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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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 드림

노트 by 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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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끌어올려진 숨을 짧게 뱉어냈다.

평생 수련에 매진해 투박한 굳은살로 덮이고, 베이고 아물기를 반복해 흉터가 곳곳에 있던 손이 지금은 너무 희고 부드럽고 말랑했다. 너무 오래 검을 잡아 휘어버린 손가락은 어디가고 곧게 뻗은 얇고 긴 손가락이 내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는걸까. 늘 짧게 바짝 깍아뒀던 손톱도지금은 길게 기른데다 곱게 윤기가 나고 있었다.

노동과는 거리가 한참 먼 사람의 손이다. 그럼 다른 곳은 어떨까. 팔다리와 어깨, 배, 허리등을 만져보다 의자에 털썩 주저 앉았다. 막 입문한 삼대제자 아해에게도 가뿐히 제압 당할 몸뚱이였다.

하도 허망하고 어이가 없으니 오히려 맥이 탁 풀렸다.

“아씨, 많이 피곤하셔요?”

“한것도 없는데 그럴리가 있겠니.”

“편찮으면 그럴 수도 있죠.”

어디서부터 문제인지 짚어볼까. 아득해져 한숨만 푹푹 나오지만 그래도 심각하기로는 천마에 비할 정도는 아니다. 귀찮기로는 같은 침대를 쓰는 이보다는 덜하다.

익숙하게 힘껏 천천히 들어마셔 한계까지 속에 공기를 채웠다가 천천히 모두 뱉어낸다. 적당한 강도, 적당한 속도로 숨을 유지하고 이번에는 내 몸에 집중한다. 발끝, 손끝, 정수리를 모두 거치는 선을 상상한다.

감았던 눈을 다시 뜨고 나는 황당해하는 시비를 보고 미소짓는다. 세상에 단전도 없는 몸뚱아리라니, 내가 황당해하는게 네것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클거다.

“약방 아재는 오늘 점심전에 오겠다고 했어요.”

“그래?”

약하니 의약당이 생각나네. 그 아이들도 고생 참 많이 했지. 그리고 많이 해주겠지. 마교와의 전쟁이 끝나도 남은 부상자들은 사라지지 않으니 말이다. 수습은 어떻게 했을까. 눈 밑이 시꺼매져서는 체면도 잊고 입도 멍하니 벌리고 있던게 생각나 이마를 짚었다.

장로는 물론 일대제자들까지 전부 죽었다. 남은 제자라곤 정수인 매화검법을 시작조차 못해봤을 아이들뿐이다. 화산의 정수는 검이 아닌 검에 담긴 그 정신이니… 아니다. 다 핑계다. 우리는 사문과 세상을 각각 저울 양쪽에 올렸다.

죽어야할 망령이 살아있어 죄스럽구나.

“차라리 누워계시는건 어떻습니까?”

그래도 우리는 옳은 것이 뭔지, 또 뭘 해야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후회하더라도 부끄럽지는 않았다. 그러나 몹시 미안했다.

양민들의 일상은 지켰으나 너희의 일상은 지켜주지 못했구나. 시비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아직 젖살이 남아 둥근 얼굴도 만졌다.

“그래. 그래야겠다. 이부자리 좀 준비해다오.”

“예, 예. 아씨.”

오늘 저 아이에게는 상전이 영문 모를 짓만 잔뜩 한 이상한 하루겠구나.

짙은 피로감에 입을 살짝 가리고 작게 하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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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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