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웆밍]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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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e : 김민규

 

꿈이 있는 사람은 진짜 빛나는 것 같아. 그러니까… 뭐가 꿈이라고 할 만큼 그거 사랑하는 사람 있잖아. 언젠가 민규는 TV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아마 가수를 뽑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었던 것 같은데, 거기에 민규와 또래인 남자애가 나왔다. 저는 멋진 가수가 되고 싶습니다! 씩씩하게 외치는 그 애는 자기 꿈에 확신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가수라는 자기 꿈을 진짜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눈이 참 반짝여서 예쁘네, 싶었다.

민규는 꿈이 뭐야? 라는 질문이 제일 어려웠다. 살면서 어려운 게 별로 없었는데 꿈이 뭐냐는 질문은 어려웠다. 좋아하는 건 있었다. 가족 좋고, 친구 좋고, 맛있는 거 좋고, 노는 거 좋고, 사람이랑 같이 있는 거 좋고. 근데 나중에 뭐가 되고 싶냐 하면 잘 모르겠고 뭘 하고 싶냐 하면 그것도 잘 모르겠고, 그냥 어… 뭐라도 하겠지?

학창 시절엔 꿈 없어도 됐다. 그냥 남들 하는 것처럼 공부하고, 친구들이랑 놀면 됐으니까. 고등학교쯤 가니 슬슬 무슨 대학 갈 건지 무슨 전공할 건지 골라야 했는데 – 그것도 사실 3학년쯤 가면 웬만한 애들 아니고는 자기가 고르는 게 아니라 지엄하신 성적과 지고하신 대학께서 골라주시는 거긴 했다 – 민규는 다른 것보단 수학을 좀 잘했다. 그래서 이과 갔다. 남자애니까 공대도 좋지. 시대가 어느 시댄데 아직도 잘 안 바뀌는 사회적 편견이 민규를 공대로 등 떠밀었다.

공대 과 중에서는 그나마… 건축학과가 좀 적성에 맞아 보였다. 전기? 잘 모르겠고. 전자? 전기랑 전자 두 개 차이가 뭔데? 일단 아웃. 컴퓨터? 어 걔는 헬로 월드부터 나랑 좀 안 맞아. 건물 예쁘게 짓는 건 좀 괜찮지 않을까? 그것만 있었으면 건축학과가 공대에 있진 않았을 텐데, 민규는 건축학과에서 뭘 하는지도 제대로 모르면서 일단 건축학과를 고르고 대학은 성적 맞춰 썼다. 다행히 친구인 석민도 같은 대학 실용음악과 붙었고 명호도 같은 대학 패션디자인과에 가서 운은 참 좋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지 인간 김민규의 삶에 고난과 역경이 전혀 없었다고 하면 그건 아니긴 한데 그렇다고 또 인생이 힘들었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뭔가 딱히 어려운 건 없었고 대체로 잘 풀렸다. 민규는 사람을 좋아했고 사람한테 잘했다. 외모도 성격도 남들이 좋아하기 좋은 조건이라는 것도 있었고 민규도 잘 대하니 사람들은 민규에게 대체로 잘해주었다. 시기와 질투를 받은 적도 꽤 있긴 했는데 그런 사람들이야 뭐 어차피 그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래서 그건 민규에게 고난과 역경도 못 됐다.

다른 꿈은 없긴 했는데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기는 했다. 나도 뭔가 진짜 사랑을 하게 되면 그 꿈이 있다고 했던 사람처럼 빛날까,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대학 가면 뭔가 좀 달라질까? 근데 그거야 뭐 내 맘대로 되는 것도 아니구. 타고 나길 긍정적으로 태어나 자라기를 해맑게 자란 민규는 그렇게 생각하며 입학식 전날 잠이 들었다.

 

*

 

“형, 오늘 시간 돼? 나 맛있는 거 사주라. 된다고? 오케이. 야, 민규야. 형이 시간 된대. 밥 얻어먹으러 가자.”

“나도 가도 되는 거 맞아? 나 있다고 얘기 안 했잖아.”

“어, 우리 형 별로 신경 안 쓸걸? 형 돈 많아. 가자. 명호가 시간 안 맞아서 아쉽네.”

3월 초에 과 선배들과 밥약이네 뭐네 해서 얻어먹느라 바빠 오랜만에 같이 밥을 먹기로 한 석민이 갑자기 자기 형에게 밥 얻어먹자며 자기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실용음악과 다닌다는 석민이네 형. 지훈이 형 얘기는 고등학생 때부터 많이 들었다. 대학생인데 벌써 곡 쓰고 작업하고 해서 유명한 노래 중에 그 형이 쓴 노래도 있고, 기타도 잘 치고, 노래도 잘한댔다. 형이 세봉대 다녀서 석민도 세봉대 지망한 거라고 했던가. 민규는 본 적 없고 말만 들은 그 형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벌써 뭔가 하고 싶은 걸 찾아서 이룬 느낌? 자기가 작곡한 곡을 가수가 부르기도 했다니까 더 멋있었다. 그 형을 드디어 보네. 어째 좀 설렜다. 유명인 만나는 것 같기도 하고.

민규가 지훈을 처음 본 건 교문 앞이었다. 까만 티셔츠에 까만 바지를 입고 까만 모자를 쓴 얼굴 무지 하얀 형. 첫인상은 거기에 와 석민이랑 찬이랑 안 닮았어, 정도? 지훈은 교문에 기대 주머니에 손을 꽂고 있다가 고개를 들어 둘을 보았다. 표정은 좀 무뚝뚝해 보였다. 무서운 형인가? 근데 석민이는… 무섭다곤 안 했던 것 같은데. 아, 화내면 무섭긴 하댔다. 은근 엄하다고 했나.

“형, 내 친구 김민규. 야, 김민규. 여기가 우리 형.”

“형 안녕하세요! 석민이가 맨날 형 얘기해서 많이 들었어요.”

“어. 안녕…. 석민이 친구니까 말 편하게 할게. 이지훈이고, 이미 알겠지만 석민이 형.”

“형형형, 우리 맛있는 거 사주라”

“알았다. 너네 뭐 먹을래?”

어라? 말하니까 좀 다르네. 무뚝뚝해 보였는데 민규 눈을 바라보며 하는 말은 그렇게 무뚝뚝하지 않았다. 목소리가 적당히 차분하고 듣기 좋았다. 식당에 가서도 그랬다. 민규는 무슨 일이든 남한테 시키거나 남이 하는 거 기다리기보단 자기가 그냥 하는 게 편해서 식당에 가면 잔이든 물이든 수저 젓가락이든 자기가 먼저 착착착 놓곤 했다. 그날도 아무렇지 않게 그러고 있는데, 지훈은 민규가 그러는 것을 슬쩍 보더니 민규가 손이 빠르네, 고맙다. 하며 칭찬해 주었다. 보통 민규가 하면 다들 누가 한지도 모르거나 그러려니 했지 지훈처럼 알아주고 굳이 말로 집어 고맙다 해주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래서 민규는 그게 좀 기뻤다. 이 형, 섬세하게 다정하네. 좋은 사람이다. 민규는 사람이 좋았고 좋은 사람은 더 좋았다. 그래서 민규는 이 형이랑 좀 더 친해지고 싶었다.

“형, 안녕하세요. 어디 가세요?”

“어. 안녕. 나 밥.”

“저도 아직인데, 같이 드실래요? 제가 보은할게요!”

“뭔 보은은 보은이냐. 됐어, 가자. 밥 먹게.”

어느 날 점심시간이 되어 밥 먹으러 가던 중 음대에서 나오는 지훈을 발견하고 민규는 열심히 뛰었다. 지훈은 보은하겠다는 민규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웃더니 가자며 고개만 한쪽으로 까딱거렸다. 아, 그래도 이 형도 나 싫어하는 것 같진 않지? 좀 귀엽게 봐주면 좋겠다. 민규는 신나서 지훈의 뒤를 따라갔다.

“형. 근데 형은 먹는 것 중에 뭐 제일 좋아하세요?”

“나? 밥.”

“…진짜 쌀밥이요?”

“어. 밥이 제일 맛있어. 넌?”

“저요? 저… 다 좋은데. 아, 짜파게티요.”

“그것도 좋지. 일요일엔 짜파게티 국룰이지.”

둘은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면서 식당으로 갔다. 같이 밥 먹는 동안 또 별 것 없는 대화를 했는데, 그게 또 은근 편했다. 석민의 형이라서 말 많은 동생에게 익숙한 건지 아니면 그냥 원래 잘 받아주는 형인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대화가 잘 통했다. 둘은 밥도 먹고 커피도 마셨다. 민규가 이건 죽어도 자기가 사야 한다고 우겨서 커피는 겨우 민규가 샀다. 지훈이 피식 웃으며 뭘 그렇게 따지냐, 했는데 민규는 맨날 얻어먹으면 미안하잖아요, 했다. 그래야 형이랑 먹는 게 형도 나도 안 불편할 테니까, 라는 말까지는 차마 못 했고.

지훈은 표정은 무뚝뚝해 보였는데 챙겨주기는 또 엄청 잘 챙겨줬다. 만나면 밥 잘 사줬고, 수업 끝나고도 무슨 작업을 하는지 음대로 가다 집에 가는 민규와 만나면 손에 덜렁덜렁 들고 가던 비닐에서 간식거리를 꺼내 너 집에 가서 먹어라, 하고 주곤 했다. 가끔 좀 강아지한테 간식 주는 주인 같기도 했는데… 아무튼 민규는 지훈이 자기를 챙겨줘서, 신경 써줘서 좋았다. 지훈의 인간관계란 오래 보지 않은 민규가 보기에도 별로 넓어 보이진 않았는데 그 선 안에 자기도 들어간 게 좀 좋았다.

민규나 지훈이나 먹는 거 좋아하고 잘 먹고 많이 먹었다. 그래서 민규는 지훈을 따라다니며 잘 먹었고 둘 다 운동 좋아해서 운동도 가끔 같이 했다. 지훈 덕에 대학 생활이 더 재미있었다. 석민보다 지훈과 시간표가 더 잘 맞아서 석민이 어느 날엔 야, 네가 나보다 더 우리 형 동생 같다. 하고 키득거리기도 했다. 민규는 이유는 모르겠는데 왠지 좀 변명을 해야 할 것 같아서 너랑 명호만 시간표 맞춰서 그런 거잖아. 형 없었으면 나 혼자 먹을 뻔, 했고, 석민은 그건 네가 수강 신청 망하지 말았어야지, 했다. 그러면 민규도 할 말이 없었고. 근데 지금은 처음에 망해서 좀 다행이다 싶긴 했다.

“어. 야 민규야. 먼저 가서 명호 기다려라. 나 형 작업실에 뭐 놓고 왔다.”

“지훈이형 작업실도 있어?”

“어. 내가 말 안 했나?”

“하긴, 형 작업 많이 하니까. 작업실 있어도 안 이상하네.”

“거기 나름 아늑하다? 아, 아무튼 나 갔다 올게! 가서 기다려!”

명호와 석민과 같이 저녁을 먹으려던 날에 석민이 작업실 얘기를 꺼냈다. 그러고 보니 형 곡 쓴댔는데. 노래도 부른댔는데. 지훈과 친해지긴 했는데 민규는 지훈의 노래를 들어본 적도, 작업실에 가 본 적도 없었다. 민규가 먼저 얘기를 꺼내지 않기도 했고 지훈도 굳이 먼저 권하는 쪽은 아닌 것 같았다. 말하면 데려가 주나…? 좀 그런가?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혼자 고민하는 것 같기도 했다.

“형, 형이 만든 음악 들려주면 안 돼요? 이석민이 맨날 자랑하는데 나 한 번도 못 들어봤어.”

고민은 짧았고, 긍정왕 김민규는 일단 물어보기라도 하기로 했다. 안된다고 하면 어쩔 수 없는 거고 되면 좋은 거고. 지훈은 그 말에 2초 정도 생각하는 것 같더니, 작업실 갈래? 근데 좀 더럽다. 하고 물었다. 민규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고 둘은 같이 지훈의 작업실로 갔다.

지훈의 작업실은 지훈 말대로 좀 어질러져 있기는 했다. 음악 관련 책들과 악기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고 뭔지 모르겠는 장비들도 있었다. 민규는 제가 하나라도 건드려 망가뜨릴까 싶어 몸을 있는 대로 구겼다. 와, 나 오늘은 진짜 사고 치면 안 돼. 민규야 제발. 속으로 기도하고 있으니 지훈이 소파를 치워주었다. 민규는 드디어 제 자리를 찾은 것처럼 안심하며 소파에 앉았다. 짐 탓에 조금 좁긴 했는데 못 앉을 정도는 아니었다.

“노래 튼다.”

지훈은 책상 앞 의자에 앉아 무언가를 능숙하게 건드렸다. 곧 지훈이 만든 음악이 흘러나왔다. 민규는 지훈의 등을 보며 노래를 들었다. 노래는 따뜻하고 다정했다. 음악에 대해 잘 알진 못했지만 이 노래는 그 옛날 보았던, 이제는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그 남자애의 눈보다도 반짝거리는 것 같았다. 지훈의 목소리가 예뻤고, 지훈이 노래하는 사랑이 예뻤고, 노래가 예뻤고… 지훈이 예뻤다. 아, 나 좀 큰일 났네. 사실 이미 예전에 큰일 났는데 이제야 깨달은 것 같기도 했다.

“형.”

마침내 노래가 끝났을 때 민규는 지훈을 불렀다. 방금 들은 노래 탓에, 방금 깨달은 마음 탓에 심장이 기분 좋게 두근거렸다. 지훈과 시선을 맞추며 민규는 기쁘게 웃었다. 나는 이런 사랑을 노래하는 형이 좋아요. 사랑하는 게 있는 사람은 진짜 예쁜데, 형도 그러네.

“형이 노래하는 사랑은 진짜 예쁘네요.”

민규는 그냥 그 말만 했다. 자기도 방금 짝사랑을 하고 있단 걸 깨달아서 차마 더는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럴 타이밍도 아니었고. 지훈이 칭찬에 좀 민망했는지 귀를 붉혔다. 지훈은 괜히 헛기침을 하더니, 무뚝뚝한 척 뭐냐, 민망하게. 했다. 그러더니 다른 노래를 틀어주었다. 지훈이 들려주는 노래 중에 좋지 않은 노래가 하나도 없어서 민규는 솔직하게 다 좋다고 했다. 이건 가사가 예쁘고, 이건 멜로디가 예쁘다. 지훈이 좀 기뻐하는 것 같았다.

그날 밤 꿈에서는 지훈이 민규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었다. 사랑 노래였는데, 새벽에 물을 마시면서 혼자 다짐해, 나는 너에게. 턱 끝까지 차올랐던 그 말을 내일 꼭 하겠어. 너 예쁘다. 그 가사가, 멜로디가 정말 예뻤고 노래하는 지훈은 더 예뻤다. 민규는 지훈이 자기를 좀 예쁘게 봐주거나 예뻐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잠에서 깼다.

그렇게 짝사랑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 막상 어떻게 해야 잘 하는 건지는 잘 몰랐다. 짝사랑을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 사랑은 암살이 아니라서 들켜야 시작한다는데 민규는 사랑을 어떻게 티 내야 하는지 잘 몰랐다. 그냥 그는 항상 사람이 좋았고 사람이 좋아서 사람들에게 좋다고 했는데 그게 다 짝사랑을 해서 그런 건 아니었으니까. 학창시절에 연애를 해 보긴 했는데 자기가 먼저 고백해본 적은 없었다. 그냥 고백받았고, 나쁘지 않고, 거절하면 쟤가 좀 민망할 것 같고… 그래서 연애를 남들 하는 거 보고 따라 했다.

나름대로는 열심히 했는데 따라 하는 걸로는 역시 안 되는 거였는지 마지막에 가면 너는 나를 남들만큼만 좋아하는 것 같아, 하고 차이곤 했지만. 뭐가 그렇게 다른 거지. 그 애들 말이 맞긴 했다. 민규는 사람을 좋아했고 사귄 사람도 그렇게 좋아했다. 연애에서 느끼는 그 특별한 사랑이 뭔지 잘 몰랐다. 지금까지는.

짝사랑을 하니까 그 특별한 게 뭔지는 좀 알 것 같기도 했다. 진짜 사랑이란 게 좀 다른 건가? 의식하지 않아도 궁금했고 말해주지 않아도 알고 싶었고 자주 보고 싶었고 같이 있고 싶었고 같이 뭔가 하고 싶었다. 나를 좋아해 주었으면 했고 예뻐해 주었으면 했다. 근데 여전히 잘 하는 법은 모르겠어서 민규는 그냥… 하던 대로 했다. 지훈과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시간 맞으면 운동 같이하고. 하나 달라진 게 있다면 작업실에는 못 갔다. 저번에 안 치우고 부른 게 좀 민망했던 건지 지훈이 거기 요즘 더 난장판이라… 라며 다시 구경 가고 싶다는 민규에게 거절 의사를 표했다. 민규는 알았다며 끄덕거렸다. 형 곤란하게 하고 싶진 않았으니까. 어, 뭐. 이대로도 나쁘지 않을지도? 좀 안일하게 그런 생각을 했다. 고백하진 못했지만 자주 보고 같이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이 정도도 좋았다.

“민규야. 우리 형 좋아하는 사람 생겼나 봐.”

“…어?”

“내가 형 노래 최근에 들었는데, 뭔-가가 달라졌어. 촉이 와. 뭔가 있어. 근데 누군지 물어봐도 절대 말 안 해주더라. 근데 또 없다곤 안 해. 있는 거 맞는 것 같아.”

위기감이 든 건 석민의 그 말 때문이었다. 어, 그건 안 되는데. 다른 누군가가 지훈의 첫 번째가 되는 건 싫었다. 그럼 지금처럼 자주 같이 못 있잖아. 민규의 머리는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고 마음은 불안하게 술렁거렸다. 그제야 형이 작업실 안 데려가 주는 게 그거 때문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진짜 누구지? 그 형 만나는 사람 진짜 없는데. 밥도 나 아니면 거의 밴드 형들이랑 같이 먹고…. 헉, 그 형들 중에 있나? 볼꼴 못볼 꼴 다 보며 지내온 넷 중 누군가가 들었다면 민규야, 뭐 잘못 먹었니? 혹은 어디 아프니? 할 소리였지만 김민규는 심각했다. 넷 다 친한 것 같은데, 순영이 형인가? 근데 원우 형도 교양에서 보면 요새 핸드폰 자주 보면서 웃긴 하던데, 설마 둘인가? 별생각이 다 들었다. 좀 더 생각해 봤더니 원우는 지훈과 같이 있을 때도 핸드폰을 자주 보며 웃었으니 원우는 아닌 것 같았고, 순영은 지훈과 친하긴 했는데 또 너무 친해서… 굳이 말하면 석민과 자신 같았다고나 할까. 아, 그럼 거기도 아닌 것 같다. 준휘 형은 중국 음식이랑 결혼한 것 같고…. 생각을 해도 해도 답이 안 나왔다. 머리가 빙빙 돌아서 눈앞이 어질어질했다. 이런 나를 어쩌나, 너를 봐도 네가 더 생각나, 너는 나의 유일한 어쩌나, 난 어쩌나, 어쩌나… 그쯤 되니 민규는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하면 해. 가 보자는 거야. 긍정왕 김민규, 아직 죽지 않았다.

고백을 하자.

그래, 생각해 보니 그의 지난 연애도 어쨌든 누군가가 고백을 해서 시작됐다. 되든 안 되든 용기를 내서 마음을 전하자. 근데 언제? 그건 생각 좀 해 보고. 아무 데서나, 아무 때에나 하는 건 좀 무드 없잖아. 근데 또 너무 과하면 지훈이 형 성격에 싫어할 것 같고, 너무 거창하진 않지만 딱 센스있고 깔끔하게, 그 뭐냐, 알잘딱깔센 있잖아. 민규는 머릿속으로 열심히 계획을 세웠다. 누구에게나 계획은 있다고 했다. 그게 박살 나기 전까진…. 김민규의 계획도 그랬다.

축제 무대 위에서 기타 치고 노래하는 지훈을 본 순간, 김민규의 모든 계획은 산산이 부서져 사라졌다. 계획 어그러지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그 순간에는 그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눈이 마주친 순간, 무대 위에서 거기 있는 그 누구보다 예쁘게 빛나는 지훈을 본 순간, 말하지 않으면, 이 마음을 전하지 않으면 별이 폭발하듯 터질 것 같았다. 그래서 민규는 축제 무대가 끝나자마자 아래로 내달렸다. 계단을 두 개씩 내려가서 정리하던 지훈을 붙잡았다.

“형, 시간 좀 내줘요.”

“지금? 정리 중인데… 급한 거야?”

“쪼금?”

“알겠어. 석민아, 미안한데 뒷정리 좀.”

“엉? 오케이. 다녀와.”

민규는 지훈을 데리고 무대 아래 공간으로 향했다. 공연이 끝나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들어갈 때 높이가 민규 키에는 좀 아슬아슬해서 조심해야 했는데, 민규는 갑자기 끌려왔으면서도 야, 민규야 머리 조심해라. 하는 지훈의 다정에 새삼 좀 더 두근거렸다. 민규는 애써 숨을 고르고 입을 열었다.

“형. 나 부탁 하나만 해도 돼요?”

“뭔데, 갑자기.”

“내 말 듣고 나 피하지 말기.”

고백도 하기 전에 대뜸 조건부터 걸었다. 이렇게 배짱 부려도 될까 싶기는 했는데 그렇게라도 안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나 안 받아주는 건 괜찮은데 안 보는 건 싫어. 피하는 건 더 싫고. 그래서 일단 무작정 떼를 썼다. 지훈이 다정한 사람인 거 아니까, 결국 말 들어줄 거 아니까 부리는 강짜였다.

“뭐냐 너. 대충 뭔지 알아야 피하든 말든 하지.”

“아, 형. 들어준다고 좀 해줘요.”

지훈이 눈만 깜빡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봐봐. 떼써도 다정해서 들어주잖아. 그러니까 내가 좋아하지. 민규는 숨을 골랐다. 이건 민규의 계획에 없던 일이다. 원래 고백을 할 거면 훨씬 더 예쁜 장소에서 훨씬 더 많은 준비를 하고 훨씬 더 괜찮은 시간에 말하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그냥… 그냥 어떻게 되든 지금 마음을 전해야 할 것 같았다.

“그, 있잖아요. 형.”

“얘기해. 안 피할게.”

“…좋아해요.”

“어. 그래… 어?”

“…좋아한다구요.”

지훈은 엄청나게 놀란 것 같았다. 멍하니 입을 벌리는 얼굴은 좀 당황한 것 같기도 했다. 아, 예상대로. 민규는 부끄러움과 묘한 후련함으로 얼굴이 붉어지는 걸 느꼈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어리버리하게 그, 받아달라는 건 아니구, 아니, 받아주면 좋긴 한데, 아, 형, 나 안 피할 거죠…. 그런 멍청해 보이는 소리나 하며 고개를 떨궜다. 혀가 꼬이고 머리가 안 돌아갔다.

고백하는 거, 진짜 힘든 거구나. 지금까지 그에게 고백했던 사람들에게 진짜 대단하다고 박수라도 쳐 주고 싶었다. 아, 좀 도망가고 싶은 것 같기도 하고? 형이 안 피해도 내가 피할 것 같기도 하고? 이제 형 얼굴 어떻게 보지. 멀리서 보고 도망 다닐까. 이래서 고백이 어려운 거구나….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지훈이 민규의 손을 잡았다. 손이 따뜻해서 민규는 조심조심 고개를 들었다. 지훈이 후, 하고 짧게 숨을 고르는 소리가 들렸다. 민규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나도.”

“…네?”

“나도 너 좋아한다고.”

민규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지금 내가 들은 말이 맞나? 좋아한다고 들은 것 같은데. 머리가 느리게 돌아갔고 뒤늦게 심장이 뛰었다. 와. 대박. 제대로 깨닫기도 전에 얼굴이 웃고 있었다. 지훈도 웃고 있었는데, 얼마나 예쁜지 그 얼굴을 평생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너네 사귄다고? 잘 됐다. 축하축하.”

“지훈아, 연하가 취향이었어? 이야~”

“둘이 잘 맞는 것 같던데? 그래도 너네, 연인 됐어도 우리랑도 놀아야 돼. 둘만 놀면 안 돼.”

이건 사귄다고 밝혔을 때 지훈 친구들의 반응. 원우는 정직하게 축하해줬고 순영은 지훈을 놀리다가 한 대 맞았고 준휘는 사귄다고 해서 둘만 놀면 안 된다며 제법 엄한 척 장난을 쳤다. 민규는 그냥 모든 게 신나서 계속 웃고 있었다. 지훈은 좀 부끄러워하는 것 같긴 했는데 친구들 앞에서 민규가 슬쩍 눈치 보다 손을 잡아도 내치거나 빼지 않았다. 힐긋 보더니 가만히 마주 잡아주는 손이 좋았다. 누가 지훈이 왜 좋아? 물으면 다정하고 반짝거리고 예뻐서, 하고 말할 것 같았다.

“내가… 아주 서운한 소식을 들었다. 너희가 사귀는데 우리한테 말을 안 해?”

“아니, 말 안 하려고 한 건 아니고 어제 사귀기 시작했는데….”

“지수야, 이럴 수가 있니. 어제 사귀기 시작했는데 오늘 저녁까지 우리한테 말을 안 해서 우리가 이걸 석민이한테 듣게 했대.”

“정한아. 나도 정말 속상하다…. 우리가 쟤네를 어떻게 키웠는데….”

김민규는 김민규 부모님이 잘 키워주셨고 이지훈도 이지훈 부모님이 잘 키워주셨으나 학생부 최강자 (최)승철 윤정한 홍지수 셋 앞에서는 어림도 없었다. 셋은 다음날 석민에게 소식을 듣자마자 쫓아오더니 민규와 지훈을 자주 가는 고깃집으로 끌고 갔다. 승철은 자리에 앉자마자 판결을 내리는 판사처럼 단호하게 선언했다.

“너네. 오늘은 안 봐줘. 아니, 이건 못 봐준다. 축하주 마셔. 빼는 거 없음. 흑기사만 가능.”

“형, 그거 그냥 민규 죽이겠다는 거 아냐.”

“그럼 지훈이 너도 마시든가.”

“아 형. 지훈이형 술 못 먹잖아.”

“그니까 네가 다 마시면 돼, 민규야.”

“그래, 민규야. 남친 지키는 흑기사 해야지.”

그리하여 셋의 말대로 그날의 술은 민규가 거의 다 마셨다. 잘 마셔서 다행이지, 아니면 사귄 지 이틀 만에 지훈에게 술에 꼴아서 비틀거리는 꼴을 보여줄 뻔했다. 지훈이 술을 안 먹으니 한 번도 같이 술 먹은 적이 없어서, 민규는 절대로 만취한 꼴을 보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처음은 체력으로 버티고 마지막에 승철과 대작할 때는 거의 정신력과 사랑으로 버텼다. 지훈은 이 미친 짓을 멈추게 하고 싶은 것 같긴 했는데, 저 형들을 상대할 자신이 없는 데다 말 잘못 꺼냈다간 민규가 더 고생할 것 같았는지 입을 다물고 있었다. 어쨌든 그날 민규는 무사했고 남자친구에게 보기 싫은 꼴 안 보이는 데 성공했다. Power of love. 사랑의 힘이죠.

참고로 주위에 연애한다고 밝혔을 때 명호의 반응이 가장 예상 외였는데, 명호는 응, 너 지훈이 형이랑 그럴 줄 알았어. 너 다 티 났어. 하고 민규를 놀라게 했다. 석민이는 몰랐는데. 응, 석민이는 몰랐지. 나한텐 다 보였어. 해서 민규가 명호 앞에서는 좀 똑바로 살아야겠다고 다시금 다짐하는 계기가 됐다.

그래서 어쨌든 무사히 시작한 첫 연애는… 행복했다. 이 네 글자로 마음이 표현된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행복했다. 민규는 지훈과 같이 밥을 먹었고 커피를 마셨고 같이 운동을 했고… 또, 이제는 같이 안 하던 것도 같이했다. 지훈은 민규와 한강에 갔고, 강이 흘러가는 것을 보며 같이 치킨이랑 맥주와 제로 콜라를 먹었다. 같이 뮤지컬을 보러 가기도 했고, 전시회도 가고, 영화도 봤다. 지훈은 또 민규를 다시 작업실에 데려가 주었다. 민규는 지훈이 새로 만들었다며 들려주는 곡을 듣고는 바로 눈치를 챘다. 아, 왜 석민이가 형 좋아하는 사람 생겼다고 했는지 알겠다. 이거 나야? 속으로만 생각하고 웃었다.

“형, 이래서 나한테 안 들려줬구나?”

지훈은 말없이 시선을 피했는데 그럼 뭐하나, 귀가 이미 새빨갛게 타오르는데. 우리 형 엄청 귀엽네. 민규는 키득키득 웃었다. 이제 민규에게는 작업실을 치울 수 있는 합법적… 원래 불법은 아닌데 아무튼 합당한 권리가 생겼다. 형, 이건 어디가 편해? 저건 자주 써? 지훈에게 하나씩 묻고 대답을 들으며 정리했다. 형이 쓰기 편하게, 근데 내가 돌아다니기도 편하게.

민규는 정리를 잘했다. 처음엔 좀 불안한 눈으로 지켜보던 지훈도 결과를 보더니 내 작업실이 이랬나? 하며 감탄했다. 그리고 지훈은 민규가 소파에 앉는 걸 한참 보고 있더니 큰 소파를 샀다. 민규는 지훈이 자길 생각해서 자기 작업실의 무언가를 바꿔준 것이 좋았다. 그만큼 자기가 이 형 마음에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있는 것 같아서. 그냥 모든 사람에게 해주는 다정 말고, 좀 특별한 사람한테 해주는 다정 같아서. 몸을 겹칠 때도 그랬다. 입맞춤에서, 손길에서, 눈빛에서, 몸짓에서 사랑받는 기분이 뭔지 느낄 수 있었다. 너 괜찮아? 기분 어때? 아프진 않아? 그렇게 민규를 섬세하게 살피고 신경 쓰고 예뻐해 주는 게 좋았다. 너무너무 좋았다. 좋아서 가끔은 좀 죽을 것 같았다.

둘은 민규의 취향대로 놀러 가기도 했고, 지훈의 취향대로 방 안에서 놀기도 했다. 민규는 지훈이 자기 공간을 편해한다는 걸 알았고 일부러 지훈을 자기 집으로 좀 많이 불렀다. 익숙해지면 형이 내 집도 자기 공간으로 느끼지 않을까? 김민규의 철두철미한 계획은 성공했다. 처음엔 약간 낯을 가리던 지훈은 몇 번 오더니 민규의 집에 적응했다. 민규가 준비를 잘해놓기도 했다. 냉장고에 제로 콜라 잘 채워두고, 먹을 거 잘 챙겨놓고, 청소도 꼼꼼하게 해놓고, OTT도 준비 완료.

그들은 민규의 집에서 그냥 노래를 틀어놓고 누워있기도 했고, 같이 영화를 보기도 했다. 지훈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도 봤는데, 민규는 애니메이션은 하나도 몰라서 볼 때마다 지훈이 이것저것 설명해 줘야 했다. 민규는 지훈이 귀찮아하면 어쩌나 했는데 지훈은 좋아하는 것 이야기에 잔뜩 신나서 계속 말했다. 지훈이 신난 게 좋아서 괜히 이것저것 더 물었다. 솔직히 들어도 잘 모르겠긴 했는데 지훈이 좋아하니까 그냥 다 좋았다.

“형, 형은 졸업하면 뭐 할 거야. 음악?”

어느 바람이 좋은 날 민규는 침대에 누워 물었다. 좀 나른했고, 햇살도 따뜻했고, 같이 침대에 누워있는 것도 좋았다. 민규는 지훈에게 미래를 물으며, 지금 같은 시간이 오래오래 지속되길 바랐다. 졸업하고 환경이 변해도 우리는 그대로이길.

“응. 하던 거 계속해야지. 너는?”

“음… 잘 모르겠네. 전공 살릴까.”

사실 전공과 잘 맞는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집 예쁘게 짓는 건 잘 맞지 않을까 했는데 건축학과는 공대에 있는 이유가 있었고 집 예쁘게 짓는 거 말고도 별걸 다 시켰다. 못 해먹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민규의 취향은 아니었다. 아무리 전공을 잘 살려봤자 나중에 집 지을 때 아 건축학과 나왔으니 좀 더 잘 지을 수 있겠다… 그 정도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이걸 직업으로 삼고 일하는 자기 모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꿈이 있고 그 꿈을 이루며 사는 지훈에게 난 꿈 없어, 하기가 그래서 대충 전공 얘기로 넘겼다. 지훈은 그 말을 듣더니 민규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기분이 좋았다. 사랑받고 예쁨받는 기분.

“뭘 해도 잘할 것 같은데. 김민규 잘하는 거 많잖아.”

“오~ 애인의 칭찬 좋은데.”

“뭐 칭찬 처음 듣는 사람처럼 그래.”

그건 그래. 근데 들어도 들어도 좋다. 진짜 그랬다. 잘 모르겠다고 하면 다들 너는 왜 꿈이 없냐, 아직까지 없으면 어떡하냐, 뭐라도 해야지, 너 졸업 금방이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지훈은 뭘 해도 잘할 것 같다고 해줬다. 그게 좋았다. 민규는 가만히 누워있다가 조심스럽게 지훈에게 입 맞췄고, 그다음 있던 일은 더 기분이 좋았다.

전공이 적성은 아니어도 민규는 성실하게 학교를 다녔다. 기분이 좋으니 공부도 잘 됐고, 과제도 잘 됐다. 하란 과제 하고, 공부할 거 하고. 지훈의 말처럼 잘하는 거 많아서 공부도 과제도 열심히 하니까 됐다.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진짜 나중에 뭐 하고 싶은지 슬슬 생각하긴 해야 할 것 같았다. 형은 음악 계속할 테니까, 나도 형이랑 같이 있으려면 뭐라도 해야지. 내가 뭘 좋아하지. 민규는 어릴 때처럼 다시 떠올려 보았다. 예전엔 처음이 가족이었는데 지금은 지훈이 형, 그 다음에 가족 – 엄마 아빠 동생 미안! 자식 키워봤자 소용없다더니 딱 그 짝이었다. – 친구, 맛있는 거, 노는 거, 그리고 지훈이 형이 좋아하는 거…. 그래도 뭔가 방향이라는 게 생겼다. 형이 멋있어할 만한 거면 좋겠다. 노래하는 것보단 듣는 게 좋으니까 가수는 말고.

“형, 오늘 연극 어땠어?”

“재밌던데. 그, 뭐더라. 남주 배우 멋있더라.”

“진짜? 형이 멋있다고 한 사람 처음 봤네.”

“내가 그랬나? 뭐 멋있으니까 멋있다고 하지.”

처음으로 지훈에게 멋있다는 말을 들은 말이었다. 안타깝게도 민규가 들은 말은 아니고 어떤 배우가 그 대상이긴 했지만 어쨌든 멋있다고 한 건 멋있다고 한 거였다. 배우… 멋있나. 잘하면 멋있긴 하지. 아까 그 사람 내가 봐도 멋지긴 하더라. 형 그런 거 좋아하나. 멋있다는 소리는 나도 한 번도 못 들어봤는데.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했다. 민규는 좀 고민하다가 불쑥 물었다.

“형, 나 배우 할까.”

“너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배우 김민규 멋있겠네.”

“그게 뭐야.”

배우 김민규 멋있겠네. 그 말이 뇌리에 박혔다. 어, 괜찮을지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좀 해 보고 싶어졌다. 지훈이 멋있다고 했으니까. 자기가 보기에도 그 배우는 좀 멋있었으니까. 지훈이 장난스럽게 등을 툭툭 두드려 주었다. 지금… 말할 건 아니고, 뭐라도 이루고 나서 말하면 좋겠다. 지훈은 이미 이룬 게 많았으니까. 민규는 지훈에게 예뻐 보이고 싶었고, 예쁨 받고 싶었고, 또 멋지게 보이고 싶기도 했다. 그냥 좋은 건 다 하고 싶었다. 사랑이 민규를 그렇게 만들었다.

그날 지훈과 같이 있을 때 번호 달라는 요청을 받은 건 별로 좋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론 민규 좋은 일이 됐다. 지훈이 무려 반지를 맞추자고 해주었다. 악세사리 귀찮아하는 거 알아서 말도 안 꺼냈는데. 민규는 그날 당장 반지를 맞추고 싶었지만 시간이 도와주지 않았다. 그래서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가게 문 열 시간이 되자마자 지훈에게 쳐들어가서 같이 반지를 맞추러 갔다.

와, 형이랑 나랑 같은 반지네. 이미 서로가 서로의 독점적 관계라는 건 확고부동했지만 이게 있으니 좀 더 확실해진 것 같았다. 절대 안 빼야지. 또 부산스럽게 돌아다니다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이런 점에서는 자길 잘 안 믿는 민규는 그냥 반지를 안 빼기로 했다. 그럼 잃어버릴 일도 없지.

시간은 참 잘 갔다. 그동안 민규는 행복했고, 지훈은 물론이고 석민이나 명호에게도 비밀로 – 석민에게 말하는 순간 열두 명에게 퍼지는 건 순식간이었고 명호에게는 들키면 뼛속까지 털릴 것 같았다 - 연극동아리에 들어갔다. 처음엔 무대 만드는 것부터 시킬 줄 알았더니 너는 뒤에 있어봤자 얼굴이랑 키가 너무 튄다며 연기 연습부터 시켰다. 동아리라고 해서 대충하는 것도 없었다. 진지하게 가르쳤고 진지하게 배웠다. 발성, 표현… 처음 해 보는 것들은 재밌었다. 연기.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일. 누군가에게 몰입하고 그 사람이 되는 일. 나중에 내가 잘하게 되면 형이 보러 와주면 좋겠다. 좀 멋있어 보였으면 좋겠고. 근데 지금은 말고. 지금은 내가 봐도 좀 부끄러우니까. 민규는 태생이 성실했고, 매사 열심히 했다. 처음에 쟤는 외모 때문에 바로 배우냐, 하고 투덜거리던 동아리원들도 민규가 알아서 무대 작업이나 심부름을 도우니 점점 민규에게 마음을 열어주었다. 그때까진 모든 게 좋았다.

그런데 어느 날 전공 교수가 그를 따로 불렀다. 성적도 좋고 잘하니까, 교환학생을 가는 게 어떠냐고 했다. 좋은 기회라고. 민규는 어떻게 하면 최대한 정중하게 거절할 수 있을까를 몇 초 생각했고, 조금 난처하게 웃으면서 죄송하다, 교환학생을 갈 생각은 없다 했다. 지금은 꽤 진지하게 배우가 되고 싶었고, 설령 배우가 되지 못한다고 해도 이 진로는 아닌 것 같았다. 재미도 없었고, 전공을 제대로 살리려면 교환학생으론 부족하고 졸업 후 유학을 가야 한다는 것도 별로였다. 나 유학 가면 형은? 아니 나는? 지훈과 떨어져야 하는 게 싫었다. 이 전공을 진짜 좋아해서 다 감수할 수 있을 정도면 모를까. 그리고 좋은 기회라면 이 전공을 좋아하고 앞으로 하고 싶은 사람이 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교수는 알 수 없는 눈길로 민규를 바라보더니 나가보라고 했다.

그날 점심은 명호와 석민과 같이 먹었다. 슬슬 다들 진로를 생각하며 뭐든 하고 있을 때였다. 패션 쪽으로 나갈 계획인 명호는 이탈리아나 그쪽으로 유학 가는 걸 생각해 보고 있다고 했다.

“유학? 헉. 힘들겠다.”

“어쨌든 나 지금도 유학생이니까. 적응할 수 있을 거야.”

“맞다 너 중국인이었지.”

“난 가끔 얘가 나보다 한국어 잘하는 것 같아.”

“맞는데? 석민아, 이제 알았어?”

“아씨 김민규!”

민규와 석민은 서로 팔을 뻗어 아웅다웅거리다 명호에게 밥상 앞에서 싸우지 말고 식당에선 조용히 하라고 혼나고 얌전해졌다. 석민은 자긴 노래를 계속할 것 같다고 했고, 근데 교환학생을 가 보면 어떨까 싶긴 하다고 했다. 민규는 별생각 없이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교수님이 교환 얘기하긴 하더라. 우리 학년 때 많이 가긴 하나 봐.”

“헐. 대박, 너한테? 너 교환 가?”

“아니, 말한 건 맞는데 안 간다고 했어. 별로 생각 없어서.”

“하긴, 너 전공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너 이거 쌤이 그냥 골라준 거잖아.”

“그치. 어디 갈지 생각이 안 났으니까.”

“근데 민규야, 이거 지훈 형한텐 얘기했어?”

가만히 듣고 있던 명호가 물었다. 지훈이 형한테 얘기했냐고…? 민규는 잠깐 눈만 깜빡이다 고개를 저었다. 이미 안 간다고 했고, 마음 확고하고, 말하면 괜히 형이 좀 신경 쓸 것 같고, 다 끝난 일로 괜히 그렇게 만들기 싫고… 순식간에 여러 생각이 지나갔다.

“아니, 그 형은 괜히 걱정할 것 같아서… 말 안 하려고.”

“맞아. 우리 형 은근 쓸데없는 걱정 많아.”

“음… 너 말 안 할 거면 확실히 안 해야 해. 아니면 오해 생겨.”

“알지. 야, 이석민. 너 이거 형한텐 비밀이다.”

“아, 나도 알지.”

민규는 그 일이 대충 거기서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그날 저녁 승관에게 연락이 왔다. 승관은 뭘 그렇게 아는 사람이 많은지 대학에서 나온 소식 중에 얘가 모르는 소식이 없는 애였다. 음대 소식은 물론이고 공대 미대 경영대 자연대 인문대… 온갖 소식이 다 승관 손에 있었다. 그 마당발에게 민규 소식도 들어갔는지 승관은 대뜸 카톡을 보냈다.

「민규형. 어디 교환 가?」

「어? 안 가는데? 누가 그래?」

사실 이때 민규는 승관에게 답을 듣기도 전에 다음 날 반드시 석민을 처단하려고 했다. 명호는 말 안 할 것 같았고, 들은 사람이 둘인데 한 사람이 아니면 소거법으로 당연히 남은 한 사람이 범인이니까. 그래, 승관이까지는 내가 이해한다. 우리 다 아니까. 하지만 처단은 받아야지. 그런데 승관은 전혀 예상치 못한 답을 했다.

「아니, 아는 누나가 형 교수님이 불렀대서. 아마 교환 가는 것 같다고 아는 거 있냐고 하길래 난 모른다 했지. 그래서 물어보는 거야.」

「아…. 어 교수님이 교환 어떠냐고 한 건 맞는데, 갈 생각 없다고 했어.」

「전공 살릴 거면 가는 게 좋긴 한데… 하긴 뭐, 형이 안 가고 싶으면 안 가는 거지.」

「아, 근데 이거 지훈이 형한텐 비밀이다.」

「어, 왜?」

「괜히 걱정할 것 같아서. 걱정시키기 싫어.」

「아, 오케이. 그 맘 알지. 입단속 잘할 테니 걱정하지 마.」

「땡큐.」

그때부터 조금 불안하긴 했다. 소문… 나려나? 그래도 지훈이 소문에 어두운 편이니까 그걸 믿기로 했다. 사실, 그냥 연기하고 싶다고 하면 되긴 한데 그건 아직 확실하지 않기도 하고, 지금은 잘하지도 못하니까. 혹시라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적어도 그 연극 무대 위의 그 배우보다는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 그래서 말 안 한 건데.

“민규야. 너 유학 그거 무슨 소리야?”

망했다. 석민이 말해버렸다. 민규 머릿속에 비상등이 켜졌다. 아, 어떡하지. 형 표정 장난 아닌데. 화났나. 석민이가 형 화나면 무섭댔는데. 아직 한 번도 안 싸워봤는데. 형 화났으면 어쩌지. 어떻게 풀지. 민규는 자기가 잘못했다는 자각은 있었다. 내가 그 입장이어도 말 안 한거 좀 속상했을 것 같긴 했다. 그래서 일단 잘못했다고 했다.

“아니, 그냥. 교수님이 교환학생 가는 거 어떠냐고 했는데, 어차피 안 갈 거라 말 안 했지… 미안.”

“너 왜 안 가는데.”

“어?”

그래도 그 말은 좀 아니었다. 나무라는 말투, 엄한 표정. 떼를 쓰는 아이를 보는 것 같은 얼굴. 당연히 가야 하는 걸 왜 안 가냐고 말하는 것 같았다. 민규는 그 순간 뭐라고 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형, 형은 내가 갔으면 좋겠어? 그럼 나 형 옆에서 멀어지는데? 온갖 말들이 머릿속을 떠돌았다. 지훈의 말은 설명을 요구하는 질문이지만 저게 그냥 질문이 아닌 걸 알았다. 지훈이 화가 난 게 느껴졌고, 그만큼 마음에 생채기가 났다.

“형, 나 교환학생 갈 생각 없고, 안 갈 거야. 이거 끝난 얘기야.”

“너 전공 살릴 거면 가는 게 낫잖아.”

“야야, 너네 여기서 둘이 싸울 거면 집에 가. 아니면 과자 먹어. 나 축구 봐야 돼.”

그게 당연하지 않냐는 듯 하는 말에 뭐라고 말해야 할지 정리가 안 돼서 민규는 그냥 입만 뻐끔거렸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걸 느꼈는지 승철이 상황을 정리했다. 민규도 지훈도 함께 입을 닫았다. 말이 통하지 않는 것 같았다. 도저히 여기 계속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전반전이 끝났을 때, 결국 말도 없이 민규는 먼저 일어났다. 석민과 명호도 눈치를 보더니 따라 일어났다. 지훈은 나가는 민규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러기야 진짜? 민규는 좀 더 속이 상했다.

“야, 민규야. 진짜 미안….”

“…아냐. 어차피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긴 했어. 소문 다 났더라.”

“사실 나도 미대에서 듣긴 했어. 지훈 형. 소문에 둔해서 아직까지 몰랐던 거지. 다들 건축대 걔라고 해서 안 들킨 거고, 네 이름이라도 나왔으면 아무리 지훈 형이어도 바로 알았을걸.”

석민이 어쩔 줄 몰라 했다. 민규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 영영 숨기는 게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냥 내가 먼저 말할 걸 그랬나. 저렇게까지 화낼 줄 몰랐는데. 근데 그럼 내가 어떻게 했어야 하지. 그냥 솔직하게 나 다른 거 하고 싶다고 할 걸 그랬나. 뒤늦게 후회가 됐다. 근데 아직 말하기 싫은데 어떡해. 형은 음악도 잘 만들고 노래도 잘하고 기타도 잘 치고, 무대 위에서 너무 멋진 사람인데 난 아직 아무것도 없는데. 나도 좀 멋있어 보이면 좋겠는데. 어느 날 형이 얘 별거 아니네 싶어지면 어떡하냐구.

그럴 일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문득 불안해질 때가 있었다. 지훈에게 어울리는 사람이고 싶었다. 민규에게 지훈이 너무 예쁘고 멋진 사람이라, 그에 부끄럽지 않은, 지훈이 멋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근데 아직은 그게 아니었다. 그래서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간단한 길을 두고 괜한 자존심에 멀리 돌아가는 꼴이란 걸 알았지만 민규에겐 나름 중요한 이유였다.

그날 밤엔 석민과 명호와 같이 술을 마셨다. 내내 연락이 안 와서 마음은 더 심란했는데 자기도 안 했으니 할 말은 없었다. 안절부절못하는 꼴을 보다 못한 명호가 이런 건 오래 끌면 안 된다고 했고, 석민이 다음 날 아침에 집 비워줄 테니까 오라고 했다. 찬이는 오늘 자기 애인 집에 간다고 했고. 그래서 민규는 다음 날 아침에 지훈의 집으로 가 화해했다. 지훈은 팔을 뻗어 민규를 안아주었고, 민규는 그걸로 해결됐다고 생각했다.

근데 왜 이렇게 가끔 불안하지.

달라진 거… 달라진 거 없는데. 둘이 그 일이 없던 것처럼 지내는 거 빼곤 그대로였다. 근데 가끔 마음이 이유도 없이 불안으로 덜컥 내려앉았다. 새벽에 눈을 떠 곁에 잠든 지훈을 보면서 생각이 많아지고, 그래서 괜히 잠든 사람 깨울까 조심조심하며 안고, 체온을 느끼며 안심하려 애썼다. 지훈을 안고 숨을 고르고 눈을 감으면 지훈이 잠결에 김민규 왜 안 자냐… 하며 토닥여 주었는데 그러면 좀 안심이 됐다.

그렇게 괜찮아지는 줄 알았는데, 교수가 대체 그의 뭐에 꽂힌 건지 또다시 교환학생 제안을 했다. 그는 이번에도 거절했다. 아, 나 안 간다고 했잖아. 왜 또 이래. 이번엔 형한테 뭐라고 말해. 그 생각부터 들었고, 그때부터 스트레스가 쌓였다. 나 또 형이랑 싸우기 싫어. 그냥 다른 거 하고 싶다고 말할까. 그럼 이해해줄 텐데. 그래, 말하자.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과대 선배가 그를 잡으러 왔다. 교수님이 대체 뭐라고 했는지 화가 잔뜩 난 것 같았다.

“김민규, 너 이거 진짜 좋은 기회인 거 몰라? 오죽하면 교수님이 너 이번 건 너 좀 다시 설득해 보라더라. 너 저번에도 안 가더니 왜 또 안 가는데. 너 사귀는 사람 있어서 그래?”

“아니 선배 진짜 그런 거 아니고요…. 그냥 제가 안 가고 싶어서 그래요.”

“너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이유 없는데. 잘 생각해라. 어? 결혼할 것도 아니고, 나중에 졸업하고 유학은 어쩔래. 그때도 안 갈 거야? 이걸로 먹고 살 거 아니야? 사랑에 눈멀어서 다 버릴래?”

민규는 매사를 꽤 잘 참는 편이었다. 체력 좋고, 회복 탄력성 좋고. 웬만한 말은 그냥 흘려넘길 수 있었다. 그런데 이건 아니었다. 과대가 그의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낀 반지를 보며 그의 사랑에 대해 말한 순간 민규는 더는 참지 않기로 했다. 그 사랑이 날 뭔가를 하고 싶게 하고, 더 멋진 사람이 되고 싶게 하고, 그 사랑이 날 살게 하는데. 어떻게 내가 사랑에 눈멀어서 버린다는 얘길 해? 사랑에 눈먼 게 아니라 사랑이 그를 눈뜨게 했다. 그를 모욕하는 건 상관없어도 그의 사랑을 모욕하는 건 참을 수 없었다. 그건 지훈을 모욕하는 것이기도 했다. 민규가 곱게 품어 건넨 마음이었고, 지훈이 예쁘게 받아준 마음이었는데, 그 마음을 어떻게.

“선배 말씀이 좀 지나치신 것 같은데요. 하신 말씀 못 들은 걸로 할게요. 저 생각 안 바꿀 거구요. 안 갈 거예요. 교수님께는 제가 다시 말씀드릴게요. 제 인생 제가 알아서 할게요.”

민규는 대학에 들어온 이래 거의 처음으로 웃지도 않고 싸늘하게 말을 던지고 대답을 듣지도 않고 몸을 돌렸다. 오늘 형이랑 밥 먹기로 했는데, 표정 풀어야 하는데. 근데 자꾸 짜증이 났다. 이게 뭐라고. 이게 뭐라고 그런 소리 들어야 해. 나한테 이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데. 그게 민규를 조금이나마 빛나는 사람으로,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드는데. 성큼성큼 계단을 내려가는데 지훈에게 메시지가 왔다.

「민규야, 미안한데.」

「나 갑자기 일이 생겨서 점심 같이 못 먹겠다.」

「밥 맛있게 먹고.」

「형 무슨 일인데?」

「괜찮아? 심각한 거 아니지?」

「형도 밥 꼭 챙겨 먹고.」

「이따 봐~ 사랑해」

갑자기 온 카톡에 걱정이 되긴 했는데, 차라리 다행이기는 했다. 이 기분으로 지훈을 만나러 갈 수는 없었다. 답장은 오지 않았는데, 민규는 지훈이 일이 많이 바쁜가 보다 했다. 밤까지 답이 없어서 민규는 조금, 아주 조금 서운했다. 오늘 나 기분 별로였는데. 남이랑 싸웠는데. 형이 연락 주면 다 풀릴 것 같은데….

갑자기 생긴 이상은 그날로 끝나지 않았다. 그날부터 묘하게 지훈이 그를 피하는 것 같았다. 지훈을 보기가 어려웠다. 우연이라고 생각하면 그럴 수 있기는 한데 어째 자꾸 마음에 걸렸다. 답장이 늦어졌고 밥 먹자는 얘기에 미안하다고, 다른 애들이랑 먹으라는 얘기가 돌아왔고 무슨 일이냐는 말에는 답이 없었다. 겨우 가라앉힌 불안이 슬금슬금 고개를 들었다. 뭔가 나쁜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김민규 혼자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민규는 어느 저녁 갑자기 지훈에게 연락이 왔을 때 기쁘면서도 불안했다. 영화로 치면 등장인물은 아무것도 모르는데 갑자기 불길한 음악이 깔리는 장면처럼, 딱 그런 느낌이었다.

“민규야.”

“형, 요즘 왜 이렇게 바빠. 얼굴 보기 힘드네.”

“헤어지자.”

“…어?”

“미안.”

민규는 멍청하게 눈만 깜빡거렸다. 바보같이 거기서 한다는 말이 왜? 였다. 진짜 알 수가 없어서. 그런데 지훈은 미안하다고만 했다. 이유라도 말해달란 말에 조심히 들어가라고나 했다. 그러곤 몸을 돌려 가버렸다. 그게 다였다. 한 번도 민규를 두고 그렇게 혼자 가버린 적이 없었는데. 그날 밤은 그랬다.

민규는 멍하니 거기 서 있었다. 지훈이 민규를 두고 가버려서 민규는 거기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혹시 모르잖아. 걱정돼서 다시 와줄지. 형, 진짜 나 여기 혼자 남겨두고 갈 거야? 형, 이거 진짜 말도 안 되는 거 알지. 형도 이거 이상하다는 거 알지. 그 와중에도 머리는 돌아갔다. 마지막으로 본 지훈은 조금 얼굴이 상한 것 같았는데 나머지는 그대로였다. 민규가 지훈을 아는데, 항상 애정을 담아 바라보던 눈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왜?

“야 김민규… 뭐야, 너 얼굴이 왜 그래?”

“너 몸 차가워. 무슨 일 있어?”

“야… 나….”

지나가던 석민과 명호가 그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둘다 놀라 묻는데 목이 잠겨 말이 나오지 않았다. 대체 자기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었는진 알 수 없지만 좋은 표정은 아니었던 게 확실했다. 명호와 석민이 서로 시선을 교환하더니 민규를 어느 술집으로 끌고 들어갔다. 멍하니 있는 민규를 두고 석민과 명호가 알아서 착착 주문을 하고 물을 따르고 숟가락과 젓가락을 놓았다.

“사장님, 여기 오뎅탕이랑 꼬치랑, 아, 두부김치도 주세요.”

음식 이름을 들었는데 배가 고프지도 않았다. 음식이 나올 때까지 민규는 말이 없었고, 민규가 말이 없자 석민은 안절부절못했고 명호는 가만히 기다렸다. 마침내 음식이 나오고 오뎅탕이 끓기 시작했다. 명호는 민규 몫의 오뎅탕을 퍼주며 말했다.

“민규. 너 말하고 싶을 때 말해. 우리 기다릴 수 있어.”

“어, 어. 맞지. 우리 기다릴 수 있지. 완전. 근데, 어, 민규야. 일단 뭐라도 좀 먹어라.”

사실 석민은 얼굴만 보면 걱정돼서 미칠 것 같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는데 명호가 차분해서 겨우 참고 있는 것 같았다. 석민과 명호는 꼬치니 오뎅이니 두부김치니 하는 것들을 민규의 접시 위로 놓아주었고, 민규는 그걸 또 먹긴 먹었다. 배는 안 고픈데, 속이 너무 허해서, 마음이 시려서 뭔가 따뜻한 게 있으면 좋을 것 같기는 했다. 속이 따뜻해지자 갑자기 눈이 뜨거웠다. 울기 싫은데, 울면 진짜가 될 것 같은데 참기가 좀 힘들었다. 눈물을 참으려 민규는 그냥 말을 내뱉었다. 뭐라도 털어놓아야 할 것 같았다.

“헤어지쟤.”

“어? 누가. 아니, 잠깐만. 형이? 갑자기? 왜?”

“몰라. 말 안 해줘. 그냥… 헤어지쟤. 미안하대.”

“지훈 형 이유도 없이 그럴 사람 아닌데… 특히 너한테는.”

“나도 알아. 그래서 더 모르겠어.”

민규는 지훈과 사귀기 시작한 후로 한 번도 자기가 사랑받는다는 걸 의심한 적 없었다. 그야 말만 안 하지 다 보여주는걸. 눈빛으로 태도로 노래로. 한 번도 지훈이 민규를 헷갈리게 한 적이 없는데 지금은 진짜 헷갈렸다. 차라리 마음이 식은 게 보였으면 이런 기분은 아니었을 거다. 좀 비참하긴 했겠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을 거다. 근데 형. 눈으로는 여전히 사랑한다 말하면서 입으로는 왜 그런 말을 해? 왜 거짓말해?

민규는 그날 있는 대로 술을 마시고 말 그대로 꼴았다. 잔뜩 취해서 지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단축번호 1번. 근데 지훈이 전화를 안 받았다. 그게 서러워서 민규는 좀 훌쩍거렸다. 놀란 석민이 휴지를 뽑아와 다급하게 건네주었는데 남이 달래주니 감정이 더 북받쳐서 마지막엔 그냥 테이블에 엎드려서 울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눈을 뜨니 자기 집 침대였다. 석민과 명호가 낑낑거리면서 그를 집에 데려다준 것까지는 기억이 났다.

다음 날엔 학교 가기 진짜 싫었다. 머리가 깨질 것 같고 눈이 아팠다. 그래도 이대로는 안된다 싶어서 억지로 일어났다. 직접 보고 잡아서 물어봐야지 싶어서 갔다. 갔는데, 만났는데, 민규는 분명 지훈을 보고, 지훈도 자길 본 걸 봤는데, 지훈이 몸을 돌려 민규를 모른 척했다. 민규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를 쫓아가지도 못하고 그냥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사랑은 민규에게 항상 아름답고 소중하고 예쁘고 좋고 행복한 거였는데, 지금은 그 사랑이 너무 아팠다. 마음이 아파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민규는 멍하니 서 있다가, 아, 저 형 다시 안 오겠구나, 생각하고 그대로 집에 갔다. 남은 수업은 생각나지도 않았다.

「형. 나 진짜 이유라도 알려줘.」

「내가 뭘 잘못했어?」

「너 잘못한 거 없어.」

「미안.」

「몸 잘 챙기고.」

몸 잘 챙기란 말은 왜 해. 나 잘못한 거 없다며. 그럼 대체 왜. 차라리 잘못한 게 있으면 했다. 그럼 그거 고치고, 이지훈 발목이라도 붙들고 사과하거나 빌기라도 하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헤어지잔 말 없던 걸로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사랑이 민규를 살게 했는데 이제 그 사랑이 민규의 목을 조르고 있는 것 같았다.

민규는 그날부터 그냥 이불을 뒤집어 쓰고 낮이건 밤이건 잤다. 별로 깨어 있고 싶지 않았다. 눈을 뜨면 대충 아무거나 주워 먹고 다시 잤고 잠이 안 오면 술을 마시고 다시 잤다. 그런 날이 며칠 지속되자 다들 이상하단 걸 알았는지 어느 날은 석민과 명호가 문을 열고 들어와 그를 밖으로 끌어냈고, 또 어느 날은 승관이 울 것 같은 얼굴로 찾아와 김민규! 정신 안 차려! 너 이러다 큰일 난다고. 하면서 화를 냈다. 승관이 그를 끌고 밖으로 나가는데, 힘 좀 쓰면 안 끌려갈 수도 있을 것 같긴 했고 나가고 싶지도 않았는데 그러면 승관이 진짜 울 것 같아서 밖으로 나갔다. 신경 써주는 마음이 참 고마웠는데,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냥 놔뒀으면 했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며칠이 갔는지도 모르겠고, 뭘 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누가 소문을 냈는지 아예 다들 작정을 하고 돌아가면서 민규 집에 찾아와 민규에게 뭐라도 시켰다. 민규는 찬과 승관과 한솔에게 이끌려 공원을 돌아야 했고, 명호와 석민, 준휘까지 쳐들어와 잔소리를 해대서 방을 치워야 했다. 정한은 원우와 순영을 데리고 찾아와서는 먹을 걸 한가득 주고 먹는 걸 보고 갔다. 승철은 지수와 함께 찾아와서 얘 진짜 안 되겠다, 하고 이마를 짚더니 학교로 끌고 갔다. 학교에 가면 혹시나 볼 수 있을까 했는데 지훈이 안 보여서 더 슬펐다. 다들 챙겨주는 마음은 정말 고마웠다, 고마웠는데… 그냥 좀 놔둬 줬으면 했다.

점점 잠도 안 왔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냥 집에 있을 땐 멍하니 있었다. 시간이 약이라는데 시간이 지나면 이게 나아지긴 할까. 근데 나아진다고 생각하니까 그것도 싫었다. 그럼 진짜 영영 잃는 거잖아.

그런 날, 그런 밤이 지나갔다. 어느 날은 이제 좀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 밤이 되면 아니란 걸 알았다. 왼손의 반지는 빼지도 못했다. 그렇게 지나가던 어느 날 저녁, 민규는 침대 위에서 멍하니 앉아서 눈을 깜빡이다가 전화를 받았다. 정한의 전화였다.

-민규야

“형. 왜?”

-와서 네 남친 데려가라. 여기 성수고기명가. 어딘지 알지? 공대 후문 근처.

“어? 어. 알긴 하는데.”

-하. 민규야. 네 남친이 뭐라는 줄 알아? 자기가 네 방해물 같대. 너는 빛나야 하는 앤데, 빛나는 사람을 빛나지 못하게 하는 건 사랑이 아니래. 내가 진짜 듣다가 어이가 없어서. 지훈이 똑똑한 줄 알았는데 이거 완전 헛똑똑이야. 얘 완전 꼴았어. 빨리 와서 데려가. 우린 감당 못하겠다.

민규는 부리나케… 뛰어가려다 일단 급하게 머리부터 감고 세수까지 했다. 아무리 그래도 지훈에게 못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가뜩이나 요즘 좀 엉망인데. 민규는 최소한의 것만 하고 정신없이 정한이 말한 곳으로 뛰어갔다. 세 형들은 민규를 보더니 엎어져 있는 지훈을 눈짓했고, 민규는 승철의 도움을 받아 지훈을 업었다. 익숙한 체온이 등에 닿았다. 민규는 잠시 고민했다. 형 집으로… 가는 게 맞겠지. 그냥 눈 딱 감고 자기 집으로 갈까 했는데, 눈 떴을 때 지훈이 보일 반응이 좀 무서웠다. 민규는 지훈의 집으로 갔고, 석민이 문을 열어주었다.

“너….”

“형 완전 취했어. 나… 좀 있다가 가도 돼?”

“갑자기 웬 서운한 소리? 언제 그런 거 따졌대. 들어와. 춥다. 뭐 따뜻한 거 줄까?”

“아니, 고마워.”

이 꼴을 보고도 별말 하지 않는 석민이 고마웠다. 민규는 지훈을 방에 눕히고, 적당히 겉옷이랑 양말만 벗겼다. 와, 형 취한 거 처음 보네. 그 생각을 하며 가만히 지훈의 침대 한 켠에 조심히 앉았다. 정한에게 들은 말로 머리가 복잡했다. 

한참 생각에 잠겨 있는데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민규는 고개를 돌렸고, 어둠에 익숙해진 눈은 들어오는 달빛으로도 지훈의 얼굴을 선명하게 인식했다. 눈이 마주치자 왈칵 눈물이 났다. 나 이 형 얼굴 제대로 보는 게 얼마 만이지?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눈물이 먼저 흘렀다. 아, 못난 모습 보여주기 싫은데. 감정이 통제가 안 됐다.

“…민규야.”

그 와중에 부르는 목소리는 왜 다정한데. 민규는 고개를 떨궜다. 지훈이 머뭇거리다 손을 뻗어 눈물을 닦아주었다. 민규는 그 작은 온기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형, 우리 행복하자고 사는 거잖아. 나 형 없이 안 행복한데, 왜 나한테 헤어지자 그래…. 형도 안 행복하잖아. 형 없이 뭐 하기 싫어….”

지훈도 행복하지 않았다. 민규는 지훈을 항상 열심히 봤고, 그래서 지훈이 어떤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얼굴 위로 내려앉은 그늘이 선명했고, 속이 말이 아니었다는 걸 알았다. 근데 왜 그랬어. 좀 화를 내고 싶었고 원망하고 싶었는데 차마 그건 안 나오고 그냥 투정만 나왔다. 지훈이 팔을 뻗어 민규를 안았다.

“민규야 나는….”

또 미안하다고 하면 어쩌지. 민규는 지훈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허리를 안는 손이 벌벌 떨렸다. 지훈은 입술을 달싹이더니 아무런 말도 못 했다. 민규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형이 어떻게 내 방해물이 돼. 아니, 되면 어때? 그럼 안돼? 대체 왜 그 생각을 해?”

“너 또 교환학생 안 간다며. 내가 방해돼서, 너 후회하면 어떡해? 나중에 아, 그때 할 걸, 하면?”

아, 들었구나. 민규는 그제야 알았다. 지훈이 그때 과대에게 민규가 들었던 말을 알았다. 그래서, 그래서 그랬구나. 지훈의 속이 어땠을지 그제야 좀 감이 왔고, 이 망할 전공이 더 싫어졌고, 전공 말고 다른 게 하고 싶다는 말이 이 문제의 답이 아니란 걸 알았다. 이건 그냥, 그냥 과보호였다.

지훈은… 자기가 민규에게 그 어떤 해라도 끼칠까 무서운 사람처럼 보였다. 불면 날아갈까 쥐면 꺼질까. 민규가 무슨 힘주어 잡으면 깨지는 유리 인형인 줄 아는 것 같았다. 사나이 김민규 튼튼하게 태어나 튼튼하게 자랐고 몸 튼튼하고 마음 튼튼한 거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데 이지훈만 몰랐다. 이렇게 크고 이렇게 튼튼한데, 예뻐하고 사랑스러워하느라 김민규 애인만 눈이 좀 먼 것 같았다. 민규는 여전히 젖은 눈으로 고개를 들어 지훈을 마주 보았다.

“형. 미래는 원래 모르는 거잖아. 삶은 원래 그렇잖아.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어. 미래에 후회? 할 수도 있지. 그게 더 좋았을 수도 있겠지. 근데 형. 나는, 나는 우리 이대로 진짜 헤어지면 그게 더 후회될 것 같아. 형은 안 그래? 형은 후회 안 해?”

그럴 리가. 민규는 흔들리는 눈에서 답을 보았다. 이거 봐. 아직 나 사랑하면서. 사랑해서 차마 후회 안 한다고 거짓말도 못 하면서. 민규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지훈은 한참 말이 없다가, 어렵게 입을 뗐다.

“…내가 너 욕심 내도 돼? 잡아도 돼?”

“잡아. 좀 욕심 좀 내. 나는 형 제일 욕심나. 다 내가 갖고 싶어.”

“진짜로?”

말로 하는 대답 대신 민규는 손을 뻗어 지훈의 왼손을 잡았다. 헤어지자 했으면서 아직도 반지를 그대로 끼고 있는 그 손을. 이러니까 정한이 형이 헛똑똑이라고 하지. 온갖 모순적인 짓은 다 하고 있는 이… 다정으로 빚은 것 같은 사람아. 민규는 그 반지 위에 가만히 입맞추었다.

“나는 형을 만나서 하고 싶은 게 생겼고,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어. 더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고. 형, 내가 빛나 보였으면, 내가 사랑받아서 그런 거야. 형이 나 사랑해서 그래.”

지훈은 그제야 비로소 자기가 해야 할 일을 깨달은 것 같았다. 한참을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니 민규를 바라보다가, 잠시 눈을 꾹 감았다 떴다. 이 걱정 많고 다정 많고 사랑 많은 남자는 그제야 걱정이란 걸 좀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사랑해.”

“나도 사랑해. 그리고 그거 알아 형? 나한텐 형이 제일 빛나는 사람이야.”

그날 밤 둘은 아주 오랜만에 서로 껴안고 잠이 들었다. 민규는 오랜만에 마음 편히 잠들었다. 석민은 밤새 걱정되어 어쩔 줄 몰랐는지 아침에 조심히 문을 열었는데, 막상 껴안고 자는 둘을 눈앞에서 보니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고 – 다행히 그날은 그냥 안고 자기만 했다 – 둘은 그 소리에 잠에서 깼다. 그리고 서로를 보고 웃었다. 석민은 그제야 안심해서 자기도 모르게 어헝헝, 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고, 둘은 그걸 달래다 사이좋게 지각했다.

 

*

 

“자, 올해도 세봉대 축제에 와주신 여러분, 다들 이분들 순서를 많이 기다리셨을텐데요. 소개합니다. 「Shining diamond!」”

작년과 재작년에 이어 올해도 또 축제 공연의 엠씨를 맡은 민규가 그들을 소개했다. 올해는 학생회 셋도 졸업해서 없었는데 – 근데 학생회실에는 가끔 있었다. 취직도 한 사람들이 바쁘지도 않은지 – 지훈이 있는 「shining diamond」의 마지막 공연 소개를 다른 사람에게 양보할 수 없다며 민규가 엠씨 자리에 자원했다. 지훈과 나머지는 뭐, 마지막이니까 공연은 해야지, 하면서 하기로 했다. 사람들의 환호가 잦아들고, 지훈이 마이크를 잡았다. 반주도 없이 맑은 목소리가 먼저 흘러나왔다.

 

내 사랑은 겨우 이것밖에 안 돼

그래도 날 지켜줘서 고마워 my baby

내 사랑이 겨우 이것밖에 안 돼도

어느 겨울에도 너의 봄이 될게

지켜 줄게 너의 모든 날에

 

민규는 무대 아래서 노래하는 지훈을 바라보았다. 지훈이 무대 아래 선 민규를 발견하곤 씩 웃었다. 그 웃음이, 이 노래가, 저 사람이 보석처럼 빛이 났다. 아, 예쁘다. 다들 봐요. 저렇게 예쁜 사람이 내 애인이야. 동네방네 소문내며 다니고 싶었다. 사랑이 빛나는 밤이었다.

 

-

사족1) 지훈은 그 이후 온갖 사람들에게 타박을 들었다. 나중 가서는 민규가 오히려 안절부절못했는데, 지훈은 그저 묵묵하게 내가 잘못했지. 민규 돌봐줘서 고마워, 했다. 민규는 그에 감동해서 조금 울 뻔 했다.

사족2) 중간에 기울임체로 나오는 노래와 이 글의 제목이 된 노래의 가수와 제목은... 다 아실 테니 설명은 생략. 사랑한다 내 최고의 아이돌 SEVENTEEN

사족3) 사실 서로 예뻐서 어쩔 줄 모르는 웆밍이 보고 싶었습니다... 얘들아 사랑을..해라... 사랑에 흠뻑 빠져서 좀 바보같아지는 애들을 좋아합니다. 귀엽잖아요. 지훈->민규의 키워드는 과보호, 민규->지훈의 키워드는 과시... 이정도 될 것 같습니다. 지훈이는 민규를 너무 과보호하고, 민규는 지훈이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과시 말고 다른 표현이 있을 것 같은데 생각이 안 나네요...) 둘다 삽질을 좀 했습니다. 지훈이가 훨씬 더 잘못한 것처럼 보이긴 하는데 민규 잘못도 꽤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잘 표현이 되었는지는 자신이 없네요. 하여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같이 웆밍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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