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필 현대극 크오물 - 1

송하영과 허경훈

피해자의 나이, 고작해야 갓스물. 하영은 제 손에 들린 서류를 손으로 쓸었다. 피해자의 성별, 나이, 인적사항, 피해자의 동선, 그 사이 피해자가 접촉한 인물... 그런 것들이 적힌 보고서였다. 이내 생각에 잠겼던 하영이 의자를 박차고 나갔다. 뒤에서 무슨 말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지만, 지금은 이것이 더 중요했다.

하영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피해자가 살해당한 사건현장이었다. 제가 놓친 곳은 없는가, 어딘가 범인이 남겨둔 흔적이 없는가... 이미 감식반이 훑고 지나갔다고 해도, 어딘가에는 흔적을 남겨두었을 것이다.

피해자는 집에서 사라졌다. 엄밀히 말하면 실종사건이지만, 경찰은 이를 납치라고 전제를 두었다. 피해자가 집에 있다는 사실을 본 사람이 있고, 피해자가 나가려면 거실에 있는 가족을 지나쳐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피해자는 제 방 안에서 사라진 것이다. 허나 창문이 깨진 흔적은 없다. 이상한 일이었다. 집 안에 범인의 흔적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피해자는 누군가에게서 저항하였고, 그렇게 사라졌다.



수많은 의문점. 수많은 이상함. 하영은 생각했다. 자신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는지에 대해. 

그러던 중, 인기척이 느껴졌다. 누가 이곳에 온 건가? 하영이 고개를 돌리자 한 남자가 서있었다. 고개를 두리번두리번 거리면서. 온다면 경찰이겠지만, 그리 보이지는 않았다. 하영은 갑작스레 나타난 남자를 쫓아 등을 향해서 물었다.



"...누구십니까?"



휴대폰, 카메라, 수첩, 기록할 만한 것 하나 없으니 기자는 아니다. 그렇다고 타지역 경찰이라기엔 행동거지가 맞지 않고, 피해자의 가족이라고 하기에도 굉자히 침착하고 오히려 표정만큼은 밝다. 현장을 목격한 자라면 이곳에서 기웃거릴 것이 아니라 경찰서로 향했을 것이고, 단순히 일반인이 들어왔다기엔... 현장을 막고 있는 사람들을 요령 좋게도 지나온 이였다.

충분히 판단을 했고, 만약 현장을 훼손시킬시 제지를 할 생각으로 남자를 붙든 송하영은, 그 특유의 무덤덤한 표정에 의문을 품었다. 그렇다고 이 자가 범인일 리는 없지 않던가. ...혹여 있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기억해두어야겠지만, 일단 현재까지 경찰 수사 중인 곳에 누가보아도 수상하고 당당하게 들어오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혹시 형사님이세요? 딱 느낌이 그런데. 근데 형사면 저어-기 사람들이랑 같이 다녀야 하는 거 아니에요?"

"누구시냐고 물었습니다."

"아, 잠시만요. 저는..."



이내 남자가 제 품을 주섬주섬 뒤적였다. 그리 뜨거운 햇빛도 아닌데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모습이 이질적이었다. 남자의 품 안에서 나온 것은 붉은색의... 명함이었다. 건넨 손에는 상처가 많았다. 평범하지 않은 명함 위에 허경훈, 이라고 적힌 것이 이름인듯 싶었다. 얼결에 받아든 명함과 함께 남자를 보았다. 



"퇴마사 허경훈입니다. 허 실장, 이라고 불러주세요. 혹시 방송에서 보신 적 없나? 저 나간 적 꽤 많은데. 대한민국 넘버원-"



일단, 나가주시죠. 그 말과 함께 남자를 이끌었다. 남자에게 악의는 보이지 않았다. 슬픔이 보인 것도 아니었다. 있다면 피해자를 향한 연민? 그러나 명백히 타인을 향한 반응이다. 그래서 의문이었다. 이 남자는 왜 피해자의 집에 찾아왔는가. 사건이 일어났다는걸 몰랐다는건, 말이 안되는데.



"...피해자와 아시던 사이였습니까?"

"네? 어- 알던 사이, 는 아니죠. 근데 이 사건에 도움은 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받으시는건 형사님 자유긴 한데. 혹시 형사님이 이 사건 담당이에요? 그럼 잘됐네요!"



말이 참 많은 사내였고, 질질 끌려오면서도 입은 끝까지 움직였다. 원체 말이 없는 편인 송하영은 입을 꾹 다물고 건물 밖으로 나와서야 남자를 풀어주었다. 형사님 제 말 들으신건 맞죠? 그 물음에 하영은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사건 현장은, 수사를 진행 중이긴 하나 시간이 좀 흐른 뒤였다. 명백히 테이프는 붙여두었으나 다른 사건이 일어나자 열기가 식은 상태였다. 이대로라면 미제 사건이 될지도 모르는, 그런 상황.



"목격자시라면 서에 가서, 말씀해..."

"궁금하지 않아요? 왜 일어난 건지?"

"...네?"



하영과 경훈의 눈이 마주쳤다. 경훈은 무언가를 알고 있다고, 확신을 가지고 말했고, 하영은 그것을 지나칠 수 없었다. 이 사건 자체는 제 책임이 아니었다. 하지만... 하영은 피해자의 가족을 떠올렸다. 작은 것 하나라도 알고 있다면 짚고 넘어가야 했다. 결국 하영은 고개를 끄덕였고, 하영의 속도 모르고 경훈은 즐겁게 웃으며 그럼 카페라도 가서 이야기하자 말했다.



"어디...요?"

"카페요, 카페. 카페 몰라요? 차 마시고 커피 마시는 곳이요. 달달한 거 하나씩 하면서 이야기하자고."



...하영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


그는 우선 제 앞에 놓인 초코 케이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제 앞에 있는 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든 채 선글라스를 올리는 모양새도 바라보았다. 지금 제가 뭘하고 있는 것인지... 솔직히 조금 어이가 없었다. 지금이라도 가야하나, 그런 생각을 했지만 단 하나의 가능성이 하영을 붙잡았다. 이 사람이 무언갈 알지도 모른다는. 그렇기에 무작정 놓을 수 없었다. 하영의 눈으로 보았지 않았던가. 가족들이 슬퍼하는 모습을.



"제 소개는 했으니까 일단, 소개 좀."

"송하영, 입니다."

"과묵하신 분이네요? 일단은- 형사님이라고 부를게요. 상관없죠?"



빨대를 입에서 떨어트린 경훈이 하영을 향해 물었다. 하영은 답을 하지 않았지만, 경훈은 딱히 상관이 없었던 듯했다. 그러면 형사님, 이게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는데요- 그리 말하며 경훈은 빨대로 제 커피를 휘저었다. 달그락, 얼음과 유리가 부딪히는 소리가 울리고, 경훈은 입을 열었다. 



"형사님은 귀신 믿어요?"

"...글쎄요."



글쎄, 라 답하긴 했지만 따지자면 믿지 않는 쪽이었다. 귀신이 나오는 것을 싫어한다거나 하진 않았지만, 진심으로 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사람에게 집중하기 더 바빴던 하영이고, 영적인 것에 기대기엔 세상이 너무 험하게 굴러갔다. 귀신도 귀신이지만, 애초에 성당을 나가지 않은지도 오래되었지 않던가. 그런 것을 믿고, 혹여 기대기에 하영은 많은 일을 겪었고, 남들보다도 더 깊게 느꼈다.

경훈은 그 대답이 불만스러운지 에이, 하고 볼멘 소리를 내었다. 믿으면 믿는다, 안믿으면 안믿는다... 그것도 아니고 글쎄요, 라니.



"그렇게 애매하게 대답하기 있어요? 그럼... 귀신 무서워하세요?"



사람이 더 무섭죠. 이번에는 분명한 답으로 돌려주었다. 귀신보다 사람이 무섭다. 귀신에 두려워하기엔 사람을 막는 것도 바빴다. 존재가 확실하지 않은 것은... 쉽게 믿을 수 없었다.

경훈이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분식집을 갈 걸 그랬나, 그리 중얼거리는 소리에 하영이 살짝 의문을 담았다. 경훈은 에휴, 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형사님은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시나봐요, 그런 말에 하영은 부정하지 않았다. 부정할 이유도 없었고 말이다. 경훈은 제 품을 뒤적이더니 수첩 하나를 꺼내 펼쳤다. 살짝 낡은 수첩의 빈 공간에 볼펜 하나를 꺼내며 경훈이 말했다.



"이 사건, 사람이 했다기엔 좀 이상하지 않아요?"

"...무슨 소리입니까?"

"말했잖아요, 제 직업. 저 퇴마사라고."



...

들어야 할까. 하영에 그런 생각이 스쳤다. 종종 귀신의 소행이라는 이유로 수사방해를 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다. 이런 식으로 시선을 끌곤 자연스럽게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대부분 그런 이들을 사이비라고 부르고 말이다. 이른바 수사에 방해가 되는 족속들 중 하나. 그래서... 하영은 책상을 잡았다. 더 듣지 않고 일어날지 말지 고민하는 몇 초에 경훈이 급하게 하영의 손목을 붙들었다. 



"아니, 잠깐만요. 그런 눈으로 보지 마시구요..."

"귀신의 소행이다, 라고 말하시려는 겁니까?"

"가해자 증거 없죠."



경훈이 하영의 눈을 보며 말했다. 눈은 마음을 보는 창이라고 했던가. 눈에는 많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곧은 눈동자, 그리고 입에서 나온 명백한 사실에 하영은 손에 힘을 풀었다. 이야기를 들을 것 같단 확신이 생겼는지 경훈은 작게 안도의 한숨을 쉬곤 말을 이었다.



"이거, 처음 일어난 일 아니에요. 비슷한 일이 다른 지역에서도 일어났거든요."



경훈이 몇 장의 종이를 내밀었다. 수첩을 찢은듯한 모양새의 살짝 헤진 종이엔 여러 곳의 지역명이 쓰여있었고, 이들 중 하영의 눈에 익은 사건들도 존재했다. 이어서 경훈이 사진을 건넸다. 건넨 사진은... 모두 집 안이었다. 그 중에서 사건이 일어난 방 안, 인 듯했다. 몇몇은 익숙치 않은 장소였지만, 몇몇은 하영도 다녀 온 곳이었다. ...어떻게 사건 현장 내부를 찍은 거지. 그 의문을 담은 하영을 아는지 모르는지 경훈이 사진들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공통점이 하나 있어요. 그게 뭔줄 알아요?"

"피해자가 사라진 장소에, 닫힌 목재 옷장이 있다는 거죠."

"맞아요."



기이하긴 했다. 공통점이 정말 그것 하나였으니 말이다. 모든 사건 현장 곁에는 목재에, 닫힌 양문형 옷장이 존재했다. 그러나 그것을 열면 다른 특별한 것이 존재하진 않았다. 옷장 안에는 그 용도 그대로, 옷가지들 뿐이었다. 금전적인 것이 있다거나, 물건이 흐트러져 있는 것도 아니었고, 특별히 없어진 물건도 존재하지 않았다. 금품 갈취는 목적이 아닌, 단순 실종, 혹은 살인. 



"집집마다 방 안에 옷장이 무조건 있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모양도 비슷하죠. 옷장 종류가 얼마나 다양해요? 그런데 그 중에 양문형 옷장, 소재는 목재, 항상 닫혀 있고, 피해자가 끌려간 흔적이-"

"...옷장을 향한다."

"좋아요!"



경훈이 바로 그거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하영은, 아직도 말도 안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제 앞의 남자는 멋대로 대화를 이끄는 재주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하영은 경훈의 말을 서서히 이해하기 시작했다. ...범인이 사람이 아니라 영적인 무언가란 주장은 아직도 섣불리 받아들이긴 힘들었지만 말이다. 하영은 서서히 제 기억을 복기했다. 제가 보았던 사건, 뉴스, 또는 보고서들. 분명... 



"...타지역에 비슷한 사건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건들은 많아봐야 초등학생 정도의 어린아이들에게서 일어났고, 이번 사건은..."

"갓스물이랬죠. 완전히 똑같지는 않은게 맞아요. 그래도 일단 옷장, 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서 저도 온 거니까요."



그 사건은 이미 해결된 문제기도 하고... 경훈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명진'은 분명 제가 상원과 함께 해결한, 그런 문제였을 텐데... 물론 해결 사실이 알려지진 못했지만. 그나저나 어째서 유사한 사례가 이제서야 나타난 걸까. 몇 사람들 사이에 퍼진 인식을 이용해 흉내내기라도 한 걸까? 그렇다면 지능이 꽤 높은 악귀일지도 몰랐다. 본인의 욕망과 원한을 잠시 물러둘 줄 아는, 욕망과 원한보다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릴 줄 아는, 아직 이성이 남은 악귀. 



"일반적인 퇴마사와는 다를지도 모르지만- 일단 저는, 피해자의 가정환경, 지금까지 일어난 사건들과의 공통점, 그리고 주위에 있는 사물들을 살펴요. 저주 걸린 물건들, 하는 거 있잖아요."

"저주... 요."

"길바닥에 널린 거 함부로 주워서 가지고 오면 안된다는 말 들은 적 없어요? 거기 액이 붙어있을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가지고 오지 말라는 거에요."



경찰은 대부분, 영적인 것을 믿지 않는 사람이 많다. 직업적으로 그런 것에 대해서 사기라느니, 하는 문제로 수사할 일도 종종 있고, 사람을 상대하다보면 독실한 신자도 인간이 더 무섭다며 생각을 잠깐 뒤로 물리기도 했다. 하영은 신을 믿고 싶었지만, 사람들의 면면을 보다 지친 쪽에 가까웠다. 그래, 지친 상태에서 이런 이야기를 듣자하면... 아무리 생각해도 힘들었다. 이 시간에 증거를 찾는 쪽이 나을 것이다. 하영이 몸을 일으켰다.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가해자의 증거가 없지 않아요?"



경훈이 다시금, 말 한 마디로 하영을 붙들었다. 



"피해자의 흔적은 남아있는데 가해자의 증거는 하나도 없잖아요. 흔적만 보면 분명 가해자가 있어야 하는데, 지문이고 뭐고 하나도 없는게 이상하다는 생각... 안해보셨어요?"



가해자 증거가 없다. 감식반은 이미 드나들었는데도 그 흔적 하나가 없다. 족적도, 지문도, 전부... 무언가를 만진 흔적도 존재하지 않았고, 미제 사건이 되는게 아니냐는 말이 농담식으로나마 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건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이야기였다. 증거를 찾는데 난항을 겪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는, 적어도 하영은 본 기억이 없었다. 그런 기사가 떴다면 욕짓거리를 내뱉을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도 조용한 것을 보면 하영만 모르는게 아닐 것이다. 하영이 숨을 내뱉었다.



"어떻게... 알고 계십니까."

"그 흔적, 저만 알 수 있어요. 아니지, 저는 알 수 있어요. 분명 도움이 될 거에요, 형사님."



네?

그리 묻는 목소리가 어쩐지 절박해보였다. 하영은 주위에 조언을 얻을 다른 이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복잡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제가 바보같은 짓을 하는건 아닐까, 경찰이면서 속임수에 넘어가는건 아닐까... 하지만 저 눈에 담긴 감정은 진실일 텐데. 아니, 그것은 어떻게 확신하지? 물음과 물음이 뒤섞였다. 인간을 전부 알 수는 없으니, 오로지 자신이 판단하고 감내해야만 했다. ...저 사람과 수사를 한다면 서 내에서 말은 꽤 잘 돌아다닐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상관없었다.

어차피 하영은 관계를 더 늘릴 마음이 없었고, 혼란스울 때는 피해자와 피해자의 가족만을 생각하기로 했으니까... 그러니까... 



"실종자, 찾을 수 있어요."



딱 한 번만.

속는 셈치고, 이번 한 번만 어리석은 선택을 하기로 했다.



"...좋습니다."

"오케이! 잘 부탁드립니다!"



그게 나중에 후회할 일이더라도, 하영도 이 사건에 절박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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