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하소서 3

배룡

소재주의 (자해, 자살, 가정폭력 등)

 

 

  구원하소서

- 3 -

 

 

 

사람들은 대개 진영의 얼굴에 앉은 피딱지를 봐도, 팔 군데군데 멍자국이 있어도 의문을 품지 않았다. 어디서 혼자 싸웠겠거니, 하는 것이다. 그 누구도 진영이 일방적으로 폭행당하리라 생각하지 않았고 진영 역시 누군가에게 자신이 폭행당하고 있음을 말하지 않았다. 말하면 믿어주나? 말하면 도와줄 것인가? 이에 대한 해답은 진영이 열두 살 무렵, 이러다 정말 죽겠다 싶어 몰래 파출소로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던 날, 얻을 수 있었다. 시퍼렇게 멍이 든 배를 붙잡고, 퉁퉁 부어오른 발목으로 꾸역꾸역 걸어가 동네의 작은 파출소의 문을 열었다. 저들끼리 잡담을 나누고 있던 경찰들이 파출소의 문을 열며 들어오는 진영을 보고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부터, 진영은 조금 예감했다. 아, 이 사람들도 날 돕지는 않을 거 같아.

 

 

무슨 일이니? 

도와주세요, 저, 목사님이,

잠깐만 기다리렴.

 

 

경찰은 진영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서 제멋대로 결론을 내린 듯했다. 귀찮다는 표정으로 진영을 내려다보던 경찰은 이내 전화기를 들어 어디론가 통화를 시도했고, 세 번 정도 연결음이 들린 후 달칵, 전화가 연결되었다. 수신처는 진영의 양아버지이자, 이 동네 유일한 교회의 목사님이었다.

 

 

아, 목사님. 네네, 아드님이… 아유, 알죠. 훈육하신 거. 원래 이맘때 애들이 사춘기 오면 반항한다고 난리예요.

 

 

훈육, 반항. 도를 넘은 일방적인 폭행은 가정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훈육이 되었고, 진영의 간절한 도움 요청은 어린 시절 치기를 담은 반항으로 치부되었다. 그렇구나. 날 도와줄 사람은 없구나.

 

진영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들어온 목사가 경찰들에게 수고가 많다며 비타오백 따위를 건네는 것을 멍청히 보고 있었다. 이윽고 목사의 시선이 진영에게로 향했을 때, 진영은 느꼈다. 아, 망했네. 목사는 연기에 능통한 이였다. 집에서야 야차 같은 얼굴을 하고서 진영에게 폭언, 폭행을 퍼부었지만, 바깥에선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처럼 보이기 위해 미소를 지었고, 뱀 같은 말솜씨로 사람들을 현혹했고, 사람들은 그런 목사의 거짓말에 기꺼이 속아 넘어갔고….

 

 

진영아, 아버지가 너를 바른길로 이끌기 위해 노력한 것인데… 많이 속상했구나.

그래도 이런 일로 경찰분들을 귀찮게 해서는 안 된단다. 자, 아버지가 집에 가서 맛있는 것 해줄 테니 어서 가자.

진영아, 안 갈 거니?

 

 

목사가 눈썹을 팔자로 만들며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은 채로 말했다. 진영을 바라보는 눈에 그 어떤 애정도, 관심도, 걱정도 없었으나 이 사실을 아는 것은 진영 혼자였으니, 타인의 시선에서 본 목사는 누가 보아도 영락없이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모습일 터였다. 목사가 내민 손을 바라보던 진영은 작은 손을 올려 마주 잡았다. 언제나 진영을 때리던 손, 진영의 몸에 온갖 상처를 만들어내는 손. 역겨움에 소름이 돋았으나 이제 진영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저 무기력하게 목사의 손에 이끌려 차에 타고, 집에 도착하고,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 행사를 하던 목사는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을 바꾼 채 진영에게 또다시 무자비한 폭력을 선사하고, 진영은 이를 꽉 깨문 채로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애를 쓰고…. 감히 경찰을 찾아갔다는 이유로 진영은 제 방에 갇혀 삼 일을 굶었다. 멍이 들어 아프고, 밥을 먹지 못해 굶주린 배를 붙잡고 진영은 생각했다. 나를 도와줄 어른은 없어. 믿을 수 있는 어른은 없어. 진영의 나이에 얻어야 할 깨달음은 아니었으나, 진영을 둘러싼 상황이, 진영을 대하는 이들의 태도가 진영을 절망토록 만들었고, 어른에 대한 불신을 심어주었고, 체념토록 만들었다. 여길 빠져나가려면 내 힘으로 하는 수밖에 없구나. 누군가에게 기댈 수 없겠구나. 열리지 않는 문을 노려보며 진영은 생각했다. 이대로 순순히 당하고만 있을 생각은 없으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복수하겠다고. 절대로, 굴복하지 않겠다고.

진영은 어느 날의 다짐대로, 목사에게 굴하지 않았다. 지속적인 폭언, 자비 없는 폭행에 꼬리를 내릴 만도 했으나 진영은 맞아가면서도 반항을 했다. 폭행당할 것을 알면서도 목사의 심기를 거슬렀다. 진영이 파출소를 찾아가기도 한참 전, 말을 잘 들으면 맞지 않을까 싶어 노력했던 시절, 진영은 감히 목사와 눈이 마주쳤다는 이유로 폭행당했다. 말을 잘 들어도, 말을 듣지 않아도 맞게 될 것이라면, 비위를 맞추기 위해 설설 기고 눈치를 보며 사느니 하고 싶은 말이라도 하고 처맞는 것이 나았다.

도망칠 수 없다면, 조금이나마 도와줄 사람조차 없다면, 발악이라도 해야지. 밟히고만 있을 수는 없지. 그렇게 진영은 10년이 넘는 시간을 버텼다. 목사의 심기를 마음껏 거스르면서, 상처가 사라질 때쯤 새로운 상처를 몸에 새겨가면서, 무지한 이들에게 날 선 비난을 들어가면서, 오직 다른 이가 있을 때만 저를 사랑하는 척하는 양아버지의 역겨움을 비웃어주면서.

그리고, 다시 현재. 낡아빠진 창고의 먼지가 가득 쌓인 잡동사니 아래에 맞붙어 앉은 채로 담담하게 김용희는 말했다.

 

 

“근데 진영아, 내가 전부터 궁금한 게 있는데.” 

“뭔데.”

“너, 누구한테 맞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진영은, 용희의 질문에 일순 당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무도 진영에게 묻지 않았으니까. 어쩌다 다친 것이냐고, 누구에게 맞은 것이냐고. 와, 얘는 진짜 알 수가 없네. 언제나 기꺼이 배진영의 예외가 되어주는 김용희. 입양된 이후로는 처음 들어본 타인의 걱정이 제법 반가웠다는 것은… 김용희에게는 비밀.

 

 

“어떻게 알았어? 다들 내가 때리고 다닌다고 생각하는데.” 

“보다 보면 알지…. 너, 맞은 상처만 있고 때린 상처는 없잖아. 네가 진짜 싸우고 다녔으면 네 손도 멀쩡하진 않았을 거야.”

“…똑똑하네. 공부 잘하는 애들은 그런 것도 아냐?”

 

 

김용희는 말없이 웃었다. 웃는 건 또 처음 보네. 용희는 숨을 한 번 들이쉬고 진영에게 물었다.

 

 

“목사님이 때린 거지.”

“응.”

“진영아.”

“어.”

“약은 바르고 다녀. 아프잖아.”

 

 

그러고선 제 주머니에 있던 연고와 밴드를 꺼내 진영에게 건네주었다. 이거 바르고, 이거 붙이면 돼. 김용희는 친절을 베푸는 순간마저도 담담하다. 당연한 일을 한다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고요하게. 진영은 연고와 밴드를 쥔 채로 저에게 내밀어져 있는 용희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오로지 진영을 향한 걱정과 도움을 품은 손, 진영에게 아무런 폭력도 행하지 않을 손.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어느 날 들었던 성경 구절이 떠올랐다. 진영은 신도, 사람도 믿지 않았으나… 김용희는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믿고 싶어졌다. 용희의 안에 자리한 뿌리 깊은 불신이 김용희에 의해 조금은 허물어졌으니까. 진영이 용희의 손에 쥐어진 연고와 밴드를 받으며 말했다. 고맙다, 김용희.

 

진영과 용희는 일어나 창고 밖으로 나섰다. 흰옷에 가득 앉은 먼지를 털어내며 용희가 말했다. 네 계획은 무모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해보자. 그러고 싶어졌어. 용희가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웃는 모습을 많이 보네. 호선을 그리며 접히는 눈이, 말려 올라가는 입꼬리가, 평소의 김용희에게서 쉽게 볼 수 없는 것이었으나 퍽 잘 어울렸다.

 

 

“진영아, 난 먼저 가볼게. 부모님이 찾고 있을 수도 있어서.”

“어, 그래. 가봐. 오늘 와줘서 고맙다.”

“응. 학교에서 봐.”

 

 

이것도 처음 들어본 말…. 김용희와 있을 때는 처음 하는 것이 많다. 진영은 이제야 새삼 깨닫는 것이다. 타인과의 교류는 세상을 넓혀주는 것이라고. 인간이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이유라고. 너랑은 좀 잘 맞을 것 같다. 진영의 감은 틀린 적이 없다.

 

진영은 집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으며 제 몸을 보았다. 군데군데 멍과 생채기가 자리했다. 다 빠져가는 멍 위에 새로 생겨난 보라색의 멍, 흐려진 흉터 위에 벌겋게 그인 생채기, 터진 입술에 앉은 피딱지. 진영은 용희의 말대로 상처 위에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였다. 이 역시 처음 해보는 것이다. 온몸에 상처가 있는 것이 너무도 당연해졌으니까, 아무도 진영이 다쳤을 때 돌봐주지 않았으니까, 진영의 상처를 치료해주지 않았으니까. 진영도 생각해보지 못한 것이다. 다쳤을 때는 상처를 치료해야 한다는 것을. 비록 그 상처 위에 또 다른 상처가 생길지라도, 한 번 생긴 상처를 방치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방치된 상처는 결국엔 흉터가 되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진영의 몸에 쌓인 상처는 진영이 맞고 살아온 세월을 말해주는 증거이고, 그 누구도 진영을 돌보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진영 본인조차. 애초에 상처를 돌볼 여력조차 없었지만, 이제부터라도 해보려 한다. 다친 곳은 아프니까, 낫고 싶으니까, 제 몸을 돌보는 감각이 나쁘지 않았으니까.

 

 

진영이 용희를 관찰하는 동안 용희도 진영을 관찰했다. 다른 사람에게 늘 시비를 걸고 다닌다느니, 다른 사람을 때리는 것이 일상이라느니 하는 소리를 듣는 아이는 폭력적이라는 소문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 있는 것 같았다. 배진영은 학교에서도 늘 조용했고, 수업 시간에는 수업을 들으려 노력했고, 쉬는 시간에는 종종 엎드려 자기도 했고…. 진영은 그 누구에게 말을 걸거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진영은 언제나 질 나쁜 소문을 몰고 다녔다. 학교의 아이들은 쉽게 배진영을 입에 담았고, 쉽게 배진영을 욕했고, 쉽게 혐오했고, 그러면서도 배진영을 무서워하고…. 배진영에게 직접 피해를 본 이는 없는 것 같은데, 누가 배진영에게 맞았다더라, 배진영이 누구에게 시비를 걸었다더라 하는 이야기만 아이들 사이에 돌았다. 배진영은 쉽게 소비할 수 있는 가십거리였으니까, 그래도 되는 존재였으니까. 막상 배진영에게 맞은 이를 데려오라 하면 아무도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배진영은 누구도 때리지 않았으니까. 누구에게도 시비를 걸지 않았으니까.

학교의 선생들조차 배진영을 막 대해도 되는 이 취급을 했다. 배진영이 수업을 듣고자 가만히 쳐다본 것을 감히 학생이 선생을 노려보냐며 소리를 지르기 일쑤였고, 시답지도 않은 트집을 잡아대며 배진영의 태도가 불량하다며 비난을 퍼부었고, 부모 얼굴에 먹칠하는 패륜아라며 서슴없이 모욕을 해댔고…. 그럼에도 배진영은 침묵했다.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일상이라는 듯이, 지겹다는 듯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배진영은 자주 수업을 들을 권리를 박탈당했다. 교실을 나가라는 말에 배진영은 언제나 순응했다. 너는 복도에 멍하니 서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배진영이 사람을 때리지 않았다는 것은 조금만 살펴보면 알 수 있었다. 배진영의 손목에 있는 멍, 얼굴에 있는 자잘한 생채기, 입가에 앉은 피딱지는 배진영이 폭행당했다는 증거는 되어줄 수 있었지만, 배진영이 누군가를 때렸다는 증거는 되어줄 수 없으니까. 사람이 사람을 때리면 때린 이에게도 그 흔적이 남는다. 까져있는 손마디 같은 것들이. 배진영의 손은 멀끔했다. 아무도 배진영을 자세히 살피지 않으니까, 그저 잠깐의 유흥거리로 소비하니까 알지 못하는 것이다. 배진영이 누구 하나 때려본 적 없다는 것을. 애초에 배진영은 타인에게 관심을 두는 편이 아니었다. 그런데 배진영이 왜 굳이 사람을 때리겠는가. 진영의 앞에서 대놓고 소리라도 지르는 것이 아닌 이상 진영은 제 앞자리에 앉은 애의 이름조차 모를 것이 분명했다.

저를 둘러싼 악의적인 이야기에도 침묵으로 일관하는 배진영, 누군가에게 지속적으로 폭행당하고 있는 배진영, 그럼에도 자신의 상처를 돌보지 않는 배진영. 진영에게 담배 피우는 것을 들킨 날, 용희는 약국에 들러 상처에 좋다는 연고와 밴드를 잔뜩 샀다. 혹시 쓸 일이 있을까 싶어 붕대까지도. 제 상처는 치료해 본 적 있어도 남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약국에 들른 것은 처음이다. 배진영은 종종 김용희가 안 하던 짓을 하게 만든다. 그게 나쁘지 않아서, 용희는 작게 미소지었다.

그러곤 한 번 생각하는 것이다. 용희가 스스로 손목에 낸 상처들을 홀로 치료했듯이, 타인이 제 몸에 새긴 상처를 홀로 치료하는 배진영을. 그 생각을 하니 기분이 조금 가라앉았다. 배진영은 상처가 나을 때쯤 새로운 상처를 달고 나타나겠지. 용희는 잔뜩 사놓은 연고와 밴드 중에 하나씩을 골라 챙겼다. 진영에게 새로운 상처가 생길 때마다 연고와 밴드를 건네주기 위해. 진영이 지속적으로 제 몸을 챙길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배진영은, 제 몸을 돌보는 법을 모르는 것 같았으니까. 그 누구도, 용희 본인조차도 모르고 있었지만, 김용희는 무언가를 배우는 것만큼 가르치는 것에도 소질이 있다.

 

먼지가 가득한 교회 뒤편의 창고에서의 만남 이후 한 달이 지났다. 모두가 동복을 벗고 하복으로 갈아입고 녹색이 가득한 교정을 돌아다닌다. 배진영도 예외는 아니었으나, 반팔의 교복 상의는 더 이상 배진영의 몸에 자리한 상처를 가려주지 못했으니까. 또다시 배진영에 대한 소문이 부풀려져 아이들 사이에서 소비되고, 여전히 배진영은 선생들에게 패륜아 따위의 말을 듣고, 수업 들을 권리를 빼앗긴 채 더운 복도에 서 있어야 하고…. 김용희는 배진영에게 가해지는 처사가 부당하다고 생각하였으나 나서지 않았다. 배진영은 장소를 막론하고 단둘이 있을 때를 제외하곤 절대로 말을 걸지 않았다. 아마 배진영의 바닥을 찍은 평판으로 인해 피해를 볼지도 모를 김용희를 걱정하는 것이겠지. 언제나 말을 잘 듣고, 우수한 성적을 내는 형을 연기해야 하는, 모범생의 껍데기를 쓴 용희는 진영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맞겠지만, 진짜 김용희는 그깟 피해 따위 입든 말든 신경도 안 썼다. 다만 침묵하고 있는 이유는… 용희와 엮임으로써 진영이 듣지 않아도 될 소리를 듣게 될 것 같아서. 배진영의 수많은 소문에, 배진영이 김용희를 협박했다느니 하는 이야기 따위를 추가하게 될 것 같아서.

그래서 김용희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배진영에게 도움을 주기로 한다. 평소와 같이 배진영에게 폭언을 퍼붓는 수학 선생에게, 용희가 조용히 손을 들고 말했다. 선생님, 저 38번이 이해가 안 되는데요. 선생이 말을 멈추고 용희를 쳐다보았다. 선생들 사이에서 용희의 평판은 진영과 정반대였다. 모범생, 성실하게 공부하는 학생, 말 잘 듣는 애, 걱정 하나 안 되는 애 등등…. 선생들은 김용희를 꽤 좋아했다. 반항하지 않고, 언제나 네, 네. 순응하는 학생이었으니까. 용희의 도움은 성공이었다. 선생은 폭언을 멈추고 문제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진영은 다시 자리에 앉았고, 오늘은 무더운 복도로 쫓겨나지 않았다.

 

그리고 모두가 하교한 뒤, 용희가 자주 담배를 피우던 학교 뒤편에서 진영과 만났다. 여전히 몸 군데군데 빠지기 시작한 멍과, 새로 생긴 멍이 한데 자리했지만, 약도 바르고 밴드도 붙이라는 용희의 말을 착실하게 듣고 있는지 밴드가 붙어있는 상처도 있었다. 배진영은 성실한 학생이었다. 다만, 가끔 거짓말을 한다. 김용희 앞에서 다친 것을 숨기려 든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하면서,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이건 아마 배진영의 습관이리라. 김용희가 관성에 젖은 사랑을 하는 것과 같이, 첫인상이 최악이었던 담배를 아무렇지도 않게 피우게 된 것과 같이. 김용희가 좋지 않은 습관을 들인 것과 같이 배진영도 좋지 않은 습관을 가졌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배진영은 꽤 잘했다. 하지만 김용희는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고, 잘했으니까. 이것도 김용희의 습관이었으니까. 김용희는 알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배진영이 가끔 바닥에 발을 디딜 때마다 움찔한다는 것을. 배진영의 발목이 조금 부어있는 것을.

 

 

“진영아.” 

“어. 왜.”

“나 따라와.”

용희는 진영의 손목을 잡고 학교 안으로 이끌었다. 진영은 순순히 따라왔다. 어디 가는데? 보건실. 거긴 왜. 너 다쳤으니까. 배진영은 말이 없다. 거짓말을 잘하는 건 아닌가…. 어쨌든 배진영이 순순히 따라왔으니까 그걸로 됐다. 용희는 거침없이 보건실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야, 이렇게 막 들어가도,”

“어. 괜찮아. 이시간에 아무도 없어.”

“와, 진짜 너도 대단하다….”

 

 

용희는 진영을 침대 끄트머리에 앉히고 신발을 벗긴다. 배진영은 별 다른 반응 없이 김용희가 하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을 뿐이다. 진영아, 안 아파? 별로? 배진영은 역시 거짓말을 못 하나보다. 용희가 부어오른 발목을 잡고 세게 누르니까 얼굴 찡그리는 거, 다 봤다. 진영은 머쓱한지 머리 한 번 쓸어넘겼다. 이것도 얼마 전에 알게 된 배진영의 습관. 배진영은 자주 머리를 쓸어넘겼다. 그냥, 습관처럼. 

용희가 능숙하게 부목을 대고 붕대를 감았다.

 

“너는 이런 것도 할 줄 아냐….”

“유튜브 봤어.”

“그래, 잘났다, 너….”

“병원 안 가도 돼?”

“금방 나아.”

“이건 그냥 임시방편인데… 상태 더 안 좋아지면 그땐 병원 가.”

“응.”

 

 

아, 또 거짓말하네. 배진영은 병원 갈 생각도 없으면서 뻔뻔하게 대답했다. 배진영은 거짓말을 잘하지는 않았지만, 종종 했다. 아픈 게 뻔히 보이는데도 안 아픈 척을 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하고... 마음에 안 들었지만, 일단은 침묵했다. 한번 들인 습관을 고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용희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용희가 하는대로 얌전히 치료를 받던 진영이 물었다.

“근데, 어떻게 알았냐.”

“어떻게 몰라. 너 절뚝거리는 거 다 티 나던데.”

 

 

용희는 담담하게 말했다. 모를 수가 없지. 용희는 관찰하는 것을 잘 했고, 그렇기에 진영이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며 걷는 중에도 발을 디딜 때마다 잠깐씩 눈살을 찌푸리는 것을 다 봤으니까. 용희도 진영에게 제 몸에 있는 상처에 대해 말하지 않았으나, 진영도 비슷했다. 교복 틈으로 언 듯 보이는 멍과 생채기 같은 것들을 숨기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용희는 알 수밖에 없다. 용희는 진영이 궁금했고, 그렇기에 용희의 시선은 늘 진영을 향하니까. 

용희가 진영의 발목을 감은 붕대에 테이프를 붙이며 말했다. 진영아, 다 됐어. 

 

 

“김용희.”

“응.”

“고마워.”

“응.”

 

 

배진영은 거짓말도 종종 했지만, 고맙다는 말도 제법 자주 했다. 배진영은 표현하는 것에 있어서는 거침이 없었다.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 미안하면 미안하다, 고마우면 고맙다…. 표현하는 것에 거침없는 건 천성이겠지. 솔직함은 가지지 못한 김용희는 배진영의 천성이 좋았다. 거짓으로 덧씌운 삶을 살다 보면, 온갖 가면을 쓴 채로 자신과 같이 솔직하지 못한 사람들과 마주하다 보면, 배진영만의 표현방식이 좋아질 수밖에.

 

 

“진영아, 그래도 다음부턴 아픈 건 숨기지 마.”

“응.”

 

 

김용희는 그렇게 말하곤 웃었다. 유리창을 통해 들어온 빛이 용희의 위로 쏟아졌다. 노을을 담은 김용희의 모습은 퍽 잘 어울렸으나… 진영의 시선을 훔친 것은 다른 것이다. 김용희의 손목에는 늘 시계가 자리한다. 이상할 것도 없다. 다만, 그 시계 아래에 무언가를 감추고 있을 줄은 몰랐으니까. 진영은 노을을 담은 채로 웃는 용희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제 발목에 닿아있는 용희의 손목에 자리한 흉터와 마주하게 된다. 시계를 헐겁게 채운 것인지 그 틈으로 김용희의 손목에 길게 늘어진 흉터가 시선을 뺏었다. 김용희와는 어울리지 않는, 김용희의 살을 가르고 피를 흘려보냈을 상처들이 저들이 생성된 시간을 알리며 자리했다. 배진영은 알지 못하는 과거와 현재가 김용희의 손목에 흉터의 형체를 띠며 혼재하였으나, 그 시간을 물을 수 없는 배진영은 모르는 체를 한다. 아무것도 보지 않은 척을 하고, 입을 다물고, 당장이라도 김용희의 손목을 붙잡고 묻지 않으려 애를 쓰고…. 내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진영은 조용히 시선을 돌리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제 가자. 응. 보건실의 문을 닫고 나서니 해가 수평선 아래로 사라지는 중이라 복도가 푸른 색으로 물들었다. 배진영은 제 옆에 나란히 서서 제 보폭에 맞추어 걸어주는 김용희를 흘긋 쳐다보며 물었다. 김용희, 너는 여기 나가면 뭐 할거야.

 

 

“여기 나가면? 음… 생각 안 해봤는데.”

“하고 싶은 거 없어?”

“…응. 아직은. 너는?”

“…난 그냥, 뭐, 서울 가서 사는 거.”

“왜 서울이야?”

“촌구석도 질리고, 바다도 질리고. 그리고 원래 사람은 서울로 가라던데?”

 

 

꿈이라기엔 소박하고, 목표라기엔 두루뭉술한 진영의 말을 들은 용희는 겨우 그게 무슨 꿈이냐며 비웃지 않는다. 평소처럼, 진지하게 진영의 말을 듣고, 담담하게 답한다. 김용희는 배진영의 앞에서 하는 말에는 늘 진심을 담는다.

 

“가면 되겠네. 여기 나갈 거잖아.”

“너도 같이 가. 너 공부 잘하니까 대학도 서울로 갈 수 있을 거 아냐.”

“나 하고 싶은 거 없는데….”

“이제부터 생각해봐. 사람이 꿈이 있어야지.”

 

 

김용희가 스스로 손목에 상처를 내는 이유, 아주 가끔 제 삶에 미련이라곤 없는 것처럼 구는 이유, 공부도 잘 하면서 하고 싶은 거 하나 없는 이유를 배진영은 아직은 물을 수 없다. 배진영이 아직 김용희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있듯이, 김용희가 스스로 말해주지 않는 것에 물음을 던지는 것이 자신의 이기심임을 알기에. 그래서 진영은 다른 방식으로 용희에게 묻기로 한다. 너는 나중에 뭐 할 거야, 꿈이 뭐야…. 어린 애들에게나 할법한 질문이나 던지며, 진영은 희망한다. 이렇게라도 김용희가 미래에 대한 미련 한 자락을 얻어낼 수 있기를. 김용희의 안에, 앞으로 다가올 시간에 대한 아주 자그마한 궁금증이라도 생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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