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싱x수영

드랍

쁘레, 알레. 물 속에 들어와도 이명처럼 따라붙었다. 톡 쏘는 염소섞인 물에 더더욱 쏘는 심판의 소리들을 녹였다. 순식간에 눅눅하고 축축해진 소리는 한결 떠올리기 편했다. 그제서야 눈을 감았다. 1인칭 시점의 영화처럼 흘러가는 영상 속에서 감독님께 들은 문제점을 찾아냈다. 알고 있고 여러번 지적 받았어도 실력에 자신있어 고집을 고수했던 결과가 점점 되돌아왔다. 이제와선 고치기엔 품이 많이 들고 고쳐봤자 기량의 변화를 기대하기엔 애매한, 그러나 확실히 중요한 순간 발목을 잡을만한 습관이었다. 오비토와의 연습시합에서 생각보다 점수를 많이 내준 것도 이 탓이다. 하지만 어쩌란 말인가. 부상은 어느 선수에게나 무서운 법이다. 특히 종목특성상 가장 무겁고 단단한 칼에 정통으로 맞는다면 다음 대회의 출전을 보장하지 못했다. 공격이 소극적이라느니, 지루해서 관중 다 떠나가겠다느니, 심지어 같은 선수에게 부상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헛소리마저 들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펜싱부에서 부동의 순위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국내와 국제대회에서도 나쁘지 않은 성적을 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신경쓰인다. 오비토녀석이 야금야금 쫓아오고 있었다. 약점을 집요하게 노려 짙었던 패배의 그림자를 점차 옅게 만들었다. 그것이 나에게만 통하면 자기위안이라도 할텐데 그에 비례해 순위도 점차 올랐다. 아직 제대로 추격당하지도 않았건만 녀석 특유의 맹렬함이 나를 초조하게 만든다. 한번 탄력을 받으면 순식간에 추격해갈 것만 같은. 턱 끝까지 치밀어오르는 갑갑함에 숨이 막혔다. 잡념에 비례하여 몸에 힘이 들어가 몸이 점차 가라앉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참을 수 있을 때까지 멈추고 있으니 누군가 주위를 돌다 정확히 팔을 잡고 끌어올렸다. 당기는 손길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나는 잠시나마 해파리가 된 기분으로 몸을 내주었다.

“또 이러고 있었냐, 카카시!”

끌려간 압력을 못이기고 그새 코로 물이 조금 들어갔다. 차가운 타일과 하얀 배수구로 얼굴을 들이대 쿨럭거렸다. 좋아하는 녀석에게 볼썽사나운 모습따위 보이고 싶진 않았으니까. 나를 끌어낸 그는 전혀 미안하지 않는 목소리로 사과를 외치며 등을 쳤다. 미안, 미안. 토하는 사람 등 두드리는 것도 아니고 기침할 때 해봐야 전혀 소용없는 행위에 내 등만 무자비하게 붉어졌다. 곧 있으면 배수구에 부딪힐 새라 손을 쳐냈다. 항상 내 마음을 숨기려 날카로이 말하는 것처럼 그 행위도 서슬퍼랬다. 타인에게 행했다면 다툼이라도 일어났을 행동은 그로 인해서 아무것도 아닌 행동이 된다. 그를 좋아하는 내 마음처럼 아무것도 아닌 행동이 된다.

“큽, 그만 좀 때려. 죽겠다.”

“사람은 이정도로 안 죽는다.”

이 정도로 안 죽는다는 분이 왜 그냥 두면 알아서 기어나올 사람을 굳이 끌어올리시는지. 빈정대며 물어봤자 돌아오는 답은 ‘걱정되니까.’일 게 뻔하다. 처음 듣자마자 심박수를 높이던 말은 이제 낮추는 말이 된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더할 나위 없이 규격에 맞아떨어지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적이 있으니까 변명하기도 궁색맞았다. 사소한 오해는 그와 나의 첫만남이었고 결국 나는 앞으로도 눈 앞의 남자에게 한번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한 놈이었다. 대체 수영장 물에 코박고 뒤지려한 놈이 어딨다고. 첫만남은 정말 별 것 없었다.

그날은 레슨을 받기 싫었고 해는 아직도 쨍쨍해서 더웠고 그래서 우리 학교는 수영부가 있는 학교라는 사실이 생각났을 뿐이다. 아버지는 내가 싫어하면 당장 펜싱을 그만두어도 된다고 했지만 나는 펜싱으로 스스로를 증명하고 싶었다. 어린 시절이라 증명해보인다는 말을 입 밖으로 또랑히 뱉어내진 못했으나. 적어도 펜싱에 열의가 있던 것만은 확실했다. 그런 나의 최대 적은 아버지가 아닌 주변이었다. 아버지를 따라 체육관에 가 장비에 흥미를 보이기만해도 주위에서 감탄이 들리기 일쑤였고, 이제 우리나라 메달 하나 추가하냐는 말은 예사였다. 펜싱을 제대로 접하지 않았을 시절의 나는 관중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우쭐해보였다. 그때 받은 박수가 금메달 따면 받을 박수보다 많을 것이다. 내 레슨 선생님은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아버지의 친구, 전국의 메달권에 간신히 들었던 그런 선수. 이르게 은퇴하고 교육자의 길로 접어든 선수. 아버지는 교육자로서는 당신보다 낫다며 허허실실 웃는 낯으로 소개해주셨다. 몇개월 배우고서 솔직히 인정했다. 정말 선수로 키울 생각이 없었는지 칼만 쥐어도 잘한다 잘한다 하시던 아버지와는 달리 레슨선생님은 날 선수로 봐주셨다. 고칠 부분을 정확히 지적하니 몇학년 위의 형들까지 손쉽게 이겼다. 선생님은 그럴 때마다 내게서 아버지의 모습이 보인다며 머리를 박박 쓰다듬었다. 땀에 절은 머리가 뭐가 좋다고. 그러던 중 아버지의 도핑소식이 뉴스를 타고 퍼졌다. 자세한 사정을 알 리 없는 나는 그대로 학교에 갔다가 너네 아빠로 시작하는 온갖 질문을 듣고서야 사태를 파악했다. 가장 먼저 화가 났다. 감정의 기저에 배신감이 응어리져 있었다. 레슨도 받지 않고 집으로 튀어가자 선생님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기다리고 계셨다. 아버지는 관계자들에게 잡혀있느라 집에 오지도 못했다. 선생님은 내 행동은 예측했으나 마음까지는 예측하지 못했다. 나는 슬픔이 아니라 분노에 차있었다. 아버지에게 따지고 싶었다. 지금이라면야 물어오는 놈들의 뒤통수를 후리며 헛소리 말라 넘어가겠지만. 그때만 해도 나는 친구들의 입에서 아버지의 이름이 욕되게 오르내린 사실이 수치스러웠다. 믿고 대변하지 못할망정 진실을 파헤치는 탐정이라도 되는 양, 굴었다. 씩씩대는 나를 보던 선생님은 언제나처럼 내 머릴 쓰다듬었다.

‘사쿠모씨는 그럴 분이 아니라는 사실은 네가 가장 잘 알지? 그러니까 믿고 기다리면 돼.’

이건 나에 대한 비겁한 공격이다. 아버지에 대한 애정을 담보로 잡혔다. 당장 손 떼라며 왁왁 소리치고 싶었다. 그러나 머릴 헤집는 손길이 여전히 다정했었다. 그리고 내 머리도 집에 뛰어오느라 언제나처럼 젖어있었다.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점이 묘하게 나를 안정시켰다. 꽉 쥐었던 주먹의 힘을 풀었다. 손을 뗄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뒤돌아 방으로 걸어들어갔다. 그렇게 침대에서 베개로 난리를 피우다 밥도 먹지 않고 선잠에 들었다. 한번 일어나 다시 잠들고 난 후에는 다시 학교에 갈 시간이었다. 식탁에는 아침과 아버지의 쪽지가 있었는데, 아직 제대로 화가 풀리지 않았던지라 그대로 등교했다.

그날이 그와 내가 처음 만난 때다. 수영장으로 땡땡이친 내가 수영복으로 갈아입지도 않고 멋대로 몸을 구겨넣은 죗값을 치른 날. 별 생각은 없었다. 아버지와 관련된 모든것이 보기 싫었을 뿐이었다.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들어간 수영장은 아무도 없었다. 원래라면 소란스러워야할 수영장이 조용했다. 그저 훈련을 일찍 끝냈나보다 그도 아니면 쉬는 날인가보다. 안일하게 생각했던 나는 그대로 가방을 물기없는 곳에 올려놓고 뛰어들었다. 신발과 양말만 벗은 탓에 옷이 무겁게 늘러붙었다. 평소라면 가지 않았을 곳이라 더 짜릿했다. 이곳에 있는 한 내가 아는 사람들은 날 발견하지 못할 터였다. 그 사실이 좋아 갈아입을 옷도 없이 몸을 맡겼다. 그날에서야 물 속이 생각보다 시끄럽고 조용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웅웅, 물 먹은 귀는 소란스럽지만 세상과 단절된 느낌하나는 고요함을 선사한다. 밝게 빛나는 조명도 수면 아래로 내려가면 별것 아니었다. 겁도 없이 점차 오래 잠수를 시도했지만 결코 그가 생각하는 것처럼 죽겠다거나 하는 생각을 터럭하나 만큼도 없었다. 하필 그가 락커룸에서 나올 때 살짝 지쳤던 터라 등을 보이고 잠수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죽은 사람이 떠오르는 것처럼 보였다-고 당시를 회상하던 그가 말했다. 시체인지 뭔지를 본 초등학생은 놀란 마음을 가다듬을 새도 없이 본능적으로 겉옷만 벗고 몸을 내던졌다. 그리고 의문의 흰색덩어리를 육지로 끌고나왔다. 얼떨결에 낚시당한 나는 나대로 놀라 버둥거렸다. 팔꿈치로 그의 얼굴을 치는 바람에 한동안 멍을 달고다녔단다. 그는 시체에게 봉변당해 정신없었고 나는 코가 매워 정신없었다. 수영장 벽에 머리도 박았다. 나를 구하려는지 죽이려는지 모를 몸놀림으로, 물 게우느라 엎어져있던 내 등을 쳤다. 그만이라는 단어가 완성되기도 전이었다. 자꾸만 말을 끊어대는 그의 괜찮다는 소리가 진절머리가 났다. 어제부터 신물나게 들었던 단어를 모르는 타인에게 듣자니 재수가 지지리도 없게 느껴졌다. 사람 없는 대로변을 피해 골목으로 샜더니 양아치라도 만난 꼴 같았다. 뭐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다. 그때 나는 분명히 외쳤다. 뭐가 괜찮아! 생각보다 쌩쌩했던 소리를 듣자 차라리 안심됐는지 그는 나를 부서져라 끌어안았다. 온몸이 말랑한 슬라임이 된 기분이었다. 나는 아픈데 나를 구기는 그의 힘은 사그라들 줄을 몰랐다.

‘지금 괜찮지 않아도 돼. 그래도 분명 괜찮아지니까.’

지금은 살아있으니까 됐어. 그와는 처음 만났는데도. 그는 마치 오랜 친구를 살려낸 것처럼 굴었다. 내 목숨을 자신의 목숨처럼 여기듯이. 실제로 그가 힘을 풀자마자 떨림이 전해졌다. 본능적으로 자그마한 약점을 숨기기위해 더욱 세게 끌어안은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눈치채고선 가만 몸을 맡겼다. 실제 수영장의 온도는 낮았고 이제 막 물에 있다가 나온 몸은 차가워서. 그대로 그에게 안겨있었다. 울진 않았다는 사실을 위안삼았다. 진실이야 어차피 내 얼굴은 물을 뱉어내느라고 우느니만 못한 꼴이었으나. 그와 몸이 맞닿은 부분만 점차 열올랐다. 얼얼했던 얼굴의 고통이 사그라들자 달음박질 중인 심장이 느껴졌다. 거짓된 생명의 위기도 위기인지 아주 크게 뛰었다. 박동이 점차 커졌다. 그래서 잊었다. 엄숙하고도 나름 포근했던 분위기 속에서 죽으려던게 아니라고 말할 때를 놓쳤다. 그래서 그는 내 반을 알아내 다음날도 다다음날도 찾아와 귀찮게 굴었다.

“야, 가이.”

“뭐냐.”

“배고파.”

“그러니까 밥을 제때제때 챙겨먹어야지! 선수란 놈이 대체 자기 몸관리도 못하고 무슨 추태야!!”

감독님 못지 않은 호통이 내리꽂혔다. 여전히 물 안에 반정도는 담그고 있던지라 듣기 싫다며 귀를 막고 발만 동동 써서 멀어졌다. 그렇게 말해도 1인분을 더 챙긴다는 사실을 안다. 받아줄 걸 아니까 던지는 일인분짜리 응석이다. 게다가 나 때문에 돈 썼다며 핑계좋은 데이트에 끌고갈 수 있는 기회기도 했다. 그래봤자 고기집에 가서 밥이나 먹는 게 전부였다만. 하여간 그와 나의 관계는 같은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때 잠시 헤어졌다가 고등학교 지나 대학 때까지 이어졌다. 엘리트 체육 코스를 밟는 이들이 가는 곳이 거기서 거기인 탓에. 종목이 달라 소식을 찾아봐야 들을 수 있다는 점만 빼면 지겹도록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내 손이 한번 더 불어터질 무렵에야 잔소리를 끝마친 그는 올라오자마자 나를 바라보았다. 일부러 가까이에서 올라간 의중을 알아차리기라도 했는지 잔뜩 불만인 표정이었다.

“너 때문에 신발 다 젖었다.”

“어차피 슬리퍼 있잖아. 그거 신고 가.”

“그럼 돌아갈 때 러닝 못한다니까."

“거참, 오늘만 자체 휴업하시던지요.”

"너 그렇게 매사에 가벼운 것처럼 굴면…“

“됐고. 나랑 좀 일찍 가. 정리 도와줄게.”

괜찮다는 그의 말이 바로 뒤이었다. 곧바로 거절당한게 자존심 상했다. 흔히들 짝사랑은 구질하다고들 해도 기간이 오래되다 보면 남는 알량한 방패막은 결국 자존심 하나였다. 아직 옷을 갈아입지 않은 그의 뒤로가 등에 손가락 하날 얹었다. 밀어버릴듯이 혹은 총구라도 들이댄 것처럼.

“다 젖어서 내 옷 입고 갈래?”

“비겁하게 구는 놈에게 이 내가! 굽히고 들어간다고 생각하진 않겠지?!”

“야, 이게 어디가 비겁해!”

“지금 협박하고 있잖냐!”

그건… 할 말 없어졌다. 어디 가서 딸리는 말솜씨는 아닌데 괜히 그의 앞에서 유치하게 구는 나는 항상 질 수밖에 없다. 내가 먼저 여지를 남기기 때문이다. 물에서 나온 나는 슬슬 예상할 수 있었다. 오늘도 그는 늦게까지 연습하다 들어갈 것이며 끝까지 기다린 나는 30분동안 드라이기와 씨름하면서 결국 신발을 보송하게 말릴 미래를.

-

물살이 이는 소리가 기둥이며 벽이며 부딪혀 더 크게 울렸다. 김밥 씹는 내 소리는 금세 묻혔다. 참치도 아니고 돈가스도 아니고. 딱 기본 김밥을 감흥없이 먹어치웠다. 식사는 금세 끝났다. 반복되는 만큼 빠른 속도로. asmr이 따로 없는 공간은 나에게 익숙하다. 처음에는 시끄럽다 못해 귀가 아프던 물의 잔영도 수영장 위에 달린 창문으로 어둠이 내리앉은 장면도 일상의 풍경으로 변했다. 단지 가이가 수영부의 훈련이 끝나고도 뒷정리를 하는 조건으로 코치님께 허락받고 혼자 수영장을 썼다는 이유다. 나는 내 감정을 자각한 순간부터 자진출석하기 시작했다. 처음 만났던 날도 이주에 한번씩 쉬는 휴식일임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나온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애가 보호자도 없이 혼자 훈련하길 허락했을 리가 없으니 꼼수라도 부렸으리라 짐작한다. 수영장 여분 열쇠를 화단 속 숨겨놓는 습관을 파악했다던가 하는 꼼수. 전통은 초등학교부터 시작했고 지금까지 이어졌으니 내가 보지 못했던 중학교 때도 당연한 일이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어림도 없는 시간을 함께 해놓고도 고작 3년을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이 더 크게 다가왔다.

김밥을 싼 은박을 네모낳게 접어 비치된 쓰레기통에 던졌다. 역시나 골인. 가이의 가방을 뒤적거려 얻은 비치타올을 망토처럼 두르고 아직 어설프게 마른 머리를 다시 한차례 털었다. 서늘하기까지 한 곳이라 찝찝하진 않아도 체온이 내려 감기 걸리기 싫다면 지닐 필수품이었다. 내가 들고다니는 타올이야 얇고 길어 항상 가이에게 신세를 진다. 약간의 미색이 감도는 타일 벽에 기대고 있으면 한기가 뚫고 들어와 움직일 시간을 알려준다. 그럼 나는 한참 훈련하는 가이를 두고 샤워실로 향한다. 수영부 사용하라고 비치된 용품들을 횡령하며 샤워를 마치면 아무도 없는 공간까지 첨벙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머리를 말리고 꽉 짜낸 수영복을 선풍기에 걸어놓는다. 돌아갈 쯤이면 다 말라있도록. 가이의 이름이 적힌 사물함을 열어 큼지막하게 걸린 내 전용 겉옷을 걸치고서야 다시 같은 공간으로 나간다. 이렇게나마 그의 일상 곳곳에 날 집어넣었지만 정작 그는 인식하지 못했다. 어쩌면 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비록 배알없이 매일 만나러 오는 쪽은 이쪽이지만 나라고 하염없이 가이만 바라보고있진 않았다. 만날 가능성이 높은 상대의 경기영상을 분석하며 시간을 보냈다. 책상 앞에서든 침대 위에서든 편하게 하면 될 일을 가지고 굳이 이러는 이유를 셈하기도 우습다. 셈해서 될 문제였다면 진작 접고 끝났다. 손익계산 두드려 손해가 나와도 다음 날을 이별을 핑계삼아 마지막 만남을 가지려하면 연장에 연장을 거듭했다. 다른 사람을 볼 때보다 날 볼 때 짓는 가이의 표정이 마음에 든다는 기가 막힌 핑계를 대면서. 감독님이 보낸 영상은 몇개월 전 아슬아슬하게 이겼던 상대의 최근 경기였다. 원래라면 그렇게까지 점수를 내주지 않을 상대였고 설명없이 영상만 보낸 이유를 너무나도 잘 알아 두말없이 재생시켰다. 물이 이렇게 많은데 목이 탔다. 영 칠칠치 못한 과거의 모습을 보는 일은 고역이었다. 실력증진의 발판으로 삼야야지 어딜 피하느냐는 목소리가 좌우음향으로 들려오는 듯 했다. 한쪽은 감독님 다른쪽은 말하지 않아도 아는 그분. 문제점을 찾아 적기 위해 메모장을 켜자 시야 너머로 그가 들어왔다. 물 속에서 휴식하는라 부유하는 몸체에 얼굴만 수면 위를 지켰다. 보통 사람이라면 힘줘서 진작 가라앉고도 남았을 시간임에도 여유가 넘쳤다. 가끔은 저런 모습이 더 선수같고 신기했다. 강하게 뻗어 앞으로 나가는 기술과 넘치는 체력말고. 땅을 딛고 사는 인간임에도 물 속에서 더 자유로워 보이는 모습이 이질감을 증폭시켰다. 깜빡. 찰나에 시선이 부딪힌다. 정확히 내가 있는 곳을 몰랐다는 듯 금세 거두었던 시선을 다시 돌렸다. 가이는 나를 보면 항상 웃는다. 사실 대부분의 상황에서 웃는다. 특유의 호쾌한 웃음소리가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만큼. 말도 적은 편이 아니다. 수영할 적이면 담아뒀던 말을 제 몸이 항아리라도 되는 양 들이붓는다. 내가 가이의 일상 대부분을 아는 이유와 같다. 그래서 우리의 관계는 가이가 내게 쩔쩔매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을 상기할 때면 나는 찌질하게 그걸 위안 삼으면서도 잇새로 달라붙는 찝찝함에 입맛만 다시고 만다.

지금도 그렇다. 내가 수영장에 며칠만에 왔는데도 가이는 그에 대해 일절 말이 없었다. 하물며 지나가는 질문으로라도 언급하지 않았다. 수영장에 가지 못하는 동안 전전긍긍했던 사람은 오로지 나뿐이다. 사소해보이는 차이는 그와 나의 감정의 간극이었다.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감정의 간극.

“너 내가 얼마만에 온지는 아냐…”

“오! 9일이지!”

“으……”

징그럽긴.

결국 내 예상이 맞아들었다. 한창 복습하던 영상을 끄고 집중력이 사라질 때쯤 되자 녀석의 훈련이 끝나기 30분 전이었다. 갸륵하기도 하지. 외계에서 온 신호라도 수신한 양, 딱 신발 한짝을 찝찝하지 않게 말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지금 수영장 문을 닫는 가이의 발을 감싼 신발이 바로 그 신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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