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MS] [FF14] [D] 서약식 대기실
수정공 × 빛의 전사 ← 산크레드 삼각 드림
주의사항 제회 4200자.
삼각관계 드림으로, FF14 수정공/산크레드에 대한 약간의 날조, V5.3 크리스탈의 잔광 이후 날조가 섞여 있습니다.
원작과의 다른 해석이 있을 수 있으며, 드림 서사가 있으니 유념하고 읽어주세요.
세월은 속절없이 지나간다. 연구의 진척은 되지 않았으며 성견의 방에 들어간 수정공에게서도 유의미한 소식은 없었고, 그의 소식을 기다리는 새벽 역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혹자는 메말라버린 사막 대지로 나아가 사람들을 치유하고 남은 죄식자들을 토벌하고 다녔으며, 또 다른 혹자는 숲으로 들어가 자신의 지식을 전수하고 연구하는 일을 이었다. 다른 누군가는 꽃이 가득 핀 정원으로 향해 정령들과의 교류를 이었으며, 다른 누군가는 역시나 먼 빛의 대지로 나아갔다 복귀하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시간은 다시금 지나가고 흘러간다. 하루와 이틀은 별 것 아니다. 그 이상의 기간이 흘러감에 따라, 새벽은 점점 둔감해져 갔다.
새벽은 시간이 얼마나 흘러갔는지를 가늠하기 위해, 리우스에게 여러 부탁을 했다. 그들 중에 차원을 넘나들 수 있는 것은 단 한명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어서는, 그들의 육신이 정신을 잃거나 쓰러지는 일이 서서히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초조해진 표정의 알피노는 한참이나 자신들을 돌봐준 타타루에게 미안하다는 편지를 남겨 리우스에게 전하도록 부탁했다. 천만다행으로 그 편지 덕에 원초세계의 마토야, 그리다니아의 카느 에 센나, 마찬가지로 마법과 약초학에 능한 고블린들을 포함한, 내로라하는 전문인력들이 모여 육신을 보존하고 에테르를 보충하는 과정을 만들어냈기에 더 이상 그들의 혼이 아득해져 쓰러지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제야 새벽은 세월을 보내는 일에 초조해하지 않게 되었다.
만약 돌아가지 못 한다면, 이 곳에 머무르자. 나는 그렇게 할 거야. 리우스의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일을 알리자, 처음에는 회의적이던 새벽의 일원들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신체가 안정화되는 것을 느끼고는(뭐, 정확히는 에테르가 보충되는 덕에 연결이 끊어지지 않도록 보강된 상태다만) 리우스의 선택을 따르는 듯한 모습을 내비쳤으며, 실제로 점점 그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처럼 고요해졌다.
역시나 가장 불안정했던 건 수정공이겠지. 약조를 했음에도 유의미한 결과를 내지 못 하는 것에, 라이나는 그가 드물게 초조한 모습이라며 우려하는 말을 리우스에게 들려주었다. 리우스는 그날 곧바로 성견의 방으로 올라가 문을 반쯤 억지로 밀어 열고는, 그 안에 서 있던 수정공을 껴안았다. 쏟아지는 고백과 본심을 속삭였으며, 수정공이 목을 놓아 울 적까지 한참을 안고 있었다.
이 때까지 지난 시간은 아마, 햇수로 셀 수 있을 정도일 것이다. 그러니까 가장 먼저 소환됐던 누군가의 세월과 필적할 만큼의 시간이라는 의미였다.
" 리우스 씨, 옷이 정말 잘 어울리네요. 다행입니다. 제 안목이 빛을 발했다는 게 기뻐요. "
─ 흐흥, 무슨 소리야? 나의 어린 나무에게 안 어울리는 옷은 없는걸! 물론, 이 페오 울이 직접 기른 요정왕의 꽃도 한 몫 하는 거겠지만!
" 라이나 씨, 페오 님, 싸우시는 건 아니지요...? "
" 천만에요, 루나르. 아주 우호적인 관계 표현이니 안심하도록 해요. "
라이나와 페오, 루나르와 그 곁에 선 야슈톨라의 목소리에 리우스가 잠시 키득거린다. 머리를 다듬어 주던 린과 둘리아 부인이 빗을 들고 허둥대는 바람에 다시 움직임은 멈추었지만, 그들의 이야기 소리는 멎지 않고 이어진다.
" 어머, 그러고 보니 안대 말이야. 이제 안 해도 괜찮아? 무슨 사정이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
" 괜찮습니다. 지금은요. "
" 네, 리우스 님은 이제 괜찮으시대요. "
" 인물이 확 사는걸! 우리 여보도 이렇게 눈을 가리게 했다가 다시 보여줄까봐. 호호! "
어느 새 곱고 단정하게 꾸며진 머리는 율모어 식으로 단장되었다. 그 위에 갖가지 꽂을 살며시 기울여 꽂는 페오와, 의복을 조심스레 옆에 걸어두는 라이나, 마지막으로 라케티카 대삼림의 끈나무 줄기로 엮은 산나무꽃 부케를 둔 루나르와 이들을 이끌어주는 야슈톨라가 하나씩 대기실을 빠져나간다. 마지막으로 남은 린이 조심스럽게 몸을 숙여 인사를 한다.
" 그럼... ...리우스 씨, 조금 쉬고 계세요. 저희는 수정공을 꾸며드리고 올게요! "
" 응, 잘 부탁할게. "
천막이 내려지면 그 안에는 리우스만이 남는다. 거울로 비춰지는 자신의 모습은 한없이 자유로운 영혼이라, 문득 미소가 띄워져 앞에 놓인 부케를 천천히 자신의 손으로 들어 품에 대어본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드디어, 아주 오래도록 이어진 방랑의 방점을 찍을 시기가 눈 앞에 다가왔다니, 실감이 나지 않아서.
오랜 기간 이어졌던 수정공과의 애정은, 서로를 귀속시키고 싶은 마음으로 발전했다. 마침내 신체적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야 성사된 위대한 서약식임을 떠올리면, 리우스는 문득 안도하고 마는 것이다.
서약의 의미는 간단했다. 세상이 끝나는 일이 있어도 서로에게 있어줄 수 있는 만큼 있자는 말. 사실상의 청혼과 같은 말에 가장 설레했던 것은 둘리아 부인이었다. 반대로 가장 못마땅하게 여긴 것은 페오였지만, 결국 '행복'을 추구하는 자신의 계약자도 무척이나 아름다울 것 같다며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지. 새벽이 떠드는 사이 누군가의 표정이 어두웠던 것 같지만, 리우스의 기억은 희미하기만 했다.
리우스가 추억에 잠겨 있는 사이, 천막이 걷힌다. 누군가의 그림자가 들어서자 리우스가 고개를 돌려 천천히 바라본다.
" 린? 벌써 식 시작이야? "
" 리우스. "
" ...응? 산크레드? "
들어온 채 서로 눈을 깜빡인다. 이제서야 막 무의 대지에서 돌아온 것인지 옷 끝자락에 하얀 먼지같은 자국이 남아 있는 것을, 리우스가 빤히 바라보면 어색한 손길로 산크레드가 자신의 옷깃을 털어냈다. 옷 터는 소리만이 이따금 들리는 고요한 대기실 속에서, 다시 말문을 튼 것은 리우스였다.
" 늦었네. "
" 어... ...어쩌다 보니. 생각보다 큰 죄식자가 날아 들어와서 싸우느라. "
" 안 다쳤으면 됐어. "
끄덕인 산크레드는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리우스에게 다가가 리우스의 부케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두는 것은, 자신의 마력 소일과 같은 형태의 로켓 목걸이였다. 의아한 표정으로 올려다 보는 리우스에게 산크레드가 몸을 숙이며 다가온다. 비뚤어진 꽃을 정돈하고, 덜 빗겨진 머리를 어설픈 솜씨로나마 빗어주는 손길에 곧 고요해졌다.
" 서약식이라는 걸 하는 게 이 곳의 문화겠지. "
" 응. "
" 언약식이랑 비슷한가? "
" 궤가 다르지는 않더라고. 수정공 설명에 의하면. "
" 그렇군. "
말 없이 머리 정돈을 끝낸 산크레드와 리우스 사이에는 짧은 적막이 감돈다. 산크레드는 속에서부터 느껴지는 미세한 쓴 맛에 두어 번 입을 벙긋거리다 멈추었다. 아는 것인지, 혹은 모르는 것인지 적막 끝에 리우스가 먼저 그에게 부케를 보여주는 것으로 다시 언어가 이어진다.
" 예쁘지. 루나르가 가져다 줬어. "
" 이거... ...파노브 마을과 똬리가지 마을의 꽃들이군. 숲 꽃은 드물게 피어서 귀하다던데. "
" 그래서 마음이 느껴지는 거지. "
" ...그래서 행복하고? "
" 산크레드, 난 지금 누구보다도 행복해. "
네가 행복하다면, 이 쓴 맛은 느껴지지 않아야 할 텐데. 미묘한 쓴 맛은 아마 당신을 향하는 마음을 접지 못 한 자신의 탓이라며, 산크레드는 속으로 마음을 삼킨 채 그저 끄덕인다. 평소의 표정을 가장해 내비치면 리우스가 몸을 일으켜 산크레드를 두 팔로 껴안는다.
" 리우스. "
" 산크레드. ...늘 고마워. 여기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던 것도 네 덕이야. "
" ...그래. 네가 행복하다면 됐어. "
이어 팔을 풀고 웃는 얼굴이다. 열린 문 너머로 이어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어 주황빛 머리칼의 어린 소녀가 고개를 내밀었다.
" 리우스 씨, 이제 준비하셔야 해요... ...앗, 산크레드. "
" 아, 린. 마중 온 거야? "
" 네, 이제 수정공의 단장도 끝나서요. 산크레드도 같이 가면... "
" 어. 먼저 가. 옷 정리만 좀 하고 갈 테니. "
린이 다가와 리우스를 바라본다. 천천히 몸을 돌려 리우스가 나가는 방향으로 산크레드의 시선이 굴러간다. 가볍게 손을 흔들고, 의복을 챙겨 나가는 리우스와 그 옆에서 함께 손을 들어보이는 린. 둘의 인기척이 완전히 사라진 후에야 산크레드의 얼굴에 어둑함이 끼친다.
네가 행복하면 되었다. 그러면 되었을 텐데. 왜 이 마음은 사라지질 않아 나를 괴롭히는 것인지.
여건만 되었다면 정말로 축복했을 터였다. 정말로. 백색 에테르 가루가 묻은 것을 핑계로 사람들 사이를 지나쳐 크리스타리움을 빠져나가는 산크레드의 속에 내리 고여 있던 씁쓸함이 목구멍 아래까지 차오르다가, 얼핏 지나가듯 보인 수정공과 리우스의 서약용 반지의 반짝임을 마주하면 한순간에 모든 것이 내려간다. 건조함이 필요했기에 산크레드의 걸음이 빨라진다. 아므 아렝 방면으로. 그리고 그 너머의 하얀 대지로. 그 곳에 자신의 쓴 맛을 게워내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 것이다.
이 쓴 맛은 나의 몫이니, 너는 부디 행복하길 바란다.
부디, 나의 몫까지.
이상, 산크레드 워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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