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우] 포카교환하다가 눈 맞은 썰(2)
메리아. 최근 유명세를 타고 있는 7인조 남자아이돌이다. 팬덤명은 멜리이다. 메리아 컴백 날짜에 맞춰 오후 반차를 쓰고 오프깡을 하러 나온 남팬 이지훈은 컴백시간이 되기도 한참 전에 핫*랙스에 도착해 줄을 섰다. 지훈은 메리아가 데뷔 전인 연습생 때부터 팬이었다. 지훈이 가장 좋아하는 멤버는 라이이다. 모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현한 걸 보고 입덕해서 열심히 투표를 했으나 아깝게 순위에서 떨어졌다. 그 후로 몇 개월간의 연습생 생활을 하다가 메리아로 데뷔했다. 슬프게도 데뷔 초의 메리아는 흔히 말하는 망돌이었다. 공개방송도 신청만 하면 갈 수 있었고 오프라인 스케줄을 갈 때마다 만나는 사람들이 거의 똑같았다. 지훈은 메리아의 웬만한 스케줄은 거의 다 따라갔다. 그래서인지 멤버들도 지훈을 한 눈에 알아봤다. 아무래도 멜리는 여팬들이 대다수기도 해서 더 눈에 띄었다. 사실 지훈은 눈에 띄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멤버들이 자신을 알아보는 것은 물론이고 덕질을 한들 오프라인 행사는 잘 나가려 하지 않았다. 그런 지훈이 메리아를 보러 다니기 시작한 이유는 한 가지다. 메리아가 워낙 뜨지 못해서 팬덤이 반의반톨단이다. 첫 공개방송을 집에서 보는데 응원법 소리가 다른 팬덤에 비해 너무 작았다. 무대에서 중요한 건 관중의 호응인데 그것조차 잘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다. 멜리는 첫 방송이 끝나자마자 시간이 되면 오프라인 행사는 다 가자는 오프운동이 벌어졌고 지훈도 힘이 되고자 오프라인 행사에 나가게 된 것이다. 덕분에 생애 첫 팬 사인회도 가보고 공방이 끝난 뒤에 하는 미니 팬미팅도 참여하게 되면서 오프라인 행사에 익숙하게 됐다. 다른 팬덤에서는 남팬의 인식이 별로 좋지 않지만 멜리들은 그렇지 않았다. 성별불문이고 팬 한 명 한 명이 소중했다. 그래서 처음 지훈이 소심하게 공개방송에 참여했을 때 멜리들은 개인 제작 슬로건도 나눠주고 공개 방송이 처음이던 지훈에게 친절하게 대해줬다. 그 덕분인지 지훈은 구독계로 조용히 살다가 처음으로 트친들을 사귀었다. 그렇게 지훈은 멜리들 중 유일한 남팬으로 유명해졌다. 메리아가 팬 사인회 공지를 냈을 때도 지훈은 트친들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팬싸 입성에 성공했다. 대면 팬싸가 처음이었던 지훈은 카메라도 새로 사고 트친들과 팬싸템도 구하러 다녔다. 메리아 멤버들은 대면 팬싸에 지훈이 나타나자 굉장히 반가워했다. 역시 와줄 줄 알았다면서 지훈보다 더 팬인 것 마냥 굴었다. 특히 라이는 지훈이 자기 팬인 것이 세상 기쁘다는 듯이 굴었다. 떨려서 몇 마디 못 할 줄 알았는데 멤버들이 오버를 떨어준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보낸 지훈이었다. 처음 장만한 카메라로 라이를 담았는데 트친인 린돌이 지훈의 사진을 보고 감탄했다.
“우지님 사진 처음이신거 맞아요? 너무 잘 찍으셨는데요?”
“어... 그런가요? 다행이네요. 조금 연습해봤는데.”
“특히 이거 라이가 너무 잘 나왔어요!”
“린돌님이 도와준 덕분이죠.”
“이 참에 홈 계정 운영해보시는 건 어때요?”
“제가요?”
“네! 웬만한 스케줄은 다 오시잖아요. 애들 출퇴근 사진도 찍으시면 좋을 거 같은데.”
“음... 그건 생각 좀 해볼게요.”
“우선 팬싸 사진은 무조건 올려요. 무조건!!”
이렇게 지훈은 홈 계정도 오픈하게 된다. “Always Ray" 라는 이름으로. 라이는 멤버 중 인기멤에 속했기에 지훈의 홈 계정은 빠르게 팔로워가 늘어났다. 첫 팬싸 이후 홈 계정들이 더 늘어났고 팬싸 사진이 우후죽순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 여파로 해외팬들이 유입되었다. 덕분에 팬덤이 반의반톨단에서 반톨단이 되었다. 그래도 반톨단이지만 이거라도 어디냐. 지훈은 홈 계정 운영이 팬 유입에 영향을 미친다는 걸 알게 되어 더 열심히 계정을 운영했다. 지훈을 포함한 홈마들의 노력 덕분인지 메리아의 인지도가 점점 올라가게 되었다. 그러던 중 모 유명 유튜버가 메리아의 노래를 명곡이라고 소개해주는 덕분에 메리아의 데뷔곡이 역주행을 하게 되었고 메리아의 이름이 더 널리 알려지게 되어 팬덤은 더 이상 반톨단이 아니게 되었다. 그래도 지훈은 꾸준히 오프라인 행사에 참여했다. 라이를 현실에서 계속 보다보니 욕심이 생기기도 했고 라이를 만나는게 즐거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즐거운 덕질을 하던 도중 지훈의 인생에 핑크빛이 생기기 시작했다.
때는 메리아의 두 번째 컴백 때이다. 메리아가 유명세를 타버리는 탓에 지훈은 오픈런이라는 것을 처음 해보는 거였다. 컴백 시간까지 아직 여유롭게 남았는데도 핫*랙스 줄은 생각보다 길었다. 분명 반의반톨단이었던 팬덤이 언제 이렇게 커졌나 싶어서 지훈은 속으로 감격했다. 사실 자주 만나는 트친 린돌과 함께 컴백 오프깡을 하기로 했는데 아쉽게도 린돌은 일정을 빼지 못해 지훈 혼자서만 나오게 됐다. 컴백시간이 되자 매장에서 타이틀 곡이 나오기 시작하고 기나긴 줄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줄을 선 멜리들은 뮤비를 감상하며 이번 컴백곡에 대한 감상을 얘기했다. 지훈은 홀로 뮤비를 보며 조용히 속으로 주접을 떨었다. 어느덧 지훈의 순서가 다가왔고 지훈은 앨범을 양껏 사서 포토카드 교환의 장으로 갔다. 말로만 듣던 포카 교환의 현장은 생각보다 더 시끌벅적하고 마치 시장 같았다. 지훈도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앨범을 깠다. 많은 앨범을 샀지만 모든 운을 팬싸에 써버린 것인지 최애 라이가 몇 장 나오지 않았다. 지훈은 미리 준비해온 스케치북을 펴서 매직 펜으로 크게 「라이 구해요」 라고 써놓고는 교환 구할 포카들을 펼쳐놨다. 생각보다 라이가 인기멤인거 치고 교환이 수월하게 구해지는가 싶더니 몇 장이 구해지지 않았다. 이정도면 많이 교환했으니 그만 일어날까 하는데
”저 라이 있는데 교환하실래요?“
하고 남성의 목소리가 말을 거는 것이었다. 그 사람을 본 지훈은 자기 같은 남팬이 또 있네 하다가 꽤나 햄스터 같은 귀여운 외모에 마음이 살짝 동했다. 아무튼 교환을 해준다니까 지훈은 자기도 모르게
”정말요?!?? 감사합니다!!!!!!“
하고 냅다 외쳤다. 남자는 이런 반응이 익숙한 듯 아무렇지도 않게 대했다. 그러더니 대뜸
”저도 계속 교환 구해야하는데 옆에 앉아도 될까요?“
라고 하는 것이었다. 지훈은 조금 당황했지만 자기도 처음 덕질할 때 받은 선의를 생각하며 수락했다. 둘은 나란히 앉아 교환을 구하기 시작했다. 남팬 둘이 나란히 앉아서 ‘라이 구해요!!!’를 외치고 있으니 눈에 띄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와중에 남자는 앨깡이 성공적이어서 교환도 수월하게 잘 됐다. 그래서 지훈을 도와준다고 같이 외쳐줬다. 덕분에 훈도 무사히 교환을 마쳤다. 지훈은 남자에게 고맙다고 하고 정리하려는데
”저... 혹시 트친 하실래요?“
라고 남자가 말을 건냈다.
지훈은 남자가 자기를 도와줘서 고맙기도 해서 나중에 보답이라도 할 겸 흔쾌히 알려줬다. 일단 잘생기기도 했고... 아무튼 지훈이 자신의 계정을 보여주자 남자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헐 우지님이세요?“
”절 아세요?“
”당연하죠! 라이 홈마시잖아요. 데뷔 전 팬에다가 애들 스케줄 웬만하면 다 가시잖아요.“
”아 이거 참 조금 쑥스럽네요.“
”어쩐지 남팬이 있다 했어요. 너무 신기해요. 홈마를 만나다니. 아무튼 이게 제 계정이에요.“
남자는 ‘호시’ 이라고 써져있는 계정을 보여줬다.
”도움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남자는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지훈은 팔로우를 누르며 햄스터 같은 인상인데 호랑이를 좋아하나? 하고 생각했다. 이것이 둘의 첫 만남이었다.
며칠 뒤 지훈은 퇴근하고 대학로로 향했다. 같이 오프깡을 하지 못한 린돌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어느 한적하고 조용한 식당에서 린돌을 만났다. 린돌은 지훈을 만나자마자 오프깡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푸념을 늘어 뜨려 놓았다.
”아니이... 저도 반차 쓰고 싶었거든요? 근데 과장놈이...“
”진정해요. 오프깡 하나 못했다고 사람이 왜 이리 죽상이야.“
”그치만 컴백 오프깡이잖아요... 선 예약으로 산 앨범에는 우리 지혁이가 안 나왔다구요...“
”아마 럭드도 하지 않을까요? 그 때 교환 구해도 될 거 같은데.“
”우리 팬덤이 럭드를 할 만큼 컸나요...?“
”멜리 생각보다 많던데요? 줄도 꽤나 길었어요.“
”와... 우지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 보니까 늘긴 했나보네요.“
”린돌님 계정도 그렇고 제 계정도 그렇고 팔로우도 꽤 많아졌잖아요.“
”근데 전 숫자만으로는 실감이 안 나더라구요.“
”저도 그랬는데 직접 오프깡 다녀오니까 실감 나더라구요. 아마 할 거예요 럭드.“
”우리 판에도 드디어 럭드가 생기나요. 갑자기 살맛이 생겼어요.“
”아 참 팬싸 응모 하셨어요?“
”하기야 했는데... 우지님 말 들으니까 앨범 더 사야할까봐요.“
”저는 다녀오고 나서 더 질렀어요.“
”이야 역시 행동 하나는 빠르셔~ 응모해놓고 기도만 하면 되겠네요.“
”예전엔 몇 장 안 사도 그냥 가는 게 팬싸였는데.“
”잠깐 기다려봐요. 저 옛날 생각해서 샀던 거 같아요. 왕창 지르고 올게요.“
”진정해요. 아직 기간 넉넉하니까. 어차피 저랑 린돌님은 무조건 팬싸 갈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겠죠? 저희 진짜 기도 열심히 해요.“
둘이 수다파티를 하는 와중에 음식이 나왔다. 둘은 익숙하게 포카를 꺼냈다. 음식 앞에 포카를 놓고 속히 트*터에서 말하는 예절사진을 찍었다. 둘의 수다는 음식을 먹으면서도 계속 됐다.
”아 맞아... 나 이 얘기는 안했죠?“
”뭔데요?“
”오프깡 갔다가 남팬 본 얘기.“
”맛있는 거 먹는 와중에 또 입맛 싹 돌게 하는 주제네요.“
”보기만 한게 아니라 맞팔도 했어요.“
”뭐야? 더 얘기해봐요.“
”별 내용은 없긴 한데... 그냥 라이 포카 교환 구하다가 그 분이 교환해줬어요.“
”와 그 라이를 교환해줬어요? 완전 천사네.“
”그것도 모자라서 제 옆에 앉아서 교환도 도와줬어요.“
”님아 어디서 그런 천사를 주웠어요.“
”줍다뇨. 사람한테;;“
”앗 죄송. 아무튼 그래서요?“
”그래서 고맙다고 말하고 정리하려는데 맞팔 하자고 해서 했어요.“
”뭐야 그게 끝?“
”절 알더라구요.“
”그렇겠죠. 우지님 자꾸 본인이 네임드인거 망각하시네.“
”네... 뭐... 그랬어요. 저 말고 다른 남팬이 있어서 신기했다구요.“
”에이 기대한 것보다는 싱겁네요.“
”아 이런 말 하면 안 되는 거 아는데.“
”아는데?“
”좀 생겼더라구요. 얼굴이.“
”이걸 먼저 말했어야죠!!! 갑자기 맛있어지네.“
”그게 중요해요?“
”네. 완전. 님도 그래서 맞팔 받아준 거 아녜요?“
지훈은 살짝 뜨끔했다. 그렇지만 온전히 도움에 대한 보답을 위해 맞팔해 준 것 뿐이다.
”도대체 사람을 뭘로 보고.“
”라이 팬들은 죄다 얼굴 보더라.“
”애초에 아이돌 좋아하면 다 얼굴 보는 거 아니냐구요.“
”그건 맞죠.“
”아무튼. 결론은 남팬이 또 있어서 신기했다. 요정도예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잘 해봐요~ 언제 또 잘생긴 남팬을 만나보겠어요.“
”...그건 그래요.“
”이러다가 사귀는 거 아닌지 몰라.“
”미쳤어요?“
”아 왜요~ 팬들끼리도 눈 맞을 수도 있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어머? 그러면서 얼굴은 왜 빨개진대.“
”아 시끄러워요.“
지훈은 린돌의 말을 대충 흘겨들으며 음식을 먹었다. 둘은 마저 덕질 이야기를 하다 각자 집으로 헤어졌다.
‘...사귀긴 뭘 사귀어 그냥 친구 정도면 됐지.’
지훈은 린돌이 한 얘기가 자꾸 귀에 맴돌아 애써 다른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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