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ㅡ 로즈 카리타스,그녀의 선택
피로 물든 신성한 땅과,신을 불사르는 기개
그로부터 또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1월 1일. 천계.
[천계 중앙 대광장 무대]
- 또각,또각
“음~이 연설무대는 언제 올라와도 정말 긴장이
되어서 미치겠다니까…“
오늘은 1월 1일,언제나 그렇듯 루시아의
신년 연설무대가 있는 뜻 깊은 날이었다.
모두가 저마다 신년을 맞이하는 각오를
마음 속에 품고 대광장에 모여들었고,
연설무대 앞은 곧 사람들로 북적여 발을
디딜 틈도 없게 되었다.
그런 의미 있는 날이라서 그런지,
루시아도 평소보단 훨씬 단아하게 차려입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것처럼
옷이 반짝반짝 빛나보였다.
몸을 부드럽게 휘감은 새쉬를 매만지던 루시아를
보는 수행원의 얼굴에 미소가 번져들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서도,매번 신년 연설을
깔끔하게 해내시잖아요. 정말 대단하세요.
저는 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건 상상도
못하겠거니와…생각만으로도 긴장이 되서,휴우.“
“앗,하하-! 그렇다고 내가 긴장을 안하는건
아니랍니다? 다들 나를 무슨 초인으로 아는거 같아..“
“하지만 초인만큼 대단한 능력을 지니고 계신건
이미 다들 알고 계시는 사실 아닌가요? 하하!“
“으잇,정말…!”
그때,어디선가 귀신같이 튀어나온(?) 로즈가
루시아에게 최고 지도자로서의 위엄을
보여줄 것을 요구했다.
“루시아 님,5분 뒤 입장하실 겁니다.
수행원이라고 업무태만에 정신을 못차리는데,
루시아 님께서라도 정신을 붙들고 계셔야지요.
이러다 온 백성이 최고 지도자를 만만히 볼까
염려가 됩니다.“
“로즈도 참~ 고작 만담 하나 나눈다고
기강이 해이해지겠어? 이럴 때만큼은
조금만 풀어주라~“
“…”
“로즈도 새해 복 많이 받아~ 늘 네게 기적이
함께 하기를 바랄게.“
“…나의 주군께 무한한 영광과 ‘축복‘을.”
무서운 눈빛으로 수행원을 흘겨본 로즈는,
그대로 자리를 떠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그렇게 5분 뒤,루시아의 입장 시간이 다가왔다.
잠시 숨을 고른 후 무대 위로 향하자,
수많은 백성의 눈들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이 순간은 몇번을 맞아도 정말 떨렸지만,
이 순간만이 루시아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고
있었다.
소리 증폭 장치를 톡톡 두드려본 루시아는,
목을 가다듬고 자신이 백성에게 해주고픈
진심을 한 자씩 꾹꾹 눌러담아 전해주었다.
“어김없이 새로운 한 해가 밝았습니다,여러분.
지난 해 여러분들의 삶 속에는 어떠한 일들이
가득했을까요?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꼭 들어보고
싶네요! 물론 저와 주선의 귀는 언제든 열려있으니,
언제든 민원센터로 여러분들의 목소리를 들려주세요.
또 새삼스럽지만,당연하지 않은 내일을
맞이했다는게 기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합니다.
또한 앞으로 좋은 일만 일어난다는 보장도 없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우중충하게 축 늘어져 있으라는
법도 없습니다. 힘들면 잠시 앉았다 쉬어가되,
영영 멈춰서서 걸음을 내딛기를 망설이면 안됩니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아요. 저는 언젠가
과거를 되돌아보게 되는 순간이 되었을 때,
부디 그 과거 속에 후회가 남아있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께서도 그런 순간이 왔을 때,웃으며
과거를 추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 하나 뿐인
소원도 그렇습니다. 내가 조금 힘들더라도,내
주변인들이 행복해지기를 바라요.“
기분좋게 불어오는 바람,기분좋게 내리쬐는 햇살,
이 모든 것은 그저 루시아를 돋보이게 해주는
후광일 뿐이었다.
황금빛 두 눈 속에 미래를 향한 결의를 가득 담은
루시아는,백성들을 바라보며 환하게 미소지었다.
“여러분,넘어져도 괜찮습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법을 기억하고 있다면
그걸로 된 거에요. 그리고 여러분의 뒤엔 항상
저희 주선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시는 모든 길은
저희 주선이 비추어 드릴테니,부디 두려워 말고
찬란한 미래를 향해 나아가주시길 바랍니다.
저희는 늘 여러분들의 편입니다. 기억해주세요.
루시아의 주선은,절대 여러분들을 저버리지
않습니다. 긴 연설 들어주셔서 감사드리고,
다시 한 번 여러분들에게 평안한 미래가 함께하길
진심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이상,주선의 총괄리더이자
여러분들의 영원한 지지자인 루시아 파티엔티아가
인사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루시아의 마음을 울리는 진정성 있는 연설에,
천계의 백성들은 저마다 환호성을 질러댔다.
긴 연설에 어쩌면 지루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지만,
그것은 중요치 않다.
천계의 최고 지도자가 백성들을 믿고 지지한다,
그것만이 중요할 뿐이다.
연설을 마치고 무대 아래로 내려온 루시아는
저도 모르게 숨을 푹 내쉬며 머리를 쓸어올렸다.
그녀가 내려오자마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로즈가 나타나 루시아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수고하셨습니다. 아마 모두가 감명 깊은 연설을
기억해줄 거에요.“
“우와,로즈의 칭찬이라니…나 이거 기뻐해도
되는 거겠지?“
“…”
“그럼 우리~ 둘만의 오붓한 대화시간을 가져볼까?”
“네,그럼 이쪽으로…”
둘만의 오붓한 대화시간.
좋은 날에 루시아가 웃으며 제안한 시간이니,
분명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주선 본부,최고급 휴게실]
“아직까지 큰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 인파가 몰린 틈을 노릴 겁니다."
“그래,그렇겠지. 더군다나 올해는 작년보다
사람이 더 몰렸어. 그들이 이런 좋은 기회를
절대 놓칠 리가 없지. 적어도 그들이 노리는게
우리의 ‘절망’이라면 말이야.“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그런 일을 사전에
방지하는 것이 제 역할 아니겠습니까. 다 손을
써두었으니 그 손길이 저희에게 미치는 일 따위
없을 겁니다.“
“역시 로즈- 로즈가 내 사람이라 정말 다행이야.
너같은 애들이 적으로 돌아서면 제일 위험한거
알,알지…?“
"무슨 말씀이신지…“
- 스르륵…
“잘 알아들었습니다.”
“너무 신경쓰진 말구~ 내가 널 얼마나 믿는 지는
네가 제일 잘 알지?“
“네.”
“그럼 특별한 움직임이 보이면 내게 바로 보고헤줘.
나는 서류 밀린 것들 처리하러 먼저 올라가볼게.“
“네,조심히 가세요.”
루시아가 스케줄로 인해 먼저 자리를 뜨고,
시간을 확인한 로즈는 조용히 어디론가 향했다.
그 루시아조차 예상하지 못한 일을 벌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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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레퀴엠,제 1 빛의 신전]
“꺄아아아악!!!”
“계속 진격해.”
천계의 가장 순수한 신성이 모이는 이곳,
성지 레퀴엠.
그곳에 혼란이 내리닥쳤다.
불길한 옷차림을 한 병사들이 성지를
들쑤시고 다녔고,사령관으로 보이는 자가
최후방에서 상황을 관망하며 오만하게
미소짓고 있었다.
“푸후후훗…별것도 아닌 놈들이 감히…
이참에 전부 짓밟아서 그것들의 기를
완전히 죽여놓겠어. 허를 찌를…겸,후후.“
어둠의 병사들이 성지를 뒤집어 놓는 것을 보며,
사령관으로 추정되는 누군가는 그들에게
힘을 더 주입시켰다.
그는 바로 창조신,벨로보그였다.
“왜 굳이 본인이 직접 나서? 같잖은 축복 조금
내려주면 알아서 다 해주는 졸개들이 있는데.“
이참에 신의 권능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것이며,
초자연적인 재해인지 제대로 각인시켜주겠다.
벨로보그는 그리 다짐했다.
물론 -
파스스슷 -!
“크흣…!”
압도적인 권능조차,천부적인 재능 앞에서
무너질 수 밖에 없었던 모양이지만.
제대로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또 다음 공격으로
속공이 들어왔지만,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벨로보그는 감히 신인 자신을 급습한
간 큰 놈이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진분홍빛 소름돋게 살기 어린 오오라에,
신의 군대를 아무렇지 않게 처리할 수 있는 실력자.
카가가각…!
"카리타스,네녀석…!“
“불쾌하네.”
증오하는 이에게 이름이 불린 것에 대한 불쾌감일까,
아니면 ‘암살’이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대한
불쾌감을 표한 것일까.
더 생각할 틈도 없이 날아드는 로즈의 매서운 공격은,
그 전능하고 위대하다던 벨로보그조차
이를 악 물고 싸우게 만들 정도의 기개였다.
‘이 X,이렇게까지 진심일 줄은…!!!’
벨로보그는 자신이 간과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말았다.
로즈의 무력에 대해서 밝혀진게 있었더라면,
적어도 이렇게 경거망동하게 굴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고작 평범한 천족 주제에,
신과 합을 맞출 거라고는 누가 예상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
자신을 막아서는,정확히는 신을 지키려는
신의 병사들을 신경질적으로 쳐낸 로즈는,
이제 힘에 부치는듯 합을 맞출 때마다
몸을 심하게 떨어댔다.
벨로보그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권능을 개방해 로즈를 끝장내려고 했다.
“큿…”
“넌 이 자리에서 끝장을 내주마…!!!”
어쨌거나 주선의 수뇌부를 무너뜨리는게
정말 중요했는데,제 발로 찾아올 줄은 정말 몰랐어!
이제 ㄲ
- 피식
찌르르르릇!
“끄흑…!!!”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로즈를 끝장내기 위해서 권능을 발현했는데,
그와 동시에 갑자기 신성력 회로가
타들어가는게 느껴진다!
이대로 계속 두면 모든게 로즈의 손아귀에
넘어갈 것 같은 극도의 불안감.
벨로보그는 최대한 감으로 로즈의 공격들을
피한 뒤,텔레포트를 위한 공간을 찢어냈다.
그리고 벨로보그가 그 공간을 넘자마자,
아슬아슬하게 로즈의 바람 칼날이 닿으며
공간이 닫혔다.
쉬이이..소리를 내며 일렁이던 공간을
로즈는 가만히 바라보며 분석하기 시작했다.
“음,이정도면 꽤 큰 타격이 갔을텐데,
그럼에도 도망칠 기운은 남아있었다는 건가.
괜히 신이 된 것은 아닌가 보군. 아니면
내 결정타가 부족했나. 그나저나 그딴 볼품없는
연기에 속다니,신도 눈은 별거 없네.“
‘뭐,이정도 타격이라면 당분간 제 힘을 내기는
어려울 테니…어느정도 목적 달성은 한 걸로 치자고.‘
방금 신을 상대한 사람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태연하게 손을 탁- 탁 털어낸 로즈는,
성지를 어지럽히고 있는 잔당들을 처리하러
곧장 몸을 돌렸다.
대체 로즈는 어떻게 벨로보그의 동선을 추적해
그녀에게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던 것일까?
때는 일주일 전,크리스마스 당일날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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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선 본부 내 로즈의 개인 작업실]
- 타악
‘정리해보자. 오늘 그리티 남매의 고향에
죄악의 일원이 직접 나타났다. 그리고 정보부로부터
최근 몇 가지의 보고를 받았다. 수상한 차림을 한
소규모 부대가 북동쪽 지방으로 향하는 듯
보였지만,갑자기 어느 순간 행적이 끊겨
그 후로는 동태를 알아볼 수 없었다… 이 보고를
받은 것은 6일 전,북동쪽 지방에는 성지가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수도에서 성지까지는
도보로 빠르면 10일,늦어도 13일 정도가 걸린다.
그들은 성지를 노리고 있나? 죄악을 출두시킨건
시선을 돌리기 위함이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아.‘
그때 로즈는 실패하면 큰 피해를 볼 전략을 실행하려
작업실 바로 옆에 있는 전략상황통제실로 향했다.
그리고 홀로그램 병력배치도를 소환해
슥 훑어본 뒤,배치를 수정하여 해당 작전 담당자인
안과 엘리샤에게 전송했다.
당연하지만 파일을 전송하자마자
두 사람으로부터 긴급통신이 걸려왔다.
“잠깐,로즈! 상황통제실 습격 받은거 아니지?”
“진심이세요? 왜 광장의 병력 배치를 줄이고,
성지 레퀴엠의…“
“그걸 내가 설명할 의무는 없지. 그리고 이 사실은
루시아께 철저히 비밀로 하도록 해.
계획이 성공하는 그 순간까지 절대 모르시도록
해야한다. 이유는 묻지 마. 통제실이 습격 받은건
더더욱 아니니 이상한 생각은 더더욱 하지 말고.“
“아무리 그래도 이건…”
“휴우…다 뜻이 있으신 거겠지요.
부사령관께서 괜히 작전 수정을 하실 리도 없고,
이상한 작전을 짜실 이유는 더더욱 없으니까.
전 믿고 따르렵니다~…“
“내가 말한거 잊지 말고,그럼 수고하도록.”
- 투욱
‘적을 속이려면 아군부터 속여야 한다.
이번에 낚을 적은 월척일듯 싶으니,
미안하지만 너희는 함구해줘야겠어.‘
그렇게 해서 신년 연설 때 광장을 지킬 병력
일부가 성지 레퀴엠으로 이동 되었고,
그 덕에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다.
오히려 역으로 적에게 빅엿(?)을 먹이고,
그 적이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모종의 방법을 써서 제한해놓았으니…
결과적으로는,주선의…아니,
로즈의 승리였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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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쾅!
“미친거야…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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