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ㅡ 내가 지키고 싶은건,오로지 너 뿐이야.

잔잔한 [물]결과,세차게 부는 [바람]

그렇게 한참동안 술을 마시다,

결국 뻗어버린 안을 데리고 나온 로즈이다.

ㅡ 레스토랑 근처 산책길 ㅡ

터벅터벅

“바보야? 넌 술도 잘 못하면서 왜 그걸 다 받아줘?

차라리 마실거면 논알콜을 먹던지,하…“

“우우웅…로즈야아…인생이 너무 쓰다아…”

“헛소리 그만해. 그리고 나한테 과도하게

기대지 마. 안 그래도 체격 큰 놈이 들러붙으니

내가 감당할 수가 있어야지.“

“히이…”

“잠깐 앉았다 가자. 저기 벤치 있네.”

“웅.”

그렇게 커다란 강아지(?) 한 마리를

업고 있다는 심정으로 겨우 안을 부축해서

벤치에 앉힌 로즈는,앞머리를 쓸어올리며

그의 옆에 앉아 숨을 돌렸다.

“속은,괜찮아?”

“쪼오금…아퍼…”

“손 이리 줘봐.”

“응!”

이내 안이 건넨 손에 살포시 손을 겹쳐올린

로즈는,그에게 속이 조금 편해지는 치유의 마법을

걸어주었다.

과거에 사제로서 치유의 신성력을 길러두었던게

이런 식으로 쓰일 줄은 전혀 몰랐지만 말이다.

“지금은 좀 어때.”

“완-전 괜찮아졌어. 역시 내 여보가 최고야~”

“술 취하니 사람이 더 능글맞아졌군…”

“누가 취했다구 그래? 나 안 추ㅡㅢ해써!”

“그냥 집에 먼저 돌아갈까? 너 상태가 좀…”

“괜찮다니까아~ 그냥 너랑 여기에 있구우시퍼어-”

“…하아.”

그런데 가만 보자니,안의 옷차림이

다소 가벼워 추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로즈는 자신이 허리에 두르고 있던

담요를 풀어,안에게 망토처럼 둘러주었다.

“옷 좀 따뜻하게 입고 나오지 그랬어.

그러다 감기 걸리면 너만 고생해.“

“후후후,미안해. 화내지,마아…로즈으…”

“화 내는거 아니야. 앞으론 그러지 말라고.”

“우웅. 그런데 이러고 있으니까 꼭

우리 어릴 때 생각난다~…“

“…어릴 때?”

“왜~ 너가 아직 공녀이던 시절 있잖아.

앗,그때 얘기하면…별로 안좋아하려나.“

“아니,난 신경 안써. 네가 뭘 말하는지 알거 같아.”

본래 마음이 통하는 부부는 말하지 않아도 아는 법.

안은 로즈를 바라보며 특유의 강아지같은 미소를

지으며 로즈를 꼬옥 끌어안았다.

그 커다란 품이 어찌나 따뜻했는지,

로즈도 얌전히 안겨있기를 택했다.

꼬옥…

때는 아직 로즈가 아마릴리스 공작가의 양녀로서

착실히 살아가던 중,어느 연회장이었다.

‘아,지겨워…귀족들이란 어쩜 저리 하나같이

가식적이고 성격도 꼴보기가 싫지?

내가 이루겠단 목표만 없었어도,당장

이곳을 뛰쳐나갔을 거다…‘

로즈 아마릴리스 공녀는 귀족들이 득실거리는

이 연회장이 무척이나 싫었다.

그래서 적당히 둘러댄 후 테라스로 나왔지만,

그럼에도 하하호호 거리는 소리가 새어나와

귀가 아플 지경이다.

그 답답한 마음에 애꿎은 와인잔만

툭- 툭,손가락으로 건드리던 그녀다.

‘어차피 얼마 안남았어. 조금만 참으면 -’

로즈가 홀로 테라스에서 짜증을 삭히던 그때,

테라스의 문이 덜컥 열렸다.

그리고 그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은 -

“아-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네가 맞았구나,로즈!“

“넌-…”

“핫,날 벌써 까먹은 건 아니지? 로즈야,

나 이러면 되게 서운하다? 우리 그래도 나름

우정맹세를 한 사이인데 말이야.“

“아니,까먹진 않았어. 이안 슈그니 글로리아,맞지.

네가 이 연회장에 온 걸 보니…가문의 권한은

온전히 되찾았나봐?“

“응! 네가 예-전에 해준 조언 덕분에.”

다름아닌 로즈를 찾아온 것은 이안이었고,

이안은 로즈의 차림새에 화들짝 놀라

자신의 재킷을 벗어서 걸쳐주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이렇게 입으면

감기 걸리기 쉽단 말이야. 일단 이거라도 걸쳐!“

“아,고마워.”

“후훗,천만에. 그나저나 너- 못본 사이에

많이 예뻐졌다? 아가씨 티가 물씬 나네~“

“잡소리 하지 마.”

“흐음,난 진심인데. 언제쯤이면 네게 내

진실된 마음이 닿을 수 있을까~ 흑.“

“생각해보면 넌 그때도 상당히 능글맞았어.

누구야? 공작 쪽인가? 아니면,부인 쪽?“

“둘다~? 너도 알겠지만 우리 어머니 아버지께선

금술이 워-낙 좋으시기로 유명했거든.“

“그래. 알아.”

그래서…아,아니다.

이 이야기는…나중에 해도 되겠지.

“이제 그만 돌아가자. 너 이러다 진짜 감기 걸려.”

“웅~ 내 마누라가 까라면 까야지~!”

“…”

그렇게 아직 헤롱헤롱한 안을 부축해서

레스토랑으로 돌아가는 길.

로즈는 그저 스쳐지나가는 소리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진심이 아니길.

나에게 한 소리가 아니길.

“로즈야아~”

“왜.”

“내가 너 진-짜 진짜 사랑하는거…알지?

내가 목숨 바쳐 지킬 사람은 말이야…

너 뿐이라고,로즈.“

“…목숨까진 바치지 마. 난 그럴 가치가 없어.”

“누가 그래~? 나한테 네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데.

응-당 내가 품어서 지켜줘야지! 힛,사랑하니까.“

“…”

“손…잡아줘엉~…”

술을 먹어서 그런가,오늘따라 유난히

안이 더 치대는거 같았다.

반면에 술을 많이 마셨어도 전혀 취하지 않은

로즈였지만,그런 안의 애교를 전부 받아주었다.

평소대로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도…

꼬옥…-

“오늘만이야,이안.”

“싫어…다음에 또 잡아죠옹.”

“네가 무슨 애야? 못 살아…”

“헷…”

“내가 너니까 봐준다,너니까…”

“헤헤,고마워.”

“…어.”

저렇게 바보같이 웃을 수 있는 애니까,

언제까지고 내가 곁에서 지켜줘야겠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저 애 옆에 있을 때면…나도 평범한 여자애가

된 것만 같은 느낌이 드니까.

나도 그때만큼은 순수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드니까.

그렇게 다음날 아침,바보(?)의 침실

“뭐어~? 난 전혀 기억에 없는데?”

“하긴,취한 놈이 기억할 리가 없지.

됐어,해장할 거야? 가기 전에 시종한테

맡겨놓고 가게.“

“아,아니…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안은 일어나자마자 자신의 책상에 앉아있던

로즈에게 충격적인 말을 듣고 말았다.

글쎄,본인이 취했을 때 이상한 말을

엄청나게 해댔단다.

“허어어엉,로즈 네가 이상하다고 할 정도면

대체 무슨 말을 한 거야…흐으으,미안해.

내가 한 말 다 취소할래ㅠㅠㅠ“

“취소는 하지 마. 어차피 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어. 그래서 말의 무게가 무거운 거야.“

“히익,너무해.”

“진짠데.”

안이 잠에서 완전히 깬 것을 확인한 로즈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안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그래도 제법 귀여웠어. 얼른 준비하고 출근해.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연락하고,알겠어?“

“어?어어…로즈..알겠어.”

“또 보자.”

- 타악

“어라…?”

내가 잘못 봤나?

방금 로즈,웃고 있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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