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 심포니 01

옆으로 브이를 한 채로 다른 손의 검지를 사이에 찔러 넣으세요

또다른 우주 by 육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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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동 000번지 17, 301호]

[2시까지. 늦지도 말고, 빨리 가지도 말고.]

[말 퍼질까 봐 협회 아니고 개인적으로 구한 거니까 성질머리 죽여.]

[준비 잘해. 제대하고 첫 복귀작에서도 발연기 소리 듣지 말자]

실장이 던진 주소에 매니저가 차를 세웠다. 낮은 빌딩이 좁은 골목골목에 즐비한 원룸촌이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낮은 건물 계단을 올라 실장의 문자를 다시 한번 쳐다봤다. 301호. 눈앞 두꺼운 철제문에 적힌 숫자였다. 대문 옆 먼지 쌓인 초인종을 꾹 누르자 실내에서 딩동, 딩동 울리는 소리가 문 너머까지 들려왔다. 대답 없는 문 너머를 기다리지 못하고 민규는 다시 한번 초인종을 울린다. 딩동, 딩동. 

“아무도 없나?”

시간을 잘못 봤나 싶어 문자 한 번, 상단 구석에 시간 한 번 번갈아 살펴본다. 약속 시간은 오후 2시. 상단의 시각 13:59. 뭐야.…맞게 왔는데. 초인종에 또다시 손을 올리려던 찰나 시각이 바뀐다. 14:00. 그리고 끼익- 거리며 두터운 문이 살며시 벌어진다. 

“어?”

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히 내민 주인공이 민규와 눈을 마주치고 꾸벅 고개를 숙였다. 덩달아 고갯짓을 한 민규가 말한다. 

“안녕하세요. 초인종 몇 번 눌렀는데 대답이 없어서 아무도 없는 줄 알았네요.”

민규를 빤히 보던 상대방이 대답 없이 자신의 귀를 톡톡 두들긴다. 그제야 시간 장소 외 실장의 당부가 적힌 메시지가 눈에 들어온다. 늦지도 이르지도 말라던 말. 

“죄송합니다.”

또 한 번 고개를 꾸벅 숙이자, 상대방도 덩달아 시선을 내리 깐다. 이윽고 활짝 문을 열어 민규를 그 사이로 안내했다. 작은 원룸. 주방을 제외한 사방의 벽에 갖가지 스케치와 도면들이 빼곡했다. 민규의 팔 길이 보다 작은 너비의 책상은 급하게 치운 것인지 지우개 가루가 너저분했고, 한쪽 책상다리 옆에는 온갖 서류뭉치가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워낙 작은 공간이라 더 둘러볼 것도 없는 민규의 시선이 이내 남자에게 향한다. 민규는 두꺼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다. 

“김민규입니다.”

민규의 얼굴과 손을 번갈아 바라본 남자가 대답 없이 의자 한쪽에 앉는다. 메모장이 켜져 있는 아이패드를 두드린 다음 다시 민규를 바라본다. 화면을 보라는 뜻이었다. 

[전원우입니다.] 

고요 심포니

옆으로 브이를 한 채로 다른 손의 검지를 사이에 찔러 넣으세요

01.

“뭐? 농인?”

“왜. 너도 뭐 편견 있냐?”

편견이 아니라. 아, 형! 안 그래도 발연기라고 욕 뒈지게 먹고 군대로 튄 건데 복귀하자마자 무슨 연기야. 그것도 농인을.  한숨을 푹푹 내쉬며 까슬까슬한 잔디 머리를 헤집는 민규의 답답함을 이해 못한 것은 아니었다. 연기자로서의 첫 데뷔작 웹드라마 하트투하트가 업로드되는 날이면 그날 트위터 실시간 검색어는 ‘김민규 모쏠’이 언제나 1위를 기록했다. 

앜ㅋㅋㅋㅋㅋㅋ 김민귴ㅋㅋㅋ 연애해 본 거 마즘? 

눈 텅 빈 거 봐라. 김민규 최소 모쏠. 

두 번째 작품 12부작 미니드라마 ‘귀환’이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하는 날, 실시간 검색어는 ‘김민규 무당’이었다. 구천을 떠도는 영혼을 잡아들이며 그들의 한을 풀어주는 휴먼드라마에서 저승사자 역할을 맡았던 김민규의 연기가 꼭 신내림 받은 지 한 17년 된 무당 같다는 트윗이 5.1만 알티를 기록했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무대에서 삑사리 냈다고 까이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그게 본업이니까. 

근데 뭐? 이번엔 농인이라고?

“민규야. 막내 제대까지 7개월 남았다. 그때까지만 좀 버텨봐.”

회사의 요지는 즉, 막내 복귀 전까지 그룹 활동을 할 수 없으니 그전까지 최대한 개인 활동으로 뽑아먹으려는 심산이었다. 김민규가 언제부터 연기에 욕심내는 아이돌이었다고. 연습생 때도 연기 수업 성적 맨날 꼴찌였던 거 누구보다 잘 아는 양반들이 인제 와서 ‘배우상’을 들먹이는 꼴이었다. 민규 너도 알잖아. 너 이제 내일모레 서른인데 언제까지 무대만 설 거야. 그러다 그룹 해체하면 은퇴하려고? 차라리 예능 내보내라 목에 핏줄 세워봐도 돌아오는 답은 하나였다. 너 입 열면 그룹 이미지까지 다 와장창 이다. 

“실장님. 나 진짜 자신 없어요.”

“야 민규야. 이거 오히려 좋을 수도 있어. 봐봐, 대본. 절반은 수어야.”

너 시옷 발음 못하는 거 티 하나도 안 난다니까?

놀리는 것인지, 달래는 것인지 모를 실장의 말에 실소가 터진다. 아차 싶은 실장이 급하게 수습한다.

“내가 괜찮은 선생 하나 붙여줄게. 딱 한두 달만 빡세게 수업받고,  6개월 촬영하고. 그럼 막내 복귀하고! 컴백앨범 세팅 다 해놨으니까 바로 앨범 준비 들어가자, 응?”

어차피 민규는 선택의 권한이 없음을 안다. 아직 짬이 부족한, 회사가 시키는 것이 곧 법인 어리숙함 때문이 아니었다. 춤 그냥저냥, 노래 그냥저냥, 단독예능 출연 경험 전무. 막내가 돌아오고 미니앨범 하나와 정규앨범 하나 내면 얼추 계약기간이 마무리될 것이었다. 어쩌면 홀로서기를 고민해야 할 시기. 리더형은 제일 먼저 군대를 다녀와 이름있는 피디의 예능작에 고정 출연을 하고 있었다. 정 피디는 리더형을 자신의 사단에 끼워두고, 여기저기 불러댔다. 그 밑으로 형 두 명은 각각 솔로 앨범과 유닛 활동을 하며, 퍼포머가 아닌 가수로서의 입지를 단단히 굳혔다. 중국에서 인기 많은 막내는 입대 전까지 일 년 중 삼 분의 이를 중국 활동으로 보낸다. 저만 남았다. 이도 저도 아닌. 김민규? 아, 그 잘생긴 애? 가 전부인 타이틀을 가진 채로. 

“연기 선생 섭외된 거야?”

자본 탄탄한 대형소속사의 실장은 요즘 한창 잘나가는 배우 이명석을 어릴 때부터 코치해왔다는 연기 선생을 섭외했노라고 답했다. 이명석뿐만 아니라 중년배우 장은희도 틈틈이 합을 맞추는 실력자라며 ‘너만 잘하면 된다’고 당부했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인다. 

“수어 선생도 붙여줄게.”

“수어?”

“너 대사 없다니까. 대본 들고 가서 안무 외우듯이 달달 외워.” 

02. 

커서가 깜박이는 아이패드 액정을 한참 바라보던 민규는 한참의 고민 끝에 다시 키보드를 두드렸다. 

[이름 예뻐요. 무슨 뜨ㅅ]

문장을 다 맺지 못한 것은 순식간에 키보드를 빼앗아 간 남자 때문이었다. 오타를 내지 않으려 느릿한 타자속도가 답답했던 것인지 민규의 말도 기다리지 않고 타닥타닥 글씨를 써나간 남자가 민규에게 보란 듯 다시 화면을 돌려주었다. 

[김민규 씨는 안 쓰셔도 됩니다. 다 알아보니까요.]

이해되지 않는 말에 또다시 화면을 노려보려던 차, 똑똑- 남자의 주먹이 테이블을 두드린다. 소음을 만들어낸 남자의 얼굴로 시선을 돌리자 남자가 이번엔 검지로 제 입술을 톡톡, 두 번 두드리더니 옆으로 만든 V자 한 가운데로 반대 손 검지를 안팎으로 푹푹 찔러넣었다. 

“무슨 말이에요?”

[구화요. 저는 김민규 씨 입 모양을 보면 됩니다. 김민규 씨는 제가 수어를 해도 이해 못하실 테니까 그냥 필담해 주세요.]

“아.…넵.”

하긴, 청각장애인이라고 모두 수어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 처음 본 전원우 선생님은 수어도 구화도 능통한 듯 보였다. 민규가 언제 입을 열지 몰라 민규의 입술을 노려보는 눈이 매섭다. 타자 대신 말로 하라며 제 입술을 톡톡 두들기던 손가락은 눈매만큼 가늘었다. 민규는 그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하얗고 기다란 손가락이 춤을 추며 만들어낼 소리가 궁금했다. 

수어만일까. 소리를 듣지 못해 약속 시간 정각을 확인한 뒤 문을 열어주는 남자. 열린 문틈 사이로 빼꼼히 내민 고개, 답답하진 않은지 눈썹 아래까지 내려오는 곱슬한 앞머리, 실내에 주로 있는 것인지 창백해 보이는 두 볼과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이 검은 눈동자. 비록 소리는 낼 수 없어도 민규를 향해 동그랗고 가느다란 모양을 만들어내는 입술은 어쩐지 붉어서. 민규는 그의 목소리가 보고 싶었다. 

수업을 이끌어가야 할 원우는 할 말이 많은 것인지 한참을 키보드를 만지작거리고, 민규는 그런 원우를 흘끔흘끔 보다가 제 시선이 들킬세라 애꿎은 손톱 아래 거스러미만 만지작거렸다. 원우는 기어코 원하는 말들을 전부 쏟아냈는지 패드를 민규 방향으로 돌렸다.

[제 이름은 둥글 원, 도울 우. 둥글게 도우며 살잔 뜻이에요. 이젠 도움 주는 일보단 받는 게 더 익숙하지만요. 

수업은 일주일에 2번 2시간, 촬영 돌입 이후로는 민규씨 스케줄에 맞춰서 진행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제가 수어는 하지만 통역사 자격증이 있거나 교육전문가는 아니기도 하고, 민규씨도 촬영 끝나면 더 쓸 일 없을 테니 대본 위주로 진행할 거예요. 수업 끝나고 애먹는 부분 있으면 따로 촬영해서 보내드릴 테니 틈틈이 연습하시고요. 

혹시나 해서 미리 말하자면, 가정사 같은 거 없고요. 부모님 두 분 다 살아계시고 꽤 유복한 집이라 유학도 다녀오고 그럴싸한 본업도 있고, 잘 삽니다.]

“마지막 말은 왜....”

[오해하실까 봐. 별 뜻 없습니다.] 

‘어설프게 동정하지 마세요’ 한마디를 풀어쓴 글에 민규의 마음엔 습기가 차올랐다. 만난 지 불과 10분도 안 된 남자가 본게임 시작 전 까 보이는 자신의 패. 악수일지 정수일지 민규조차 파악할 수 없는 패를 보며 그의 성정을 읽었다. 강한 자존심, 넉넉한 자존감, 그럼에도 원치 않게 받은 상처들을. 

“본업은 뭐에요?”

원우는 대답을 대신해 원룸의 벽에 시선을 돌렸다. 흑연이 겹겹이 쌓여 만든 크고 작은 가구의 그림들이 벽지를 전부 가렸다. 

“그럼 이 수업은 어쩌다 맡으신 거에요?”

질문이 쏟아지면 그가 타이핑하기 번거로울까 봐. 쏟아지는 물음표에 금방 지칠까 봐 딱 하나씩만 묻기로 한다. 물음에 대한 대답이 또 다른 질문을 이끌어낼 수 있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민규의 이런 바람을 알 리 없는 원우는 

[수업료 비싸요. 20분 지났네요.] 

또다른 질문은커녕, 이미 던져진 질문에 대한 답도 명확히 주지 않았다. 대화의 주제를 바꾸려는 듯이 사전에 공유받은 대본을 꾹꾹 눌러 피는 남자는 페이지의 첫 문장을 가리킨다. 남자주인공이 여자주인공을 보며 처음 뱉는 수어였다. 

네가 내 몸짓을 이해해줬으면 좋겠어. 

 

 

 

 

 

 

 

 

네가 내 몸짓을 이해해줬으면 좋겠어. 원우가 그린 수어가 감은 눈 사이로 아른거렸다. 현장에서 절대 까먹을 리는 없겠네. 다행인 건가? 팔로 눈을 꾹 누른 채 잠을 청해보지만 영 쉽지 않았다. 두 시간이란 짧은 수업 동안 그가 처음 알려준 문장이 먹먹하게 손목을 울렸다. 

이해하다. 

V자를 옆으로 뉜 손가락 사이로 반대 손이 쓱쓱 지나갔다. 길고 곧게 뻗은 손가락이 서로 만나고 흩어지는 그림에 홀린 듯 손가락을 움직이자 그게 아니라는 듯 살짝 좁혀지는 미간, 또 어느 때는 만족스럽다는 듯 순해지는 눈꼬리. 

원우가 만드는 문장의 구조, 엄지와 검지에 들어가는 힘의 차이, ‘진짜’, ‘꼭’ 등 강조하는 말마다 짙어지는 표정. 카메라 앞에서 민규가 해내야 하는 것들. ‘네가 내 몸짓을 이해해줬으면 좋겠어’ 자신이 처음 구사해야 할 수어를 복기하며 민규는 눈을 감았다. 

전원우를 이해해보고 싶다

 

03.

[원우쌤. 커피 사 갈게요.]

[감사합니다.]

13:56. 남자의 답장이 화면 한 가운데 하얗게 박힌 숫자를 가렸다. 커피를 사고도 4분이 남았다. 커피 식으면 안 되는데. 눈이 쌓인 추운 계절에 커피가 식을까 봐 코트 자락 안으로 입 대지 않은 커피 한 잔을 감싸 안았다.  

14:00. 정각이 되자 남자가 문을 연다. 이제는 문틈 사이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거구를 보고 놀라지 않는다. 거구의 남자는 작업실 주인을 뒤로 슬쩍 밀며 작업실로 들어선다. 

[도착하면 문자 하라니까요]

“진짜 방금 왔어요.”

방금 왔다는 남자의 두 볼이 추위로 단단하게 얼어붙어 있었다. 코트 자락 안에서 커피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은 남자는 원우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자신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대본 새로 나온 거 읽어봤어요?”

원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때요?”

농인과 비장애인의 사랑. 겹겹이 쌓인 오해와 경계를 서로에 대한 이해만으로 한 꺼풀씩 풀어나가는 이야기. 장애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오로지 소재화만을 한다는 비판,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우려됨에도 대형소속사의 캐시카우 아이돌 비주얼 담당과 아역부터 천천히 연기 커리어를 쌓아온 배우를 캐스팅함으로써 제작 투자비 유치에 성공한 드라마는  두 배우의 출연 확정 보도자료 배포와 함께 방영이 공식화되었다. 

[구려요.]

털을 바짝 세운 고양이 같던 첫 만남과 다르게, 몇차례 수업을 넘기며 서서히 경계를 허문 전원우는 매우 솔직하고 선명한 사람이었다. 

타이핑하는 저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음을 알면서도 시선을 함부로 주지 않았고, 수업 10분 전부터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음을 알면서도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정시 이전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왜 그렇게 쳐다봐요? 묻길래 잘생겨서요 대답하면 부담스러우니까 몰래 봐요. 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귀를 붉혔다. 보지 말란 말은 아니지? 되물으면, 수업하려면 봐야죠. 하고 두 눈을 선명하게 마주쳐온다. 김민규 씨도 잘생겼어요. 하면서. 

‘나 잘생겼단 말 식상해.’ 

용기 내뱉은 칭찬이 머쓱할까 봐 장난을 치면, 꼿꼿한 눈으로 민규를 쳐다보곤 타이핑을 해낸다. 생전 머쓱함이라곤 몰랐던 사람처럼. 

[김민규씨는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에요.] 

네 앞에서만 그래. 너라서 넘쳐. 부끄러워지라고 던진 공에 되레 머리를 맞고 두 손에 얼굴을 묻은 민규가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리 꾸밈없이 솔직한 전원우가 대본이 구리단다. 

“내가 쓴 거 아닌데도 상처네. 자세히 말해봐요.”

대본이 구리던 말던 사실 관심 없다. 이 업계의 작품들은 언제나 뚜껑을 까봐야 알았다. 삼류로맨스의 대본도 배우의 연기와 감독의 연출에 따라 클래식이라는 포장지가 붙을 수 있고, 국외 3대 영화제에서 딱지를 붙여 온 영화도 ‘대중성’을 명분으로 외면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전원우의 생각이 궁금했다. 좀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원우로부터, 그 작은 머리통의 메커니즘을 공유받는 일이야말로 드라마를 준비하며 느끼는 가장 짜릿한 경험 중 하나였다. 민규는 자신이 느낀 짜릿함에 대해 이렇게 이름을 붙였다. 낯선 소통방식이 불러일으키는 호기심.

[현실성이 떨어져요.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대부분의 농인은 비장애인처럼 명확하게 발음할 수 없어요. 특히 작품 속 현민이는 선천적 농인이잖아요. 아무리 구화를 배운다고 해도 청인을 이해는 할 수 있지만 흉내 낼 수는 없죠. 발음하는 방법을 모르니 자음은 뭉개지고, 어떨 때는 끙끙거리는 소리가 전부거든요. 드라마니까 현실을 전부 반영할 수 없다는 거 이해는 합니다. 그래도 농인인 걸 숨기고 사람을 만나는 게....]

“그런거 말고.”

눈썹을 올리며 의문을 드러내는 원우에게 민규가 말한다.

“여기, 수아 대사 있잖아.”

현민아, 넌 그냥 거기 있어 줘. 내가 네 세상으로 들어갈게. 

 남자주인공이 꽁꽁 감추고 싶었던 ‘농인’이라는 비밀을 들키고, 충격에 빠져 사라졌던 여자주인공이 다시 남자주인공을 찾아와 내뱉은 첫 대사였다. 나를 속이고, 세상을 속이면서까지 애쓸 필요 없다고. 이젠 내가 너에게 다가가 너를 이해하려 애써보겠다는 절절한 고백의 말. 

[구려요.]

이번에는 딱히 솔직하지 못한 거 같지? 

원우는 패드를 민규에게 넘긴 뒤 곧장 일어서 화장실로 향했다. 김민규의 말꼬리 잡기에 더 당하고 싶지 않았다. 드라마 속 현민은 여자에게 뭐라고 대답했을까. 하필 민규가 콕 짚어 물어본 대사는 대본집의 마지막 페이지라, 현민의 대답을 다음 화로 넘기는 작가의 짓궂음 때문에 원우는 그의 대답을 상상할 수 없었다. 

고마워. 사랑해. 내 옆에 있어 줘.

우리가 할 수 있을까. 네가 아무리 노력한들 쉽지 않을 거야. 우린 쉽지 않아. 

우린 안 돼. 

넌 내 몸짓을 이해할 수 없어. 

전원우가 보는 김민규는 티 없이 밝은 사람이었다. 매체를 잘 보지 않는 원우도 지나가며 한 번쯤 광고판을 본 적 있는 얼굴. 가지런한 눈썹과 굵게 솟은 콧대, 웃으면 그려지는 동그란 광대가 보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대본에 집중할 때면 살짝 찌푸려지는 눈매와 앙다문 이로 도드라지는 턱선이 남성미를 일깨우면서도 금세 입꼬리를 올리며 앙증맞은 송곳니를 드러내는 사랑스러운 사람. 

수업을 반복해갈수록 늘어가는 원우에 대한 질문들. 눈으로 원우의 모든 움직임을 쫒는 행동의 이유는 명확했다. 티 없이 밝은 만큼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것도 익숙지 않아 보였다. 감정을 속이는 것이 죄악인 것처럼, 솔직함이 무기인 것처럼 행동하는 민규 때문에 난공불락 성벽은 시나브로 단단한 허물을 벗었다. 원우의 모든 몸짓이 궁금해 키보드보다 두꺼운 손가락을 파닥거리면서도, 결국 다 쏟아내지 않는 배려 속엔 매번 물음표 하나가 전부인 사람. 원우는 그 물음표가 또 다른 물음표로 이어지지 않았으면 했다. 

수업을 거듭할수록 가까이 다가오는 김민규. 청인 김민규, 연예인 김민규. 좀처럼 접점이라고 없는 사람. 그런데도 사랑은 넘치고, 호기심이 넘쳐서. 자꾸 얼굴을 들이밀고 몸을 들이미는 김민규. 전원우보다 한 살 어리고, 또 많이 어린 민규. 어려서 제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설익은 호기심을 꾸며내지 못하는 민규에게 들려줄 대답을 찾지 못해서 원우는 도망치기를 선택한다. 

화장실에서 다시 돌아오니 민규는 대본 공부에 여념이 없었다. 돌아온 원우를 올려다보며 활짝 웃더니 제가 사 온 커피를 쪽쪽 빨며 원우의 몫을 가리켰다. 다 식었다. 빨리 마셔요.  

“빨리 수업하자. 20분 지났다.”

달콤하고 아픈 배려가 원우의 퇴로를 턱턱 가로막는다. 

04

“실장님. 나 수어 선생님 좀 구해줘.”

“뭐?”

평소에 잘 하지도 않던 전화를 갑작스레 걸어오더니 대뜸 하는 말에 이 실장은 이마를 부여잡았다. 어렵게 구한 수어 선생인데 뭐가 또 마음에 안 드는 거야. 

“전원우말고. 한 명 더 구해달라고.”

“민규야. 너 무슨 매소드연기를 하려고 선생을 두 명이나 붙여.”

“아, 진짜! 아니!”

나 대본 말고, 수어 배우고 싶다고. 

영문을 알 수 없는 민규의 대답. 그게 그거 아니야? 질문은 수화기 너머 폭폭 삐져나오는 한숨에 쏙 들어가 버렸다. 

“전선생이랑은 대본 공부할게. 그냥…. 드라마 들어가기 전까지 수어 좀 더 잘하고 싶어서 그래.”

“그럼 원우, 아니 전선생한테 부탁해보지.”

“말 안 해도 거절이야. 첫날부터 자기 전문가 아니니까 대본 위주로만 하자고 얘기 끝났어.” 

캐스팅 보도도 나갔는데 이제 협회 통해서 공식적으로 요청해도 되잖아. 틀린 말은 아니라 이 실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하고 의욕 제대로네. 우리 민규. 

이 실장이 간과한 것은 김민규의 의욕이 연기를 향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타닥타닥 키보드의 소리. 한 텀 쉰 뒤 이어지는 말소리. 들리지 않는 이와 듣고 싶은 이 각자의 외침. 전원우와 할 수 있는 것들과 할 수 없는 것들을 구분하고,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은 것들을 추려내면 결국 하나가 남았다. 진짜 수어를 배우자. 전원우의 소리를 배우자. 전원우를 배우자. 전원우에게 나를 알려주자. 

새로 섭외한 수어 선생은 통역사 자격증이 있는 코다였다. 나, 너, 우리, 안녕하세요, 좋아, 싫어. 전원우와 대본을 배우면서 많이 쓰이는 단어들을 이미 익혀놓은 상태라 수업은 더 수월했다. 따로 수업받는 것을 알지 못하는 원우 역시 가끔 알려준 적 없는 단어를 손으로 익숙하게 그리는 민규를 보며 의아함과 함께 뿌듯함에 볼을 동글게 말며 웃었다. 

[미리 공부했어요?]

“응. 선생님 눈 보면서 대화하고 싶어서요.”

원우는 민규의 입을 노려보다 시선을 옮겨 그의 눈을 바라본다. 대화. 눈을 바라보기 위해 저 몰래 애써왔을 그에게 내려지는 값진 눈맞춤에 민규는 한 마리의 순한 대형견처럼 꼬리를 살랑거렸다. 칭찬을 바라는 거겠지. 민규의 의도를 간파한 원우가 활짝 웃었다.

[기특하네.]

“어, 그건 아직 모르는데.”

원우가 다시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럼 이것도 배웠어요?]

원우가 민규를 가리키더니 왼손을 주먹 쥔 채 오른손을 갈퀴로 만들어 주먹을 긁었다. 그리곤 양손의 엄지와 검지를 깜빡깜빡 몇차례 붙였다 뗀다. 너, 같다. 

“내가 뭐 같다고요?”

용케 가장 중요한 단어만 빼고 알아들었다. 의문을 풀지 못해 동그란 눈을 하고 어서 설명하란 듯 패드를 원우쪽으로 밀어 넣는 민규를 보며 원우가 눈을 접으며 웃었다. 대체 무슨 말이길래 저리 즐거울까. 모니터가 아닌 두 눈을 보며 하는 대화, 하얗고 기다란 손이 키보드를 거치지 않고 뱉어내는 말들, 처음 보는 원우의 웃음이 심장을 조여왔다. 갈퀴를 만들어 손 위를 긁는 행위가 제 가슴을 긁어대는 것처럼 간지러웠다. 

원우가 또 한 번 웃음을 보여준다면, 그게 무슨 말이든 백번이고 천번이고 수어의 의미를 몰라도 될 것 같았다. 

05

16부작 전편이 사전제작으로 진행되는 이유로, 촬영 전부터 민규는 정신이 없었다. 연기 수업하랴, 수어 수업하랴, 원우와 함께 대본 보랴. 다른 드라마보다 세 배의 품이 들어가는 일이었다. 매니저는 수업 하나를 빼는 게 어떻겠냐 제안했다. 전선생이 수어수업 안 하는 거면, 다른 선생에게 수어수업과 대본 수업을 같이 받는 것이 경제적이긴 했다. 민규는 고민조차 하지 않고 거절할 제안이었다. 애초에 추가된 수어 수업은 오롯이 전원우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2번, 한 달가량 수업을 함께 하자 원우의 벽은 금세 허물어졌다. 여전히 14시 정각에 열리는 문과 가끔 애티켓을 잊고 뒤에서 덥석덥석 어깨를 잡아 오는 민규 탓에 소스라치듯 놀라 주저앉는 것을 제외하면.

수어를 빌미로 손등을 간질이는 손끝, 그럼에도 피하지 않고 똑같이 수어를 핑계로 맞잡아오는 손. 아직 완벽히 수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민규를 위해 패드를 두드리면서도 민규의 입을 향하는 시선. 수업이 끝나고 피곤함에 늘어져 있으면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금 더 있다 가도 좋다며 함께를 허락해주는 시간들. 

민규는 원우와 저의 만남에 각자가 새로운 명분을 추가했다고 믿었다. 

“같이 가주면 안 돼요?”

[싫어.]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 원우를 책상 위로 엎드려 올려다보자 단호한 입꼬리가 슬며시 풀어진다. 

“농인 배우들 연극이라는데, 연기쌤은 시간 없다 하고. 매니저는 추가 근무 싫다 하잖아. 원우형밖에 없단 말이야.”

수어 선생님으로부터 농인 배우들이 주연, 조연을 맞는 연극이 대학로에서 꾸준히 열린다는 정보를 얻었다. 이거다 싶었다. 농인과 데이트는 처음이라, 보통의 연인들이 함께 영화를 보고 드라이브를 가는 행위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했다. 수어로 진행되는 연극이면 원우도 쉽게 즐길 수 있을 것이었다. 조금 특별했으면 하는 첫 데이트, 원우와 ‘함께’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것을 찾은 민규는 신이 나 14시 정각 열리는 문틈 사이로 말을 뱉었다. 같이 연극 보러 가요.

원우는 단호했다. 연극을 즐겨본 적 없고, 농인 배우가 나온다고 다르지 않으리라는 것. 야심 차게 준비한 아이템이 먹히지 않자 이번엔 연기연습을 핑계 삼아봤지만 어림없었다. 속상해.…난 원우 쌤 작업실 말고 밖에서도 만나고 싶단 말이야. 들리지 않은 원우에게, 더 들리지 않도록 팔에 고개를 박고 혼자 중얼거렸다. 원우가 들을 리 없음에 그랬다. 원우가 기어코 만족스러운 말을 해줄 때까지 버틸 심산이었다. 

상심한 민규의 팔을 톡톡 치며 주위를 이끈 원우는 민규를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았다. 

[연극 대신… 우리 공방 가볼래?]

원우가 그린 가구 그림들이 실체화되는 목공방에 함께 가자는 제안이었다. 오히려 좋아. 언제 상심했다는 듯이 눈꼬리를 접고 해 벌 쭉 웃는 민규는 그렇게 확신했다. 원우 역시 자신과의 만남의 새로운 명분이 생긴 것이라고.

데이트라는 말이 무색하게 원우의 공방은 고작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쏟아지는 나무 냄새와 발치에서 흩날리는 가루들. 벽 한쪽을 전부 차지하고 있는 공구와 어디에 쓰이는지 모르는 무시무시한 기계들이 즐비한 공간. 익숙하게 들어선 원우는 옷걸이에 걸린 앞치마를 목에 두르고, 남은 하나를 민규에게 건넸다. 

원우는 작업대 벽면에 붙은 도면을 가리키며 지금 하는 작업물을 설명해줬다. 자신은 보통 의뢰가 들어올 때만 공방에 오며, 민규와 수업을 하는 작업실에서 그려보고 도면화한 작업물을 가지고 이곳에서 샘플 작업을 진행한다고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가구를 고객사에 전달하고, 피드백을 받아 수정한 도면을 넘기면 원우의 일은 끝이었다. 

“직접 만들지는 않고?”

[처음에는 직접 만든 가구도 팔았는데, 개인 의뢰보다 업체의뢰가 많아져서 요샌 잘 안 해요.]

꼬질꼬질한 앞치마를 두르고 원목 조각 하나를 집어 든 원우가 민규에게 헤드셋 모양의 귀마개를 씌워준다. 데이트라고 기껏 머리 만지고, 사석에선 잘 입지도 않는 셔츠까지 빼입고 왔더니 정작 데이트는 10분 거리에, 먼지 뭍은 앞치마, 귀마개까지. 그럼에도 영 실망스럽지 않았던 것은 익숙하게 작업실을 누비며 체리 나무니, 호두나무니, 민규로선 알리 없는 목재들을 만지는 원우의 얼굴에서 수업 시간에는 볼 수 없던 생기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재단기 키면 시끄러워요.]

“너는?”

민규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듯 입 모양을 골똘히 살피던 원우가 눈을 찌푸리며 폭소한다. 그 웃음이 예뻐서, 바보 같은 질문이 민망해서 멍하니 바라만 보는 민규에게 괜찮다는 듯 어깨를 톡톡 두들겨준 원우가 재단기 앞으로 향한다. 미안. 등 뒤로 외쳐보는 소리. 들릴 리 없는데도 등을 돌린 원우가 손짓으로 속삭인다. 바보. 괜찮아. 

[이런데 오면 보통 도마 같은 거 만들던데, 한번 해볼래요?] 

고개를 끄덕이자 망설임 없이 재단기로 쓱쓱 나무를 자르더니, 여러 개의 기기 중 제법 크기가 작은 샌더를 작동시키고 모서리와 구멍을 부드럽게 갈아낸다. 폴폴 흩날리는 나무조각들이 거슬리지도 않는지 작업에 여념 없던 그가 도마 형태를 이룬 나무를 민규에게 건네곤 옷소매를 끌어당겨 작업대에 앉힌다. 버닝 펜을 손에 쥐여준다. 

[여기다가 쓰고 싶은 거 써봐요. 그다음에 기계로 못갈아낸 부분 사포로 갈아주고, 오일 작업만 해주면 완성이에요.] 

버닝펜을 쥔 민규는 무슨 말을 써야 오늘을 기념할 수 있을지 한참을 고민한다. 두꺼운 손가락이 움찔움찔하며 펜을 쥐었다 펴더니 조심스레 나무를 까맣게 태우기 시작한다. 가느다란 연기가 새어 나오며 글씨가 하나둘 새겨진다. 

원우의 세계 하나를 알게 된 날

-2024.2.1

06

드라마 촬영이 시작되며 현장에서도 수어 선생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때다 싶었다. 가뜩이나 촬영 때문에 따로 시간을 내기 힘든데, 빌미 삼아 원우와 종일 붙어있을 수 있었다. 현장에서도 좀 도와달라는 말에 원우는 고민도 안 하고 거절했다. 

[촬영 현장이요?]

“응. 들어보니까 이런 제작 현장에는 다 붙나보더라구. 갑자기 까먹어서 촬영에 지장 생기면 안 되니까. 와주라, 응?” 

[죄송해요.]

원우쌤은 어떻게 고민하는 척도 안 해요? 현장 가면 우리 하루종일 같이 있을 수 있는데. 서운함에 입이 툭 튀어나와도 더 칭얼대면 자신만 손해라는 걸 알았다. 연극을 보러 가자 했을 때처럼 대안을 먼저 제시하지도 않는다. 원우에겐 본업이 있고, 자신은 본래 수어를 사용할 뿐 전문가는 아니며 촬영 현장과 같이 복잡한 곳은 싫다는 말은 더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원우는 민규가 제안하는 것들을 거절하는 일이 많았다. 수업 외에도 자주 만나는 사이가 되었고, 오가는 메시지 속에 하트 이모지를 끼워 넣어도 어색해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지만, 그와 데이트를 하는 선택지는 대부분 원우가 제안하는 것들이었다. 

“진짜 이유가 그게 다야?”

귀가 들리지 않는 원우를 배려하고자 내놓은 선택지는 그 나름의 거절 이유가 있었고, 민규의 직업을 빌미로 공과 사의 구별이 흐릿해지는 선택지는 ‘농인’이라 거부당했다. 어떤 것은 농인이기에 싫고, 어떤 것은 농인이지만 싫은 것들. 정말 그게 전부였을까. 

원우가 좋았다. 함께 있을 때면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고요가 따듯했다. 고요의 출처는 원우의 깊은 마음에서 비롯했다. 매일이 어지러운 삶, 스마트폰을 켜면 위아래로 움직이는 자신의 이름과 거기에 붙여지는, 호의인지 악의인지 알 수 없는 단어들. 만날 때 마다 잔소리를 반복하는 회사로부터 얻는 불안감. 스스로에 대한 불확신.

고요의 출처는 원우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민규 너는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야. 어디를 가서든지 주는 만큼 차고 넘치게 받을 거야.]

고요는 애정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원우가 먼저 고요를 깨는 날엔 불안감이 온몸을 엄습하고야 만다. 

“나랑 같이 있는 게 싫은 거면....” 

그럼 그렇게 말해. 내가 포기할게. 뱉을 자신은 없는 말이라 말끝이 흐려진다. 지속되는 만남 속에서 원우가 그은 선들이 점차 희미해진다고 느낄 때쯤 다시 선명하게 그어지는 선에 민규는 방도를 찾지 못한다. 나만 욕심나지. 나만 너를 알고 싶고 나만 너를 이해하고 싶지? 나만 네 세계에 들어가고 싶은 거지? 곁을 내준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나 싶어서, 커지는 애정에 속수무책으로 앞뒤 분간을 못 하는 건가 싶어 속이 상할 때면 

[나랑 얘기할 때 그렇게 고개 숙이지 마]

원우가 민규의 두 볼을 부여잡곤 눈을 맞춰온다. 마주치는 눈 속에 보이는 두려움. 민규의 말을 하나라도 놓칠까, 그러다 민규를 놓칠까 다급해지는 마음이 투명하다.

이런 널 두고 내가 무슨 생각을 한 걸까. 감히 너의 욕심을 과소평가했다. 내가 너를 알고 싶은 만큼, 너도 나의 단어 하나하나를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에 안도를 느꼈다. 조금 건방지게도 네가 느끼는 두려움에 안심이 되어서. 

민규는 대답 대신 원우의 입에 입술을 맞대었다. 

민감한 내용일 수 있어 최대한 조심해보자 했으나,

혹여나 제가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지 스핀이나 댓글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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