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가족입니다

어쩌다 보니 가족입니다 01

평범하기에 잃고 싶지 않은, 소중한 일상

나의 바다 by 라마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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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6시.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도 없이 일어난 명호는 아직 잠에서 덜 깬 몸을 깨우려 기지개를 켜며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오늘 해야 할 일정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스트레칭을 짧게 끝낸 명호는 우선 방을 나가 제가 자려고 들어갈 때까지도 불이 켜져 있던 원우의 작업실로 들어갔다. 원우는 자러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책상 위에만 그가 늦게까지 일했단 흔적이 어지럽게 펼쳐져 있었다. 작게 한숨을 내쉰 명호는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해두고 책상 위를 하나, 둘 치우기 시작했다. 여러 번의 잔소리 끝에 좀 줄어든 고카페인 음료 캔을 분리수거 통에 버리고 아무렇게나 널려있는 사진을 한곳에 모아 정리하니 시간이 벌써 6시 30분이었다.

세수만 마치고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명호는 단톡방에 아침 메뉴와 함께 올 사람은 오라는 톡을 남기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오늘 아침은 토마토 달걀 볶음밥과 된장국으로 정했기에 필요한 재료를 꺼내는 손길은 거침없었다. 어제 사 온 잘 익은 토마토를 깨끗하게 씻어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고 달걀은 있는 걸 전부 다 꺼낸 터라 큰 그릇에 전부 깨트리고 적당히 휘저어 놓았다. 대파는 미리 잘라둔 게 있어 바로 쓸 수 있도록 꺼내놓기만 했다. 된장국은 속을 데워 줄 명목으로 끓이는 거라 배추만 넣기로 했다. 적당히 물을 담아 가스레인지에 올린 냄비에 된장 세 숟가락을 크게 떠 풀고 그 옆에 커다란 웍을 올려 달궈지길 기다렸다. 그 사이 어제 남아 식은 밥과 미리 앉혀 놓은 밥을 꺼내 준비를 마친 명호의 등 뒤로 기척이 느껴졌다.

“일어났어?”

“…응.”

“밥 아직 안 됐어. 세수 먼저 하고 와.”

“어엉…..”

아직 잠에서 덜 깨 비척비척 다가오던 원우는 명호의 말에 욕실로 걸음을 옮겼다. 뒤에 느껴지던 기척이 멀어지자, 명호는 다시 요리에 집중했다. 잘 달궈진 웍에 기름을 휘휘 두르고 미리 꺼내 둔 대파를 와르르 쏟아 넣었다. 순식간에 주방에 파 향이 퍼졌다. 파 끝이 살짝 노릇해지면 잘라둔 토마토를 넣었다. 껍질이 벗겨질 정도로 토마토를 볶으며 옆에 올려둔 된장국에 썰어 둔 배추를 넣었다. 된장국은 따로 간하지 않았다. 다들 자극적인 걸 좋아하지만 아침이기도 했고 그의 형이 오늘도 늦게 잔 듯 해 슴슴하게 끓여 속이라도 달래주자는 마음에서였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냄비에서 피어오르는 구수한 향과 파 향이 섞인 기름 냄새가 밤사이 빈속을 자극해 왔다. 이럴 때일수록 서두르면 잘 될 일도 안 된다. 그걸 잘 아는 명호는 때를 맞춰 밥을 부어 볶고 적절한 타이밍에 달걀물을 부었다. 몇 번의 웍질 끝에 먹음직스러운 볶음밥이 완성됐다.

삑, 삑, 삑, 삑.

“혀엉, 우리 왔어~”

“명호 형 배고파~”

“욥. 좋은 아침.”

“어, 왔어? 잘 왔네. 밥 다 됐어.”

단조로운 기계음이 몇 번 들리고 막 잠에서 깨 세수만 하고 온 건지 잠옷 차림의 세 사람이 우르르 들어왔다. 대학 입학하자마자 휴학을 내고 동반 입대를 마치고 전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여전히 밤톨 머리인 승관, 한솔, 찬이 먹이를 기다리는 새끼 새처럼 명호에게 쪼르르 다가갔다. 성인이 된 지 오래라고 하지만 명호의 눈엔 여전히 처음 만났던 그 어린아이들이라 흐뭇하게 웃으며 반겨줬다.

“오늘은 셋이 전부야?”

“아니. 준휘 형은 곧 온다고 했고, 정한이 형은 새벽 시장 때문에 승철이 형이랑 먼저 나갔어.”

“민규 형이랑 석민이 형은 과제 때문에 어제 교수 욕하면서 못 들어왔고, 지훈이 형은 아직 자.”

“아- 둘이 팀플 잘못 걸렸다던데 그거 때문인가?”

“그런가 봐.”

“지수 형은 아직 출장 중이고, 순영이 형은 아직 자는 거 같던데?”

“그래? 둘이 먹을 건 빼놔야겠다.”

이미 익숙한 듯 요리를 마무리하는 명호를 두고 한솔은 식탁을 닦고, 승관은 머릿수대로 그릇을 꺼내 두었고, 찬은 깨끗하게 닦인 식탁 위로 수저를 차례차례 놓아두었다. 그 사이 한참 전에 욕실로 들어가 소식이 없던 원우가 느릿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어, 왔어?”

“욥.”

“좋은 아침이에요, 원우 형.”

“원우 형 좋은 아침!”

“잠 좀 깼어?”

“응. 오~ 된장국이네?”

“형 먹이려고 한 거야. 다 먹어.”

“누가 해준 건데 당연히 다 먹지.”

형은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라던 명호의 단호한 말을 들은 후로 식사 시간엔 얌전히 기다리는 게 원우의 일이었다. 그 또한 익숙한 일인지 넷은 별말 없이 식탁 위로 밥과 국, 반찬을 놓고 자리에 앉았다. 명호까지 손을 씻고 자리에 앉자, 현관에서 단조로운 기계음이 몇 번 울렸다. 곧 출근 준비를 마쳐 멀끔한 상태의 준휘가 안으로 들어왔다.

“왔어?”

“준휘 왔니?”

“준휘 형, 어서 와! 여기 형 자리!”

“여~”

“준 형, 좋은 아침!”

“다들 좋은 아침~”

환하게 웃으며 아침 인사를 건넨 준휘는 들고 온 가방을 현관 옆에 내려두고 식탁으로 다가갔다. 준휘가 오기 전부터 제 옆자리를 비워두었던 승관은 준휘가 들어오자마자 제 옆자리부터 가리켰다. 그런 승관을 못 말린다는 듯 찬과 명호는 바라봤고 원우는 그저 웃었고, 한솔은 항상 있었던 일이라 밥 먹을 순간만 기다리고 있었다. 예전이라면 부담스러웠을 이 순간을 준휘도 제법 익숙하게 받아들이며 자리에 앉았다.

“많이 기다렸어?”

“아냐. 방금 다 차렸어.”

“맞아! 우리도 온 지 얼마 안 됐어.”

“그래?”

“엉. 나도 막 앉았어.”

처음 샀을 때 괜히 큰 걸 샀나 싶었던 긴 식탁이 여섯 명이 앉자 꽉 찼다. 원우는 이럴 때마다 큰 걸로 사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다섯에서 둘로 식구가 줄었을 땐 텅 비면 어쩌나 했던 식탁은 이젠 다른 가족들이 채워주고 있었다. 외롭지 않게.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잘 먹겠습니다.”

“맛있게 먹어.”

“잘 먹을게.”

꽉 찬 식탁 위로 맛있게 먹으라는, 잘 먹겠다는 인사가 떨어졌다. 조용하면서도 부산스러운 아침 식사는 모인 여섯 명만큼이나 다 달랐다. 쓰린 속을 달래기 위해 된장국부터 들이키는 원우와 된장국에 들어간 푹 익은 배추부터 먹는 준휘, 좋아하는 반찬을 밥 위에 얹어 먹는 승관, 크게 한술 떠 밥부터 먹는 한솔, 밥과 국을 같이 먹는 찬. 그리고 그걸 흐뭇하게 바라보다 가장 늦게 숟가락을 드는 명호. 익숙하기 때문에 그들이 더 소중히 지키려는 순간이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지켜낸 순간.

“준휘 형, 오늘도 야근해요?”

“음- 아마도?”

“그 회사는 왜 맨날 야근이여.”

“나 저녁에는 일정 없으니까 도시락 싸 갈까?”

“아냐, 괜찮아. 저녁에 엄마랑 지민이랑 밥 먹기로 했어.”

“그래? 알았어.”

“어머니 오신데?”

“잠깐 일 보고 다시 가신데. 내려가기 전에 얼굴 볼 겸 밥 먹기로 했어.”

분주히 움직이는 숟가락과 젓가락 위로 두런두런 나누는 이야기가 내려앉았다. 단톡방도 있지만 같이 모일 때마다 각자의 하루 일정을 나누는 건 그들에겐 일상이었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함께 모일 시간이 줄어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서로의 일상을 모른 채 지나가는 건 서글펐기에 열셋이 가족이란 이름으로 묶일 때부터 정해 이젠 일상이 되어버린 약속 중 하나였다.

“민규 알면 서운해하겠는데.”

“아, 안 그래도 어제 말했어. 과제 때문에 잘 모르겠다던데.”

“민규랑 석민이 집에 못 들어온 지 며칠 되지 않았어?”

“오늘까지 하면 3일.”

“…우린 죽어도 팀플 내주는 수업은 듣지 말자.”

“응.”

어쩌다 보니 다 같은 대학교로 입학해 다른 이들보다 민규와 석민의 일정에 대해 명호보다 잘 알고 있는 이는 없었다. 차갑게 내려앉은 답에 막내 셋은 결코 팀플만은 안 된다고 굳게 다짐했고, 신입생 같은 화석일 셋을 명호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무릇 과제란 교수의 마음이었고, 교수의 마음은 천재지변만큼이나 예측하기 힘든 것이었다. 입학하자마자 휴학하고 입대한 셋은 이를 모를 테니 명호는 조용히 수강 신청이 성공하길 빌어주었다. 민규와 석민이 3일째 집에 들어오지 못 한 건 순간의 실수로 망쳐버린 수강 신청 탓이었으니까.

“준휘, 내가 태워다 줄까?”

“오~ 나야 땡큐지!”

“형, 오늘 나가?”

“응. 작업 하나 끝내서 잠깐 돌아다녀 볼까, 하고.”

“원우 형 밤새웠어?”

“어? 아냐. 요새 2시 전엔 자.”

“원우 형이 2시 전에 잔다고?”

“와- 형이?!”

“전부 내 노력이지.”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이니, 얘들아….”

일 특성상 지훈과 원우는 집에서 작업하는 날이 많아 밤새는 일이 허다했다. 그 탓에 생활 패턴이 맞지 않아 심할 땐 10일 넘게 얼굴을 못 본 적도 있었다. 참다못한 명호가 자고 있던 원우를 깨워 한바탕 난리를 피운 뒤로 원우와 함께 지훈도 강제적으로 규칙적인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처음 지훈은 원우에게 너 때문에 왜 자신도 해야 하냐고 투덜거렸다가 부쩍 좋아하는 석민과 찬 때문에 불평을 쑥 집어넣게 되었다. 오히려 집 밖으로 안 나가던 생활에 운동을 추가해 원우의 원망을 샀다. 명호의 ‘형은 왜 안 가?’라는 눈빛에 원우 또한 그 운동에 가야만 했으니까.

그런 과거가 있던 탓에 막내들의 반응이 이해도 갔지만 한편으론 그만큼 엉망으로 살았으니 이렇게까지 놀라는 건가 싶어 원우는 조금 지난 과거를 반성하게 됐다. 그땐 그럴만한 사정도 있었지만, 사정만으로 모든 게 용납되는 건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알기에 하는 자기반성이었다.

“나도 같이 가도 돼?”

“명호가 같이 가면 나야 좋지.”

“어디 가는데?”

“원우 형 사진 찍으러 가는 거 아냐?”

“오~ 나도 가도 됨?”

“맞아. 작업할 건 아니라서 그냥 돌아다니면서 마음에 드는 곳에서 찍는 거긴 한데. 같이 갈래?”

“난 갈래.”

“우리도 가도 돼요?”

“응. 상관 없어.”

“그럼, 나도 갈래!”

“나도, 나도.”

차로 데려다준다지만 준휘의 출근 시간이 머지않았기에 명호와 원우의 식사 속도에 맞춰 천천히 먹던 셋의 수저가 빨라졌다. 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셋 다 제대로 된 외출을 아직 해보지 못했다. 중간중간 휴가 나왔을 때 놀러 다니긴 했지만, 완전히 민간인 신분이 됐을 때와는 차원이 달랐기에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순식간에 밥을 해치우고 서둘러 나가면서도 빈 그릇은 꼬박 싱크대에 넣어두는 막내들을 웃으며 바라보던 셋도 마저 남은 밥을 먹었다.

“정한이랑 승철이 놀라지 않게 톡 남겨놔야겠다.”

“내가 남길게. 저녁 전엔 들어올 거지?”

“그래야지.”

“나도 가고 싶다~”

“뭔 소리야. 형은 일해야지.”

“명호 차가워. 직장인도 쉬고 싶다!”

“당분간 못 쉬어?”

“응…. 이번 달 말까지 책 3권 마감해야 해….”

“…힘내라.”

출근하기 싫은 직장인을 달래며 식사를 끝내고 원우가 자연스레 설거지했다. 그 사이 명호는 외출 준비를 마치고 준휘와 차를 마시며 막내들을 기다렸다. 얼마나 멋 부리고 있는 건지 원우가 설거지를 마칠 때까지도 막내들은 모습을 비추지 않다가 카메라를 챙겨 나갈 준비를 마치고 나서야 하나, 둘 집으로 들어왔다.

“이야~ 우리 막내들 오늘 멋진데?”

“그냥 바람 쐬러 가는 건데 너무 꾸민 거 아냐?”

“멋지다! 사진 찍자, 사진!”

“아니이. 형들이 자꾸 다 별로라 그래서 이거 입은 거야.”

“뭐래. 모자 어떤 게 낫냐고 물어보던 이 찬씨는 어느 집 이 찬씨여?”

모이자마자 투닥거리는 승관과 찬 사이에 한솔은 어서 가자며 소리 없이 눈빛으로 형들을 조르고 있었다. 이젠 스물셋, 스물둘이면서도 여전히 어릴 때와 다름없는 막내들에 셋 다 웃음을 터트렸다. 왜 웃는지 영문을 알지 못하면서 막내들은 형들이 웃는다고 투닥거리는 것도 멈춘 채 또 같이 웃었다.

“그럼, 갈까?”

“더 늦으면 나 지각.”

“지각하면 안 되지. 빨리 가자.”

“가자, 가자~”

차 키를 챙긴 원우를 필두로 출근해야 하는 준휘가 나가고 그 뒤를 따라 승관과 한솔, 찬을 내보낸 명호가 마지막으로 집 안을 둘러보고 문을 닫았다. 521호. 그가, 원우가 돌아올 집. 그곳을 뒤로 하고 먼저 간 가족들의 뒤를 따라갔다.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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