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하소서 2

배룡

소재주의 (자살, 자해, 가정폭력 등.)

 

 

 

 

  구원하소서

- 2 -

 

 

 

김용희의 조용한 탈선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학생의 신분으로, 떳떳하지 못한 방법을 통해 담배를 입수해 굳이 흡연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용희의 결핍으로부터 파생되었다. 형의 죽음 이후, 용희는 성실하게 형 같은 아들을 연기했다. 부모의 말에 반항하지 않고, 학생의 본분에 충실하고. 부모님은 용희가 누구보다 형의 모습을 하고 있기를 바랐다. 용희에게서 죽은 형의 모습을 찾아내기 위해 애썼으니까. 그렇다면 용희는 누구인가. 김용희라는 이름을 가진 형의 대체품인가, 대체 될 수 있기는 한 것인가. 김용희가 형의 대체품이라면 진짜 김용희는 어디에 존재해야 하는가. 수많은 물음이 용희의 머릿속을 지배했으나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반항보다 순응을 배우고, 순응보다 먼저 배운 것은 침묵이었으니까. 제 존재를 지우고 형을 연기하는 것, 그것이 부모님이 용희에게 가장 바라는 일이었다.

 용희는 가족을 사랑했다. 용희의 사랑은 늘 조용했기에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지만, 용희의 사랑은 늘 일정한 크기를 유지했다. 줄어들지도, 늘어나지도 않게, 고요하게. 그렇다면 용희의 가족은 용희를 사랑했는가. 용희은는,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꼈다. 부모님이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한 것은 형이었으니까. 용희에게 줄 사랑은 남지 않았으니까.

 티끌 만한 관심, 가끔 보여주는 웃음, 속이 비어버린 칭찬은 사랑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형에게 모든 것을 주고서야 적선하듯 주어지는 감정이 고팠다. 간절했다. 부모의 사랑을 갈구하는 것은 자식에겐 당연한 일이니까. 형처럼 되면 사랑받을 수 있을 거야. 어린 용희는 그렇게 생각했다. 형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했고, 얼추 형과 비슷한 성과를 내기 시작했음에도 용희에게 돌아오는 사랑은 없었다. 그럼에도 용희는 노력했다. 내가 더 착한 아들이 되면, 형만큼 잘난 아들이 되면….

 형의 죽음 이후, 용희는 드디어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다. 아, 무슨 일이 있어도 형만큼 사랑받을 수 없겠구나. 어떤 짓을 해도 형처럼 사랑받을 수 없겠구나. 형이 죽고 나서야 부모님은 용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정확히는, 형을 닮은 모습을 한 용희를. 형처럼 행동하고, 형처럼 생각하고, 형처럼 웃는 용희를. 형을 닮지 않은 용희의 존재는 용희의 부모에게 필요하지 않았다. 

 

형을 잃은 부모님은 용희의 존재를 죽이고 용희에게 형을 덧씌운 모습을 보며 삶을 이어갔다. 용희는 형을 향한 부모님의 지독한 사랑이 조금은 부러웠고, 조금은 무서웠고, 조금은 비참했다. 형이 사라지고, 용희에게 형을 덧씌우고 나서야 용희에게도 사랑이 닿았다. 온전히 용희의 것은 아니었다. 형을 향한 사랑 사이에 용희를 향한 원망, 미움, 분노를 섞어 보냈으니까. 용희의 것은 여전히 형에게 주고 난 뒤의 찌꺼기 같은 감정이 전부였다.

 

이쯤에서 용희는 한 가지의 고민을 시작하게 된다. 그럼, 내가 죽으면 부모님은 슬퍼할 것인가? 이 문제에 주어진 답안은 세 개였다. 1번, 형의 대체품이 사라진 것을 슬퍼할 것이다. 2번, 아들 김용희가 죽은 것을 슬퍼할 것이다. 3번, 슬퍼하지 않을 것이다. 

용희는 첫째와 셋째에 동그라미를 그렸고, 둘째에 엑스 표시를 했다. 하나의 선택지가 지워지고 남은 두 개의 답 중에서 용희는 신중하게 고민한다. 물론, 하나의 답을 고를 수 없었다. 선생님, 24번은 복수정답 처리 해주시는 거죠? 어느 날 교무실에서 지나가며 들었던 물음 하나. 용희가 생각하기에 답은 하나가 아니었다. 아마, 복수정답 처리를 해야 했을 것이리라.

그렇다면 김용희는 왜 부모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음을 알고 있음에도 부모의 사랑을 갈구하는가. 형의 모습을 연기해서라도 주인이 있는 애정 한 자락을 훔쳐 얻기 위해 노력하는가. 사랑은 관성이기 때문이다. 부모를 사랑하는 것이, 사랑받고자 노력하는 것이 이미 습관이 되었기에. 용희는 어떻게 제 습관을 고쳐야 할지 알지 못했다. 용희가 생각하기에, 습관을 고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새로운 습관을 덧씌우는 것이었다. 다만, 어떤 습관을 덧씌워야 부모님을 향한 용희의 고요한 애정을 끊어낼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데, 사랑받을 수도 없다니. 사랑을 내보내기만 하고 채워지진 않으니 용희는 늘 결핍에 시달렸다.

 

영원히 채울 수 없는 결핍으로 인한 갑갑함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기 위해 용희는 형이라면 하지 않을 행동을 하기로 결심한다. 시작은 손목에 날을 대는 것이었다. 용희의 필통 한구석에 자리한 커터칼이 여린 피부를 뚫고 지나가며 긴 흔적을 남기고 붉은 피를 내보내게 했다. 당연하지만 결핍은 채워지지 않았다. 손목에 있는 흉터의 개수가 늘어나도, 부모님은 알지 못했다. 아, 이건 별로네.

 용희는 결핍을 해소할 두 번째 방법을 찾기로 한다. 세면대에 물을 가득 받고 머리를 처박았다. 숨이 막히는 감각과, 처박은 머리를 들고 숨을 쉬기 시작하며 한꺼번에 폐로 들어오는 공기 같은 것이 나쁘지는 않았으나… 머리카락을 타고 흐르는 물이 별로였다. 옷이 젖는 것도 싫었다. 이것도 별로네.

 세 번째 방법, 흡연. 용희는 모아둔 용돈의 절반을 털어 담배를 구했다. 필터를 입에 물고,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첫 숨을 들이키는 순간, 크게 기침이 터져나왔다. 처음 경험해 본 매캐함, 목구멍을 타고 폐로 향하는 뜨거운 공기, 기침을 해대느라 벌게진 눈. 아, 이건 최악인데. 그래, 최악이었다. 첫 경험은 말이다.

 

 그렇다면, 김용희는 왜 여전히 담배를 피우고 있는가. 이 건은 김용희의 성실함이 빛을 발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담배를 입에 무는 횟수를 늘려갈수록 처음 느꼈던 감각들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담배 한 갑을 다 비울 때쯤, 용희의 성실함이 새로운 습관을 만들어냈다. 용희가 바란 결핍의 해소도, 부모를 향한 습관적인 애정을 끊어내는 것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으나, 관성적으로 사랑하는 김용희는 관성적으로 담배를 피웠다. 좋지 못한 습관을 들였음에도 개의치 않았다. 형은 이런 짓 안 했겠지. 그런데 난 형이 아니니까. 형의 모습을 철저히 연기하는 용희에게도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한 차별점이 필요했다. 부모의 원망 어린 눈길에서 제 존재를 인식하는 것 말고, 형과 김용희는 다른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해 줄 무언가가.

 

그리고 다시 현재, 학생의 신분으로 해선 안 될 짓을 감히 학교에서 행하고, 그것을 같은 반 학생에게 들켰음에도 용희는 차분했다. 모든 일에 덤덤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은 천성이었다. 용희는 내심 제 일탈을 고발해주기를 바랐으나, 아쉽게도 눈앞의 학생은 제 일탈을 모른 척을 해줄 모양이었다. 참, 보기와 달리 아량이 넓네.

 

 

“배진영.”

“어.”

“너 왜 나 훔쳐봐.”

 

 

용희는 답지 않게 질문을 했다. 언뜻 보면 혼잣말도 같았다. 배진영은 보기보다 아량이 넓은 것 같으니까, 형을 흉내 내지 않는 김용희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답을 찾아내는 것을 좋아하니까.

 용희의 질문에 진영은 일순 당황했다. 이름으로 불린 것이 너무 오랜만이어서 지금 들은 것이 제 이름이 맞는가, 고민했기 때문에. 야, 이 새끼야, 미친놈아, 개새끼야, 쓰레기야…. 배진영이라는 이름 석 자를 두고 사람들은 잘도 다른 이름을 갖다 붙이며 불러댔다. 누구도 진영을 진영이라 부르지 않았다. 배진영은 교내의 문제아, 동네 제일가는 반항아, 키워준 은혜도 모르는 패륜아였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김용희는 참, 알다가도 모를 놈이었다. 그게 좋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시선으로 저를 바라보는지 뻔하디 뻔한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김용희는 무슨 생각인지도 파악이 안 되고,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시선으로 진영을 바라보았으니까. 멸시, 혐오, 비웃음, 한심함 등의 감정을 담은 시선을 받는 것은 진영에게 아주 익숙한 일이었다. 뭐, 별로 신경쓰진 않았다. 진영도 비슷하게 그들을 바라보았으니까. 진영에게 김용희는 예외였다. 진영이 보기에 유일하게 제정신이고, 저를 배진영이라 부르고, 하나도 예측이 안 되고, 담배도 피우고, 근데 그걸 들켰음에도 당당하고, 진영이 지금껏 자신을 관찰했음을 다 알고 있고, 그럼에도 진영을 싫어하지 않고…. 김용희는 처음 눈이 마주친 순간부터 진영에게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감정을 숨긴 것이 아니라, 정말로 진영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진영을 진영 그대로 봐주었다. 진영을 비난하는 온갖 말로 가려져 악의로 덧칠된 삶을 사는 중인 진영에게, 용희의 올곧은 시선은 반가웠다.

 

 진영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너랑은 좀 잘 맞을 거 같다.”

 

알맞은 대답은 아니었다. 그래도 용희는 두 번 묻지 않았다. 진영의 말에 동의했기 때문에. 형의 모습을 한 용희가 아닌, 진짜 김용희의 모습을 처음으로 본 사람이기 때문에. 김용희도 아량은 넓었다.

 

 

“김용희.”

  

용희가 어느덧 손 마디만큼 짧아진 담배를 발로 지져 끄고 진영을 쳐다보았다. 어, 말해.

 

“이번 주 토요일, 예배 끝나고 뒷문으로 나와서 오른쪽 창고로 와.” 

“부탁은 아닌 거 같은데…. 그래, 알겠어.”

 

 

용희는 순순히 대답했다. 진영이 제게 무슨 말을 하기 위해 불러내는 것인지는 몰라도, 그 예측되지 않음이 좋았다. 김용희는 뻔한 것이 싫었고, 타인의 감정을 기민하게 읽었기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쉽게 예측되는 것이 싫었고, 타인의 은근한 부탁에 긍정의 대답만 내어주었기에 부탁받는 것이 싫었다. 거절당할 리 없다고 생각하는 주제에 결정을 미루는 태도가 짜증났다. 차라리 배진영처럼 원하는 것이 있으면 확고히 말하는 게 좋다. 배진영은 솔직하고, 제법 뻔뻔하기도 하고, 배진영을 둘러싼 소문과는 다르게 의외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그래, 배진영의 말대로 김용희와 잘 맞을 것 같았다.

 

토요일의 예배 날, 평소와 같이 온갖 하얀 옷을 입은 신도들이 예배당의 곳곳에 자리하고 앉아있다. 아, 눈 존나 아프네. 사이비라고 광고를 해요, 아주. 목사는 굳이 신도들의 의상을 지정해 주었다. 통일성을 부여하고, 그 과정에서 소속감을 불러일으키고, 공동체의 결속을 도모하는. 쓸데없는 짓에는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가는 인간이었다. 

 동네 유일한 교회의 신도는 기이할 정도로 많아서, 예배당을 꽉 채우고도 남을 정도였으나, 진영 역시 동네 유일의 불량품이었기에 조금이라도 튀는 행동을 하면 온갖 시선이 달라붙었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구원을 받기 위해 자리한 이들이다. 많은 사람을 회개시키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믿고, 제 신앙을 목사에게 증명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는 인간들이다. 이들에게 진영은 회개시켜야 할 대상일 뿐이다. 이 교회에서, 이 동네에서 유일하게 구원을 바라지 않고, 신을 믿지 않으니까. 진영을 회개시키면 저를 향해 구원이 내릴 거라 믿었다. 

아, 징그러운 새끼들. 진영이 속으로 욕을 하며 조심스레 김용희의 대각선 뒷자리에 앉았다. 진영은 혹시라도 모를 상황을 대비해 마스크도 썼다. 마침 독감이 유행하는 시기라 마스크 쓴 사람이 많아서 진영은 인파 속에 무난히 섞일 수 있었다. 독감이 유행하는데 교회는 왜 처오고 지랄…. 진영으로선 하나도 이해 안 되는 짓거리였으나, 이 동네에서 이해 안 되는 점이 어디 한두 개인가. 오히려 진영의 존재를 숨길 수 있으니 다행이긴 했다.

 

 예배는 늘 그렇듯, 목사의 자기 자랑이 절반, 헌금을 유도하는 말이 절반이었다.

 

이 어지러운 세상을 굽어살피고자 신께서 저에게 현신하셨습니다. 제가 이룬 기적들이 보이십니까? 여러분에게도 기적이 내리기를 원하지 않으십니까? 믿으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불신은 곧 신에 대한 도전입니다.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신께 구원 받기 위한 방법은 단 하나, 믿음입니다. 믿음을 증명하십시오, 여러분이 증명한 믿음이 곧 기적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우리는 곧 하나 될 것입니다. 자, 기도합시다. 나를 위해, 내 이웃을 위해, 나의 기적을 위해, 영광을 위해, 하나 될 우리를 위해…. 아멘.

 

 기적은 개뿔이…. 저거 다 구라다. 의사도 아닌데 어떻게 걷지 못하는 이를 걷게 하고, 듣지 못하는 이를 듣게 하고, 말하지 못하는 이를 말하게 한단 말인가. 인간이 어떻게 기적을 행할 수 있겠는가. 한낱 사기꾼인 목사는 입을 참 잘도 털었다. 진영이 듣기엔 그냥 허울뿐인 말 투성이었는데, 예배당 곳곳에서 눈물을 흘리며 아멘을 외치는 이들이 가득했다. 서울에 있는 유-명한 대학을 나와 이 촌구석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이름 모를 선생님도, 하나뿐인 아들에게 돈을 빌려주었다가 아들의 사업이 망함과 동시에 잠적하였다는 감나무집 할머니도, 어릴 적 진영의 신고를 대차게 무시한 경찰도, 이름 모를 같은 학교의 학생도, 앞에 앉은 김용희의 부모님도…. 무엇이 그리 간절하기에 제각각 방언을 터트려가며 기도를 해댔다. 어린 진영의 기도가 신께 닿지 않았던 것처럼, 이들의 기도도 보답받지 못할 것이다. 진영은 하느님에게 빌기라도 했지, 이들은 저 앞에서 번들번들한 얼굴로 헌금함을 쳐다보고 있는 목사에게 빌고 있으니까. 기도할 곳을 잘못 찾으셨네요, 하지만 내 알 바는 아니지. 진영은 하품이 나오려는 것을 참으며 조용히 눈감고 손을 모았다. 신을 믿지 않는 진영은 신께 빌지 않았다. 그냥, 아무에게나 빌었다. 제 미친 양아버지에게 꼭 천벌을 내리게 해주소서. 다짐과도 같은 말이었다.

 진영은 눈을 슬쩍 뜨고 앞을 바라보았다. 대각선으로 앉은 김용희도 눈을 감고 손을 모으고 있었다. 김용희도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을까. 그래도 김용희는 저앞의 미친 목사에게 기도하지는 않을 것이다. 똑똑한 애니까, 이 동네에서 배진영처럼 정상성을 고수한 대가로 미쳐버린 애니까. 물론 배진영은 남들 앞에서 돌아버린 걸 티를 냈고, 김용희는 전혀 티내지 않았다는 점에서 많은 차이가 있지만…. 뭐, 그건 중요하지 않다. 따지고 보면 제정신인 쪽은 배진영과 김용희였고, 나머지가 미친 거였지만 원래 비정상 속에서 정상으로 산다는 것이 그렇다. 도리어 미친놈 소리를 들을 각오를 해야 한다는 뜻이니까.

 

지루하고 시끄러운 예배도 어느덧 끝날 기미가 보였다. 돈을 많이 넣으면, 헌금을 성실하게 하면 제 기도가 보답받으리라 믿고 헌금함 앞에 줄줄이 늘어선 사람들 사이에서 진영은 조용히 빠져나왔다. 그 돈은 전부 목사님의 시계, 차, 금목걸이 같은 걸 바꾸는 것에 이용될 예정이지만, 원래 거짓은 달고 진실은 쓴 법. 굳이 다디단 거짓을 삼키겠다는 이들에게 진실을 알릴 생각은 없었다. 알려봤자 열받은 목사님께 처맞기나 하겠지. 동네에서 평판 바닥 찍은 진영이 말 해봤자 아무도 안 믿을 것이 분명하기도 했고. 그냥 저 미친놈이 또 제 아버지 얼굴에 먹칠을 하기 위해 애쓰는구나, 하고 생각할 것이 뻔했다.

 

몰래 빠져나온 진영이 교회 뒤편의 인적 드문 창고로 향했다. 잡동사니들을 쌓아두는 곳이라 오는 사람도 없고, 목사님도 이 장소에 관심 없고. 금덩이라도 박아 뒀으면 모르겠지만, 나름 목사 아들 짬밥 먹은 지 햇수로 10년이 넘은 진영이 아는 한 이 창고는 그냥 몰래 사람 만나기 딱인 장소였다. 창고 문을 열자 둥둥 떠다니는 먼지가 보였다. 먼지에 약한 진영은 기침 한 번 해주고, 습관적으로 머리 두 번 쓸어 넘겨주고 창고에 들어갔다. 마스크 쓰고 와서 다행이네…. 진영이 오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용희도 도착했다.

 여기 먼지 많으니까 마스크 써라. 진영이 여분으로 챙겨두었던 마스크를 용희에게 건네주었다. 학교에서와 달리 두꺼운 안경을 끼지 않은 김용희는 작게 기침을 한 번 하고서 창고 문을 닫았다.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창고에서 휴대폰 후레쉬 하나 켜두고 진영은 말을 시작했다.

 

“김용희.”

“응.”

“너도 여기 정상 아닌 거 알지.”

“응.”

“…그래, 너 알고도 다닐 거 같았다.”

 

진영은 김용희 너는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 교회에서, 누구를 향해, 어떤 기도를 올리는 것인지 묻고 싶었으나, 사람에게는 각자의 사정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궁금증을 속으로 삼켰다.

 

“그럼 너, 나 입양아인 것도 알지.” 

“응. 들었어.”

“내가 아버지, 그니까 목사님한테 받은 게 좀 많거든…. 그래서 그걸 돌려주고 싶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 혼자 해서는 안 될 것 같더라고.”

“…그런 일이 둘이 한다고 되진 않아, 진영아.”

“어, 알아. 근데 해보려고. 너도 마음에 안 들잖아.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 지겨워 죽겠다는 표정하고 있는 거 다 봤다.”

“그건 다른 게 지겨웠던 건데…. 응, 그래서?”

“이 좆같은 동네, 탈출하는 김에 너도 같이 데리고 가려고.”

 

진영이 당당히 선언했다. 용희의 의견은 딱히 묻지 않은, 통보에 가까웠으나 용희는 기꺼이 어울려주기로 했다. 형이 하지 않을 것 같은 짓이기도 했고, 김용희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직접 해결하는 것을 좋아했으니까. 용희는 배진영이 궁금했다. 저 작은 머리로, 온갖 소문을 몰고 다니면서, 제 아버지를 엿먹이겠다는 소리를 당당히 하는 진영이 궁금했다. 너는 무슨 이유가 있길래, 나한테까지 도움을 요구하게 됐을까. 아무 친분도 없던 나까지 데리고 나가려는 생각을 하게 된걸까.

 

이 교회가 비정상임을 알고 있음에도 용희가 딱히 빠져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부모님 때문이었다. 부모님이 걱정되어서… 뭐, 이런 이유는 아니었고. 그냥 형 흉내를 내는 것에 집중하다 보니, 형이 하지 않을 것 같은 행동이라서 그랬다. 애정은 받고 싶은데 부모님이 걱정되지는 않는다니, 제가 생각해도 이상했다. 하지만 용희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용희는 자신의 어딘가가 고장이 난 상태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잘난 형이라면 하지 않을 이상한 짓을, 김용희는 할 수 있었다. 그 감각이 나쁘지 않아서 용희는 살짝 웃었다.

 진영이 다음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열려던 찰나, 바깥에서 소음이 들렸다. 일순 진영과 용희가 멈칫했다가, 진영이 재빠르게 후레쉬를 끄고 용희를 끌어당겨 잡동사니들 틈으로 숨었다. 창고를 향하는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고, 문이 열리고, 사람이 들어왔다. 어두워서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으나 목소리와 말투로 미루어 보았을 때 아버지와 삼촌이 분명했다.

 

“여기도 정리를 한 번 하긴 해야 하는데 말이야….”

“뭐, 급할 거 없지 않습니까? 그래도 올해 가기 전에는 정리해야죠. …해야 하니까.”

 

 

뭘 해야 한다고? 하필이면 중요한 부분이 들리지 않았다. 진영은 작게 입술을 깨물었다.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던 목사와 삼촌은 창고를 한 번 대충 둘러보고선 문을 닫고 나갔다. 진영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야, 갑자기 끌어당겨서 미안. 급해서. 용희가 대답했다. 괜찮아.

 

“근데 진영아, 내가 전부터 궁금한 게 있는데.”

“뭔데.”

“너, 누구한테 맞고 있는 거야?”

 

 

용희가 물었다. 진영은 순간 입을 다물었다. 누구도 하지 않는 질문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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