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하소서 1

배룡


* 소재주의(자살, 자해, 가정폭력 등.) 

 

 

 

 

김용희. 

괜찮아?

 

묻고 싶었으나 말이 나오지 않았다.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뺨이 시뻘겋게 부어오른 김용희가 제 부모에게 붙잡혀 끌려가는 것을 보았다. 당장이라도 일어나 제 뒤통수를 누르고 있는 삼촌을 밀치고 김용희에게 달려가고 싶었으나 일어날 수도, 목소리를 낼 수도 없었다. 숨이 막혀 컥컥거리며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생각하기에, 김용희의 부어오른 뺨만큼 제 몸의 어딘가도 잘못된 것 같았다. 발목이 뒤틀린 것이 느껴졌다. 구해줘야 하는데, 너를 데려와야 하는데…. 벌게진 눈에서 의지와 상관없이 눈물이 줄줄 흘러나오고, 숨을 쉴 수 없어 몸부림을 쳤으나 이미 넝마가 된 몸으로 제 몸의 두 배나 되는 인간을 뿌리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의식을 놓는 중에도 눈은 김용희를 쫓았다. 김용희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기 직전, 의식을 잃었다.

 

 

 

  구원하소서

- 1 -

 

 

 

진영은 입양아였다. 정말 좋은 곳에 입양을 가게 되었다며, 선한 분들이니 앞으로 행복한 일이 가득할 거라 말하던 보육원 원장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원장님, 그거 다 개뻥이에요. 

세상에서 제일 악한 사람을 고르라 하면 진영은 망설임 없이 제 양부모를 고를 터였다. 어려운 이들을 위해 기부를 많이 한다느니, 아이들을 아낀다느니, 진정한 신의 종이라느니… 진영의 새 울타리가 되어줄 부모에 대한 수식어들이 거짓임을 알게 된 것은 진영의 입양 첫날부터였다. 애초 진영을 입양한것도 대외적인 이미지 때문이라나, 입양 후 얻게 될 돈이 있었다나… 어릴 적에 들은 이야기라 자세히 기억나지도 않았고, 이제 와서 굳이 이유를 알고 싶지도 않았다. 입양 의도의 불순함은 둘째치고, 밖에서는 사랑하는 아들의 탈선에 눈물을 흘리는 선량한 부모 행세를 하면서도 집에서는 진영을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 이들과 함께 살다 보면, 나를 왜 입양했을까 하는 의문보다 이 미친 집구석에서 언제 탈출할 수 있을까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것이다.

호적상의 아버지이자 동네에서 유일한 교회의 목사님은 참으로, 좆같았다. 그래, 이 단어 외에는 설명할 말이 없다. 양아버지의 신실함은 연기였고, 선함은 꾸며낸 것이고. 양아버지는 집안에선 롤렉스 차고, 교회에서 목사 짓거리를 할 때는 다 낡아빠진 시계를 찰 정도로 철저히 탐욕스러웠다.

그 덕분에 명색이 목사의 아들인 진영은 신을 믿지 않았다. 당연하지. 이딴 집구석에서 누가 신을 믿어? 하느님을 믿냐, 부처님을 믿냐 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 신은 개뿔이… 그딴 게 있으면 세상이 이따위로 돌아갈 리가 없지. 제 아버지 같은 놈을 가만히 두고 볼 리 없지. 다만 우스운 점은 진영의 아버지조차도 신을 믿지 않았다는 점이다. 교회의 목사라는 껍데기는 그저 무지한 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으니까. 대외적으로는 신의 종으로서의 본분을 져버리지 않고, 가진 것을 남에게 베풀 줄 알며,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까지 입양하여 사랑을 쏟아붓는 양부모라는 이들이, 사실은 남의 돈을 뺏어서 저들 호강할 궁리만 실컷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진영은 잠시나마 신을 찾았던 것도 같았다. 어렸으니까.

원장선생님이 그랬다. 하느님에게 간절히 기도하면 원하는 것을 들어주실 거라고. 다만, 자칭 신의 종인 이들에게 맞고 살다보면 아, 신은 없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신이시여, 어찌 이들을 잡아가지 않으시나이까. 저 좀 살려주십시오. 어린 진영의 간절한 기도는 철저히 무시당했다. 역시, 신은 없는 게 분명하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열아홉이 된 진영에게 따라붙는 이름은 양부모가 지어준 이름 외에도 몇 개가 더 있었다. 배진영, 동네에서 유일한 교회의 목사 아들, 은혜도 모르는 입양아, 반항아, 양아치, 미친놈 등… 온갖 부정적인 수식어가 진영의 꼬리표가 되었으나 진영은 개의치 않았다. 진영이 보기에 이 동네에 저보다 미친놈은 더 많았다. 미친놈들 사이에서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으려니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굳이 남들과 다른 길을 선택하고, 순응하지 않고. 거기에 신성모독은 습관이오, 패륜은 덤이라. 진영의 몸에 있는 상처는 대부분 아버지의 죄악을 적시하였다는 이유로 아버지와 삼촌에게 맞아 생긴 것이었으나… 겉으로는 이 동네의 유일한 교회의 목사이자, 이 동네에선 신에 필적한 취급을 받는 진영의 양아버지에 대한 사람들의 기이한 믿음이 가해자를 교묘히 숨겨버렸다. 가정에서 행해진 폭력이 진영이 바깥으로 나돌며 자초한 사고가 되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퉁퉁 부은 얼굴을 한 진영보다 진영의 양아버지인 목사를 더 걱정했다. 이렇게 좋은 부모를 둔 주제에 설쳐대며 부모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은혜도 모르는 놈이라며 욕을 해대는 것은 덤으로. 폭력의 피해자는 진영이었음이 분명함에도, 진영이 시비를 걸며 돌아다녔다느니, 가만히 길을 가던 사람을 팼다느니 하는 소문이 달라붙었다. 소문은 무성했으나 정작 진영에게 피해를 보았다, 주장하는 이는 나타나지 않는 기묘한 일이었다.

사람 한 번 때리긴 커녕 인생 절반을 처맞고 살아온 진영에게는 퍽 억울한 이야기였으나 신경쓰지 않았다. 폭언 정도야 열아홉이 된 진영에게는 이제 한 귀로 흘릴 수 있는 수준까지 왔고, 폭력은 제법 자주 있었으나 튼튼한 맷집 덕분에 크게 다치진 않았다. 기분 더러운 건 당연했지만. 진영은 그저 양아버지의 신경을 한 번 더 긁기 바빴다.

 

씨발, 자식한테 악귀가 들렸다며 지랄을 하는 게 뭔 부모. 아버지, 내가 악귀면 아버지는 악마 정도 되겠네. 

 

 

그렇게 말하며 진영은 웃었다. 이후에는 당연히 맞았다. 입술이 터져 피딱지가 앉았다. 존나 아프네… 하는 짓이라곤 헌금으로 들어온 돈을 헤아리며 무지한 이들을 비웃고, 다음에는 어떻게 털어먹을까 고민하는 것, 교회에 사람들 모아놓고 목이 터져라 성경 읽으며 아멘을 외치는 것, 하느님이 제게 계시를 내렸다느니 어쩌니 하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는 것, 조만간 자신은 신이 될 것이라며 사람들을 등쳐먹을 궁리를 하는 것이 전부인 주제에 꼴에 목사라고 성경을 소리쳐댄 짬이 있는 것인지, 화가 나면 진영에게 마귀 새끼라느니 악귀가 들렸다느니 지랄을 했다. 신을 믿지도 않으면서. 배를 맞아 컥컥거리는 진영을 보며 주기도문을 외우는 꼴을 보면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진짜 염병을 떠네... 화를 다스리기 위해 열심히 주기도문 외던 양아버지와 눈이 마주친 진영은 감히 눈을 치켜떴다는 죄로 한 대 더 맞았다.

 

그럼에도 진영이 양아버지에게 순응하지 않는 이유, 별거 없다. 진영이 보기에 양아버지는 스스로를 신의 현신이라 칭하며 무지하고 가난한 이들의 돈을 빨아먹으며 부유함을 즐기는 기생충이었으니까. 호적상으로는 진영의 아버지인 존재에 대한 애정, 존경 따위의 감정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애초에 양아버지도 진영을 좋아하지 않았으니 서로에게 잘된 일일 것이라.

진영이 보기에 제 아버지는 제정신이 아니었고, 딱 봐도 사기꾼임이 분명함에도 제 아버지를 믿고 따르는 동네 사람들은 더욱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아, 딱 한 명을 제외하고 말이다.

진영은 보았다. 교회에 모인 수많은 익숙하고도 무지한 얼굴들이 눈앞의 목사를 향해 처절한 기도를 뱉을 때, 이 공간에서, 이 수많은 사람 사이에서 자신은 하등 관계없다는 표정을 하고서 고요히 눈을 내리깔고 있는 이를. 이윽고 고개를 든 이와 시선이 얽혔을 때, 진영은 생각했다. 이 미친놈들 사이에 제정신인 미친새끼가 하나 더 있네. 유일한 이물질들의 첫 인식이었다.

 

진영은 시간이 꽤 지나고 나서야 저와 눈이 마주쳤던 이가 같은 반의 김용희라는 이름의 학생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교회에서는 안경을 벗은 모습이었고, 학교에서는 알이 두꺼운 안경을 끼고 있어서 알아보는 것에 시간이 꽤 걸렸다. 안경 안 낀 게 훨 낫네. 말을 걸까 하였으나 교내의 문제아 취급을 톡톡히 받으며 어딜 가도 멸시 어린 시선이 따라오는 진영이 용희에게 대놓고 말을 걸었다간 용희의 입장이 곤란해질 것 같았다. 그렇다 보니 진영은 말을 거는 대신 그저 하루종일 용희를 관찰했다. 쟤는 되게 조용하네. 눈 밑에 점이 있구나. 원래 말이 없나? 딱 봐도 공부 잘하게 생겼는데 진짜 잘하네…. 동네에서 제일 가는 반항아 취급을 받는 진영과 달리 부모의 속 한 번 썩인 적 없을 거 같은, 그린 듯한 모범생. 김용희는 전교에서 10등 안에 든다고 했다. 뭐, 그런 것치곤 성적을 잘 받은 것이 썩 기뻐 보이거나 하진 않은 것이 의외의 모습이긴 했다.

진영에게 용희는 알기 쉬운 인간상이었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김용희 관찰 2주차, 김용희는 알다가도 모를 놈이었다. 모든 부모가 바랄듯한 모범생은 어째서인지 종종 지쳐 보이기도 했고, 권태로워 보이기도 했고, 언제든지 모든 걸 버릴 수 있을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진영이 용희를 관찰한 시간이 3주를 넘길 때쯤, 의외의 곳에서 김용희와 대화할 기회가 생겼다. 점심시간에도 밥을 먹고 나면 자리에 앉아 문제집을 풀던 김용희는 가끔 사라지곤 했는데, 화장실을 갔겠거니 하던 진영이 문득 보게 된 것이다. 김용희의 발걸음이 화장실을 지나쳐 학교 뒤편의 어딘가로 향하는 것을 말이다. 진영은 용희의 뒤를 쫓다가 발견하고 말았다. 한 손에는 라이터를 들고, 입에는 담배를 물고 있는 김용희를. 

벽 뒤로 숨어 저를 보는 진영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용희는 반대쪽 손에는 영어 단어장을 든 채로 단어장을 읽어가며 천천히 담배를 다 태우고선 다시 교실로 향했다.

반항하는 중에도 성실했다, 김용희는.

 

용희가 떠난 자리에는 용희가 떨어트린 라이터가 바닥에 남아 있었다. 진영은 그 라이터를 주워 주머니에 챙기곤 생각한다.한 손에는 라이터를 들고, 입에는 담배를 물고 있는 김용희를. 아, 이것도 참 예상외네. 진영에게 용희는 규격 외의 인간이었다. 다 알 수 있을 것처럼 행동하다가도, 뜬금없는 모습을 보이곤 하는. 미친 놈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진영과 마찬가지로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김용희. 세상에 둘도 없는 모범생인 김용희, 학교 뒤편에서 담배를 입에 물고 있는 김용희.

 

진영은 용희의 라이터를 가지고 있다가, 어느 날 담배를 피우기 위해 학교 뒤편으로 향하고선 주머니를 뒤지는 용희의 앞으로 다가가 내밀었다. 갑작스러운 진영의 등장에도 용희는 당황한 기색 하나 보이지 않고, 그저 진영의 하는 꼴을 지켜볼 뿐이다.

 

 

“필요해?”

“…아니, 나도 있어.”

 

 

그러곤 주머니에서 새 라이터를 꺼냈다. 아, 하나 더 있구나. 진영이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라이터를 제 주머니에 넣었다. 용희가 입에 담배를 물고 진영을 빤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말할 거야?” 

“아니.”

 

김용희가 처음으로 진영에게 말을 걸었다. 진영도 처음으로 김용희에게 대답을 했다. 예상하지 못한 장소에서, 예상하지 못한 모습으로 예상하지 못한 말들을 나눴다. 아, 진짜 골때리네. 김용희는 정말로, 규격 외의 인간이었다. 모난 돌을 자처하는 배진영을 조금 닮은 것 같은, 이 동네의 또 다른 예외. 미친놈들 사이에서 제정신을 유지하느라 미쳐버린 배진영과 동류일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진영의 감은 틀린 적이 없다.

 

용희는 눈을 감고 조용히 생각한다. 형에 대해서, 형의 죽음에 대해서. 형과는 일곱 살 차이 나는 용희는 형과 같이 보낸 시간이 극히 적었다. 형은 언제나 학원이니 과외니 하는 것들에 둘러싸여 사느라 바빴고, 부모님은 그런 형을 챙기느라 바빴고. 용희는 혼자가 훨씬 익숙했다. 아침에 유치원에 가면, 가장 늦게 유치원에서 나왔다. 밤이 다 되어서야. 영재 소리 듣던 형은 부모님의 바람대로 엘리트 코스를 착실하게 밟았다. 검사라는 꿈이 형의 꿈이었는지는 잘 모르겠고, 부모님이 형이 검사가 되길 바랐다는 것은 안다. 용희가 일곱 살, 형이 열넷일 때 용희는 할머니댁으로 보내졌고, 용희가 열넷, 형이 스물하나일 때가 되어서야 용희는 다시 형을 마주한다. 형은 법대에 들어갔고, 그렇게 부모님의 바람대로 풀리는 것 같던 형의 인생은 용희가 열여섯에서 열일곱으로 넘어가던 겨울에, 형이 스물셋에서 스물넷으로 넘어가던 어느 날에 끝이 난다. 형은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친구를 만나러 나간다던 CCTV 속 형은, 엘리베이터에 오른 후 1층이 아닌 30층을 눌렀고, 그대로 내렸고, 옥상 문의 문고리를 돌렸고, 문이 열리자마자 뛰어가서, 그대로 낙하했다고 한다. 마치, 홀린 것처럼.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처럼. 

경찰은 자살로 결론을 내렸으나… 부모님은 형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화를 냈고, 울었고, 소리를 질렀고….

 

형의 죽음 이후 넋이 나간 것 같던 부모님은, 어떤 목사의 설교를 들은 이후 갑작스레 구원을 받겠다고 했다. 하늘에 계실 어느 신께 간절히 기도했으니 그간 저지른 잘못은 모두 용서받았다고 했다. 그러니, 앞으로도 간절히 기도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그렇게 믿었다.

그 말을 들은 용희는 무슨 생각을 했더라…. 부모님은 제 정신이 아니다. 용희가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이후 용희의 가족은 이사를 간다. 용희는 얼마 살지 않았으나, 형은 평생을 살아온 곳이기에, 형의 흔적이 잔뜩 남아 있는 집에서 살아갈 수 없다는 이유로. 이름조차도 익숙지 않은, 버스도 잘 다니지 않으며 아주 구석진 곳에 있는, 비가 내리는 날에는 공기 중에 바다 냄새가 섞이는 어느 시골로. 이곳에 사는 주민들은 모두 동네에 딱 하나 있는 교회에 다녔다. 용희의 가족 역시 동네에 하나 있는 교회에 다니게 되었고, 처음 예배에 참석한 용희의 소감은, 아, 미친놈이네, 였다. 그럼에도 용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라도 형을 잃은 부모님의 상처가 조금이라도 아문다면 된 거지 싶기도 했고, 말린다고 말려질 것 같지도 않았고….

 

용희가 다니는, 그러니까 용희의 가족이 다니는 교회는 용희의 기준으로는 사이비였다. 목사라는 이는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 선행을 베푸는 것처럼 보였으나 실상은 용희의 부모처럼 어딘가 결핍이 있거나, 의지할 곳이 없는 이들을 상대들을 꼬여내 돈을 뜯어내기에 급급했다. 자신이 신에게 응답을 받은 목사라니, 웃기지 않은가. 교회의 신도들은 목사를 신에 필적하는 이라 생각했고, 그렇기에 그를 떠받들었고, 그의 말이 진리라도 되는 마냥 찬양했고, 이에 목사는 자신이 곧 신이 될 거라 말하고 다녔다. 미친놈이네… 부모님은 돈을 버는 족족 목사에게 바쳤다. 그렇게 하면 형이 살아 돌아오냐고 묻고 싶었으나, 이번에도 용희는 침묵했다. 의문과 침묵과 체념으로 이루어진 생활 속에서 용희는 성실하게 형을 연기하며 살았다. 

형의 죽음 이전부터, 반항보다는 순응을 먼저 배운 용희는 언제나 말을 잘 듣고, 성실하게 공부하여 좋은 성적을 내고, 부모의 속을 썩이지 않는 아들이었다. 물론 잘난 형 덕분에 용희를 향하는 관심과 애정은 많지 않았으나 용희는 그것으로 만족하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형의 죽음 이후, 용희의 부모님은 용희에게 형의 모습을 덧씌워 보곤 했다. 타인의 대체품이 된다는 것은 썩 기분 좋지 않은 일이나, 용희는 순응했다. 그렇게라도 해야 엄마가 살 것 같았으니까. 형의 모습을 해서라도, 사랑받고 싶었으니까. 용희는 기꺼이 형의 흉내를 내었다.

용희를 둘러싼 타인들의 의미 없는 칭찬이 가득했으나, 썩 달갑지는 않았다. 성실하다는 말이, 착하다는 말이 종종 숨을 막히게 만들었기에. 그래도, 용희는 웃었다. 그렇게 해야 엄마가 만족했다. 착한 우리 아들, 내 아들… 아마 용희를 향한 말은 아니리라.

 

용희가 누가 봐도 잘난 아들의 모습을 하고 있다면, 용희와 정반대의 사람도 있는 법. 교회 목사의 아들이라 하는, 그러나 목사와는 전혀 닮지 않은 얼굴을 한 그 애는 언제나 몸 군데군데에 때로는 얼굴에까지 상처를 달고 다녔다. 눈에 밟혔으나 말을 건네지는 않았다. 언제나 선을 잘 지켜야 하니까.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의 예배에서 부모님의 옆에 앉아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던 용희는 모두가 눈을 감고 기도에 열을 올리던 때에 슬쩍 눈을 떴다. 애초에 빌 것이 없었으니까. 용희는 신에게 바라는 것이 없고, 그렇기에 해야 할 기도 따위도 없었다. 가만히 예배당 벽에 걸린 십자가를 쳐다보던 용희는 문득 고개를 돌림과 동시에 진영과 눈이 마주쳤다. 이 예배당 안에서 기도를 올리지 않는 이들은 둘이 유일했다. 용희는 동시에 예감한다. 진영과 엮이게 될 것이라고. 용희도 감은 좋았다.

용희의 예상대로, 같은 반인 그 애는 어느 날부터 용희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렇다고 말을 걸거나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용희를 관찰할 뿐이었다. 그 애의 이름은 배진영. 하지만 사람들은 그 애의 이름보다 다른 것으로 많이 불렀다. 미친놈, 양아치, 쓰레기 등등… 한 사람에게 붙는 것치곤 수식언이 지나치게 많았다. 배진영은 신경 쓰지 않는 듯했지만. 상처 하나가 흐려질때면 또 다른 상처를 달고 나타나는 배진영은 끈질기게 김용희를 관찰했고, 결국엔 용희의 숨겨진 비밀을 하나 알게 된다.

 

용희가 늘 담배를 피던 학교 뒤편에서, 교복 주머니에 넣어둔 라이터를 찾는 용희에게 진영이 훌쩍 다가와 라이터를 건네며 물었다.

 

 

“필요해?”

“…아니, 나도 있어.”

 

 

용희는 그 말과 동시에 주머니에서 새 라이터를 꺼냈다. 진영이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라이터를 제 주머니에 넣었다. 용희가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이고 숨을 길게 들이쉬었다. 그러곤 한 번 생각 해보는 것이다. 배진영은 김용희의 일탈을 고발할까? 그렇다면 부모님은 어떻게 반응할까…. 부모님의 논리에 따르면 이깟 잘못쯤은 기도 한 번으로 용서받을 수 있는 거 아닌가. 배진영의 얼굴을 보고, 담배를 한 번 빨아들이는 동안 용희는 짧게 고민했다. 맞는 것은 싫었으나 한편으론 들키고 싶기도 했다. 용희가 입에 담배를 물고 진영을 빤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말할 거야?” 

“아니.”

 

진영의 답은 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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