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하소서 4

배룡

소재주의 (자살, 자해, 가정폭력 등.)

 

 

 

 

  구원하소서

- 4 -

 

 

 

구원에 대해 생각하여 봅시다.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하나,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하여 줌. 둘, 인류를 죽음과 고통과 죄악에서 건져내는 일. 사전적 의미로는 이렇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바라는 구원은 무엇입니까? 누구에게 구원받기를 바라십니까? 어떻게 구원받고 싶으십니까? 구원받기 위해선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이 물음에 대해 여러분은 진지하게 고민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저 막연히, 막연히, 막연히 기도만 한다면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세상에 무수히 많은 무지하고도 간절한 이들의 기도 중에서 나의 간절한 기도가 필시 신께 닿으리라 생각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여러분은 아셔야 합니다. 구원받을 수 있는 이는 신에게 믿음을 증명한 이들 뿐입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진실된 기도인지, 거짓된 기도인지 신께서는 다 아십니다. 여러분은 신에 대한 믿음을, 진실된 마음을 증명하셔야 합니다. 그리하면 여러분의 기도가 신께 닿을 것입니다. 기도하십시오, 믿으십시오, 증명하십시오. 그것만이 구원에 닿을 유일한 방법입니다. 자, 기도합시다. 나를 위해, 내 이웃을 위해, 나의 기적을 위해, 영광을 위해, 하나 될 우리를 위해, 모두의 구원을 위해…. 아멘.

 

 

그놈의 구원, 그놈의 믿음, 그놈의 증명. 아버지이자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웃음이 나려는 것을 진영은 간신히 참아냈다. …그들이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함은 그 눈이 가리워져서 보지 못하며 그 마음이 어두워져서 깨닫지 못함이라. 허나 이곳에 모인 수많은 간절히 구원을 바라는 이들은 스스로 눈을 가렸다. 깨달음을 회피하고 있다. 무지함으로 얻을 수 있는 마음의 안식을 위하여.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추고, 타인의 생각을 아무런 의심도 없이 받아먹으며, 그저 믿음, 믿음, 믿음만이 존재하나니. 누구를 믿으십니까. 저 위에 계실 어느 분을 믿으십니까. 아니면 눈앞의 목사를 믿으십니까. 누구에게 구원을 바라십니까. 당신이 증명한 믿음이 신께 닿으리라 생각하십니까.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르신 신께서 당신이 믿음을 증명하지 않으면 내치리라 생각하십니까. 믿음을 증명하는 방식이 올바르다 생각하십니까. 그들은 이 물음에 대하여 어떠한 답도 내놓지 못할 것이다. 생각하는 것을 멈추었으니까. 눈앞에 있는 목사의 말만을 삼켜내고, 소화 시키지 않은 채로 영원히 품고 살 테니까. 축하드립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목사에게는 증명되었습니다. 하지만 목사는 여러분의 믿음을 신께 전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바란 구원은, 여러분의 믿음은, 여러분이 해낸 증명은 목사의 탐욕을 채우는 일에 적절히 사용될 예정입니다. 아멘.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고, 속으로 기도가 아닌 물음을 내던지던 진영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아멘을 뱉으며 눈을 떴다. 여전히 진영의 주위는 방언을 내뱉고, 눈물을 흘려대며, 누구에게 향하는지도 모를 구원을 바라는 기도로 가득하다. 무수한 무지와 마주하고 있는 것은 피곤하다. 그럼에도 진영은 답지 않게 꼬박꼬박 예배에 참석했다. 김용희가 있었으니까. 온통 희기만 한 옷을 입고, 마스크를 쓰고, 자리는 늘 김용희의 대각선 뒷자리다. 김용희는 여전히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고, 조용히 앉아있다. 김용희도 바라는 것이 있으려나….

 

몰래 예배당을 빠져나온 진영은 마스크를 내리고 바깥 공기를 한 번 들이마신 뒤, 잠시 생각해본다.

 

사람이 죽었다. 동네 끝자락에 있는 파란 지붕 집에 사는 누나였다. 배진영을 멸시 어린 눈길로 보던, 배진영에게 회개하라 소리치던…. 어떤 이도 그 누나의 죽음을 입에 올리지 않고, 애도하지 않고. 마치,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파란 지붕의 집에 노란 선이 그이고, 허락된 이들만이 출입할 수 있는 공간에서 많은 것이 빠져나와 한 사람의 죽음의 조각이 된다. 조각을 맞추어낸 이들은, 자살이라는 단어로 조용히 한 사람의 생에 마침표를 찍는다.

 

배진영은 떠올린다. 멸시 어린 눈길을, 회개하라 소리치던 목소리를, 그리고, 배진영의 손목을 잡아채던 손길을. 너, 너 도망가. 아니, 너도 알아? 두서없는 물음임에도 배진영은 완벽히 해석된 문장을 만들어낼 수 있다. 배진영은 눈 앞의 여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입을 연다. 누나, 배는 타지 마요…. 배진영은 들키지 않았기에, 아직은 안전하다. 어쩌면, 쓸모가 남았기에 안전한 것일 수도 있고…. 김용희를 두고 도망칠 생각 따위는 추호도 하지 않은 배진영이 해줄 수 있는 조언은, 배를 타지 말라는 것뿐이다. 영원히 바다에 가라앉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조각난 채로 가격이 매겨지고 싶은 게 아니라면, 빨리 이 동네에서 벗어나기를. 그리고, 절대로 잡히지 않기를. 배진영은 아주 오랜만에 기도를 한다. 하지만 배진영의 기도는 이번에도 신께 닿지 않았다. 역시 신은 없는 것 같네.

그 누나는 혼자 살았고,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았고, 그 덕에 장례식조차 치러지지 않았다. 가족이 정말로 없는 것인지, 가족에게 연락하지 않은 것인지는 배진영은 알 수 없다. 죽음이 처리되긴 했을까? 배진영은 고인을 위해 마지막 기도를 한다. 누나, 하루빨리 완전한 죽음을 맞이하세요.

 

예배당 안에 앉은 용희는 눈을 감고 조용히 생각한다. 

용희는 부모님을 시험하고자 했다. 저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을 버릴 수가 없었다. 이건 용희의 미련이었다. 정말로, 정말로 저를 단 한 순간도 사랑하지 않았는지.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는지. 내가 죽어도 하나도 슬퍼하지 않을 것인지…. 용희는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애써 모른 척을 했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그러나 용희는 제가 생각한 답이 맞았음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지독한 감기였다. 고열로 시야가 흐릴 정도였음에도 시험은 치러야 했다. 하지만 좋지 못했던 몸상태 덕분에 용희는 결국 한 문제에서 실수를 해 틀리고 말았다. 부모님은 열이 올라 붉은 얼굴을 하고, 기침을 쏟아내는 용희를 보면서도 걱정 하나 보이지 않았다. 부모님의 관심사는 용희가 틀린 문제에 대한 것이었으니까. 몸관리 하나 제대로 못해서 문제를 틀리냐고 했다. 겨우 이따위 성적표를 지금 보여주는 것이냐고. 형처럼 완벽하지 않은 자식 따위는 필요 없다고. 용희는 그 말을 듣고서 제 안의 무언가가 부서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 나는 전에도, 앞으로도 부모님에게는 영원히 필요를 증명하지 못하면 가식뿐인 애정 한 자락도 얻지 못하겠구나. 나를 절대로 사랑하지 않겠구나. 단 한 순간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구나….

용희는 그날, 손목을 그었다. 죽고 싶었다. 날카로운 날이 제 손목의 여린 살을 가르고 들어가며 붉은 피를 천천히 흘려보냈다. 그게 너무 아팠다. 길게 그인 상처에서 빠져나오는 피를 보며 용희는 생각한다. 그래도, 아직 그렇게 죽고 싶지는 않은가 봐. 동맥까지 닿지 못한 칼날은 결국 용희를 죽이지 못했다. 용희는 그렇게 몇 번이고 제 죽음을 재 보았다. 그렇게 생을 연명했다. 용희의 손목에 흉터가 사라질 틈이 없을 정도로. 하나의 상처가 흐려질 때면 새로운 상처가 생겨났으니까.

그러곤 용희는 종종 생각해 본다. 용희가 죽음을 재고 있음을 알면 부모님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조금은 걱정할까. 제가 언젠가 죽어버리진 않을까 하고 걱정을 보내긴 할까. 아니면, 쓸데없는 짓에 시간을 쓰며 공부에 지장을 주는 것이 아닌지에 대해 걱정하고, 감히 공부에 방해되는 짓을 한 용희에게 정신을 차리게 만들어주겠다는 이유로 폭력을 선사할까. 용희는 확신한다. 부모는 저를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오로지 폭력을 선물할 것이다. 용희가 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을 때 그랬듯이.

용희는 허탈하게 웃었다. 제 별거 없는 인생 하나를 버리는 것도 겁이 났고, 그렇다고 부모에게 온전히 맞춘 삶을 사는 것은 싫었다. 그럼에도 맞기 싫다는 마음이 자꾸만 용희를 순응하게 만들었다. 형은 어떻게 그랬을까. 형은 높은 곳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 높은 곳에서, 한 번을 망설이지 않고 뛰어내렸을까. 형은 얼마나 몰려있었던 걸까…. 새삼 형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 어떤 용기도 가지지 못한 용희와 달리 형은 제 죽음을 선택할 용기를 가졌으니까. 끝내 실행했으니까.

 

내 부모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단 사실을 부정하고 싶어서, 종종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음에도, 가끔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음에도, 용희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하려 노력했다. 그렇게 1년 반, 용희는 1년 반을 버텼다. 스스로 해를 입히면서, 종종 죽음을 바라면서….

용희는 삶에 대한 의지가 없다. 내일 당장 죽는대도 아쉽지 않다.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이후에도, 용희는 종종 손목을 그었다. 길게 그인 선을 따라 맺히는 피와 고통을 느끼며 죽음을 재본다. 내일 당장 죽는대도 아쉬운 거 없는 김용희가 살아있는 이유는, 배진영 때문에. 같이 이 동네를 빠져나가자고 말한 배진영이 있어서.  

용희에게 배진영은 예외다. 유일하게 김용희를 김용희 그 자체로 봐주고, 김용희 자체를 필요로 하고, 김용희의 삶에 자꾸 간섭하려 들고, 김용희를 기꺼이 배진영의 계획에 동참시켜 주고…. 한평생 형의 그림자에 가려져, 끝내 형을 흉내 내는 것을 강요받은 용희는, 제 존재에 의문을 느꼈다. 그럼, 나는? 형이 아닌 나는? 김용희는 필요하지 않은 존재인가? 자신을 낳은 부모조차 김용희를 필요로 하지 않는데, 오로지 배진영만이 김용희를 원했다. 생각보다 기분 좋은 일이었다,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진영이한테는 형이 아니라, 내가 필요하구나. 김용희는 기꺼이 배진영의 조각이 되어주기로 한다. 배진영은 김용희를 필요로 했고, 김용희는 배진영이 궁금해졌으니까. 왜 내가 필요할까, 네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은 뭘까, 너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궁금한 것이 생기면 답을 찾아내는 것을 좋아하는 김용희는, 잠시 죽음을 뒤로 미루기로 한다.

그리고 용희는 다시금 생각해본다. 사랑받고 싶다는 감정을. 그래, 사랑을 바랐다. 정확히는, 부모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음을 부정하고 싶어서, 사랑받기를 바랐다. 그럴 리가 없다고, 나를 사랑하지 않을 리가 없다고. 그렇기에 용희는 노력했다. 형을 흉내 내면서, 부모가 바라는 형의 모습을 해주면서 부모님이 나를 사랑한다고 믿기 위해. 순간순간 올라오는 의문들은 삼켜내기 위해 노력했다. 내가 죽으면 슬퍼할까, 정말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걸까, 내가 뭘 잘못했을까…. 앞의 두 물음에 대한 답을, 용희는 알았다. 그러나 관성처럼 사랑하다 보니, 관성처럼 부정했다. 그리고, 용희에게도 한계가 왔다. 이제 더 이상 부모에게 줄 사랑이 남지 않아서, 그깟 사랑 따위, 받지 않아도 될 것 같아져서, 저를 사랑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사랑할 일이 없음을 받아들이고자 해서, 용희는 관성처럼 사랑하는 일을 그만두기로 한다.

 

용희는 이제 감았던 눈을 뜬다. 그리고, 손을 모으고, 내뱉는다. 

아멘.

 

 

 

배진영의 일상은 대개 이렇다. 김용희가 정성껏 치료해준 발목을 방치 해둔 채 병원에 가지 않았다가 김용희에게 핀잔을 듣고, 목사님께 열심히 개겨 입술 한 번 터져주고, 학교에 가서 아이들의 멸시인지, 두려움인지 모를 눈빛을 받고, 종종 수업 들을 권리를 박탈당한 채로 무더운 복도에서 시간 죽이고, 점심시간에 아주 가끔 김용희 따라가서 담배 피우는 거 구경하고, 사탕이나 얻어먹고…. 

진영은 종종 용희의 일탈에 동조했다. 용희는 진영의 일방적인 동조를 막지 않았다. 진영을 향한 배려인지, 어느 날부턴 멀찍이 떨어져서 담배를 피우길래 진영이 꾸역꾸역 옆으로 따라붙자 그때는 말 없는 용희가 진영에게 말을 걸었다.

 

“…간접흡연이 취미야?”

“그건 아닌데.”

“그럼 왜 자꾸 붙어.”

 

용희는 질문을 자꾸 혼잣말처럼 뱉었다. 진영은 음, 그냥. 하고 답했다. 그러곤 그냥 씩 웃었다. 

용희는 진영의 웃는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누구에게도 말을 걸지 않고, 저를 향하는 물음에도 답을 내어놓지 않던 진영이 용희에게 만큼은 자꾸만 목소리를 냈다. 자꾸만 다가오고, 생긴 것과 달리 꽤 살갑게 굴었다. 용희와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러나 거북하진 않았다. 웃는 얼굴로 저를 대하는 것은 다른 아이들과 비슷했으나, 신을 믿지 않는 것을 들키게 되면 언제든 저를 향해 회개하라 소리칠 준비가 되어있는 아이들과는 달랐으니까. 용희는 비틀린 믿음을 바탕으로 한 우정 따위에는 관심 없었다.

용희와 진영이 사는 동네는 모두 하나의 교회에 다닌다. 이 동네는 인위적으로 생성되었다. 교회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마을이다. 마을의 모두가 교회의 신도였으니까. 누군가는 저 자신의 구원을 바라며, 누군가는 제 가족이 회개하여 구원받기를 바라며 모인 이들이었다. 그 속에서 신을 믿지 않는 진영은 이물질이었다. 진영은 제가 신을 믿지 않음을 숨기고 다니지도 않았다. 숨겨야 할 일이라 생각한 적 없으니까. 무언가를 믿는 사람이 있으면, 믿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도 당연한 이치인데 이 마을은 그것을 용인하지 않았다. 교회의 간부 소리를 듣는 마을의 몇 어른들은 진영을 보면 손을 모으고 말한다.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진영을 마주한 것 자체가 죄를 지은 것과 마찬가지라는 듯이. 그러곤 나긋이 말한다. 진영아, 회개해야지. 진영은 그들에게 답하지 않는다. 그저 지나쳐갈 뿐이다. 아, 지긋지긋하네. 이런 생각이나 하면서. 

용희는 막 전학왔을 때를 떠올려 보았다. 용희가 새로 속하게 된 1학년 3반도 다를 바 없었다. 이 반의 모든 아이가 그 교회를 다녔으니까. 용희는 자연스럽게 아이들 사이에 녹아들었다. 같은 신을 믿는단 이유 하나만으로 아이들은 용희에게 살갑게 굴었으므로. 어딘가 어긋난 아이들의 호의가 달갑진 않았으나 웃는 얼굴로 다가오는 아이들을 내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비틀린 믿음 속에 살며 제 신실함을 증명하기 위해 안달이 난 이들 속에서 진영만이 유일한 예외였다. 진영은 제 신앙을 증명하려 들지도 않았고, 교회의 청소년부에도 속하지 않았고, 같은 공간에 존재하면서도 늘 한 발자국 떨어져서 이 모든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단 표정을 하고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용희는 늘 진영이 궁금했다. 목사님의 아들이라면서도 신을 믿지 않는 그 애가, 예배당에 앉아 있으면서도 십자가를 바라보는 시선에 어떤 감정도 담지 않은 그 애가, 남들이 간절히 구원을 바랄 때 무엇도 빌지 않는 그 애가, 용희는 궁금했다.

그렇기에 용희는 진영을 지켜보았다. 진영은 마을의 그 누구에게도 말을 걸지 않았고, 그 누구의 물음에도 답하지 않았으나 마을 사람들은 끊임없이 진영에게 말을 했다. 진영이 답하지 않아도, 진영이 무감한 표정으로 저를 내려다보기만 할 뿐이어도, 사람들은 포기라는 말을 모르는 것처럼 굴었다. 기이할 정도로 맹목적이었다. 일방적이었고. 진영을 회개시키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뒤에서는 진영에 대한 욕을 일삼으면서도 진영의 앞에선 진영을 회개시키기 위해 열성이었다. 누구에게도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는 진영은 사람들의 태도가 익숙한 듯이 보였고, 종종 지겨워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용희가 물었다. 진영에 대해. 진영이한텐 왜 그러는 거예요? 교회의 어른들은 용희의 물음에 하나같이 웃으며 말했다. 진영이는 회개하지 않았으니까… 우리가 도와줘야 해. 그럼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어. 용희는 그 순진하고도 신실한 답변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도와준다, 고…. 마을의 인간들은 저들의 행위에, 제가 품은 생각에 그 어떤 의문조차 가지지 않은 듯했다. 미친 놈들 밖에 없네, 진짜….

과거를 회상하던 용희가 길게 한숨을 한 번 쉬고 말했다. 진영아, 나 멀리서 필게. 너 담배 냄새 싫어하잖아. 됐어, 걍 펴. 김용희는 배려심이 넘쳤으므로 담배 냄새 맡으면 기침하는 배진영을 위해 멀찍이 가서 피우려고 했으나, 배진영의 대답은 늘 같았다. 됐어, 그냥 펴. 상관없어. 그래놓고 배진영은 기침을 세 번은 했다. 미안, 나 쎈 거 피워서…. 너 그러다 일찍 죽는다…. 그럼 김용희는 멋쩍게 웃으며 바지 주머니에서 사탕 꺼내서 배진영에게 건넸다. 진영이 익숙하게 받았다. 용희가 담배를 피우는 동안 진영은 꼬박꼬박 그 옆을 지켰기에, 용희는 그런 진영을 위해 사탕을 챙겨 다녔다. 맛은 매일 달라졌다. 언제는 딸기맛, 언제는 포도맛, 언제는 계피맛…. 진영은 주는 대로 그냥 다 받아먹었다.

배진영은 김용희가 건넨 사탕 껍질 까서 입 안에 넣고 굴리며 말한다. 포도맛이네. 응, 포도맛. 싫어? 아니, 괜찮네. 이런 대화나 나누고.

 

용희는 진영을 빤히 쳐다보다가, 담배 한 번 빨아들였다가, 담뱃재 한 번 털고, 입술 한 번 꾹 깨문 뒤, 말한다. 진영아, 나는 솔직히 일찍 죽어도 별 상관은 없어. 김용희는 종종 죽음을 입에 올리는데, 그게 참, 자기 일 아니라는 듯이 평온하게 말해서, 너무 담담해서, 정말로, 진심인 것 같아서…. 배진영은 김용희가 입에 죽음을 담으면 늘 말했다. 넌 어린 게 뭐가 그렇게… 뭔, 죽어도 상관없긴. 야, 살아서 여태까지 못 해본 거 다 하고 살아. 저보고 죽지 말라고 말하는 배진영이 좋아서 김용희는 그냥 말없이 웃었다. 속으로 생각한다. 내가 죽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은 진영이 너뿐일 거야. 김용희가 조용히 웃고만 있으면 배진영은 야, 대답 안 하냐? 하고 묻고, 그제야 김용희는 음, 알겠어. 그럴게. 하고 답한다. 배진영은 김용희가 거짓말하고 있음을 안다.

어느새 담배가 손 마디만큼 짧아졌다. 용희는 담배를 발로 지져 끄고 제 옆에 쪼그려 앉은 진영을 보았다. 진영이 조용히 상념에 빠져 있었다. 무슨 생각 할까…. 용희가 담배 태우는 동안 땅만 바라보는 배진영의 머릿속이 복잡해 보임을 다 알았지만, 용희는 묻지 않았다.

파란 지붕 집 누나의 죽음에서 2주가 지났다. 배진영은 파란 지붕 집 누나의 죽음의 원인을 안다. 자살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럼 그렇지. 아, 나도 들키면 자살한 게 되겠네, 하고 생각했다. 그러곤 생각해본다. 자신이 죽었을 때의 김용희를. 김용희를 내보내지 못했을 때의 상황을. 아, 최악이네. 그럼 진짜 개죽음이잖아. 배진영은 신중하게 고민한다. 한번은 말해둬야겠지, 정말, 정말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서. 한참을 가만히 땅만 쳐다보던 진영이 고개를 들고 용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김용희”

“응.”

“내가 너한테 열두 시간 이상 연락 없으면 도망가.”

“…어디로?”

“배는 타지 말고…. 너 달리기 잘하냐? 산으로 숨었다가 조난 당했다고 신고해. 내가 알기로 그쪽까지 연결되진 않았으니까.”

“…너는?”

“이건 진짜 최후의 수단이니까, 뭐…. 나가면 다 잊어. 여기에서 본 거, 들은 거, …나까지도. 너는 그냥, 나가면, 앞으로 뭐 해먹고 살지나 걱정해.”

“…너는 그냥 죽겠다는 말로 들리는데, 진영아.”

“길동무 많을 거 같은데 그중에서 나만 천국 가라고 앞으로 기도 좀 하던지.”

“그 누나 때문에 그래?”

“용희야.”

“…….”

“앞으로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누나 얘기는 하지 마. 누구한테도. 없었던 거야. 그 누나.”

 

 

배진영은 그렇게 말하곤 웃었다. 아니야. 내가 그랬잖아. 너 데리고 나갈 거라고. 걱정하지 마. 그냥, 그냥 한 번 해본 말이야. 김용희는 배진영의 말이 진실이길 바란다.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