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소설 타입 19

나루토 - 나루토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루토는 유독 하나에게 약했다.

세심히 배려하고 챙겨주었다. 처음에는 많이 서툴렀지만, 나중에 가서는 그럭저럭 괜찮은 모양새가 되었다. 하나는 어째서 나루토가 자신을 챙겨주는지 궁금했다. 무심코 딱 한 번 물어본 적이 있었다. 나루토는 어째선지 쑥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채 말했다.

오빠니까, 여동생을 지키는 건 당연한 거잖아.

그런 걸까. 당시 하나는 나루토에 대한 연심을 자각하지 못했다. 그저 자기를 챙겨주는 이가 있으니 좋다고만 여겼을 뿐이다. 하지만 연심을 자각한 뒤에는. 나루토의 서툴면서도 세심한 배려에 가슴이 뛰었다. 좋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루토가 오직 이렇게 신경 쓰는 인물이 자기 밖에 없다니. 사스케나 사쿠라도 있었지만. 그들은 조금 다른 개념이었다. 라이벌 의식이나 단순한 호감까지는 어느 정도 하나가 너그러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히나타가 나루토에게 고백한 것은 전혀 달랐다. 고작 다른 점이라고는 가족의 틀에 묶였다는 것과 아니라는 것뿐인데. 고작 그것 때문에 히나타가 고백하는 건 용기 있는 일이 된다. 모두에게 축복을 받으며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영원한 사랑을 속삭이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하나는?

놀랍게도 히나타가 할 수 있는 행동의 대부분은 하나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만약 하게 되더라도 하나는 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한껏 받겠지. 평생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겠지.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하나는 사회의 시선을, 사람들의 입방아를 신경 쓰지 않았다. 오로지 하나가 신경 쓰는 건 나루토뿐이었다. 나루토가 혹여 자신을 싸늘한 눈으로 보게 된다면 아마 견디지도 못한 채 죽어버리겠지.

하나는 텅 빈 눈으로 벽에 기대었다. 딱딱한 벽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하나는 비록 몸은 약했으나 이타적인 성향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가져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남들에게 그럴 듯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미지 관리에 지나지 않았다. 이 정도는 누구나 다 하는 거잖아. 하나는 미련하게 제 이익을 뺏기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 하나를 욕심쟁이라고 말하면. 하나는 기꺼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바보처럼 누가 자기가 좋아하는 걸 나눠? 하나는 그리 생각했다. 히나타가 고백한 이 시점에서도 하나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하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단순히 나루토가 사쿠라에게 호의를 가지는 정도라면 괜찮았다. 사쿠라는 누가 보아도 사스케를 좋아하고 있다는 게 훤히 보였으니까. 나루토에게 일말의 여지도 주지 않는 단호한 모습에 그나마 안심하며 친구처럼 지낼 수 있었지만. 히나타는 달랐다.

히나타는 내성적인 성격으로 유명했다. 상냥하고, 착하고, 이타적이고. 뛰어난 명문가의 자제여서 그런지 좋은 수식어는 다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그리 좋은 집에 사는 애가 나루토를 좋아하게 된 걸까. 작은 의문이 들었다. 히나타처럼 좋은 수식어를 다 타고난, 흔히 말해 좋은 집에 사는 아이라면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지 않나. 왜 하필 나루토냐고. 하나는 근처에 있던 베개를 쥐어 맞은 편 벽으로 던졌다. 베개가 벽과 부딪히며 조금 요란스러운 소리를 냈다.

비록 히나타 개인에게는 악의는 없었지만, 어쩔 수 없지. 하나는 되도록 이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는 말을 덧붙여가며 앞으로의 계획을 짰다. 아직 나루토는 히나타의 고백에 응하지 않았다. 하나는 이걸 최대한 적극적으로 이용하기로 했다.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가며 깊은 교류를 하고 싶었다고 했었으니……. 그렇다면 나루토가 히나타에 대해 알아갈 시간을 만들지 않으면 되겠지. 하나는 머리를 굴렸다. 비록 하나는 몸은 약해도 머리는 좋았다. 특히 잔꾀를 부리는 것에 능했다.

하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닥에 덩그러니 놓인 베개를 보며, 어느 정도 행동 방향을 잡았다.

“미안.”

전혀 미안하지 않은 주제에. 하나는 예의상으로 히나타에게 사과했다. 아마 이 사과가 그에게 직접 들릴 일은 죽어도 없겠지. 그래도 상관없었다. 하나는 부디 히나타가 하루 빨리 나루토에 대한 연심을 접기를 바랐다.

*

시간은 꽤 빠르게 흘렀다. 어느새 기말고사가 끝나고 여름 방학이 코앞으로 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하나는 다음 주에 있을 방학식에 잔뜩 들뜬 나루토를 보며 작게 웃었다. 귀여워라. 나루토는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다. 정말, 몸만 큰 어린애라니까. 하나는 몇 번이고 키득거리며 웃었다가 멈추었다.

도무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이였다. 집요하다고 할까. 아니면 나루토에게 처음으로 제 마음을 전할 수 있었다는 희망에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 걸까. 어느 쪽이든 하나에게 있어서 그리 달갑지 않은 상대였다. 히나타는 종종 이렇게 하교 후 나루토와 함께 가려고 애썼다. 비록 집은 정반대였지만, 적어도 교문까지 갈 수 있으니까.

나루토는 기꺼이 히나타를 맞이했다. 히나타는 수줍음을 많이 타는지 조심스럽게 모두에게 인사했다. 당연히 그 인사 상대에는 하나도 들어갔다. 하나는 나루토의 앞이었기에 적당히 반겨주었다. 전혀 반갑지 않았지만, 지금은 나루토의 앞이었다. 혹여 히나타에게 눈에 띄게 싫어하는 걸 드러냈다가 나루토가 저를 미워할지 몰랐다. 괜한 걱정이라는 건 알았지만. 그래도. 하나는 히나타를 보았다. 히나타는 나루토 곁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눈치였다.

누가 그렇게 둘 줄 알고.

하나는 자연스럽게 나루토의 옆으로 다가갔다. 나루토의 반대편에는 사스케가 있었으니, 적어도 히나타가 다가갈 구석은 없었다. 히나타는 조금 아쉽다는 듯 보았지만. 그래도 내색하지 않았다. 몇 번이고 하나의 손에 의해 기회를 잃었음에도 포기하지 않는 걸 보아하니 집념만큼은 대단했다. 지긋지긋했다. 처음으로 고백했는지 몇 주가 지났음에도, 아무런 진전이 없음에도, 포기하지 않는 저 태도가 정말이지 싫었다.

심지어 나루토는 친한 친구가 생겼다는 감각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니 노골적으로 방해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어쩌지. 차라리 자신을 싫어했더라면 더 편했을 텐데. 저에게 악의를 가졌더라면 적어도 그럴 듯한 이유를 들먹이며 배척할 수 있었다. 적어도 아직까지 나루토는 하나를 더 많이 신경 썼으니까. 만약 히나타가 하나를 싫어했더라면. 그랬더라면 나루토는 히나타와 거리를 둘지도 모른다. 얄팍하고 안일한 생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이런 근거 없는 희망에 매달리지 않는 이상, 하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콕콕 쑤시는 느낌이 들었다. 갈수록 가슴의 통증이 심해졌고, 이내 두 사람이 같이 있는 모습만을 봐도 미칠 것만 같았다.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게 도통 신기할 지경이었다. 하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걸음을 멈추고 답답한 숨을 토해냈다. 끽해야 3초도 채 되지 않을 짧은 움직임이었을 텐데. 나루토는 그 순간을 캐치해냈다.

“왜 그래?”

나루토가 고개를 돌려 하나를 보았다. 그러자 약속이라도 한 듯 다른 세 사람도 하나를 보았다. 순식간에 시선이 저에게로 쏠렸다. 하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어색하게 팔을 가로저었다. 당혹스러운 표정. 무심결에 한숨을 쉬고 말았다는 느낌이 팍 묻어났다.

“아, 아무것도 아냐. 그냥 조금 피곤해서 그런가봐. 왜, 요즘에 냉방이 너무 잘 되어서 춥다고 그러는 애들 있잖아? 그래서 조금 으슬으슬해졌나봐.”

한숨을 쉬었다는 이유로 먹히지 않을 변명이었지만. 하나가 몸이 좋지 않았던 건 하루 이틀이 아니었으므로 모두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정. 히나타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하나를 보았다. 같은 중학교 출신도 아니었고, 같은 반도 아니었던 히나타는 하나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다. 알고 있는 건 나루토와 가족이라는 것, 몸이 약하다는 것뿐이었다. 서로 알고 지낸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가. 히나타는 하나의 억지스러운 변명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진심으로 걱정했다.

누가 보아도 저를 걱정한다는 걸 알았다. 착하고도, 타인의 말을 의심 없이 잘 믿고. 이타적인 성향의 히나타를 볼 때마다 하나는 비참해졌다. 조금이라도 미워할 수 있는 구석이 없었다. 하나는 차라리 저를 걱정하는 게 가식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랬더라면. 그랬더라면. 하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복도를 울렸던 발걸음 소리가 하나 줄었다.

“내가.”

“응?”

“……내가 나루토를 더 좋아하는데.”

말하고도 흠칫거렸다. 질투를 비롯한 부정적인 감정이 한껏 섞인 마음의 불꽃이 빠르게 타올랐다. 불꽃은 이내 하나에게 감정에 솔직해지라며 속삭였다. 지금까지 잘 버텨내고 있었는데. 아슬아슬하게 유지했던 이성의 끈이 끊어지자마자, 여태 감췄던 속내가 드러났다. 하나는 한 번 뱉었던 말을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잘 알았다.

“내가! 내가 어릴 때부터 계속 나루토를 좋아했는데!”

“저, 저기? 하나… 무슨 일이야? 갑자기 왜그래?”

“갑자기가 아냐! 나는… 왜 나는… 내가 안 되는 지 모르겠어. 나는 애초에 나루토와 가족도 아니었는데.”

어느새 울먹이는 목소리가 됐다. 눈물이 섞여 저도 모르게 한탄을 내뱉었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다는 듯 멈추었다. 숨 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하나는 어느새 울고 있었고, 그 누구도 쉬이 달래주지 않았다. ……그건 나루토 또한 마찬가지였다. 여느 때라면 나루토가 가장 먼저 우는 하나를 달래주었을 텐데. 그런데. 왜. 하나가 소리 내어 우는 동안 나루토는 침묵했다. 울음이 잦아질 때까지 무어라고 말하지 않았다. 사스케와 사쿠라는 어렴풋이 하나가 가진 연심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나가 나루토를 바라보는 눈빛이 무척이나 따스했으니까.

마치 좋아하는 사람을 바라보듯이. 눈치가 빨랐던 두 사람은 어느 정도 호의를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설마 심해처럼 깊었을 줄은 몰랐지만. 사스케는 나루토와 히나타에게 말했다. 먼저 간다는 짧은 말을 내뱉고 사쿠라를 데리고 갔다. 나루토는 그제야 정신 차렸다. 이 사태를, 울고 있는 눈앞에 여동생을 달래줄 수 있는 건 오로지 자신이라는 것을.

나루토는 하나의 곁에 다가갔다. 가까이 갈수록 복잡한 마음이, 생각이 얽혔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좋아한다는 말을 들으면 좋을 줄 알았다. 모두가 자신을 바라봐주고, 좋아해주면 그 이상의 소원이 없었다. 하나에게도 마찬가지로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하나의 좋아함과 나루토의 좋아함은 서로 다른 의미를 품고 있었다. 그렇기에.

“미안해. ……나 모르고 있었어.”

첫 마디는 어렵사리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는 나루토를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눈물범벅으로 엉망진창이 된 얼굴이었지만. 나루토를 향한 원망이 가득했지만. 그래도 만약 나루토가 자신을 받아준다면 좋겠다는 희망을 지녔다. 나루토는 몇 번이고 망설였다. 중간에 히나타가 나루토를 보며 그의 이름을 작게 중얼거렸다. 이 작은 소란의 중심은 나루토였다. 나루토는 제가 끝마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선택의 순간이 오고 말았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나루토는?”

“너를 계속…… 가족이라고만 생각해서, 그래서.”

“그렇구나.”

자신은 안 된다는 거구나. 하나는 볼을 타고 흐르던 눈물을 닦아냈다. 푸른 눈동자가 어느새 초점을 잃었다. 하나는 애써 웃었다. 이게 나루토가 해줄 수 있는 최대의 배려라는 건 알았다. 갑작스러운 고백에도 애써 자신을 생각해주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하는 결말은 이런 게 아니었다.

“고마워, 대답해줘서.”

하나는 그렇게 말하며 두 사람을 내버려둔 채 가버렸다. 바람에 나부끼는 금발이 어쩐지 쓸쓸하게 보였다. 나루토가 저 멀리 가버리는 하나를 미처 붙잡지 못했다. 머리를 잔뜩 헝클어뜨리고 복잡한 마음을 다스리려고 애썼다. 히나타는 짧은 시간 내에 일어난 일에 어쩔 줄 몰랐다. 어쩐지 조금 죄책감을 지닌 듯 했다. 나루토는 우선 히나타에게 내일 보자는 말과 함께 하나를 따라갔다. 히나타는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날, 하나는 제 스스로 생을 끝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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