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능의 영역 上

人鱼,猫,人

나유 by 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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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요? 최근 유행하고 있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주카는 벽을 통째로 들어내는 사람들을 보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 열 명쯤은 거뜬히 들어갈 만한 거대한 유리 수조가 뒤에서 벽을 다시 채우기만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고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나왔다만 갑작스럽게 인어를 집에 들인다니. 주카는 설명이 필요한 얼굴로 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요즘 있는 집안은 하나씩 들여놓는다고 하지 않니. 네가 물고기를 구경하는 걸 좋아한다고 하자 그분이 선물로 보내줬단다.”

“아빠도 참, 그건 어렸을 때나 좋아했던 건데.”

“허허,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네 정혼자는 다정하기도 하지. 인어 한 마리에 몇 억을 상회한다는데….”

 

주카의 아버지는 흐뭇한 눈길로 곧 인어가 들어설 거대한 수조를 바라보았다. 주카는 입을 약간 삐쭉대며 사람들이 수조 밑바닥에 조약돌과 형형색색의 산호를 깔고 여과를 설치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곧이어 수조를 가득 채운 물에서는 짠 내음이 느껴졌다. 그러나 바다 냄새라 하기엔 어딘가 인위적이었다.

 

“회장님.”

 

다른 사람들처럼 남색 점프슈트가 아닌 검은 양복을 차려입은 사내가 다가와 허리를 숙였다. 총책임자로 보이는 모습에 주카도 옆에 서 귀를 기울였다.

 

“잠시 후 인어가 도착한다고 합니다. 아직 성대 제거술은 하지 않았는데 진행할까요?”

“성대제거술이라니요?”

“인어는 말소리로 사람을 홀린다는 소문에 많은 분들이 성대를 제거합니다. 큰 시술은 아니니 금방 끝나…”

“아, 아뇨. 그대로 두세요. 그러실 필요 없어요.”

“알겠습니다.”

 

주카가 손을 휘젓자 남자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다시 뒤로 물러났다. 성대를 제거한다니. 소름이 돋아 손가락으로 목을 긁적이며 불쾌함을 삼켰으나 주위를 둘러보니 그 소리에 비위가 상한 사람은 오직 자신뿐인 것 같았다.

 

주카의 아버지는 집에 값비싼 인어를 들여놓는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은지 한참을 주카의 옆에 서서 그녀의 정혼자가 얼마나 부유한지, 그 사람의 지원이 없었다면 우리 집안은 망했을 것이며 너를 정말 아끼는 모습에 안심이 된다는 말을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아, 이럴 것이 아니라 지금 감사 인사를 드리고 와야겠구나. 주카는 적당히 맞장구를 치다가 서둘러 일어서는 아버지를 응시했다.

 

“주카 너도 같이 갈 테냐? 곧 결혼식인데 자주 얼굴을 봐 둬야 않겠니.”

“아, 아뇨… 저는 집에 있을게요. 조금 피곤해서요.”

 

그럼 나중에 보자는 말과 함께 아버지는 서둘러 자리를 비웠다. 주카 또한 잠시 수조 앞을 지키고 있다가 그러면 수고하세요. 라는 말과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한동안 주카는 일부러 인어가 위치한 복도를 빙 둘러서 가는 식으로 인어를 피했다. 인어는 어떠냐는 물음에는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라는 회피성 대답이 내뱉어졌다. 사람들도 주카가 인어에 큰 흥미가 없는 걸 눈치 챘는지 그 후부터는 주카 앞에서 인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주카는 언젠간 인어를 보러 가야 함을 알면서도 만남을 차일피일 미루었다. 인어가 싫은 건 아니었다. 그저 반인반수 장식품이라는 점에서 오는 본능적인 꺼림칙함. 그 사람은 나도 수인(獸人)임을 모르는 건가? 정혼자에게서 선물은 마음에 드냐는 문자가 왔을 때도 주카는 적당히 마음에 든다는 빈말과 함께 상황을 넘겼다.

 

그랬던 주카가 인어를 처음 마주한 건 계획이 아닌 우연이었다. 그저 한밤중 갑작스레 눈이 떠졌다. 한참을 뒤척였지만, 다시 잠이 올 것 같지는 않았다. 따뜻한 물이라도 마시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잠에 취한 주카는 인어의 존재를 잊은 채 무의식적으로 늘 걷던 길로 걸었다. 모두가 잠든 듯 집은 고요했으나 저 멀리 희끄무레한 빛이 보였다. 아빠는 새벽까지 불을 켜 두는 스타일은 아닌데. 주카는 의아함에 빛을 향해 다가갔다. 광원의 근원지에 도달하자 물에 반사된 빛이 대리석 바닥에 담겨 일렁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매끄러운 바닥에는 인간의 그림자와 인간이 아닌 것의 그림자가 동시에 존재했다.

 

고개를 드는 것에는 약간의 용기가 필요했다. 시선을 위로 올리자 얼마 전 보았던 거대한 수조가 푸름을 머금고 있었다. 위에 위치한 조명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이 인어를 비추고 있었다. 금발의 머리카락이 물속에서 흔들렸다. 인간과 흡사한, 아니 인간이라 해도 무방한 상체와 이어진 물고기의 하체. 허리께부터 머리색과 똑같은 색의 비늘이 돋아 하반신을 두르고 있었다. 꼬리에 위치한 넓은 지느러미는 반투명해 뒤가 살짝 비쳐 보였다. 인어는 자는 듯 눈을 감고 바닥에 가만히 가라앉아 있었다.

 

크다. 남자… 인어구나. 주카는 그 자리에 서서 인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문득 어렸을 적 한참 넋을 놓은 채 구경했던 금붕어가 떠올랐다. 지느러미가 예뻐서 잡으려다가 실패했었던. 살랑거리는 지느러미는 그때의 기억을 불러일으켰으나 그와 물고기를 비교하는 건 실례인 것 같았다. 비록 하반신은 물고기나 상반신은 사람.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고등 생물.

 

주카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인어에게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갔다. 너무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밋밋하지도 않은 비늘이 낱낱이 보일 정도로 가까이 갔음에도 인어는 눈을 뜨지 않았다. 아예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은 주카는 유리벽에 천천히 손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손이 툭, 하고 서늘한 유리에 닿는 순간 자고 있는 줄만 알았던 인어가 눈을 떴다. 붉은 시선과 검은 시선이 맞부딪혔다. 깜짝 놀란 주카는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을 느끼며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까, 깜짝이야. 깨어 있었나? 심호흡을 하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자 인어는 몸을 틀어 주카가 멀어진 만큼 가까이 다가왔다. 뭐라도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주카는 잠시 망설이다가 가장 상투적이고도 평범한 첫인사를 건넸다.

 

“안녕?”

 

 

 

 

 

 

 

 

아루루는 내심 이 상황을 다행이라 여겼다. 산 채로 회 쳐지는 것보다는 관상용 인어가 훨씬 낫지. 어둡고 좁은 상자에 갇힌 채 이대로 차게 식은 고깃덩어리가 되는 줄만 알았으나 호화로운 수조는 그를 죽게 내버려두지는 않을 모양이었다. 인간이 친 어망 속 물고기나 빼먹고 다니는 삶이었는데 당분간 부잣집에서 호의호식하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앞의 여자애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자신을 올려다보며 물고기처럼 입을 뻐끔거리고 있었다. 뭐라 말하는 건가? 아니면 그냥 놀라서? 말하는 소리가 지나치게 작았다. 아루루는 더 잘 듣기 위해 수면 위로 치달아 올라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액체가 아닌 기체에 적응하고자 눈을 몇 번 깜박이는 동안 여자는 인내심 있게 자신을 기다려 주었다. 머리색이 바다를 닮았네. 눈은 상반되게 붉은색이고. 뺨에 저건 뭐지? 그 순간 인사를 건네는 말이 들렸다. 이 장소에는 둘 뿐이었으니 여자애가 낸 소리임이 분명했다.

 

“그래. 안녕.”

“아, 말을… 할 줄 아는구나.”

“당연하지. 그럼 못할까 봐?”

“그, 그게 아니라… 어…음… 이름이 있니? 뭐라고 불러줄까?”

“이름? 아루루라고 해.”

 

그렇구나. 아루루… 여자애는 몇 번 아루루의 이름을 되뇌더니 자신의 이름은 주카라 말했다. 주카? 음… 주카. 그래, 반가워. 아루루는 빙글빙글 웃어 보이며 확신했다. 잘 관리된 머리카락과 비싸 보이는 옷. 얘가 여기서 본 사람 중에 제일 높은 사람이다. 아루루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는 이 여자애한테 잘 보여야 한다는 걸 직감했다. 순진해 보여 환심을 사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아 보였다. 적당히 놀아주다가 죽은 척이라도 해서 도망쳐야지. 아무리 안락한 수조라도 드넓은 바다가 그래도 나으니까. 그게 처음의 계획이었다.

 

 

 

 

 

“이거 먹을래?”

“뭔데?”

“쥐포야. 쥐치로 만든 거라는데 네가 좋아할 것 같아서.”

 

주카가 주는 것 중 맛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아루루는 냉큼 쥐포라고 하는 납작한 물체를 받아서 들었다. 한 입 베어 물자 입 안 가득 퍼지는 매캐한 감칠맛. 처음 접하는 불의 식감이란 중독성이 있었다. 어째서 프로메테우스는 인어에게도 불을 주지 않은 걸까. 아루루는 이로 쥐포를 질겅질겅 씹으며 이것도 맛있는데, 전의 버터구이 오징어가 더 낫다. 라는 배부른 소리를 했고, 주카는 그러면 그것도 가져다주겠다며 올 때마다 선물을 한가득 안겨주고는 했다. 주카는 처음 아루루를 피했던 것과는 상반되게 날마다 아루루가 있는 수조로 향했다. 아루루는 이 집에서 생물보다는 값비싼 가구에 가까웠지만 주카는 아루루에게 정답게 말을 걸며 유심히 바라보고는 했다.

 

“왜 그렇게 봐?”

“신기해서. 어렸을 때 생각이 나기도 하고. 물고기를 구경하는 걸 좋아했거든.”

“취향 특이하네. 그리고 나는 물고기가 아니거든? 그런 하등 생물이랑 비교하지 말아 줄래?”

“미, 미안해. 내가 실례했네.”

 

주카는 멋쩍게 웃다가 달리 필요한 건 없는지 재차 물어보았다. 이상할 정도로 친절한 사람. 아루루는 의아함을 품으면서도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심심하니 혼자 있을 때 할 만한 건 없냐는 의견을 피력했다. 한 손을 입가에 가져다 대고 골똘히 고민하는 주카는 정말로 달라는 것은 뭐든지 줄 것 같았다. 아루루는 문득 주카가 왜 이렇게나 자신에게 잘 대해주는지 궁금해졌다. 대가 없는 애정은 없으니까.

 

“왜 그렇게 나한테 잘해주는데? 어차피 관상용으로 사온 거 아냐?"

 

직설적인 물음에 주카는 머뭇거리다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바다에 비하면 여기는 많이 답답할 테니까 뭐라도 해주고 싶었어. 그래도 네가 원하면 바다로 돌려보내줄게. 아마 당장은 안 되겠지만….”

 

기회는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아루루는 팔을 뒤로해 눕듯이 유영하며 수지타산을 따져 보았다. 인간의 수명은 한 80년 정도라고 했지. 한 몇 십 년간 적당히 여기서 맛있는 거나 받아먹으면서 사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어, 음 그리고… 사람을 몇 만나본 적 없는 아루루도 주카가 좋은 사람이라는 건 느낄 수 있었다. 다정하고 상냥하고 친절하고 웃는 게 예뻤으니까. 아루루는 금방 결론을 내렸다.

 

“딱히? 여기 꽤 좋아. 난 당분간 여기서 살고 싶어.”

“정말?”

 

다행이다… 주카는 활짝 웃으면서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혹시나 네가 답답해할까 봐 걱정되었거든. 동물적 특징이 많은 수인은 불법 사육되기도 하는데 그러다가 스트레스로 사망하는 경우가 있다고 해서. 나만 해도 고양이 수인이니…”

“고양이 수인?”

“몰랐구나? 하긴. 나는 고양이의 특징이 적은 편이긴 해. 그래도 봐봐, 여기 볼에 문양도 있고, 본능도 어느 정도 남아 있거든.”

 

주카는 자신의 볼을 가리켜 보았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볼에 있는 무늬는 무엇인지 물으려다가 까먹었네. 아루루가 설명해달라는 표정으로 주카를 빤히 쳐다보자 주카는 왜 그렇게 쳐다보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게 뭔데? 나 고양이가 뭔지 몰라.”

“몰라? 아, 하긴, 바다에는 고양이가 없으니까. 고양이가 뭐냐니,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데.”

 

주카는 잠시 고민하다가 눈을 접어 웃었다. 저번에 들었는데 물속에서도 읽을 수 있는 방수 책이라는 게 있대. 아버지께 말해서 네가 읽을 수 있게 책을 인쇄해달라고 할게. 심심하다고 했지? 한 30권이면 되려나? 아, 너무 많으면 수조에 안 들어가겠네. 주카는 재잘재잘 떠들며 아루루를 올려다보았고, 아루루는 물이 뚝뚝 떨어지는 상체를 물 밖으로 내민 채 주카를 내려다보았다.

 

“너 되게 좋은 사람이구나.”

“어, 응? …고마워.”

 

주카는 생긋 웃으며 쑥스러운 듯 머리카락을 귓 뒤로 넘겼다. 고개를 돌렸으나 머리카락 사이로 발갛게 달아오른 볼이 보였다. 웃으니까 귀엽네… 그런 생각들이 물살에 흩어졌다.

 

 

 

 

 

아루루가 주카네 집에 온지 약 한 달 만에 주카는 아루루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주카는 항상 자기 전에 일종의 루틴처럼 아루루에게 향했고, 아루루는 하루의 마지막을 주카와의 대화로 마무리했다. 그날 주카는 긴 잠옷 원피스를 입은 채로 어항 끄트머리에 걸터앉았다. 주카는 아루루의 지느러미를 만지는 걸 좋아했으므로 종종 사다리를 타고 수조 위까지 올라왔다. 그러면 아루루는 기꺼이 주카가 자신을 만질 수 있도록 곁을 내주었다.

 

“물고기, 좋아해?”

 

수조 속의 산호를 바라보다가 주카는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아루루는 눈을 깜박이다가 꾸미지 않은 솔직한 감상을 말했다.

 

“나야 뭐… 좋아하다기보다는 늘 보는 거지? 굳이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좋아하는 쪽이야.”

"그래? 나도 좋아해. 어렸을 때 금붕어가 들어있는 어항을 엄청 좋아했거든. 물 흐르는 소리. 빛을 받아 반짝이는 비늘들. 흔들리는 지느러미 같은 거. 그래서 어렸을 적엔 어항에 뛰어든 적도 있었는데."

“네가? 어항에? 안 들어갈 것 같은데.”

“어렸을 때니까.”

 

주카가 입을 삐쭉 내밀며 뾰로통한 표정을 짓자 아루루는 장난이라고 키득키득 웃으며 수조를 가리켰다.

 

“그럼, 여기 들어와 볼래? 제대로 들어와 본 적 없을 거 아냐.”

“싫어. 젖는 건 별로니까. 그리고 나 수영도 못해.”

“아, 그래. 젖는 거 싫어한다고 했지.”

 

아루루는 단 삼일 만에 주카가 한아름 안겨준 책을 완독했다. 백과사전을 방불케 하는 양이었으니 아루루는 인어 중에서 자신이 고양이를 가장 잘 안다고 자부했다. 주카는 발걸음 소리를 거의 내지 않았고, 어둠 속에서도 잘 움직였으며 잠이 많아 대화가 길어지면 고개를 꾸벅거리곤 했다. 그리고 물을 매우 싫어한다고 했지. 그런데 생선은 또 좋아하고. 고양이의 혀는 생선의 가시를 발라내기 적합한 구조고… …그래서 물고기가 좋다는 건가? 아루루는 잠시 주카가 자신을 사냥하고 힘없이 늘어진 꼬리 위에 올라타서 입맛을 다시는 생각을 했다.

 

…음, 역시 그렇게 잡아먹히기는 싫네. 아루루는 실없는 생각을 하다가 피식 웃으며 손으로 물장구를 쳤다. 주카는 늘 물을 질색하면서도 항상 자신의 장난에 어울려 주었으니까.

 

주카는 얼굴에 흩뿌려지는 물방울에 눈을 찡그리다가, 참지 않고 손을 치켜들었다. 너, 이리 와. 주카는 장난스레 웃으며 물을 튀겨대는 아루루의 손을 잡으려 몸을 앞으로 쭉 뻗었다. 그러나 아루루는 그럴 걸 예상했다는 듯 재빨리 몸을 뒤로 뺐고, 주카가 위치한 곳은 땅이 아닌 수조 꼭대기였기에 주카는 순간 기우뚱하고 균형을 잃었다. 그대로 물속으로 곤두박질친 주카는 수조 중간까지 물방울과 함께 가라앉았다. 아루루는 깜짝 놀라 눈을 질끈 감고 허우적거리는 주카를 붙들었다. 기포가 정신없이 부글거렸다. 꽉 붙들어 맨 채 물 위로 끌어올려 주자 주카는 더듬더듬 손을 뻗어 벽을 붙잡고 다급히 숨을 들이마셨다.

 

윽, 짠맛이 나. 한참이나 숨을 고른 후에야 주카는 눈살을 잔뜩 찡그렸다. 너는 매일 이런 물을 마시고 사는 거야? 주카는 몸을 바들바들 떨며 수조 밖으로 나가려다가 잠시 고개를 돌려 바로 옆에 있는 아루루를 쳐다보았다. 말간 유리알 같은 눈동자가 빤히 아루루를 훑었다. 왜 그래? 어디 다쳤어? 아루루는 죄책감이 들어 슬그머니 주카의 눈치를 보았다.

 

“조금 전에 하던 말 있지.”

 

주카는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뒤로 젖혔다. 얇은 옷이 젖어 안이 비쳐 보였기에 아루루는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저걸 말해줘야 해 말아야 해. 고민하던 찰나 주카는 젖은 손을 뻗어 아루루의 지느러미를 잡았다.

 

“항상 그 지느러미를 잡아보고 싶었는데 물고기는 잡히면 금방 죽어버리잖아. 그래서 한 번도 그걸 손에 쥐어본 적은 없는데…. …너는 잡혀줬네.”

 

머리가 빙글빙글 돌았다. 일부러, 일부러 이러는 건가? 하지만 주카는 아무런 자각이 없는 듯 태연한 얼굴이었다. 오히려 농담이라도 하면 얼굴을 붉히는 쪽은 언제나 주카였다. 굳은 채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겨우 내뱉은 말은 불퉁한 어조를 띠고 있었다. 이, 이상한 말 말고. 어서 나가기나 해. 아루루는 그 말을 마치자마자 주카의 손을 피해 물속으로 깊게 잠수했다. 주카는 함부로 만져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어항 밖으로 몸을 일으켰다. 사다리를 타고 내려갈 줄 알았건만 주카는 그대로 사뿐히 바닥에 착지했다. 주카가 허리를 숙이고 물에 젖은 치마를 손으로 쥐어짜고 나서야 아루루는 주카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래서 날 산거야? 만져보려고?”

“아니, 산 건 아니야. 선물 받았어.”

“선물?”

“응. 혼테일이라고. 내…. 그러고 보니 그 사람은 널 본 적이 없네. 내일 집에 온다는데 인사시켜 줄까?”

“아니. 됐어.”

 

주카는 드물게 말꼬리를 흐렸다. 그 사람과 무슨 사이인지 궁금해졌으나 왜인지 자세히 알고 싶은 심정은 아니었다. 아루루는 물속에서 휘적휘적 손을 저으며 부러 퉁명스럽게 말했다.

 

“너 물 싫어한다며. 어서 옷 말리기나 해.”

“알겠어. 으, 조심성 없이 굴었다고 아빠한테 혼나면 안 되는데…”

 

주카는 내일 보자는 말과 함께 터덜터덜 물 자국을 길게 남기며 사라졌다. 아루루는 한참을 주카가 사라진 복도 끝을 응시하다가 눈을 감았다.

 

 

 

 

 

그러나 다음날 아루루가 본 건 주카가 아닌 처음 보는 인간이었다.

 

사내는 주카보다 적어도 머리 하나는 더 컸다. 주카가 작은 건가 아니면 저 사람이 큰 건가? 마치 참치와 고등어 같았다. 아니, 고래랑 돌고래가 더 정확하겠다. 백과 흑으로만 이루어진 옷을 입고 있어 범고래처럼 보이기도 했으니까. 주카가 들었다면 깔깔대며 웃었을 법한 생각을 하며 아루루는 밖을 바라보았다.

남자는 어항 관리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주카가 아닌 사람의 대화는 딱히 궁금하지 않았다. 아루루는 귀를 기울이는 대신 수조 안을 빙글빙글 돌았다. 오늘 주카는 오지 않는 건가? 내일 보자고 했는데. 많이 혼난 건 아니겠지…. 움직일 때마다 시선이 따라붙었다. 어쩐지 기분이 나빠 아루루는 반응하지 않았다. 낮은 말소리가 오고 가더니 잠시 후 어항을 청소해 주던 사람이 자리를 옮겼다. 발걸음 소리가 점차 멀어지자 긴 복도에는 아루루와 남자 단둘만 남았다. 어색한 분위기에 자는 척이라도 하려고 눈을 감았으나 곧바로 선명한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아루루.”

“…”

“바다의 미물.”

“뭐?”

 

그 말에 단단히 신경이 긁힌 아루루가 눈을 뜨고 남자를 노려보았다. 남자도 지지 않고 눈을 피하지 않았다. 날카로운 시선이 아루루를 훑었다.

 

“사람을 물속으로 끌어들여 죽이려고 했다던데.”

 

무시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아루루는 말을 하기 위해 얼굴을 물 밖으로 내밀었다. 오해가 있는 게 분명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짜증나는 어투로 대답했건만 남자는 여전히 취조하듯 고압적인 투였다.

 

“어제 널 만나고 주카가 앓아누웠다. 감기라고 하더군. 그리고 감시 카메라에 주카가 물에 빠진 기록이 있고. 네가 끌어들인 게 아닌가?”

“그건 내가 한 게 아니라…!”

“중요한 건 네 존재 때문에 주카의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는 거지.”

 

사실 관계만 따진다면 자기 장난 때문에 주카가 물에 빠진 건 틀린 말이 아니었다. 게다가 남자는 지위가 낮지는 않아 보였다. 주카와 마찬가지로 남자의 몸을 두른 옷감은 질이 꽤 좋아 보였으니까. 얼굴이 닮지 않은 걸 보면 친척도 아닌 것 같고. 아루루는 굳이 해명하지 않는 편을 택했다. 해명해봤자 들어줄 것 같지도 않았다. 팔짱을 낀 채 아루루는 애써 무심한 얼굴을 했다.

 

“그래서 책임을 묻겠다고?”

“책임? 한낱 짐승한테 책임을 물을 수는 없지. 이건 경고다.”

 

기분 나쁜 인간이네. 아루루는 목 안 가득 치달은 말을 가까스로 삼켰다. 하지만 표정까지 숨길 수 없었다. 인상을 찌푸리자 남자는 얼굴에 조소를 띄웠다.

 

“내 아내 될 사람이 인어 감상을 그리 좋아한다고 하더니. 이리 사나워서야. 아무래도 새 인어를 구해야겠어.”

“아내?”

 

새 인어를 구한다는 소리는 둘째 치고 말 사이에 이상한 단어가 섞여 있었다. 아루루는 눈을 가늘게 떴다. 주카가 많이 아프냐고 물어보려고 했지만 그보다 ‘아내’에 대한 질문이 우선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추궁하려는 찰나 멀리서 아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루…! 어, 혼테일?”

“주카.”

 

남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얼굴에 웃음을 띠고 주카를 맞이했다. 아는 사람인지 주카도 웃어 보이며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무슨 저런 게 다 있어. 어딘가 께름칙해 아루루는 얼굴을 찌푸렸다. 혼테일은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숙여 주카를 바라보았다.

 

“몸이 좋지 않다고 들었는데.”

“괜찮아요. 큰일은 아니니까. 돌아간 줄 알았는데 여기 있었네요?”

감기에 걸렸다는 말이 거짓은 아닌지 주카는 원피스 위에 도톰한 캐시미어 숄을 걸친 채였다. 혼테일과 아루루를 번갈아 쳐다보는 눈길에는 의아함이 담겨 있었다.

 

“…우연히 봤어. 주카 네가 인어를 마음에 들어 한다기에 한 번 볼까 하고.”

“그래요? 아, 아루루. 인사할래? 이쪽은…”

“혼테일이라고 한다. 주카와 곧 결혼할 사이고.”

 

혼테일은 주카의 어깨에 손을 얹은 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웃었다. 아루루는 대답 없이 고개만 한 번 끄덕이고 애써 표정을 관리하려 손을 입가에다 가져다 댔다. 혼테일. 아루루는 그것이 생소한 이름이라도 되는 것처럼 입안에서 작게 굴렸다. 혼테일. 저번에 주카가 말했던. 그래. 선물해 줬다는. 저 사람이랑 결혼한다고? 아루루의 상념을 끊어낸 건 혼테일의 말이었다.

 

“주카, 네가 인어를 마음에 들어 한다면 더 수려한 것을 선물하고 싶은데. 게다가 성대까지 온전한 것을 보면 불량품이 아닐까 싶고.”

“네? 아뇨, 제가 그러지 말라고 했어요. 오히려 부탁이 있는데, 아루루를 당신 집으로 옮길 수 있나요? 이미 정을 붙여서 못 보게 되면 슬플 것 같아서요.”

“…그렇다면야.”

 

혼테일은 구태여 더 말을 꺼내지 않고 주카에게 손을 내밀었다.

 

“피곤할 텐데 이만 쉬어. 방까지 데려다주지.”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주카는 어항에서 못마땅하다는 듯 둘을 바라보고 있는 아루루를 곁눈질하며 머뭇거렸다. 그러나 거듭된 권고를 이기지 못하고 주카는 결국 내민 손 위에 살포시 손을 얹듯이 올렸다. 걸음을 옮기기 전 주카는 아루루만 볼 수 있도록 살짝 고개를 돌렸다. 미안. 다음에 보자. 입 모양이 소리 없이 그리 말하고 있었다.

 

다음에? 항상 내일 보자고 했으면서.

 

아루루는 그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아 대답 대신 꼬리로 벽을 툭 쳤다.

 

 

 

 

주카가 아루루를 다시 찾아온 건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수조에 시계가 있을 리 만무하니 아루루는 자신에게 밥을 주러 오는 담당자의 빈도수를 보아 5일 정도가 지났겠거니 하고 추측했다. 아루루는 미안하다며 헤헤 웃는 주카를 가볍게 흘겨보며 말을 꺼냈다.

 

“뭐 하다가 이제야 와?”

“미안. 할 일이 많았거든.”

 

주카는 멋쩍게 웃으며 주먹 쥔 손을 내밀었다. 대신 선물 가져왔어. 뭐야? 먹을 거? 아니, 먹을 건 아니고. 어서 손 내밀어 봐봐. 아루루가 군말 없이 손을 내밀자 금빛 실로 엮은 상앗빛 조개 모양 장식품이 가볍게 떨어졌다.

 

“뭐야? 목걸이?”

“예쁘길래…. 목에 걸어줄까?”

“됐어. 안 어울려. …그래도 고마워.”

 

아루루는 목걸이를 차는 대신 수조 한쪽 구석에 목걸이를 고이 내려놓았다. 나 생각해서 사준 건가? 한동안 가라앉았던 기분이 무색할 정도로 입 꼬리가 올라갔다. 아루루는 억지로 고개를 휙휙 털고 다시 수면으로 부상했다.

 

“몸은 괜찮아? 아팠다며.”

“알고 있었어? 걱정할까 봐 말 안 했었는데.”

“…나 때문에? 그때 물에 빠져서?”

“아냐. 요새 일교차가 커서 그런 걸 거야. 금방 나았기도 하고.”

 

그래? 요새 날씨는 어때? 나야 보다시피 여기 안에만 있으니, 날씨를 모르잖아…. 아루루는 구태여 대화 주제를 빙빙 돌렸다. 쓸데없는 일상 이야기만 이어졌다. 입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아루루는 넌지시, 정말 지나가는 투로 가볍게 질문을 던졌다.

 

“너 결혼해?”

“응. 사실 그것 때문에 바빴어. 정말이지 할 게 너무 많아.”

 

아루루는 턱을 괴고 한숨을 푹 내쉬는 주카를 빤히 바라보았다. 정말로 바빴는지 눈가에 졸음이 매달려 있었다.

 

“왜 결혼해? 그런, 아니, 그 사람이랑?”

“집안 간의 약속이래. 내가 25살이 되면 결혼하기로.”

“그래? 결혼 안 하면 어떻게 되는데?”

“그 사람이 우리 집 사업을 지원해 주고 있거든. 이제 와서 안 하면 큰일 날걸?”

“복잡하네.”

“복잡하지…”

 

주카가 한숨처럼 길게 말꼬리를 늘이더니 입을 다물었다. 침묵이 둘을 감쌌고, 아루루는 그 어색한 정적을 못내 견디지 못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사람을 좋아해?”

“…잘 모르겠어. 좋아한다는 게 뭔지. 책에서는 사랑에 빠지면 귓가에 종소리가 댕댕 울린다고 했는데. 온 세상이 핑크빛으로 보인다고 했던 책도 있었고.”

“그건 사랑이고. ‘사랑해’랑 ‘좋아해’는 다르잖아.”

 

그런가? 주카가 어색하게 볼을 긁적였다. 아루루는 꼬리로 물을 한 번 찰박이고는 불쑥 말을 꺼냈다.

 

“그럼 나는 좋아해?”

 

생각을 거치고 나온 말이 아니었다. 아루루는 당황해 혀를 씹을 뻔했지만 주카는 개의치 않는 듯했다. 피곤한지 멍한 눈으로 아루루를 바라보다가 주카는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좋아해.”

“어? 진짜? 왜? 왜 좋아하는데?”

“그야 너는 지느러미가 있고…. 비늘이 반짝반짝 예쁘고… 그리고 물고기 냄새가 나.”

“…고작 그런 이유?”

 

황당해진 아루루는 잠수했다가 다시 물 밖으로 몸을 일으켜 냅다 소리쳤다.

 

“그럼 비늘 있고 지느러미 달린 물고기면 다 좋다는 거겠네!”

“아하하… 장난이야.”

 

주카는 이리 와 보라며 손짓을 했다. 아, 가면 안 될 것 같은데…. 아루루는 잠시 망설이다가 못 이기는 척 다시 주카한테 다가갔다.

 

“너는 내가 좋아?”

“…글쎄다.”

“뭐? 싫어? 다시 바다로 돌려보낸다?”

“곤란한데. 나 여기 생활에 너무 적응해 버려서 바다로 돌아가면 사냥 못할지도.”

“원래도 어망에서 고기 훔쳐 먹었다며.”

“야, 그건 훔친 게 아니라…”

 

주카는 낮게 소리죽여 웃다가 아루루의 손을 잡았다.

 

“나는 결혼하면 여기가 아닌 그 사람의 집에서 살게 될 거야. 혼테일은 동의했으니, 너만 괜찮다면 거기서 같이 살자.”

“…”

“하지만 네가 바다로 가고 싶다고 하면 언제든 돌려보내 줄게. 답답하지 않아? 앞으로 잘 못 찾아올 수도 있으니까….”

“주카, 나는…”

 

아루루는 망설이다가 주카의 귓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주카는 그 소리를 듣고 활짝 웃더니 자신의 수조 인어를 끌어안았다. 야, 야, 너 옷 다 젖는다고! 그런 소리는 무시한 채로.

 

 

 

 

 

 

 

 

 

한동안 주카는 드문드문 오다가, 마지막에는 적어도 일주일간은 오지 못할 거라는 말을 했다. 곧 사람들이 수조를 옮길 건데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고. 심심해할까 봐 새로운 방에는 티비를 설치해달라고 했어. 그걸로 넷플릭스라도 봐. 넷플릭스? 있어, 그런 게. 부스스 웃다가 주카는 다시 자신을 찾는 목소리에 급히 몸을 일으켰다.

 

“또 여기 계세요? 누가 보면 저 인어랑 결혼하는 줄 아시겠어요.”

 

사용인이 작게 투덜거리는 목소리에 주카는 뭘, 하면서 무릎을 툭툭 털었다. 알았어. 갈게. 아루루, 잘 지내야 해? 아루루가 대답도 하기 전에 주카는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많이 바쁜가. 아루루는 주카가 줬던 조개 모양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다가 사용인들이 몇 다가오기에 손에 목걸이를 꼭 쥔 채로 순순히 눈을 감았다.

 

 

 

처음 육지에 건져 올라갔을 때처럼 한참을 좁은 수조에 갇혀 덜커덩거리다가 다시 철썩 내던져지니 어두운 방 안이었다. 잠시 후 암적응을 거치자 수조 바로 밑에 자리한 큰 소파가 보였다. 벽 한쪽에는 검은 디스플레이가 자리 잡고 있었다. 수조 안에 특별 제작한 듯 리모컨이 있기에 아루루는 전원 버튼을 눌러 보았다. 즉시 시끄러운 소음과 지나치게 밝은 빛이 흘러나왔다. 아루루는 버튼을 이리저리 눌러 설정을 만지다가 검색이라고 쓰여 있는 버튼을 발견했다. 딱히 뭘 봐야 하는지 모르는데. 봤어야 알지. 화면에 뜨는 콘텐츠들을 흥미 없는 눈으로 쓱쓱 넘기다가 아루루는 불현듯 결혼이라는 키워드를 검색했다.

 

결혼, 결혼…. 인간들은 어떻게 결혼하지. 검색 결과에 나온 가장 첫 영상을 클릭했다. 뛰어넘기를 빠르게 연타하다가 결혼식 장면에서 아루루는 손을 멈추었다. 하얀 옷과 천을 뒤집어쓴 여자가 보였다. 행복하게 웃으며 남자의 손을 잡고 있었다. 잠시 장신구가 끼워진 약지가 클로즈업 되더니 앵글이 서서히 멀어져 전체적인 배경을 줌 아웃으로 비추었다. 온통 하얀 장소에는 꽃과 축하가 가득했다. 손을 잡은 남녀는 나란히 서서 축사를 듣다가 다정히 입을 맞추었다.

 

저런 게 결혼식이구나. 주카도 저런 걸 했을까? 저렇게 웃었을까? 아루루는 잠깐 머릿속으로 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는 주카를 그려 보았다. 길게 내려오는 치마와 머리에는 하얀 면사포를 쓰고, 한 손에는 꽃을 들고 있고. 그리고 다른 손으로는…. 아루루는 그냥 화면을 종료했다. 다시 어두운 방 안에는 적막이 감돌았다.

 

괜히 이런 걸 해줘서는. 아루루는 영상으로 무료함을 때우기보다 차라리 주카가 다시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쪽을 택하며 눈을 감았다.

 

 

 

 

 

 

“아루루!”

 

오랜만에 보는 주카는 밝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피곤해 보였다. 옆은 화장은 눈 밑의 그늘까지 감추지는 못했다. 목까지 올라오는 얇은 목폴라 티를 입은 채로 주카는 소파에 털썩 걸터앉았다.

 

“잘 지냈어? 티비는 좀 봤고?”

“안 봤어.”

“뭐? 왜?”

“딱히 볼 게 없던데.”

“그래? 영화 추천해 줄까? 무슨 장르 좋아해? 로맨스? 액션?”

 

리모컨을 이리저리 만지는 주카의 약지에서 못 보던 띠 형태의 링이 빛나고 있었다. 어딘가 눈에 익은 장신구에 아루루는 손으로 주카의 왼손을 가리켰다.

 

“손에 그건 뭐야?”

“이거? 반지 말이야? 결혼반지야. 결혼하면 이렇게 왼손 약지에 결혼반지를 끼거든.”

 

주카는 왼손을 들어 올려 반지가 잘 보이게 몇 번 손목을 돌렸다. 한가운데 박혀 있는 보석이 반짝거리며 빛을 반사했다. 눈에 쨍하게 달라붙는 빛에 아루루는 눈살을 찌푸리자 주카가 급히 손을 내렸다.

 

“왜? 별로야?”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눈부셔서.”

“그렇구나…. 미안. 이야기를 많이 하고 싶었는데, 너무 졸려서…. 눈만 감고 있을게.”

“그냥 편하게 자지 왜.”

“아냐, 그리고 저녁에 약속 있어서 나가야 하거든….”

 

그러나 주카는 고양이처럼 몸을 둥글게 말고 웅크리더니 곧 색색거리는 소리를 냈다. 많이 피곤한가 싶어서 아루루는 조용히 주카를 내려다보았다. 쟤는 장신구를 반지 하나 빼고는 전혀 안 했네. 목걸이 하면 어울릴 것 같은데. 아루루는 수조 귀퉁이에 있던 주카의 선물을 집었다. 손을 들어 올려 수조 너머에 있는 주카의 목 부근에 목걸이를 대보자 하얗게 빛나는 게 주카와 잘 어우러졌다. 그런데 약속 있다고 했으니 깨워줘야 하려나? 물이라도 튀겨서? 싫어하지 않으려나. 바닥에 가라앉아서 유리벽을 톡톡 두드릴 찰나 철컥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슬슬 밥시간이라 관리인이겠거니 싶어 시선을 돌리지 않았지만, 발걸음 소리는 수조가 아닌 곧잘 주카에게로 향했다. 그 남자다. 아루루는 슬쩍 벽에서 떨어져서 부상했다. 혼테일은 잠든 주카를 안아 올린 채 옆에 있는 아루루를 흘긋 바라보았다. 남자의 왼손에는 주카의 것과 같은 반지가 빛나고 있었다. 노골적으로 쏟아지는 적대감에 아루루는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쓸데없는 짓 말라고 경고했을 텐데.”

 

내가 뭘 했다고. 그러나 말을 섞기 싫었으므로 아루루는 대답 없이 수면 아래에서 유유히 헤엄쳤다. 혼테일은 아루루에 큰 흥미가 없는 듯 시선을 거두려다가 아루루의 손에 들려져 있는 목걸이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너. 그 목걸이는 어디서 구했지?”

 

아루루가 이걸 말 하냐는 듯 손을 들어 올리자 혼테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아루루는 말을 하기 위해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이거? 주카가 준 건데.”

“주카가?”

 

아루루는 보란 듯 목걸이를 착용해 보였다. 너만 반지 있냐, 나는 목걸이가 있는데. 그런 기만의 의미가 조금 담겨 있었다. 아루루의 의중을 눈치 챈 듯 혼테일은 인상을 와락 구기더니 곧바로 등을 돌려 방 밖으로 나갔다. 쾅 하고 문이 거세게 닫겼다. 아루루는 움찔거리면서도 이긴 것 같아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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