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가을을 닮은 것 같아.

죠+사라

2022.07.26. 죠 생일 특전 포스타입 백업본입니다.

낙엽이 발에 차인다. 쌀쌀한 기운에 사라가 다리를 재촉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날이 더웠기에 겉옷은 안 챙겨도 될 줄 알았는데. 학교로 향하는 걸음이 무겁다. 답지 않은 일이었다. 사라는 성실하다고 분류할 수 있는 학생이었고, 계절의 호불호를 분류한다면 가을은 좋아하는 측에 속했으니까. 이 변화를 변덕이나 싫증이라 표현할 순 없었다. 정의를 내린다면 회의에 가까울까. 아직 고등학생밖에 되지 않았음은 물론 생에 커다란 굴곡도 없는 사라에게 회의감이란 단어는 뜬금없을 수도 있지만, 이런 때도 있는 법이다. 이유 없이 우울한 날과 비슷했다. 갈빛으로 물든 낙엽이 바람에 날아가고 사라와 발을 맞추어 걷는 사람이 나타났다. 옆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사라가 고개를 틀었다.

"답지 않게 왜 그런 얼굴이야? 사라."

사라의 눈동자에 활기가 들어찬다. 아직 고등학생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친구의 존재만으로도 변화가 일어난다. 익숙한 목소리가 제게 말을 걸어오는 동시에 사라는 입꼬리를 올렸다.

"네가 오는 걸 눈치라도 챘나 보지."

"켁, 독설의 강도가 쎈데."

단풍잎이 떨어진다. 그 아래에 죠가 안색을 흐렸다. 가벼이 왔다가는 모든 행위가 장난임을 서로가 알고 있었다. 그 증거를 보이듯 죠가 흐렸던 안색을 고치고 웃으며 사라를 바라보았다. 어색함 없이 흘러가는 그들의 일상이었다. 하교는 종종 같이했는데 등교를 같이하는 건 처음이네. 어제 tv 봤어? 오고 가는 평화로운 대화에 사라의 발걸음이 점차 가벼워졌다. 어느덧 죠는 사라의 일상을 채우는 사람 중 한 명이 되었다. 사라가 죠의 머리핀을 보고 있을 때, 은행잎이 떨어진다. 노란색으로 가득 찬 일상을 바라보곤 사라는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너는 가을을 닮은 것 같아."

둘 대화의 문맥에 어울리지도 않고, 갑작스럽기만 한 문장이었다. 사라는 저도 당황해서 입을 여닫았다. 그러나 죠는 사라를 가만 바라보다 말했다.

"어떤 면이?"

다정한 물음에 사라가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갑자기 들어찬 생각이다. 낙엽, 단풍, 은행. 갈색, 붉은색, 노란색……. 다채로운 색이 바람을 타고 날아간다. 그 중심에서 죠가 웃었다. 언제 학교에 도착했을까, 죠는 정문 앞에 서서 사라의 대답을 기다렸다.

"가을은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니까…?"

그게 뭐야. 의미를 모르겠는데. 사라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영문 모를 말이었는데도 죠는 타박하지 않고 그리 말하며 넘겼다. 차라리 자뻑이라도 했으면 편했을 텐데. 사라의 생각을 모를 죠가 정문을 지나 학교에 들어갔다. 계단을 오르고 교실 앞에 선다. 교실 문을 여는 그 순간까지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사라는 죠를 붙잡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교실에 들어가선 안 된다. 영문도 모를 생각에 가득 찬 사라가 죠에게 손을 뻗는 것과 동시에 문이 열린 교실에서 폭죽 소리가 났다. 죠, 생일 축하해!! 반 친구들의 소리가 교실에 크게 울린다. 수많은 친구에게 축하를 받은 죠는 기뻐하거나, 감동하는 일 없이 사라를 바라보았다. 창문 너머 갈색으로 물든 나뭇잎이 흩날린다.

"사라."

죠의 부름에 사라는 대답하지 못했다.

"내 생일은 여름이야."

풍경이 무너진다. 그들은 다시 쌀쌀한 가을의 길거리에 서 있었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어느 순간 너도 눈치챘잖아."

그냥 길거리가 아니었다. 사라는 깨닫는다. 여기는 밤에 스토커인 줄 알고 도망쳤던, 카이와 마주쳤던 골목이었다. 죠는 놀라울 정도로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죽었어, 사라. 여기는 네 꿈이야."

사라는 이 순간조차도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그저 죠를 응시했다. 눈물을 흘리지도, 머리를 감싸 쥐며 주저앉지도 않았다. 죠가 웃었다. 두 눈을 접어 웃으며 입꼬리를 올린다.

"역시. 나아가기로 마음을 먹은 사라는 내가 아는 사라 그대로구나."

낙엽이, 단풍이, 은행이 떨어진다. 꿈이 아니라면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그 중심에 선 죠는 사라를 기다렸다. 사라가 입을 열었다.

"너도, 내가 아는 그대로라서 안심이야."

사라가 마주한 죠는 죽었을 때의 기억이 없는 AI였다. 그 덕분에 이겨내고 미래를 붙잡고자 했으나, 은연중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는 전혀 다른 타인에게 용서를 갈구한 것이지 않을까. 그걸 핑계로 삼고 면죄부를 갖는 건 아닐까. 그래서 사라는 죽음을 겪은 죠와 마주하길 바랐다. 이조차도 사라의 꿈이니 사라가 그려낸 죠였으나, 너를 마주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족했다.

"자, 사라. 나아가. 미래로."

나는 강아지처럼 따라갈 테니까! 사라가 웃었다. 마지막은 우는 모습보단 웃는 얼굴을 보여주고 싶었어. 저번에도, 그전에도 나는 계속 울었으니까. 다시금 풍경이 무너진다.

사라는 눈을 떴다. 두 번째 메인게임이 끝난 다음 날 아침이었다. 일어나 창문을 바라본다. 비치는 건 자신의 모습밖에 없었다. 이걸 보고 나서야 실감한다. 너를 보는 건 정말 마지막이었구나. 생일 축하해. 그 말을 입 안에서 굴렸다. 그러니까, 내 생일은 여름이래도. 네가 그렇게 말할 것만 같아서 웃었다. 그래도 너를 좀 더 보고 싶었어.

여름을 덜어주는 쌀쌀함을 가졌지만, 그 안에 다채로운 색을 지니고선 떠나버리는. 너는 가을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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