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災難
연반au. 혼테일(19)×주카(27) -> 혼테일(20)×주카(28)
뜻밖에 일어나는 불행(不幸)한 일.
쌀쌀하다 못해 서늘한 공기가 몸을 감싸는 10월 끝무렵의 한 목요일이었다.
계획된 일탈은 아니었다. 일어나서, 씻고, 교복을 입고, 간편식으로 밥을 때우고, 아무도 배웅하지 않는 집을 나서는 것까지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일상이었다. 날씨는 적당히 서늘했고, 길은 출근 혹은 등교로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로 인해 적당히 막혔다.
그러나 학교로 가는 갈림길 그 사이에서 잠시 멈추어 선 혼테일은 정반대 방향으로 꺾었다. 목적지 없이 발길 닿는대로 걷다가 저 멀리 높은 건물이 보였다. 지은지 얼마 되지 않은 신축 백화점의 유리창이 햇빛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나쁘지 않겠다 싶어 혼테일은 무작정 안으로 들어갔다. 평일 오전 교복을 입은 학생이 유리 문을 밀고 들어오자 궁금한 눈길들이 느슨하게 혼테일의 근처를 맴돌다가 떨어졌다. 혼테일은 다른 곳에는 시선을 두지 않고 곧바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손가락은 머뭇거림 없이 최고층을 눌렀다.
교우관계가 좋지 않다던가, 성적이 나쁘지 않다던가 하는 이유는 아니었다. 그저 가지 않아도 상관없겠다 싶었다. 인생이 지독히도 무미건조했다. 이미 대학은 수시로 합격했고, 아마 자신은 졸업 후 그럴듯한 대학에 가서 그럴듯한 직장을 얻고 그럴듯하게 살아가다가 죽을 테였다. 오히려 머리도 신체도 얼굴도 좋은 편에 속하니 남들보다 인생을 쉽게 살아갈 수 있을 테였다. 그러면? 그걸로 된 건가? 뒤늦은 사춘기인지 방황인지. 부모님이라는 존재가 있다면 인생의 의의에 대해 물어볼 수 있을 테였지만 애석하게도 소년에게는 부모님이라 부를 존재가 없었다.
엘리베이터는 단숨에 혼테일을 건물 꼭대기에 올려놓았다. 옥상에 있는 정원은 정갈하게 꾸며져 있었다. 그러나 겨울인지라 모든 잎을 떨군 나뭇가지는 어쩐지 황량한 느낌을 자아냈다. 이른 아침이라 인기척이 없는 게 마음에 들었다. 혼테일은 그대로 앞으로 걸어가 난간에 몸을 기댔다. 마주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고개를 숙이자 밑의 건물들이 죄다 장난감처럼 보였다. 혼테일은 난간에 더욱 아슬아슬하게 몸을 기댄 채 눈을 감았다. 딱히 죽고 싶은 건 아니었다. 이대로 떨어져 죽는다면 죽는 거고, 아니어도 그걸로 좋다는 마음가짐이었다. 운명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여기서 죽을 운명이라 해도 크게 억울하지 않았으므로. 무게중심이 지면과 허공을 아슬아슬하게 맴돌았다. 혼테일을 스스로의 목숨을 저울질하는 중이었다. 몇 번의 저울질 끝에 중력이 무겁게 그를 지면 아래로 끌어들이려 하는 참이었다.
"저기…!"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 혼테일은 눈을 떴다. 깜짝 놀라 정말로 떨어질 뻔한 걸 급히 쇠봉을 잡고 몸을 되돌렸다. 그제야 자기가 죽음 저편에서 살아 돌아온 것을 인지하고 숨을 들이쉬는데 뒤에서 한 번 더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서 있으면 위험해."
한 여자가 서 있었다. 내려오지 않을래? 불안한 듯 눈이 이리저리 흔들렸지만 혼테일을 안심시키려는 듯 입가에는 느슨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남이 뭘 하든…"
"아니, 상관있어. 이 백화점, 우리 아버지 거고."
여자는 눈썹을 옅게 찌푸렸다. 네가 내려올래 내가 그쪽으로 갈까? 아니, 내가 그쪽으로 갈게. 성큼 다가오더니 여자는 혼테일의 옆에 와 섰다. 서늘한 바람이 여자의 긴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헤집었다.
"고등학교 교복이네. 몇 살이야?"
"19살, 이요."
"19살? 곧 수능 아니니? 물론 인생에 길은 여러가지 있다지만…."
"상관없어요. 이미 대학 붙었고."
"아,"
여자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할 말을 찾는 듯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 그래도 학교에는 가야지. 아직 학기 중이잖아. 부모님이 걱정하실 거야."
"그것도 상관없어요. 부모님 안 계시고."
"…아."
여자는 두 번째로 얼빠진 소리를 냈다. 눈을 껌벅이다가 여자는 휙하고 혼테일의 팔을 잡아끌었다. 중력이 여자 쪽으로 온통 쏠려 혼테일은 비틀거렸다.
"우선은 추우니깐 안으로 들어가자. 근처에 카페가 하나 있거든."
여자는 막무가내였다. 어서 가자며 자기보다 머리 하나 이상은 더 큰 혼테일을 질질 끌고 엘리베이터 앞에 가 섰다. 물론 딱히 실랑이하고 싶지 않았던 혼테일이 잠자코 끌려가 준 것도 한몫했다.
"차 괜찮아?"
여자는 하얀 김이 솟아오르는 머그컵을 혼테일에게 건넸다. 자그마한 티백이 손잡이에 칭칭 휘감겨 있었다. 정작 여자가 손에 들고 있는 건 얼음이 둥둥 떠 있는 커피였다.
"저도 커피쪽이 더 좋은데."
"안돼. 아직 학생이잖아? 커피는 성인이 되면 마셔."
요새 커피 마시지 않는 학생이 어딨다고, 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맴돌았지만 혼테일은 애써 삼켜 냈다. 차는 3분 뒤에 마셔. 아직 우러나와야 해. 그렇게 말하며 여자는 빨대로 커피를 휘휘 저었다. 얼음끼리 서로 부딪혀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여자는 빨대로 커피를 두어모금 정도 마신 다음 혼테일을 바라보았다.
"돈은 걱정하지 마. 내가 사는 거니깐."
"…"
"나는 주카라고 해. 우리 이야기 좀 할까?"
"아뇨, 음료 값 드릴테니 일어나 보겠습니다."
어쩌다 보니 여자의 페이스에 휘둘려 여기까지 왔지만 혼테일은 이 자리가 영 불편했다. 보나마나 그래도 자살은 안 된다던가, 하늘에 계신 부모님이- 같은 입 바른 말이 오갈 것이었다. 그런 가식은 듣기 싫었다. 혼테일은 인상을 쓰며 가방을 들쳐맸다. 휴대폰을 확인하자 시간은 10시를 조금 넘겼다. 지금이라면 적당히 아팠다는 핑계가 통할 터였다.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으며 지갑에 현금이 있나 생각하던 찰나였다.
"수능 치고 오면 커피 사줄게."
주카는 나긋하게 미소지었다. 예상하지 못한 말이라 혼테일은 멍하니 멈추어 섰다.
"여기 커피, 꽤 맛있거든. 내가 코가 좋은 편인데, 산미가 적당하고 향이 깊어. 분명 좋아할 거야."
그러니깐 다음에 사줄게. 여기 내 번호야. 주카는 멋대로 혼테일의 휴대폰을 가져가더니 번호를 꾹꾹 눌렀다. 통화 버튼을 누르는 것까지 잊지 않은 주카는 곧 휴대폰을 돌려주었다. 연락처에는 주카라는 이름이 저장되어 있었다. 수능 끝나면 연락해. 그런 말이 덧붙여졌다.
"…무엇을, 커피요?"
"응. 다른 게 필요하다고 연락해도 좋아."
"됐습니다. 더 할 말 없다면 가볼게요."
"밖에 추운데, 차라도 마시고 가."
주카는 컵을 혼테일 쪽으로 밀었다. 지금이면 딱 적당할 텐데. 목소리 끝에 비음 섞인 웃음소리가 실렸다. 혼테일은 못 이기고 컵을 집어들었다. 살짝 식어 딱 적당한 온기였다. 따뜻한 액체를 기도로 넘기자 은은한 꽃향이 입안을 맴돌다 사라졌다. 혼테일은 연거푸 차를 들이키고 빈 잔을 탁 소리나게 내려놓았다. 손으로 물기가 남아 있는 입가를 훔치니 그제야 미소를 짓고 있는 주카가 보였다.
"잘 마시네. 학교까지 데려다줄까?"
"…아뇨. 혼자서 갈 수 있습니다."
주카는 굳이 혼테일을 붙잡지 않았다. 그래. 그럼 수능 마치고 보자. 힘내! 혼테일은 애써 주카의 눈을 피했다. 연락 안할 테니, 기다리지 마세요. 그런 퉁명스런 말만 던지고 걸어나가 카페 문을 열자 매서운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한 걸음 성큼 밖으로 내딛으니 내부와는 확연한 온도차가 느껴졌다. 그러나 방금 마신 차 덕인지 그렇게까지 춥지는 않았다.
정작 수능 후 휴대폰을 켜자마자 혼테일이 한 일은 연락처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주위 학생들이 죄다 부모님의 손을 잡고 웃고울며 떠들고 있는 바람에 새삼스레 외로웠는지, 아니면 정말 그 맛있다던 커피가 마시고 싶었는지는 몰랐다. 혼테일은 잠시 망설이다가 연락처에 저장되어 있는 주카의 프로필을 클릭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주카의 사진이 나왔다. 몇 번 손가락을 옆으로 넘기다가 혼테일은 멈추어 섰다. 주카가 왠 남성과 나란히 서서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입고 있는 옷이 얇으니 아마 여름에 찍은 것 같았다. 혼테일은 빤히 사진 속 웃고 있는 주카의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통화음 연결 끝에 주카의 목소리가 들렸다.
- 여보세요?
그제야 혼테일은 여자에게 전화번호, 이름 무엇 하나 알려주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가 결국 내뱉은 것은 전의 그 이상한 약속이었다.
- 그, 수능이 끝나면… 커피, 사주겠다고 하셨어서.
- 안 그래도 연락 기다리고 있었어. 학교 앞이지?
주카는 목도리를 두른 채 손을 붕붕 흔들었다. 금방 오겠다고 하더니 주카는 마치 미리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순식간에 혼테일의 앞에 와 섰다.
"수고 많았어! 수능은 어땠니? 누나는 수능을 본 지가 너무 오래되어서…."
"몇 살이신데요?"
"나? 하하… 27살이야. 너보다 8살 더 많지? 그래도 누나라고 불러줘야 한다?"
주카는 그렇게 말하며 무안한 듯 소리내어 웃었다. 수능 한파라 그런지 오늘 되게 춥다. 어서 가자. 그런 말이 느즈막히 덧붙여졌다.
다행히도 카페는 학교와 가까웠다. 혼테일은 이번에야말로 차가 아닌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커피는 주카의 말대로 향이 좋았다. 주카는 춥다면서도 취향인 듯 그때처럼 얼음이 가득한 커피를 들고 있었다.
"이제 수능도 쳤으니 곧 성인이네? 성인 되면 하고 싶은게 있어?"
"아뇨."
바로 떨어지는 부정에도 주카는 미간을 살짝 좁히며 팔짱을 꼈다.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 음… 하며 말꼬리를 늘이다가 탁 하고 손뼉을 쳤다.
"그러면 성인 되면 연락해. 술 사줄테니깐."
기어코 다음 약속까지 잡아낸 주카는 씩 웃었다. 눈꼬리가 둥글게 접히면서 끝이 살짝 휘었다. 혼테일은 문득 주카의 웃는 낯을 사진으로 간직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카톡 프로필에 있는 다른 남자와 웃고 있는 얼굴이 아닌 자신에게 웃어주는 얼굴을.
"첫 술은 원래 연장자랑 같이 마셔야 하는 거야. 아직 술 마셔본 적 없지?"
"…"
"…없지?"
아연실색한 주카의 얼굴에 혼테일은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없어요. 그 말에 다시 확 밝게 바뀌는 낯이 신기했다. 가급적이면 웃는 낯을 보고 싶었다.
"그럼 그때 연락할게요."
…누나. 조그맣게 덧붙여지는 말에 주카는 눈을 크게 떴다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심장이 이상하게 빨리 뛰는 까닭은 분명 카페인 때문일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혼테일은 괜히 손을 쥐었다가 폈다. 손바닥에 반달모양의 붉은 자국이 남았다.
"20살 축하해!"
주카는 맥주 캔을 들고 생긋 웃었다. 막 혼테일이 편의점에서 사 들고 온 맥주였다. 4캔에 만원하는 수입 맥주가 편의점 파라솔 테이블 위에 열을 맞추어 섰다. 주카는 의자에 앉아 공평하게 절반씩 마시자며 냉큼 2캔을 가져갔다. 혼테일은 피식 웃으며 의자를 집어 끌었다. 드르르륵, 하고 속이 빈 플라스틱이 단단한 바닥을 긁는 소리가 났다.
"새해 첫날부터, 괜찮아요?"
"응? 아… 그래도 혼테일 네가 첫 성인이 된 날이잖아. 누나가 축하해 줘야지."
말을 잠시 흐리는 것을 보아 아마 약속이 있었을 테였다. 하지만 주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낯으로 맥주 캔을 땄다. 칙, 하고 기체가 빠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뚜껑이 열렸다.
"술 마시는 것도 다 어른한테 배워야 하는 거야."
"맥주 캔으로 주도를 가르친다고요?"
"이제는 제법 말이 늘었다? 딴지도 걸고."
주카는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소리내어 웃었다. 건배 할까? 쨍- 하고 잔이 경쾌하게 울리는 소리는 없었지만 주카는 건배하자마자 맥주를 들이켰다. 혼테일도 천천히 맥주를 한 모금 식도로 넘어보냈다. 끝맛이 썼고 식도가 온통 따끔거렸다.
"편의점 맥주는 오랫만에 마셔본다…."
주카는 빠르게 맥주 두캔을 내리 비우더니 눈을 감고 몸을 뒤로 기댔다. 새해에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어? 하고 싶은 일이라던가. 웅얼대는 소리가 들렸다. 마땅히 말할 만한 것이 없었기에 혼테일은 침묵했다. 잠시 머리를 굴리다가 아무것도 없다 하면 주카가 못마땅한 얼굴로 무어라 할 것이 뻔했기에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누…나는 새해 목표가 뭔데요?"
"나? 음… 역시 결혼이려나."
"결혼이요?"
목소리가 지나치게 컸다. 혼테일은 뒤늦게 실수를 알아채고 급히 입을 다물었다. 주카는 눈을 멀뚱멀뚱 깜빡이다가 손뼉을 치며 웃었다.
"나도 이제 28살인데, 슬슬 결혼할 때가 되긴 했잖아."
"…그렇죠. 선이라도 볼 생각인가요?"
"아니, 나 남자친구 있고."
"남자친구가 있어요?"
주카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혼테일을 바라보았다. 응… 고등학생 때부터 사귀었어. 프로필에 사진 있는데 볼래? 혼테일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럼 왜 남자친구 분이랑 시간을 보내지 않고."
"그게, 얼마전에 싸웠거든."
술이 들어가서 그런지 주카는 붉어진 얼굴로 이야기를 줄줄 쏟아냈다. 아니 거기서 다른 여자 손을 잡고 있었다고! 여자친구인 내가 두 눈 뜨고 살아 있는데! 저번에도 그렇고, 저저번에도!!
"그러면 헤어지시면,"
"사실 10번도 더 넘게 헤어졌어."
"예?"
"뭐, 이러다가 적당히 화해하고 마니까. 그래도 결혼 전에는 버릇을 단단히 고쳐 놓으려고."
주카는 투덜거리며 팔짱을 꼈다. 하여튼간 잘생긴 건 알아가지고…. 혼잣말에 한숨이 섞였다. 길게 숨을 내뱉자 흰 옷을 입은 숨결이 허공에서 잘게 깨어졌다.
"…애인 분이 다른 여자와 너무 친하게 지내서 문제라는 거죠?"
"그냥 친한 것도 아냐! 막 다정하게 이름도 부르고, 손도 잡아주고. 춥다고 하면 옷도 빌려주고..."
"그럼 똑같이 해보면 되겠네요."
"응?"
"저, 이제 성인인데 저랑 해요."
저, 새해 목표가 연애하는 거였거든요. 혼테일은 급히 그럴듯한 이유까지 덧붙였다.
주카는 멍한 표정으로 혼테일을 바라보았다. 이해가 되지 않는지 취기 오른 눈이 몇 번 깜박거렸다.
"하지만 이, 이건 연애가 아니잖아. 그…."
이상하잖아. 주카는 계속 이유를 덧붙이려고 애썼다. 너랑 나는 8살이나 차이가 나고, 너는 갓 대학생이고, 나, 나는 남자친구도 있고… 목소리가 점차 작아졌다.
"제가 괜찮아요. 개강은 3월이니 시간도 넉넉하고."
"그래도…."
"못할 것도 없잖아요."
혼테일은 맥주 캔을 흔들었다. 아직 반쯤 남은 캔에서 찰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술을 가르치는 것의 연장선상이라고 생각하세요. 저에게 연애하는 법을 가르쳐 주면서, 동시에 남자친구 버릇도 고치고, 일석이조네요. 자기가 생각해도 뻔뻔한 핑계였다. 술의 영향인지 혼테일은 평소와 달리 천연덕스럽게 말을 잘도 늘어놓았다.
"…그, 그래. 그럼 그럴까…?"
그리고 술에 취한 건 주카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까지 말하면 이 누나가 도와주어야겠네! 연애는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 줄게. 잘 부탁해?"
주카는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미소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손을 맞잡자 피부를 타고 부드러운 온기가 전해지는 가운데 주카의 약지에 자리잡은 반지만이 차가운 기운을 내뿜었다. 그 서늘함이 충동 뒤편에 자리잡은 양심을 쥐고 뒤흔들었으나 혼테일은 애써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사랑은 원래, 재난과 같다고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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