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경계면의 밤낮
은청
하얀 것과 푸른 것 사이를 뒹굴다보면 결국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인지 알지 못하게 된다. 그 불확실함, 이도저도 아닌 애매함 속에서 정의되지 않는 상태를 익숙하게 여기면, 무엇 하나 확실히 할 수 없다. 그럴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자신을 포함해서 누구도 깨트리지 않는 평화는 철저한 무시에서 비롯된다. 세상에 대한 무지, 나에 대한 무관심. 그리고 눈 앞의 상대에 대한…….
나의 심장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골방에서 저 너머 한가지 색뿐인 곳을 바라본다. 푸른색, 혹은 하얀.
밤에서 아침으로
꿈 속의 나는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걸어다니곤 한다. 하얗지도 않고, 특정한 색을 띄고 있지도 않으며 상상력 없는 육면체의 방도 아니다. 차라리 무지개빛 찬란한 환상적인 공간이라면 신기하기라도 할 텐데, 말로써 구성할 수 있는 풍경이랄 것이 존재하지 않는 그곳은 특징 없이 공간으로만 유의미하다. 내가 존재한다는 인식만 가능한 곳. 어쩌면 그조차 어려운 곳. 일종의 시선으로만 기능하는 내가 있다. 그곳의 어떠한 사건도 현실로 가져오지 못하기에 그 시간은 무의미하고, 동시에 유익하다. 이렇게 익숙하면서도 모든 것과 단절될 수 있는 공간은 이것뿐이다.
눈을 뜨면 나는 꿈에서 있었던 일을 온전히 기억하지 못하고, 희미한 색감과 심상으로만 기억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무 것도 모르는 채로 다시 일상을 살아간다.
어젯밤에는 어떤 일이 있었지.
중요한 꿈이었나.
평소처럼 설명하자면, 푸르고 하얀, 약간의 온기가 만져지는 꿈이었다. 남은 것은 단지 그것 뿐이다.
다만 평소와 다른 점은 눈 앞에 다른 이의 얼굴이 있다는 것. 잠에서 깨어났을 때 서러운 아침공기에 목이 칼칼해지지 않았다는 것. 넓게만 느껴졌던 침구가 이번에는 아주 비좁아서, 등 닿는 곳과 손 닿는 곳, 몸 닿는 곳마다 내 존재가 확실해진다. 서늘한 공기에 동화되지 않고, 이불 속에 든 타인이 내는 열에 맞추어 따뜻해진다. 이때문에 간밤의 꿈이 따스했던 걸까.
모르는 척 품을 더 파고들면 언제 일어난 건지, 깼느냐 묻는 목소리가 들린다. 한 숨 기다렸다가 대답한다. 방금 전에요. 나는 어쩔 수 없이 일어나 굳은 몸을 풀고 이부자리를 정리한다. 커튼을 열면 방 안으로 아침 특유의 부드러운 햇살이 푸르게 들어온다. 온통 한빛이다. 나에게 딱 어울리는 집이었는데, 그에게는 어색해보였다. 집에 파란 물건이 너무 많은 게 아니냐며 꼭 바다속 같다 말하던 그는, 나와 달리 정오의 노란 햇빛이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걸맞지 않다는 것을 알아도 그 자리에 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건, 아무래도 사랑같은 귀한 마음과는 거리가 멀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내 곁에 알맞게 들어오는 사람이 존재하긴 할까. 그렇다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그 누구와도 함께하지 못하거나, 평생 사랑 한 번 못 할 처지인 것이다.
새도 울지 않는 아침에는 동네를 하릴없이 돌아다녔다. 잠은 다시 오지 않았고, 일터에 나가기 전까지 집에 틀어박혀있는 것은 꼭 죽은 사람 같았다. 어떤 날은 딱딱한 바닥에 누워 천장의 무늬를 속으로 따라 그리며 시간을 보냈는데, 찰나가 영원같다는 말을 만든 사람도 아마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뱉어내지 않았을까 싶었다.
혼자서는 그렇게 지냈는데, 피곤한 아침에 옆에 있는 이까지 끌고 산보를 나갈 수는 없어서 차 한 잔 끓여두고 식탁에 앉아 책을 읽을까 한다. 아주 어릴 적에는 아버지가 읽으시던 신문이나 어머니가 고른 시집이 집에 가득했는데, 이제는 읽을 거리를 찾으려면 내가 직접 고르고 사야 했다. 작고 비루한 책장에 듬성듬성 놓인 책 중 가장 얇은 것을 꺼낸다. 달칵, 포트의 물이 다 끓었음을 알리는 소리가 들린다. 하얀 머그컵에 녹차 티백을 우리고, 자리로 돌아오면 이미 내 자리는 없다.
이거 우리 조카한테 읽어줬던 동화책인데, 아씨도 이런 걸 읽는가?
가끔요. 그런데 아이들이 읽기에는 글이 좀 많은데. 이제 몇 살이라고 했죠?
초등학교 들어간 애도 있네.
적당하네요.
우리 애는 이것보다 더 긴 것도 읽을 수 있어. 지금 내 조카를 무시하나?
잔 하나는 그의 앞에 두고, 나는 건너편에 앉는다. 전 아홉 시 쯤에 나갈 거예요, 통보한다. 상대는 시계를 보더니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느냐 묻는다. 어딘가에 늦는 것이 싫어서 탁상 시계를 일부러 삼 분 일찍 맞추었는데, 그걸 감안하고도 이른 시각이었다.
아직 일곱 시밖에 안 됐는데. 혹시 잠자리가 불편했나.
아니요. 오히려 푹 잤습니다. 원래 일찍 일어나는 편이에요. 더 주무시겠어요?
됐네. 그래도 집주인 배웅은 가야지.
가기 전에 깨워드릴 수 있는데.
차가 식을 때까지 손에 쥐기만 하고서 오늘의 계획을 세운다. 퇴근 후에 무엇을 할지, 어떤 걸 먹을지. 집에서 혼자 무얼 할 건지. 하루만 더, 하루만 더. 조금씩 미루다보니 어느덧 다시 주중이라 이런 대화가 새롭다.
누군가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서며 상상한다. 돌아왔을 때 반겨주는 사람이 있는 풍경을. 이제 떠올리기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낮밤
고백을 받으면 내 마음이 어찌되든 결과가 승낙과 거절 뿐이라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나. 실행자는 내가 아닌데 어째서 내가 고민해서 결단을 내려야 하고, 그 마음의 짐을 내가 져야 하는지. 평생 관계에 있어서 결론을 내려본 적이 없었다. 어쩌면 그 모든 것을 미룬 결과가 지금일지도 모른다.
나에게, 자신에게 어떤 사람이 되어달라 정확히 요구한 사람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요구되지 않은 채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정의하지 않고, 언젠가 떠나가는 것을 보기만 하면 되었다. 기한이 정해지지 않은 이 질문은 모르는 척 넘어가도 괜찮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 문제를 무시하고 지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당신에 대한 감정을 정의할 수 있을까. 하물며 그것이 사랑이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이건 분명 사랑이 아닐텐데. 그저 당신이 바라는 답을 해주고 싶다는 이유로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거절하면 어떻게 될까.
은준 씨, 저는 변하는 게 두려워요. 지금이 너무 좋아서 오늘만 평생 이어져도 괜찮을 정도예요. 당신이 좋아요. 즐겁고요. 제가 사람을 많이 못 사귀어봐서 그렇다는 말은 하지 말아요. 사람 보는 눈이 없다는 말도 하지 마시고. 이것만 생각하세요. 저는 은준 씨를 좋아한다는 걸요.
그게 지금 치킨 먹다가 할만한 말인지는 모르겠네만……. 혹시 취했나?
설마요. 아, 그 점은 별로라고 생각해요. 당신은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이것 봐요. 지금도 이렇게 마시고 있잖습니까.
그것만 고치면 된다는 건가. 쉽진 않은데, 한 번 해보겠네.
실소든 폭소든, 끊이지 않는 대화 속에 빠져있다보면, 이게 나의 삶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그랬던 적이 없는데, 이 짧은 나날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의 덕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은 그리 멀지 않았다. 아마 당장 내일이라도 헤어지면 알게 되겠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순식간에 텅 비어버린 방이 어색할 것이다. 사람 하나 줄었을 뿐인데 그 부피보다도 더 공허해진다는 사실은, 당신이 그만큼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는 걸수도 있고, 내가 생각보다도 타인과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는 걸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든 그걸 알게 해준 사람이 당신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내일 무얼할까 기대하면서도 지금 심장이 두근거리지는 않고, 완벽하게 어울리지는 않으면서도 편안해진다. 그에게서 취할 수 있는 온기가 삶의 일부가 되었음을 인정한다. 당신에게 있어서 나의 존재가 그러하길 바란다.
가급적 긴 세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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