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찬] 디노는 버튜버

디노. 본명은 이 찬. 실시간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스트리머로 활동하고 있고 유튜브도 겸업으로 하고 있다. 주 컨텐츠는 노래와 게임이다. 오프닝 때 가볍게 몇 곡으로 방송의 막이 열린다. 그리고 팬카페에서 추천받은 게임 또는 스트리머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게임을 진행한다. 조금 특별한 점이 있다면 디노는 얼굴공개를 하지 않았다. 요즘 스트리머들 사이에서 얼굴공개를 하지 않은 스트리머들이 흔치 않은데 신기하게도 디노는 노래를 잘하고 잘생겼다는 이유로 인기가 많다. 주 팬층은 여성들이다. 디노는 조금 특별한 스트리머이다. 바로 버튜버이다. 버츄얼 아바타를 자신에게 이입시켜서 방송하는 스트리머이다. 디노는 버츄얼 아바타를 이용해 방송을 이어나간다. 본체 이 찬은 원래 주목받는 걸 좋아한다. 그러나 막상 많은 관심을 주면 부담스러워하는 성격이었다. 인터넷 방송을 해보고는 싶은데 얼굴공개를 하고 방송을 하기가 조금 꺼려진 것이었다. 그러던 찰나 버츄얼 유튜버라는게 등장하기 시작했고 버튜버가 유행할 무렵에 디노도 버튜버로 데뷔하게 됐다. 대학을 다니던 시절 밴드부 보컬을 맡았었기에 노래에 꽤 자신이 있는 편이었고 게임도 친구들이랑 즐겨해서 못하진 않았다. 그래서 처음 컨셉을 어떻게 잡을까 고민하다가 게임하는 아이돌이라는 컨셉을 잡게 된 것이다. 아이돌이면 아바타도 무조건 잘생겨야하니까 캐릭터 디자인에도 꽤나 애를 먹었다. 이 찬은 디노가 자신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에 아바타 외관을 본인과 비슷하게 디자인 했다. 이목구비는 최대한 비슷하게 하되 나머지는 아이돌스럽게 말이다. 그렇게 해서 나온 아바타가 핑크머리에 반짝거리는 파츠가 붙여져있고 테가 얇은 안경을 쓴 디노이다. 그렇게 처음 방송을 켰을 땐 당연하게도 시청자가 아무도 없었다. 그렇지만 디노는 혼자서라도 노래를 불렀고 유*브에도 커버 영상을 올렸다. 그러다가 유*브에 올렸던 노래 커버 영상 중 하나가 인기 급상승 순위에 올라서 디노의 시청자가 생기기 시작했다. 꾸준히 방송을 키고 유*브를 업로드 한 덕분에 너무 작지도 크지도 않은 팬덤도 생기고 다른 버튜버들과 합방을 하면서 디노의 작은 세상이 안정적으로 유지가 되었다. 그 날도 디노는 평소와 같이 방송을 준비하고 켰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날로 인해 디노, 아니 이 찬의 인생에 작지만 깊은 변화가 생기게 된다.

 

전원우. 그저 평범한 직장인이다. 다만 다니는 회사가 게임회사이고 소속부서가 마케팅일 뿐이다. 어릴 때부터 게임을 좋아하기도 했고 재능도 있어 꽤 실력이 좋았다. 장래희망은 프로게이머였으나 부모님의 반대로 이루지 못하고 간접적으로나마 관련된 일을 하게 되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게임방송을 보는 것이 원우의 낙이었다. 일 때문에 보는 것도 있었지만 일종의 덕업일치라고 봐도 무방하다. 최근 원우네 회사에서 신작 게임을 개발 중이었고 광고를 위해 적합한 스트리머를 찾아야 했다. 그 날도 원우는 퇴근 후 게임방송을 찾아봤다. 그러던 도중 무슨 캐릭터가 있는 방송들이 눈에 띄었고 호기심에 클릭해서 보게 됐다. 얼굴공개를 한 것도 아니고 아바타가 방송을 하고 있는 게 원우에게는 꽤 신선하게 느껴졌다. 이건 무슨 종류의 스트리머지 하고 검색해보고 나서야 버튜버라는 걸 알았다. 신작 게임 개발 때문에 바빠서 야근으로 인해 한동안 게임방송을 보지 못했었는데 그 사이에 이런 게 등장했다니 원우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여태 스트리머들을 분류해보자면 얼굴공개를 한 스트리머, 얼굴공개를 하지 않은 스트리머, 본인 특유 캐릭터 일러스트로 본인을 대체한 스트리머로 분류할 수 있었다. 이제는 본인 특유 캐릭터에 표정과 동작까지 따라할 수 있게 모션을 넣은 버튜버가 생긴 것이었다. 파악을 끝낸 원우는 버튜버 위주로 방송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꽤 눈에 띄는 버튜버가 보였다. 작게 보였지만 꽤 예쁘고 잘생긴 아바타에 시청자 수가 다른 버튜버들에 비해 더 많았다. 심지어 카테고리는 채팅이라고만 되어있었다. 도대체 뭐하는 버튜버길래 이렇게 많은 시청자를 보유하고 있는 걸까 하고 호기심에 원우는 들어가 봤다. 들어가자마자 작정하고 꾸민 아바타가 떡하니 나타났다. 핑크 머리에 반짝거리는 파츠도 이것저것 붙어있고 안경에 의상은 아이돌스럽게 입고있었다. 아바타 자체 퀄리티도 높았다. 노래를 부르고 있는 거 보니 아무래도 노래 버튜버인 듯 했는데 노래 실력도 좋아서 거의 온라인 콘서트와 다름 없는 분위기였다. 전원우는 자기도 모르게 몰입해서 보게 됐다. 목소리가 듣기 좋은 미성에다 당장 데뷔해도 손색 없는 실력이었다. 채팅창에는 온갖 주접이 올라오고 있었다. 앵콜이 올라오고 있는 거 보니 마지막 곡이었나보다. 디노는 불타는 채팅창을 진정시키며 방송을 마무리 하려고 했다.

 

“오늘 방송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이노 여러분!”

 

다이노. 디노의 시청자 애칭인듯 했다.

 

“내일도 방송하니까 시간나면 보러와 주세요~”

 

[디노야사랑해 님 1000원 후원 감사합니다!]

방장 진짜지? 내일 겜방한다고 노래 짧게 하기만 해봐

 

“후원 감사합니다. 에이 걱정 마세요 제 방송 아시잖아요~”

 

[동그란물방울 님 1000원 후원 감사합니다]

디노야 오늘도 수고 많았어 사랑해

 

“다이노 여러분도 오늘 하루 수고 많았어요! 모두 푹 쉬고 내일 봐요!”

 

원우는 이제 방송이 끝나나보다 하고 아쉬워하려는 찰나 디노가 한 쪽 손으로 안경을 잡더니

 

“사랑의 눈빛!”

 

하고 방송을 종료하는 것이었다. 전원우 버튜버에게 입덕하다. 안 그래도 노래에 살짝 반해있었는데 활발하고 사랑스러운 성격에 완전히 뿅 가버린 것이다. 그렇게 전원우의 덕질이 시작되었다. 생방송 월간 구독은 기본이며 후원도 종종 하고 유*브도 유료구독해서 스트리밍 다시보기 영상도 볼 수 있었다. 디노의 방송은 오프닝과 엔딩을 노래로, 주 방송은 게임이었다. 방송을 키고 시청자가 어느정도 들어왔다 싶으면 바로 팬카페에서 신청 받은 신청곡을 선정하여 부르면서 시작됐다. 처음엔 한 곡 정도로만 불렀는데 시청자들이 아쉬워해서 2~3곡으로 늘렸다. 오프닝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게임방송에 진입하게 된다. 게임방송을 생각보다 재미있게해서 시청자들의 반응이 좋았다 게임을 너무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은 애매한 실력이라 갑자기 잘하게 될 때도 있고 너무 못할 때가 있어 시청자를 즐겁게 해주었다. 게임방송이 끝나면 엔딩으로 또 노래를 한다. 엔딩곡은 딱 한 곡으로 끝낸다. 2~3곡을 시도해봤으나 2~3곡에서 끝나지 않고 방종을 못할 뻔 한 적이 있었기에 디노가 최종적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대신 엔딩곡인 만큼 잔잔한 노래 위주로 선정해서 불렀다. 이게 디노 방송의 구성이었다. 노래에 게임까지 하는 완벽한 버튜버가 또 어디에 있을까 하면서 행복해하며 방송을 본 원우는 오늘도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 짓는다.

 

신작 게임 출시를 앞두고 원우네 회사는 어떻게 광고를 할 것인가에 대해 회의하게 된다. 아무래도 게임이다보니 스트리머에게 광고를 주는게 어떻냐는 의견이 많았다. 원우도 그 의견에 동의했다. 스트리머의 영향력을 무시할 순 없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회사도 버튜버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왕 광고를 하는 김에 버튜버가 떠오르고 있으니 맡겨보는게 어떻냐는 의견이었다. 원우는 조용히 있다가 내심 디노가 광고를 맡게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디노는 노래도 잘해서 잘만하면 cm송까지 부탁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버튜버 중에서도 상위권인 편이고 큰 팬덤에 많은 시청자 보유, 유*브 구독자까지 하면 영향력이 클 것으로 예상되었다. 누구를 광고모델로 할 것인가에 대해 회의를 하던 중 직원들이 몇몇 버튜버들을 언급하기 시작했고 가만히 있던 원우도 디노의 이름을 꺼냈다. 팬이라는 게 티가 날까봐 아무렇지 않게 가볍게 언급했고 다른 인원들의 반응이 호의적이었다. 그래서 광고모델 후보에 디노가 올라가게 됐고 컨택을 요청하기로 했다. 원우는 자기가 직접 이메일로 디노에게 광고 문의를 해야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떨렸다. 평소에 후원할 때도 오만자로 주접을 쓰고싶은 걸 참아가면서 몇 자만 꾹꾹 눌러써서 보냈는데 이번엔 공적으로 정중하게 광고 문의를 해야 하는 것이었다. 원우는 직장 상사한테 보고서를 제출한다는 기분으로 최대한 공적으로 글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디노가 거절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메일 전송 버튼을 눌렀고 부디 긍정적인 답변이 오길 기도했다. 몇 시간 뒤 원우는 습관적으로 메일창을 새로고침을 눌렀다. 그런데 처음 보는 메일이 보이는 것이었다. 디노의 답장이었다. 원우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고 심호흡을 한 뒤 메일을 클릭해 읽어보았다. 다행히 승락이었다. 원우는 소리없는 환호성을 질렀고 이 사실을 보고했다. 광고에 대해 미팅을 해야 해서 이에 대해서 디노와 상의를 해야했다. 아무래도 디노는 버튜얼이다보니 비대면 미팅이 좋을 거 같아 비대면 미팅쪽으로 유도했다. 그런데 디노는 대면 미팅도 괜찮다며 직접 회사로 오겠다는 답변을 보냈다. 본체를 비밀로만 해준다면 대면 미팅도 좋다고 한 것이었다. 원우는 설마 디노가 직접 회사에 오겠다고 할 줄은 몰라서 조금 당황했다. 아마 미팅도 원우가 하게 될텐데 실물을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버튜버니까 아바타랑 본체는 많이 다를텐데 보고 실망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먼저 들면서도 성덕이 되는 거니까 기대도 되는 원우였다.

미팅 날짜가 다가왔다. 미팅 시간은 점심시간 이후였고 원우는 쿵쾅대는 심장을 진정시킬 겸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며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 때 누가 뒤에서 뛰어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원우와 부딪혔다. 다행히 그렇게 세게 부딪힌 건 아니라서 서로 죄송하다 하며 스쳐지나가듯 얼굴을 봤다.

 

“아 죄송해요!!”

“괜찮습니ㄷ...”

 

원우와 부딪힌 남자가 디노랑 굉장히 닮은 것이었다. 디노랑 닮은 남자는 죄송하다는 말을 몇 번 더 하고 뭐가 그렇게 바쁜지 뛰어갔다. 원우는 저렇게 디노랑 닮을 수가 있나 하고 신기해하며 회사로 들어갔다. 당연히 전체적인 분위기와 외관은 다른데 얼굴 이목구비가 똑닮아서 신기했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 미팅 시간이 다가와 원우는 회의실 앞에 섰다. 안에 인기척이 있는 거 보니 디노가 이미 와있는 듯 했다. 디노 본체를 만난다는 생각에 원우는 잔뜩 긴장을 했다. 어떤 사람일지 궁금하면서도 약간의 두려움도 있었다. 원우는 디노가 어떻든 절대 실망하지 않겠노라고 결심하고 심호흡을 하고 회의실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고 처음 디노 본체를 마주하게 되는데.

 

“어 아까 그 분 아니세요?”

 

부딪혔던 남자가 앉아있다 일어나며 말을 하는 것이었다.

 

“아 그 안녕하세요! 버츄얼 스트리머로 활동하고 있는 디노입니다!”

 

디노를 닮았다고 생각한 그 사람이 진짜 디노였다. 전원우는 순식간에 몸이 얼어붙었다. 설마 아바타랑 본체가 닮았을 거라고는 생각을 전혀 못했기 때문에 굉장히 놀란 상태였다. 심지어 본체 디노가 더 귀여웠다. 전원우는 디노의 열혈팬이지만 지금은 업무적으로 만난 거니까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침착하게 처음 보는 척 하며 인사를 나눴다. 새로 출시 될 신작 게임 홍보에 대해서 얘기하는데 최애가 눈 앞에 있는 것 자체가 실감이 나지 않아 뭐라 얘기하는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저기...”
“아 죄송합니다. 다시 한 번만 말씀해주시겠어요?”

 

디노는 불평없이 원우의 요청을 잘 들어주었다. 원우는 우리 디노 성격도 좋구나 하고 다시 입덕했다. 회의가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었다.

 

“흔쾌히 수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디노님”

“저야 더 감사하죠~ 아 저 본명으로 부르셔도 돼요.”

 

“아까 계약서 쓸 때 보셨겠지만 이 찬이에요 편하게 불러주세요.”

“아 그... 찬씨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본명마저 너무 예쁘다고 생각하던 원우는 속으로 주접을 부리며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길고도 짧은 시간동안 최애가 살아 움직이는 걸 너무 가까이서 직관해버린 탓에 정신이 차려지지 않았다. 거기다가 본명까지 알아버렸으니. 최애에 대해서 이렇게 자세하게 알아버려도 되는건가 하며 혼란이 오면서도 행복한 원우였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방송을 준비하던 이 찬. 팬카페를 둘러보려고 로그인을 하는데 습관적으로 메일함 확인을 했다.(합동방송 섭외가 종종 들어오거나 팬레터가 오기도 해서 메일함을 자주 확인한다.) 그러던 중 처음 보는 제목의 메일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뫄뫄 컴퍼니입니다.]

 

뫄뫄 컴퍼니. 게임 유튜버인 디노라면 당연히 알고 있는 회사다. 많은 유튜버들이 즐겨하는 게임의 회사. 이번에 출시 예정인 신작 게임의 광고를 맡아줄 수 있냐는 광고 제의 메일이었다. 순간 디노는 자신이 잘못 읽은 건가 싶어서 메일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봤다. 광고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저렇게 큰 회사에서 광고 제의가 들어온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신종 보이스 피싱인가 의심도 해보고 검색도 해봤는데 정말 뫄뫄 컴퍼니에서 온 메일이 맞았다. 디노는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믿겨지지가 않아서 뺨도 꼬집어봤다. 꿈이 아니었다. 디노는 침착하게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당연히 승낙이었다. 굴러들어온 복을 누가 차겠는가. 도대체 뫄뫄 컴퍼니가 디노의 존재를 어떻게 안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디노에게 그 사실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조금 궁금하긴 했다.) 유명 게임사가 자신에게 게임 광고의 기회를 준 것이 중요했다. 방송을 하면서 온갖 즐겁고 설레는 일들이 많았지만 지금이 가장 설레는 순간이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그렇게 디노는 승낙한다는 답변을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메일의 답장이 왔다. 미팅을 진행하자는 답장이었다. 버튜버인 디노를 배려해주려는 것인지 비대면 미팅으로 진행해도 좋다는 내용이었다. 디노는 그에 대한 배려가 감사했지만 이런 중요한 용건은 직접 만나서 상의하자는 주의였다.(여태 받은 광고들도 대부분은 대면 미팅이었다.) 디노는 배려는 감사하나 미팅은 대면으로 하면 좋겠다고 답장했다.(사실 디노도 대면 미팅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버츄얼 아바타랑 본래 자기 모습이 너무 달라 괴리감이 생기진 않을까 누군가 유출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그러나 다들 그런 반응이 아니기도 했고 비밀을 철저히 지켜줘서 믿음이 생겼다.) 미팅 일정이 잡히고 머지않아 미팅 날짜가 다가왔다. 디노. 아니 이 찬은 일찍 나온다고 나왔는데 지각할 거 같아 서둘러 뫄뫄 컴퍼니로 향하는 길이었다. 조금만 더 가면 도착이라 냅다 뛰어가는데 앞에 사람이 있는 걸 차마 인지를 못해 살짝 방향을 틀다 부딪히고 말았다.

 

“아 죄송해요!!”

 

찬은 아잇 챰 서두르다가 이런 사고를... 하고 자책하면서 부딪힌 사람을 봤다.

 

“괜찮습니ㄷ...”

 

그 남자는 괜찮다는 말과 함께 디노를 빤히 보더니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찬은 잠시 멍하게 서있었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잘생길 수가 있지?’

 

찬과 부딪혔던 남자가 너무 찬 취향의 잘생긴 외모였다. 심지어 목소리조차도 낮은 저음의 미성이었다. 분명 잠깐 스쳐지나가듯이 본 얼굴이었지만 잘생긴 게 확실했다. 아무리 대충 봐도 그 이목구비는 뚜렷하게 잘 보였다. 세상에 저렇게 잘생긴 사람이 존재하는구나 하며 감탄했다. 그러다가 아차 미팅! 하고 다시 서둘러 뫄뫄 컴퍼니로 향했다. 다행히 미팅에 늦지 않은 찬은 회의실로 안내받아 들어가 잠시 대기를 했다. 그러다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오는데 디노는 남자의 얼굴을 보자마자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어 아까 그 분 아니세요?”

 

절대 잊을 수 없는 그 잘생긴 사람이었다. 세상에 저 분이랑 오늘 미팅하는 거였구나... 내 첫인상 어떡하지? 하는 찬이었다. 사실 미팅이 익숙해서 떨리지 않은 찬이었지만 오늘 미팅만큼은 어느 때보다 떨렸다. 다행히도 떨린 것 치고 미팅은 잘 진행되었다. 사실 미팅의 반은 원우 얼굴 감상이긴 했다. 일부러 더 눈 마주치려고 노력했던 거 같기도 하다. 원우는 찬에게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라면서 명함을 내밀었다. 찬은 안 그래도 번호를 딸까 말까 고민하던 중이었는데 고민이 무색하게도 연락처가 손쉽게 들어왔다. 찬은 명함이 없었기에 안절부절하고 있는데 그걸 본 원우가 웃더니

 

“저는 필요없어요. 무슨 일 있으면 편하게 연락주세요.”

 

하고 말했다. 원우의 웃는 모습을 본 찬은 웃으니까 더 잘생겼다... 하고 생각했다. 아무튼 그들의 첫 만남이자 미팅이 무사히 성사되었다.

 

광고 방송 날. 뫄뫄 컴퍼니에서 출시하는 신작은 액션 롤플레잉 게임이었다. 회사 측에서 미리 게임 파일을 받아 다운로드 해놓고 먼저 시험 삼아 잠깐 켜봤다. 용량이 크다고 생각했는데 큰 이유가 있었다. 그래픽 퀄리티부터가 고퀄리티였다. 뿐만 아니라 모션도 부드럽고 다양했다. 액션 게임인 만큼 타격감과 이펙트가 중요한데 타격감은 당연하고 스킬 이펙트도 화려했다. 굳이 광고가 아니었어도 디노가 찾아서 했을 법한 퀄리티였다. 자신이 이렇게 큰 대작 냄새가 나는 게임을 광고하게 됐다는 사실에 벅차올랐다. 더불어 자신의 이상형도 만나고 말이다.

 

[디노] 오늘은 숙제방송이에요~~

 

평소와 똑같이 오프닝으로 노래 몇 곡 뽑아주고 곧바로 광고 방송으로 들어갔다.

 

“방제로 보셨죠? 오늘은 숙제가 있어요.”

 

[뫄뫄 컴퍼니 님 10000원 후원 감사합니다]

디노님 잘 부탁드립니다.^^

 

“앗 담당자님도 오셨네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디노는 능숙하게 받아치며 방송을 이어나갔다.

 

“아직 출시가 되진 않았거든요 지금 사전 예약하시면-”

 

시험용으로 잠깐 켜봤을 때도 재밌다고 생각했는데 방송 때 본격적으로 플레이를 해보니까 정말 재밌는 것이었다.

 

“여러분 정말 대박이지 않아요? 스킬 이펙트 퀄리티를 보세요. 저는 광고 아니었어도 이 게임 했을 거 같아요.”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며 솔직 담백한 후기를 남기는 디노였다. 시청자들의 반응도 좋았다. 숙제 방송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고 방종을 하고 나서야 디노는 한시름 놓았는지 의자에 기댔다. 그렇게 하루가 끝나나 했는데 습관적으로 메일함을 들어가보니 메일이 또 와있는 것이었다. 뫄뫄 컴퍼니었다. 디노는 헉 설마 나 뭐 잘못했나 하고 심장이 쿵 내려앉으며 메일을 클릭했다.

 

『오늘 방송 잘 봤습니다. 다른 직원분들 반응도 좋으세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중략)-

Ps. 사실 말씀드리진 못했는데 저는 디노님 방송을 즐겨보는 팬입니다. 언제나 응원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미팅했던 담당자분의 감사인사였다. 아니 그보다 이 분이 내 팬이라고...? 내 팬?!?!! 찬은 지친 것도 잊어버리고 벌떡 일어났다. 찬은 자신의 팬에게 얼굴을 공개했다는 사실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설마 자신을 보고 실망하진 않았을까. 더는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실물에 대해 떠벌리고 다니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찬에게 원우는 그럴 사람으로 보이진 않았다. 어찌됐든 찬의 완식인 사람이 디노의 팬이다. 이거 나한테 너무 좋은 거 아냐? 사실 찬은 원우를 한 번 더 만나보고 싶었다. 언제 또 그런 얼굴을 볼 수 있나 싶었다. 그리고 버츄얼 아바타와 본체인 자신이 어떤지도 물어보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디노는 광고 섭외 감사 인사도 할 겸 데이트(...)를 신청 해보기로 결심했다. 원우에게 메일로 연락이 왔지만 디노에게는 원우 명함이 있었다. 디노는 원우 번호를 저장하고 문자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광고 섭외 너무 감사하고 제 팬이시라니까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는 핑계를 대며 말이다. 한참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가 두 눈 꼭 감고 전송 버튼을 눌렀다.

 

『안녕하세요! 이메일 잘 받았습니다. —(중략)— 광고 섭외해주신 것도 감사하고 제 팬이시라고 하셔서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다시 한 번 만나 뵐 수 있을까요?』

 

디노는 문자를 보내자마자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뭐라고 답장이 올지 감히 예상이 되지 않았다. 그저 긍정적인 답장이 오길 기다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디노의 핸드폰이 울렸다.

 

『디노님의 답장 잘 읽었습니다. —(중략)— 저는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말이면 언제든 상관 없으니 편하신 시간 말씀해 주세요.^^』

 

원우의 답장이었다. 다행히도 디노의 바람대로 긍정적인 답변이었다. 디노는 나이스를 외치면서 의자에 주저앉았다. 디노는 만날 시간과 장소를 정하곤 맛집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마치 데이트 나가는 것처럼 설레어하면서 말이다.

 

주말. 둘이 만나기로 한 날이다. 찬은 아침부터 난리법석이다. 사실 전 날에 옷을 다 골라놨는데 막상 당일이 돼서 보니까 마음에 안 드는 것이었다. 찬은 옷을 들고 어디론가 달려갔다.

 

“형!! 이거 어때?”

“아니 어제 다 골랐다며”

 

찬의 첫째 형 지훈이었다. 지훈은 질린다는 표정으로 찬을 쳐다봤다.

 

“무슨 소개팅 나가냐? 왜 이리 오버야.”

“그렇지만 내 팬을 만나는 거잖아...”

“누가 보면 네가 팬인 줄 알았어.”

“아무튼 이거랑 이거 중에 뭐가 더 나아?”

“그냥 내가 네 방으로 갈게 기다려.”

“아싸 형 고마워!!”

 

잠시 후 지훈은 찬의 방으로 가서 찬의 코디를 도와주었다. 동생을 끔찍이 여기는 첫째 형 덕분에 찬은 무사히 옷을 챙겨입을 수 있었다. 내친김에 머리도 살짝 만져주고 가는 지훈이었다. 지훈의 지극정성 덕분에 찬은 제 시간에 나갈 수 있었다. 팬 하나 만나면서 왜이리 유난이다 싶다지만 버튜버다보니 팬을 직접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렇게 팬을 만날 수 있는 기회에 진심으로 응하는 것이었다. 물론 찬의 개인적인 사심이 있기도 했다. 그런 잘생긴 얼굴을 또 언제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아무튼 찬은 설레는 마음을 안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둘이 만나기로 한 곳은 이태리 레스토랑이었다. 찬이 원우에게 혹시 못 먹는 음식이 있냐고 물었는데 해산물은 아예 못 먹는다고 했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누구든 무난하게 먹을 수 있는 양식으로 선택한 것이었다. 찬은 조금 일찍 도착했다고 생각했는데 먼저 도착해서 앉아있는 원우를 보고 놀랐다.

 

“어어?! 일찍 오셨네요?”

“안녕하세요. 디ㄴ... 찬씨.”

원우는 습관적으로 찬의 활동명으로 말할 뻔 하다가 정정했다. 찬은 원우의 배려에 작게 웃음이 나왔다.

 

“저도 일찍 왔다고 생각했는데 원우씨가 먼저 와계셨네요.”

“아 그게 조금 긴장돼서요. 일종의 팬미팅...이잖아요.”

“그러고보니 그렇네요? 지금 어떠세요?”

 

찬은 장난스럽게 원우에게 물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습니다. 정말로.”

“푸하하 편하게 생각하세요 편하게.”

“네.. 아 뭐 드실래요? 리뷰 보니까 전반적으로 평이 좋더라구요.”

“음 저는~”

 

둘은 식사를 하며 이것저것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특히나 찬은 원우에게 궁금한 점들이 많았다. 자신을 어떻게 알고 보게 됐는지, 평소에 방송을 얼마나 자주 보는지, 후원도 해봤는지, 게임 광고도 원우의 의견이었는지, 자신과 처음 만나게 됐을 때 어떤 심정이었는지 등등 호기심이 왕성한 어린이처럼 원우에게 질문공세를 했다. 원우는 찬의 질문 하나하나 성심성의껏 답변했다.

 

“앗 저 너무 말이 많죠... 죄송해요.”

 

찬은 신나게 질문을 하다가 전혀 줄지 않은 원우의 접시를 보고 급히 입을 닫았다.

 

“아뇨 전 오히려 좋은 걸요 이게 진짜 모습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원우는 눈웃음을 보이며 대답했다. 찬은 그런 원우를 보고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형 말이 맞았다 이건 내가 팬이다. 형 나 원우씨 좋아해.

 

“사실...”

 

원우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 자리 나오는 것도 고민 많이 했습니다. 일개 팬이 개인 사심으로 이런 자리에 나와도 되는지 싶어서요. 그런데 결국 사심이 이겨버렸네요.”

 

원우는 머쓱하게 웃어보였다.

 

“팬이잖아요! 팬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방송인과 팬 사이의 거리가 있어야하잖아요.”

“그건 맞지만... 그래도 괜찮아요. 저도 사심 품고 불러낸 거니까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찬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사실 원우씨 불러낸 거... 감사인사는 핑계에요.”

“네..?”

“제 사심으로 불러냈어요.”

 

“제가... 제가 원우씨를 한 번 더 보고 싶어서요.”

 

원우는 귀가 빨개져서 되물었다.

 

“무슨 의미에요?”

“저요... 처음 부딪혔을 때 원우씨 보고 반했어요. 너무... 너무 잘생기셨잖아요. 그렇게 스쳐지나가서 아쉬웠는데 미팅에서 만나니까.. 이건 운명이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래서 더 붙잡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새빨개진 얼굴로 말하는 찬을 보고 원우는 귀여워서 웃음이 빵 터졌다.

 

“제가 잘생겼나요...?”

“ㄷ..당연하죠!! 여태 그런 얼굴 본 적 없었다구요.”

“그럼 찬씨는 제 얼굴만 보고 좋아하는거네요?”

“아니에요! 얼굴만 좋아하는 거는...”

 

찬은 크게 부정했지만 말꼬리가 늘어졌다. 원우는 빨개진 채로 우물쭈물 거리는 찬이 너무 귀여웠다. 디노가 귀여운 건 알았지만 본체도 이렇게 사랑스러울 줄은.

 

“새로운 거 알았네요. 찬씨가 제 얼굴을 좋아한다는 거”

“으...”

“그럼 우리 더 알아가 보는 거 어때요?”

“네..?”

“저 여태 찬씨가 궁금해 하는 거 다 알려드렸잖아요.”

 

“저도 궁금해요.”

 

“저도 찬씨에 대해서 더 알고싶어요.”

 

원우는 미소를 보이며 진심이 담아 말했다. 찬은 무어라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자신도 모르게 거의 고백을 내질러버렸으니 원우도 당황했을 법 한데 저런 답이 돌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저... 원우씨..?”

“네.”

“저희는 그러면 썸... 인가요?”

 

원우는 찬의 말에 빵 터졌다.

 

“왜 웃어요..!!!”

“찬씨 진짜... 너무 귀여운 거 알아요?”

 

찬은 부끄러운지 얼굴에 부채질을 휙휙 했다. 그마저도 귀여운지 원우는 환한 미소를 보였다.

 

 

“그래요. 우리 우선 썸 타는 사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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