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세카 ㅣ오리캐X버싱

아키카이 /전력 / 버그

썰 빌려주신 자몽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moonland by La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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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카이에는 가끔 버그가 생긴다. 버그가 생긴다는 것은 마음의 조각이 나타나거나 세카이가 확장되는 것과는 다른 이변이다. 갑자기 거리 한부분만 화려한 그라피티의 색이 사라져 칙칙한 회색이 되었다가 며칠 뒤 원래대로 돌아온다거나 세카이 전체에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가 낀다거나 버추얼 싱어의 몸에서 식물이 싹을 틔운다거나 성별이 바뀌거나 하는 일이 일어난다. 일시적인 일이다. 마음의 주인인 아이들이 보고듣고 겪은 일에서의 격렬한 감정적인 변화-주로 스트레스-가 버그를 일으키는 원인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그리고 오늘, 그런 버그를 목격한 한 사람의 비명소리가 스트리트 세카이에 울려 퍼졌다.

“으아아아악!”

“아키토는 참 다이나믹한 표정을 짓네. 방금 그 표정 세카이에 처음 왔을 때 같았어.”

미쿠가 20cm 솜인형 정도로 작아진 카이토의 목덜미를 잡아들며 말했다. 그렇다. 오늘의 버그는 작아지는 것. 그리고 또 하나.

“재밌는 표정이었어!”

“아키토 놀자!”

“팬케이크 먹자!”

“메이코,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

“미쿠, 노래해 줘!”

“렌은?”

“루카 찾으러 나가보자~”

“린은?”

“광장 가자!”

“음악 틀어줘!”

“아키토 엄청 심각한 표정 하고 있네!”

작아진 카이토가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다. 어림잡아 열 명은 넘을 것 같다. 요런 쪼끄만 카이토가 잔뜩 튀어나오면 글쎄, 누구라도 놀라지 않을까? 참고로 방금 미쿠가 집어든 카이토는 어디선가 나타나 아키토의 목덜미에 철썩 들러붙은 카이토다. 아니 갑자기 뭔가 목에 부딪치면 비명 지르지 않고 배기겠냐고. 그건 그렇고 큰 카이토 한 명이 쪼개지면서 작아진 건가? 그러면서 말투나 행동이 어려진 것 같은데…

“저기요.”

“아키토, 혹시 지금 집에 가려는 건 아니지?”

“아.”

미쿠가 하는 말에 아키토가 혀를 찬다. 꼬마 카이토 씨 돌보기라니 귀찮을 것 같아서 도망치려고 했는데 들켰다. 그렇게 해서 아키토는 쪼끄만 카이토들의 일일보모가 되었다.

“아키토 나 졸려.”

5라는 숫자를 옷에 붙인 꼬마 카이토가 하품을 한다. 다 똑같이 생겨서 똑같은 옷이라 누가 있고 없는지 파악하기 너무 어려워서 옷에 커다랗게 숫자를 쓴 종이를 앞뒤로 붙였다.

“나도 졸려.”

“나도!”

나도, 나도, 하는 목소리와 하품이 15명치 이어진다. 이 쪼꼬미들을 카페에서 가져온 쿠션과 무릎담요로 임시로 잠자리를 만들어 재운다. 내가 아키토 옆에서 잘거야 나는 아키토 손잡고 잘거야 나는 아키토 팔배게 할거야! 무릎배게 할래! 시끄러운 꼬맹이들을 하나하나 어르고 달래서 눕힌다. 어찌어찌 공평하게 눕히고 나니 노래 불러줘, 하고 입을 모아 칭얼거리길래 적당히 자장가를 불러준다. 모두들 계속 뛰어다니고 먹고 노래하고 장난치더니 많이 피곤했는지 금세 잠에 빠져든다.

‘자는 얼굴은 정말 천사 같네. ’

실제 카이토가 잠든 얼굴은 한번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볼 수 있다면 분명, 이렇게 천사 같이 사랑스럽겠지. 아키토의 팔과 다리와 몸통에 찰싹 달라붙어 잠든 카이토들을 보고 있자니 아키토도 슬슬 졸려온다. 그야 그럴게 계속 같이 놀아줬더니 아키토도 피곤하다. 메이코 씨의 신작 디저트를 궁금해하지 말고 그냥 집으로 갈 걸 그랬나 싶으면서도 작아진 카이토가 증식한 걸 전해듣지 않고 직접 볼 수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천천히 아키토의 눈이 감겨온다. 에라 모르겠다, 하며 수마에 몸을 맡긴다. 카이토 씨와 함께 하는 달콤한 낮잠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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