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죽어/소우신

[소우신] 비/일상

포스타입 20220822 발행 / 키스데이 기념

 히요리 소우에게는 친구가 없다. 그러나 그건 츠키미 신에게 친구가 없는 것과는 다른 부류의 것이었다. 스스로 주변인을 밀어내는 것에 가까운, 어떠한 불길한 기류 같은 것이 언제나 히요리 근처를 휘감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것은 신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것이었기에 그러한 아우라 같은 것이 무엇인지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자신만이 그것의 안쪽에 위치한다는 사실은 종종 신에게 이유 없는 우월감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어떨 때에는, 신 자신조차 그에게는 친구가 아닌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너무 진짜 같아서 그에게 물어볼 수조차 없는 의문이 고개를 들 때면, 신은 언젠가 버림받을지도 모른다, 라는 가정을 꺼내들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발만 잘못 내딛어도 떨어질 낭떠러지 끝에 서있는 감각이 뒷목을 적셨다. 결국 신은 침묵을 선택했다.


학교가 끝나면, 둘은 언제나 함께 교문을 나섰다.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학생들 사이로 겨우 발걸음을 떼자면, 어느 날은 히요리가 슬쩍 손을 잡아 끌어 주기도 하는 것이었다. 당황해 고개를 들어 그를 보면, 히요리는 “어서 가야지, 신?” 같은 이야기를 하며, 마치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웃어보일 뿐이다.

교문 앞에서는 왁자지껄하게 모여 있던 아이들이 금세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이리저리 무리를 지어 함께 걸어가는 이들이 종종 보이지만, 십여 분쯤 걷다 보면 이제 그들도 각자의 집으로 떠나며 서로를 배웅하고, 홀로 걷는 사람들의 비중이 늘어간다. 그리고 집에 거의 도착할 때즈음이면, 발맞추어 걷고 있는 것은 둘밖에 남지 않는 것이다. 신은 그것이 무척이나 기껍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이 히요리에게 특별한 사람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수없이 떠올랐다 사라지는 생각들 속에서, 그것만큼은 너무나도 자주 수면 위로 부상하고는 했다. 신은 아직 그것을 믿기에는 유약했기에, 그리고 상처받을 준비가 되지 않았기에 그 생각을 억지로 내리눌렀지만, 그 별 것 아닌 것 같은 생각은 이미 그의 마음에 뿌리깊게 박힌 후였다.


“그래서, 신… 읍?”

그건 반쯤은 충동이었다. 분위기에 휩쓸린 탓일지도 모른다. 그날따라 히요리는 드물게도 자신이 먼저 난로를 틀어주었고, 바깥의 찬 공기는 그의 뺨을 붉게 물들였다. 가볍게 얼었다가 녹아 간질간질한 손끝을 입김으로 녹이고 있으려니 따뜻하게 데운 콘포타쥬를 가져와 건네기까지 했다. 언제나 뜨겁던 체온이 차가운 바람에 식어 저와 비슷해졌고, 유달리도 그가 옆에 있다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컴퓨터가 업데이트되는 중이라며 푸른 화면을 띄우고 있었다. 언제나 맞은편에 앉던 그는 남는 시간을 죽이려 제 옆으로 의자를 끌고왔다. 언제나처럼의 습관대로 그는 고개를 살짝 숙여 저를 쳐다보았다. 닿아오는 몸이 평소보다 가까웠고, 약간 돌아간 고개 탓에 얼굴은 그보다도 가까웠다. 길게 빠진 속눈썹이 느리게 깜빡이며 관찰하는 듯한 시선 사이를 가렸다. 살짝 벌어지는 입 사이로 흰 이가 간간이 모습을 비추었다. 한 뼘이 채 안 되게 떨어진 거리가 이질적이었다. 신이 낼 수 있는 용기는 바로 그 한 뼘 정도였다.

입술이 짧게 맞붙었다 떨어졌다. 히요리는 여상한 얼굴로 신을 내려다보며 눈을 깜박였다. 신의 눈에,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느릿하게 잡혔다. 제가 무슨 행동을 한 것인지 신 자신이 이해하기도 전에, 막연한 공포와 마주한 뇌가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빼내었다. 다시 거리가 벌어졌다. 신에게는 그의 행동을 돌이켜 생각해 볼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먼 거리였다. 그렇지만 히요리에게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간격이었다. 팔이 뻗어졌고, 약간 높은 체온이 뒷머리에 닿았다. 몸이 강제로 끌어당겨짐과 동시에 델 정도로 뜨거운 온기가 그를 덮쳤다.

“흐, 읍, 아…”

아스라히 부서지는 목소리마저 삼켜져 사라졌다. 아까와는 다르게 깊게 맞붙은 입술이 거칠게 부벼졌다. 히요리는 신의 입술을 혀로 쓸어내렸다. 짭짤한 콘포타쥬의 맛이 남아 있었다. 흔적을 지워내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입술을 게걸스럽게 핥아내던 히요리가, 살짝 이를 세워 신의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통증에 신의 눈이 반쯤 떠졌다. 히요리의 청록색 눈동자가 가만히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소름끼치도록 또렷한 시선에 신이 눈을 내리감았다. 암전된 시야에, 입 안을 헤집는 살덩이의 감촉만이 선연했다. 입천장을 긁어내고, 치열을 훑고, 어쩔 줄 몰라 허둥이는 그의 혀를 잡아채 서로 얽는 행동이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입술이 맞붙었다기보다는 손가락으로 입 안을 범해지는 기분이었다. 몸을 뒤로 뺄수록 맞붙어오는 스킨십의 강도가 진해졌다. 도망칠 수는 없고, 도망치는 것 외의 다른 선택지는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 아득해지는 정신에 신은 저도 모르게 손톱을 세워 히요리의 목 주변을 긁어내렸다. 옷으로 가려지지 않은 살갗에 손톱이 박히며 핏물이 배어나왔다.

“읏, 아, ㄱ, 그게,”

언제 달라붙어 있었냐는 듯이 금세 입술이 떨어졌다. 피를 본 것은 히요리였지만 온 몸의 혈액이 빠져나간 듯 희게 질린 것은 오히려 신이었다. 끝단이 살짝 붉게 물든 손톱을 확인한 신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의 심장을 옥죄는 감정이 미안함인지, 공포인지 구분해낼 수가 없었다. 어느 쪽이든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신은 차마 히요리를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닿아오는 시선이 그를 짓눌렀다. 언제나 그렇듯이, 먼저 웃는 것은 히요리의 쪽이었다.

“연고가 있던가..”

자연스럽게 그를 지나치는 히요리를 보면서 신은 직감했다. 아, 이제 이건 없던 일이구나. 히요리는 종종-귀찮은 일, 관련되고 싶지 않은 일, 무시하고 싶은 일 전반에 대해서-너무나도 태연하게,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행동하곤 했었다. 그러면 그건 이제 ‘없던 일’이 되는 것이다. 마치 세이브&로드처럼, 원치 않는 것은 덮어씌우고, 제 좋을 것만 취해서 다시 ‘진행’한다.

그렇다면, 그는? 그 사이에 늘어붙은 츠키미 신의 마음은?

신은, 그가 무슨 생각으로 입을 맞추었는지 알지 못한다. 아니, 애초에 제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조차도… 확답할 수 없다. 그저, 그러고 싶었으니까, …아니, 아니.

벼락같이 해답이 내리꽂혔다.

 그는, 신은, 확인하고 싶었다. 이래도 네가 날 버리지 않을 거야? 우스울 정도로 안타까웠다. 히요리의 목소리가 귓가에 어른거리는 것만 같았다. 아아, 가여운 신…!

히요리는 어디에선가 구급상자를 가져와 책상 앞에 내려놓았다. 그의 옆에 털썩 앉아서, 머리카락을 젖히고 목을 드러내었다.

“신, 연고 바르는 것 좀 도와줄래? 나한테는 안 보이는 위치라서 말이야-.”

“……으, 응… 자, 잠깐만…”

허겁지겁 구급상자를 뒤져 연고를 꺼낸 신은, 저를 등지고 앉아 있는 히요리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머리카락을 위로 올려 잡은 그의 손 너머로, 붉은 자국이 그어진 새하얀 목이 보였다. 떨리는 손으로 연고를 짜내어 상처 위에 덧바르는 동안, 히요리는 고통어린 신음도, 숨소리의 흐트러짐도 없이 그저 정면만을 응시했다. 그 방에는 거울 같은 것은 없었기 때문에, 신은 히요리의 얼굴을 어렴풋이 상상해볼 수밖에 없었다.

그저 무표정일까, 아니면 고통을 참는 것처럼 찡그리고 있을까. 히요리 군이니까, 어쩌면 웃고 있을 수도. 왜인지 마지막 가정에 힘이 실렸다. 상상은 조금 더 구체성을 띄었다.

살짝 내리깔은 눈에, 입가에는 옅은 미소. 언제나 짓는 눈웃음보다는 조금 풀린 것 같은 얼굴일까…. 그래, 종종 그와 단 둘만이 있을 때 지어보이는, 그 표정이다. 그렇지만 신 자신과 대화할 때 지어보이는 표정은 아니다. 그럴 때의 히요리는 조금 더, 재미있다는 것 같은… 흥미롭다는 것처럼 웃곤 하니까. 신이 지금 떠올리는 미소는, 가끔 멍하니 제 할 일을 하다가, 어쩐지 조금 지루해져서, 히요리 군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생각하며 고개를 들었을 때 보는, 그런 미소다. 물론 눈이 마주치면 금세 사라져 버리지만, 그렇기에 더 신비로운 것 같다고, 신은 생각했었다.

“아, …히요리 군, 밴드도 붙일까…?”

“응? 아니, 됐어. 이것으로 충분해.”

손을 놓으면, 조금은 뻗친 뒷머리가 목을 덮는다. 히요리의 흰 손이 녹빛 머리카락 사이를 오간다. 책상에 올려두었던 머리끈을 집어 기른 머리를 느슨하게 내려 묶는다. 꽁지머리에 붉은 손톱자국이 가려져, 평소의 히요리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그는 주위를 잠시 둘러보다가, 조금 덥네, 중얼거리고는 난로를 껐다. 다리 밑으로 닿아오던 훈훈한 열기가 금세 모습을 감추었다. 어쩐지 몸이 갑작스럽게 서늘해진 것만 같아, 담요를 어깨 위로 더 당겨 덮었다. 그는 의자를 느릿하게 끌어 다시 책상 앞으로 옮겼다. 의자에 앉은 그가, 키보드 위로 손을 얹었다. 시선을 돌려 확인하니, 업데이트가 끝난 컴퓨터는 재부팅까지 완료되어, 언제나 보던, 신 자신이 설정한 배경화면을 보이고 있었다. 배경화면 여기저기에 펼쳐진 폴더들이 요란스러웠다. 천천히, 규칙적으로, 손가락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언제나 손톱을 정리하는 그답게, 달칵거리는 소리는 요란하지 않았다. 그도 다시 의자를 제대로 당겨 앉았다. 모니터 화면이 시야를 가려, 히요리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저 그가 입력하지 않은 타인의 소리만이, 히요리의 존재를 알리는 전부였다. 그렇게 모든 것이 평소대로였다.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그가 떠나지 않는다면, 그것만으로 괜찮을 것만 같았다….

카테고리
#2차창작
페어
#BL
커플링
#소우신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