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소설 타입 20

가정교사 히트맨 리본! - 리본

죽음이란 무릇 만인에게 평등했다.

리본은 비 오는 거리를 조용히 훑었다.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빗소리는 마치 질척거리는 옛 추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날도 이처럼 비가 왔었지. 리본은 이제 돌아오질 않을 여인을 향해 그리움이 가득한 회상을 했다. 부질없다는 건 알면서도 이상하게 매달리게 됐다.

그녀의 이름은 하나였다. 어느 자그마한 약소 패밀리에 소속되어 있는 불치병 환자. 그녀의 위로 쌍둥이 언니가 한 명 있었지만, 이상하게 그쪽은 소식이 불분명 했다. 리본에게 하나의 죽음을 알려준 것도 언니 쪽이었다. 리본은 의아했다. 소중히 여기던 친동생의 죽음에도 담담했던 언니의 태도가.

‘애초에 내가 생각할 처지는 아니었다만.’

확실히 리본에게는 어울리지 않은 생각이었다. 가장 강력한 마피아. 아르꼬 발레노가 될 정도로 실력이 있는 그가 고작 한 여인을 향해 온갖 인간적인 감정을 품고 있다니. 지나가던 사람이 안다면 다들 두 눈을 크게 뜬 채 리본을 의심할 게 뻔하다. 리본은 제 평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인간이면서 사신에 가장 근접한 이. 누구보다 뛰어난 히트맨. 피도 눈물도 없는 이. 온갖 부정적인 수식어가 리본에게 따라붙었다. 애초에 리본은 마피아를, 히트맨을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었다.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을 가물가물한 어린 시절에 유일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 이거였기 때문이다.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고, 적성이 맞았다. 제 손이 타인의 목숨을 갈취할 때에는 아무 느낌이 없었기에. 그랬기에 가능했었던 일인지도 모른다.

이런 걸 선천적으로 공감이 결핍되었다고 했었던가. 일을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다양한 지식을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도 스스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움직였다. 기본적인 지식들은 지금도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하지만. 막상 공감을 하라고 하면 잘 되지 않는 게 현실이었다. 어쩔 수 없지. 애초에 마피아에 사적인 감정이 많이 들어가면 곤란했다. 죽여야 할 상대를 죽이지 못하는 건 리본에게 어울리지 않은 실책이었다.

……아니. 이미 실책은 저질렀나. 리본은 제게 어울리지 않는 회상을 마저 이어갔다. 약소 패밀리였지만 이상하리만큼 부유했던 곳. 이제는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그 패밀리에 있었던 불치병 소녀. 언니 쪽은 나름 건강했었으나, 동생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운명을 타고났다. 언제 죽을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매일이 살얼음 걷듯이 조심스레 움직여야 했다. 오늘이 될지, 내일이 될지 알 수 없는 그 아슬아슬한 줄다리기.

난 새장 속에 새가 아냐.

이따금 아무것도 모르는 온실 속의 화초, 혹은 새장 속에 갇힌 채 죽을 날을 기다리는 새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하나는 제 가슴을 톡톡 치며 말했다. 자신은 새도, 화초도 아니다. ‘하나’라는 인간이다. 그 당연한 한마디에 리본은 웃음이 나왔다.

‘바보 같은 녀석이라고.’

자기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다른 이도 그렇게 생각해줄까. 그럴 리 없다는 걸 잘 아는 주제에. 하나는 몸은 연약했으나 머리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마피아 가문에 태어났다는 사실이 아니었더라면, 몸이 아프지 않았더라면 아마 평범한 여인들처럼 살아갔겠지. 꿈을 가지고, 사랑도 하겠지. 지극히 사람이라면 누려야 했었을 모든 것을 이뤄내며.

생각해보면 하나는 리본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잘 따르고 있었다. 마피아라는 어두운 거리에 오래 살다 보면, 자연스레 리본에 대해 알게 됐다. 약 세 가지 타입만이 리본을 대했다. 압도적으로 강한 리본을 동경하거나, 혹은 거기에 질투해 배척하거나. 이도저도 아닌 웃음을 유지하며 중립을 가장하거나. 세세한 건 다르지만 크게 분류하면 그 정도였다. 하나는 그 세 가지의 규격을 애매모호하게 벗어났다. 리본의 힘에 동경하는 것도, 질투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속내를 알 수 없는 미소로 중립도 가장하지 않았다. 하나는 순수하게 리본을 좋아했다. 그의 애정을 조금씩이나마 갈구하며 하루를 살아갔다.

아마 리본이 하나의 버팀목이 되었던 거겠지. 그래서 성인이 되어서도 제법 오래 살 수 있었던 거고. 하나는 제법 오래 살았다. 성인이 되기도 전에 죽을 수 있다는 말을 늘 듣고 살았지만. 어린 시절 리본을 만나면서 조금씩 생기를 되찾았다. 제 나름대로 건강을 유지하고, 리본을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때만 해도 리본은 단순히 하나를 호위하기 위해 고용된 입장이었다. 돈이 급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가끔은 피비린내가 나지 않는 임무도 하고 싶어졌다. 그래. 내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

그 내키는 대로 움직였던 결과가 하나의 만남이었고, 그에 어울리지 않는 인간적인 리본이라니. 참 세상이라는 건 아이러니했다. 우습게도 모든 것을 알고 있을 리본도 이렇게 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래도 후회하지 않았다. 하나는 밖으로 나갈 때만 잠깐 곁을 지켜주면 되었다. 호위 임무가 끝났을 때도 리본은 사적으로 하나를 만났다. 작은 변덕이었다. 몇 가지 가르쳐주면 어설프게나마 따라오려고 했었고. 건강해져서 리본의 곁에 있는 게 꿈이라는 새장 속의 새가 마냥 귀여웠다. 그래서 더 어여쁘게 보았을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신기했다. 같은 하늘의 아르꼬 발레노였던 루체도 비슷하게 시한부 인생이었다. 하지만 그는 한 패밀리의 수장이었으며, 이미 제 운명을 예측하고 있었다. 수장으로서 막중한 책임에도 늘 웃는 태도를 유지했다. 그녀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며 언제나 남겨질 이를 위해 웃고 다녔다. 하나는 비록 결이 다르지만 제 소중한 이를 위해 웃었다. 괜찮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 웃음은 어쩐지 쓸쓸하게 느껴졌다. 쓴맛이 입안을 맴돌고, 가슴이 먹먹하게 만드는 건 둘다 똑같았다.

빗소리가 잦아들고 있다. 아마 두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비가 완전히 그칠거다. 어둑한 먹구름이 걷히고 희미한 햇살이 이 땅을 비추겠지. 리본은 그때까지만 조금 더 하나에 대해 생각하기도 했다. 자신은 비록 임무 때문에 그녀의 곁을 지키지도 못했다. 흙이 바삭하게 마르고 나서야 겨우 꽃 한 송이를 바칠 수 있었다. 그 꽃도 황급하게 가져오느라 예쁘지도 않았다.

생각해보면 제법 함께 있었던 시간이 오래 된 것 같았다. 십여 년이 조금 넘었던가. 십여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며 어느 나라의 속담이 떠올랐다. 강산이 그리 쉽게 변할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사람 한 명을 변하게 하는 데에는 충분했다. 지금 이렇게 빗소리를 들으며, 그녀의 기일을 그리워하는 것도 아마 리본이 변했다는 증거겠지. 알게 모르게 제 부하는 아껴주었다만. 그렇다고 특별히 기일을 챙겨주지 않았다. 한 명씩 세심히 챙겨주었다간 일 년 내내 기일이 된다. 애초에 이제는 누가 죽었는지 조차 가물가물했다. 매정하다면 매정한 반응이겠지만. 본래 하나를 만나기 전 리본은 그러했다. 동료의, 부하의 죽음에 분해하는 것도 아주 잠깐이었으니까.

스스로 생각했을 때 인간성이 많이 결핍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마피아로 일하기 위해 그 정도의 인간성이 없는 게 딱 좋았으니까. 하지만. 왜 자꾸 이렇게 질척한 감정이 오직 한 사람을 위해 묻어나는 걸까. 손바닥 위에 올려두면 모래처럼 사르르 아래로 흐르는 이 감정을. 리본은 어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대로 두자니 걸리는 게 너무 많았다.

거리에서 밝은 갈색 빛 머리카락이 휘날리는 걸 볼 때마다 저도 모르게 멈춘다. 혹시 하나가 아닐까. 그녀가 이미 죽었다는 건 머리로는 알고 있음에도, 가슴으로는 저도 모르게 쫓았다. 생판 타인인 걸 제대로 깨닫고 나서야 다시 걸을 수 있었다. 그래. 하나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이랬지. 그녀의 죽음에 여럿 송이의 꽃을 바치고 나서야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바보 같은 녀석이라고. 도대체 왜 죽어서 이렇게…….”

이미 떠난 자를 원망해봤자 돌아오는 건 없었다.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막상 따라주지 않았다. 하나가 리본에게 남긴 것은 추억과 그에 엮인 감정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스쳐 지나가듯 만난 인연이 전부였고. 그때마다 있었던 일은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일상이었다. 저도 모르게 그 따뜻한 일상에 푹 잠긴 모양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그녀가 살아있을 적을 그리워하지도 않았을 터. 머릿속이 조금 더 복잡해졌다. 그칠 줄 알았던 빗소리가 리본의 감정을 읽기라도 한 듯 거세졌다. 쏴아아. 리본을 조금씩 잠식해가는 소리도 언젠간 사라질 거라는 걸 알았다.

하다못해 마지막 작별 인사라고 해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항상 늘 하나의 기일이 될 때마다 리본은 후회했다. 그 당시 자신은 남들이 질색할 정도로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당연히 하나를 위해 잠깐 만날 새도 없었다. 아니. 없었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리본이라면 그녀의 얼굴을 보기 위해 잠깐의 시간을 낼 수 있음에도, 그러지 못했다. 하나를 향해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을 시기라서 그런가.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무심히 다음 날로 미뤘다. 계속해서 미루고 있다가 영영 전해주지 못했다.

미안했다. 자신을 향해 끊임없는 애정을 주면서, 그렇게 환히 웃으면서도 그 마음에 보답해줄 수 없다는 것이. 그녀에게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더라도, 아마 리본은 계속해서 다음 날로 미뤘을 거다. 그녀나 저나 어차피 유한한 시간 속에서 살아가야 했으니까. 리본은 창문에 머리를 기댔다. 자신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 아주 오래 전부터 죽음이란 두렵지 않았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이니까. 단지 리본은 조금 더 일찍 타인의 생에 끝을 매듭지었을 뿐이다. 수많은 이를 떠나보내면서 점점 죽음에 무덤덤해졌다. 죽음 이후로 벌어지는 일에 그토록 관심이 없었음에도. 왜 이제야 호기심이 드는 걸까.

하나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망자들만이 기거하는 세상에서 살아갈까. 아님 아팠던 과거를 뒤로 한 채 새로운 삶을 얻었을까. 리본은 궁금했다. 자신이 죽은 이후에 과연 하나를 만날 수 있을지. 만나더라도 지금까지 제가 한 행적이 걸렸다. 그토록 나쁜 짓만 골라서 했었는데. 과연 자신이 하나를 만날 자격이 될까.

나는 사람이 어떤 상황에 놓였든 끝까지 발버둥치고,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 해.

번뜩하고 떠오르는 말이었다. 죽음이 두렵지 않냐는 리본의 질문에 그리 대답했었지. 하나. 너는 과연 네가 한 말대로, 자신이 없음에도 발버둥 쳤을까. 아주 짧은 만남을 기다리기 위해 제 몸속에 있는 아픔과 싸웠을까. 아무리 돈을 쏟아 부어도 낫지 않는 그 병을. 이름조차 알 수 없는 그 병과 싸우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제는 대답하지 못할 이를 향한 질문을 여러 번 거듭 던졌다.

어느새 리본이 조용히 눈을 감은 채 빗소리에 잠겨 있었을 무렵이었다. 좁은 방에 다른 소음이 끼어들었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리본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시간에 저를 찾아올 이가 있었나. 두어 번 정도밖에 들리지 않은 노크 소리. 리본은 그 침묵을 이기지 못한 채 문 쪽으로 다가갔다. 조심스레 문을 열자 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 사람이 아니라 소포였다.

소포를 열자 그 안에는 낡은 일기장 한 권이 나왔다. 그 옆에는 자그마한 메모장이 보였다. 메모장에 적힌 글씨는 리본에게 퍽 익숙했다.

리본에게

하나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어버렸다. 이 얼마나 딱 들어맞고 웃긴 이야기인가. 그녀의 기일을 조용히 기리고 있을 무렵에 자신에게 온 일기장이라니. 이 일기장을 누가 전해주었는지 알 것만 같았다. 분명 그녀의 쌍둥이 언니겠지.

리본은 마치 소중한 것을 다루듯 첫 장을 펼쳤다. 그 안에는 하나가 리본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잔뜩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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