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소설 타입 18

나루토 - 나루토

#2

이상할 정도로 푸른 하늘이었다. 여느 때와 비교하면 특별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여름에 진입하면서 하늘은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한 푸른빛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햇볕이 점점 더 강렬히 내리쬐고 공기가 조금씩 후덥지근해지기 시작했다. 그제야 아이들은 여름이 오고 있다는 걸 느꼈다.

과할 정도로 제 푸름을 과시하고 있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나는 기이한 위화감을 자각했다. 작은 기시감이었다. 하나는 제 특유의 감을 중요히 여겼다. 이 감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아무 일 없이 무탈하게 지내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집을 나선 후 무심결에 올려다 본 그 하늘에서 어째서 불안을 느끼는 것일까. 거칠지만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은 일렁거리는 불안의 불꽃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학교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불꽃은 거세졌다.

“……열은 없는데.”

“깜짝이야! 나루토!”

어느새 하나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쳤다. 나루토가 제 이마에 손을 얹었기 때문이다. 이마를 덮고 있었던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헤집으며 피부가 맞닿았다. 갑작스러운 접촉에 소리를 지르는 건 아주 당연했다. 나루토는 하나에게 열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만족스럽다는 듯이 씨익 웃었다. 환히 웃고 있는 그 모습은 흡사 청량한 여름과도 같았다.

“다행이라니깐. 너 며칠 전에 아이스크림 좀 많이 먹었다고 아파서… 그때 얼마나 걱정했는데. 지금도 감기 기운이 있는 줄 알았기도 하고, 또. …내가 하는 이야기에 집중해주지 않는 거 같아서.”

“어? 아냐! 그냥…… 하늘이 유독 푸르구나, 이런 생각을 하느라. 나루토의 이야기가 재밌지 않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그리고 그땐 아이스크림 많이 먹어서가 아니라 네가 창문을 활짝 열어놓았기 때문이잖아!”

아침부터 쌍둥이의 티격태격 싸움이 일어났다. 그 광경을 멀리서 보고 있었던 사스케와 사쿠라는 익숙하다는 듯이 둘을 바라보았다. 사스케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사쿠라는 나루토를 보며 아픈 애를 그렇게 두면 안 된다며 금방이라도 잔소리를 퍼부을 거 같았다. 쌍둥이가 반 안으로 들어오고, 수업이 시간했다. 중간고사가 얼마 안 끝났을 무렵에도 수업 진도는 지루하지만 빠르게 나아갔다.

3교시가 끝난 직후였다. 다음 교시가 무엇이었더라. 시간표를 확인하며 교과서와 노트 필기한 것을 꺼내기 시작했다. 마구잡이로 책상 서랍에 쑤셔 넣은 나루토의 교과서에 허탈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저러다 거하게 고생해봐야 정신 차리지. 사쿠라가 나루토의 책상 서랍을 보고 그런 식으로 말한 것 같았다. 사쿠라는 유독 제 빼어난 외모만을 보고 좋아하는 나루토를 싫어했다. 완벽히 싫어하거나 혐오한다는 감정이 아닌, 살짝 귀찮다는 뉘앙스였다. 아마 첫 단추를 잘못 꿰어서 그런 거겠지.

하나는 사쿠라가 비록 말은 저렇게 해도, 저것도 제 나름의 걱정해주는 말이라는 걸 알고 있다. 생각해주기에 나오는 말. 관심의 반대말은 무관심이었다고 했던가. 아무도 봐주지 않는 것만큼 쓸쓸한 게 없으니까. 하나가 자조적으로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사쿠라에게 맞장구치려고 했다.

“야, 나루토.”

그 순간, 반에서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남자애 한 명이 나루토를 불렀다. 의아하다는 시선이 동시에 남학생에게로 쏠렸다. 남학생은 제게로 모이는 시선을 감당할 수 없었는지 잠시 주춤거리더니 이내 교실 앞문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자신처럼 교복을 입은 어두운 빛깔의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가 수줍음을 타며 이쪽을 보고 있었다. 정황상 저 소녀가 나루토를 불렀다는 걸 알게 됐다. 나루토는 잠시 고개를 이리저리 기울이더니 갖다 온다는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변이 순식간에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저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었지만, 반 아이들은 미묘하게 흐른 로맨스의 기류를 읽어냈다. 하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침 내내 느꼈던 불안의 정체는 이거였을까. 하나는 애써 무시하고 외면했다. 설마. 그냥 나루토에게 할 말이 있었던 걸 거야. 나루토는 모두에게 상냥하게 대해주는 사람이니까, 거기에 고맙다고 인사할 겸 온 거겠지. 하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버틸 수 없을 거 같기에.

나루토는 의외로 금방 돌아왔다. 교실 앞문에서 만난 소녀와는 몇 마디 주고받은 게 전부였지만. 아무래도 상대가 ‘나루토’여서 반 아이들의 관심이 기다렸다는 듯이 우르르 쏟아졌다. 무슨 말을 했는지에 대한 질문이 대다수였다. 자신을 쏟아지는 질문에 나루토는 코 밑을 스윽 문지르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냥 방과 후에 시간 괜찮으면 보자고 했어!”

대수롭지 않게 말하려고 했었으나 아무래도 다른 반 여자아이가 자신을 불렀다는 사실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나루토는 착하지만 아직 여러모로 미숙했다. 그렇기에. 미처 감춰지지 못한 기쁨이, 하나를 조금씩 절망이라는 이름의 늪에 빠트리기 시작했다. 그런 건, 안 돼. 하나는 알고 있다. 자신이 나루토를 좋아하듯이, 그 소녀도 나루토를 좋아하고 있을 거다. 이따금 복도 등에서 마주칠 때마다 나루토를 향한 시선에서 알아차릴 수밖에 없으니까.

순수한 애정이 듬뿍 담긴 시선.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이어서 그런가. 적극적으로 나루토에게 접근하지 않았기에 방심하고 있었다. 하나는 자신의 현실을 원망했다. 가족이 아니라 남이었더라면, 하다못해 소꿉친구라는 타이틀이 있었더라면. 그랬다면 나루토의 곁에 있는 건 그 여자애가 아니라 자신이었을 터. 아니야. 하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직 나루토가 고백을 받았고, 거기에 응하지는 않았다. 고백도 어디까지나 만약의 가정이다. 추측이다. 그러니까, 아닐 거라는 근거 없는 희망에 몸을 맡기기로 했다.

방과 후가 되어서 나루토는 학교 교사 뒤편으로 향했다. 교정 내에 심어진 나무는 어느새 푸른 잎을 자랑하고 있었다. 바람이 한 번 불 때마다 나뭇잎이 서로 부딪히며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하나는 마른 침을 삼켰다. 이렇게 몰래 나루토의 뒤를 밟고 있는 것이 불안했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그래도 자칫 잘못하다가 들킬 수 있다. 하나는 부디 제 예감이 틀리길 바라며 두 사람이 말하는 이야기에 집중했다.

나루토를 부른 소녀의 이름은 휴우가 히나타였다. 아마 이 근처에서 제법 유명한 가문이었다고 했나. 그런 집안의 소녀가 나루토에게 무슨 볼일이 있는지 모르겠다만. 히나타는 한껏 용기를 내 나루토에게 제 진심을 전달했다. 나루토는. 모르겠다. 하나는 처음에 엿보고 있었지만, 두 사람이 같이 있는 것만으로 가슴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쓰라렸다. 견딜 수 없는 아픔에 도저히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는 판단 하에 그저 두 사람의 대화에만 집중했다. 자세를 웅크리고 눈을 감자, 다정한 연인처럼 있는 나루토와 히나타의 모습이 그려졌다. 쿵. 심장이 내려앉으며 숨이 턱 막혀왔다.

“…….”

나루토는 무어라고 대답하고 있는 걸까.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저. 작게 무어라고 하는 말이 들리는 것 같았지만, 하나는 제 고통을 감내하는 것조차 버거웠다. 그랬기에.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견딜 수가 없어. 하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으로부터 멀어졌다. 그러면서도 제 발소리가 나루토의 귀에 들리지 않도록 주의했다. 나루토. 나루토.

정말, 나를 버리고 갈 거야?

마음 같아선 뛰쳐나가고 싶었다. 자신이 아니라 그 아이를 선택할 거냐고. 부디 자신을 버리지 말라고 애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어찌됐든 나루토와 하나는 가족이었고, 넘을 수 없는 선이 존재하는 법이다. 아무리 나루토가 천 년, 만 년 하나의 곁에 오래 있을 수 있다고 해도. 그건 단순히 가족으로서의 호감이나 의무에 지나지 않았다. 자신을 진심으로 연인이라는 눈으로 바라봐주지 않을 거다.

“하나? 너 안색이 창백한데 괜찮아?”

“응. 아마 몸이 안 좋아져서 그런가 봐. 나, 먼저 갈 테니까 만약 나루토가 오면 갔다고 말해줘.”

“알았어. 너무 무리하지 말고 조심해.”

교실에 돌아오자마자 사쿠라와 마주쳤다. 사쿠라는 반 친구들과 대화하고 있었다. 사쿠라가 놀란 두 눈으로 하나를 걱정했다. 조금 이상할 수 있겠지만, 하나는 이때만큼은 연약했던 제 몸을 다행이라고 여겼다. 이런 식으로 대화를 회피할 수 있었으니까. 뭐. 실제로 몸이 안 좋기는 했다. 나루토와 히나타가 같이 있는 걸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당장 속이 울렁거렸으니까. 적어도 거짓말은 아니었으니까. 하나는 오로지 사실만을 말했다.

홀로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왔다. 푹신한 제 침대에 누울 때까지 한숨이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여전히 속은 좋지 않았다. 안색이 그렇게도 안 좋은가. 쿠시나가 하나를 보자마자 깜짝 놀라며 걱정하기 시작했다. 괜히 나루토를 낳은 사람이 아니랄까봐, 하는 방식도 똑같았다. 하나의 이마에 손을 대고 열을 어림짐작했다. 단순히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는 것에 의아했지만. 하나는 아픈 환자라고 생각했기에 푹 쉬라며 방으로 올려 보냈다. 하나는 무사히 제 방으로 향했고, 그 결과 침대에 엎드린 채 누워 있었다.

옅은 베이지색 천장을 바라보며 멍하니 생각했다. 열어둔 창문에서 희미하게 바람이 불었다. 손을 쥐었다 피는 걸 반복했다. 아무런 의미조차 갖지 못한 행동을 계속해서 반복하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을 무렵 나루토가 돌아왔다. 나루토는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하나의 방으로 달려왔다.

“하나! 괜찮아? 아까 사쿠라에게 들었는데 너 몸이 안 좋아서 먼저 갔다며!”

“그렇게 아픈 건 아니고 조금 울렁거릴 뿐이야. 그러는 나루토는? 어째 기분이 좋아 보이는데.”

“아! 맞다! …그, 아직 다른 사람들에게는 미처 말하지 못했는데 나 고백 받았어. 그 옆 반에 히나타라는 애가 나를 좋아한다고 하더라!”

처음에는 소곤소곤 속삭이던 목소리가 어느새 커졌다. 나루토는 자신이 처음으로 고백 받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하나를 붙잡고 여러 번 말했다. 고백. 몰래 엿들어서 알고 있었긴 하지만. 그래도 나루토가 말함으로서 확인 사살 당하고 싶진 않았다. 나루토는 엄청난 비밀이라는 것처럼 과장스러운 몸짓으로 하나에게 고백 받은 상황을 묘사했다. 무척이나 엉성했지만, 고백 받은 그 당시에 얼마나 기쁘고 가슴이 두근거렸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왜 좋아하냐고 물었거든? 그랬더니!”

“나루토는 어떻게 할 거야?”

“응?”

“고백. 고백 받았잖아. …사귀는 거야, 그 애랑?”

유치한 질문이었다. 흡사 자신을 두고 바람 피냐는 뉘앙스 같기도 했다. 한참 상황 묘사하던 나루토는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하나는 희망을 떨치지 못했다. 아직. 아직. 이제는 셀 수 없을 정도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루토를 바라보기만 했다. 나루토는 이내 결정했다는 듯 당당히 제 대답을 말했다.

“그건 잘 모르겠어.”

“어? 고백 받아서 기분 좋다며. 그럼.”

“물론 기분 좋았지! 그렇지만 생각해 봐! 난 아직 걔에 대해서 잘 모르고, 끽해야 옆 반이라는 것만 아니까. 어쩌다 복도에서 마주친 적이 있다고 걔가 그랬지만, 그래도 난 여전히 모르는 상태인 걸. 적어도 사귄다면 친한 친구 관계에서 서서히 나아가고 싶어. 내 나름의 꿈이랄까!”

“그렇구나.”

다행히 신은 하나에게 한 줄기의 희망은 남겨주었다. 지금 당장은 사귀지 않는다. 그렇다면 하나는 전력을 다해 나루토의 곁을 지킬 뿐이다. 히나타에게는 따로 악의를 갖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나루토의 곁만큼은 절대 내어주지 않을 거다. 최대한 방해하며 나루토를 향한 연심을 저버리길. 하나는 독한 마음을 먹었다. 생애 처음으로 가진 일그러진 애정과 집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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