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몽부탕

아인_1. '가족에게 인사한다'는 긴장감

아인의 집에 방문한지도, 벌써 7일 째.

브금(한 곡 반복 설정을 하시면 좋습니다)

1월 3일.

셀레인 섬을 나선 나와 아인은 네로를 향해 출발했다.

곧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네비게이션의 알람에 나도 모르게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자, 옆에 앉아있던 아인이 나를 바라보았다.

아인: …그렇게 세게 쥐지 마. 피아니스트에게 손은 생명이라고.

ㅡㅡ‘가족에게 인사한다’는 긴장감에 짓눌릴 것만 같았던 나는 이곳으로 오는 내내 그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소화가: 미안해요, 긴장한 나머지…….

아인: 그렇겠지.

운전석의 다니엘이 백미러를 한 번 힐끔 거리고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차는 조금씩 속도를 줄이더니, 이윽고 정차했다.

아인의 본가인 저택이 바로 눈 앞에 있었다.

내리면서 고개를 든 아인은 어떤 한 지점을 응시했다. 시선을 따라가보니, 2층 모퉁이에 있는 커다란 창문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극도의 긴장상태였어서 그런지, 아인의 아버지를 만났을 때의 일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아인에게 물어보고 나서야 겨우 어렴풋하게 떠올릴까 말까였달까.

의외인 것은, 그 역할(설명하는)을 맡게 된 아인이 드물게도 싫어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싫어하기는 커녕, 기분이 좋아 보인다.

아인: ‘아저씨, 실례합니다. 저는 아인의 처음이자 마지막 연인입니다.’ 네가 그렇게 말했어.

나는 무심코 숨을 삼키고 말았다.

소화가: …거짓말. 그런 말 안했어요, 절대.

하지만 아인은 힘차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인: 거짓말 아닌데. 그래서 아버지가, ‘어서 와라. 나는 아인의 처음이자 마지막 아버지다.’ 라고 맞받아치고 둘이 악수했잖아.

소화가: 그런…….

무릎에서 힘이 빠져 나는 의자에 기대 앉았다.

아인: 다 사실이야.

아인: 하지만 아버지와 그렇게 오래 대화할 수 있었던 사람은 달리 없었어. 아마 네가 처음일 걸.

내 입에서 작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아인의 말에 따르면 첫만남치고는 나쁘지 않은 시작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후 예상치 못한 헤프닝이 벌어졌는데ㅡㅡ

나와 아인은 동시에 방구석에서 즐거이 꼬리잡기 중인 나비에게 시선을 돌렸다.

나비를 장기간 펫호텔에 맡길 수 없었던 우리는 아인의 본가에 나비를 데리고 오기로 했었는데…….

낯선 환경에 긴장했는지, 나비는 내내 소파 밑에 숨어서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곳에 손을 내민 것이 아인의 아버지였다.

집주인의 위엄을 보이려고 하셨는지 곧바로 손을 뻗었고ㅡㅡ

나비: 캬아아!!!

아인: …나비. 아버지를 비명 지르게 만든 건 아마 네가 처음일 거야.

그 말을 들은 나비는 내일모레의 방향을 바라보았다.

며칠이 지나고 나니 이제 환경에도 완전히 적응한 것 같았다. 이제는 자기 집인 양 저택 안을 돌아다닌다.

본인이 문 것이 누구인지, 저택에서 얼마나 유명해졌는지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지.

주인인 나보다도 많은 시선을 받고 있다는 것도…….

솔직히, 이곳에 온 이후로 내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부분이 바로 그것이었다.

아인의 ‘동물에게 미움 받는’ 체질은 유전이었던 것이다.

만일 고양이에게 ‘얌전히 좀 있어!’ 라고 전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많은 인간이 구원 받을까.

아인: 그나저나, 아버지가 계속 집에 있는 게 의외네.

아인: 알았으면 돌아오지 않는 건데.

아인의 기분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

확실히 긴장하고 있는 나에게 아인이 그렇게 말하긴 했다.

‘아버지는 사흘 이상 집에 있는 일이 없으니 안심해’ 라고.

하지만 이곳에 온지도 벌써 일주일. 아인의 아버지가 저택에서 나서는 일은 없었다.

ㅡㅡ지금까지 아인에게 들어온 바쁜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나는 계속 아인의 옆방에서 지내고 있었다.

이곳은 아인이 피아노 연습을 할 때 사용하던 방이라고 했다. 그런 곳을 나를 위해 객실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 뒀다고.

방 안에는 아인이 사용하던 피아노는 물론 내가 그림을 그리기 위한 재료도 전부 갖추어져 있었다.

송구할 정도로 극진한 대접이었다.

식사와 수면을 제외하고, 아인은 계속 이 방에서 지냈다.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평소와 다를 바 없었으므로, 이 점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었다.

소화가: 아인의 아버지도 친절하시고, 점점 이 집에서의 생활도 익숙해져가는 것 같은데요.

아인: 그건 안ㅡㅡ

단호히 말하려던 아인이 중간에 멈칫하더니, 무언가를 생각한 뒤 다시 말을 이었다.

아인: 그러니까…… 불편한 부분도 있잖아.

소화가: 불편한 부분이요?

나는 무심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자 그 순간, 그의 입술이 내 입술에 포개어졌다.

콰강ㅡ

갑작스러운 입맞춤에 놀란 나는 그대로 뒤로 넘어질 뻔 했고, 몸을 지탱하려고 바로 뒤에 있던 피아노로 손을 뻗었다. 동시에 커다란 불협화음이 방 안 가득 울려 퍼졌다.

내게서 멀어진 아인은 손끝으로 내 입술을 만지작거리더니, 약간은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아인: 이런 거.

브금

저녁 식사 후.

거실을 지나치는 와중, 부자 간의 대화가 들려왔다.

아인 아버지: 다음주 월요일, 무슨 계획 있나?

아인: 없는데, 그건 왜 물어보죠?

잠시 정적이 흘렀다. 아인의 아버지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아인 아버지: 너희가 집에 있는다면 그 날은 일을 할까 하고.

그 말은 즉, ‘집을 비워주겠다’는 뜻인가?

나는 갑작스레 달아오르는 뺨을 양 손으로 내리눌렀다. 숨어있어서 다행이다…….

아인: 걱정하지 마시죠, 그럴 필요 없으니까. 월요일은 둘이서 외출할 예정이거든요.

아인 아버지: 바깥에? 너답지 않은 일이군.

아인 아버지: 예전에는 기념일 같은 거 소란스럽기만 하다고 나가기 싫어했잖아.

아인: 사람은 변하는 법이니까요. 이제 과거의 나와는 다릅니다.

아인: 어머니가 아프실 때는, 나가지 않게 됐었죠.

아인: 2층에서 외로이 가족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고싶지 않았으니까.

매화꽃을 닮은, 약간 차가운 향이 풍겨 왔다. 의식적으로 맡으려 들면 사라져버릴 정도로 은은한 향기였다.

아인: 기다림이라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에요. 특히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상대를 기다릴 때는 더욱.

아인이 ‘어머니’라는 말을 내뱉었을 때, 보이지 않는 실에 심장이 조여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 그 말은…… 나에게도, 그에게도, 분명 같은 그리움과 초조함을 섞은 복잡한 감정을 나타냈다.

즐거웠던 그 시절의 기억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지 않도록……

우리는 필사적으로 이 양 손에 쥐고 있었다.

언젠가 그 사람의 얼굴을 잊어버릴까 두려워하면서, 몇 번이고 그 때의 풍경을 떠올린다.

설령 이별의 슬픔에 가슴이 미어진다 하더라도.

아인 아버지: …너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파도 한 점 없는 대화의 이면에 서로의 감춰진 마음이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본 부자는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차갑고, 아름답고, 모순적이면서도 신중한.

피를 나눈 가족이 상대라 하더라도, 마치 자기 자신을 지키려는 것처럼 두 사람은 각자의 경계를 조용히 긋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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