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만리 리플레이

제 2장 上. 금강야차와 달걀귀신

부셈이

봉천에 도착하기 전, 광야에서의 에피소드를 한 번 더 플레이 할 거예요.

광야를 지나던 PC들은 만주의 소수민족, 에벤키족의 마을에 도착해 머뭅니다.

백팔요괴단의 일원이자 팔천(八賤, 백팔요괴단의 여덟 간부)인 금강야차가 여러분을 습격해올 거고요.

미노루가 금강야차를 알고 있으니, 금강야차의 복선을 미리 알려드릴게요.

금강야차의 중심 복선은 ‘백팔요괴단의 탕아’입니다. 백팔요괴단에서도 애물단지, 말썽쟁이 같은 그런 포지션인거죠.



에이미

거기서 탕아라면 얼마나 막장인 거야?



부셈이

나이는 쿠라마보다 2살 많고요.

엄청난 근육질에 역삼각형 상체의 거구, 구릿빛 피부에 온몸에 흉터가 많고요.

금강야차라고 불리는 이유는 금붙이 이런 걸 엄청 좋아해요. 금으로 된 장신구를 엄청 많이 하고 다니고요.

엉덩이 아래까지 내려올 정도의 산발에, 만화적으로 표현하자면 상어 이빨의 위험해보이는 미남 입니다.

키는 석진이보다 머리 한 개 정도 위, 그러니까 210cm쯤 되고요.

갈등 복선은, ‘쿠라마 그 잡년이 나보다 나은 게 뭔데?’. 

물귀신이 같은 백팔요괴단 일원들 중에서도 쿠라마를 유독 특별하게 대했잖아요?

그에 대한 불만, 질투를 품고 있는 거죠. 백팔요괴단에 함께 있던 시절에도 엄청나게 사이가 나빴을 것 같아요.

성격 복선은 ‘여기 나보다 센 놈 있냐?’

능력 복선은 ‘30근 야차금쇄봉’.

30근 야차금쇄봉이 얘가 쓰는 무기예요. 쇠로 된 도깨비 방망이를 쓰는데, 30근이면 20kg 정도죠. 이런 걸 자유자재로 다루는 거죠.

얘도 어릴 때 물귀신에게 거둬져서 키워졌고, 들어온 시기는 쿠라마와 비슷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물귀신이 쿠라마를 대하는 태도와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다르니까, 물귀신에게 비틀린 인정 욕구를, 쿠라마에게는 질투와 미움을 느끼는 거죠.



하누

미노루는 편애를 원해서 받은 것도 아니고, 물귀신의 애정은 오히려 가혹한 고통이었을텐데 그걸 갈망하는 사람이 있다는게 환장할 노릇이었겠네요.

 

 

에이미

금강야차가 보기에 미노루는 그냥 예쁘게 차려 입고 가서 하룻밤 푹 자고 나오면 물귀신에게 칭찬받는 걸로 보일테니까요.

그런데 본인은 암만 굴러도 물귀신의 그저그런 수족 취급인게 바뀌지 않고.



부셈이

부모 관심받고 싶어서 사고치는 자식 같은거죠.

쿠라마가 도망치기 1년쯤 전에 사고를 친 후 물귀신에게 버려져서 자기 패거리들을 끌고 다니고 있습니다.

현재는 모종의 이유로 인해서 여러분을 쫓게 되어, 세션 도중에 등장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금강야차와 동행하는 또 다른 백팔요괴단의 일원, 달걀귀신이 있습니다.


달걀귀신의 복선 알려드릴게요.

중심 복선은 ‘백팔요괴단의 기마대장’.

갈등 복선은 ‘인간의 자식에서, 귀신의 자식으로’.

능력 복선은 ‘에벤키족 늑대 사냥꾼’.



에이미

얘도 에벤키족이었구나!



부셈이

그리고 또 다른 능력 복선은 ‘충성스러운 할카와 루키’.

할카는 에벤키어로 망치라는 뜻이고, 얘가 타고 다니는 순록입니다. 에벤키족은 유목민족인데 말 대신에 순록을 타고 다니거든요.

왜냐하면 순록은 눈이 내리는 환경에 적합하고, 지구력이 높아 오랜 시간 달릴 수 있고, 순간 속도가 80km까지 나와요. 말 못지 않게 빠릅니다.

루키는 에벤키어로 화살이라는 뜻이고 검독수리입니다. 매 사냥꾼들이 사냥에 쓰는 그 새예요. 직접 길들인 순록과 검독수리를 휘파람과 기합으로 명령을 내려 부립니다.

 

 

에이미

달걀귀신 왜 이렇게까지 훌륭해졌어? 처음 나왔을 때는 그냥 엑스트라였는데…… (감격)

그런데 달걀귀신은 지금 백팔요괴단 소속이 아닌가요? 왜 금강야차와 함께 다니고 있죠?



부셈이

물귀신이 백팔요괴단에게 여러분을 잡아오라고 명령을 내렸는데, 여러분을 찾으러 돌아다니다가 금강야차와 합류하게 된 거죠.



버팬

달걀귀신의 갈등 복선이 ‘인간의 자식에서, 귀신의 자식으로’라는 건 어릴 때 거둬진 애들과 달리 꽤 오랫동안 일반인으로 살았다는 거겠네요.



부셈이

달걀귀신은 오랫동안 한 에벤키족 부족의 부족장으로 살았어요.

에벤키라는 말은 숲속에서 사는 사람들, 숲의 민족이라는 뜻이에요. 말 그대로 숲과 산, 초원을 떠돌면서 유목과 사냥을 하는 민족이거든요.

하지만 만주가 개발되기 시작하고 군웅할거의 시대가 오면서 마적들에 의해 부족이 멸망한 거죠.

마적들에게 습격을 당해서 모든 부족민들이 학살당하고 본인만은 전신 화상을 입은 채로 살았어요.

그래서 혼자 마적들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마적단 야영지를 습격했는데, 상당한 성과를 거두기는 했지만 어쨌든 쪽수에서 차이가 나니까 붙잡힌 거죠.

그런데 그때 마침 백팔요괴단이 습격을 해와서 마적단을 전부 쓸어버린 거예요.


에벤키족은 샤머니즘 신앙을 갖고 있어요.

그러니까 숲, 산, 땅, 동물에 전부 신령이 깃들어있고, 자신들이 사냥을 하는 것도 자신들이 잡는 게 아니라 사냥감들이 자신들에게 잡히러 와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신들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서 말이죠. 그리고 자연 현상이나 재난에 대해서는 신령들이 노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죠.

순록의 개체수를 늑대가 유지시켜주고, 늑대의 개체수를 호랑이가 유지시켜주는 것이 자연의 순리잖아요.

그런데 만주가 개발되고 자연이 황폐해지면서 호랑이가 멸종되어가고, 늑대가 너무 많아지고, 에벤키족들이 유목할 순록이 부족해져요.

그래서 신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달걀귀신은 마적을 도륙하는 물귀신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한 거죠. ‘그 신들이 귀신이 되어서 돌아왔다’고.

그때 달걀귀신은 ‘귀신의 자식이 되리라’고 결심합니다.

물귀신의 자식이라기보단 오른팔 같은 포지션이고요. 강하고, 머리도 상당히 좋은 편이고, 팔천 중 제일 상식인이에요. 하지만 물귀신에 대한 충성심은 광신에 가깝죠.

늑대들이 무리를 유지하기 위해 병들고 나이든 개체를 죽이듯이, 백팔요괴단이라는 무리를 이끌기 위해 오른팔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합니다.

백팔요괴단의 장남 같은 포지션이라고 할 수 있죠.

지난 세션 도입씬에서 미노루와 오도깨비를 눈감아주고 그러긴 했지만, 이게 정말 백팔요괴단에 해가 되는 일이라고 판단한다면 미노루라도 죽일 수 있는 그런 인물입니다.



에이미

굉장히 힘들었던 사람이 사이비 종교에 빠지면 광신도가 되는 모습을 보는 것 같네요.



부셈이

달걀귀신은 30대 초반의 남성입니다. 전신화상을 입었기 때문에 머리털이 다 빠졌고, 붉은 화상 흉터가 얼굴을 비롯한 온몸에 있어요.

턱수염을 기르고 있습니다. 입은 옷은 에벤키족 전통 복장인데, 소매가 넓고 모피가 달려있고 유목민 특유의 무늬가 수놓아져있는 그런 옷이에요.

등에는 화살통을 매고 다니고, 순록을 타고 다니죠.


그리고 물귀신에 대해서도 곧 회상씬을 하게 되겠지만 추가 정보가 있는데, 물귀신은 전라도의 백정 집안에서 태어나서 신안의 섬으로 팔려가듯 시집을 갔어요.

신안은 섬이 천 개가 넘게 있거든요. 현대에 와서도 서로 고립된 작은 섬들이 많죠. 완전히 닫힌 사회인 거예요.

그런 곳에서 여자, 그것도 백정, 그 사회의 가장 낮고 비천한 존재로 태어난 거죠. 그곳에서 팔려 가듯 시집가서 평생 농사짓고 물질하고 살았어요.

사람으로서 겪을 수 있는 모든 수모를 다 겪으면서도 유일하게 사랑했던 것이 자식인데, 그 자식을 비극적으로 잃고 절망한 거죠.

거기 사는 여자들은 평생 섬 바깥은 구경도 못 해보고 섬에서 죽을 때까지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자신도 그러리라 여겼는데 딸만큼은 내보내고 싶었던 거예요.

그래서 남편의 쌈짓돈을 조금 훔쳐 바다 건너 목포로 보내려 했는데, 도망치려는 게 걸려서 두들겨 맞고, 그 과정에서 딸도 죽고. 그렇게 된 거죠.

물귀신이 미노루에게 유난히 집착하는 건 딸과 관련이 있을 거예요. 딸과 미노루가 굉장히 닮았다거나, 성격이 비슷하다거나.



에이미

와, 눈앞에서 딸이 맞아 죽는 거 봤겠네…… 미친다…….



부셈이

그럼 이제 진짜로 시작해볼게요.

제 2장 상편, 금강야차와 달걀귀신.

이야기는 달걀귀신의 과거에서 시작됩니다.

에벤키어 고유 명사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아버지는 아민, 어머니는 애니, 할머니는 아타, 늑대는 네루키, 사람은 일레, 호랑이는 티그르라고 합니다.


어린 달걀귀신이 설피를 신고 화살을 든 채 아버지와 함께 눈 쌓인 산을 오르고 있습니다.

수염이 덥수룩한, 노회한 에벤키족의 사냥꾼인 달걀귀신의 아버지가 눈에 찍힌 늑대 발자국을 흘끗 보고 주변을 살피다가, “늑대는 저쪽 방향으로 이동했구나.”

어린 달걀귀신은 입김을 뿜으면서 산 아래를 내려다봅니다.

산 아래는 안개에 잠겨 있고, 저 멀리에는 흑룡이 용솟음치는 듯한 아무르강이 흘러가는, 아름다운 만주의 대자연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흘러 사냥이 끝난 뒤. 늑대의 시체가 창에 꽂혀 에벤키족 마을 한복판에 걸려 있습니다. 늑대 머리에는 꽃과 화관 같은 것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고요.

그 앞에는 그릇에 담긴 피와 많은 음식들이 차려져 있습니다. 늑대가 신들의 나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예를 갖추는 거죠.

달걀귀신의 아버지는 늑대의 피를 찍어서 이 마을을 지키는 사냥꾼이 될 달걀귀신의 얼굴에 그어줍니다.

 

이후, 두 사람이 함께 산을 오를 때. 달걀귀신이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아민, 나는 이 땅 최고의 사냥꾼이 될 거야. 네루키들을 모두 잡아서 만주 땅 전체에 내 이름을 높일 거야.”

그러면 아버지가 말합니다.

“이 바보 같은 놈아, 네루키들의 씨가 마르면 순록들이 늘어난다. 사슴과 순록이 늘어나면 초원의 풀은 메말라버리지. 그럼 우리는 굶어 죽게 되는 게야.”

“하지만 네루키는 순록을 죽이는 나쁜 놈들이잖아. 우리가 잡아야 되는 거 아니야?”

“이 땅에는 두 명의 사냥꾼이 있다고 할아버지가 그랬다. 하나는 일레(사람), 하나는 네루키(늑대). 일 년 중 반은 네루키가 일레를 사냥하고, 나머지 반은 일레가 네루키를 사냥하지.”

“잠깐 아민, 그럼 티그르는 뭐야? 티그르야말로 최고의 사냥꾼 아니야?”

“티그르는 사냥꾼이 아니다. 신이지.”

아버지가 그렇게 말하면, 저 산 너머에 거대한 호랑이가 자기 새끼들과 침엽수림 사이로 사라지는 것이 보입니다.

“티그르는 네루키의 숫자를 조절하고, 네루키는 순록의 숫자를 조절하지. 이 땅의 의지 앞에 네루키와 일레는 아주 조금의 앞만 내다볼 수 있을 뿐이다.”

그 말을 듣는 어린 달걀귀신의 눈과 호랑이의 눈이 겹쳐보이더니, 불길이 그 눈동자를 뒤덮습니다.

한밤중, 에벤키족 마을이 불타고 있습니다. 부족민들이 칼과 활을 들고 습격해온 마적단에 맞서싸우다 죽어나가고, 장성한 달걀귀신의 몸에 그 피가 튑니다.

마적단이 질렀던 불이 텐트와 에벤키족 전통 가옥에 옮겨붙더니, 불타는 기둥 하나가 무너지면서 달걀귀신의 몸 위로 떨어집니다.

새볔녘에 정신을 차려보면, 안개 속에 잿가루가 날리고 마을에는 폐허와 시체만이 가득합니다.

 

다시 시간이 흘러, 마적단에게 붙잡힌 달걀귀신의 앞에 백팔요괴단의 그림자가 드리웁니다. 물귀신과 그 동료들이 마적단을 무자비하게 도륙내고 있습니다.

‘그 여인을 보고 사라졌던 신들이 귀신이 되어 돌아왔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사냥꾼이라 믿는 건방진 놈들에게 사냥감이 되는 기분을 깨닫게 해줄 것이다.’

‘그것이 이 땅의 뜻이다.’

 

그리고 다시 현재.

등에 화살통을 매고 있는 달걀귀신이 외딴 초원 한복판에 있는 기생집 같은 곳으로 들어갑니다.

방에는 전날 벌어졌던 거나한 술판의 흔적이 가득하고, 기생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잠들어 있어요. 마적 패거리들도 곯아떨어져 있고, 금은보화도 곳곳에 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30근짜리 야차금쇄봉을 옆에 꽂아두고 코를 골며 퍼질러 잠든 금강야차의 모습이 보입니다.


달걀귀신이 “금강야차, 일어나라.”라고 하면, 금강야차가 흐느적거리며 일어납니다.

“이야, 이거 달걀귀신 아니야. 쫓겨난 아우 뭐가 이쁘다고 보러 오셨을까?”

“물귀신의 명령이다. 넌 나랑 같이 가야겠다.”

“아, 그 일본놈들 의뢰 말인가? 뭐, 소문은 들었다만 관심 없수다. 내가 왜 예쁜 언니들을 놔두고 형님이랑 일본군 뒤치닥거리를 해야하지?”

“쿠라마 녀석이 사냥감을 가로챘다. 너도 관심이 있을테지.”

“쿠라마 그 변태 새끼 아직도 살아있답니까?”

“뭐, 지난 번에 봤을 땐 멀쩡해 보이더군.”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단 말이야. 엄마는 왜 그 새끼만 싸고 도는 거지?”

“갈 거냐 말 거냐?”

달걀귀신의 말에 금강야차는 “끙차.”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야차금쇄봉을 탕 하고 어깨에 걸칩니다.

“좀 쑤시던 판에 잘됐네. 겸사겸사 효도도 하고 말이야. 근데 그 여우 새끼, 죽여서 끌고 가도 되는 겁니까?”

금강야차의 말에 달걀귀신이 잠깐 과거회상을 합니다.

 

물귀신에게 이 명령을 받았을 때의 일입니다.

“쿠라마는 죽여서 끌고 가도 되는 거요?”

“쉽게 뒤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라고 약하게 키우진 않았응께.”

 

그리고 다시 현재.

“……그건 알아서 하라는군.”

달걀귀신의 말에 금강야차가 만족스러운 듯 씩 웃습니다.

“갑시다. 간만에 형제끼리 우애도 다지고.”

그러곤, 눈폭풍이 몰아치고 카메라가 훅하고 기생집에서 멀어지면서 PC들에게로 시점이 돌아옵니다.

PC들이 봉천으로 향하는 길, 에벤키족 마을에 가기 전에 광야에서 장면표로 한 장면 정도 진행하겠습니다.

 

 

에이미

셋 다 굴리나요? 아니면 한 명이 대표해서 굴리나요?

 

 

부셈이

셋 다 굴려서 아이디어를 얻어보죠. 결과에서 원하는 것만 사용해도 되니까.



버팬

좋아요. 한 번 굴려볼게요. (도르륵) 6. 행운. ‘쉼터를 발견-제공받거나, 찾고있던 무언가의 흔적을 발견합니다’네요.

 

 

하누

(도르륵) 3. 광야. ‘악천후, 마적단, 소수민족, 동식물 등으로 문제가 생긴다’. 지난 세션에서랑 같은게 나왔어요.

 

 

에이미

(도르륵) 1. 과거회상. ‘PC의 내면과 관련된 과거장면을 회상한다’.



부셈이

과거 회상은 에벤키족 마을에 도착해서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버팬

지금 목적은 에벤키족 마을로 가는 거죠?



에이미

행운이랑 광야로 에벤키족 마을로 가는 내용을 어떻게 재밌게 풀어낼 수 있을까요?



부셈이

예를 들어서, 소수민족 마을이 마적단에게 공격을 당하고 있는 걸 구해준다든지.

아니면 사냥감을 잡았는데 그게 에벤키족 마을 소유의 사슴이나 순록이라서 그걸 물어줘야 한다든지…….

 

 

버팬

그거 재밌겠네요.



에이미

아니면 에벤키족 인물을 우연히 도와주게 되는 건 어때요?

에벤키족 어린아이가 나오면 좋을 것 같아요. 몽희랑 비슷한 또래면 몽희가 그 아이와 얘기를 나누면서 할 수 있는 거리가 많이 생기니까요.



부셈이

아이가 순록치기일 수도 있겠네요.

몽희가 석진에게 사격을 배우는 건 어떨까요? 사격을 배우던 도중에 순록을 쏜 거죠.



하누

제 생각에 임석진은 몽희에게 아직 총을 가르쳐주지 않을 것 같아요.

몽희를 진심으로 좋아해서 따르는 게 아니라 마음에는 들지 않지만 할머니에게 빚이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도와주는 상태니까요.



부셈이

그럼 몽희가 계속 총을 가르쳐달라고 조르는데 석진이 거절해서 몽희가 혼자 총을 배우려고 나가서 순록을 쏘는 거죠.

좋아요, 그럼 어느 장면부터 시작할까요?



하누

몽희가 석진에게 총 가르쳐달라고 조르는 장면부터 했으면 좋겠어요.



부셈이

그럼 몽희가 살아있는 지도가 된 다음날부터 진행을 해보죠.

여러분은 바위와 바위가 겹쳐서 지붕처럼 된 곳에 모닥불을 피우고 지내고 있어요.

그곳에서 석진이 사냥을 하기 위해 무기 점검을 하고 있고, 미노루는 뭘 하고 있나요?



에이미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의욕이 없을 것 같아요. 내가 얘네를 따라가는 게 맞는 건지도 모르겠고, 많이 혼란스러워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서 아편을 피우고 있습니다. 석진에게 “멀었어?”라고 묻습니다.



하누

석진은 총을 분해해서 기름칠도 하고 닦고 조이고 뭐 그런 걸 하면서요, “재촉하지 않아도 곧 간다.” 하고는 혼자 나갈 준비를 합니다.



에이미

“누가 내 걱정 해서 하는 말이래? 저 빌어먹을 꼬맹이 말이야. 굶겨 죽이지는 말아야지.”



하누

인상을 쓰면서, “굶겨 죽일 생각 없어서 이러고 있는 거잖아.”



에이미

“그럼 좀 서두르던지! 처음에는 얼어 죽이려다 실패하고, 그다음에는 태워 죽이려다 실패하더니, 이제는 굶겨 죽이려고?”

 


하누

딸깍딸깍 하면서 총을 조립하고 있었는데, 그 딸깍거리는 쇳소리가 뚝 멈춰요. 잠시 말이 없어요.

전 몽희 하나를 살리기 위해 옛 동지들이 전부 죽도록 내버려 뒀어요.

그걸 안게 바로 어제의 일이고, 딱지도 안 덮인 상처를 숨기고 억지로 움직이고 있었는데 미노루에게 그런 말을 듣자 상처를 후벼파는 느낌이에요.



부셈이

문득 석진의 시선이 쌓아둔 짐으로 향해요. 그곳에는 폐허가 된 기지에서 주워온 김완의 의수가 놓여있습니다.

‘사람은 어느 역사에 자기 이름을 올릴지 선택할 순간이 반드시 오네.’

생전 마지막 대화에서 그 친구가 했던 말이 귓가에 들려오는 것만 같습니다.



에이미

석진의 시선 방향을 눈치채고 비아냥거려요.

“선택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자기 처지나 알고 말할 것이지.”



하누

죽은 친구를 조롱하는 말에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납니다.

“목숨이 아깝다면 그 입 다무는 게 좋을 거야.”

“난 널 일행으로 받아들인 적 없어.”

엄청 흉흉한 얼굴이고요, 총구를 위협적으로 미노루의 턱을 향해 들이밀어요.

“네 잘난 혓바닥이 아직도 까불 수 있는 건 오직 그 꼬맹이 덕분인걸 명심해라.”



에이미

위협에도 겁먹지 않고요. 씩 웃으면서 “사냥꾼 아니랄까 봐, 죽인다는 말 밖에 못하네.”



하누

욱해서 주먹을 들어 상대를 후려치려고 해요.



버팬

석진이 주먹을 들어올리는 찰나에 다급하게 와다다 달려와서는, “아저씨~!”하고 불러요.

“사냥하러 가는 거지?”



에이미

저는 몽희를 보는 게 아직 불편하기 때문에 몸을 돌려 앉아 아편을 계속 피우고요.



하누

석진은 총을 들고 역광을 받으면서 계속 서있어요.

핏기가 하나도 없이 창백한 얼굴에 바위 그늘에 가려져서 표정은 거의 안 보이는데, 두 눈만 형형히 빛납니다. 엄청 대박 화난 것 같아 보여요.

몽희의 말에 대답은 하지 않습니다.



버팬

웃는 얼굴 그대로 “아저씨, 나도 같이 가! 나도 총쏘는 법 가르쳐줘!”라고 해요.



에이미

얘 불쌍해 죽겠다 진짜, 어른들이 잘못했어.



하누

안 그래도 신경이 한도 끝까지 날카로워져 있는 상태인데요.

저는 몽희가 좋아서 따르는 게 아니고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따르는 거고, 몽희를 굉장히 철없고 미덥지 않은 아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상태에서 총 같은 위험한 걸 가르쳐주면 오히려 더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넌 이걸 배울 그릇이 못 돼.”

“너같이 천방지축인 녀석이 총 같은 걸 다뤄봤자 오히려 더 위험에 빠질 뿐이다.”

몽희에게 시선 한 번 안 주고 스쳐지나갑니다.

“만일 네게 무력이 필요한 순간이 오면 내가 대신하겠다.”

“그러니 넌 배울 필요 없어.”



버팬

넌 이런 거 못한다는 말에 쿠궁 하는 표정이 되고요.

잰걸음으로 석진이를 쫓아가면서, “아니, 내가 저승사자의 손녀인데 그릇이 못 된다니. 그럴 리가 없잖아!”



에이미

ㅋㅋㅋ 정작 할머니랑 피는 안 섞였는데!



버팬

“그리고, 나도 내 상황이 어떤지 알거든?”

“어떻게 아저씨가 나를 매번 지켜줄 수 있겠어!”

“난 그거야말로 현실성이 없게 들리는데?”



하누

완전 맞는 말이지만, 맞는 말이라서 더 인정하기 싫은 거죠.

저벅저벅하고 걸어가서 준비해놨던 총과 장비를 짊어지고, “집 잘 지키고 있어라.”라고 말하고 돌풍의 등에 올라탑니다.



버팬

“아저씨! 아저씨, 총 가르쳐달라니까?”

“정말 혼자 갈 거야?!”



부셈이

하지만 석진이는 몽희 말을 들은 체도 안 하고 멀어지겠죠.



버팬

석진이가 사라져간 풀숲 방향으로 계속 “아저씨! 아저씨!”하고 외쳐요. 몸짓 발짓을 하면서요.



에이미

미노루는 무기력하게 몸을 기대앉아서 아편을 피우며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고요.

몽희가 터덜터덜 돌아오자 비아냥 거립니다.

“어린 게 까져서 벌써부터 총질이나 하고 싶어하긴!”

“하기사, 이제 귀하신 몸이 됐으니 자기 몸 지킬 준비는 해야하나?”

“뭐, 사람 죽일 각오만 되어있으면 상관없겠지.”

“아가! 총 쏘는 데 기술 같은 건 필요없단다? 결의만 있으면 된다고.”

점점 아편에 절어서 맥락없이 헛소리를 하기 시작합니다.



버팬

미노루의 말에 고민에 빠진 얼굴이 됩니다. 그리고 자기 짐을 쌓아둔 곳으로 가서, 귀곡성을 꺼내 매만져요. 부품을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그러다가 문득 결심한 듯한 얼굴을 하곤 귀곡성을 꽉 거머쥡니다.



에이미

좋아요. 그럼 몽희가 나가려고 하면 “지도가 발이 달렸나, 왜 돌아다니려고 해? 저기 가만히 누워 있어!” 같은 식으로 막을 것 같거든요.

그러다가 아편에 취해서 꾸벅꾸벅 잠드는 거죠.



버팬

미노루가 잠들면 그쪽을 한 번 쓱 보고, 귀곡성을 챙겨가지고 밖으로 나갑니다.

석진이 오른쪽 길로 갔다고 치면, 왼쪽 길과 오른쪽 길을 번갈아 보다가 왼쪽 길로 가요.

마른 풀잎과 눈을 밟으며 발밑에서 바삭바삭 소리가 나고요. 나뭇가지에 얼굴이 긁혀서 “으으윽…….” 하면서 걸어가요.

 


에이미

이런 건 어때요? 몽희가 토끼를 발견하고 방아쇠를 딱 당겼는데, 저쪽에 순록이 있어서 홀린 듯이 그쪽으로 향하는 거죠.



버팬

좋아요. 토끼를 쫓아가다가 토끼를 놓쳐 아차 하던 순간, 햇빛을 받으면서 이끼를 먹고 있는 순록을 발견해요. 순록의 토실토실한 엉덩이가 눈에 들어오고요.



부셈이

몽희는 경성에 살았으니 사슴 정도는 봤어도 순록은 완전 처음 보겠네요.



버팬

아까 미노루가 해준 말이 뭉게뭉게 떠오르고요. 머릿속에 ‘뭔가를 죽일 때 필요한 건 실력이 아니라 결의야.’라고 하는 모습이…….

(일동 폭소)



에이미

진짜 듣고 싶은 대로 듣는다 ㅋㅋㅋ



버팬

‘그래, 내 결의를 보여주면 아저씨도 날 인정할 수밖에 없을걸.’

그러고는 귀곡성을 들어 순록을 조준합니다. 자세고 뭐고 완전 엉망이고요. 순록이 고개를 푹 숙이고 이끼를 먹고 있었는데 고개를 딱 드는 순간에 머리를 노려요.

몽희도 할머니한테 들은 건 있어가지고, 할머니가 ‘총을 쏠 때는 말이야, 숨을 딱 참고 멈춘 상태로 쏴야 하는 거야.’라고 했던 기억이 나요. 그래서 그 생각을 하며 숨을 참아요.



하누

숨을 참아요? 순록이 고개를 언제 들지 모르는데?



버팬

그래서 숨을 참느라 얼굴이 새빨개지고요. 더이상 못 참겠고 눈앞이 새하얘지려고 하는 순간 순록이 고개를 딱 들어요. 그러면 ‘지금이다!’ 하고 탕 하고 쏩니다.



부셈이

탕 하고 쏘면 총성에 새들이 짹짹짹짹 하고 날아가고요. 총성 끝에 소름끼치는 쇳소리가 따라붙습니다.

총을 쏜 순간 몽희는 처음 느끼는 엄청난 반동에 뒤로 확 넘어지고요, 실개천에 엉덩방아를 찧습니다. 그리고 그제서야 할머니가 했던 뒷말이 떠올라요.

‘네 몸집에 총을 쏘려면 튕겨져 나갈 벽도 같이 준비해 놔야 될 거다.’



하누

역시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 해.



부셈이

그런 생각을 하고 순록을 보면, 총알이 기적적으로 순록 엉덩이에 맞았어요. 피를 철철 흘리면서 성큼성큼 바위를 뛰어넘어 반대편으로 빠르게 사라집니다.



버팬

“안 돼! 내 사냥감!”

총을 들고 순록을 쫓아 달려가요.

 

 

부셈이

순록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험한 돌밭, 오르막 할 것 없이 뛰어다니는데, 눈이 쌓여있으니 피 흘린 흔적이 선명하게 보여요.

 

 

버팬

힘들어도 끝까지 그 핏자국을 쫓아가요.

 

 

부셈이

좋아요. 핏자국을 따라다닌지 한 30분쯤 됐을까? 드디어 순록이 보입니다. 출혈 때문에 지쳐 쓰러져 있어요.

 

 

버팬

“찾았다!”

몽희가 반색하면서 달려갑니다. 너무 기뻐요. 혼자 힘으로 이렇게 커다란 순록을 잡다니! 이거라면 아저씨도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거예요.

 

 

부셈이

몽희가 순록에게 손을 댄 순간, 순록이 눈을 번쩍 뜹니다.

 그러는 동안 석진이 숙소에 돌아온 장면을 해볼까요?



에이미

저는 아편에 취해서 침 질질 흘리며 뻗어 있어요.



하누

토끼 세 마리를 잡아가지고 머리통을 묶어서 가지고 오는데, 온 사방에 아편 냄새만 나고 미노루는 저기서 자고 있고, 애랑 귀곡성이 없어요.

이걸 보고 대충 상황 파악을 한 뒤, 아편 파이프를 발로 차서 그걸 미노루에게 맞춥니다.



에이미

“아야!” 비명을 지르곤 데굴데굴 구릅니다.

“무슨 짓이야, 개자식아!”



하누

당신이 잠에서 깨보면 엄청나게 빡친 얼굴의 임석진이 어둠 속에서 당신을 내려다보고 있어요.



에이미

시간이 지나서 이제 아편이 좀 깼어요. “왜…… 왜 그러는데……?”



하누

“약쟁이 새끼가, 애 하나 제대로 못 봐?!”



에이미

“잠깐만! 그게…… 그게…… 무슨 말이야?”



하누

“꼬맹이 어디 갔어!”



에이미

그제서야 상황을 깨달아요.

“꼬맹이, 내가 심부름 보냈어.”

“금방 올 거야. 아이, 내가 데리러 가면 되지…….”

 

 

하누

그러는 순간 귀곡성 소리가…….



에이미

그러면 굳어가지고 눈치 보다가 “……가, 가볼까?!”



하누

소총의 레버를 철컥 당기면서, “잘잘못은 이따가 따지도록 하지.”

 

 

에이미

“(필사적으로) 와, 역시 자기야! 배포가 크다니까~!” (일동 폭소)

“그, 그럼 빨리 가자. 꼬맹이 찾아야지!” 하면서 후다닥 갑니다.

‘이 빌어먹을 꼬맹이 대체 어딜 간 거야!’



부셈이

그러면 몽희 발자국과 핏자국 같은 걸 보고 따라가겠죠.



에이미

저는 핏자국 보고 식겁했어요.

“이거 설마……! 그, 그 기집애 피는 아니겠지?! 그런 것 치곤 너무 많은 것 같기도 하고……?!”



부셈이

미노루는 놀라지만 석진은 발자국과 보폭, 남은 흔적 같은 것을 보고 머릿속에서 ‘얘가 여기서 쐈고, 여기서 넘어졌고, 이 길로 따라갔다…….’ 같은 게 착착착착 맞춰지겠죠.

딱 산등성이를 넘어 올라왔을 때, 여러분의 눈에 몽희와 순록이 보여요. 순록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고 몽희가 그런 순록의 곁으로 다가가는 거죠.

그런데 석진의 눈에 순록이 아직 입김을 뿜고 있고, 뒷발에 덜덜덜 경련이 있는 게 보여요. ‘아직 안 죽었는데.’라고 생각하는 순간! 순록이 벌떡 일어나고 몽희가 그 뒤에 올라타게 된 거죠.

 

 

에이미

기겁해서 “으아악! 놓지 마! 놓지 마!”

 


부셈이

순록이 등에 몽희를 단 채 내달리기 시작하고요. 미노루의 비명소리를 듣고 석진과 미노루 쪽으로 돌진해옵니다.

 


하누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차분한 얼굴로 총을 어깨에 견착하고요. 순록의 눈을 조준합니다.



부셈이

좋아요. 석진이 원래 정면을 보고 서있었다면, 순록에 들이받히기 직전에 몸을 살짝 옆으로 틀면서 총을 탕하고 쏘자 양눈이 관통되는 거죠.



하누

그러면 탕! 소리에 옆에 있던 눈이 가득 쌓여있던 나무가 흔들리면서 눈이 투두둑 떨어지고요.

두 눈을 맞은 순록이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면서 앞으로 고꾸라지는데, 팔이 닿을 거리가 되는 걸 노려서 몸을 돌려 순록을 피하며 몽희를 낚아채요.

긴 코트가 투우의 붉은 천처럼 휘날리고, 그 너머로 순록이 풀썩 쓰러집니다.

몽희를 한팔로 꽉 붙잡았다가, 미노루에게 내던집니다.



에이미

몽희가 순록에 매달려 있는데 석진이 총으로 쏘려고 하니까 “야, 쏘면 안 돼! 쏘면 안 돼!”하고 말렸을 것 같거든요?

그러다가 정확히 순록만 맞아서 쓰러지니까 어안이 벙벙해져 있는데 석진이 던진 몽희에 맞아서 같이 드러누워요. (일동 폭소)



버팬

눈밭에 X자 모양으로 겹쳐져서 누워있고.



부셈이

석진이 죽은 순록을 확인하려고 다가가면, 순록의 목에 가느다란 밧줄이 묶여있는 것이 보입니다.

 

 

에이미

망했다, 망했어! 사유물이다!



부셈이

밧줄이 목에서 길게 늘어져있고 그 끝엔 굵은 나뭇가지가 하나 걸려 있어요. 에벤키족들이 순록 유목을 할 때 순록에게 채워두는 것이죠.

밧줄로 늘어뜨려서 무릎과 정강이 사이에 나뭇가지를 위치하게 해놓으면, 순록이 달릴 때마다 나뭇가지가 정강이에 부딪쳐서 빠르게 뛰어갈 수 없거든요.



에이미

석진은 이걸 알아볼까요?



하누

석진이랑 미노루는 만주에서 오래 살았으니까 알지 않을까요?



에이미

전 사실 도시 생활이 더 익숙한 편이라 이런 것까진 잘 모를 것 같아요.



하누

그럼 석진만 알 것 같아요. 석진은 독립군 활동도 했고, 이런 오지를 많이 다녀봤을 것 같거든요.



에이미

“야, 이 지지배야, 일어나!” 하면서 몽희를 내팽개치고요.

“너 진짜 제정신이야?!” 하면서 몽희의 멱살을 붙잡고 화를 내다가요.

석진이 움직이지 않는 걸 눈치채고 “자기, 표정이 왜 그래?”하면서 다가갑니다.

 


하누

미노루와 몽희가 다가오면, 석진은 줄달린 나무토막을 손에 들고 심각한 얼굴로 보고 있어요.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드디어 입을 엽니다.

“이건 에벤키…….”

 

 

부셈이

그때, 화살이 휙 하고 여러분 사이를 뚫고 앞에 있던 나무에 탕 하고 박힙니다.



에이미

깜짝 놀라 엉덩방아를 찧습니다. “으악! 뭐야?”



부셈이

화살이 날아온 쪽을 보면,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에벤키족 사냥꾼 두 명과 어린애 한 명이 있어요.

활을 겨누고 있는 건 어린애입니다. 어린애가 무표정한 얼굴로 활을 내려놓고요.

나이 든 사냥꾼 두 명이 퉁구스어로 뭐라뭐라 얘기를 해요. 여러분은 퉁구스어를 모르니까 소통이 안 되겠죠.

그러자 어린애가 설피를 신은 채로 자박자박 여러분 앞에 걸어와서 일본어로 말합니다.

“이거, 우리 재산.”

그리고 여러분이 들고 있는 총을 보더니 물어요.

“당신들, 일본인?”



에이미

그러면 일본어가 통하는 것 같으니 일본인 맞다고 대답해요.

‘나는 지나가던 일본인인데 저기 저 난폭하게 생긴 놈이 순록 맛있겠다고 멋대로 잡은 거고 난 아무 잘못 없다’면서 눈물을 찍어냅니다. (일동 폭소)

‘그리고 이 꼬맹이는 모르는 애’라고 해요.



부셈이

나이가 지긋한 사냥꾼이 아이에게 퉁구스어로 이렇게 저렇게 말하고요.

아이가 그 얘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당신들, 마적은 아니지?”



에이미

전 아까 아편을 하도 많이 피워서 아직도 머리가 좀 멍해요.

아까 계속 몽희와 석진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발뺌했잖아요. 그런데 그 부분에서 갑자기, “(반색하며) 아 맞아, 우리 마적 아니야!” (일동 폭소)

“우린 그냥 봉천에 가는 길이었어!”라고 해버립니다.



부셈이

당신들의 말에서 이상함을 느끼고 아이와 사냥꾼들이 눈빛을 교환합니다.

아이가 석진을 향해 한 발짝 다가오며 말합니다.

“아까 아민과 나, 당신이 총 쏘는 거 봤어.”

“당신, 조선 포수지?”

총에 쓰여있는 한자나 총을 쏘는 자세 같은 걸로 눈치챈 것 같습니다.



하누

일단 맞다고 하고요.

“당신들의 순록이라면 사과하겠다.”

“당신들의 순록인 줄 몰랐다.”



부셈이

다시 한 번 아민에게 이야기를 건네듣더니, “그렇다면 빚을 갚아라.”라고 합니다.



하누

그 말에 얼굴이 살짝 굳더니, “빚이라면 얼마나?”

 


부셈이

순록을 한 번 가리킨다음, 손가락 5개를 펼쳐 보여줍니다. 50원이라는 뜻이에요.

 

 

하누

처음에는 5원이라고 알아듣고요,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가격인데? 라고 생각했는데 5원은 무슨, 50원이라는 말에 당황합니다.



버팬

몽희는 뒤에서 이 대화를 들으면서 식은땀이 쫄쫄 흘러요. 일이 이렇게 되다니…….

 


부셈이

여기서 석진의 복선을 역발 할게요. ‘외팔엽사’ 인연복선 역발 합니다.

“이 도둑놈들!”

“돈 없으면 사냥 실력으로 갚아라.”

“마을의 젊은 남자, 전부 부족을 버렸다.”

“호랑이 모피를 팔아야 한다.”



하누

우리한테 호랑이를 잡아오라고?! 미쳤다;

그래서 역발이군요, 어지간한 사냥감이면 역발이 아닐테니까…….

 

 

에이미

근데 에벤키족이 호랑이도 잡는군요. 신처럼 여긴다고 하지 않았어요?



부셈이

원래 호랑이는 산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기에 잡지 않는데, 마을의 젊은 사냥꾼들이 전부 부족을 버리고 도시 생활을 하러 가서 마을 상황이 너무 어렵고, 가장 비싸게 팔리는게 호랑이 모피니까요.

 

 

에이미

신앙까지 져버려야 할 정도로 마을이 어려운 상황인 거군요.



부셈이

산은 해가 빨리 지잖아요. 이제 슬슬 노을이 지고 있고 하늘에 구름이 굉장히 많이 껴있어요.

“만월까지, 3일.”

“우리 마을에서 지내라.”



에이미

제 생각엔, 여기서 석진은 ‘잘못한 게 맞으니까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일 것 같거든요. 근데 제가 끼어들어서 뭔가 딜을 해보려 할 것 같아요.

“자기는 잠깐 가만히 있어.”

호랑이 사냥은 받아들이겠지만 모피값의 일부를 나눠달라, 이런 얘기를 합니다.



부셈이

너무 좋네요. 사교 판정입니다. 특별히 어려울 건 없으니 난이도는 3입니다.



에이미

(도르륵) 주사위값 1, 사교가 +3이니 결과값 4! 1 차이 성공!저는 순록과 호랑이 모피의 물가를 정확히 알고 있어서 그걸 흥정에 이용해요.



부셈이

아마 순록은 100원, 150원은 될 거고, 호랑이는 800원, 아니 천원 이상도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미 호랑이는 멸종위기종인데다 백두산 호랑이의 모피는 사치품으로 각광 받으니까요.



에이미

그러면 순진한 석진을 대신해서 그런 거에 대해 따져요. ‘순록이 100 얼마고, 호랑이는 천이 넘는데 이건 도와달라는 수준이 아니지 않냐. 호랑이 가격의 반인 500을 떼어줘라. 대신 마을에서 묵는 며칠 동안 호랑이 사냥 외에도 도와줄 수 있는 일은 도와주겠다.’



부셈이

‘마을에 많은 사람이 굶주리고 있다. 반은 안 된다.’라는 식으로 대답하고요. 대신 여러분의 재산 스트레스 기준으로 총 6점을 주겠다고 합니다.

6점을 여러분 셋이 나눠 갖는 거죠. 그리고 목적지가 봉천이라고 했으니 거기까지 순록을 태워주겠다고 합니다. 어차피 자신들도 호랑이 모피를 팔러 도시에 가야하니까요.



에이미

조건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서 콜하고요. 석진에게 공치사를 합니다.

“그 조건을 그냥 받아들이려고 하다니 멍청하기는. 호랑이 모피가 얼만지 알기는 해? 자기는 보는 눈도 없어?”



부셈이

미노루와 석진이 그런 대화를 하는 동안, 아민이 아이에게 퉁구스어로 말을 걸어요.

“저 여인이 뭐라고 하더냐?”

“호랑이 값의 반을 달라고 합니다.”

“저거 순 도둑놈 아니야?”

“여우 같은 계집입니다.”

이런 대화를 한 뒤, 아이가 “따라와라, 일본인.”이라고 말하고는 앞장서서 산을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사냥꾼들이 부리는 사냥개 몇 마리가 뒤를 쫓고요.

 

 

에이미

따라가다가 “으이구!” 하면서 몽희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습니다.



버팬

몽희는 아무도 자기를 혼내지 않았던 동안에는 눈에 띄게 주눅 들어있다가, 한 대 맞고 나서야 “(밝게) 우리 그러면 이제 호랑이 잡으러 가는 거야?!” (일동 폭소)



부셈이

순록이 끄는 썰매에 순록 시체를 뉘여서 끌고가고요.

눈을 헤치고 산 아래로 내려가면 아침 안개에 둘러싸인 강변 기슭에 에벤키족의 마을이 보입니다.

아이의 이름은 투 헝언, 투가 성이고 헝언이 이름이에요.

투는 몽희 또래 정도로 보이고, 대부분의 에벤키족은 일본어를 할 줄 모르는데 투는 일본어를 제법 소통이 가능할 정도로는 할 수 있어요.

 

 

에이미

지금 마을이 유지가 어려운 상황이잖아요. 그래서 투는 나가서 살 수 있게끔 하려고 일부러 교육시킨 게 아닐까요?

 

 

부셈이

마을에 도착하자 마을 둘레를 따라 방목된 순록떼가 보이고요, 순록치기가 순록들을 울타리 안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버팬

몽희는 이런 광경을 완전히 처음 봤으니까요. “우와~!”하고 감탄을 내지르고, 석진과 미노루를 돌아보며 “우리 여기서 3일 동안 지내는 거야?!”하고 물어요.

 

 

에이미

그럼 몽희를 쥐어박습니다. “좋아할 게 아니야, 이 지지배야!”

“그런데 자기, 정말로 호랑이 잡을 수 있겠어? 그거,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인 거 알지?”

“상황을 모면하려고 일단 수락하긴 했지만, 하기 싫으면 밤에 몰래 도망쳐도 상관없어.”

“그 김에 뭔가 좀 슬쩍해도 되고 말이지…….”

 

 

하누

“맡은 일이니까 해야지.”

 

 

에이미

조금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지어요.

아무튼, 인연 없는 소수민족 마을에 외지인으로서 들어가는 거잖아요.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서 동료로서 조언해준 건데, 이놈은 아무 생각도 없어 보여서 괜히 짜증이 납니다.

“뭐, 자기가 여기서 뒤지면 저 계집애는 내 거가 될 테니 나쁠 건 없지.”

 

 

부셈이

앞서 마을로 가던 투가 얘기합니다. “이제 마을에 젊은 남자가 얼마 남지 않았어.”

“지난 겨울을 나면서 저장해뒀던 식량도 거의 다 떨어졌어.”

“이젠, 호랑이를 잡지 못하면 정말 희망이 없어.”

 

 

버팬

“우리 아저씨가 이름난 사냥꾼이야! 걱정 마!”

 

 

하누

현상금 사냥꾼이긴 하지만…….

 

 

버팬

어쨌든 사냥꾼이니까!

 

 

하누

나락도 락이고 현상금 사냥꾼도 사냥꾼이다!

 

 

부셈이

여러분의 대화를 듣다가 아민이 투에게 퉁구스어로 이야기합니다.

 

 

버팬

“무슨 얘기 하는 거야?”

 

 

부셈이

“아민이 ‘당신들은 무슨 관계냐’고 했어.”

 

 

버팬

“친구들이야!”

 

 

부셈이

친구라는 대답에 투와 사냥꾼들이 여러분을 미심쩍게 봅니다.

 

 

버팬

“투라고 했지?”

“넌 저 사람들이랑 어떤 관계야? 아버지?”

“나이가 좀 많으신 것 같은데…….”

 

 

부셈이

“내 위로 형제들이 10명이나 있었어.”

“나는 막내. 여긴 우리 아민.”

“그러니까…… 아…… 아버지?”

 

 

버팬

“우와, 그렇구나.”

‘형제가 많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그럼…… 형제들은 모두 떠난 거야?”

 

 

부셈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마을은 희망이 없다고 하더니, 모두 마을을 떠났어.”

 

 

버팬

“보기에는 평화로운 마을인데…….” 하고 순록을 모는 순록치기라던가, 마을 풍경을 슥 둘러봅니다.

“너는? 넌 떠날 생각 없어?”

 

 

부셈이

“나까지 떠나면, 우리 마을은 없어지니까.”

“난 형제들이 돌아올 곳을 지키고 있어야 해.”

“그러지 않으면, 함께 있을 곳이 사라지니까.”

 

 

버팬

방긋 웃으면서 말해요.

“너 방금 활 쏘는 거 보니까 진짜 잘 쏘던데!”

“너라면 충분히 마을을 지킬 수 있을 거야!”

 

 

부셈이

투는 문득 몽희를 보았다가 몽희 허리춤에 꽂혀있는 귀곡성을 발견해요.

“너도 그거, 쏠 줄 알아?”

 

 

버팬

“이거?” 하면서 허리춤에 꽂힌 귀곡성을 꺼내 투에게 보여줍니다.

“이건 우리 할머니가 준 거야.”

“할머니가 만주에서 진짜 이름 날리는 총잡이였거든. 나도 곧 그렇게 될 걸?”

 

 

부셈이

투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물어요. “할머니가 마적이었어?”

 

 

버팬

“우리 할머니는 현상금 사냥꾼이었어. 나쁜 놈들을 잡는 멋진 사람이었다고.”

 

 

부셈이

“사냥꾼?”

“나랑 똑같네.”

“근데, 왜 할머니는 같이 안 왔어?”

 

 

버팬

그 말을 듣고는 살짝 멈칫해요. 머릿속에 불타는 청맥여관과 만주는 혼자서 가야겠구나, 했던 기억이 떠올라요.

투를 보고 쓸쓸하게 미소짓다가 다시 길을 향해 시선을 돌립니다.

“할머니는…… 같이 못 왔어.”

“고향에서 돌아가셨거든.”

“그래서 친구들이랑 같이 다니고 있는 거야.”

 

 

부셈이

“미안, 내가 괜한 말을…….”

 

 

버팬

투가 그렇게 말하면 볼을 긁적이면서 “가끔 할머니가 보고싶기는 한데…….”

“우리 할머니는 진짜 강한 사람이었거든.”

“그래서 슬퍼만 하고 있는 건 나도, 할머니도 바라지 않아.”

 

 

부셈이

썰매에 담긴 순록 시체를 슬쩍 보고는, “너, 생각보다 강하구나.”

 

 

버팬

귀곡성을 매만지면서, “근데, 아직 할머니처럼은 잘 못 쏴.”

순록의 엉덩이를 힐끔 봅니다. 몽희가 쏜 총상이 아직 남아있어요. “나도 배워서 더 잘 하고 싶은데…….”

“너는 활 누구한테 배웠어?”

 

 

부셈이

이제 일행이 묵을 곳에 도착했어요. 미노루와 석진은 여러분이 묵을 텐트 안의 짐을 치우고 있고, 투와 몽희는 순록에게 소금덩어리를 먹이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는 미노루와 석진에게도 들려요.

“우리 누나.”

“새 시대에는 여자도 사냥꾼이 될 수 있다고 누나가 그랬었지.”

 

 

버팬

이때, 화면이 몽희에게서 석진으로 탁 하고 전환이 되면 좋겠네요. 석진이 등에 매고 있는 장총이 보이고요.

 

 

에이미

석진 옆에 있던 미노루가, “여자도 사냥꾼이 될 수 있는 시대래. 재밌네.”

“적어도 내가 사는 시대에선 못 본 것 같은데 말이야..”

피식 웃으면서 자리를 뜹니다.

 

 

하누

궤짝을 옮기다가 투와 미노루의 말에 굳은 얼굴로 우뚝 섭니다. 잠시 생각에 빠진 듯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합니다.

 

 

부셈이

좋아요. 그럼 이제 어떤 장면을 연출해볼까요? 주거지 장면표가 있으니 주사위를 굴려서 고르셔도 괜찮고, 원하는 걸 고르셔도 좋아요.

 


버팬

몽희는 마을에 와서도 계속 석진이한테 총을 가르쳐달라고 조를 것 같아요.

 

 

하누

그럼 석진은 안 된다고, 자기는 호랑이 사냥 준비하느라 바쁘니까 방해하지 말라고 그런 식으로 얘기를 하겠죠.



부셈이

좋아요, 그럼 그 장면을 해보죠.

석진은 지금 텐트 안에 있어요.

그 안에서는 마을 남자들이 호랑이 사냥에 대해 논의하고 있고, 바닥에는 흙을 깔아놓고 나뭇가지로 그림을 그려가면서 전술에 대해 이야기 중입니다.

티그르가 이렇게 가면 누구는 이렇게 하고 누구는 이렇게 한다, 뭐 이런 얘기를.

그런데 에벤키족은 사냥에 잔뼈가 굵지만 호랑이만큼은 한 번도 잡아본 적이 없잖아요.

석진도 호랑이를 사냥해보는 건 처음이지만, 스승님이 호랑이 사냥꾼이었기 때문에 호랑이 사냥에 대해 가르침을 받았을 거예요.

그래서 석진의 눈엔 보이는 거죠. 에벤키족 사냥꾼들의 작전상의 빈틈이요.

그런 걸 알려줘서 사냥꾼들의 신뢰를 사기도 했을 것 같네요.



버팬

진중하게 회의 중인 텐트에 등불이 하나 켜있고, 그 밑으론 건장한 남자들 여럿이 앉아서 작전에 대해 논의하고 있어요.

그런 와중 석진의 등 뒤에서 몽희가 빼꼼 하고 나와요.

“그래서, 어떻게 잡기로 했어?”

“나는 뭘 준비하면 돼?”

호랑이 사냥에 당연히 자기도 데려갈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하누

한참 회의 중이라 바쁜데 옆에서 깐족깐족 하면서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거잖아요. 인상을 쓰면서 돌아봐요.

“네가 따라간다고 누가 그랬지?”

 

 

버팬

충격먹은 표정으로 입을 딱 벌리고, “아니 그럼…… 내가 가야지 누가 가?!” (일동 폭소)



하누

어이가 없어져서, “네가 산을 탈 줄 알기를 해, 사냥을 할 줄 알기를 해?”

“사냥터는 너 같은 꼬맹이들 놀이터가 아니야.”

 

 

버팬

“아저씨! 실력이 아니라 결의가 중요한 거야!”



하누

몽희의 말에 기가 차다는 듯 코웃음을 치고요. 다시 인상을 확 찌푸립니다.

“꼬맹아. 이곳의 숲은 산군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다.”

“너는 겁도 안 나나?”

 

 

버팬

“당연하지! 하나도 겁 안 나!”

 

 

하누

“그러니까 못 데려가는 거다.”

“투가 입고 있는 옷을 봐라.”

“저 설피며 무기며, 전부 겁이 나서 하는 준비들이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똑같아.”

“호랑이가 두려워서 철저하게 준비하는 거야.”

 

 

에이미

몽희로서는 처음으로 이상을 박살 당한 순간이겠네요.

지금까지는 결의 하나로 모든 것을 헤쳐나왔는데 현실의 벽에 처음 부딪친 거죠.



버팬

“그…… 그건…….” 말을 버벅이면서 당황하고요,

“그렇다고…… 내가 평생 아무것도 안 할 순 없잖아.”

“지금 아저씨에게 내가 아무 도움도 안 되는 건 알아. 나도 잘 안다구…….”

“그렇다고…… 아저씨가 날 평생 이고지고 살 거야?”

 


에이미

그 얘기를 들으면 석진이 아직 승희로 살던 시절 생각이 날 것 같아요. 승희가 집안일도 혼자 다하고, 돈도 혼자 다 벌어오고, 오빠 아픈 것도 간호하고 그러는걸 보고, 스승님이 승희에게 ‘네가 평생 그 집안 이고지고 살 거냐’라고 했는데 그때의 기억이 딱 스쳐지나가는 거죠.



하누

너무 좋네요. 저는 스승님의 말이 떠올라서 우뚝 멈춰서고요. 한참 가만히 있다가, “……어쨌든 넌 안 돼. 너무 위험해.” 대화를 더 하지 않겠다는 뜻을 표합니다.

 

 

버팬

몽희는 그런 석진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텐트 밖으로 나갈 것 같아요.


 

부셈이

텐트 밖으로 나오면, 투가 텐트 기둥에 등을 기댄 채로 칼로 나무토막을 조각하고 있는게 보입니다.

몽희의 표정을 슬쩍 보더니, “안 데려간다지?”라고 합니다.



버팬

몽희는 입이 댓발 나온 채로 투한테 다가가서 물어요.

“투, 넌 몇 살부터 사냥 나갔어?”



부셈이

그러면 손가락 여덟 개를 펴서 보여줘요.

“넌 여덟 살 때 뭐 했어?”



버팬

몽희는 여덟 살 때 골목대장이었어요. 괴롭힘 받고 있던 애를 구해주기도 했죠.

‘너희들! 약자를 괴롭히다니!’

나뭇가지 하나 들고 와서 괴롭힘당하던 안경태의 앞을 막아서고요.

그러면 괴롭히던 애들은 몽희가 청맥여관 애고, 그 집 할머니가 무서운 걸 아니까 그냥 돌아갔어요.

그걸 몽희는 ‘내가 구했다, 내가 다 이겼다!’라고 기억하고 있어요.

자기는 아주 멋지고 후광이 막 비치고, 경태가 저를 우러러봤던 그때를 떠올려요.

 

 

부셈이

‘(경태 특유의 찌질한 톤으로) 몽희야……! 멋있어……!’

 

 

버팬

그런 회상을 하고, 뿌듯하게 웃으며 말해요.

“나는 할머니가 여관을 운영하셔서 말이야.”

“사람도 많이 만나고, 책도 많이 읽고, 사람도 막 구하고 그랬지.”



부셈이

“대단하다.”

“사실 난 산밖에 몰라.”

“책도 읽을 줄 모르고, 열차도 타본 적 없거든.”

“우리 형님들도 도시에서 그렇게 살고 있겠지?”

 

 

버팬

몽희는 경성에서 아주 급하게 오느라 짐이 거의 없어요. 할머니와 독립군의 사진, 귀곡성, 책 한 권이 끝이거든요. 지도는 태워버렸구요.

투의 말을 듣고 뭔가 떠올랐다는 듯이 짐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책을 꺼내 와요.

‘보물섬’인데요, 그걸 투에게 보여주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야!”



부셈이

“어떻게 읽는지 알려줄 수 있어?”

 


버팬

“당연하지!”

투 옆에 앉고요.

저 멀리서 텐트 불빛이 어른어른거리는데, 빛이 아주 옅어서 글씨는 거의 안 읽히고 삽화 정도만 보일 것 같아요.

책을 펼쳐서 삽화를 보여주며 보물섬의 내용을 이야기해줍니다.

“그래서 말이지, 플린트 선장의 보물이…….” 책 이야기를 투가 집중해서 듣자, “재밌지?”

 


부셈이

투의 눈이 햇살을 받은 듯이 반짝반짝 빛나요. “응!”



버팬

“그치? 난 이야기 싫어하는 사람은 한 번도 못 봤어.”

“책을 읽고 있으면 말이야, 내가 꼭 다른 세상에 있는 것만 같아.”



부셈이

“우리는 글자가 없어서 전부 말로만 얘기하거든.”

“사람을 죽이지 않고 죽으면 신의 나라로 갈 수 있대.”

“우리 누나는 사냥꾼이었으니까 많은 동물들을 신의 나라로 보내줬어.”

“그러니까 누나도 신의 나라에 가 있겠지?”

 

 

버팬

“조선에도 신의 나라가 있어.”

“우리 할머니 별명이 저승사자야.”

“저승은 조선의 신의 나라고, 저승사자는 저승으로 인도해주는 사람이라는 뜻이야.”

“우리 할머니도, 너희 누나도 신의 나라에 가 있겠지.”

“그리고 그곳에서 또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있을 거야.”

 

 

부셈이

“아민이 사람한텐 다 자기 산이 있댔어.”

“내 산은 이 마을에 있고, 네 산은 저 밖에 있는 거겠지.”



버팬

고개를 끄덕이면서 “난 내 산을 찾으러 여기 왔어.”



부셈이

“네가 재밌는 이야기 해줬으니까, 나도 재밌는 거 가르쳐줄게.”

“따라와.”

당신이 투를 따라나가면, 밤이 깊어서 하늘을 이불 삼은 것처럼 끝도 없는 밤하늘에 별들이 총총이 반짝이고 있고요.

투가 소금통에서 소금덩어리를 꺼냅니다. 그리고 휘파람을 불면서 소금통을 흔들면 순록들이 한 마리 두 마리 걸어나옵니다.

두 마리의 고삐를 쥐면서 소금을 먹이고요. 몽희의 손을 잡으면서, “순록 타는 법을 가르쳐줄게.”



버팬

몽희는 투의 도움을 받아 순록의 등에 올라타고요, 처음에는 중심을 못잡아서 살짝 기우뚱하다가 탁 하고 중심을 잡습니다.

그리고 앞을 보면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넓게 펼쳐진 들판 위로 별이 가득한 하늘이 보여요. 고개를 점점 위로 올려 쳐다보면 하늘에 총총히 박힌 별이 한층 가깝게 보여요.

그 광경을 보고 “우와…….”하고 감탄을 내지릅니다.



부셈이

몽희가 감탄할 때, 투가 순록 엉덩이를 손으로 찰싹 내리쳐요.

그럼 순록이 뒷발을 확 하고 들더니, 덜컹덜컹하면서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향해서 끝없이 달려나가기 시작합니다. 마치 우주로 날아갈 것처럼.

당신이 놀라서 순록에 찰싹 달라붙은 채로 달려가고 있으면, 그 뒤에서 다른 순록을 타고있는 투가 깔깔 웃으면서 당신 곁을 쫓아옵니다.



버팬

화면이 엄청나게 멀게 잡히고요. 순록 두 마리가 무수한 별빛을 받으면서 눈밭을 달려나가고 있어요.


이후 3일 동안 몽희가 글자를 좀 더 본격적으로 알려줬을 것 같아요.

나뭇가지로 땅바닥에 글씨를 쓰면서, “네 이름은 이렇게 쓰는 거야.”



부셈이

투는 땅바닥에 투 홍언, 윤몽희라고 쓴 다음, 이번엔 ‘랑’이라고 씁니다.

“우리 누나 이름이야.” (일동 절규)

 

 

에이미

이제 다음 장면은 뭘 할까요?

 

 

부셈이

이제 곧 호랑이 사냥을 가야 하는데 원주민들은 사냥 나가기 전 사냥이 잘 되길 기원하는 의식을 치루잖아요.

그러니 손님도 대접할 겸, 의식도 치룰 겸 잔치를 벌이는 거죠. 잔치 중 미노루가 백팔요괴단과 접선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에이미

아주 좋네요. 저는 늦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마을이 엄청 분주한 거예요. 그래서 지금 다들 뭘 하는 거냐고 물어요.

 

 

부셈이

“내일 사냥을 나가니까 제사 겸 잔치를 준비하는 거야.”



에이미

저는 어차피 이곳에서 당분간 지내야 한다면 마을 사람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쌓아둘 생각이에요. 또 워낙 화려한 파티를 좋아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상냥하게 웃으면서 “내가 뭔가 도울만한 건 없을까?”라고 물어요.

“이래봬도 노래나 춤도 좀 할 줄 아는데.”

 

 

부셈이

투는 “그렇다면…….”하더니 미노루를 어떤 사람에게 데려갑니다. 그 사람은 옷에 파랗고 빨간 길쭉한 천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데, 이 마을의 무당이에요.

무당은 순록 가죽으로 만든 북을 들고 공연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투가 당신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하자 당신을 견제의 눈빛으로 노려봅니다.

 


에이미

‘흥, 옷 입은 꼬락서니 하고는.’

 

 

부셈이

무당도 당신을 보면서 ‘거적데기 같은 옷이로군…….’



에이미

“안녕하세요, 언니~ 어머, 정말 아름다우세요~♡”

“언니 곁에서 저도 한 박자 춰도 될까요?”



부셈이

그러면 “흥!” 콧방귀를 뀌더니 뭔가 얘기하면, 투가 “방해나 되지 말래.”

 

 

에이미

“방해할 생각은 없지만~ 의도치 않게 조금 방해될 수는 있을 것 같은데.”

“내가 존재감이 좀 뛰어나서 말이야~”

“그러면, 이따가 봐요 언니~♡”

살랑살랑 인사하고는 딱 돌아 나오면서, ‘가지고 있는 옷 중에 가장 괜찮은 걸 골라야겠어…….’



부셈이

한편, 몽희도 잔치 준비를 돕고 있겠죠?



버팬

저는 여관 일을 오래 했으니까 이런 일에 익숙한 편일 것 같아요. 접시랑 음식 나르는 걸 돕고 있고, 중간중간 음식도 좀 집어먹어요.



부셈이

마을에는 거의 할머니와 아주머니, 할아버지와 아저씨 정도만 있는데요. 그중 가장 나이 많아 보이는 할머니가 있어요.

투가 “우리 큰할머니야.”라고 소개해요.

“연세는…… 그러니까…… 아흔 셋?”



버팬

등이 굉장히 굽은 할머니가 꿈뻑꿈뻑하면서 햇살 잘 드는 곳에 앉아계시고요. 눈을 떴는지 안 떴는지 잘 안 보여요.



부셈이

할머니가 몽희를 보고 투에게 뭐라뭐라 얘기를 하면, 투가 곤란한 얼굴로 “아, 아니에요 할머니. 얘는…….”

투의 퉁구스어 대답에 궁서체로 자막이 뜹니다. “얘는 떠날 거라고요.” (일동 짖궂은 야유)

그러다가 몽희한테 말해요. “할머니가 만두 빚는 법 가르쳐준대.”

“에구구구……. (다 죽어가는 소리) 슈슈슈슈슉! (미친 듯한 속도로 만두 빚는 시늉)” (일동 폭소)

“우리 할머니는 귀한 손님이 오면 순록고기 만두를 해주시거든…….”



버팬

몽희는 감탄하는 눈빛으로 할머니를 보고요.

“순록고기 만두는 처음봐!”



부셈이

“한 번 먹으면 다른 고기는 못 먹을걸?”



버팬

투의 말에 어제 탔던 그 순록의 눈이 떠오르고요. 어제 탄 순록이랑 엄청 친해졌어요. 그래서 순록에게 소금도 주고 엄청 즐거운 시간을 보낸게 떠올라요.

물론 이 만두가 어제 탄 순록은 아니겠지만 동족이니까……. 동공지진 하고요.

순록고기 만두를 애써 고개 돌려 외면하고 있는데 냄새가 스멀스멀 풍겨오는 거예요. 근데 냄새가 너무 좋은 거죠.



부셈이

에벤키족 전통 무늬가 새겨진 커다란 주철 냄비 속에서 순록고기와 피 등등을 넣고 끓인 탕이 부글부글 끓고 있어요.

산마늘, 바람꽃 같은 걸 향신료 삼아서 아주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납니다.

그 옆에 있는 솥에서는 순록고기 만두가 쪄지고 있고요.

“자, 먹어봐.” 투가 잘 쪄진 만두 하나를 몽희에게 줍니다.



버팬

만두를 보고 꿀꺽하고 침을 삼켜요. 그리고 한입을 딱 베어 물면 눈이 번쩍 뜨여요.



부셈이

산마늘과 바람꽃의 알싸한 향, 그리고 소를 감싸고 있는 촉촉한 만두피…….



버팬

‘이, 이게…… 만주의 맛……? (황홀)’

 


부셈이

몽희는 지금 20일 동안 육포와 산토끼만 먹었다고요 ㅋㅋㅋ



에이미

몽희의 등 뒤에서 아련한 그림체로 어제 순록과의 행복한 시간이 흐려져갈 것 같아요 ㅋㅋㅋ



버팬

몇십 일 만에 먹은 제대로 된 요리에 눈물이 살짝 고이고요. 이성을 잃고 와구와구와구 먹기 시작해요.

 

 

부셈이

수염 덥수룩한 아저씨들도 당신에게 에벤키족 음식 먹는 법을 알려줍니다.

두꺼운 난 (인도식 빵) 같이 생긴 밀가루 전병에다가 순록 젖으로 만든 버터를 바르고요,

아궁이 위의 돌판에 얼려뒀던 순록 고기를 얇게 저며 구워서 버터 바른 빵을 끼워먹습니다. (일동 괴로워함)

그러보니까 몽희가 블루베리랑 버터를 궁금해했었죠?

요즘 몽희와 한참 보물섬을 읽고 있던 투가 버터와 블루베리가 뭐냐고 물어봐요. 몽희도 먹어본 적은 없지만 책에서 본대로 설명을 해주겠죠.

그러면 투가 “그거, 우리도 있어!”라고 얘기하면서 에벤키족의 전통식인 순록 젖 버터와 소금에 절인 블루베리를 가져올 것 같아요.



버팬

투가 블루베리가 뭐냐고 물어보면 “포도랑 비슷한 건데 알이 더 작고 아주 상큼한 맛이 나고…….” 이런 식으로 설명해줬을 것 같아요.

그러다 투가 가져온 블루베리를 보면 삽화에서만 봤던 그 블루베리랑 똑같이 생긴 거예요. 입이 떡 벌어져서, “블루베리다!”

저는 투한테 블루베리를 먹어본 척 했잖아요. 그래서 뒤늦게 눈치를 보면서, “……마, 맞아. 바로 이거야!”

한편 투는 몽희의 설명에 ‘블루베리가 상큼하다고?’하고 의문을 품었을 것 같아요.

그래도 ‘그래, 열매는 원래 상큼하니까.’라고 납득을 하고 몽희가 블루베리 먹는 모습을 지켜봐요.

몽희는 엄청난 기대를 품고 눈을 반짝이면서 블루베리를 한입 가득 먹었는데……. 너무 짜!

“웩~!” 하고 입에서 블루베리즙이 주르륵 나오고요. “……맞아, 이게 블루베리 맛이지…….”



부셈이

‘근데 왜 뱉지?’



버팬

그렇게 블루베리에 대한 환상이 와장창 깨지고요.

‘그래도 버터는 맛있겠지?’

버터는 예쁘게 생겼잖아요. 하얗고 반짝반짝 윤기 돌고, 고소한 냄새가 나고.

‘이게 빠다구나~! 너무 예쁘다.’하면서 고봉으로 듬뿍 퍼가지고 한 입 먹어요.

그런데 버터에서 달콤한 맛이 날 줄 알았는데 너무너무 짜고, 게다가 참기름을 입에다 들이부은 것처럼 미끄덩한 기름기가 쑥 하고 식도로 내려가요.

 

 

부셈이

게다가 유목민의 보존식이니까 소금이 엄청 많이 들어간 버터일 거 아니에요. 요즘 먹는 가염 버터보다 훨씬 짤거예요.

 

 

버팬

“으웨에~.” 입 밖으로 줄줄 나오고.

“이…… 이 맛이지……!”

 

 

부셈이

“넌 소화를 밖으로 하는구나…….”

 

 

버팬

만두로 열심히 입을 헹굽니다.

 

 

부셈이

곧 공연이 시작되고, 미노루와 무당이 대결을 할 거예요. 3라운드 승점 3점제고, 무당은 +2 기준으로 판정하겠습니다.

 


에이미

좋아요. 사교로 판정하겠습니다.

(1라운드 노래 미노루 승, 2라운드 악기 연주 무당 승)

 


하누

주사위가 서사를 아는데요?



버팬

공연을 보고 있던 관중들이 처음에는 미노루의 노래에 “오~!” 했다가 그 다음에는 무당의 신들린 북소리에 또 “오~~~!”하고 ㅋㅋㅋㅋㅋ

 

 

부셈이

“우리 가문에 내려오는…… 순록 북의 진수를 보여주지……! 뚱당뚱당뚱다다당!”

 


버팬

마지막 3라운드, 춤!

 


(비김)



부셈이

그러면……! 무당이 당신에게 척척척 하고 다가와서……! (슬램덩크 하이파이브)

 

 

에이미

“이런 촌구석에…… 이 정도의 적수가 있는 줄은 몰랐는걸?”



부셈이

“일본인도…… 신령의 춤을 출 줄 아는군…….”



에이미

“훗……. 내 이름은 쿠라마. 아니, 당신이라면 미노루라고 불러도 좋아…….”



부셈이

“내 이름은 가우치…….”

얘네 둘이 서로 언어가 안 통하잖아요. 그런데 통하고 있어!



에이미

진정한 예술가는 서로 통하는 법이지…….

 

 

부셈이

그렇게 해서 순록 젖으로 만든 술을 따르면서 본격적인 잔치가 벌어지고요.

 

 

에이미

술을 미친 듯이 마시고요. 미노루는 술이 센 편이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취해서 맛이 가는 걸 지켜보고 있을 것 같아요.

“에이, 미친 양반들. 이래서야 내일 호랑이 사냥을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그러면서 석진을 볼 것 같아요. 석진은 지금 어떻게 하고 있나요?



하누

석진은 술 셀 것 같아요. 좀 받아 마시긴 했는데 꿈쩍도 하지 않아요. 할아버지가 엄청난 말술이어서 온 마을에서 당해낼 자가 없었는데 제가 그걸 물려받았어요.

술 퍼마시고 동네 사냥꾼들과 씨름하는데 다 엎어버려요. 취했는지 안 취했는지도 모르겠고 표정 하나 까딱하지 않아요.

 

 

에이미

‘저 새끼 진짜 지독하네, 취하지도 않고.’

‘난 화장실 좀 갔다와야겠다.’

그러면서 정신없는 잔치 자리에서 빠져나옵니다.

 


부셈이

미노루가 화장실을 간 동안, 투가 몽희에게 말해요.

“큰할머니가 점을 쳐주신대.”

할머니는 순록 견갑골의 가죽과 고기를 깨끗하게 긁어낸다음 모닥불에 던져넣고, 견갑골이 깨지는 모양을 보고 점을 쳐요.

 


버팬

몽희는 투의 설명을 들으면서 할머니의 점을 엄청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어요.



부셈이

한편, 미노루는 화장실에 다녀오다가 접선을 하게 되겠군요.

 

 

에이미

맞아요. 화장실 다녀오면서 “큰일 났네, 화장실 다녀와도 술이 안 깨네.” 투덜거리면서 아편을 한 대 피웁니다.

 

 

부셈이

아편을 피우고 있던 미노루의 눈에 이상한 것이 들어옵니다. 마을 입구 기둥에 못 보던 것이 걸려있어요. 자세히 보니 여우 사체가 화살에 꽂혀있습니다.



하누

아편 피워서 눈이 풀려가지고 처음에는 뭔지 잘 안 보이고 눈앞이 흐릿해서 둘로 나뉘고 그랬는데,

그게 여우 사체라는 걸 깨달은 순간 둘로 나뉘어 보이던 게 하나로 합쳐지는 거죠.



에이미

아편을 퉤 뱉고요. 화살을 살펴보니 달걀귀신의 것이에요.

 

 

부셈이

그때 등 뒤에서 달걀귀신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쿠라마.”



에이미

돌아보지 않고 이렇게 말해요. “여전히 방법이 더럽네, 자기.”



부셈이

“날이 추우니, 모피라도 쓰라고 가져왔다.”



에이미

“진짜 고약하긴.”

“나간 자식 챙기는 이유는 또 뭐야?”

“그 추잡한 노친네가 또 찾아?”



부셈이

“이유야 내가 짐작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물귀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나보다 네가 더 잘 알겠지.”

 

 

에이미

“지도 때문에 온 거겠지.”



부셈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정말로 돌아올 생각은 없는 거냐?”

 

 

에이미

“내가 돌아가면…… 오도깨비가 돌아오나?”



부셈이

“이미 죽은 놈 얘긴 뭐하러 하나.”

“내 부족민들도 다신 돌아오지 않아.”

“때가 되면 누구든 신의 나라로 돌아가게 되어있는 법이다.”



에이미

“자기는 자기가 살아있다고 생각하나 봐?”

"나는 그날, 오도깨비랑 같이 죽었는데."



부셈이

“귀신의 자식이 되기로 했으니, 생사는 중요한 게 아니다.”

 

 

에이미

"난 그 추잡한 노친네의 자식이었던 적 한 번도 없어.”



부셈이

미간을 찡그리면서, “말 함부로 하지 마라.”



에이미

“자기는 그렇게 그 여자가 좋아?”



부셈이

“나에게 물귀신은 만주의 신이다.”

“만주는 흉폭하고 잔인하지.”

“나는 나의 고향을 버리지 않아.”

“……광야의 빛을 찾고 있다고 들었다.”

“목적은 돈이냐?”



에이미

“자기는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난 돈이 아니라 돈더미가 필요한 거야."

"그 미친 노친네를 짓뭉개고도 남을 정도의 돈더미와 권력이!”

“그러니까 회유할 생각이면 집어치워.”

 

 

부셈이

무표정한 얼굴이지만 이를 꽉 악물어서 턱근육이 경직된 것이 보이고요.

 

 

에이미

“자기, 그런 표정도 지을 수 있었구나.”

“놀랍네.”

“자기가 화내는 거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부셈이

“널 인정으로 대하려고 했다.”

“앞으로는 사냥감으로 대하마.”

“다음에 만날 땐 가족이 아니다.”



에이미

“우리가 가족이었어?”



부셈이

“네놈이 피붙이일 때부터 봐왔다.”

“너 자신을 속이려고 하지 마.”

“소중한 것과 같이 죽었다고?”

“글쎄……. 내 눈엔 새 가족을 찾고 있는 걸로 보이는데.”

“늑대를 끌어내려면 그놈 새끼부터 죽여야 하지.”

“그래야 복수를 위해 제발로 기어 나올테니까.”



에이미

“걔네 내 가족 아니거든? 오해하지 마.”

“걔네 죽인다고, 나 그렇게 달라지지 않아.”

물론 이건 허세입니다.



부셈이

“그건 녀석들도 이 기둥에 매달아보면 알겠지.”



에이미

“걔네, 생각보다 제법 능력 있거든?”

“할 수 있으면 해 봐.”



부셈이

“그럴 생각이다.”



에이미

“그 여자에게 전해.”

“다음 봄이 오기 전에 사러간다고.”

"그 질긴 목숨 말이야."



부셈이

“당장이라도 네놈 목에 화살을 꽂고 싶지만 참으마.”

“물귀신이 원한다면 네 사지를 잘라서라도 데려갈 거다.”

 


에이미

“할 수 있다면, 해보시든가.”

 

 

부셈이

미노루가 그렇게 말하고, 달걀귀신이 휘파람을 불자 숲속에서 순록이 달려나오더니 달걀귀신을 태우고 사라집니다.

잔치가 끝나고 다음날 새벽이 되었어요. 오늘 날이 밝으면 사냥꾼들과 석진은 호랑이 사냥을 떠날 예정입니다.

어제 달걀귀신을 만난 미노루는 어떻게 하나요?

 

 

에이미

저는 석진이 사냥을 떠나기 전에 달걀귀신과 접선했다는 사실을 전하려고 할 것 같아요.



부셈이

몽희가 석진, 투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호랑이 사냥에 참가할 수 없다는 것에 조금 납득했잖아요.

석진을 배웅해주러 갔다가 두 사람의 대화를 듣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버팬

오, 좋네요.

 

 

하누

그러면, 아직 해 뜨기 직전이라 하늘이 남색이고요. 석진은 복잡한 마음을 정리할 겸, 감을 확인할 겸 총을 쏘고 있어요. 먼 곳의 과녁을 하나하나 맞추고 있습니다.

 

 

에이미

그런 석진에게 다가와서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어?”라고 말해요. 평소랑은 달리 꽤 진지한 목소리예요.



하누

저는 미노루와의 감정의 골이 아직 남아 있어요. 그래서 그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계속 총을 쏘면서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다.”

“정신 사납게 하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아.”



에이미

“그런 약속 따위보다 이게 훨씬 중요한 일이야.”

“잘 들어, 우리 당장 여길 떠야 해.”

“어제 백팔요괴단에서 접선을 해왔어.”

“달걀귀신이라는 놈인데, 백팔요괴단의 팔천 중 하나야.”

“당장 몽희 데리고 나와. 한시가 급하니까.”



하누

미노루의 말에 석진은 제일 먼저 의심부터 될 것 같아요. 미노루는 몽희를 죽여서 팔아넘기려 했고, 뉘우친 적도 없으니까요.

그래서 잠시 말없이 고민하다가, “네가 왜 우리에게 그런 얘기를 하지?”



에이미

“뭐? 당연하잖아.”

“살아야 하니까!”

“난 내 목숨이 소중해. 이런 데서 순순히 죽어줄 생각 없다고.”



하누

“네가 살기 위해서라면 그쪽에 협력하는 편이 훨씬 유리한 거 아닌가?”



에이미

그제서야 분위기 파악을 좀 했어요.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왜 그쪽에 협력…….”



하누

“네가 몸담은 곳이 바로 그 백팔요괴단이지.”

“백팔요괴단이 습격해봤자 위험해지는 건 나와 꼬맹이지 네가 아니란 얘기다.”

탕 하고 총을 쏘고, 또 목표 하나가 넘어갑니다.

“넌 언제나 꼬맹이를 팔아먹을 생각 뿐이었잖아.”

“그놈들과 손을 잡고 함정을 판 게 아니라고 어떻게 장담하지?”

 

 

에이미

아차, 이 녀석 날 아직 백팔요괴단 소속이라고 생각하는구나 싶어요.

하지만 해명하지는 않습니다. 어차피 믿어주지도 않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오히려 더 허세를 부리며 화를 냅니다. “하! 도와준대도 지랄이네!”

“나라고 이러고 싶은 줄 알아? 그 계집애는 구해야 하니까 하는 소리 아냐!"

 


하누

미노루의 말에 하, 하고 코웃음 치고요. “자기 목숨밖에 모르는 놈이 남의 목숨을 걱정하다니, 참 믿음직스럽군.”



에이미

생각보다 강경한 석진의 태도에 당황해서 말해요.

“그…… 그런게 지금 뭐가 중요해?”

“너, 너도 쟤 지킬 거라며?”



하누

드디어 총 쏘는 걸 멈추고 미노루를 돌아봅니다. 차가운 얼굴에는 적개심이 가득합니다.

“지킬 거야.”

“지킬 거니까 네 말은 믿을 수 없다.”



에이미

믿을 수 없이 싸늘한 얼굴에 충격을 받습니다.

그래도 함께 동업자로 지내온 시간이 몇 년인데. 이쪽은 내심 그동안 정을 쌓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저 쪽에겐 제가 아무것도 아니었던 거예요.

제가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이 배신감이라는 걸 스스로 자각하진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굉장히 화가 나고 밉다는 것은 알 수 있어요.

무슨 말을 해서라도 상처를 주고 싶을 정도로.

“역시, 넌 아무도 안 믿는구나.”

“독립군 배신하고 나온 놈 다워.”



하누

전 아직 옛 동료들을 잃은 상처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었잖아요. 미노루의 말이 가슴에 쐐기를 박았어요. 얼굴이 와락 일그러져요.

“너, 방금 뭐라고……!”



에이미

“그래도 그간 같이 일한 정을 봐서 일부러 말해준 건데.”

“너 같은 걸 걱정한 내가 병신이지.”

“호랑이 사냥이 그렇게 중요하면 가.”

“가서 콱 물려버려!”

“그 계집애는 내가 데려갈 테니까.”

 


하누

험악한 얼굴로 미노루 앞을 가로막아요.

“누구 마음대로?”

“네가 꼬맹이 팔아치우도록 내가 놔둘 것 같아?”

 


버팬

석진을 만나러 왔는데 둘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거예요. 처음엔 말리려고 했는데, 점점 살벌해지니까 끼어들지 못하고 있어요.

울타리 뒤에 숨은 채로 두 사람을 지켜봅니다.



에이미

지금까지는 감정이 격양되어서 눈을 뜨고 있었는데요, 다시 사악 하고 실눈을 뜨고 살살 눈웃음을 쳐요.

“아이, 농담이야, 농담~.”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군담?”

“백팔요괴단이 나한테 접선을 했을 리가 없잖아.”

“설마 이런 촌구석까지 따라올까봐?”

“자기는 걱정 말고, 가서 호랑이 사냥 잘하고 와.”

그러면서 살랑살랑 자리를 뜨려고 합니다.

“몽희야, 어디 있니?”

“나랑 같이 공기놀이 하자.”

 

 

하누

그때 철커덕 하고 미노루의 목덜미에 딱딱한 무언가가 와닿아요. 아직도 따뜻한 총구가 느껴지고요.

“누가 데려가게 둔다고 했지?”

“그 애는 내가 데려간다.”

“너 같은 녀석에게 그 애를 맡길 수는 없어.”

 


버팬

철컥 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서 뛰쳐나와 석진의 코트 자락을 잡아요.“아저씨, 뭐 하는 거야!”

“호랑이를 잡으러 가야지 미노루를 잡으면 어떡해?!”

 


에이미

그런 몽희를 싸늘한 눈으로 보고 있다가 차갑게 말해요.

“너, 그렇게 호랑이 사냥 가고 싶다고 했지?”

“가.”

“나 이제 너 필요 없으니까.”

“더러워서 물귀신 알아서 죽이고 말지. 네 도움 같은 건 필요 없어.”



하누

몽희가 나타나서 말려도 총구를 계속 미노루 목덜미에 대고 있다가, 드디어 총을 내려요.

“가자.”

몽희의 팔을 붙잡고 억지로 끌고 갑니다.



버팬

“어어, 미노루는 안 가? 미노루는 여기 있는 거야?”

“미노루, 나 꼭 호랑이 잡아서 올게!”

“그러니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알았지?”

불안한 눈으로 석진과 미노루를 번갈아 쳐다봐요. 석진의 힘을 이길 순 없으니 그대로 끌려가고요.



에이미

석진과 몽희가 떠나면 미노루 쪽이 클로즈업 되고요. 멀어지는 몽희의 말에 입술을 꽉 사리물고는 저벅저벅 걸어서 가버립니다.

저 아무래도 석진과의 인연 복선을 플러스에서 마이너스로 바꿔야 할 것 같아요.

원래는 ‘능력 좋은 노예’였는데, ‘아무도 믿지 않는 놈’으로 바꾸겠습니다.

 

 

하누

좋네요. 그럼 저도 바꿀게요. ‘거슬리는 공생 관계’에서 ‘간사한 여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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