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건,

야부사메 남매

2022.07.08. 포스타입 게시글 백업본입니다.

드럼 의자에 앉는다. 드럼 스틱을 쥔다. 스틱을 올바르게 쥐는 법 같은 건 당연한 기초였다. 발을 페달 위에 얹는다. 완벽한 자세였다. 몇 초의 심호흡 후, 손목을 움직여 스틱을 움직인다.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스틱이 바닥을 구른다. 모든 자세가 흐트러진 채 고개를 떨군다. 아리스가 감옥으로 가고 한 달이 지난 날이다.

"레코, 두 명을 모았단다!"

레코가 대답도 하지 않고 아리스를 돌아보았다. 꽤 신난 듯 흔치 않게 볼이 달아오른 모습이었으나, 레코가 그것에 느끼는 감정은 딱히 없었다.

"이제 드럼만 찾으면 밴드 구색을 갖출 수 있게 되었어. 소속사에서 정해준 기간도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문제없을 거란다."

아무런 반응 없는 레코의 태도에도 아리스는 밝은 기색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레코는 그게 괜스레 기분 나빴다. 아리스의 일도 아니다. 이건 오로지 레코의 문제였다. 가족으로 묶을 수 있다고 한들 아리스와 레코는 달랐다. 지금 저렇게 뛰어다니는 건 아리스라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아니었다. 아리스라는 주체가, 그 삶을 살아가야 할 사람의 태도가 아니었다.

"너는 다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거야, 레코."

레코가 떨어진 스틱을 주웠다.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잡았다. 페달 위에 얹은 발을 움직였다. 툭, 가볍고 쉬운 움직임이다. 그저 발을 내리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결국 기간 안에 드럼을 구하지 못하고 아리스가 드럼을 치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알려주었던 동작이다. 드럼을 치는 척하는 행세라도 그럴듯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레코는 아리스 옆에서 자세를 봐주었다. 스틱을 쥐는 법을 알려주고, 드럼을 연주하는 자세를 알려주고, 자세가 그럴듯하게 나왔을 때 아리스가 페달을 밟았다. 쿵. 무거운 소리가 울렸다. 레코는 밟은 페달을 떼지 못했다. 아리스는 계속 페달을 밟고 있는 상태로 레코를 돌아보며 웃었다. 아리스라는 자는 이 길이 어울리는 사람이 아닌데도 즐거워 보였다. 레코는 아직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레코는 아리스의 웃음을 외면하듯이 말했다. 페달을 박자에 맞추어서 계속 떼었다 밟아봐. 그러자 아리스는 다시 집중해서 박자를 맞추기 시작했다. 레코가 기억하기론 아리스는 터무니없는 박자로 페달을 밟았다. 그러나 더욱 터무니없는 사람은 자신이었다. 레코는 아직도 페달을 밟고 있었다. 드디어 울려퍼진 드럼의 울림은 한 번이 전부였다. 모든 소리가 멀어져간다. 아리스는 엉망진창인 박자로 페달을 밟아놓고선 기쁘게 말했다. 비록 완벽한 형태는 아니지만, 네가 노래할 수 있는 곳이 만들어져 다행이구나. 레코가 발목을 움직여 페달을 떼었다 밟는다. 쿵. 쿵. 쿵. 쿵. 쿵. 그것은 멜로디조차 아니었다. 오히려 완벽하지 않기에 더 다행인 걸지도 모르지. 챙! 레코가 스틱을 쥔 손목을 휘둘러 심벌을 쳤다. 완벽한 자세로 앉아 엉망진창으로 드럼을 친다. 음악이 아니라 소음이었다. 기억 속 아리스의 말을 소음으로 묻어버리고 싶었다. 격한 움직임에 스틱을 잡은 손의 힘이 풀릴 뻔할 때 레코가 연주를 멈췄다. 그 모든 걸 묻어버리면 아리스를 원망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노래할 곳을 앗아간 건 너잖아……."

소음의 잔재가 레코의 목소리를 묻었다. 아리스가 사람을 죽였다. 그것을 들었을 때 느낀 건 놀라움이나 당혹 같은 부류의 감정이 아니었다. 떠오른 건 단 하나였다. 걔가? 그럴 리가. 무언가가 잘못된 게 분명했다. 아리스는 사람을 죽일만한 사람이 아니다. 레코가 아는 아리스는 삶조차도 레코를 위해 쓰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의 생을 망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로지 레코를 위해 밴드 멤버를 모으고,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음악의 길로 들어오고, 충분히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을 레코에게 할애한 사람이다. 그러나 레코가 마주한 현실은 거짓이 아니었다. 제 모든 생을 긁어모아 레코에게 줄 것 같았던 자가 최악의 방법으로 곁을 떠났다. 아리스가 모아왔던 멤버들은 아리스가 소실됨에 따라 각자의 길로 걸어 나갔다. 레코는 다시금 노래할 곳을 잃어버리고 홀로 남았다. 아리스까지 사라지고 진정 외톨이가 되고 나서야 레코는 과거를 돌아보았다.

나는 그냥 지쳤었어. 그냥 힘들어서 그랬어. 나를 챙기는 데 급급해서 주변을 돌아볼 수가 없었어. 그래서 너를 마주하지 않은 거였어. 그치만, 너도 네 삶을 안 돌아봤잖아. 너를 챙기지 않고 나를 챙겼잖아. 나는 그냥 네가 네 삶을 살며 나아가도 상관없었는데. 아니다. 모순이었다. 레코는 안심하기도 했던 것이다. 내가 주변을 돌아보지 않더라도 나를 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안심했다. 계속해서 내 편으로 남아 있을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족했다. 그저 레코에게 아리스는 너무 당연한 사람이었다. 너무 당연해서 소중하다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아리스를 찾아가 이 모든 걸 말하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들끓는 원망을 어찌할 도리가 없다. 다른 것도 아니고 살인이다. 지금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건 레코만이 아니었다. 레코는 부모님의 얼굴을 볼 때면 마음이 가라앉았다. 원망의 화살이 향할 방향은 아리스밖에 없었다.

결국 나는 네가 떠나기 전과 달라지는 게 없다. 네 존재와 행동에 안심하면서도 내게 참견하고 나를 위해주는 너를 불편해했듯, 네가 그리우면서도 원망스럽다. 만나 대화하고 싶으면서 너를 마주하면 증오의 말이 먼저 나올 듯해 만나고 싶지 않았다. 레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럼 스틱을 정리한다. 엉망진창이더라도 오늘은 칠 수 있었구나. 다섯 시간 동안 앉아만 있던 게 일상이었다. 스틱조차도 일주일 전부터야 쥘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시간이 흐르다 보면, 이런 식으로 내가 괜찮아지다 보면. 부모님이 안정을 되찾고, 너의 도움 없이도 내가 노래할 곳을 내가 만들어낼 수 있게 되고, 내가 주변을 둘러볼 수 있을 정도의 여유를 갖게 되면. 네가 네 모든 죄를 뉘우치고 돌아오게 된다면. 그리 먼 시간이 흘러 우리가 다시금 마주한다면.

"우리가 다시, 남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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