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웆밍] Christmas Carol

크리스마스 기념

“지훈아. 캐럴 하나만 쓰자, 아니. 써 주라.”

“아니, 형. 갑자기 무슨 캐럴이야.”

“야 훈아, 한 번만, 한 번만 부탁할게. 응?”

최근 가장 잘 나가는 프로듀서 이지훈(a.k.a 우지)은 어느 겨울 아침 아는 형님의 눈물겨운 부탁과 마주해야 했다. 캐럴이라니. 크리스마스 얼마 남았다고 갑자기 캐럴을 써 달래. 지훈이 크리스마스를 좋아하면 또 모르겠다. 크리스마스는 지훈에게 그냥 집에서 동생들이랑 밥 먹는 날, 어딜 가든 사람이 넘쳐서 밖에 나가면 안 되는 날. 딱 이 정도에 불과했다. 이거 백 프로 번거로울 것 같은데. 지훈은 난감하게 뒷머리를 긁었다.

“지훈아, 한 번만. 어? 내가 너한테 곡 받아준다고 약속해서….”

“근데 캐럴은 좀….”

“지훈아아아….”

평소에 이런 부탁 잘 안 하는 형이 이렇게 나오니 거절하기가 좀 그랬다. 아, 캐럴 자신 없는데. 그런데 이 형도 도저히 포기할 것 같지도 않았다. 지훈은 그에게 거의 매달리는 형을 밀어내며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이번만이다.”

“진짜 고맙다. 어, 어. 진짜 다신 이런 부탁 안 할게.”

결국 지훈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하겠다고 하자마자 행복하게 웃으며 작업실을 나가는 승철의 뒷모습을 보며 왠지 당했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어쨌든 하겠다고 했으니 해야 했다. 지훈은 힐끗 책상 위의 달력을 바라보았다. 올해 달력도 이제 거의 남지 않았다. 캐럴이면 12월 초, 늦어도 중순까지는 나와야 할 것 같은데. 지훈은 알아서 대강의 마감을 정했다.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캐럴.

지훈은 작업실 의자에 앉아 곰곰 생각에 잠겼다. 이미 차고 넘치는 게 캐럴이었다. 크리스마스 기간 되면 수금하러 오시는 머라이어 캐리 님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 있고, Last Christmas, Text me merry Christmas 있고, 한국에서 나온 캐럴들도 있고, 징글벨, 울면 안 돼,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이런 류 있고. 종류야 많다. 그런데 대체 뭘 쓰지.

결국 고민은 하나로 귀결되었다. 크리스마스 캐럴 좋다 이거야. 근데 뭘 쓰지. 크리스마스를 좋아해 봤어야 캐럴의 ㅋ이라도 쓸 텐데, 지훈은 크리스마스라고 설레거나 들뜨는 감각을 느껴본 적 없었다. 삼 형제의 맏이로 태어난 죄로 지훈은 산타는 없다는 걸 너무 빨리 알아버렸고 – 그는 부모님을 도와 둘째와 막내의 환상을 지켜주기 위해 애쓰는 쪽이었다. 그의 노력 덕에 석민은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산타가 있다고 믿었다. 찬은 좀 빨리 깨달은 것 같았지만, 형과 부모님을 위해 속아주는 척했고. – 딱히 크리스마스의 로망도 없었다. 남들은 크리스마스에 연인이랑 보낸다는데 작업하고 사느라 바쁘기도 하고 귀찮기도 해서 연애도 하질 않았으니 지훈에게 크리스마스는 그냥 가족들이랑 밥 먹는 날, 그 정도였다. 아, 안 풀릴 것 같은데. 고민하다 보니 배까지 고팠다. 되는 게 없네. 지훈이 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 갑자기 핸드폰에서 알림이 울렸다.

「11월 캐럿 가계부를 확인하세요!」

이건 또 뭐야. 내 폰에 이런 어플이 있었나? 제가 설치한 기억이 없어 머리를 굴려 보니 아무래도 예전에 석민이 놀러와서 제 핸드폰으로 중고거래를 할 때 설치한 어플 같았다.

-형, 나 형 걸로 중고거래 한다?

-그걸 왜 내 걸로 해. 네 걸로 해야지.

-아 형 작업실이랑 집이랑 위치 달라서 뜨는 거 다르단 말야.

-알았다, 알아서 해.

얘는 뭐 어플 깔아놓고 지우지도 않고 갔냐. 투덜거리며 지훈은 알람을 밀어 지우려다 그대로 알람을 눌렀다. 캐럿! 귀여운 소리와 함께 어플이 켜졌다. 대충 뒤로 가기를 하려는데, 어플에 특이한 게시글이 하나 있었다.

[저희 집에서 오늘 저녁(7시) 같이 드실 분 구해요. 남자분만 가능(저도 남자입니다.) 약속 있어서 저녁 준비 크게 했는데 파토나서요. 잘 드시는 분 환영합니다. 밥만 먹고 헤어질 거라 몸만 오시면 돼요.]

이거 뭐 신종 인신매매 그런 건가? 라기엔 혈액형을 묻지도 키나 나이 같은 건강 상태를 묻지도 않았다. 지훈은 턱에 손을 괴고 그 게시글을 다시 읽었다. 장소가 그의 작업실과 별로 멀지 않았고, 슬슬 배가 고프기도 하고, 이 게시글이 특이해서 좀 웃기기도 하고, 무엇보다 요즘 안 그래도 스트레스받는 일 많았는데 새로 받은 일거리인 캐럴도 잘 떠오르질 않아서 살짝 제정신이 아닌 상태인 내향인 이지훈은 밥이란 말에 넘어가 일생일대의 선택을 했다. 무려 그 게시글에 댓글을 달았다.

ㄴ저요.

달고 나니 아차 싶었는데, 이 작성자는 게시글 올리고 내내 핸드폰만 보고 있었는지 바로 앱 내 채팅으로 연락이 왔다. 이제 거절하기가 더 어렵게 됐다. 주소는 여기구요. 7시까지 오시면 돼요. 아니, 근데 모르는 사람한테 이렇게 주소 막 알려주고 그래도 되나. 내가 나쁜 마음 먹은 사람이면 어쩌려고. 요즘 세상이 얼마나 흉흉한데. 동생 둘 두고 산 맏형다운 잔소리가 떠올랐지만 차마 초면…도 아니지,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할 소리는 아니어서 지훈은 일단 건조하게 답장했다.

네, 이따 뵙겠습니다.

아무리 초대한 사람이 빈손으로 와도 된다고 했어도 그렇지, 그래도 밥 얻어먹으러 남의 집 가는데 빈손으로 가기는 좀 그랬다. 아, 뭐 가져갈 거 없나? 혼자 사는 집에 과일바구니 들고 가는 것도 좀 그렇고, 너무 거창한 것도 좀 그래서 지훈은 일단 작업실을 뒤졌다. 아직 안 뜯은 제로 콜라 한 박스 있길래 이거다 싶어서 집어 들었다. 힐끗 거울을 보니 평소 작업할 때처럼 대충 아무거나 걸쳐 입은 제 모습이 보였는데, 뭐 작업 미팅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 그럴듯한 곳 가는 것도 아니니까 이쯤이면 됐다 싶어서 지훈은 거기에 모자만 눌러쓰고 목적지로 향했다.

아, 어색할 것 같은데. 내가 왜 그랬지.

충동은 한순간이고 후회는 길었다. 진짜 조용히 밥만 먹고 와야겠다. 생각하며 지훈은 터벅터벅 걸었다. 겨울의 차가운 바람이 뺨을 스쳤다. 진짜 캐럴 어떡하지. 뭐 떠오르는 게 있어야 그 한 조각이라도 붙잡고 곡을 쓰겠는데, 크리스마스 하면 떠오르는 게 별로 없었다. 트리? 산타? 예수님 생일. 끝. 소재가 문제가 아니라 거기서 느껴지는 감정이 있어야 하는데 뭐 크리스마스를 즐겨 봤어야 알지. 사람 많은 거 싫어서 잘 꾸며놨다고 하는 곳도 그 시기 되면 일부러 안 가는데. 걷다 보니 금방 목적지에 도착했다. 지훈은 크게 숨을 한 번 고르고 벨을 눌렀다.

“누구세요?”

“어. 그, 캐럿… 보고 왔는데요.”

“아, ‘노래는내가짱’님? 어서 오세요.”

순간 지훈의 머리가 정지했다. 뭐라고. 지금 내가 뭘 들었지. 뒤늦게 그게 석민이 정한 중고거래 어플 닉네임이란 걸 깨달았고, 순식간에 귀와 얼굴에 열이 몰려 새빨개졌다. 이석민 내가 가만 안 둔다 진짜. 지훈은 부끄러움 탓에 조금 늦게 고개를 들었고, 그래서 현관까지 들어서고 나서야 그를 초대한 남자를 처음으로 제대로 보았다.

잘생겼다. 키 되게 크네.

생각 그대로 잘생기고 키 큰 남자였다. 지훈의 얼굴 취향을 따지자면 좀 더 순정만화 스타일의 예쁘고 반짝거리는 사람이긴 했는데 그냥 취향이고 뭐고 떠나서 인간 본능의 레벨에서 어, 잘생겼네, 소리가 절로 나오게 하는 미남. 그 미남은 사람 좋게 웃더니 들어오세요, 라며 지훈을 안으로 안내했다.

“이거 별 건 아닌데, 그냥 오기가 그래서요.”

“아, 진짜 빈손으로 오셔도 되는데. 감사합니다.”

지훈은 일단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도 예의를 차리려 가져온 제로 콜라 박스를 내밀었다. 남자는 박스를 들고 식탁 쪽으로 향했다. 지훈은 최대한 집안을 둘러보지 않으려 애썼지만, 그냥 대충 흘깃 보아도 집이 깔끔하고 잘 정리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주인의 취향대로 꾸며진 것 같기도 했고. 그런데 식탁에 가니 웬 구첩반상이 차려져 있었다.

“….”

“좀 많죠? 준비하다 보니까 이것저것 하게 되더라구요.”

“다… 본인이 하신 거예요?”

“어, 아뇨. 김치는 집에서 받았어요.”

아니 그럼 나머지는 다 했다는 소리잖아. 지훈은 진심으로 제로 콜라 말고 과일바구니를 사 올 걸 후회했다. 나 지금 무슨 한정식집 왔나. 갈비찜, 잡채, 온갖 나물에, 저건 뭐야 갈치 조림인가? 저 손 많이 가는 것들이 왜 식당도 아니고 가정집 밥상에 있냐고. 이런 밥상 차려 놨으면 억울해서라도 사람 부를 만하다. 지훈은 글을 올린 이 남자의 심정을 이해했다. 동시에 대체 어떤 사람이 이런 약속을 파토냈을까 약간 궁금해졌다. 덕분에 지훈은 오늘 저녁 잘 먹게 생겼으니 고맙긴 한데.

“맞다. 저는 김민규예요.”

“저는 이지훈이요. 그, 닉네임은 제가 아니라 동생이 지은 겁니다….”

“그러시구나. 노래 되게 잘하셔서 그렇게 지은 줄 알았어요. 앉으세요. 밥 드릴게요.”

지훈은 닉네임을 변명하고 식탁에 앉았다. 그런 수치스러운 닉네임을 제가 지었다고 오해받는 건 사양이었다. 민규는 익숙하게 밥을 퍼서 지훈에게 주었다. 그릇 한가득 담긴 밥까지 고슬고슬하니 맛있어 보였고, 밥이랑 함께 나온 된장국은 벌써 냄새부터 이거 맛있다고 촉이 왔다. 지훈은 꿀꺽 침을 삼켰다. 맨날 배달시켜 먹고, 작업실 앞 식당에서 대충 사 먹었지 이렇게 제대로 된 밥 먹은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가끔 작업 미팅하기 전에 한정식집 가긴 했는데 그 자리는 또 너무 불편해서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였으니까 빼고.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밥 더 필요하면 말씀하세요.”

“넵.”

둘은 마주 앉아 밥을 먹기 시작했다. 지훈은 밥과 갈비찜과 김치를 야무지게 수저 위에 얹어 입에 넣었고, 저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입을 다물고 씹어 삼킬 때까지 충격이 가시지 않았다. 지훈은 어느새 민규가 가져다 놓은 물 한 모금을 마시고 감탄을 뱉었다.

“와… 요리 진짜 잘하시네요.”

“입에 맞으세요? 다행이다.”

“네. 진짜 맛있는데.”

너무 맛있으니까 말이 절로 나왔다. 민규는 즐거운 듯 웃고는 많이 드세요. 했다. 지훈은 홀린 듯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밥을 한술 떴다. 그러고 보니 생각보다는 어색하지 않았다. 식탁 위의 음식에 압도돼서 그런지, 민규가 낯가리지 않고 친근하게 굴어서 그런지. 낯가림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 같았다. 한눈에 봐도 친구 많고 아는 사람 많고 인기 많을 것 같았다. 민규는 밥을 먹는 지훈을 흐뭇한 눈길로 보다가 입을 열었다.

“진짜 지훈 씨가 와 주셔서 다행이에요. 아니면 이거 다 버릴 뻔했는데.”

“그, 어쩌다가….”

“음, 말씀드리기 좀 쪽팔리긴 한데. 오늘 차여서요. 준비 다 해놨는데. 말할 거면 일찍 말하지. 나쁜 새끼.”

아, 씨. 망했다. 괜히 물어봤다. 근데 안 물어보는 것도 이상했어. 어떡하지. 지훈은 숟가락을 든 채로 잠시 굳었다. 여기서 무슨 말을 해야 어색하지 않게 이 순간을 넘어갈 수 있을까.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는데 도저히 떠오르질 않았다. 그러게요. 제가 와서 다행이네요. 미친놈인가? 안타깝네요. 되겠냐고. 지훈은 결국 할 말을 찾지 못해 눈만 깜빡였는데, 그것을 보고 있던 민규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 죄송해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저 진짜 괜찮아요. 덕분에 지금 기분 되게 좋아요. 잘 드셔서 좋네요. 걔 깨작거리는 거 보기 싫었는데. 그러고 보니 밥 먹는 게 꼴 보기 싫어지면 맘이 식은 거라는데, 그런 거였나 봐요.”

지훈은 여전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지만, 이번엔 아까처럼 난처하지는 않았다. 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대체 왜 이런 사람을 찼을까, 생각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 속은 모른다고, 지훈이 민규에 대해 잘 모르긴 하지만 좋은 사람 같은데. 누군가를 위해 이렇게 준비하는 것이 절대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말하는 걸로 봐선 처음 한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때 민규가 지훈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근데 저도 하나 여쭤봐도 돼요? 어쩌다 댓글 다셨어요? 올린 제가 할 말은 아니긴 한데, 엄청 이상해 보이잖아요. 갑자기 밥 먹으러 오라는 게. 사실 아무도 안 올 줄 알았어요. 댓글 달려서 되게 기쁘긴 했는데 이상한 사람 오면 어쩌지 하기도 했고.”

안 그래도 그 건에 대해서 좀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본인도 알고는 있었다니 다행인 것 같기도 하고. 지훈은 음, 하고 고민하는 소리를 냈다.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한순간의 충동이긴 했는데, 그렇다고 그렇게 말하기는 좀 그렇고. 그냥 솔직하게 얘기하는 게 제일 편할 것 같았다.

“일이 들어왔는데 잘 안 풀려서 머리 싸매고 있었고, 배도 고팠고. 뭐, 제정신이 아니었던 거죠. 그러다 어플 잘못 들어갔는데 마침 그 게시글이 보이길래 댓글 달았어요. 달면서 신종 인신매매인가 잠깐 의심하긴 했는데… 뭐 남자만 오라고 하니까 괜찮을 것 같기도 했고요. 근데, 진짜 이상한 사람 올 수도 있는데 이 사람 뭘 믿고 이러나 하긴 했어요. 세상이 얼마나 흉흉한데.”

민규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잘 웃는 사람이었다. 웃는 게 보기 좋았다. 민규는 한참을 웃다가, 인신매매, 하고 혼자 중얼거리고 또 웃다가, 지훈을 보고는 겨우 웃음을 참았다. 웃다가 눈물이 났는지 눈가를 슥슥 닦기까지 했다. 지훈은 내 말이 웃긴가, 싶었는데 생각해 보니 좀 웃긴 것 같기도 했다. 민규가 웃음기가 남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운이 좋았네요. 이상한 사람 말고 지훈 씨가 오셔서 다행이네.”

“맛있는 밥 공짜로 얻어먹은 제가 더 운 좋은 것 같은데요.”

“아, 진짜 웃기다. 나중에 또 밥 먹으러 오실래요? 제가 맛있는 거 해드릴게요.”

“뭐, 불러 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밥 진짜 맛있는데.”

이런 밥 또 먹을 수 있으면 지훈은 언제라도 환영이었다. 사실 밥값 내라고 해도 기쁘게 내고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각보다 어색하지도 않았고. 민규는 꽤 재밌고 편한 사람이었다. 지훈 입장에선 나쁠 게 하나도 없었다.

이런저런 대화가 오갔다. 지훈은 자기가 작곡가란 걸 밝혔고, 민규는 오, 멋있네요. 했다. 민규는 카페를 운영한다고 했다. 지훈은 사장님이시네, 했다. 둘은 사소하고 가벼운 이야기들로 웃고 떠들며 저녁을 먹었고, 그날 번호를 교환하고 헤어졌다.

지훈은 민규의 집을 나서며 재밌고 신기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했다. 그야, 자기가 생각해도 자기가 어제까지 얼굴도 모르던 사람의 집에 가서 밥 얻어먹을 생각을 한 게 좀 웃겼고, 진짜 간 것도 웃겼고, 갔더니 밥이 엄청 맛있었던 건 좋았고, 민규랑 만난 것도 나쁘지 않았다. 여전히 캐럴을 어떻게 쓸지는 생각나지 않았지만, 오늘 저녁의 경험만으로 오늘은 나쁘지 않은 하루가 된 것 같았다.

 

*

 

“하….”

“왜, 형. 아직도 안 풀려?”

“생각이 안 나….”

메일로 구체적인 작업 내용도 받았겠다, 하루하루 날짜는 지나가겠다. 이젠 진짜 뭐가 나오든 나와야 하는데 도통 생각이 안 났다. 지훈은 작업실 의자에 몸을 파묻은 채 녹아내렸다. 지금이라도 승철에게 가서 못하겠다고 드러누울까. 그러기엔 작곡가 우지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어떤 일이든 받았으면 제대로 해야지. 처음부터 안 받았으면 몰라도. 아, 근데 모르겠고 맛있는 거나 먹고 싶다. 그 집에서 얻어먹은 밥 진짜 맛있었는데… 갈비찜 더 먹을걸. 지훈이 한참이나 멍하니 늘어져 있자 작업실에 놀러 온 석민이 제 형을 저렇게 두면 안 되겠다 싶었는지 입을 열었다.

“형이 크리스마스 기운이 부족해서 그래.”

“뭔 소리냐 그건.”

“캐럴이 뭐야, 크리스마스 노래잖아. 형이 크리스마스에 대한 진정성이 부족해서 그래. 요즘 슬슬 크리스마스 준비하는 데 있던데, 그런 데라도 좀 나가 보고 그래. 아니면 뭐 크리스마스 특선 영화라도 보거나.”

듣다 보니 석민의 말에 틀린 말이 없었다. 크리스마스 특선 영화… 해리포터 아니면 나 홀로 집에 밖에 안 떠올랐다. 근데 이건 노래 분위기에 안 맞고. 진짜 크리스마스 준비하는 데 구경이라도 가야 하나. 지훈은 가만히 생각하다 결단을 내렸다. 그래, 이렇게 작업실에만 처박혀 있다고 답이 나오진 않을 것 같다. 나가자.

“이석민. 그럼 갈 데 추천 좀 해봐라.”

“진짜 가게? 오. 그럼 여기 가봐.”

석민이 몇 번 검색을 하더니 딱 봐도 사람이 아주 많을 것 같은 거리를 추천했다. 벌써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네요, 어쩌고 하는 게시글도 있었다. 와, 벌써 가기 싫다. 지훈은 인상을 구겼으나 가기는 가야 했다. 형, 크리스마스를 느껴봐. 형은 크리스마스에 대한 진정성이 필요해. 지훈의 표정을 본 석민이 진지하고도 성스러운, 마치 크리스마스 전도사가 된 것 같은 얼굴로 설교했다. 지훈은 모자를 눌러쓰며 대꾸했다. 됐어, 나 간다. 어질러 놓은 거 치워놓고 가라. 힝. 귀여운 척하지 말고. 넵.

그렇게 지훈은 거의 인생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사람이 많은 날 사람이 많을 장소로 향했다. 가는 길이 천릿길 같았으나 가기는 가야 했다. 석민이 말하는 그 진정성이 뭔지는 모르겠는데 어쨌든 크리스마스를 좀 느끼기는 해야 하는 게 사실이기는 했고. 캐럴은 크리스마스를 위한 노래니까. 그래서 가기는 갔는데….

“….”

모르겠다. 그놈의 크리스마스에 대한 진정성이 뭔지. 반짝거리는 조명이 화려하고, 높다란 트리가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고, 불쌍한 루돌프가 산타 할아버지의 썰매를 끄는 장식물들이 설치되어 있고, 사람들은 즐거워하며 사진을 찍는데 지훈은 어, 그래 반짝거리고… 예쁘네. 빼고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그냥 사람이 많아서 진이 빠졌고 작업실로 돌아가고 싶었다. 다들 나가주세요. 혼자 있고 싶네요. 딱 이 정도 감상이었다.

“하….”

“어, 지훈 씨?”

지훈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고 있는데, 뒤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민규가 있었다. 이렇게 모르는 사람 넘치는 곳에서 그래도 얼굴 한 번 본 아는 사람 만나니 좀 반가웠다. 바다에서 표류하다가 매달릴 나무판자 찾은 느낌. 민규는 지훈에게 다가오더니 물었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 놀러 오셨어요?”

“아뇨. 일이 잘 안 돼서… 뭐라도 도움이 될까 해서 나왔는데 틀린 것 같아요.”

지훈은 저도 모르게 다시 한숨을 쉬었다. 이걸로 안 되면 크리스마스 영화를 봐야 하나. 근데 나 크리스마스 영화 잘 모르는데. 영화 보기도 귀찮고. 아, 러브 액츄얼리 그건 안다. 그거 봐야 하나. 근데 그거 엄청 옛날 거잖아…. 온갖 생각이 짧은 순간에 흘러갔다. 민규는 지훈을 보더니 조금 놀란 듯 눈을 깜빡거렸다.

“진짜 잘 안 풀리시나 봐요. 표정이 안 좋으시네. 식사는 하셨어요?”

“아직이요.”

“그럼 저랑 같이 저녁 드실래요?”

“좋죠.”

그래, 인생 뭐 있냐. 밥이나 먹자. 한국인은 밥심이지. 민규는 자기가 아는 식당이 있다고 했고, 이곳에 아는 식당이 있기는커녕 길도 잘 모르는 지훈은 모든 걸 민규에게 맡기기로 하고 민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큰 사람이 앞에서 걸으니까 잘 보이고 좋았다. 민규는 앞서가면서 중간중간 뒤를 힐끔거리며 지훈이 잘 따라오는지 확인했다. 섬세한 사람이네. 배려심 많고. 사람 잘 챙기고. 지훈은 속으로 그렇게 평했다. 몇 번 안 만나본 지훈에게도 보였다. 좋은 사람이었다. 둘은 어느 양식집으로 들어가 밥을 먹었다. 리조또 괜찮으세요? 좋아요. 여기 이게 맛있거든요. 하는 대화가 오갔다. 민규가 추천해주니 지훈은 편했다. 지훈은 얌전히 앉아 민규가 주문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지훈 씨,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아. 96년생입니다.”

“저보다 형이시네. 저는 97이요. 형이라고 불러도 돼요?”

“뭐, 안될 거 있나. 그러세요.”

“네, 형. 말 편하게 하세요.”

민규가 살갑게 웃었다. 쟤 진짜 잘 웃는다. 항상 웃는 얼굴인 것 같았다. 친화력도 진짜 좋고. 정신을 차려 보니 지훈은 민규와 말을 놓는 사이가 되었다. 지훈 씨, 하고 불리는 게 좀 어색하기도 했고, 꼭 일할 때 같기도 해서 – 그때는 보통 우지 씨, 하고 불리긴 하지만 – 좀 그랬는데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근데 형, 뭐 때문에 잘 안 풀려요? 아, 이런 거 물어보면 안 되나?”

“아니, 뭐 대단한 거라고. 별로 상관없어. 크리스마스 캐럴 작업해야 하는데 크리스마스 느낌을 잘 모르겠어서. 내가 크리스마스 즐기는 편도 아니고.”

아, 하고 민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하고 중얼거리던 민규가 무언가 떠올랐는지 번쩍 고개를 들었다. 갑자기 신난 듯 눈이 반짝거렸다. 지훈만 괜히 당황했다. 뭐야, 뭔데. 민규가 들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럼 저 좀 도와주실래요? 이거 형한테도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지훈은 지금 그놈의 크리스마스 뭐시기를 위해서라면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남이 나서서 도와준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집에 가서 러브 액츄얼리 다시 보느니 뭐라도 하는 게 훨씬 나을 것 같기도 했고.

“그래. 그런데 뭔데?”

“제가 저 카페 한다고 말씀드렸죠? 형 내일 시간 되세요?”

“어, 일정 없어.”

“그럼 내일 아침에 여기로 와 주실래요?”

오시면 알 수 있을 거예요. 도와주시면 제가 밥 살게요. 민규는 신난 듯 웃으며 카페 한 곳을 알려주었다. 이 카페도 지훈의 작업실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Cafe Seventeen] 어째 이름이 익숙한 게 가끔 석민이나 찬이 커피를 여기서 사온 것 같기도 하고. 커피랑 디저트 다 맛있다고 했던 게 기억에 남았다. 민규가 거기 사장님이라니. 세상 참 좁다 싶었다. 둘은 밥을 먹고 내일 보자며 헤어졌다. 지훈은 작업실로 돌아갔는데, 거기엔 석민과 찬이 나란히 누워있었다.

“너 아직 안 갔냐. 찬이까지 데리고 왔네.”

“큰형 안녕. 캐럴 영감 얻으러 갔다며.”

“형, 어땠어? 좀 도움 됐어?”

“간 건 도움 안 됐는데, 도와주겠다는 사람은 만났다.”

오, 잘됐네. 석민이 웃었고 찬은 약간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잘 아는 사람 만난 투는 아닌데. 자기 집 큰형의 좁디좁은 인간관계를 대충 다 알고 있는 막내는 그 도와주겠다는 사람이 좀 궁금했지만 어른스럽게 묻지 않았다. 뭐, 누구든 도와준다면 좋은 거지. 맨날 집에 와서도 그놈의 크리스마스 캐럴…. 하고 중얼거리는 게 영 살벌했는데 그게 해결된다면 찬은 그 모르는 분을 향해 절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너네 또 여기서 커피 샀냐.”

“어, 여기 맛있어서. 사장님 친절하고 디저트도 맛있어.”

“맞아. 나 그래서 과제 할 때 자주 가.”

“그러냐.”

지훈은 석민과 찬 앞에 놓인 컵의 홀더에서 [Cafe Seventeen]이라는 이름을 발견하고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전혀 모르던 사람을 어쩌다 알게 되었는데, 의외로 가까이 있었다는 게 신기했다. 정작 지훈은 그 카페를 한 번도 가본 적 없었지만. 그 게시글을 보지 않았다면, 보았더라도 댓글을 달지 않았다면 내내 모르고 살았겠지. 카페를 가도 그 사장과 알게 되는 건 아니니까. 그러고 보면 인연이라는 게 신기하기는 했다.

다음날, 지훈은 아침에 힘겹게 일어나 카페로 향했다. 늦게까지 자고 저녁에 작업하는 작곡가의 일정으로는 거의 새벽이나 마찬가지인 시간이라 눈이 잘 안 뜨였는데 약속을 했으니 가기는 해야 했다. 지훈은 꾸벅꾸벅 졸며 씻었고, 평소처럼 입으려다 잠깐 멈칫했다. 그래도 이것도 나름 약속 나가는 건데, 업무미팅 같은 건 아니어도 좀 신경을 쓰긴 해야 할 것 같았다. 민규는 보니까 원래 옷 잘 입는 것 같았고. 딱히 지훈이 대강 입고 나가도 민규가 뭐라고 할 것 같진 않았지만 그래도 괜히 신경 쓰이게 하긴 싫으니까. 지훈은 옷장을 뒤져 트레이닝 바지 대신 청바지를 꺼냈다. 티셔츠는 평소처럼 검은색 입으려다 말고 흰색 찾아 입었고, 패딩 툭 걸쳐 입는 대신 잘 안 입는 코트를 꺼내 입었다. 이 정도면 되겠지. 지훈은 마지막으로 거울을 보고 제 옷차림을 확인한 후 밖으로 나섰다.

 

*

 

“크네….”

카페는 지훈의 생각보다 컸다. 무려 2층 대형 카페. 나 생각보다 대단한 사람이랑 알게 된 거 아닌가? 정작 자기는 히트곡 제조기로 유명한 작곡가 우지였으나, 미디어에 얼굴 노출한 적도 없고 조용히 사느라 딱히 명성을 느낄 일이 없는 지훈은 일단 자기 눈앞에 있는 2층 카페에 압도되어 문을 밀고 들어갈 생각을 못 했다.

“어, 형. 오셨어요!”

“안녕…. 너 대단한 카페 사장님이었구나.”

“형한테 그런 말 들으니까 기분 이상하네. 들어오세요. 커피 한 잔 드릴까요?”

결국 그를 발견한 민규가 가게 문을 열고 나와 직접 지훈을 데리고 들어갔다. 민규는 지훈에게 커피를 내주었고, 지훈은 아직 열지 않은 카페 안에 얌전히 앉아 민규가 준 커피를 마셨다. 커피를 많이 마셔보진 않았지만 이건 마시자마자 다른 커피랑은 다르단 걸 알 수 있었다. 뭔가 맛있네. 커피 맛없어서 잘 안 마시는데 이런 커피라면 계속 마실 수 있겠다. 지훈은 커피를 홀짝거렸다. 민규는 형, 죄송한데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하더니 부산스럽게 짐을 꺼내고 청소하고, 원두를 꺼내고 과일을 씻고 썰었다. 지훈은 그 모든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카페 운영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구나.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냐마는, 직접 보니 좀 느낌이 달랐다.

“후, 됐다. 죄송해요. 아르바이트하는 친구가 오늘 좀 몸이 안 좋아서 못 온다고 하길래 미리 준비 좀 해 놔야 할 것 같아서요.”

“나 시간 많아. 상관없어. 이 커피 맛있다.”

“고마워요, 형. 음, 오늘 우리 목표는요. 이 가게 꾸밀 장식 사는 거예요. 크리스마스 느낌 나게.”

지훈은 고개를 돌려 가게를 둘러보았다. 가게는 민규의 집처럼 깔끔하고 단정했다. 여길 크리스마스 분위기 나게 꾸민다고. 지훈은 어째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트리 좀 놓고… 그러면 되나. 민규는 지훈의 표정을 보더니 씩 웃었다.

“결과만 보면 안 설렐 수 있는데, 원래 먹을 것도 자기가 만들어 보면 더 신기하고 맛있다고 하잖아요. 형도 크리스마스 장식 같이 고르고 하다 보면 크리스마스가 좀 설레지 않을까 해서요.”

“근데 민규야, 미리 말하는데 나 장식 고르는 데 도움 안 될걸.”

“에이, 형. 그래도 혼자보단 둘이 낫죠.”

그런가.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민규 말을 들어보니 도움이 좀 될 것 같기도 했다. 그 크리스마스 장식이 뭐가 있는지, 어떻게 꾸미는지 알면 좀 그 설렘이란 걸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했고. 민규가 벌써 좀 신나 보여서, 쟤는 이게 일인데도 좋은가 싶었다.

지훈은 이번에도 민규를 따라갔다. 운전은 민규가 했다. 가게 하는 사람이 차 없으면 안 되죠, 하더니 지훈을 태우고 큰 마트로 갔다. 맨날 인터넷으로 배송을 시켜서 몰랐는데, 마트는 벌써 내일이 크리스마스인 것처럼 요란하고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초록색과 빨간색, 금색과 은색 장식이 곳곳에 널려 있어서 정신이 사나울 정도였다. 지훈은 그냥 앞서가는 민규의 등만 보고 따라갔다.

“2층에 특선 코너 있거든요. 거기 가요. 형.”

민규는 다 계획이 있구나. 뭐든 딱딱딱 계획을 세워놓고 순서대로 착착착 해내는 것 같았다. 지훈은 속으로 감탄하며 뒤를 따랐다. 민규는 카트를 밀며 앞으로 나아갔다.

2층은 민규 말대로 크리스마스 장식 특선 코너였는데… 정말 모든 종류의 크리스마스 장식이 거기 다 있는 것 같았다. 트리는 무슨 크기와 색깔별로 있었고 – 지훈은 은색 트리가 있다는 것도 거기 가서 알았다 – 전구, 트리에 거는 빨간 구슬, 자그마한 산타, 루돌프, 눈사람, 아기천사, 썰매와 북극곰…. 거기에 Merry Christmas, Happy New Year 로도 모자라 온갖 장식으로 만들어진 가랜드, 크리스마스 리스, 겨우살이와 가짜 선물 모형까지 있었다. 지훈이 보기엔 솔직하게 말해 다 비슷비슷해 보였다. 다들 반짝거렸고, 다들 화려해서 거기서 거기 같았다. 그런데 민규 눈에는 다르게 보이는지 민규는 비슷해 보이는 두 개 사이에서 여러 번 고민에 잠겼고, 그때마다 지훈에게 질문을 던졌다.

“형, 이거 둘 중에 뭐가 더 귀여워요?”

잔뜩 들뜬 얼굴로 묻는데, 거기다 대고 내 눈엔 다 비슷해 보이는데? 할 순 없어서 지훈은 태어나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종류의 고민을 좀 했다. 루돌프와 산타… 그래도 할아버지보단 동물이 더 귀엽지. 지훈은 루돌프를 가리켰고, 민규는 역시. 형도 이게 더 귀엽죠? 하며 루돌프를 카트에 넣었다. 민규는 고민하지 않을 때도 이게 더 귀엽고, 저게 더 예쁘다 하며 조잘거렸다. 지훈은 여전히 장식이 뭐가 더 귀엽거나 그런 건 잘 모르겠는데 조잘거리는 민규는 좀 귀여웠다.

“리스 다는 게 좋으려나… 형, 어떻게 생각해요?”

지훈은 또다시 고민을 시작했다. 리스… 벽에 다는 거. 근데 그 카페 창이 많아서 리스 달 데가… 사이사이 달면 되나? 태어나서 작업실 빼고 뭔가 꾸미는데 신경 써본 적이 없는 지훈은 최선을 다해 아까 보았던 카페의 구조를 떠올렸다. 복층 구조의 2층 카페, 중간에 올라가는 계단이 있고….

“너네 가게 복층이니까, 2층 난간 쪽에 몇 개 달면 괜찮을 것 같은데.”

“우와. 좋은데요? 형, 고마워요. 리스 사야겠다.”

민규가 환히 웃으며 리스를 카트에 담았다. 그래도 뭔가 도움이 좀 된 것 같아서 지훈은 괜히 뿌듯했다. 여전히 크리스마스의 설렘이 어떤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민규가 설레하고 들떠 하는 이런 느낌인가 싶기도 했다. 민규가 신나니까 지훈도 따라 기분이 좋았다.

2층을 돌다 보니 카트가 많이 찼다. 민규는 창문에 붙일 장식도 샀고, 웬 산타 할아버지가 사다리에 매달려 있는 장식품도 샀다. 민규가 모든 장식을 골라야 해서 중간부터는 지훈이 카트를 밀었다. 민규는 안 그래도 된다고 손사래를 쳤는데, 지훈은 이게 더 빠르다며 카트를 잡았다. 하여간 둘은 열심히 장식 쇼핑을 했다. 가짜 선물 모형을 마지막으로 민규가 쇼핑의 끝을 알렸다.

민규는 포장도 참 야무지게 했다. 박스에 장식을 담는 솜씨가 가히 예술의 경지였다. 지훈은 도와줄까? 했다가 전문가에게 맡기세요, 라는 말에 얌전히 있었는데 포장하는 모습을 보곤 저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형, 배고프죠. 우리 밥 먹어요.”

“그래, 그러자.”

포장한 장식들을 차에 싣고 둘은 점심을 먹으러 갔다. 민규는 아는 곳이 참 많았다. 자기가 아는 식당이라며 어느 중국집에 데려갔는데, 짜장면이 예술이었다. 민규네 카페 근처이자 지훈의 작업실 근처였는데, 주로 작업실에 처박혀 있던 지훈은 알지 못했던 곳이었다. 민규 덕에 자꾸 알아가는 것이 늘었다. 그건 좀 낯설면서도 좋은 기분이라, 지훈은 이 중국집도 기억해 놓기로 했다.

“여기 맛있다. 다음에 또 와야겠네.”

“맛있죠? 여기 유린기도 맛있어요. 먹어보세요.”

“엉. 그럴게. 근데 오늘 산 거 장식은 언제 할 거야?”

“아, 가게 쉬는 날 하려구요. 다음 주 월요일쯤?”

지훈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다음 주 월요일에 일정이 있던가. 그놈의 캐럴이 안 풀려서 최근 원래도 없던 약속을 더욱 줄였고, 새로 들어오는 의뢰도 받지 않고 있어서 제법 한가했다. 말해도 될까. 방해되려나. 지훈은 오늘 샀던 장식들을 생각했고, 그게 어떻게 꾸며질지를 상상해 보았다. 예쁠 것 같은데, 어떻게 장식이 될지는 잘 떠오르지 않았다. 다른 데 장식 좀 열심히 봐 둘걸. 그걸 잘 봤다고 해서 떠오르진 않았겠지만, 어쩐지 좀 아쉬웠다. 지훈은 불쑥 입을 열었다.

“나도 그날 가도 돼?”

“저야 형 오면 환영이긴 한데, 그날은 아직 다 안 꾸며졌을 텐데.”

“아니, 어떻게 꾸미는지 좀 궁금해서. 도와줄게.”

민규는 고급 인력을 그런 데 써도 되는 거냐며 웃더니, 자기가 나중에 밥으로 보답하겠다고 했다. 그런 거라면 오히려 지훈이 남는 장사였다. 내가 이득인데, 하니 민규가 또 웃었다. 쉽게 터지는 그 웃음소리가 듣기 좋았다.

“그럼 형, 월요일에 봐요. 심심할 때 카페 놀러와도 좋구요.”

“응, 생각나면 갈게. 나중에 봐.”

지훈은 그날 민규와 헤어진 직후 작업실로 돌아가다 걸음을 멈추었다. 불현듯 멜로디 하나가 떠올라서 재빨리 입으로 흥얼거리는 소리를 핸드폰으로 녹음했다. 작업 의뢰를 받은 후 처음으로 진전이 됐다. 아, 이거 진짜 효과가 있네? 지훈은 들뜬 채로 작업실로 들어갔다. 뭔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제야 퍼즐의 한쪽을 맞춘 기분이 들었다.

 

*

 

작업을 하느라 지훈은 월요일이 되기 전까지 민규의 카페에는 못 갔다. 뭐가 나오긴 했는데 뭔가 한끝이 모자라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조금만 더 풀리면 좋을 것 같은데. 석민 말대로 민규와 크리스마스 장식 쇼핑하면서 채운 그 크리스마스 기운이 떨어져서 안 되는 건지. 그러면 오늘 가서 크리스마스 장식하고 나면 뭐가 더 나오려나. 지훈은 그래서 그날은 미련 없이 작업을 포기하고 민규의 카페로 향했다. 아침은 여전히 밤샘 작업에 익숙한 작곡가에게는 새벽과도 같은 시간이었지만, 어쩌겠나. 맞춰야지.

“형, 어서 와요. 근데 어떡하죠. 오늘 오기로 한 알바 친구가 못 온대서 형이랑 저랑 둘이 해야 할 것 같은데. 형은 좀만 돕다가 가요. 이거 다 하려면 한참 걸릴 것 같으니까… 완성된 건 나중에 보구요.”

“뭐, 일단 해보자. 나 어떻게 할지 모르니까 네가 알려줘.”

지훈은 민규를 따라 막 문을 연 카페로 들어갔다. 사람 없는 빈 카페란 어쩐지 필요 이상으로 고요한 것 같았다. 괜히 발소리가 크게 들리고, 좀 싸늘했다. 민규는 바지런히 돌아다니며 불을 켜고, 난방을 올렸다. 어제 가져다 놓았는지 그때 산 장식 상자가 카운터 뒤에 숨겨져 있었다. 지훈은 민규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민규의 준비가 끝날 때까지 주머니에 손을 꽂고 얌전히 한 자리에서 기다렸다. 오늘은 일하러 왔는데 왜 옷차림에 신경을 쓰게 됐는지는 지훈도 모르겠는데, 아무튼 평소보다 좀 신경 쓴 차림으로.

“아, 됐다. 이제 장식하면 돼요. 아니다, 잠깐만요.”

민규는 일하려면 노동요가 있어야 한다며 캐럴을 틀었다. 시작은 아무래도 이 노래죠. 그런 말을 하는 민규의 등 뒤에서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가 경쾌하게 흘러나왔다. 지훈도 대충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작업은 민규의 지휘하에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아무래도 카페를 운영하는 동안 장식을 한 게 한두 번이 아니어서 그런지, 아니면 살 때부터 어디에 뭘 배치할지 다 계획을 한 건지 장식을 집어 들면 망설임이 없었다. 지훈은 유능한 지휘관 아래 있는 말 잘 듣는 부하처럼 민규의 지시에 따라 장식을 달고 민규와 함께 가랜드를 걸었다. 그러는 동안 귓가에 Santa Tell me, Last Christmas, Text me Merry Christmas 따위가 스쳐 지나갔고, 지훈이 제목은 모르지만 분명 들어보기는 했던 캐럴들이 지나갔다. 민규는 하도 많이 들어서 아는 것인지 모든 노래를 부분부분 흥얼거렸다. 그게 좀 귀여워서 지훈은 일하다 말고 몇 번 웃고 말았다.

지시와 응답, 질문과 대답 외에는 별다른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캐럴과 민규의 흥얼거림을 배경음악 삼아 둘은 신속하게 카페를 꾸며 나갔다. 카페는 장식이 달리면서 점점 화려해졌다. 하나하나 장식이 달리고 놓일 때마다 달라지는 카페는 지훈이 보기에도 좀 괜찮았다. 색색의 장식물이 걸린 트리, 그 아래 가짜 선물들, 가랜드가 걸린 벽, 지훈이 추천한 자리에 걸린 리스, 반짝거리는 루돌프와 산타의 썰매까지. 호흡이 잘 맞은 덕인지 카페 장식은 예상외로 점심시간을 조금 넘긴 시각에 끝났다.

“와. 고급 인력 쓰는 이유가 있네. 진짜 빨리 끝났네요.”

“네가 지시를 잘해서 그렇지. 난 그냥 시키는 대로만 했는데.”

“에이 형. 저 매년 이거 하는데 이렇게 빨리 끝난 적 없어요. 우리 호흡이 잘 맞나보다.”

민규는 만족스럽게 웃더니 형, 밥 먹으러 가요, 했다. 민규랑은 어째 볼 때마다 밥을 먹는 것 같았다. 밥 좋지. 같이 먹는 것도 좋고. 작업실에 동생들이 올 때 아니면 혼자 먹는 게 일상이라 혼자 먹는 게 익숙했는데, 남이랑 같이 먹는 밥도 나쁘지 않았다. 민규가 맛있는 식당만 데려가 주기도 했고. 오늘도 식당은 민규가 골랐다. 뭐라더라, 자기 비장의 피자집이랬나. 둘은 피자와 콜라를 사이에 놓고 점심을 먹었다. 점심시간이 좀 지난 탓인지 가게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이 가게도 크리스마스 장식을 해놨네. 지훈은 천장에 달린 별과 한구석에 놓인 트리, 벽에 걸린 장식 따위를 힐끔거렸다. 이렇게까지 모든 곳에서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이유가 뭘까. 그 시기만 되면 당연하게 캐럴을 트는 이유는.

“근데 사람들은 왜 크리스마스를 좋아하는 걸까?”

“좋은 핑계잖아요. 만나서 놀고, 파티하고, 사람 만나기에. 누구 생일, 아, 예수님 생신이긴 하지. 아무튼 우리가 예수님한테 선물을 주진 않으니까 한 명이 주인공이 되는 자리도 아니고, 그냥 만나서 즐기면 되는 날이잖아요. 그 핑계로 반가운 얼굴들도 좀 보고, 연말이랑 새해도 기념하고.”

“그런가….”

지훈은 민규가 말하는 ‘사람들이 크리스마스를 좋아하는 이유’가 꽤 그럴듯하게 들렸다. 즐기고 축하할 핑계가 필요하다는 말. 그 말은 모두 그것을 알기에 더 열심히 트리를 꾸미고, 장식하고, 캐럴을 틀고, 선물을 준비한다는 말처럼 들렸다. 하긴, 사람들이 다 같이 즐길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되나. 빨간 날이기까지 한 크리스마스 빼고는 별로 떠오르지 않았다.

“형은 크리스마스에 뭐 해요?”

“아마 동생 둘이랑 저녁에 밥이나 같이 먹을 듯? 매년 그래서.”

“그렇구나. 형제 많은 집인 거 부럽네요.”

“넌?”

“음, 아직 잘 모르겠어요.”

원래 계획이 있었는데 없어져서, 하고 덧붙이는 말에 생각이 났다. 아, 맞다. 얘 최근에 애인한테 차였댔지. 뒤늦게 지훈이 슬쩍 민규의 눈치를 보았다. 정작 민규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인데 괜히 지훈만 신경 쓰였다. 그런데 정말 알면 알수록 모르겠다 싶었다. 얘를 대체 왜 찼지. 민규 좋은 앤데. 내가 얘 애인이었으면 업고 다녔다. 아니, 내가 뭐래. 지훈은 제가 생각하고도 흠칫 놀라 괜히 입에 밥을 쑤셔 넣었다. 요즘 작업이 안 풀려서 상태가 나쁜가, 자기가 생각해도 자기가 좀 이상한 것 같았다.

 

*

 

“형, 오늘 진짜 고마웠어요. 오늘 말고도 여러 가지로요. 진짜 저녁에 한번 또 초대할게요. 카페도 자주 놀러 오세요. 형은 언제든 커피 무료로 드릴게요.”

“야, 가게 하는 사람이 그런 말 하면 어떡하냐. 나도 돈 있거든.”

“고마워서 그러죠. 진짜 자주 놀러와요 형.”

“어. 잘 먹었다. 다음에 봐.”

지훈은 휘적휘적 손을 흔들고는 몸을 돌려 작업실 쪽으로 걸었다. 걸어가는 동안 또 멜로디가 생각나 녹음 어플을 켰다. 녹음하면서도 이게 크리스마스의 기운 뭐 이런 건가? 크리스마스 관련 활동을 하면 채워지는? 그런 생각이 들어서 좀 웃겼다. 지훈은 작업실에 들어가 떠오른 멜로디로 벌스를 완성했고, 가사를 쓰기 시작했다. 만약 내가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내자고 하면 넌 뭐라고 할까. 첫 줄부터 크리스마스 캐럴이 아니라 어째 그냥 짝사랑 노래 같았다. 가사가 왜 이러지, 싶었는데 쓰기는 참 잘 써져서 그냥 써지는 대로 두었다.

그날 지훈은 밤을 새워 곡을 거의 다 썼다. 다 쓰고도 제가 왜 이 가사를 썼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쓰기는 다 썼다. 불러보니 나쁘지 않아서 좀 만지고 수정해서 보내면 될 것 같았다. 지훈은 오랜만에 원래 하던 대로 밤을 새우고 잠들었다.

그날 밤 꿈에는 민규가 나왔다. 꿈속에서 지훈은 민규를 만나기 전 거울을 보며 무슨 옷이 더 괜찮아 보이는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민규가 나타나더니 형, 뭐든 좋은데요? 하고 웃었다. 지훈은 그런 민규에게 너는 예쁘게 입고 있는데 나만 추레하면 좀 그렇잖아. 했다. 민규는 왜요? 하고 물었는데, 꿈속에서 지훈은 그 말에 눈을 좀 깜빡이다가… 너한테 잘 보이고 싶으니까? 했다. 그 말을 들은 민규가 또 웃었고, 지훈은 좀 억울해졌다. 왜 웃지, 진심인데. 그래서 지훈은 민규에게 다가갔고… 그대로 꿈에서 깼다.

“…아.”

망했네. 꿈에서 깨자마자 그 생각부터 들었다. 그래, 어째 갑자기 그런 가사가 나오는 게 이상하다 했다. 왜 이제 깨달았나 싶을 만큼 명확한 증거가 여럿 있었는데 눈치채는 게 느렸다. 그래, 웃는 거 자꾸 보고 싶고, 다 귀여워 보이고, 바깥, 특히 사람 많은 곳 나가기 싫어하는 이지훈이 원래 일어나는 시간도 아닌 아침에 굳이 일어나서 사람 많은 데 따라간 것부터 보통 일이 아니었는데. 그냥 곡 쓰기 위한 노력이라기엔 과했다. 아, 나 완전 바보 아냐. 지훈은 그대로 다시 베개에 머리를 박았다. 근데 이제 어떡하지.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뭘 해도 애인이랑 헤어졌다고 질척거리는 남자로 보일 것 같고 그랬다. 정신이 좀 아찔해졌다. 지훈은 그날은 그래서 밖에도 안 나가고 방에 처박혀 있었다. 밥도 안 넘어가서 대충 라면으로 때웠다.

할 일이 없어 며칠간 계속 그러고 있었다면 땅을 파고 파다 못해 내핵까지 파고 들어갔겠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지훈은 마감이 있는 프리랜서였고 마감 전에 완성된 곡을 보내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지훈은 좀비처럼 일어나 작업실로 출근했고, 작업할 때만큼은 남은 정신을 끌어모아 최선을 다했다. 지훈은 곡을 보냈고, 반응이 꽤 괜찮았다. 지훈은 녹음은 그쪽에 맡기고 손을 떼기로 했다. 크리스마스 전에 노래가 나올 거라고 했다. 그래야지, 캐럴인데.

끝내면 뭔가 후련할 줄 알았는데 그냥… 뭔가 멍했다. 어떻게 보면 이것 때문에 민규를 만났는데 이게 끝났으니 왠지 인연이 끝난 것 같았다. 당장 카페만 가면 민규를 만날 수 있는데도. 생각하니까 좀 보고 싶었다. 가서 작업 잘 끝냈다고 하면 민규가 축하해 줄 것 같은데. 지훈은 그대로 밖으로 나가려다, 힐끗 거울을 보곤 머리를 짜증스럽게 헝클었다. 오늘 좀 별론데.

그래서 지훈이 어떻게 했냐 하면, 집에 굳이, 굳이 들러서 옷을 갈아입었다. 그건 이지훈이 원래라면 절대 하지 않을 일이었는데,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니까 하게 됐다. 잘 보이고 싶었거든. 가망이 있든 없든. 어쨌든 지훈은 옷을 갈아입고 터덜터덜 카페로 향했다.

“너 다른 남자 생겼냐?”

“가라고. 내 가게 앞에서 이러지 말고.”

“다른 남자 생겼냐고 묻잖아!”

“우리 관계 네가 끝냈어. 나한테 다른 사람 생겼든 말든 너 이제 나랑 상관없는 사람이야. 가.”

카페 근처에서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와 익숙한 목소리가 뒤섞여 들렸다. 아, 전 애인인가. 그 대화만으로 대강 상황파악이 돼서 그대로 모른 척 지나가 줄까 했는데 익숙하지 않은 쪽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화가 난 듯 잔뜩 커지고 성난 목소리. 소리 지르는 내용도 심상치 않았다. 지훈은 혹시나 해서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다가갔다. 민규가 벽에 몰려 있었고, 남자는 금방이라도 폭력이라도 쓸 것처럼 주먹을 쥐고 있었다. 지훈은 잠시 망설이다 결단을 내렸다. 그는 핸드폰을 꺼내 들고 들으란 듯 큰 목소리로 말했다.

“거기 경찰이죠. 네, 여기 위치가, 세봉로 5번길 26인데요, 길에서 행패 부리는 사람이 있어서요. 네, 사람 칠 기세예요. 빨리 좀 부탁드립니다.”

그 남자가 지훈을 바라보았고, 민규도 지훈을 바라보았다. 민규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는데, 지훈은 그냥 지나가는 사람인 것처럼 민규의 시선을 모른 척하고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지훈과 민규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달아나듯 황급히 자리를 떴다. 용기도 없는 새끼. 지훈은 그 남자의 모습이 멀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천천히 민규에게 다가갔다. 민규는 여전히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끼어들어서 미안. 진짜 전화는 안 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아니에요. 고마워요, 형.”

민규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더니 주르륵 미끄러져 바닥에 주저앉았다. 지훈은 바닥 찬데, 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갑자기 나온 건지 민규는 겉옷도 없었다.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애를 이러고 나오게 하냐. 미친놈. 지훈은 민규에게 뭐라도 걸쳐 주고 싶었는데 자기가 그러면 이상하게 보일 것 같아서 그러지도 못했다. 목도리라도 하고 올걸. 그건 지금 매 줘도 좀 덜 이상해 보일 텐데. 민규는 한참 고개를 떨구고 말이 없다가 김빠진 웃음을 흘렸다.

“형, 나 한심하죠.”

“뭐가 한심해.”

“좋아했던 게 저런 인간이라. 맨날 뭐 해줘도 맛없다고 투덜거리기나 했는데. 뭐가 좋아서 그랬지, 진짜. 그래도 먼저 그만하잔 소리를 못 하다가 내가 차였어요. 나 진짜 한심하죠.”

지훈은 잠깐 침묵했다. 그게 왜 한심하지. 너는 그냥 좋아했을 뿐이잖아. 좋아해서 진심을 다해 노력했을 뿐이잖아. 그게 왜 한심한 거야. 최선을 다하는 게 뭐가 나빠. 그날 네가 한 요리에 얼마나 정성이 많이 들어가 있었는지 처음 먹는 나도 알겠던데. 그 마음을 짓밟은 저새끼가 나쁜 거지. 네 마음 잘못된 거 없는데. 그냥 네 그런 마음 받은 걔가 차고 넘치게 운이 좋았는데 그걸 몰랐던 거지. 아쉬워서 다시 왔잖아. 멍청하게. 지가 가졌던 게 뭔지도 모르고. 얼마나 귀한 건지도 모르고.

그런 말이 온통 마음에 차올랐는데, 지훈은 그 말은 하나도 할 수 없었다. 그냥 지훈은 쟤를 좋아하는 형 말고 그냥 아는 형이 해줄 만한 말을 골라냈다.

“네가 왜 한심해. 그럴 줄 알고 좋아한 거 아니잖아. 널 놓친 쟤가 멍청한 거지. 좋아했던 걸 부끄럽게 하는 놈이 나쁜 거야.”

그리고 지훈은 망설이다 한 마디를 덧붙였다. 네가 만든 요리 내가 먹어본 것 중에 제일 맛있었는데, 쟤 머리 말고 미각에도 문제 있네. 지훈은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는 고개를 떨군 민규의 어깨에 가만히 손을 얹어 토닥였다. 어깨가 작게 떨리는 것 같았다.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리다가, 잠시 후 멎었다.

“…고마워요. 형.”

“어. 들어가자, 춥다.”

지훈은 손은 내밀었고, 민규는 지훈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개를 든 민규의 눈은 젖어 있었지만 입은 웃고 있었다. 지훈은 속으로 안도했다. 다행이다. 내가 도움이 돼서. 네가 혼자 울지 않아도 돼서. 민규는 일어나서도 지훈의 손을 놓지 않았다. 민규의 손이 차가운 게 마음에 걸려서 지훈은 그냥 그대로 손을 잡고 카페 쪽으로 걸었다. 민규가 뒤에 따라오는 게 처음이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그냥 애가 울어서 그랬는지, 지훈은 손을 잡고 걷고 있는데도 뒤를 힐끔거리며 민규가 괜찮은지 확인했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민규는 웃었는데, 그걸 보니 괜찮은 것 같기도 했다. 지훈은 가게 앞에서 민규의 손을 놓아주었다. 아까보다 따뜻해진 손이 제 손을 빠져나가니 어째 좀 아쉽고 그랬는데, 지훈은 티를 내지 않으려 애썼다.

“들어가서 따뜻한 거 마셔라.”

“형은요? 카페 온 거 아니에요?”

“아냐, 그냥 지나가던 길이었어. 들어가.”

“형, 커피라도 마시고 가요.”

민규가 지훈의 옷자락을 붙잡았지만, 지훈은 고개를 저었다. 나 작업할 게 남아서. 다음에 올게. 작업이란 말에 민규가 아쉬운 표정으로 지훈을 놓아주었다. 지훈은 휘적휘적 손을 흔들고 작업실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작업은 다 끝냈고, 곡도 보냈고, 그래서 오늘은 곡 끝냈다는 얘기하러 온 거였는데, 그냥 아닌 척했다. 오늘 그런 일 겪었으니까, 별로 보여주고 싶은 꼴 아니었을 텐데 지훈이 봐버렸으니까, 상처받기도 했을 거고 민망하기도 할 테니까 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서.

만약 내가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내자고 하면 넌 뭐라고 할까?

내가 널 좋아한다고 하면 어때?

네가 알려준 크리스마스는 아름다운데,

네가 없는 크리스마스는 아닐 것 같아

있잖아, 크리스마스 같이 보낼래?

어때, 나한테 기회를 줄래?

작업실로 가려다 지훈은 집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작업할 게 없기도 했고, 작업할 기분도 아니었다. 걷는 동안 머릿속에서 제가 쓴 곡이 흘렀다. 다시 생각해 보니 이만큼 어디서 나왔는지 투명한 곡이 없었다. 가사가 왜 이러긴, 하고 싶은 말이 그거니까 그렇게 나왔지.

“어, 형. 웬일로 이 시간에 왔대?”

“작업 끝나서. 넌 이제 나가?”

“응. 친구 만나러 가려고. 고민하더니 잘 됐나 보네. 아, 맞다 형! 나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친구들이랑 파티하기로 해서 저녁 같이 못 먹어.”

“어, 작은형도? 나돈데.”

“둘 다? 알겠다.”

집에 왔더니 동생 둘은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두 명 다 갑자기 크리스마스에 약속을 잡았대서, 지훈은 웬일이래,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지금까지 매년 같이 밥 먹었던 게 특이한 거지 이 나이에 매년 크리스마스를 가족과 보내는 사람이 더 적기는 했다.

“큰형은?”

둘 다 나가면 혼자 남을 지훈이 신경 쓰였는지 찬이 물었다. 지훈은 별생각 없이 TV나 보지 뭐, 하려다 잠시 망설였다. 크리스마스, 같이 보내고 싶은 사람이 있긴 한데. 아직 결정된 거 없다고 하긴 했는데.

“친구…한테 시간 되나 물어볼게.”

“잘 됐다. 근데 큰형, 혹시 그 친구 안 되면 얘기해. 혼자 보내는 건 좀 그렇잖아. 같이 보내자.”

“너 누구랑 보내는데?”

“어… 친구랑.”

“네 친군데 내가 어떻게 끼냐. 됐거든. 신경 쓰지 말고 네 크리스마스 준비나 잘해.”

“그치. 어, 그치.”

찬은 눈을 데굴데굴 굴리더니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차 하는 것 같기도 했고, 잘 넘어가서 안심하는 것 같기도 했다. 뭔가 좀 수상하긴 한데, 지금 고민할 게 많아 제 코가 석 자라 캐낼 정신이 없었다.

“갔다 올게~”

“다녀올게.”

“잘 다녀와라.”

시끌시끌하던 집은 동생 둘이 나가자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지훈은 소파에 앉아 가만히 핸드폰을 내려다보았다. 갑자기 연락해서 민규야, 크리스마스 같이 보낼래? 하면 이상하려나. 이런 말은 직접 보면서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럼 너무 진지해 보이나. 아니, 진지하게 해야 하는 말인가. 그때 핸드폰에 반짝 알림이 떠서 지훈은 흠칫 놀랐다.

「야, 지훈아. 대박이다.」

「역시 네가 최고다」

「고마워. 형이 사랑하는 거 알지.」

누군가 했더니 승철이었다. 연달아 온 문자에서 기쁨이 느껴졌다. 곡 나쁘지 않나 보네. 지훈은 알람만 보고 다시 핸드폰을 놓았다. 민규 연락일 줄 알고 기대했나. 기대할 게 뭐가 있다고. 연락이 오긴 왜 와. 걔가 나한테 연락을 왜 해. 그때 다시 핸드폰 화면이 반짝 켜졌다.

「형, 잘 들어갔어요?」

어라.

「형, 작업 끝나면 카페 놀러 오면 안 돼요?」

연락이… 왔네. 지훈은 누워있다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 말이, 어째 민규가 진짜로 지훈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 같아서. 그냥 하는 말이고 진심 같아서. 그냥 지훈이 그렇게 믿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지만. 민규는 사람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 그냥 자기가 친해진 사람한테 다 이러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지훈은 한참 핸드폰을 내려다보았다. 지훈은 민규 덕분에 캐럴을 썼다. 아무도 그게 민규 덕인지는 모르고 지훈만 알겠지만, 민규가 없었으면 이 캐럴은 나오지 않았을 테니까. 양심이 있다면 뭐라도 보답을 하긴 해야 했다. 그러니까, 좋아해서 뭐라도 주고 싶은 마음 말고, 고마워서 주는 마음으로. 사심 빼고…. 아니 그런데 사심 어떻게 빼냐고.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지훈은 민규의 메시지를 손가락으로 쓸었다. 그 메시지에서 민규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만약 내가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내자고 하면 넌 뭐라고 할까? 제가 쓴 곡도 다시 머릿속에 지나갔다. 아주 차분한 상태로 지훈은 생각했다. 근데, 내가 사심 꼭 빼야 하나? 쟤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옷도 차려입고 다니는데, 내가 사심 뺄 필요가 있나. 지금 사심으로 가득 찬 상태인데. 사심이 넘치다 못해 구질구질하게 곡까지 썼는데. 지훈은 잠깐 머뭇거리다 답을 썼다.

「오늘 끝날 것 같아. 내일 놀러 갈게.」

「진짜요?」

「어. 내일 보자.」

「좋아요ㅎㅎ. 기다릴게요.」

기다린단 말에 괜히 마음이 수런거렸다. 지훈은 일단 좀 알아보기로 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랬다. 민규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어떻게 하면 자기를 좀 좋아해 줄지. 크리스마스에는 아직도 약속이 없는지.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내자고 하면 지훈에게 그 시간을 좀 내줄 수 있는지. 좋아한다고 하면 지훈이 바라는 답을 돌려줄지.

 

*

 

지훈은 새벽같이 눈을 떴다. 해가 뜬 아침이긴 했는데 그의 원래 생활 패턴대로 보자면 새벽이 맞았다. 알림도 안 맞췄는데 그냥 눈이 떠졌다. 결전의 날도 아닌데 왠지 심각했다. 심장이 벌렁거렸고 자꾸 초조해서 방을 서성거렸다. 아니, 벌써 이러면 어떡하라고. 오늘은 진짜 그냥 탐색전이란 말이야. 지훈은 이 일을 신중하고 꼼꼼하게 진행하고 싶었다. 일할 때 그렇게 처리하는 성격이기도 했고, 섣불리 저질렀다가 민규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았다. 민규는 차인지 얼마 안 됐고, 당장 어제는 전 애인한테 그런 일까지 겪었고, 그리고 자기가 그걸 다 봐버렸고, 민규도 그걸 아니까. 지훈은 모든 게 다 조심스러웠다. 그렇지만, 원래 그런 거 아닌가. 좋아하는 사람 상처 주고 싶은 사람이 어딨어. 그 전남친 같은 그런 미친놈 빼고.

“….”

옷을, 좀, 사긴 해야 하나. 지훈은 나갈 준비를 하려 옷장을 열어놓고 고민에 잠겼다. 애초에 지훈에게는 그럴듯한 옷 자체가 좀 적었다. 실은 이렇게 자주 차려입은 적도 없었고. 지훈은 내가 뭘 안 입었더라, 고민하다가 그냥 자기가 생각하기에 제일 괜찮아 보이는 옷으로 골랐다. 마지막으로 검은 코트를 걸치고, 망설이다 목도리도 하나 두르고 슬쩍 시계를 보니 출근 시간도 지났고, 아직 점심시간은 아니니까 카페에 여유가 있을 시각인 것 같았다. 지훈은 거울 앞에서 머리를 한 번 매만지고 밖을 나섰다.

하늘이 흐린 게 눈이라도 올 것 같았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겨울 향이 났고, 숨을 내쉴 때마다 입 밖으로 흰 숨이 흘러나왔다. 겨울 특유의 쌀쌀한 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거리의 나무들은 잎을 다 떨어뜨려 쓸쓸해 보였다. 지훈은 유난히 사람이 없는 거리를 혼자 걸었다. 지나가는 길의 가게 앞에 루돌프와 산타가 서 있었는데, 그게 있으니 좀 덜 외로워 보였다.

어쩌면, 사람은 겨울이 쓸쓸해서 크리스마스를 더 크게 축하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런 크리스마스 장식도 없는 겨울은 더 차고 더 쓸쓸할 테니까. 크리스마스라는 핑계가 없어서 혼자 보내는 겨울은 더 외로울 테니까.

지훈은 목적지 앞에서 발을 멈추었다.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아름답게 꾸며진 카페는 불이 환히 밝았다. 지훈은 처음으로 제 손으로 카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만약 내가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내자고 하면 넌 뭐라고 할까?

내가 널 좋아한다고 하면 어때?

카페에는 지훈이 만든 캐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지훈이 처음으로 제대로 듣는 곡이었다. 노래는 지훈이 아닌 다른 가수의 목소리로 흘러나왔다. 아, 그러고 보니 나도 처음 듣네. 원래라면 지훈 성격에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요즘 하도 정신이 빠져 있었어야지. 지훈은 묘한 기분으로 그 곡을 들으며 카운터로 향했다. 민규는 손님이 없는 탓인지 카운터에 턱을 괴고 앉아 있었다. 집중해서 노래를 듣고 있는 것 같았다. 노래를 소개할 때 작곡가를 굳이 소개하던가, 지훈의 기억상 작곡가 이름을 알려준 적은 없어서 민규가 이게 지훈 곡이란 것을 알 것 같지는 않았다. 말을… 하기는 해야겠지.

네가 알려준 크리스마스는 아름다운데,

네가 없는 크리스마스는 아닐 것 같아

있잖아, 크리스마스 같이 보낼래?

어때, 나한테 기회를 줄래?

“민규야.”

“아, 오셨어요. 어서 와요. 형. 노래 듣느라 오신 줄 몰랐네. 이 노래 들어보셨어요? 새로 나온 캐럴이라던데 좋더라구요.”

“맘에 들어? 다행이네. 안 그래도 나도 노래 잘 나와서 너한테 뭐라도 보답해야겠다고 생각 중이었어. 네가 많이 도와줘서 잘 나왔다.”

“이게 형이 만든 캐럴이에요?”

민규가 눈을 크게 떴다. 지훈은 침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노래 좋다는 말에 좀 뿌듯하고 두근거렸는데 아닌 척,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애썼다. 민규는 뭔가 말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가, 다시 열었다. 노래는 어느새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었다. 다시금 같은 가사가 흘러나왔다.

있잖아, 크리스마스 같이 보낼래?

어때, 나한테 기회를 줄래?

그 가사를 끝으로 노래가 끝났다. 녹음 잘됐네. 다행이다. 지훈의 감상은 딱 그 정도였다. 어차피 민규는 자기 생각하고 쓴 가사인 줄 모를 테니까. 너 뭐 필요한 거 없니, 선물 고르는데 재주가 없는 지훈은 받을 사람에게 뭐가 필요한지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좀 낭만적이지 않긴 했는데, 낭만적인 선물 고를 자신이 없기도 하고. 그때 민규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형. 크리스마스에 가족들이랑 약속 있는 거 아는데, 크리스마스 저랑 보내면 안 돼요?”

그건 좀… 이상한 질문이었다. 지훈은 이게 무슨 뜻인가 싶어 민규를 바라보았다. 민규는 웃고 있지 않았다. 긴장이라도 한 것처럼, 입을 꾹 다물고 어딘가 간절한 얼굴로 지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건 분명히 친구에게 크리스마스 같이 보내자고 묻는 평범한 제안과는 달랐다. 좀 더 진지하고 좀 더 심각했다. 마치 그 제안에 다른 의미가 담긴 것처럼. 지훈은 민규에게 한 번의 기회를 주기로 했다. 자기가 착각한 걸 수도 있으니까. 기대하느라 오해한 걸 수도 있으니까. 아니, 사실은 착각하고 혼자 설레는 게 무서워서.

“…나 그런 말 들으면 오해한다.”

네가 나 좋아하기라도 하는 것 같잖아. 차마 그 말까진 못하고. 그건 너무 적나라하니까. 속을 뒤집어 까 내보일 자신은 없어서. 그런데 이지훈보다 용감한 김민규는 달랐다. 그냥 제 진심을 이지훈 눈앞에 솔직하게 들이밀었다.

“…오해해주면 안 돼요? 형이랑 크리스마스 같이 보내고 싶어요. 크리스마스 말고 다른 날도.”

“너 그거 꼭 사귀자는 말로 들리는데.”

“그거 맞는데요.”

씩씩하게 말하는 민규의 얼굴이 붉었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 지훈의 얼굴도 아마 빨갛게 달아올라 있지 않을까. 보이진 않지만 느껴졌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귀가 뜨거웠다. 지훈은 입술을 달싹거리다, 그냥, 그냥 민규에게 머뭇머뭇 다가갔다. 묘한 침묵이 감돌았다. 지훈은 어느새 카운터 위에 놓인 민규의 손 위로 제 손을 얹었다. 손이 찼다. 얘 긴장했구나. 지훈이 긴장한 것 만큼이나. 그래서 지훈도 용기를 냈다. 이미 다 만들어진 케이크에 딸기 하나 올리는 거나 다름없지만.

“그러면… 크리스마스 같이 보내자. 둘이서.”

사실 나도 그 말 하러 왔어. 크리스마스 같이 보내자고. 덧붙인 말에 민규가 웃기 시작했다. 웃는 모습이 무척이나, 정말로 무척이나 보기 좋아서 지훈도 따라 웃었다.

 

*

 

“큰형, 지금 나가? 설마 오늘도 작업실 가는 거야?”

“아니. 약속.”

지훈은 현관에서 신발을 신다 말고 찬의 질문에 대답했다. 저녁이었고, 해가 짧은 겨울인 탓에 창밖은 이미 어두웠다. 아무리 내가 크리스마스에 관심이 없어도 크리스마스 이브 밤까지 작업실 가겠냐, 하는 핀잔을 얹어주며 지훈은 마저 신발을 신었다.

“이브 약속? 누구랑?”

“애인이랑.”

“어?! 작은형! 작은형! 큰형 애인 생겼대!”

“뭐? 애인? 형이? 누군데? 누군데? 지금 애인 만나러 가?”

찬의 외침에 방 안에 있던 석민까지 튀어나와 호들갑을 떨었다. 거의 처음으로 생긴 형의 애인이니 신기하다는 건 알겠는데, 지훈은 다 됐고 좀 나가고 싶었다. 동생들 말 많은 거 하루 이틀 일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좀 귀찮았다. 지훈은 대놓고 질린다는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아, 시끄러워. 간다.”

“언제 들어와?”

“내일.”

“대박….”

동생 둘이 나란히 입을 크게 벌리고 그를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이브에 애인이랑 만난다는 형이 내일 온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쟤네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데. 아, 괜히 말했나. 지훈은 입술을 꾹 깨물고 현관문을 열어젖혔다. 닫히는 문 사이로 입을 틀어막은 석민과 놀란 얼굴을 한 찬의 얼굴이 보였다. 왜, 뭐, 난 연애하면 안 되냐. 성인 된 지 얼마나 됐는데. 못 할 짓 하는 거 아니잖아. 그렇게 생각하는 것과는 별개로 얼굴이 좀 달아올랐다. 바깥에 나가자 찬바람이 얼굴을 식혔다.

-형, 내일 자고 갈래요?

이브에 뭐 할까, 얘기하던 중에 민규가 불쑥 입을 열었다. 어차피 저녁 전까진 카페에서 일해야 하니까 저녁에 보자고, 그런 얘기를 하던 중이었는데. 지훈도 나이 먹을 만큼 먹은 성인이고, 민규도 마찬가지고, 그 말이 뭘 의미하는지 서로 모르지 않았다. 그러니까 아직까지 손만 겨우 잡아본, 어른들의 연애 말고 애들 소꿉장난 같은 연애를 하고 있는 연인이라고 해도. 지훈은 잠깐 숨을 멈췄다가 아무렇지 않은 척 그럴까, 했다. 목소리가 좀 튄 것 같았다. 그게 좀 웃겼는데 둘 다 긴장했는지 아무도 웃지 않았다.

지훈은 일단 예약해놓은 케이크를 찾으러 갔다. 카페 사장님이 애인인데 케이크를 사가는 게 좀 그런가 싶긴 했는데 민규가 자긴 맛있는 집 돌아다니면서 먹는 게 취미라고 하기도 했고, 민규가 저녁 준비한댔으니까 뭐라도 사가는 게 좋을 것 같기도 했고, 크리스마스에 케이크 하나 정도는 있으면 좋으니까. 케이크를 찾고, 와인을 사고, 내친김에 초콜렛도 샀다. 직원이 뭐라 뭐라 설명을 해주는 것 같았는데 지훈은 다음에 사야 할 것을 생각하느라 하나도 못 들었다.

그러니까… 그, 뭐가 필요한지는 아는데.

왜 이렇게 쑥스러운지 모르겠다. 상상하기만 해도 귀가 뜨겁게 타올랐다. 싫은 건 아닌데, 절대 아닌데, 사실 좀, 아니 많이 기대하고 있는데, 너무 좋아서 그런지, 그냥, 그냥 좀 기분이 이상했다. 지훈은 눈을 꾹 감고, 입도 꾹 다물고 숨을 고르다가 콘돔과 젤을 샀다. 계산하는 직원은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괜히 황급히 주머니에 산 것들을 쑤셔 넣었다.

「형, 오고 있어요?」

「어. 곧 간다. 10분 내 도착」

「응. 알겠어요. 곧 봐요.」

민규에게 온 연락을 확인하고 지훈은 걸음을 서둘렀다. 민규의 집에 가는 건 이것으로 두 번째였다. 생각해 보면 참 신기하게 시작된 인연이었다. 그날 우연히 지훈이 캐럴 의뢰를 받았고, 그날 민규가 차여서 게시글을 올렸고, 그날 우연히 어플 알람이 울렸고. 스트레스로 제정신이 아닌 지훈이 반쯤 미쳐서 댓글을 달았고. 그러다 이렇게 되었다. 지훈은 그 모든 우연에 감사했다. 조금 감상적인 기분으로는 이게 운명인가 싶기도 했고.

“형, 어서 와요.”

앞치마를 두른 민규가 현관에서 그를 맞아주었다. 잘 어울리네, 귀엽다. 민규가 자연스럽게 팔을 벌려서, 지훈은 양손에 케이크와 초콜렛과 와인을 들고 민규 품에 안겼다. 아니, 민규가 제 몸을 잔뜩 구겨서 지훈의 목덜미에 제 뺨을 부볐으니 민규가 지훈에게 안겼다고 하는 게 좀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얘, 진짜 안기는 거 좋아하네. 지훈은 조심조심 민규를 마주 안았다. 손에 든 게 많아서 좀 불편하긴 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좋다. 민규가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지훈은 생각을 정정했다. 나쁘지 않은 거 말고, 좋다고.

사실 민규는 안는 거 말고도 그냥… 체온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사귀기 시작한 후 민규는 지훈 곁에 앉으면 자연스럽게 머리를 기대거나 손을 잡거나 했다. 지훈은 형제 많은 집에서 살았어도 이렇게 닿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처음엔 좀 어색해했다. 어색해하는 걸 느꼈는지 민규는 형, 이런 거 싫어해요? 하고 물었고, 지훈은 고개를 돌려 민규의 눈을 한 번 들여다보았다. 그 눈이 어쩐지 거절에 익숙한 눈 같아서, 민규에게 또 한 번의 거절당하는 경험을 주고 싶지 않아서, 지훈은 쑥스러움을 애써 밀어내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아니, 너랑 닿는 거 좋은데, 익숙하지 않아서 그래. 네가 하고 싶으면 그냥 해 줘. 익숙해질게. 그 말에 어쩐지 민규가 좀 멈칫하더니 지훈을 와락 안았다.

-형. 너무 좋아요.

그게 뭐라고. 진짜 별거 아닌데. 나도 좋은 거잖아. 너 왜 이런 거에 고마워해. 왜 거절에 익숙해. 대체 전에 만난 그 새끼는 무슨 짓을 한 건지. 지훈은 새삼 민규의 전남친에 대한 짜증에 이를 갈았다. 정작 그 새끼가 좋은 사람이었으면 지훈이 민규를 못 만났을 테니까 지훈에겐 좋은 거긴 한데, 그냥, 그냥 짜증이 났다. 소중하게 대해주지는 못할망정, 상처만 준 것 같아서.

“뭘 이렇게 많이 사 왔어요? 이 초콜렛은 뭐야?”

“그냥, 와인 사는데 초콜렛도 팔길래. 겸사겸사.”

“밥 먹고 먹으면 되겠다. 얼른 들어와요.”

“너는 뭘 이렇게 많이 차렸냐…. 고생했네. 다 맛있어 보인다.”

저번에도 화려했던 식탁은 오늘도 화려했다. 그때는 한식이 중심이었다면 이번에는 크리스마스 특집인지 양식이 주였다. 저거 뭐야, 닭구이네. 라자냐에 파에야, 감바스, 햄치즈 플래터 등등…. 어디 양식집 빌려서 파티를 열어도 손색없는 메뉴들이 줄줄이 놓여있었다. 지훈은 혀를 내둘렀다. 정작 민규는 신난 얼굴로 앞치마를 벗고는 와인잔을 가져오고 있었지만.

저녁은 즐거웠다. 요리는 정말 하나도 빠짐없이 맛있었고, 한식을 더 선호하는 편인 지훈마저도 이런 음식이라면 계속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동안 그들은 몇 잔의 와인을 마셨고, 식사를 마치고는 소파에 함께 앉아 초콜렛을 집어먹었다. 그러는 동안 지훈은 얼굴이 새빨개졌고, 민규는 안 취했다. 술 세다더니 진짜네. 지훈은 중얼거렸고, 와, 형 진짜 귀엽다. 하고 민규가 웃었다. 뭐래, 네가 더 귀여운데. 지훈은 취한 채로 투덜거렸다. 민규는 그 말을 듣더니 진짜요? 좋다. 하고 키득거렸고, 지훈은 반쯤은 욱하는 마음에, 또 반쯤은 참을 수가 없어서 그대로 민규에게 입을 맞췄다.

둘이 하는 첫 키스였다. 초콜렛과 술이 섞인 맛이 났다. 초콜렛에 술 들어있었나, 지훈은 뒤늦게 그런 생각을 하다가 곧 생각이란 것 자체를 잊어버렸다. 불씨가 던져졌고, 아마도 술이, 혹은 초콜렛이, 아니면 그냥 지금까지의 인내 혹은 기대가 불을 크게 키워 활활 타오르게 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둘은 침대 위에 있었고, 지훈은 제 아래 누운 민규를 내려다보았다. 숨이 가쁜지 가슴팍이 빠르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보였다.

“해도 돼? 괜찮아?”

지훈은 거의 이를 악문 채로 물었다. 이미 머리끝까지 열이 오르고, 몸은 흥분해서 어쩔 줄 모르겠는데, 그래도 지훈은 물어야 했다. 싫어하는 짓 하고 싶지 않았다. 지훈은 사랑을 하고 싶었지 욕구를 풀고 싶은 게 아니었다. 애초에, 얘라서 닿고 싶고 만지고 싶고 더한 것도 하고 싶은 욕구가 드는 걸.

다정하게 대해주고 싶었다. 사랑한다는 걸 알게 해주고 싶었다. 사랑받는 게 뭔지도. 왜냐면, 민규는 지훈의 그 질문에 좀 낯설다는 표정을 지었으니까. 자기가 이런 상황에서 선택권이 있는 게 처음인 것 같았으니까. 그래서 지훈은 다시 물었다. 지훈은 민규의 마음을 알아야 했다. 분위기에 휩쓸려서, 또는 거절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얻어낸 동의가 아니었으면 했다. 민규가 지훈을 선택해 주었으면 했다.

“하고 싶어? 지금, 나랑?”

민규는 어쩐지 조금 울 것 같은 얼굴로 웃더니, 팔을 뻗어 지훈을 끌어안았다. 가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가슴팍이 서로 맞닿았다. 민규는 지훈의 귓가에 속삭였다.

“예뻐해 주세요.”

아, 너 이러기야? 나도 한계야. 지훈은 백기를 들었다. 어른스럽고 좋은 연인인 척하기도 힘들었다. 나 이제 더 못 참아.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연인의 이 말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인내력이 사람이 아니거나 사랑을 하지 않는 게 아닐까. 그 다음부터는 그닥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냥, 뜨거웠고, 격렬했고, 질척거렸고, 열정적이었고, 좋았다. 문득 시계를 보았을 때 자정이었고, 둘은 서로에게 그날 가장 처음으로 메리 크리스마스를 말해준 사람이 되었다.

*

 

자, 이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끝내기 전에 잠깐 김민규 이야기를 좀 해보자. 

아직 전남친에게 차이기 전 김민규에게도 자기가 좆같은 연애를 한다는 자각은 있었다. 놀랍게도! 김민규도 바보는 아니니까. 비록 그걸 다 알면서도 김민규 절친 겸 학교 동창 겸 아는 동생 겸 「Cafe Seventeen」의 부매니저 – 성이 부씨라서 부매니저지 사실 그냥 매니저다 – 부승관이 그 거지 같은 연애사를 듣다못해 야! 아아메 내놔! 너는 내 아아메 평생 공짜로 줘도 모자라!를 외칠 정도로 오랫동안 엉망진창인 연애를 이어가며 헤어지지 못하긴 했지만.

자기가 생각해도 좀 구질구질하긴 했다. 왜 헤어지잔 말을 못하지. 진짜 밤에 침대에 혼자 앉아서 고민한 적도 있었다. 진짜 정이 뭐라고. 아니 그냥 미련인 것 같기도 하고. 사랑에 실패했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잔뜩 날이 서 있는 부스러기 같은 감정이라도 사랑이라고 받아먹고 싶었는지도 모르겠고.

그랬는데 결국 차였다. 그것도 전화로. 김민규는 다 준비해놓은 저녁 재료와 오지 않을 그 새끼와 혼자 앉아야 하는 식탁을 생각했다. 승관이를 부를까, 했는데 그럼 괜찮은 척을 못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민규는 충동적으로 어플에 게시글을 올렸다. 아무도 안 오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하면서. 그런데 누가 댓글을 달았다. 이상한 사람이면 어떡하지, 싶긴 했는데 이미 저지른 일 어쩌겠냐 싶었다. 이상한 사람 오면 그냥 그게 팔자인 거고.

그리고 김민규는 곧 자기가 이십몇 년 살면서 가장 잘한 짓으로 그 어플에 그 글을 쓴 것을 꼽게 되었다. 낯설 만큼 다정을 주는 사람. 어찌 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은 칭찬 한마디, 고맙다는 말, 제 기분을 살피는 조심스러운 눈짓, 살짝 편해졌을 때 나오는 부드러운 웃음, 크리스마스 정말 관심 없어 보이는데 성실하게 같이 골라주고, 고민해주는 태도, 존중받는 느낌.

설레고 있는 것을 민규보다 가게에 찾아온 그 새끼가 먼저 알았다. 뭘로 알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자꾸 지훈과의 대화방을 살피는 민규의 표정을 보고 알았나. 가게에 쳐들어와 다짜고짜 행패를 부리길래 민규는 일단 나가자고 했다. 뒤에서 승관이 경찰 불러? 묻길래 일단 고개를 저었다. 괜히 일 크게 벌리고 싶지 않았고. 진짜, 진짜, 너무, 너무 쪽팔렸다. 내가 좋아했던 사람이 이런 사람이라니. 주었던 사랑이 모조리 짓밟혀 바닥을 구르는 것 같았다. 근데 어떻게 그때, 딱 지훈이 나타나 주었을까.

비참한 구렁텅이에서 건져진 것 같았다. 지훈은 민규의 상황을 고려해 문제를 깔끔하게 정리해 주었고, 민규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려 주었고, 위로해 주었다. 조금 어색해 보이는 게 위로 잘 안 해본 티가 났는데, 그 순간 지훈의 위로가 민규에게는 가장 필요한 위로였다. 그건 지훈이 건네준 다정이었고, 그게 민규의 서러움을 멎게 했다. 지훈은 민규가 멋대로 움켜쥐고 놓지 않은 손을 그대로 잡아주었다. 가게로 가면서 민규는 왜 이 사람을 더 빨리 만나지 못했을까 생각했다. 그랬으면 정말 졸졸 따라다니면서 좋아한다고, 나 만나 달라고 했을 것 같은데. 다정한 이 남자가 좀 지겹고 안쓰러워서라도 받아줄 때까지.

그치만 어쨌든 이젠 내 남자친구지. 내 거지.

민규는 눈을 뜨고 곁에 잠든 지훈을 바라보았다. 민규는 처음으로, 관계에서 사랑받는 기분이 뭔지 느낄 수 있었다. 그게 그렇게 아프지 않을 수 있는 것이었는지, 그렇게 기분 좋을 수 있는 거였는지, 몸 곳곳에 닿는 손길과 입술에 녹아버릴 것 같을 수 있는지, 눈빛으로 몸짓으로 너 지금 예쁘다고, 사랑스럽다고 표현해주는 사람이 이제 그의 연인이었다. 민규는 가슴이 벅차서 잠시 숨을 참았다. 크리스마스의 선물이 있다면 이 사람이 아닐까. 그렇다면 부디 이 크리스마스가 지나도 이 꿈같은 일이 끝나지 않기를. 민규는 가만히 눈을 감고 대충 아무 신에게나 기도했다. 종교는 없지만, 크리스마스는 좋은 날이잖아요. 그쵸? 비는 김에 세상 사람들이 다 행복하기도 빌 테니까.

 

Merry Christmas

and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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