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ㅡ 눈을 가린 정의

Fallen Justice,"The only way to get it back."

- 쾅!!

“미친거야,정말…!!!”

“…”

“ㅈ,죄송합니다…주군.”

“아니,아니야. 화난게 아니고 놀라서 그래.

그 얌전하던 애가 이럴 줄은…“

집무실에서 일을 보던 루시아는,

안과 엘리샤로부터 어이없는 보고를 전해들었다.

로즈가 성지 레퀴엠에 출현한 창조신과

격돌했다.

그리고 신에게 큰 타격을 입히긴 했지만,

결국 놓치고 도주를 허용했다.

하지만 로즈의 부상 정도는 0에 가깝다…

고 말하지만,사실 다친 곳이 없다나.

“겁도 없어 진짜…나도 사리는게 그녀석인데,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신이랑 담판을 벌여?

그것도 독단적으로…!“

“…”

드물게 루시아가 흥분한 모습을 보이자,

평소의 그 망나니(?)같던 안과 엘리샤도

완전히 쫄아서 부동자세로 서있기만 했다.

게다가 만약 로즈의 출정을 묵인한 죗값을

묻는다면,두 사람도 할 말이 없기도 하고.

화난게 아니라고는 했지만,지금 루시아는

누가 봐도 화났는데 정말 간신히 화를 삭히는

사람의 모습이긴 했다.

“아아…씨…머리야…그래서,언제 복귀한대.”

“상황만 정리하고 바로 올 거라고…했습니다.

그렇게만 말해둬서 정확한 복귀시간은 모르겠지만..“

“후………….너희한테 성질 내봐야 뭐하겠니,

미안해. 추태를 보인거 같아서. 알겠으니

두 사람 다 본래 자리로 복귀하고.“

“ㄴ,넵…!”

“네,대장…”

안과 엘리샤가 자리를 뜨고,루시아는 간신히

떨리는 손을 붙잡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로즈가 워낙 사고방식이 특이한 애라는 것도,

불세출의 천재라는 것도 다 알아. 인정해.

하지만 이건…상대가 신이었어. 작은 하나라도

섣불리 움직였다간 목숨을 장담하기 힘들었을 거야.

보아하니 로즈가 본인 능력만 믿고 겁도 없이

덤벼든거 같은데…얘를 어쩌면 좋아 진짜로……“

로즈의 능력을 신뢰하지 못하는게 아니었다.

단지…동료로서,친구로서,동반자로서,

무엇보다도 로즈를 자식처럼 생각하는 입장에서

도저히 진정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좋은 결과를 들고 왔으니 그걸로 됐지만,

만약…만약 로즈가 잘못 되기라도 했다면…

루시아는 도저히 그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루시아는 오늘 자신이 입만 산 지도자라고

뼈 저리게 느끼고 말았다.

백성들의 앞에서는 주저하지 말라면서,

과거에 발 묶이는게 가장 미련한 짓이라고

떵떵거렸으면서…

정작 본인은 가장 거기에 매어있는 꼴이라니.

“하아아…진정하자,루시아. 루시아 파티엔티아,

너 이런 애 아니잖아. 진정해,진정하자고…“

그렇게 심란함으로 가득했던 2시간이 지나고,

루시아의 집무실 문이 열렸다.

끼이이익…

“…복귀했습니다.”

“그래,여기 앉아. 우리 할 얘기가 많지?”

“…”

로즈가 맞은 편에 앉았지만,루시아는

연신 마른 입술만 적시며 말을 잇지 못했다.

루시아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해갔지만,

로즈의 표정엔 일말의 변화도 없었다.

마치 잘못한게 없는 사람처럼.

“나한테 할 말 있지 않아?”

“무슨 일로 부르신 건진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게 크게 잘못 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로즈.”

“창조신이 노리던 것은 레퀴엠의 보호 성물인

<나락의 끝자락>이었습니다. 그걸 강탈 당했다면

분명 추후 대치에도 어려움이 있었을 거고요.

이번은 인명피해는 있었을 지언정,성물을

빼앗기는 일은 없었습니다. 더 큰 재앙을

막은 것 뿐인데 이상할게 있나요?“

“로즈 카리타스,내가 지금 그걸 말하는게 아니잖아.

내가 바라는건 그걸 왜 네가,독단적으로,혼자서

하냐는 거지. 더군다나 너는…네 그 무력을

끝까지 숨기고 싶어 했잖아.“

“언제까지고 숨길 생각은 없었습니다.

어쨌거나 숨긴 이유도 그들의 허를 찌르기

위함이었으니,본분은 다 한 거죠. 저는 왜

루시아께서 제게 화나신 건지 모르겠습니다.

병력을 마음대로 옮긴 일은 아닐거고…“

“네가 큰일날 뻔 했잖아! 이번엔 운이 좋았던 거야.

녀석이 작정하고 덤볐으면 네게도 지장이 갔을거야.

네 소식 듣고 내가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아니? 응?“

“…”

“천계를 위해 일해주는건 고마워. 그런데 그전에

더 중요한게 있잖아. 우선 네 안위를 걱정해야지…

세계를 지켜낸다고 해도,결국 그 세계에서 함께할

이가 남아있지 않다면 다 무슨 소용이야.“

루시아는 주먹을 꾹 쥐었다. 늘 머금고 있던

태양같은 미소도 이미 사라진 지 오래인 것을 보니,

로즈의 독단적 행보에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었다.

“네 진심은 알다가도 모르겠어. 로즈 카리타스,

네가 주선에 합류하기로 마음먹은 이유가

도대체 뭘까?“

“…”

로즈는 천천히 자신이 주선에 합류한 이유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세상을 구한다는 뜻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아니었고,그렇다고 다른 이유를 생각하자니

마땅히 떠오르는게 없었다.

‘내가 왜 주선에 들어오게 되었더라.’

그러고 보면 주선 소속인들 중 로즈만

뚜렷한 목표랄게 없는듯 했다.

그리티는 은인인 루시아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안은 루시아에 대한 존경심과 과거의 은혜,

엘리샤는 마계서부터 이어져 온 깊은 인연으로,

세인티는 오빠인 그리티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루시아는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

모두가 자신만의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앞으로 달려나가는데,로즈는…

‘역시,모르겠어.’

“글쎄요,잘 모르겠습니다. 제 사사로운 지식욕

때문일까요. 아니면 역시…■■■ 님에 대한

숭배?“

“…”

“당분간은 정보부 본부에서 지내며

혼자만의 시간을 갖겠습니다. 그리 오래

자리를 비우는 일은 없을겁니다.“

“…네 마음대로 해.”

“네,그럼 이만.”

- 터억!

로즈가 최소한의 예를 갖추고

루시아의 집무실을 떠났다.

일말의 후회나 미련도 없이.

“하아,로즈야…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하지만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은

다 이런거 아니었어? 아니야,역시 내가 지나친가…

조만간 상담을 받아야 겠어. 나도 나이를 먹으니

점점 이상해지는 모양이네…후…“

무엇이든 영원한 것은 없다.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일 지라도.

오래되면 언젠가 균열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무조건적인 영원은…

⚜️ 7대 주선 대리인 명단 ⚜️

대 집정관 / 루시아 파티엔티아 🤍

• 로즈 카리타스 -> 이탈 (단기간:?일) 🖤

• 그리티 후밀리타스 🤍

• 안 후마니타스 🤍

• 엘리샤 인두스트리아 🤍

• 세인티 카스티타스 🤍

없다.

- 또각,또각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난 주선에 득이 되는

행동을 했을 뿐이고,내 목숨도 지켰지 않나?

위험부담마저 끌어안을 각오가 없다면

어째서 이 일을 시작하신건지 알 수가 없군.‘

그래,루시아의 말대로 상대는 신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상대해야할 적도 신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그때의 수고를 덜고자 지금 미리

그 신의 위력을 현저히 낮춘 것 뿐인데,

오히려 좋은거 아닌가?

“…”

로즈는 정보부로 가기 전,자신의 작업실에서

책 몇권을 챙겨들었다.

사실상 근신을 자처한 거나 마찬가지니,

그동안은 주선 본부에 오지 못할 거니까.

‘꼭 주선에 잔류해야만 신을 처치할 수 있나?’

그렇게 점점 극단적인 생각에 잠겨가던 로즈였다.

주선의 그 누구보다 루시아와 오랫동안 함께

지내왔지만,누구와도 의견차로 말다툼을

많이 해왔다.

언젠가는 터질 거라고 생각했지만,이런 식일줄은…

‘얼른 가기나 하자. 여기에 더 있어서

좋을 것도 없을텐데.‘

하지만 로즈의 걸음은 얼마 가지 못해

누군가에 의해 가로막혀 멈춰졌다.

“…”

로즈의 걸음을 막아선 것은 완전히

의외의 인물이었다.

그녀의 반려자인 이안도 아니고,

동갑내기 친구인 그리티도 아니고,

그렇다고 루시아는 더더욱 아닌.

“로즈 님,소식은 들었어요. 어디 불편하신 곳은요?

다치신 곳은 없으세요?“

“없어. 설마 날 걱정하는건가?”

“그야 당연하죠. 어찌 걱정이 되지 않겠어요.

우리는 동료잖아요. 다치신 곳이 없다니

다행이긴 한데…정말 이대로 떠나시려구요?“

“응,그래야지. 아,안 바쁘면 이것 좀 이안한테

전해줄래.“

“쪽지…? 아,네…그런데 직접 전해주시지

않는 건가요? 오라버니께선 로즈 님께서 주시는

쪽지를 더 좋아하실거 같은데요…“

세인티의 말에도 불구하고,로즈는 냉정하게

뒤로 돌아서며 그녀의 물음에 답해주었다.

“그리 대단한 내용은 아니라서. 그냥 한 소설의

글귀가 적힌 쪽지일 뿐이야. 궁금하면 너도

봐도 되고. 난 그런거 신경 안 쓰니까.“

“…?”

“더 할 말 없으면 난 이만 가볼게. 여기에

더 머물러서 복잡한 기억을 이끌어내고 싶진 않네.“

“ㅇ,아…네…! 조심히 들어가세…아니,

조만간 또 뵈요…“

“(끄덕)”

로즈와의 만남은 짧고도 얇았다.

그리고 정말 태연한 그녀의 태도였다.

‘그래도 근신 전에 사랑하는 사람 얼굴

한 번쯤 직접 볼 수는 있는거 아닌가…?

뭐 로즈 님 나름의 사정이 있으시니

이러시는 거겠지만…나는 도저히…‘

에이,더 깊게 파고들지 말자.

일단 해야할 일을 해야지!

- 스윽

“로즈가 내게 쪽지를??? 아니,그냥 쪽지만

전해달라하고 그냥 갔다고…?“

“네…오라버니께 직접 전해주시지 않는 거냐고

여쭈니,그리 대단한 내용은 아니라 그냥 가신다고

하더라고요.“

“뭐가 그리 급해서…휴우,세인티도 바쁠텐데

쪽지 같은거 전해준다고 고생했네.“

“아뇨…!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맡은 바에 대한

책임은 다 해야죠. 쪽지부터 얼른 확인을…“

“ㅇ,아아 어! 그러자.”

안의 허락 아래,안과 세인티는 꼭 붙어서

쪽지의 내용을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중문의 그리 짧지도,길지도 않은 내용.

감상평을 남겨보자면…

“로즈 님께서 괜히 이 쪽지를 주셨을거 같지는

않고…대체 무슨 뜻일까요? 이 쪽지…“

“그러게. 로즈의 죽마고우이자 반려자인 나도

로즈의 깊-은 뜻은 이해할 수가 없어서 말이야.“

- 스르륵…

정의는 스스로의 눈을 가려버렸다.

그리고 스스로의 신념에 의구심을 품었다.

정의의 정의는 누가 정의한 것이며,

누가 이것으로 세상의 옳고 그름을 나누었을까.

아마 영영 알 수 없겠지.

그렇다면 -

나 스스로가 세상의 정의가 되겠다,

그리하여 내가 세상의 정의를 바로잡겠다.

이것이 내가 선택한 길이다.

- ‘나’는 죽음을 택했다. - <작자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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