했던 고통도 느껴지지 않을만큼 정신이 몽롱해진다. 마지막으로 하늘이라도 한번 보고 싶은데 몸이 따라주지를 않는다. 허기사 80년 넘도록 거칠게 쓴데다 지금은 막쓰다 결국 살해당하는 처지니 당연한 일일테다.

화산에 처음 왔을때 그때 하늘이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처음 내 목검을 받았을 때 봤던 그 드높고 푸른 하늘은 기억한다. 또 마지막으로 화산을 떠날 때의 화창했던 하늘을 기억한다.

쓸데없이 나이를 많이 먹다보면 어쩔 수 없이 양보하는데 익숙해진다. 무슨 각주네 관주네하는 자리에서 물러나 태상장로네 불리며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며 더 이상 전면에 나서지 않게 된다. 다 신뢰 위에서 생기는 일이나 좀 더 적극적으로, 직접적으로 챙겨주지 않는다며 태상장로님 참 야속하시다 궁시렁, 웅얼웅얼거리는 놈들 머리도 쥐어박는 시늉을 내면서 말이다. 지켜보는 이들 속은 알지도 못하는 것들이 입만 댓발 튀어나와서는. 그래도 그마저도 사랑스러운 우리 아이들이지.

미안하다. 미안해. 너희가 믿고 기댈 수 있는 존재여야하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하다.

명이가 천마의 목을 벨것이다. 나는 그 계단이 되었고그걸로 만족한다. 손가락 끝으로 검손잡이를 만지며 마지막 숨을 뱉었다.

***

“아씨, 어서 일어나셔요. 아씨, 아씨.”

누군가 소란을 떨며 부르는 소리에 천천히 눈을 떳다. 아마 부상자를 옮겨 치료한 모양이지. 허기사 내가 살아만있으면 무인으로 쓸모가 없어도 되는 입장이긴하지.

“일어났네. 일어났으니 걱정말게.”

그래도 아씨라니, 내 아무리 젊게 생겼다해도 장성한 증손주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 아닌가. 사형제들이 봤으면 놀려댔을거다.

이부자리에서 일어나기 위해 습관대로 다리에 힘을 주다가 눈을 두릅뜨고 이불을 던졌다.

“아, 아씨!”

“다리! 다리가 있어!”

분명 천마의 등에 사질의 칼을 던져 꽂은 뒤 허리가 잘려 죽었을텐데. 발목과 허리를 더듬더듬 만져보다 흉터 하나 없이 뽀얗고 매끄러운 피부에 경악했다. 마치 입문하기 전으로 돌아간거같지 않은가!

“무슨 무서운 꿈이라도 꾸신겁니까?”

다정하게 손을 뻗어 이마와 목을 만져 열을 확인하는 앳된 시비를 멍하니 바라봤다. 방금전까지 전쟁터에 있었던 예민한 무인을 대하는거 치고는 너무 친밀했다. 또 나는 왜 당연하다듯 받아주고 있는가.

“살짝 열이 있으시네요. 오늘 아침 문안 인사는 못드린다고 전하고 올게요.”

청문 사형이 내 문안인사는 저녁에만 받겠다한지가 오십년이 넘었다. 또 사문에 내가 문안인사를 드릴 어른은 사형 외엔 없고 사문 밖으로도 없다. 오히려 오려는 이를 내가 막는 처지였다.

이게 꿈인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죽기전 마지막으로 꾸는 꿈인가?

도사가 지내기엔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넓은 방을 둘러봤다. 귀한 면경도 떡하니 있었다.

다소 순해보이는 인상의 여아가 나를 보고있었다. 거울이 어떤 의미가 있던가 되짚어보느라 습관대로 소매를 문지르다 여아도 날 따라하는걸 보고 멈췄다.

“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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