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ㅡ 당연하지 않은 내일
혼돈 속으로 사그라든 미래
탁탁탁탁탁탁!
‘츳…! 벌써 거리가 벌어졌어. 대체 어떤 녀석이지?’
그리티는 의문의 기척을 따라잡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예상가는 인물이 몇 있었는데,그게 맞다면
이 자리에서 반드시 잡아야만 한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 보니 드넓게 펼쳐진
평야가 드러났다.
그리티는 순간 아차 싶었다.
‘유인한 건가? 내가 암살이 특기라는걸 알고
엄폐물이 없는 평야로…! 역시 내 예상이 맞았던-‘
그러던 그때,그리티의 뺨을 날카로운 비수가
스치고 지나갔다.
순식간이었다.
쓰릉 -!
“으읏,머리 좀 썼는데? 그리고 제법 운이 좋아.
내가 아니라 다른 애들을 만났으면
넌 지금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텐데 말야.“
“…”
"나보다 비겁하게 싸우는 놈은 처음 봐서 놀랍네!
너같은건 어차피 모습을 드러내라고 해도
안 나올게 뻔하고…뭐- 어떻게,비겁하게
싸워볼까? 난 엄폐물 따위 없어도
너같은건 단숨에 죽여버릴 ㅅ“
“운이 좋은건 내가 아니라 너 같은데.
그리고 네녀석은 입으로 싸우나 보지?
실력에 어지간히도 자신이 없나봐.“
‘시야가 암전됐어. 분명 저녀석의 기운을 보면
죄악이 틀림없는데,죄악 일원 중에 이런 능력을
가진 녀석도 있던가?‘
눈이라도 보여야 어떻게 싸워나갈지
파악이 가능한데,시야가 차단되어버려
전혀 그럴 수가 없었다.
어이없는 실책을 내버리고 만 것이다.
‘일단 뒤를 밟는다는 거에 급급해져서
유인 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못했어.
제길…! 이딴 실수나 해버리다니.‘
“자…널 어떻게 요리해줄까. 납치해서
인질로 써? 아,그게 좋겠다.“
그렇게 정체를 알 수 없는 괴한이
그리티에게 다가가려던 찰나-!
파스스슷—!!
“읏…! 어떤 자식이…!!!”
“정화하라…!”
연분홍빛 오라가 괴한을 덮쳤고,
오라로 빚어진 동물 형상들이 괴한의 사지를
물고 늘어졌다.
그리티는 순간 간담이 서늘해졌다.
“세인티…?”
“그런 허술한 방법 따위로 정체 숨길 생각하지마!
당신 루시엘 맞지?“
“츳…!”
“두 분께서 업보는 언젠가 돌아온다고 하셨어.
너흰 그 대가가 두렵지도 않은거야?!“
“야,세인티! 뒤로 떨어져!”
루시엘의 전투력에 대해선 밝혀진게 없다.
그나마 루시아를 통해 ‘예측할 수 없는 행보와
들쑥날쑥한 기분파‘라는 것 밖에는.
그런 사람을 공격 능력이 전무함에 가까운 세인티가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루시엘도 그걸 아는 모양이었지만,
변수를 감내할 깡은 없었던 것인지
철수를 결심했다.
저 둘 정도야 진심을 발휘하면 어떻게든
잡을 수 있다고 해도,만약 그 두 사람이 나타난다면
정말 답이 없어지니까.
“아쉽네,귀찮은 놈을 미리 제거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그렇게 불길한 말을 남긴 후,
루시엘은 어둠으로 화해 사라졌다.
그리티와 세인티가 추격해보려고 했을땐
이미 그녀는 도주한 후였다.
긴장이 풀린 세인티는 그대로 제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하아아…”
“ㄴ,너 미쳤어?! 내가 거기서 가만히 기다리라고
했잖아! 만약 저녀석이 작정하고 덤볐으면 너 -“
“ㄱ…그래도 오빠가 위험해지는건 싫어!
오빠야말로 루시엘이 진심으로 덤볐으면
어쩌려고 그랬어…? 오빠가 마냥 약하지 않다는건
알지만…“
“나랑 넌 다르잖아! 나는 교전이 벌어져도
싸울 수나 있지! 그런데 너는? 이렇게 감정적으로
굴다가 진짜 큰일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이렇게 무대포로 구는데!!“
“…”
“아- ㅆ,미치겠네. 너 하나 지키려고 마음 졸일
내 생각은 안하는 거야?“
그리티도 어지간히 놀란 마음에,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여 동생을 타박하고 말았다.
적어도 목소리 높이는 일은 없었어야 했는데.
세인티가 그것에 트라우마가 있는걸
누구보다 잘 아는 그리티였으니까,
더더욱 그랬으면 안 되는 거였는데.
세인티는 몸을 잔뜩 움츠리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서럽고 속상한 마음에 자리를 뜰 수도 있었지만,
되려 겁을 먹은 건지 세인티는 도망치지 않았다.
“미…미,안…미안해…어어…끄흣…”
“어…”
“난 오빠가…걱,걱정되서…그랬…어…
잘못…되면…그러다 영영…못…끄흐으…보게…
되면……무서워…싫…시…싫어…“
“미안,내가 말이 헛나왔어. 네 잘못 아니니까
울지 마라- 어?“
“미안…내가 도움이 못 되는 동생이라서…”
“…아냐,널 못 믿은 내 잘못이지. 아무튼 울지 마.
좋은 날에 울면 재수없다고 누가 그랬거든?
여기서 더 재수없으면 그것도 그것대로
슬프지 않겠냐?“
“쓰흡…응,안 울게…”
그렇게 세인티를 한참 어르고 달래던 그리티는,
겨우 겨우 세인티를 진정 시키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날씨가 유독 더 추웠던 탓인지,
남매의 볼은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이러다 하나뿐인 여동생이 감기에라도 걸려
고생할까 걱정되었던 그리티는,
자신의 장갑을 꺼내 세인티에게 껴주며 말했다.
“자,이거라도 껴. 사람 고치는 의사가 아프면
쓰겠냐?“
“그럼 오빠는…? 오빠라고 추위를 안 느끼는건
아니잖아. 치유사라고 안 아픈게 아닌 것처럼.“
“나야 뭐,괜찮아.”
“그래도…이러면 내 마음이 편치 않아.
한 손은 주머니에 넣으면 되니까-“
그리티는 생각했다.
이렇게 속 깊고 다정한 동생을 어쩌면 좋을까.
장갑 한 쪽을 빼서 그리티의 손에 끼워준 세인티.
그리고는 오빠의 손을 잡으며 옅게 미소지었다.
“오빠야 편할지 모르지만,오빠만 장갑 안 끼고
있는걸 보는 내 마음은 어떨지 생각해봤어?
오빠가 감기 걸려서 동생한테 치료 받으러
오는걸 보는 것도 꽤 웃길거 같으니까,
이 장갑은 하나씩 같이 끼는걸로 하자.“
“하아,너같은 애가 왜 나한테 왔는지 모르겠다.
전혀 닮은 구석이 없는거 같은데!“
“닮은 구석이 왜 없어? 똑같은 위치에 있는 점,
똑같은 색의 눈까지. 닮은 곳이 이렇게나 많은데.“
“…쯧,잔소리 하고는.”
한 편으로는 다행이다-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런 아이가 내 동생이라서.
그 다정함에 녹아들 때면 어린 소년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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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 수도,대형 뮤지컬 극장 입구]
“방금 그 극 말이야,이름이 뭐야?
다음에 또 보고싶을 정도로 재밌었는데.“
“한때 전설로 이름을 날렸던 작가 ‘세레나 이퀄’의
<별하늘을 누빈 순간>이야. 당시 유행이었던
판타지적인 느낌을 잘 녹여내서 인기가 많았지.“
“다른 라인업으로 또 보러 오는건 어때?
다른 배우들이 연기하는 배역들은 어떤 느낌일까
너무 궁금하단 말이야~“
“의외네. 네 취향 중에 뮤지컬이 있었을 줄은…”
“하핫~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뮤지컬 좀
보러 다닐걸 그랬나봐~“
“…그렇게까지 마음에 들면 내가 다음 공연 일정을
알아볼게.“
그렇게 공연장을 나와 근처 운치 있는 카페로
향하는 길,로즈에게 한 통의 메세지가 도착했다.
통신기가 진동을 내며 울리자,
로즈는 무심하게 통신기의 전원을 켰다.
그리고 메세지의 내용을 확인하자,
어느정도 예상했던 내용이 담겨있었다.
안이 바짝 다가와 메세지의 내용을 물었고,
로즈는 고개를 살짝 내빼며 답했다.
“왜? 무슨 내용인데?”
“그리티에게서 문자가 왔어. 자기네들 고향인데
그곳에 루시엘이 나타났었다네. 멀쩡히
메세지를 보낸걸 보면 다행히 큰 대치는 없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뭐? 루시엘?”
“졸개들이 아니라 죄악 측에서 직접 움직이는건
조금 의외긴 했지만,충분히 예상 가능한
범위였으니… 돌아가면 해야할 일이 명확해졌어.“
“음? 뭔가 알아낸 거야? 난 전혀 모르겠는데…”
“그동안 확신이 없어서 못 움직이고 있던 정보가
몇개 있었거든. 그리티 걔,처음으로 내 마음에 드는
행동을 했네. 인성이 글러먹긴 했어도 정보를
물어다주는 실력은 은근히 봐줄만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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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 휘이이
“워어,엄청 높아요…! 여기 올라오니까
천계가 한 눈에 보여서 좋은데요~?“
“그치? 이 시계탑이 그래서 유명한 거야.
특히나 밤에 올라오면 경치가 아주 끝내주거든!
꼭 밤하늘에 뜬 별을 바라보는 느낌이랄까?
정말 아름답지?“
“네,주군…!”
크리스마스 여정의 마지막,그 끝에서
루시아는 천계에서 가장 높다는 시계탑을 택했다.
시계탑 위에서 천계를 바라보고 있자니,
꼭 천계의 밤하늘을 발 아래 두고 있는 듯한
느낌까지 들게 하였다.
“그래서,오늘 여정은 어땠어? 하루종일
나랑 놀러다니면서 어땠는지 소감이 들어보고 싶네?“
“진짜 재밌었어요. 주군은 어떻게 이리
재밌는걸 다 알고 계시는 거에요? 바빠서
많이 놀러다니시지도 못할거 같은데.“
“후후~ 내가 천계를 돌봐온 세월만 몇만인데.
온 천계의 진기명기함과 재미는 내가
다-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나저나 재밌었다니
다행이네! 우리 다음에도 또 같이 놀러갈까?“
“네! 좋아요!”
그때,크리스마스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불꽃놀이가 칠흑같은 밤하늘을 밝혀주었다.
“우리 소원빌까?”
“음? 네!”
루시아와 엘리샤는 불꽃에 각자의 소원을 담아
드넓은 하늘에 올려보냈다.
고개를 들면 언제든 자신의 소원을 마주볼 수 있도록.
“주군,주군께서는 어떤 소원을 비셨나요?”
“음- 난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게 해달라고 빌었어.
행복한게 제일 쉬운 일 같으면서도 어렵더라고.
엘리는 어떤 소원을 빌었니?“
“핫,비-밀이에요!”
“치사해~ 나는 내 소원 말해줬는데…"!”
“나중에 알게 되실 거에요! 그때가서 꼭
말해드릴게요,주군~“
“흥,꼭 말해주기야?”
“넵!”
당연하다는 듯이 내일을 약속해버렸다.
그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누구보다 오래 살아온 그녀가 가장 잘 알 텐데.
‘…’
하지만 그럼에도 내일을 바라게 된다면,
이것조차 욕심이라고 불리우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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