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구하나셋

1회차, 나후 님

B에게 by H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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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와 만나야 했다

나의 머리가 늘어져

강에 닿았을 때

몸통을 숙이면

네가 흘린 눈물로 온 세상이,

퍼렇게 공명할 때

나의 신발은 여전히 거기에 있어서

너를 담으려 애쓴다

앞날개 부러지고

몸을 못 가눠도 좋았으니

이미 내가 키운 슬픔은

나 섰던 곳에 가득이다

내 슬픔이 멸종하면

나도 그때는 정말로 없겠지

욕설 추모 장례 천도 제사와 책임 공방……

그런다고 너를 만나지 못한 내가

너를 만나는 것도 아닌데

어른들은 속되게 말해 천치다

어제 카메라를 든 아저씨가

내가 죽었다고 소문을 내러 왔을 때

이거 너한테 가나요

물을 수도 없었으니

그래도 만난다면 너에게는 다정한 면만 보여 주고 싶어서

사진은 너에게 비밀로 해줄 수 있는지

신발 앞코를 바람에 뒤척였다

그러세요 그럼,

건조한 셔터음

궁금한 게 있어

너, 나 죽고 내 신발을 주워 갔어?

나는 단지 너를 만나고 싶었어

눈이 없어 이제 너를 못 보지만

감각할 수 없겠지만

내려 줘

나를 쓸고 가 줘

차라리 확증해 줘

내가 너 때문에 죽었다고

이제는 네가 강가에서 울어도

흔들릴 무엇도 없다고


전주천에서 잘려나간 버드나무의 이야기인데 버드나무가 비를 맞으면 제방에 위험이 생긴다는 이유로 무자비하게 썰려나갔다고 들어 속상한 마음에 쓰게 되었답니다 시가 처음이고 잘…… 사실 이렇게 써도 되나? 싶고 이래저래 고민이 많았는데 그저 비를 무한정 기다리게 되는 버드나무의 밑동을 생각하게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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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댓글 3


  • 수집하는 나비

    사견을 보고 놀랐습니다. 저는 구체적인 자연물을 가지고는 스스로의 감성을 만족스럽게 다룰 수가 없거든요. 정말 뻔하고 재미 없고 도덕적인 문장들만 쏟아지는지라 이렇게 쓰실 수 있다는 게 부럽게 느껴졌어요. '나의 신발은 여전히 거기에 있어서 / 너를 담으려 애쓴다' 는 행이 정말 좋아요. 사실 너무 자연스럽게 인간과 인간 간의 관계로 해석했기 때문에 제 마음에 쉽게 꽂힌 것 같습니다. 사람과의 관계를 표현한 개성 있는 언어는 읽을 때마다 즐겁거든요. 저는 사실 시를 읽을 때 환상성, 비현실성을 남들보다 중요시 하는데, 책임 공방의 연을 보고 현실이 가깝게 다가오며 순간적으로 열이 받았던 것 같아요. 시의 고칠 점을 이야기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저의 사족이에요. ㅋㅋㅋ 정말 수많은 사회 문제들을 회피하고 책임지지 않으려는 상황들을 떠올리며 그런 제도와 대표적 인물들에 화가 나더라고요. 신발이라는 매개가 좋아요. (라고 쓰자마자 검색하는 판다 님이 같은 말을 쓰신 게 눈에 들어와 깜짝 놀랐습니다.) 자유로움과 새로운 길의 상징인데 그런 것들이 모두 사라지는 걸 잘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앞날개 부러지고 는 뒷 연과 훨씬 어울리는 것 같은데 특별히 앞에 사용하신 이유가 있으실까요? 또 조사가 갑자기 빠진 부분은 매끄럽게 읽다가 어라?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의도하신 거라면 정말 좋은 선택이지만, 이 부분은 남발하는 경우 흐름이 끊기는 원인이 될 수도 있을지 모른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 검색하는 판다

    신발이라는 매개의 사용이 좋았어요. 내가 너와 만나고자 하는 자세를 단호하게 말해 주고 있는 듯해서요. "이거 너한테 가나요"와 "그러세요 그럼,"의 짤막한 목소리들, 덤덤한데 여운이 깊어요. 화자의 눈이 몹시 슬퍼하고 있을지, 혹은 단념하고 있을지 상상하게 만드는 힘이 있어요. 내가 나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나의 부재로 만들어지는 우리의 부재를 제일의 안타까움으로 삼고 있는 것 같네요. 나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던 너의, 너희들의 눈. 강의 손. 나의 자리는 우리의 자리였으므로, 나의 부재는 나만의 부재가 아니다. 슬픔의 기원은 이것일까, 가늠해 봅니다. 끝으로 이야기의 전체적인 흐름이 자연스럽게 읽혀 좋았어요.

  • HBD 창작자

    처음 읽었을 땐 당연히 화자가 인간인 줄 알았는데요(나쁜 버릇이지요), 달아주신 코멘트 보면서 아, 버드나무를 소재로 사용하셨구나 생각했습니다. 황폐하게 잘려나간 버드나무 이야기라면 저도 알고 있는 이슈네요. 그 점을 알고 보니 더 깊게 와닿는 시예요. 저는 작가님들의 사견이나 글을 구상하게 된 계기 같은 것들을 무척 좋아하는데 이번에 이렇게 첨언해 주셔서 한층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만난다면 너에게는 다정한 면만 보여 주고' 싶다는 나무의 마음이 갸륵합니다. 죽은 것들은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서 사라졌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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