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욱

[럽딥]기욱루리 - 폭신폭신

잘 자. 좋은 꿈 꾸고.

매우매우 짧음 주의

본주는 폭신함을 못 쓰니 양해바랍니다

두 사람이 사귀고 있다는 전제하에 쓰인 글이니 그 점 알아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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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일과 작곡가 일이 겹치는 일은 거의 없다. 평소에 작곡 의뢰를 자주 받지 않는 것도 있고, 임천시에서 유명한 화가의 보디가드를 맡았을 때 그와 헌터일 쪽에 집중하기로 했기 때문에 작곡 일까지 하기엔 시간이 모자랐다. 그래서 평소라면 기간이 짧은 의뢰를 반려시켰을텐데 잠결에 실수로 수락해버린 것이었다.

내 실수였기에 군말없이 작업을 시작했지만, 갑작스럽게 유랑체가 일으키는 사건들이 많아져서 작업속도가 더뎌졌고, 덕분에 요 며칠은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일하는 탓에 기욱 씨에게 온 연락도 제때 못 받은 경우가 많았다. 연락을 못 받은 것이 미안해서 최근에 열린 전시회에 화환을 늦게나마 보내었지만 그래도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 일이 마무리 되는데로 그의 집으로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수일을 일에 몰두하다보니 급하게 잡힌 일들을 모두 해결할 수 있었다. 이틀밤을 꼬박 샌 나는 잠시 눈 좀 붙이고 나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소파에 누워서 잠에 들었다. 잠들기 직전에 휴대폰이 짧게 진동했지만 그것까지 확인하기에는 내가 너무 피곤했다. 급한 일이라면 전화로 하겠지…

자연스럽게 눈이 떠지며 주변을 살펴보니 아까 잠들었던 소파 위가 아닌 내 방의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잠결에 침대로 이동한 것인가 싶었지만 꿈도 꾸지 않을정도로 깊게 잠들었던터라 영문도 모른채 침대에서 일어났다. 휴대폰은 충전기가 꽂혀있었고, 시간을 확인해보니 저녁 8시가 넘은 늦은 시간이었다. 이 시간에 기욱 씨의 집을 말없이 찾아가기엔 민폐라고 생각하며 사과의 문자를 보내려고 어플을 여니 미확인 알림이 여러건 있었다.

[루리, 오늘도 바빠?]

이건 일주일 전 문자

[많이 바쁜가보네. 한가해지면 연락해. 널 위한 서프라이즈를 준비해뒀어.]

이건 6일전 문자

[화환 보내줘서 고마워. 덕분에 힘이 나네. 너도 남은 일 힘내라고 선물을 준비했는데 언제쯤 올 수 있어?]

이건 전시회의 마지막 날이던 나흘전의 문자

[일이 거의 마무리 되었다고 들었는데 오늘 찾아가도 될까?]

[루리, 집 앞인데 자?]

그리고 이 문자들이 오늘 받은 문자다. 시간을 보니 내가 잠들기 전에 울렸던 진동이 기욱 씨의 문자였던 것 같다. 헛걸음을 하게 만든 것 같아서 미안했다. 방을 나가서 거실로가니 못 보던 메모가 보였다. 거실 탁상으로 다가가서 메모를 확인했다.

[초인종을 눌러도 답이 없길래 멋대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가. 이 무례는 나중에 청구해줘. 소파에서 불편하게 자고 있길래 침대로 옮겨줬는데 좋은 꿈을 꿨을까? 널 주려고 사온 보양식도 있는데 이건 주방에 끓여뒀어. 일어나면 꼭 먹어. 고생많았어, 루리. 푹 자고 나중에 보자.]

메모를 보고서야 내가 침대에서 자고 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마 문자에 답장도 없고 초인종에도 대답하지 않는 내가 걱정되서 여기까지 찾아온 것이겠지. 조심히 침대에 옮겨주고 보양식까지 준비해준 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부엌으로 가서 그가 말한 보양식을 확인해보니 연포탕이 있었다. 해산물을 좋아하는 기욱다웠다. 언제 해두고 간 것인지 아직 따듯한 연포탕을 맛있게 먹고 가볍게 샤워한 후 집을 나섰다.

집 근처 꽃집에서 꽃다발을 사서 기욱의 집으로 향했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걱정되긴 했지만 지금 그가 보고 싶으니까 찾아가봐야지라는 생각이었다. 조심스럽게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거실에서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기욱이 보였다. 발소리를 죽이고 천천히 그의 뒤로 다가갔다.

“잘 잤어?”

“알고 있었어요?”

그가 몸을 돌리며 나와 마주보았다. 조심히 들어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들켰었나보다.

“모를리가 없지.”

“놀래켜주려고 연락없이 왔는데 아쉽네요. 이거 받아요, 기욱 씨 주려고 사왔어요.”

“예쁘네. 무슨 꽃이야?”

“달리아요.”

“고마워.”

“…꽃말은 안 물어봐요?”

“무슨 꽃말인데?”

내가 물어보자 그가 개구진 웃음을 보이며 물어왔다. 눈이 휘어지며 부드럽게 바라보는 그를 보며 천천히 말했다.

“하얀 달리아는 친절에 감사한다라는 뜻이고, 적색은… 당신의 사랑이 나를 행복하게 합니다.”

내가 말한 꽃말에 눈을 크게 뜬 기욱을 보며 조금 더 용기가 생겼다. 내일이 되면 부끄러워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솔직해지고 싶었다.

“그동안 제대로 문자에 답장도 못하고 자주 만나지도 못하는 것이 미안해서 이렇게 늦게 불쑥 찾아왔는데도 반겨줘서 고마워요. …보고싶었어요.”

“나도. 오랜만에 봐서 너무 좋네. 보고싶었어.”

기욱 씨는 꽃다발을 옆에 조심히 내려놓고 나를 끌어안았다. 나도 그를 마주안고 쿵쿵 뛰는 그의 심장소리를 들었다. 그렇게 서로 마주안고 있으니 기욱 씨가 말했다.

“사실 몇번이고 너희 집에 찾아가려고 했어. 네가 출장으로 멀리 간 적도 있어서 못 본 적은 많지만 이렇게 일주일이 넘게 연락을 못하던 것은 처음이었잖아. 근데 이렇게 날 보러 와줘서 지금 너무 행복해.”

“저도 기욱 씨 보고 싶어서 이 시간에 보러 온거니까…그…자고가도…될까요?”

“물론이지.”

기욱 씨는 날 안아들고 침실로 들어갔다. 마무리 되지 않은 그림을 신경쓰지 않는 것인지 그는 날 침대에 앉히고 씻고나왔고, 우린 나란히 침대에 누워서 서로를 바라봤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기욱 씨는 금방 잠들었다. 나는 그의 이마에 살짝 입맞췄다.

“잘 자요, 기욱 씨. 좋은 꿈꾸세요.”

—————

띵동- 초인종을 누르는 남자는 어딘가 조급해보였다. 발을 이리저리 구르면서 안에서 대답이 들려오길 기다렸지만, 그는 들려오지 않는 대답에 결국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루리, 어디있어?”

그가 두리번 거리면서 안으로 들어가니 소파에 누워서 자고 있는 루리를 보였고, 그 모습을 보고 안심한 듯 풀어진 얼굴을 한 기욱이 소파에 잠든 루리에게 다가갔다.

“눈 밑에 다크서클 좀 봐. 내 문자에는 답장도 못할정도로 바빴던거야?”

대답이 돌아오지 않지만 기욱은 잠든 루리의 눈 밑을 살짝 쓸어보고는 몸을 일으켜서 천천히 루리를 안아들었다. 조심스럽게 움직인 덕분에 잠에 빠져있는 루리는 아무것도 모르는채로 침대로 옮겨졌다. 이불까지 꼼꼼히 덮어준 기욱은 루리를 안아들면서 내려놓았던 봉지를 들고 부엌으로 향했다.

며칠동안 헌터 일과 작곡 의뢰를 동시에 처리하면서 피곤할 루리를 위해서 그가 준비해온 보양식이었다. 익숙하게 서랍장에서 냄비를 꺼내서 음식을 넣고 끓인 기욱은 음식이 끓어오를 때까지 기다리다 팔팔 끓을 때 불을 끄고 루리가 자고 있는 방의 안으로 들어갔다.

“난 바람맞히고 잘 자네.”

색색 숨을 내쉬며 자고 있는 루리의 입에 짧게 입맞춘 기욱이 루리의 머리를 만지다 문을 닫고 나갔다. 그녀가 일어나면 바로 먹을 수 있도록 잊지않고 짧은 메모도 남긴 그는 집으로 돌아갔다.

소식이 닿지 않아 불안하던 마음은 어디가고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기욱은 거리를 천천히 걸어서 집으로 갔다. 저녁 때쯤 한 번 더 연락할까 고민했지만 기왕이면 푹 쉬었으면 하는 마음에 그는 연락하지 않고 작업하는 것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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