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소설 타입 23

명탐정 코난 - 아무로 토오루

“레이땅, 나 왔어!”

딸랑거리는 종소리와 함께 맑은 목소리가 들렸다. 카페 문이 활짝 열리며 약속이라도 한 듯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쪽으로 쏠렸다. 유이는 늘 그렇듯 로리타 계열의 옷을 입고 있었다. 귀엽다고 해야 하나, 그런 의상이었다.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데 자리 잡고 있었던 코난은 유이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아무로 형은 아직 안 왔어요.”

“엑, 어째서?”

“잠시 심부름 갔다고 하는데 조금 있으면 온대요. 그렇죠, 아즈사 누나?”

코난이 익숙하게 아즈사를 보았다. 편히 쉬고 있었던 아즈사는 검지와 엄지를 동그랗게 말았다. OK, 그렇다는 뜻이다. 아직 저녁 피크타임이 열리기 전이다. 그전까지 쉴 수 있다면 푹 쉴 요량이니라. 아직 제대로 된 아르바이트를 해본 적이 없었지만, 늘 포와로가 북적거릴 때마다 힘들게 일하는 아즈사를 많이 보았다. 코난은 되도록 아즈사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유이 또한 비슷했다.

코난이 앉은 자리에는 네 명의 아이들이 앉았다. 겐타, 미츠히코, 아유미, 하이바라. 코난까지 있는 걸 보아 소년 탐정단이 모인 모양이다. 유이는 테이블을 붙인 채 다가갔다. 기왕이면 아는 사람이랑 같이 있는 게 즐겁다.

유이는 메뉴판을 든 채 이리저리 고개를 기울였다. 포와로에 있는 음식은 전부 맛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정도였다. 가격대도 적절하고, 아무로가 온 이후로는 인기가 많아졌다. 이렇게 평일 낮에 자리를 찾을 수 있는 게 기적인 지경이었다.

“그나저나 유이 누나.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응? 뭔데?”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 기왕 카페에 왔으니 맛있는 게 먹고 싶다.

한창 메뉴를 고르느라 정신이 없었으나 코난의 말에는 대답할 수 있다.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유이가 작게 미소를 지으며 코난을 보았다. 코난은 유이를 보고 있자니 어쩐지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었다. 란을 좋아할 때와 전혀 다른 느낌에 당황했다. 처음에는 왜 이런 건지 알지 못했다. 코난은 간질거리는 감각을 억지로 누른 채 유이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왜 아무로 형아를 레이땅, 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그야 레이땅은 레이땅이니까 그렇지. 코난이라면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하.”

겉으로 수긍한 척 굴었지만, 코난은 꽤 곤란한 상태였다. 힐긋 하이바라를 보았다. 하이바라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어깨를 으쓱였다.

안 그래도 유이는 감이 좋은 사람이다. 코난이나 아무로처럼 사실에 기반한 추리를 하는 게 아니다. 모든 걸 제 감에 의지하여 맞춰낸다. 가히 신기에 가까웠다. 더 대단한 점이 있다면 비정상적일 정도로 잘 맞았다.

그렇기에 어찌 말할 수 있을까. 아무로가 공안이라는 건 가장 숨겨야 할 비밀이다. 그 전에 코난은 유이가 공안인 걸 어떻게 알아낸 건지 생각해보았다. 슬쩍 떠볼까? 하지만 자신의 비밀이 아니다. 아무로가 어디까지 용인하고 있는지 파악하지 못했다. 하이 리스크. 코난은 곧장 포기했다. 유이는 검은 조직과 연관이 없는 사람이다. 누구처럼 거짓으로 위장해서 살아가지 않는다.

‘어차피 아무로 씨가 알아서 하겠지.’

코난은 그저 아무것도 모른 척 굴면 그만이다.

“언니! 뭐 먹을 거예요?”

“지금 고민 중이야.”

넉살 좋은 아유미가 유이에게 말을 걸었다. 아유미는 메뉴판을 들고 유이와 절반씩 나누어 보았다. 아유미는 이것저것 추천해 주었다. 안 그래도 코난이 포와로 위층에 살고 있었다보니 어지간한 메뉴는 다 제패했다. 아유미는 같이 고민하다가, 이내 하이바라에게 손짓했다. 하이바라는 아유미의 손짓에 아무 말 없이 다가갔다. 얼떨결에 여성 세 명이서 유이가 먹을 음식을 고민하게 됐다.

처음에는 메뉴를 고민할 줄 알았는데, 어느새 세 명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주로 아유미가 학교에 있었던 일이나, 5학년의 선배가 사귄다는 등 출처를 알 수 없는 카더라 소문을 위주로 말했다. 유이도 당장 무언갈 먹을 생각이 없었던 건지 편하게 대화했다. 미츠히코랑 겐타는 여자들의 수다에 끼어들지 못했다. 코난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는 굳이 끼어들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나저나 아무로 씨랑 유이 누나랑 사귀는 걸까?”

“사귀지 않을까?”

“흐음….”

어느새 남자들 또한 유이의 연애에 관심을 두게 됐다. 아즈사 또한 유이의 연애가 궁금했는지 슬쩍 코난을 보았다. 보는 것으로도 모자라 콕콕 가볍게 건드린다. 혹시 대신 말해줄 수 있냐는 메시지였다. 코난은 어째서 제게 무거운 짐을 떠넘기는 건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궁금한 건 자신도 마찬가지였기에, 코난은 슬그머니 유이에게로 향했다.

과연 아무로와 유이는 사귀는 것일까. 그렇다면 도대체 언제부터.

“유이 누나.”

“응?”

“누나, 혹시 아무로 형이랑 사귀… 나요?”

어쩐지 자신이 고백하는 거 같았다. 유이는 두 눈을 크게 뜬 채 코난을 보았다. 잔뜩 긴장한 코난과 달리 유이는 평온해 보였다.

“아니. 나, 아직 사귀는 사람 없는데?”

마치 당연한 걸 왜 묻냐는 투다. 코난을 비롯해 유이의 주변에 앉은 사람들은 그 대답에 깜짝 놀랐다. 안 사귄다고? 그럼 어째서 매일 아무로를 만나러 포와로에 오는 걸까. 애초에 아무로도……. 온갖 혼란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오직 유이만이 그 혼란 속에서 멀쩡하게 있었다.

설마 사귀지 않았다니. 당연히 사귄다고 생각했던 코난은 뻘쭘해졌다.

아유미는 어째서 사귀지 않냐며 작게 투정 부리듯이 말했다. 유이는 손을 뻗어 아유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카츄샤가 삐뚤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유이는 아유미만으로 부족해 하이바라의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했다. 하이바라는 제게 뻗은 손을 피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거부하려고 살짝 몸을 튼 순간 유이의 눈빛이 험악해졌다. 어린애 취급 받을 나이는 지났는데. 하이바라가 작게 중얼거린 거 같았다.

“레이땅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잖아.”

언제 온 걸까? 카페 문이 열리는 소리조차 듣지 못했다. 그만큼 유이의 말에 넋을 잃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아무로는 제게 부담스러울 정도로 노골적인 시선에 입을 다물었다. 본능적으로 유이가 제가 없는 사이에 무언가 저질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이 정도는 일상인 탓에 익숙해졌다는 점이다. 그나저나 이번에는 무슨 말을 한 걸까. 도무지 짐작가지 않았다.

아무로가 평소와 다르다는 걸 알아차린 건 저를 빤히 바라보는 아즈사의 시선이었다. 아즈사는 좋은 사람이다. 어지간한 사람들은 다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유이도 제 나름대로 아즈사와 친하게 지냈다. 그런 아즈사의 표정이 험악할 정도면 무슨 말이 오갔던 걸까. 역시 유이가 무언가 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아무로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그러다 제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이를 찾았다.

“코난. 지금 내가 여기에 오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 수 있어?”

“…아무로 씨랑, 둘이 사귀는 거요.”

“…….”

코난은 순순히 정답을 알려주었다. 이제 정답을 안 아무로는 이 상황을 수습해야 했다.

“레이땅은 레이땅이잖아. 왜 레이땅이라고 못 부르게 하는 건데?”

“아니, 그건…. 하, 됐다.”

유이는 두 눈을 크게 뜬 채 아무로를 보았다.

유이는 매번 아무로를 레이땅이라고 불렸다. 어쩌다 저 호칭을 고집하게 된 건지 모른다. 아무로 또한 정말, 왜 그렇게 부르는 건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물어보아도 레이땅은 레이땅이라는, 제 정체를 파악한 건지 아니면 파악하지 못 한 건지 알 수 없는 대답만 내뱉었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이라고 치부하면 좋을 텐데. 그러나 유이는 종종 날카로울 정도로 아무로를 꿰뚫는 발언을 종종 입에 담았다. 아무로가 유이를 설득하지 못한 채 어떻게 해야 이 레이땅 호칭을 그만둘 수 있는 건지 생각해 보았다.

“다른 호칭은 안 돼?”

“레이땅을 레이땅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건, 어쩐지 정 없단 말야.”

그 정이 없다는 이유로 계속해서 레이땅이라고 부르다간 자신이 큰일날 거 같은데.

안 그래도 모두가 보는 앞이었기에 아무로는 얌전히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자신이랑 유이의 관계를 오해하는 거 같았지만……. 아무로는 이 오해를 어찌해야 좋을지 생각해 보았다. 안 그래도 유이는 제가 소중히 간직한 비밀을 절반쯤 아는 눈치였었지만, 코난처럼 아무로는 유이에게 어디까지 알고 있냐고 떠볼 수 없었다. 그 과정을 거치는 과정에서 모르는 걸 알게 만들 수 있는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레이땅이라곤 부르지 마, 하다못해 모두 앞에선.”

“노력해 볼게.”

유이는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를 지었다. 아무로는 그 미소에 홀리지 않도록 정신을 잡았다. 유이는 이렇게 훅 치고 들어올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럴 때마다 아무로는 곤란했다. 이렇게 나오는 유이를 온전히 막을 제정신이 없었다.

한편 미츠히코는 슬쩍 겐타와 코난의 어깨를 콕콕 건드렸다. 그제야 코난이랑 겐타가 미츠히코를 보았다. 제 959회, 소년 탐정단 미니 회의 개최되는 순간이었다.

“유이 누나랑 아무로 형이 사귀는 게 아니라면, 썸을 타는 걸까요?”

“썸이 뭔데?”

“사귀기 직전에 서로를 떠보면서… 자신에게 마음이 있나 없나 살피는 단계입니다.”

썸이라.

코난은 턱을 괸 채 유이를 보았다. 저 두 사람의 관계를 단순히 ‘썸을 탄다’로 압축해도 될 것인가. 뭐, 정작 당사자는 아무 생각이 없으니까 괜찮겠지만. 코난은 손을 뻗어 제 잔을 쥐었다. 간신히 사수한 커피 한 잔이었다. 따로 설탕을 넣지 않았지만, 향긋한 향이 코를 간질였다. 어린애의 혀로 마시는 건 조금 힘들었지만.

잔을 기울였다. 그러나 정작 커피는 코난의 혀 위로 떨어지지 않았다. 향만 남긴 채, 액체는 모두 사라졌다. 코난은 그제야 자신이 커피를 다 마셨다는 걸 깨달았다. 한 잔 더 주문하겠답시고 손을 들었다. 아즈사는 뒤늦게 생긴 일에 코난이 있는 쪽으로 쪼르르 갔다.

“무슨 일이니?”

“어, 커피 한 잔만 더… 가능할까요?”

안 그래도 일곱 살 어린애가 커피를 마시는 건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일이다. 코난은 자신의 기호를 숨기지 않았다. 기껏해야 독특한 아이로 보이길 바랐다. 겐타는 쓰기만 한 커피를 마시는 코난과 하이바라를 이상한 눈으로 보았다. 아직 어린 탓에 커피의 진정한 맛을 몰랐기에 일어난 일이다.

아즈사가 커피가 담긴 포트를 가져왔다. 다행히 아즈사는 코난의 기호를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들어주는 편이었다. 어떤 의미로는 나쁘지 않았다. 포트를 기울여 코난의 잔에 따르려고 했었을 때.

“아직 어린애에게 커피는 해롭다는 거 알고 있지?”

이번에는 또 언제 다녀온 걸까.

아무로는 주방에서 오렌지 주스가 담긴 잔을 두 잔 들고 왔다. 잔 하나는 코난, 또 다른 잔은 유이 앞에 내려놓았다. 아직 아무것도 주문하지 않았는데. 유이는 오렌지 주스가 담긴 잔을 매만졌다. 무어라고 말하고 싶은 거 같은데. 유이의 작은 입이 꾸물꾸물 움직였다.

“나 아직 주문 안 했어.”

“알아. 내가 대신 사는 거야. …오렌지 주스라는 게 멋없다는 건 알겠지만.”

“아니. 그럴 생각을 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그리고 커피 마셨다간 밤에 못 자잖아.”

어쩐지 듣지 말아야 할 걸 들은 기분이다.

코난은 제 몫으로 나온 오렌지 주스로 한 모금 머금었다. 막 냉장고에서 꺼낸 건지 차갑다. 유리잔에 맺힌 물방울이 중력을 거스르지 못한 채 아래로 떨어졌다. 다른 아이들 또한 비슷하게 눈치를 보았다. 과연 자신이 들은 게 무엇이냐, 이런 의미를 담은 거 같았다. 코난은 애써 헛기침했다. 여기엔 우리 같은 아이들이 있다는 어필.

“그러고 보니 다들 무슨 일로 왔어?”

“아. 소년 탐정단, 제 931회 회의를 하러 왔어요. 그치?”

“맞아!”

겐타가 기세 좋게 한 팔을 위로 뻗었다. 그제야 정체되었던 분위기가 조금씩 녹아들기 시작했다. 아유미는 겐타가 얼마나 무모하게 청소를 피하려고 했었는지 알려주었다. 거기에 미츠히코까지 거들다가 혼났다는 증언도 하이바라가 해주었다.

평화로운 한때라는 걸 보여주는 듯한 일화에 유이가 작게 웃음을 참아냈다. 입술 사이로 비집고 새어나오는 미소에 아이들은 어쩔 줄 몰라했다. 설마 오늘 있었던 일을 아유미랑 하이바라가 말할 줄이야. 두 사람은 부끄러운지 고개를 숙였다. 유이는 애써 참았던 웃음을 끝내 터트렸다.

코난은 어쩐지 이 상황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늘 동그랗게 뜬 눈이 반쯤 접었다. 아무로가 오렌지 주스를 내줘서? 아니, 그렇다면 그 즉시 오렌지 주스를 보자마자 인상을 찌푸려야 했다. 코난은 조금씩 주스로 목을 축였다. 잔에 담긴 내용물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는 아무로를 노려보았다. 노려보았다고 해야 하나. 누가 보아도 아무로에게 불만이 있다는 걸 드러냈다. 아무로는 저를 향한 코난의 시선이 영 이해하지 못한 눈치였다. 갑자기 왜 저렇게 보고 있는 걸까? 짐작이 가는 것도 없었다. 마침 코난 옆자리에 앉았던 하이바라는 팔꿈치로 그의 몸통을 툭툭 건드렸다.

“참아, 상대는 어른이야.”

“알아.”

“코난 군 표정이 이상해.”

“음….”

아유미의 중얼거림에 코난은 제 얼굴을 더듬었다. 얼굴 근육만 만져보았을 뿐인데 뚱하다라는 게 그대로 고스란히 드러났다. 설마 자신이 이럴 줄이야. 어쩐지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다는 생각에 코난은 다시 한번 헛기침을 하며 자신을 바로 잡았다.

“코난, 무슨 일이 있어?”

“아무것도 아니에요.”

헛기침 소리에 의아하게 여긴 걸까. 유이의 물음에 코난은 애써 아무것도 아니라고만 말했다. 유이는 고개를 기울였다. 코난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에 유이는 그대로 믿어주는 눈치였다.

아직 저녁 피크타임 전이어서 그런 걸까, 아즈사는 아무로에게 조금 더 쉬어도 좋다고 말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포와로 가게 주인의 권유를 그대로 전달했을 뿐이다. 아무로도 너무 많이 일을 쉬었다는 생각에 머뭇거렸지만, 아즈사가 정말 바쁠 때가 아니라면 도와주지 않아도 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다면야. 아무로는 아즈사에게 고맙다며 말한 뒤 유이가 있는 쪽으로 성큼 다가갔다.

“뭘 먹을 건지 아직 안 정했어?”

“여기 있는 건 어지간해서 다 먹어서…. 이제 뭘 먹어야 할지 모르겠어.”

“그렇다면 이거지.”

아무로의 긴 손가락이 메뉴판 한 곳에 멈추었다. 유려한 손가락이 딸기와 바나나가 조화롭게 얹어진 파르페가 그려진 사진을 톡톡 건드렸다.

“넌 딸기를 더 좋아하니까 딸기 바나나 파르페가 나아. 개인적으로 이게 더 맛있기도 하니까.”

“그렇구나…. 그럼 딸기 바나나 파르페 할래.”

“그래.”

아무로는 그렇게 말하며 유이에게서 떨어져 주문서를 작성했다. 아즈사를 비롯한 코난 일행은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딸기 바나나 파르페가 나왔다. 세로로 균등하게 썬 딸기가 파르페 잔에 바나나와 함께 차곡차곡 올려져 있었으며, 중간중간 과자나 초코로 층을 만들었다. 맨 위에는 아이스크림 두 덩어리와 X자로 교차한 포키. 유이는 괜히 시즌 한정 메뉴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는지 두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늘 그랬지만 이번 한정 메뉴는 과일을 아낌없이 쓴 거 같았다.

파르페에 올려진 딸기와 바닐라 맛 아이스크림을 한 입씩 먹어보았다. 적당한 단맛이 혀를 즐겁게 해주었다. 행복에 젖었다는 말은 이럴 때 사용하는 걸까. 유이는 누가 보아도 행복해 보였다. 한 입씩 먹을 때마다 행복의 단맛에 살짝 몸이 떨렸다. 아이스크림 한 덩이가 사라지고, 딸기와 바나나 또한 절반 정도 먹었을 때였다.

“…뭐야, 레이땅. 왜 그렇게 보는 건데.”

“응?”

“이 파르페는 내 거야. 아무리 레이땅이라 해도 절대로 안 줄 거야!”

“아니, 파르페를 바란 건 아니었는데.”

유이는 아무로가 파르페를 뺏지 못하도록 두 팔로 가로막았다. 아무로는 그저 맛있게 먹는 유이를 구경했을 뿐인데, 이런 취급을 당하다니. 억울해졌다. 특별히 바란 게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해명하려고 할 때마다 유이는 들어주지 않았다.

한편 코난은 여전히 턱을 괸 채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서로 대화하는 것만 보았을 뿐인데 왜 이렇게 떨떠름한 감각이 남게 된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하이바라는 다시 한번 팔꿈치로 코난의 몸을 툭툭 쳤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나? 슬쩍 고개를 돌려 하이바라를 보았다. 하이바라는 말 대신 입 모양으로 말했다. 힘내, 딱 그 한마디만을 남긴 채 아유미랑 대화하러 갔다.

“그럼 소년 탐정단 출동! 자, 갑시다!”

“우오!”

그렇게 아이들이 포와로에서 나갔다. 동네 순찰을 한다고 해야 하나. 사건이 제 발로 걸어오는 길이 없었기에, 매번 직접 순찰하면서 사건을 해결한다고 했다. 하이바라는 한 박자 늦게 나가던 도중, 코난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안 가게?”

“어쩐지 오늘은 영….”

가고 싶지 않다는 걸 했을 뿐이다. 하이바라는 그런 코난을 어떤 행동이라고 해석했을까.

“명탐정 씨가 사건 해결에 의욕을 내지 않는 경우도 있네.”

“아, 알았어! 간다고, 가.”

하이바라의 도발에 어쩔 수 없이 응하게 됐다. 코난은 자리에서 급히 일어났다. 코난이 앉았던 자리에 작은 인형이 툭, 하고 떨어졌다. 유이는 그 인형을 눈에 담았다. 손을 뻗어보았지만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았다. 팔이 짧아서 고생일 줄이야. 아쉬웠다.

소년 탐정단이 사라지자, 카페 내부는 조용해졌다. 애초에 단골 두세 명을 제외하면 한적한 편에 속했다. 슬슬 학교 끝난 여고생들이 아무로를 보러 놀려올 터. 유이는 코난이 놓고 간 분실물을 깔끔하게 포기했다. 본래라면 자리에서 일어나 직접 챙겼겠지만, 이번에는 못다 먹은 파르페가 남아있었다.

“어라? 코난 군 벌써 갔어요?”

아즈사가 뒤늦게 주방에서 나왔다. 코난에게 줄 작은 간식을 가져온 걸까. 아즈사는 쟁반 위에 어여쁘게 담긴 후르츠 젤리를 다섯 접시를 가져왔다. 코난이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우면서도, 슬그머니 아무로와 유이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코난이 없으니까 우리끼리 먹을까요? 유이 씨도 단 거 좋아하시죠?”

“네, 좋아해요.”

유이는 달콤한 간식을 좋아했다. 전반적으로 달달하게 먹을 수 있다면 종류를 가리지 않았다. 푸딩, 젤리, 초콜릿, 사탕. 오죽하면 커피 또한 달콤하게 카라멜이나 초코, 우유를 넣는 식으로 마셨다.

아무로가 미처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아즈사가 쟁반을 내려놓았다. 옅은 주황색으로 물든 젤리 옆에는 작게 짜놓은 생크림과 체리가 놓여 있었다. 맛있겠다. 유이가 작게 중얼거렸다. 아무로는 그런 유이를 힐긋 보았다. 무슨 할 말이 있는 걸까. 아즈사는 유이를 향한 아무로의 시선을 눈치챘다. 유이는 조심스럽게 오렌지 젤리로 손을 뻗었다.

각각 세 사람 앞에는 젤리가 담긴 잔이 있었다. 푸딩 등을 놓을 때 쓰는 잔이어서 그런가, 아니면 체리와 생크림 등으로 꾸며서 그런가. 스푼을 살짝 가져다 대었을 뿐인데 젤리가 탱글거리며 움직이는 모습이 먹음직스러웠다. 아무로는 능숙하게 그릇에 놓인 체리를 유이에게 건네주었다. 젤리는 총 다섯 접시. 아무로는 자신은 필요 없다고 말했지만……. 그래도 거절하는 법 없이 젤리 딱 한 그릇만 받아냈다. 유이를 챙기는 아무로의 모습에 아즈사는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에이, 저 애인이 왔는데 일하라고 할 정도로 삭막한 사람 아니에요. 차가울 때 빨리 먹어요.”

“저….”

“네. 무슨 일이에요, 아무로 씨.”

“아직 저희, 사귀는 사이 아닌데요.”

“네?”

아즈사는 제가 들은 걸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전에도 코난 일행이 한순간이나마 얼음이 된 적이 있었던 거 같은데……. 그 당시 아즈사는 주방에 잠시 다녀온 뒤에, 카운터에 있었던 탓에 정확한 내용을 듣지 못했다. 아즈사는 조금 전에 자신이 본 걸 복기했다. 젤리 옆에 있었던 체리를 건네는 모습은 무척이나 익숙해 보였다. 아마 아무로는 이런 식으로 달콤한 간식을 여러 번 유이에게 주었을 거다. 그 사실은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그래도 설마… 하다못해 서로 좋아하는 사이인 줄 알았는데. 아니, 그러고 보니 아직 사귀는 사이가 아니라고 했었지? 그렇다면 서로에게 마음은 있는데 아직 고백하지 못했다거나? 아즈사의 머릿속은 혼란 그 자체였다. 유이는 아즈사가 어떤 심정으로 있는지 알지 못했다. 평소였다면 날카로운 감으로 알아챘을 테지만, 지금은 눈앞의 젤리에 정신이 팔렸다.

“저, 유이 씨. 정말 아무로 씨랑 안 사귀는 거 맞아요?”

“네? 안 사귀는데요.”

어째서 자신은 당연히 사귀고 있다고 생각한 걸까……. 아즈사는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다.

아즈사를 구해준 건 다름 아닌 코난이었다. 코난은 홀로 포와로의 문을 열었다. 고개를 빼꼼 내민 채 내부를 훑었다. 그 모습이 퍽이나 조심스러웠다. 코난은 제가 앉았던 자리를 중점으로 살펴보았다. 그러다 테이블 위에 젤리가 든 잔이 다섯 그릇이 있다는 것에 의아하게 여겼다. 하지만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걸까. 다시 고개를 숙인 채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렸다.

“코난. 의자 밑에 떨어져 있어.”

“아, 진짜다. 고마워요, 유이 누나.”

유이의 말에 코난이 자세를 숙였다. 어쩌다 보니 인형은 의자 밑으로 쏙 들어가게 됐다. 유이는 드디어 분실물의 주인을 찾아주었다는 생각에 젤리를 한 입 넣었다.

파르페를 먹은 직후라서 그런 걸까. 부담스럽지 않은 달콤함이 유이를 즐겁게 해주었다. 전반적으로 많이 달지 않아서 계속해서 먹을 수 있을 거 같았다. 유이가 다시 행복하다는 미소를 짓고 있으니, 아무로는 슬쩍 제 몫으로 나눠준 젤리를 유이가 있는 쪽으로 밀어 넣었다. 아무리 봐도 사귀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즈사는 아직 젤리에 손을 대지 않았다. 어쩐지 큰 충격받은 모습에 코난이 조심스럽게 아즈사를 부른다. 아즈사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아, 아차. 마치 이렇게 중얼거린 거 같았다.

“아즈사 누나. 괜찮아요?”

“아, 응. 괜찮아.”

“무슨 일이 있었어요?”

“아즈사 씨가 나랑 유이가 사귀는 사이냐고 물어본 게 전부야.”

대답은 아즈사 대신 아무로가 대신 해주었다. 코난의 시선이 아무로로 향했다. 아즈사 또한 아무로를 보았다. 아무로는 어쩐지, 이 상황이 영 익숙하지 않은 거 같았다. 매번 여유롭게 느껴지던 미소조차 보이지 않았다. 낯설었지만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무로 토오루라는 남자는 본래 이런 사람처럼 느껴졌다.

이해되지 않았다. 코난은 아무로의 사정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 버본, 그리고 공안. 아무로는 상당히 위험한 외줄 타기를 하는 사내였다. 자칫 잘못하여 떨어지면 그 존재 자체를 말소해야 했다. 코난은 어째서 아무로가 그런 선택을 한 건지 알지 못했다. 단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외줄 타기 때문에 그 흔한 사랑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니. 코난은 슬쩍 아무로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이내 허리를 좀 숙이라고 손짓했다. 아무로는 의아하게 보면서도, 코난의 부탁에 순순히 응했다.

“왜 아직도 안 사귀는 건데요? 유이 누나, 좋아하잖아요.”

“아니… 내가, 사귄다는 말은 한 적이 없는데. 애초에 너도 알다시피 나는 그럴 만한 상황이 안돼.”

“그렇다고 해서 유이 누나를 혼자 내버려 둘 거예요? 아무로 씨 애인은 일본이니까?”

말이 턱 막혔다. 아무로는 설마 제가 했던 발언을 이렇게 되돌려받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자신의 사정이 어떤지 뻔히 알면서도 저런 질문을 하다니. 그것도 일본이 애인이라니…. 그 당시만 해도 아무로는 아직 유이를 향한 자각을 눈치채지 못했다. 유이와 같이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며, 아무로는 유이를 향한 연심을 자각시켰다.

그렇다고 해도 당장 달라지는 건 없었다. 아무로는 유이를 소중히 여기는 만큼, 이 일본이란 나라 또한 소중히 여겼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 못했으며, 유이는…… 적어도 불만은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코난은 이 기회를 제대로 잡을지 고민했다. 아무로를 놀릴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는다.

“코난 군.”

“넵.”

하지만 엄한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기에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코난은 슬쩍 아무로의 눈치를 보았다. 여차하면 자신이 어린애라는 걸 살려서 도망쳐야겠고 생각했다.

한편 아무로는 머리가 복잡하게 터져서 죽을 맛이었다. 안 그래도 유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자신은 유이를 마땅히 누려야 할 행복을 안겨주지 못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있고 싶진 않았다. 아무로는 조금씩 용기를 냈다. 제 곁에서 행복하게 웃는 유이를 보고 싶었다. 그래서 유이가 내민 손을 내치지 못했다. 아무로는 이 마음을 비밀로 간직했다.

꽤 생각에 잠긴 지 시간이 흘렀던 걸까? 아니면 제 안면 위로 어떤 부정적인 감정이 엿보인 걸까? 유이는 젤리를 먹는 손을 멈추고 아무로를 보았다.

“레이땅, 무슨 일 있어?”

“아니… 유이….”

“응.”

“일단 젤리 먹던 거 마저 먹어.”

아무로는 유이의 앞에 놓인 젤리 세 그릇을 가리켰다. 세 그릇 중 두 그릇은 어느새 텅 비어 있었다. 심지어 남은 한 그릇도 젤리가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지 않았다. 유이는 아쉽다는 듯 아무로를 보았다. 젤리를 더 먹고 싶은 걸까, 아니면 제게 할 말이 있는 걸까. 아즈사는 식욕이 떨어졌는지 젤리 한 그릇을 겨우 비웠다. 남은 한 그릇은 코난에게 내밀었다. 코난은 사양하는 일 없이 그릇을 받아먹었다.

“이대로 먹었다가 뚠뚠해질 거 같아서, 더 안 먹을래.”

“그게 무슨….”

유이는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마른 편에 속했다. 그 많은 간식을 먹었음에도 살로 가지 않는, 나름 부러운 체질을 타고났다. 아즈사의 경우 먹는 것만큼 칼로리 소모가 엄청 났기 때문에 괜찮은 편이라지만……. 유이는 특별하게 무언가를 하지 않았다. 그저 여기저기 쏘다니는 걸 좋아할 뿐이다.

그래서 살이 찌지 않는 걸까. 아무로는 제 나름대로 유이의 지방을 분석해 보았다. 가장 그럴듯했다. 유이는 여기저기 직접 걸어 다니며 산책하는 걸 즐겨 했다. 몇 시간을 내리 걸어도 멀쩡했으니까. 그렇기에 아무로는 유이에게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려고 했었다. 유이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 입을 천천히 벌렸을 무렵, 코난과 눈이 마주쳤다. 코난은 어쩐지 악동 같은 미소로 아무로를 보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코난이 무엇을 할지 깨달았다. 만약 자신이 여기서 유이에게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일단 코난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어떻게든 빌미를 잡아서 자신을 놀리겠지, 조금 전처럼. 그런 상황은 되도록 피하고 싶었다. 아무로는 아쉽다는 듯 유이를 힐긋 보았다. 아직 제가 유이를 보고 있는 건 코난 외에 알아차리지 못한 듯했다.

“어라, 이게 뭐지?”

아즈사는 제 몫의 젤리를 먹은 후, 다 먹은 그릇을 주방으로 가져갈 때였다. 카운터 근처 자리에서 못 보던 물건을 하나 주운 듯했다. 아즈사는 분실물을 이리저리 찬찬히 뜯어보았다. 이내 그게 누군가의 스마트폰이라는 걸 깨달았다.

“스마트폰 아니에요?”

“응. 누가 깜빡 놓고 갔나 보다.”

아즈사는 이리저리 스마트폰을 보았다. 짙은 남색으로 나 있는 스마트폰에는 드문드문 검은 줄이 그어져 있었다는 걸 제외하면 특별한 점은 찾아볼 수 없었다. 본래 분실물은 잠깐 카운터에 맡았다가 주인이 찾으러 올 때까지 기다리거나, 혹은 경찰서에 넘겼다. 아무로는 조금 전에 분실물을 발견한 테이블에 앉은 사람을 떠올려 보았다.

기억나지 않았다.

아무로가 왔을 때부터 그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아마 아무로가 오기도 전에 잠깐 들린 손님이 있었던 모양이다. 아무로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그저 카운터에 맡겨두면 편하겠지. 슬슬 일해야 하고. 아즈사가 아무리 편의를 봐주었다고 해도, 아무로는 엄연히 가게 아르바이트생이었다. 가게 주인에게 몇 푼 안 되는 월급을 받는 존재.

“스마트폰은 가게 카운터에….”

“아! 아무로 씨랑 유이 누나랑 같이 찾으러 가면 되겠다!”

그러니까 카운터에 맡긴 채 일하러 가야 하는데, 코난이 선수를 쳐 버렸다. 코난은 해맑은 표정으로 아무로를 힐긋 보았다. 어쩐지 복수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로는 슬쩍 아즈사를 보았다. 아즈사는 코난과 눈높이를 맞췄다.

“찾으러 갈 수 있어?”

“응. 아무로 형은 머리가 좋고, 똑똑하니까 금방 찾을 수 있어요!”

천진난만한 어린애 연기에 아무로는 말이 턱 하고 막혔다. 아니, 자신은 일해야 하는데. 물론 유이와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영 내키지 않았다. 아무로는 무어라고 하기 전에 아즈사가 유이와 함께 카페 밖으로 떠밀었다.

“저녁 피크타임 시작하기 전까지 오세요. 정 안되면 경찰서에 가져다주시고….”

“아, 네.”

자신이라면 찾을 수 있다니…….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니냐고 말할 뻔했다. 자신이 찾을 수 있다면 이 작은 명탐정 또한 찾아낼 수 있을 터. 아무로는 스마트폰을 놓고 간 주인보다 작은 명탐정이 저러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어쩐지 자신을 골탕 먹이려는 거 같았는데. 유이는 파르페와 젤리를 다 먹은 직후여서 그런지 별 불만 없는 표정으로 포와로를 나섰다.

코난은 제 손에 쥐고 있는 스마트폰을 보았다. 단서 하나도 없는 스마트폰의 주인을 알아내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코난은 단서가 될 만한 게 있는지 이리저리 찾아보았다. 스마트폰 케이스에 적힌 검은 줄이 알고 보니 77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아냈다. 코난은 이 77라는 숫자를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척 보아도 엄청난 단서라는 티를 팍팍 내고 있다.

유이와 아무로 또한 스마트폰을 이리저리 보았다. 유이는 코난 손에 쥐고 있었던 스마트폰을 뺏어 전원 버튼을 꾹 눌렀다. 화면이 켜지더니 이내 아름다운 바다를 배경으로 한 사진과 함께 비밀번호를 입력하라는 창이 떴다. 비밀번호는 숫자 네 개. 77, 그리고 바다…….

“응, 나 조금 늦게 갈 거 같아서. 박사님 댁에서 기다리고 있어.”

코난은 제 스마트폰으로 아이들에게 연락했다. 분실물을 찾았으니까 그걸 찾아주기 전까지 돌아가기 어렵다고. 코난은 제 용건만 아이들에게 전달한 채 그대로 스마트폰 전원을 껐다. 까맣게 변한 액정을 보며 낮은 숨을 토해내더니, 이내 아무로와 유이를 보았다.

“그럼 이제 찾아볼까요.”

“근데 경찰서에 가져다주는 게 빠르지 않아? 괜히 찾는답시고 길이 엇갈리거나 그럴 수도 있잖아.”

“괜찮아요. 그럴 때는 아무로 형이 알아서 잘해줄 테니까. 그렇죠?”

아무로 형.

아무로는 설마 여기서 제 이름을 팔리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아무로는 볼을 긁적이다가 느릿하게나마 고개를 끄덕였다. 유이는 아무로를 보더니 작게 투정 부렸다.

“레이땅이랑 제일 친한 건 난데.”

코난과 아무로가 친하다는 걸 질투하는 걸까? 좀 우습겠지만, 이렇게 옅은 질투를 보여주는 점마저 귀여웠다. 아무로는 제 콩깍지가 상당히 심하다는 걸 자각해 버렸다. 이제 유이를 알기 전, 모두에게 거리를 두는 삶으론 돌아갈 수 없다.

유이는 입을 삐쭉 내민 채 투덜거렸다. 아무로는 손을 뻗으려다가 그만두었다.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면서, 한순간이나마 기분을 달래주겠답시고 위로해 주는 건 그리 내키지 않았다. 아무로는 차라리 모든 걸 그만둘까, 잠깐이나마 그런 고민에 빠졌다.

쥐고 있는 스마트폰을 이리저리 보았다. 77, 그리고 바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비밀번호는 총 숫자 네 자리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유이는 무심코 7753이라는 번호를 입력해 보았다. 숫자가 하나씩 추가되고 마지막으로 OK 버튼까지 눌렀다. 정답.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찍어보았는데 그게 비밀번호였던 모양이다.

“누나 풀었어요?”

“그냥… 보이는 걸 그대로 입력했더니 되네. 이 스마트폰 주인은 조금 기억하는 게 힘들었나 봐.”

유이는 잠금장치가 해제된 스마트폰을 코난과 아무로에게 보여주었다. 유이가 풀었으면 이제 자신은 무엇을 해야 하나. 아무로는 슬쩍 스마트폰을 보았다. 배경화면으로 저녁노을이 지고 있는 바다가 보였다. 아무래도 이 스마트폰의 주인은, 바다를 무척 좋아해서 비밀번호에 53을 넣을 정도인가보다.

아무로는 유이가 있는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처음에는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유이는 제 손을 아무로의 손 위에 겹쳐 올렸다. 한순간이나마 아무로가 움찔거렸지만, 이내 고개를 내저으며 스마트폰을 가리켰다. 아, 그렇구나. 어쩐지 틀렸다는 사실에 조금 부끄러워졌다. 유이는 곧장 스마트폰을 아무로에게 건넸다.

“뭐 보시게요?”

“혹시 위험한 사람일 수 있으니, 연락처를 한 번 훑어보려고.”

“연락처를 봐서 그런 걸 알아낼 수 있어?”

처음 알았어.

유이는 까치발을 든 채 아무로가 쥐고 있는 스마트폰을 훔쳐보았다. 무엇이 그리 궁금한 걸까. 유이는 체구가 작아 아무로가 스마트폰을 높이 들면 보기 어려웠다. 코난의 경우 말해봤자 입만 아프다. 코난은 저를 따돌리는 아무로의 치사한 행동에 불만이 쌓였다. 쳇, 괜히 같이 가자고 했네. 아무리 까치발을 들어도, 높이 점프해도 스마트폰이 보이지 않았다.

“내 폰, 내 폰….”

그럴 때 저 멀리서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귓가에 파고들었다. 고개를 돌아보니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헐레벌떡 숨을 몰아쉬며 달려오고 있었다. 다리에 들어가지 않는 걸 보아, 꽤 오랜 시간 동안 이 거리를 헤매듯 했다. 남자는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그대로 넘어졌다. 넘어지면서도 계속해서 폰을 찾아 헤매고 있다. 코난은 척 보아도 아무로가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이 남자의 것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리고 남자를 주시하고 있는 건 코난만이 있는 게 아니었다.

세리자와 유이, 아무로 토오루. 두 사람 또한 남자를 힐긋 보았다. 아직 아무로는 스마트폰에 든 연락처를 가볍게 훑어보았다. 하나하나 번호를 대조하거나, 혹은 갤러리 등에 있는 자료를 훔쳐보지 못했다.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유이는 잔뜩 긴장한 채 남자를 보았다. 겁을 먹었다고 해야 하나. 저도 모르게 아무로의 뒤에 숨어서 남자를 지켜보았다. 아무로 또한 남자에게서 풍기는 사건의 향을 맡았다.

“코난.”

“네?”

“다녀와.”

아무로는 그대로 제 손에 쥐고 있었던 스마트폰을 코난에게 건넸다. 스마트폰에 범죄와 관련된 정보를 찾아내지 못했던 걸까. 아니면 그렇게 세세하게 찾아볼 정도로 남자의 스마트폰은 별 특색이 없었나. 코난은 아무로가 무슨 생각으로 제게 스마트폰을 건넸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아무로와 유이를 향해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내 폰, 내 폰, 내 폰… 그게 없어지면 나는…!”

“아저씨! 혹시 이거 아저씨 폰이에요?”

큰 소리와 함께 코난이 남자가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코난의 목소리에 남자가 무서울 기세로 고개를 휙 치켜들었다. 얼핏 보니 남자의 두 눈은 붉은 실핏줄이 터져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저도 모르게 남자에게 다가가 그렇게 물어볼 뻔했다. 유이는 저 멀리 멀어지는 코난을 보며 짧게 말했다.

“가버렸네.”

“가버렸죠.”

코난이 떠나니 두 사람은 딱히 할 일이 없는 상태가 됐다. 막상 포와로로 돌아가기에는 아쉬웠다. 유이는 슬쩍 코난을 보았다. 남자는 과할 정도로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진심으로 코난에게 기뻐하고 있었다. 스마트폰을 찾아서 다행이라고 하는 걸까? 그런 것치곤 남자의 태도가 영 이상했다. 보통은…… 저렇게 기뻐하나?

“레이땅, 저 남자 수상하지 않아?”

“수상하기도 하고…. 어딘가 좋지 못한 일에 휘말렸을 거 같아.”

두 사람은 서로 의견을 교환했다. 서로 남자를 향한 인상이 비슷했다. 단순히 스마트폰을 잃어버렸을 뿐인데, 그걸 되찾았는데 저렇게 과한 행동을 보인다고? 아무로는 지금이라도 코난을 따라가서 남자에게 얽힌 사정을 듣고 싶었다. 이 나라, 일본에서 끔찍한 일이 일어나는 건 사양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아무로의 망설임을 알았던 걸까. 유이는 어느새 아무로의 옷깃을 붙잡았다. 가지 마. 유이는 입 벙긋 한 번 안 했지만, 그렇게 아무로에게 말하는 거 같았다. 아무로는 제 옷깃을 붙잡은 유이의 손을 부드럽게 매만져 주었다.

“있잖아. 레이땅. 나 달라진 거 없어?”

“…….”

설마 이 타이밍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이야. 아무로는 유이에게서 두 걸음 떨어졌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이상하게 정신이 없었다. 유이가 어떻게 입고 나왔는지조차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유이는 전반적으로 베이지 색을 바탕으로 한, 프릴이 많은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마치 옛 서양 드레스가 생각났다. 거기다 무릎 위로 올라오는 치마에는 작고 귀여운 리본이 잔뜩 달려 있었다. 사랑스럽고, 귀엽고, 꽉 깨물어 주고 싶고. 오늘의 유이는 그러했다.

“모르겠다고 하면?”

그러나 그 심정을 솔직하게 말해주지 못했다. 아무로는 작은 장난을 쳐보았다. 유이는 여전히 입을 삐쭉 내민 채 아무로를 보았다. 뾰로통한 표정에는 아무로를 향한 원망이 살짝 담겨 있었다.

“귀여운 거 알고 있어. 그렇게 입 내밀지 않아도 돼.”

“결국 어디가 달라졌는지 모르는 거잖아!”

그렇게 되나?

아무로는 잠시 생각해 보았다. 평소와 다른 점을 곧바로 찾지 못해서 얼버무린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렇지만 아무로는, 유이가 평소와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을 눈치챘다. 머리에 핀 대신 카츄샤를 씌웠다거나, 왼쪽 손목이 옷에 가려져서 미세하게 보이지 않을 정도의 예술적으로 세공한 팔찌를 착용했다거나, 혹은 반짝반짝 광이 나니 새로운 메리 제인 구두를 신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걸 곧장 말해주고 싶지 않았다. 아무로는 가끔 이렇게 친근하게 장난치며 지낼 수 있는 상대가 필요했다. 평생을 공안에, 검은 조직의 스파이로 엮여서 살아갈 줄 알았는데. 그 외에 다른 길이 있을 수 있다는 게 아무로는 무척이나 좋았다. 아무로는 제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들고 있었는데, 이게 벌써 꺼낼 줄이야. 아무로는 한쪽 주머니에 손을 넣은 상태로 유이의 이마를 콕콕 두드렸다.

난데없이 이마를 건드리자, 유이는 이해하지 못한 채 아무로를 보았다.

“레이땅, 왜?”

“잠시 눈 감아봐.”

유이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서도 입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눈은 갑자기 왜 감아보라는 건데? 뭐 할 거야? 서, 설마 나에게 무슨 나쁜 짓을….”

“그런 거 아니니까 안심해.”

왜 저렇게 말이 많은 거지. 아무로는 눈을 게슴츠레 뜬 채 유이를 보았다. 안심하라는 아무로의 말에 불만을 표하면서도, 점차 입을 다물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자신을 신뢰할 수 있다는 건가. 아무로는 이유 모를 신뢰가 불편했다. 자신은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다는 걸 아니까.

그럼에도 할 수 있는 건 해주고 싶었다. 아무로는 바지 주머니에서 작은 악세서리 하나를 꺼냈다. 작은 목걸이 줄에는 하트와 별이 찰싹 달라붙은 채 굳혀진 장식이 달려 있었다. 아무로는 능숙하게 목걸이 줄을 끄르고 유이의 목에 채워주었다.

그리 비싼 목걸이는 아니었다. 이전에 시내에 갔을 때 길거리 가판대에서 한 목걸이를 유이가 오랫동안 살펴보았을 뿐이다. 아무로는 유이에게 잘 대해주고 싶었다. 좋은 추억을 잔뜩 선물해 주고 싶었지만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건 이렇게 소소하게나마 악세서리 등을 선물해 주는 게 고작이었다. 아무로는 두 눈을 감고 있는 유이를 향해 다정하게 말했다.

“이제 눈 떠도 돼.”

“응… 우와.”

제 목에 걸린 목걸이를 보았다. 화려하지 않은 장식의 목걸이는 유이의 마음에 쏙 들었다. 유이는 목걸이 장식을 이리저리 만져보았다. 딱딱한 금속으로 이루어진 목걸이는 어지간해서 형태를 망가트리지 않을 거 같았다. 유이는 아무로가 목걸이를 선물해 주었다는 사실이 기쁜 듯 제 자리를 한 바퀴 빙그르르 돌았다.

“마음에 들어?”

“응!”

목걸이가 마음에 든 걸까? 급기야 유이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특유의 귀여운 목소리가 음을 찾아 위아래로 움직였다. 이렇게 기뻐할 줄이야. 아무로는 만약 목걸이가 아니라 반지를 선물했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해 보았다. 지금처럼 기뻐해 줄까? 기뻐해 주면 좋을 텐데. 아무로는 유이를 기쁘게 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다 해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반지는, 역시 조금 깊은 관계를 권하는 거 같아서 영 손이 가지 않았다. 아무로는 다음 기회가 있다면 반지를 선물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때가 과연 언제쯤 올까? 올 수 있기나 할까?

“유이. 나는 네게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 걸 해줄 수 없어. 그걸 견딜 각오가 돼 있어?”

“레이땅, 나는 각오라면 진작하고 있었어. 이제야 그걸 묻는 거야?”

“……그래. 하지만 일단 내가 각오가 안 된 거 같으니까, 여기서 그만하자.”

그만하자는 말은 얼핏 헤어지자는 말로 오해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로의 곁에서 서성거렸더니 그의 서툰 어휘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유이는 기쁘다는 듯이 계속해서 웃었다.

“레이땅이랑 있을 수 있다는 거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기뻐. 아, 근데 난 아무것도 안 가져왔는데…. 다음번에 내가 레이땅에게 어울리는 거 가져올게.”

환히 웃는 유이의 모습은 가히 태양 같았다.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은 제게 다가오는 모든 걸 태워버린다. 그럼에도 태양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점이, 어쩐지 지금의 아무로를 가리키는 거 같았다. 밝은 태양에 다가갔다가 타오르는 이카로스의 날개처럼, 자신은 아마 유이의 곁에 평생 머물 수 없겠지. 언젠간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아무로는 조금이라도 더 유이의 곁에 있기로 마음먹었다.

“아! 그래도 레이땅, 자꾸 그렇게 말하다간 사람들이 오해할 수 있어! 나는 괜찮지만, 괜히 오해를 불러일으켰다가 일이 꼬이면, 레이땅만 힘들어지니까 주의해! 알았지?”

“그래, 그래.”

“알았어, 몰랐어?”

“알았어.”

평소와 같은 태도. 아무로는 제 오해를 부르는 언행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유이가 무척이나 좋았다. 유이는 아무로에게 확인을 받아내고 나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포와로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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