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우] 포카교환하다가 눈 맞은 썰(2)

어느 날 아침. 오전 반차를 썼다. 라이와 지혁이 모 라디오에 게스트로 나오게 돼서 출근길을 찍으러 가기로 했다. 당연히 지혁이 최애이자 덕질메이트인 린돌이도 같이 가는 거였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호시도 같이 가는 거였다. 호시 역시 남팬이라는 이유로 오프라인으로 다니는 것을 조금 꺼리고 있었는데 지훈 덕분에 용기가 생겼댄다. 그래서 따라가도 되냐는 요청을 받아 흔쾌히 수락했다. 호시 최애인 해준은 게스트가 아니었지만 호시는 올팬 기질이라 좋다고 따라 온 것이었다. 애초에 애들을 실제로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꽤나 설레어 보였다. 저 기분 지훈도 잘 안다. 지훈도 처음 오프에서 애들을 봤을 때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건 처음에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물론 자주 본다고 설렘이 없어진다는 건 아니다. 호시는 지훈에게 찰싹 붙어서 너무 떨리고 긴장된다며 온갖 주접을 부렸다.

 

”와... 우지님 저 애들 처음 보는 거라 너무 떨려요.“

”그래요. 그 심정 저도 잘 아니까 좀 떨어져 봐요.“

 

지훈은 카메라를 세팅하느라 바빴다. 마지막으로 점검하는데 아차 싶은 것이었다. 가장 중요한 걸 깜빡했다.

 

‘메모리카드’

 

지훈은 주머니며 가방이며 이곳저곳을 뒤져봤다. 그렇지만 메모리카드는 나오지 않았다.

 

”린돌님 혹시 여분 메모리카드 있어요?“

”어 아니요... 제 거밖에 안 가져왔어요. 왜요? 없어요?“

”하... 깜빡했나봐요.“

”헐 어떡해.“

”우지님 저 있어요.“

 

호시는 카메라를 꺼내보이며 말했다.

 

”어? 정말요? 어떻게?“

”저도 사진 좀 찍어보려고 가져와봤는데 우지님 급하시니까 그냥 이거 쓰세요.

 

호시는 카메라에서 메모리카드를 꺼내며 말했다.

 

“호시님은 괜찮아요?”

“저는 연습 하려고 들고 온 거라 괜찮아요. 어차피 해준이도 아닌 걸요.”

“그래도 너무 미안한데...”

“진짜 괜찮아요! 여태 라이 프리뷰 꼬박꼬박 올리셨는데 이번에도 올리셔야죠. 전 신경 쓰지 마세요.”

“계속 도움만 받는 거 같네요. 고마워요.”

“제가 더 감사하죠! 덕분에 애들 실물도 보는걸요.”

“그건 제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에이 그래도 우지님이 계기가 됐다는 게 중요하죠. 자 어서 받아요.”

 

호시는 지훈에게 메모리카드를 쥐어주었다. 지훈은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이고 했다.

 

“그나마 다행이네요. 호시님이 메모리카드가 있어서. 그나저나 우지님이 웬일이래? 그런 실수를 다 하고.”

“그러게요...”

“준비물은 항상 철두철미하게 잘 챙겨오던 사람이라 이런 모습은 또 새롭네요.”

“아 그렇군요. 하긴 홈마 하기가 쉽지 않죠.”

“...일단 위기는 넘겼으니 애들 기다리죠.”

 

카메라 설정을 무사히 마친 셋은 수많은 팬들 사이에서 출근길을 기다렸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검정색 차가 멈춰 섰고 문이 열렸다. 라이와 지혁은 미리 와 있을 팬들을 예상한 듯 팬들을 향해 인사를 하며 차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카메라 셔터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지훈과 린돌도 카메라로 연사를 갈겼다. 호시는 지훈의 옆에서 아무 말 없이 바라만 볼 뿐이었다.

 

“라이야!!!!!”

“지혁아 여기 봐줘!!!!”

 

여기저기서 애들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린돌도 지혁을 미친듯이 불렀다. 지훈은 그저 사진을 찍기만 했다. 이 소리들이 소음으로 들릴 법도 한데 라이와 지혁은 웃는 표정을 유지하며 팬들의 인사를 받아줬다.

 

“아.”

 

지훈은 짧게 말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린돌은 찍느라 정신이 없었고 지훈의 미소는 호시만이 보았다. 호시는 귓가가 살짝 빨개져서 다시 고개를 애들로 향했다.

 

시끄럽고 요란했던 짧은 출근길 대란이 끝이 났다. 라이와 지혁은 끝까지 팬들에게 인사하며 방송국으로 들어갔다. 지훈과 린돌은 사진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프리뷰로 올릴만한 잘 나온 사진을 골라야했다. 다 예뻐서 못 고르겠다고 칭얼거리는 린돌과 달리 지훈은 빠르게 골라 프리뷰를 업로드 했다. 호시는 지훈이 올린 프리뷰 사진을 확인했다. 사진 속 라이는 역시나 잘생겼다. 특히나 저 얼굴로 웃으면 잘생김이 더 더해졌다. 얼굴 감상을 하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우지님.”

“네?”

“이거 우지님 카메라 보고 있는 거 맞죠?”

 

지훈은 카메라를 한참 보다가 호시의 물음에 미소를 지으며 작게 끄덕였다.

 

“네.”

 

또 그 웃음이다. 호시는 아까 지훈이 미소 지었던 걸 떠올렸다. 그래서 웃은 거였나?“

 

”뭐야~ 라이가 또 우지님 찾아냈어요?“

 

사진을 고르던 린돌이 말했다.

 

”네. 저를 또 찾아내더라고요.“

 

그 수많은 인파 속에서.

 

”찾아내다니요?“

”아무리 팬 얼굴을 기억한다 한들 많은 사람들 사이에 있는 자기 팬을 알아보는 거 쉽지 않거든요. 근데 라이는 항상 찾아내요. 우지님을.“

”...라이 너무 기특한 거 같아.“

 

지훈은 잔잔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호시는 그런 우지를 흐믓하게 쳐다봤다.

 

”그나저나 호시님! 애들 실물 어땠어요? 대게 조용하시던데.“

 

린돌은 오프 뉴비의 감상이 궁금했는지 들뜬 상태로 물었다.

 

”와... 아무 말도 안 나오던 걸요. 왜 다들 실물이라 하는지 바로 알았어요.“

”그쵸!!! 카메라가 애들 얼굴을 다 못 담아요.“

”사진도 충분히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실물이 갑이네요.“

 

둘은 애들 실물이 어쩌녜 저쩌녜 하며 둘만의 얼굴 감상회를 열었다. 한참을 주접을 떨다가 린돌은 호시의 카메라가 생각났는지 이야기를 꺼냈다.

 

”호시님 카메라도 있으신 거 보니까 좀 찍으실 생각 같은데. 우리랑 같이 할래요?“

”아 저는... 본격적으로는 못 하고 콘서트나 팬미팅 정도만 할까 해서요.“

”일 빼기 힘드시구나! 그럼 그 정도도 괜찮죠!“

”네... 아무래도 좀 힘들더라고요.“

”그럼 어쩔 수 없죠. 그래도 우리 종종 만나서 같이 놀아요~“

”좋아요!“

”트*터 하시죠? 팔로해도 될까요?“

”당연하죠~ 린돌님 맞으시죠? 지혁이 홈마님“

”역시 제 계정도 알고 계시군요. 저도 계정 알려주세요~“

 

린돌과 호시는 서로의 계정을 공유하며 친목을 다졌다. 지훈은 둘이 친목을 쌓든 말든 신경 쓰지도 않고 자신을 보고 있는 라이의 사진만 보고 있었다.

 

”그렇게 좋아요?“

 

호시는 조용히 있던 지훈에게 말했다.

 

”신기하게도 매 번 있는 일인데 매 번 좋더라고요.“

”그럴 만도 하죠~! 이 많은 팬들 사이에 매 번 자기 팬 알아보는 게 쉬운 일인가?“

 

린돌도 말을 거들었다.

 

”어느 날은 못 찾을 법도 한데 언제나 저를 찾아내니까요. 그저 기특해요.“

”당연히 기특해해야죠! 지혁이는 나 못 찾았어요.“

”ㅋㅋ 그럴 수 있죠. 그것도 인간미 있고 귀엽잖아요.“

”맞아요~ 원래도 워낙 허당 이기도 하고 전 그게 좋은 거니까요.“

”그나저나... 퇴근길도 보는 거죠?“

”당연하죠. 그 동안 뭐한다냐~“

”다를 게 있나요. 평소처럼 그냥 자리 잡고 기다리는 거죠.“

 

지훈은 자리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그럼 음료라도 사올까요?“

”오 좋죠 마침 소리 지르느라 목 아팠어요.“

 

린돌은 목을 켁켁거리며 말했다.

”그럼 아메리카노로 사올게요~“

”아 저기.“

 

지훈이 가려는 호시를 붙잡았다.

 

”다른 거 먹고 싶어요?“

”아니 그... 고마워요. 여러모로.“

”에이 뭐 별 것도 아닌 걸요. 다녀올게요~“

 

호시는 음료를 사러 자리를 떠났다. 둘만 덩그러니 남은 채로 앉아있었다.

 

”저 분 괜찮네요. 사람 너무 좋은데요?“

”그쵸. 저번부터 계속 도움만 받네요.“

”진짜 어디서 저런 천사를 주ㅇ... 아니 데려왔어요.“

”그러게요.“

”난 찬성.“

”? 뭘요.“

”둘이 만나는 거죠 당연히.“

”아 갑자기 뭔 소리야?!“

 

린돌의 뜬금없는 발언에 지훈은 자기도 모르게 반말로 내질렀다. 얼굴이 조금. 아주 조금 빨개진 듯 했다.

 

”뭐야. 호감인 거 아니었어요?“

”호감인 건 맞는데 그거랑은 다르죠.“

”에이~ 그렇다고 하기에는 사심이 있어 보이는데~“

”사심은 무슨 라이 좋아하기도 바쁘다고요.“

”연애랑 덕질은 별개잖아요~ 난 둘 응원해!“

”아 제발. 당신 알페스 너무 하는 거 아니에요?“

”하. 내가 알페스를 하고 싶어서 하나 지들이 먼저 시작해서 하는 거지.“

”말을 맙시다...“

”아무튼 둘이 잘 지내봐요. 잘 맞을 거 같은데.“

”너무 도움만 받아서 탈이죠.“

 

지훈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에이 그 정도는 나중에 다시 돌려주면 되잖아요~“

”그렇겠죠?“

”암암 그렇고말고. 둘이 한두 번 보고 말 거 같지도 않은데.“

”...오래갔으면 좋겠네요.“

”파이팅~!“

”아 그만 하라고!“

 

둘의 시시콜콜한 대화는 호시가 다녀오고 나서야 끝이 났다. 셋은 아메리카노로 수혈하며 덕톡회를 열었다. 그러다가 그제서야 본명얘기가 나와서 셋이 통성명을 했다.

 

”와 우지님 뜻이 그런 거였구나.“

”지훈님 귀엽지 않아요? 사람들이 그렇게 부른다고 냅다 닉네임으로 해버리는게.“

”그러게요.“

 

얼굴만 귀여운 줄 알았는데 이름부터 닉네임 뜻까지 귀여운 구석이 많았다.

 

”근데 왜 호시에요?“

”호랑이의 시선 줄임말이에요.“

”본명은 순딩하던데.“

”햄스터 아니에요.“

”햄스터라고 한 적 없는데요.“

”아무튼 아니에요.“

 

권순영... 이름도 순딩하네. 햄스터 닮았는데... 별로 안 좋아하나? 지훈은 혼자 생각했다.

 

”ㅋㅋ네. 근데 순영님 저랑 이름 조금 비슷하다.“

”뭔데요?“

”저는 이수연이에요.“

”뭐야 자음만 같잖아요.“

”비슷하긴 하잖아요.“

”네네~“

 

순영과 수연은 몇 년 지기 친구마냥 대화를 잘도 주고받았다.

 

”근데 지훈님이랑 수연님은 오래 알고 지낸 거 같은데 계속 닉네임으로 부르시네요?“

”그게 익숙해져버려서요. 저희도 사회적 체면 챙길 때는 본명 불러요ㅋㅋ“

 

이름도 깠겠다 서로의 신상을 터는 셋이었다. 지훈과 수연은 웬만한 신상은 다 알고 있었으나 순영은 그렇지 않았기에 털 것이 많았다.

 

”아무튼 둘은 동갑인거네? 자 누나라고 불러.“

”네 누나ㅋㅋ“

”뭘 이제 와서 누나...“

”어허.“

”아 예.“

 

셋이 웃고 떠들다보니 곧 퇴근시간이 되었다. 퇴근길도 출근길이랑 똑같았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아이돌이 좀 더 팬들을 봐주고 간다는 점이었다. 와중에 지훈이 웃는 걸 보니 라이가 또 지훈을 찾아낸 모양이었다. 순영은 그 웃는 얼굴이 보기 좋다고 생각했다. 퇴근길이 끝이 나고 나서야 팬들이 해산하기 시작했다. 셋도 슬슬 각자 흩어질 생각이었다.

 

”같이 점심 먹으면 좋을텐데.“

 

수연이 아쉬운 듯 말했다.

 

”오전 반차만 쓴 거라서 출근해야 돼요.“

”다음 만남은 팬싸 때인가?“

”팬싸...?“

”어 순영이는 팬싸 응모 안했어?“

”저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요.“

”그거 완전 쉬운데! 돈만 있으면 돼! 전에는 한 장만 사도 갔었지만“

”내가 나중에 알려줄게.“

 

지훈은 드디어 순영을 도와줄 기회가 생긴 듯싶어 냉큼 말했다.

 

”그 순영아 저녁에 시간 잠깐 되지? 디엠으로 알려줄게.“

”지훈이가 알려 주는 거야? 그럼 나야 고맙지.“

”응모기간 얼마 안 남았으니까 그냥 냅다 사 알겠지?“

”일단 알겠어. 고마워 지훈아.“

 

순영 특유의 눈웃음을 보이며 말하자 지훈은 살짝 설렘을 느꼈다 라이를 볼 때도 이런 건 못 느껴봤던 거 같은데. 나 설마. 에이 아니겠지.

 

셋은 다음 만남을 팬싸로 기약하고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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